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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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16~17페이지)

 

향수라는 감정은 고향 그 자체 보다는 고향의 맛, 어릴 때 부터 먹고 자란 음식의 맛이 그리워 생긴다고 한다.   며칠 해외 여행를 떠난 본 사람이라면 그 며칠새에도 김치나 고추장이 생각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오랜 기간의 타국 생활에서는 오죽할까.  김치나 고추장을 공수해 먹거나 현지에서 만들어 먹어도 그 맛이 안난다고 하니 애가 탈 것 같다.   저자가 말하듯이 그 맛이 우리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어서 그 맛을 추억하게 되고 결핍을 느끼게 되나보다.   추억과 결핍은 향수라는 병으로 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라면은 규격화되어서 대량소비되는 음식이다.  라면의 인속에는 수많은 남들이 나와 똑같이 이 미끈거리는 밀가루 가락을 빨아들이고 있으리라는 익명성의 안도감도 작용하고 있을 성싶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17페이지)

 

저자가 말했듯이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힌다.   요즘 먹방도 많고 음식을 소개해 주는 방송이 많다.  다른 음식은 봐도 맛있겠다 싶은 생각 정도만 드는데, 라면이나 짜장면은 참 요상하다.  먹는 장면만 봐도 침이 고이면서 바로 먹고만 싶어진다.   인이 박혀도 단단히 박힌 것 같다.  

 

"자연은 저 자신의 볼일로 가득 차서 늘 바쁘고 인간에게 냉정하다"(80페이지)

 

<바다>편에서는 저자가 머물렀던 동해와 서해의 단상을, <남태평양>편에서는 태평양 전쟁에 휘말렸던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섬에서의 경험을 얘기한다.  바다 얘기는 <갯벌>편에서도 이어지는데, 내륙을 흘러온 큰 강이 하구에 갯벌에 이르러 바다와 합쳐지는 풍경을 소멸이라고 한 저자의 묘사는 한참 그 경관을 상상해 보게 만들었다.  

 

"조국의 강들은 남쪽부터 영산강, 동진강, 만경강, 금강, 한강, 대동강, 청천강 순서로 열리는데, 압록강 하구는 조차 4미터의 힘으로 바다를 받아들여서 먼 산골까지 바다의 기별이 닿는다.  강이 바다를 받아들이는 물리현상을 과학자들은 감조라고 하는데, 나는 이 단어에서 산맥과 바다가 붙고 엉키는 조국산하의 관능을 느낀다.  압록강은 이 관능의 북단이다"(100~101페이지)

 

이어서 <국경>편에는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돌아본 여행기가 서술된다.  밀물 때 서해의 힘이 조국의 강을 순서대로 열어 압록강까지 연다니, 먼 산골까지 바다의 기별이 닿게 한다니.. 조국산하의 관능을 느낀다니..  조국을 한 여인의 몸으로 표현한 듯, 조국 산천의 본질을 꿰뚫는 글발에 몇번을 읽어봤다. 

 

바다 얘기로 나의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더니 <세월호>편에서는 폭발하게 만들었다.   이제 세월호 사태를 접해도 무뎌졌을만도 한데, 김유민양과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읽으면서 펑펑 울어 버린 것이다.   이 책에도 자주 언급되는 개별성..  보편적인 죽음에는 이제 무뎌졌지만 개별화된 존재의 죽음에는 어찌하지 못하는 슬픔이 전달된다.  300명의 죽음이라는 숫자의 규모보다는, 단 한명의 죽음이라도 개별적 고통의 지위가 부여되었을 때  인간의 존엄성과 슬픔이 느껴지게 된다.

 

다음엔 짧은 글들이 이어지는데, 역시 김훈의 글들은 쉬이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뇌의 피로감을 느껴서 잠시 내려놓고, 고종석의 <사소한 것들의 거룩함>을 들었다.   이 책은 고종석이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최근에 발간한 것이다.  김훈의 책이 몇번씩 곱씹어야 소화할 수 있다면, 고종석의 책은 안씹어도 넘어가는 죽과 같다고 할까..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이 책을 먼저 읽어버렸다. 

 

1부는 언어학자답게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고종석님의 <문장> 두권을 읽은 바 있어서 익숙했다.  2부와 3부가 재미있었는데, 2부는 고종석님이 여행했던 도시들에 대한 얘기들이다.  특히 파리에서는 4년간 살았던 적이 있어서 파리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다.  3부 "여자들"은 혁명의 아이콘 로자 룩셈부르크, 단두대의 장미 마리 앙트와네트, 암살의 천사 샤를로트 코르데, 로자 파크스, 다이애나 스펜서 등과, 소설속 여성들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4부 "우수리"는 고종석님이 기자로서 경험했던 것들을 포함한 얘기들이다. 

 

김훈의 글은 그 리듬감 때문에 낭독하면 좋다해서 입으로 음독하였고, 고종석의 글은 분명하고 간결한 문장력에 눈으로 묵독하였다.   소설만 내리 몇권 읽다가 좋은 수필 두권을 읽었더니 마음이 풍요로운 듯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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