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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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박근혜의 무능과 무책임, 대통령의 비호 아래 이뤄진 권력남용, 삼권 분립을 무너지게 하는 사법부 사찰, 등 현 정권의 헌법 파괴적인 범죄 행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다.   

촛불 민심으로 탄핵안 가결과 특검을 이끌어낸 마당에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라는 책 제목은 현재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해 보였다.  이 기회에 세상을 리셋해서 무능한 권력과 그림자 같은 박정희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올바른 정치 문화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고 싶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믿는다.  진보에는 퇴행이 불가피하게 공존하기 마련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탄생한 공화국은 다시 왕정이 복고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7월 혁명과 2월 혁명 이외에도 작은 시민 혁명을 거쳐서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다.   한국의 시민 혁명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19혁명, 6월 민주화 운동, 그리고 지금의 촛불 운동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는 전진과 쇠퇴를 반복했다.  혁명 이후 독재가 스물스물 제모습을 다시 드러냈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부 10년 동안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막을 향하다가 현 사태를 낳았다.   


이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서 말하는 리셋은 혁명과는 다르다.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삶의 영속성을 잃고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나 정념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리셋은 '잉여'의 냉소적인 반응, '오타쿠'에게서 보이는 유예라는 삶의 태도, '사토리'에게서 보이는 세상을 초월한 듯한 도피적인 태도를 넘어선다.  '리셋'의 태도는 세계에 대한 혐오감과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무기력, 언젠가 다 파괴하고 말 것이라는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일본의 오타쿠에 대비되는 존재로 한국에선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설정했다.  오타쿠나 자기계발 주체는 모두 현실로 도피한 것일 뿐 삶에 직접적으로 대면하기를 거부한다.   오타쿠는 어떤 마니아적인 의미이지만 자기계발 주체는 성장 서사에 온 힘을 다해 몰입한다. '난 할 수 있어'라는 긍정적인 생각은 현재 저성장 시대에는 희망 고문이다.   가망 없는 희망에 매달리는 꼴이다. 


실패하면 사회 구조의 탓보다는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늘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주체는 다시 최선을 다하고 끝내 자기 착취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가 자기계발이 자기 착취에 다름 아니라고 일갈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내 자녀에게 사회 구조가 이러니 자기 가능성과 잠재력에 매달리지 말고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망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다.  무한 낙관주의보다는 비관적 현실주의적인 태도를 가지라고는 말하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판단하며 자기를 보존하는 법을 지혜롭게 헤아리는 것이 좋겠다.   


가망 없는 희망에 매달리다가 실패를 반복하는 세상에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반복된다면 리셋을 부르게 된다.   우리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재난과 위기의 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사회 안전망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회도 국가도 작동한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에서 국가로부터 안전한 보호를 받지 못 했다.  안전마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세월호요, 메르스요, 강남역 묻지 마식 살인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국가적 재난이었고, 제대로 준비하고 대처하지 않았기에 또 다른 재난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었던 것은 우연히도 운이 좋았던 것이었고, 언젠가 내가 다른 재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란 개념이 사라지고 능력대로 살아가는 '각자도생'의 삶에서는, 재난의 피해자가 되면 아무도 나를 위해서 '아니오'라는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다.  각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만 되돌아올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공정한 것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라면서,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성취한 것을 사회나 연대라는 이름으로 나눌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사회 구조는 가진 자들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고, 이에 대한 불만은 대중적인 반감과 혐오로 나타난다.   반감과 혐오는 현재의 정치를 중지시키고 세상을 리셋하고 싶은 정치적 형태로 나타난다.


현 정치와 사회 구조는 어느 쪽에서 접근해도 이 세상에 대한 복수와 파괴를 표출하는 리셋을 부르고 있다.   리셋은 민중 혹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이념적으로 표출하는 혁명과는 전혀 다르다.  리셋은 불신의 산물이다.  세상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고 강력하게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그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우리의 촛불 집회는 이 세상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지만 리셋보다는 혁명이라고 하겠다.  반감으로 한번에 확 엎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보에는 후퇴가 동반된다.  우리는 진보 중이고 후퇴가 갈 때 까지 갔으므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때가 되었다.   촛불 혁명이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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