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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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중략)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작가 랠프 앨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첫문장이다.   원제는 invisible man(투명인간)이다. 첫문장이 하도 강렬하여 언젠가 읽으려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소장중인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주인공은 흑인이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그 시대 주인공은 누구도 괌심을 가지지 않아 자신을 스스로 투명인간으로 여긴다. 


성석제의 장편소설 <투명인간>에도 투명인간이 등장한다.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류에서 저 멀직하게 밀려나 생을 포기한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는 것인지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것인지..  아니 어쩌면 랠프 앨리슨의 소설에서처럼 그림자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만들어낸 투명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이렇게 투명인간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삼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설은 해방전 일제시대부터 현대 까지 격변의 시대를 모두 담고 있다.   삼대에 걸친 시대적 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근현대사를 이 한권의 책으로 관통해 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김만수이다.   증조부모부터 시작해서 조부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만수를 제외한 5남매가 번갈아 가며 화자가 된다.   만수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까지도 화자가 된다.   이번 화자는 누군지 파악하며 읽느라  흐름이 약간 방해받기도 했지만, 다양한 인간의 시각으로 만수와 시대를 섬세하게 그려낸 방식이 새로웠다.  


주인공 만수는 화자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주변인을 통해서만 판단할 수 있다.   순하고 선량하긴 하지만 생긴 것 부터 어리숙하게 생겨 무시당하기만 한다.    자기 몫을 다해내고,  인간성 좋고, 이타적이지만, 이용당하는 것인지 자신만은 모른다.   

 

특히 가족을 위해서는 너무나 헌신적이었다.    형의 죽음, 큰 누나의 이른 결혼, 작은 누나의 가스 중독 사고로 졸지에 맏이가 되어 두 동생을 책임져야 했다.   산업체에서 공부도 하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악착같이 돈도 벌어야만 했다.   회사가 넘어가려고 할 땐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다.   남동생이 남기고 간 아이도 사랑하는 여자도 책임져야 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인지..  가족이 있었기에 구구절절할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가족이 있었기에 밑바닥 까지 추락해도 어떻게든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투명인간이란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렇게 스스로 믿는 것인지, 아니면 환타지로 처리된 것인지 불분명해서 다시 돌아가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았다.  마지막 결말부는 인물들의 특성과 관련하여 사유의 공백을 남겼다.  이렇듯 결말부를 오래 잡고 있었던 소설도 없었다.  석수와 만수의 마지막 대화에서 단서를 찾아보았다.


석수:  보이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를 투명하다고 믿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착각, 맹신, 오해이거나 그저 이야기에 불과하거나, 사람들은 그런 데서라도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 하니까.  신화와 동화, 민담은 그렇게 생겨났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로 바꾼 것이다.


만수: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진실이다.


석수:  내 경험으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살을 기도하거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지기로 선택한 사람들 중에 투명인간이 된 사례가 더러 있다.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가.   죽는 게 낫겠다.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가서 새로운 생을 개척해보자든가.  그래서 다리 위에서 투신을 했다든가. 


만수: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훨씬 쉽다.  나는 한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고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동생 석수는 가족이라는 짐을 버리고 소외된 채 살아가면서 스스로 투명 인간이 되었다고 여기는 듯했다.   만수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아꼈던 만큼 함께 했던 가족이 죽었는데도 옆에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엔 진짜로 투명인간이 된 듯한 여운을 남겼다.    결말이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독자마다 소설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기에 적어보았다.  이 가족의 스토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하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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