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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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4일, 알베르 카뮈는 차 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마흔일곱살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지 3년째 되던 해였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맞이하여 시골에 내려와 있다가 가족은 모두 기차로 돌아가고 자신만 친구 부부의 차로 이동하다가 난 사고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참혹한 기억은 말로 표현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야 조금은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카뮈 전작의 번역가로 잘 알려진 김화영님은 사고 34년 후에 카뮈의 절친 소설가 엠마누엘 로블레스 씨로부터 그 날의 사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의 다급함, 참혹함, 비통함이 전해져서 코끝이 찡해져 왔다.  

 

"신문 기자 출신들에게서 카뮈의 사고사 소식을 듣는 즉시 나는 아내와 함께 마담 가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어요.  카뮈의 아내인 프랑신보다 우리가 먼저 그 집에 도착한 것이던군요.  그녀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녀의 여동생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한쪽으로 불러서 그 끔찍한 소식을 알렸죠.  내가 차를 운전해서 프랑신, 크리스티앙, 이렇게 셋이서 빌블르뱅으로 급히 갔지요.  벌써부터 잔뜩 몰려든 기자들과 사진 기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느라고 경찰관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면사무소 홀 안으로 나는 프랑신을 데리고 들어갔어요.  프랑신은 오직 나와 검시 의사밖에 다른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지요.  공교롭게도 그 의사의 이름도 카뮈였지요.  시신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긴 테이블 위에 뉘어져 있었어요.  시트를 들추니 얼굴에는 이마 전체를 가로지르는 한 줄의 긴 상처와 왼쪽 손등에 긁힌 자극이 나 있을 뿐이었어요.  카뮈는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어요.  잠시 침묵에 잠긴 채 마음을 추스르고 난 프랑신이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그의 손이, 그 아름다운 손이...>  그녀는 고통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 손을 천천히 쓰다듬었어요.  그러더니 의사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사망한 것이 틀림없습니까?>  내겐 아주 의외의 질문이었지요.  의사도 역시 어이없다는 듯이, <아니, 부인. 목과 척추가 부러졌습니다.  보세요..... 두 군데 긁힌 상처에 피가 안 났잖아요.  충격으로 심장이 먼저 멎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분명하게 확인을 해야 한다고 그이가 늘 말하곤 했기에....>하고 말을 흐리는 프랑신의 목소리는 참혹했어요"

 

세계가 인정한 작가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데에서 오는 애석함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아내의 슬픔을 마주하니 카뮈가 어린 아이 둘과 아내를 남겨두고 떠나간 가장이었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망 후 주머니에서 발견된 기차표는 그의 사망의 부조리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 먹먹해진다.   

 

사고 당시 튕겨 나간 가방 안에는 카뮈가 집필중이던 육필 원고가 담겨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소설 <최초의 인간>이다.   카뮈의 사망 후, 프랑신 카뮈 부인은 주위의 조언에 따라 초고에 불과한 이 소설은 출판하지 않는 쪽으로 굳혔다.  당시 카뮈는 샤르트르 카뮈 논쟁의 중심에 있었고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공격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나 카뮈 부인이 사망하기도 했고, 아버지의 전 작품을 관리하던 문학 교사 출신의 카트린은 다시 주위에 출판 여부를 문의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적인 상황도 변하면서 출판 분위기 쪽으로 바뀌었다.  카트린은 여러권의 공책들(작가 수첩)과 노트들, 파일들 등을 정리하는데에 2년 반이라는 세월을 보낸후 1994년에 <최초의 인간>을 출간할 수 있었다.

 

카트린은 카뮈의 육필 원고를 '때로는 마침표도 쉼표도 찍지 않은 채 판독하기 어려운 속필로 펜을 달려 쓴 144페이지의 원고'라고 표현했다.  짧은 문장이 짧은 호흡으로 쉽게 읽혀나간다지만, 카뮈의 길게 이어져 가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긴 문장에서 오는 호흡은 숨가쁘면서도 어떤 희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최초의 인간>은 카뮈의 자전적 얘기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자크는 40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부탁으로 아버지의 묘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평소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아버지..  그 무덤 앞에 섰을 때 묘비에 적힌 생몰연대를 보고 29살에 사망한 아버지가 자신보다 훨씬 젊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찾아 알제리로 향한다.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듣지만, 장애를 가진 어머니로부터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출생 바로 직후에 세계 제1차 대전 전투중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려서 앓은 병으로 청각 장애에 문맹이었던 어머니..   자크는 이렇게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침묵 속에서 철저히 텅비어 있는 무의 세계와 마주한 최초의 인간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었을 뿐이다.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혹은 식민)이었던 자크 코르므리(카뮈)의 조상들 역시 <뿌리 뽑힌 채> 황무지였던 척박한 땅에 처음으로 발 디딘 <최초의 인간>들이었음이 드러난다. ....  그리고 또한 최초의 인간은 역사도 전통도 재산도 물려받은 것이 없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  가난한 사람들은 빈 공간 속에 서 있는 <최초의 인간>이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번역자 해설)"  

 

자크의 어린 시절의 회상은 가난하던 그 시절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자크는 외조모 밑에서 어머니와, 형, 그리고 두명의 외삼촌과 살았다.  일할 사람은 많았지만 삶은 팍팍하기만 했다.   나이든 외조모, 장애인 엄마, 거기에 막내 삼촌까지 태어날 때부터 청각 장애인이었기에 돈벌이는 시원찮았다.   외조모는 가장이나 다름없었기에 가난에도 역경에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 가난 때문에 어린 자크에게 가혹하기만 했고 어머니는 이를 말릴만 한 언어도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크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자크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중고등학교에 진학시키려 했지만, 할머니는 자크도 일을 해야한다며 반대한다.  선생님이 할머니를 설득시키고 자크의 진학 시험 공부를 도와주고 합격시키는 과정들은 선생님과 자크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소설 속에 실수로 선생님의 실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자크는 부모에 의해 자신이 규정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가난을 절감하게 되다.  학교일은 가족들이 소화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족들과의 침묵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학교에서도 가난한 가족 얘기는 꺼낼 수가 없었다.  자크는 가난이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왜 수치스러움을 느끼는지 알 길이 없었다.   죽음과 성에도 점차 눈을 떠갔지만, 가난은 어린 시절 그의 머리속을 사로잡는 전부였던 것 같다.   

 

가난은 온몸에서 배어나왔다.  공차기로 신발이 닳은만큼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잘못을 벌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가난한 아이에겐 공차기도 호사였던 것이다.   여름 방학 세달 동안이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점주는 계속 일할 점원을 필요로 했기에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계속 일할 것처럼 거짓말을 해야 했고, 그만 둘 땐 다시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는 부당함에 죽고만 싶었다. 

 

할머니는 방학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지낼순 없지 않냐고 했지만, 자크는 권태와 단조로움을 주는 점포일이야말로 아무것도 안하는 것만 같았다.  점주는 자크가 일을 그만둔다고 말할 때 크게 화를 냈고, 자크는 "집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에요"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바다와 햇빛이 주는 여름의 휴식을 즐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월급을 받아 할머니한테 내밀 땐 빚진 것을 조금은 갚은 듯,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집안의 가난을 조금 덜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자, 사람이 자유로운 몸이 되어 아무것에도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에 찾아오게 마련인 거의 매서울 정도의 긍지가 마음속에 차올랐다.  과연 다음번 개학이 되어 그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자 그는 (중략) 그 어리둥절한 어린아이가 이제 더 이상 아니었다.  (중략)  그리하여 어느 날, 지금까지는 할머니가 때리면 마치 그것이 어린아이의 삶에 있어서 불가피한 의무에 속한다는 듯이 꾹 참고 맞고만 있었던 그가 돌연 폭력과 광란에 미쳐 버린 듯 그녀의 손에서 소 힘줄 회초리를 뺏어 들고 맑고 싸늘한 두 눈만 보면 머리가 돌아 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허연 머리를 당장이라도 후려칠 듯한 기세로 대들자 할머니는 사태를 깨닫고서 뒤로 물러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면서 물론 그런 몹쓸 자식을 키워 놓은 불행을 눈물로 한탄도 했지만 이제 다시는 자크를 때리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221페이지)

 

목요일은 친구와 시립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손에 들어오는 책이면 무엇이나 정신없이 탐독했다니, 책을 읽는 동안은 가난도 가족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으리라.. 

 

"그 책들 속에 담긴 내용은 따지고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도서관에 들어가면서 우선 받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 곳에서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은 검은색의 책들이 아니라 문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자기 동네의 편협한 삶에서 그들을 낚아채 가는 어떤 공간과 다양한 지평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이 빌릴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받아 옆구리에 꼭 끼고 그 시간이면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대로로 걸어 나와 커다란 플라타너스나무의 열매들을 발밑에 밟으며 그 책들에서 맛보게 될 감미로운 맛을 예측도 해보고  (중략)  이제 막 켜진 가로등의 불완전한 불빛 아래서 그 책들을 펴보기 시작하는 그런 시간이 오는 것이었다.  (중략)

그들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뭐든지 다 알고 싶었다.  그들은 잘 쓴 책이건 험하게 쓴 글이건 상관하지 않았고 오직 글의 내용이 알기 쉽게 분명하게 씌어 있고 격렬한 삶으로 가득 차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책이야말로, 아니 그런 책들만이 그들에게는 머리 밑에 고이고 무거운 잠을 자도 될 만큼 근거가 있는 꿈을 줄 수 있었다."(200~201페이지)

 

자크의 어린 시절에서 카뮈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보여서일까.    가난한 어린 카뮈가 자꾸 떠오른다.   가난한 동네 가난한 집, 불구인 데다가 무식하기만 한 가족들 속에서도, 카뮈의 삶에 대한 갈망과 지성에 대한 열망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불가능하지 않기에 무엇이나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이렇게 내면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끼는 고등학교 2학년, 어른이 되기 직전에서 미완성으로 끝났다.  무엇보다 책에 대한 카뮈의 열정과 일찌감치 나타난 그의 문학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카뮈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것만 같고, 그래서 카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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