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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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었다.   오랫동안 그 이름도 매혹적인  <장미의 이름>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을 수도사가 해결한다는 스토리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소설은 미스테리 수사물을 넘어 중세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중세 시대가 종교의 헤게모니가 장악한 시대이니만큼 이 소설은 종교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세 학자, 기호학자로 더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답게, 이 소설은 미학, 종교학, 기호학, 언어학 등 여러 방면의 학문에서 충분히 읽힐 가치가 있으며 종교의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도 가치롭다.


소설의 배경인 1327년은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져 교황권이 프랑스의 지배하에 놓였던 시대였다.   교황은 황제와 대립하였고,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황이나 황제의 편 쪽에 서기도 했고, 자신의 교파가 정통인 것을 내세우기 위해 다른 교파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웠다.   


윌리엄 수도사는 명민한 통찰력과 기호학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저자가 자신의 모습을 소설속에서 풀어놓은 것 같음).  더러 허영심에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애교스럽게 봐줄 정도..    어떤 사건에 대해서 예리하게 분석하여 풀어내는 장면은 셜록 홈즈가 생각나게 만든다.    윌리엄의 통찰력은 세상 만물이 책이며 그림이며 거울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물의 정황과 자연의 법칙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면 궁극적인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윌리엄 수도사는 황제측 대표단으로 교황측 대표단과의 회의를 위해 문제의 수도원에 들르게 된다.  수도원장은 윌리엄의 통찰력과 분별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사건 해결을 일임하게 되는데..    도착 이전에 일어난 첫번째 사건 이후 네건의 살인 사건이  도착 다음날부터 연이어 발생한다.   소설은 모두 5일간의 이야기이다.    


살인 사건은 수도원의 장서관에서 발생한다.  장서관은 고로 책을 널리 읽히고 지식을 보급하고자 하는데에 목적이 있지 않을까.   이 장서관은 지식을 보존한다는 명목하에 철통같이 방어되고 있었다.  접근이 불가하게 미로의 방으로 만들어졌으며, 허용된 책만이 신청에 의해서 열람 가능했다.   수도원 장서관은 이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침묵과 어둠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드소는 윌리엄 수도사의 제자로 윌리엄이 사건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주고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기독교 정통과 이단에 대한 종교 분쟁도 흥미로운 주제이다.   정통과 이단은 어떻게 구분되었을까.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당시엔 돈의 문제가 최대의 잣대.   

수도원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 버렸고, 청빈한 삶을 강조하는 수도사들은 다른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청빈하지 않은 수도사들은 대중들이 청빈한 수도사만을 따르고 자신들을 성직자로 치지 않게 될까 염려하여 청빈교리를 내세우는 교파를 이단으로 몰았다.      

좀 더 복잡한 교파간 이익이 지배하고 있지만, 여튼 힘있는 자들이 정통이 되고 힘없는 자들이 이단이 되어 버리는 시대였음은 분명하다.   윌리엄 수도사도 이단  심판 조사관을 하다가 그만 둔 것도 정통과 이단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희극론이 바로 살인 사건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희극론에서 웃음은 우리 삶에 바람직하며 진리의 도구라고  말했으며, 희극은 실재보다 못한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려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당시 예수가 웃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으며 웃음은 인간을 격하시킬 뿐이라는 종교 사상에 빠져 있을 때였다.    희극론을 보고 웃음이 퍼진다면 신의 권위도 떨어지고 신도들도 천박해진다고 생각했다.  웃음을 찾으려는 자와 웃음을 막으려는 자..  여기에서 살인 사건이 비롯된다. 


웃음에 대한 종교적 의미는 어떻게 성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신의 해석만이 진리이고, 진리를 지킨다는 신념 하나에 매달리다가 살인 사건 까지 일어난 것이다.  진리라는 것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을 때 오히려 진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 말해 주고 있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이 지니는 의미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나서야 어렴풋이 보인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유형의 존재이든 무형의 존재이든 시간이 가면 사라지고 이름만 남는 것..    한동안 아름답게 피었던 장미도, 수도원 살인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만이 그 이름만이 남을 뿐 사라지고 없다.   진리라는 것도 그러하지 않을까.   영원할 것 같은 진리도 절대불변인 것 처럼 보였던 진리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변하는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았던가...      


방대한 양이기도 하고 내가 읽은 편집본이 페이지가 빡빡해서 읽기 버거웠다.  중세 시대 배경을 잘 알았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재독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책 중에서 일순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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