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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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를 처음 접한 것은 작가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작가 김영하는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의 앞부분을 읽어주었는데, 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었다.   고전을 읽고 싶게 하는 논리로 가득찬 산문이었다.

 

다음에 칼비노의 작품 중에 접한 것이 선조 시리즈 3부작 중 <존재하지 않는 기사>였다.   책누에 북클럽에서 함께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동화 같은 얘기 속에 온갖 비유와 상징이 들어 있었다.   <반쪼가리 자작>은 더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신체가 반으로 잘리는데 한쪽은 악으로 다른 한쪽은 선으로 정신 까지 분열되어 두 반쪼가리가 따로 돌아다닌다는 설정이었다.   쿠바에서 태어나 이탈리아로 이민을 왔지만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칼비노에게도 녹아들었던 것일까..

 

선조 3부작 중 마지막인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동네 북클럽에서 함께 읽어보자고 추천하였다.  이 소설은 다른 두 소설 보다는 사실적이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있다.  12살에 갑자기 나무에 올라가 평생 땅을 밟지 않기로 한 질풍노도기의 청소년 코지모.  이 설정부터 독특하다. 

 

코지모는 공국의 왕이 되고 싶어 왕정으로부터의 호출만 기다리는 아빠, 전쟁터에서 나고 자라 전쟁에만 관심이 있는 엄마, 괴상한 요리를 만들어 관심받고 싶어하는 누나도 모두 맘에 안들었다.   특히 가족과 함께 모여 식사하게 되면 가족과의 원한이 쌓여만 갔다.  표면적으로는 누나가 만든 달팽이 요리를 먹기 싫다고 반항하다가 나무에 올라갔지만 부모님과 가정교사로 대변되는 귀족 사회 현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무 위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동생이 형 코지모로부터 들은 얘기와, 추측, 단서를 모아 화자가 되어 이 소설을 서술한다.  다음 묘사가 조금이나마 나무 위 세상을 상상해 보게 만든다.

 

"형의 세상은 이제 좁고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 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유충들, 꽃자루를 흔드는 약한 바람에 떨리거나 나무 전체가 바람 앞의 돛처럼 휘어질 때 같이 흔들리는 울창하거나 성근 나뭇잎들, 그리고 그 나뭇잎의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그 밑에 있는 우리들의 세상은 평평했으며 우리는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123페이지)

 

그렇다고 코지모는 세상과 완전 단절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은자였다.   여기 저기 나무를 타고 바람같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곤 했다.  자연에 순응하며 적절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나무 위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해 갔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본 세상은 오히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끊임없는 독서와 연구 덕분에 사람들이 해결못하고 쩔쩔매는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었다.  

 

부모들도 코지모와 일정 거리 떨어져 지내다보니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나 보다.   어머니는 코지모와 창문을 통해 코지모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봉양을 받고, 아버지도 남작의 지위를 물려주며 그 위치에서 직분에 충실하길 바랬다.   

 

"..  형이 너무나 깊숙이 파고들었던 야생의 경계들은 형의 정신의 원형을 형성하였고, 이로 인해 인간의 외형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형에게는 많은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나무와 함께 생활할 수 있었고 짐승과 싸울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분명 형의 세언제나 이곳, 우리들 세상에 있었다."(137페이지)   

 

다른 선조 시리즈 책들의 배경은 기사가 출현하는 훨씬 더 오래전, 14,5세기경이었다.   이 소설은 계몽주의 시대 부터 프랑스 혁명을 거쳐 공화정과 왕정복고가 반복되던 격변기 시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다.  

 

코지모는 보편적인 사회를 위한 저술도 남기고,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와 루소에게 자신의 저서를 보내고 편지를 받기도 했다.  동생은 볼테르를 직접 만나고, 프랑스 대혁명기의 인물들이 언급되고, 나폴레옹 황제는 코지모를 직접 확인하러 방문하기도 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사실적인 역사 배경과 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읽는 재미를 주었다

 

코지모는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평가가 계속해서 엇갈려서 미친 사람이 되었다가 현자가 되기도 했다.   점차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어 유럽에서 위대한 천재, 비범한 인물이 되었다.   외형은 점차 새처럼 보이게 되었는데, 나무 위에서 생존하려면 최적화된 모습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코지모의 비문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 나무 위에서 살았고 - 땅을 사랑했으며 - 하늘로 올라갔노라"

 

나무 위는 무엇을 상징하기 위한 것일까.  내 자녀가 부모의 품을 벗어나 독립한 세상을 비유하는 것으로 봐도 될까?  내 자식이 코지모와 같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것 같다.  코지모 부모도 처음엔 모른척 하다가 회유하다가 포기한 걸 보면 특별한 방법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또 모르지 난 나무위로 쫒아 올라가 사생결단낼지도. ㅋㅋ

 

동네 북클럽 회원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로 기승전교육얘기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나무 위에 올라간 코지모가 단순히 동화 속 주인공으로 보이지 않고, 한창 반항기인 사춘기 청소년으로 보였다.   지가 좋아 올라간 세상에서 혼자 살아내고 세상과 소통하고 명성도 얻고 그럼 된 것일까?  좋아하는 일은 한다면 믿고 맡겨야 될까?  왠지 남들과 다름은 인정치 않는 현대에선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않는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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