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창비세계문학 43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김성일 옮김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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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것 그리움 되리니.

 

너무나 유명한 첫 두 연의 시이다.  

메모장이나 공책의 한귀퉁이에서, 식당의 벽을 장식하던 액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시가 아니고 먼 옛날 러시아 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좀 놀라웠다.  푸시킨..  그래서 푸시킨은 당연히 시인인줄만 알았다.

 

소설 <대위의 딸>의 작가와 시인이 같은 사람인 걸 알고 한번 더 놀라웠다.  

이현우의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에서, 러시아 문학의 계보는 푸시킨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그만큼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던 작가였다.  그 중에 <예브게니 오네긴>과 마지막 소설 <대위의 딸>이 잘 알려져 있다.  <대위의 딸>은 딸이라는 제목에서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랬을까.  <첫사랑>, <좁은 문> 같이 이루지 못한 사랑 얘기인줄 알았다. 

 

읽어보니 완전 잘못 생각했던 거다.  사랑 이야기도 빠지진 않았지만.

19세기 초 푸시킨은 18세기 러시아 역사를 공부하다가 농민 봉기의 지도자인 뿌가초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 소설에는 실제 인물 예까째리나 여제와 반란 주동자 뿌가초프가 등장하여 역사적인 사실감을 부여한다.    여기에 허구 인물 러시아 귀족 뾰뜨리 안드레예비치 그리뇨프가 반락 폭동을 직접 목격하고 이에 휘말리는 얘기를 자전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이다.

 

그리뇨프는 아버지의 권유로 군에 들어가게 된다.  뻬쩨르부르크로 가길 기대했지만 변방 오렌부르그 요새로 가서 수비대 근무를 하게 된다.    이곳 지역의 까자끄인들은 최근에 러시아 정부의 통치권을 인정한 야만족으로 반란을 일으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까자끄인들에 의해 이웃 요새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그리뇨프가 근무하는 요새까지 함락된다.  요새의 사령관인 대위 이반과 부인은 바로 처형되고, 대위의 딸 마샤는 신부님 댁에 피신한다.   대위의 딸과는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리뇨프는 귀족 장교로서 처형되기 직전이었으나 주동자 뿌까초프와 인연이 있어 구사일생으로 살게 된다.   귀족 뿐만 아니라 농노나 하인에게도 뿌까초프 일당은 폭동을 일으킨 무리이고, 뿌까초프는 참칭자, 반란자였다.  뿌까초프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자신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그리뇨프는 의무와 명예를 소중히 하는 군인으로 여제를 배신하지 않고,  뿌까초프를 진심으로 대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이웃 요새로 피신하게 된다. 

 

그리뇨프는 도덕적인 시험에 처해진다.   이웃 요새도 곧 함락되기 직전에 신부의 집에 숨어 있던 대위의 딸 미샤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군인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 봉쇄된 요새를 지켜야 할지 결혼을 약속한 마샤를 구하려 나서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명예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뇨프는 군인으로서의 직분을 지켜야만 했고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내야만 했다.    남자로서 무엇을 먼저 구해내야 할까.  ㅎㅎ

 

그리뇨프의 하인 싸벨리치의 충성심도 재밌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도 주인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주인을 향한 진심어린 행동은 코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뿌까초프는 성공할 수 없는 반란의 주동자였다.  그리뇨프는 뿌까초프에게 친구로서의 동지감도 느끼고, 그를 악당들의 무리 가운데서 끌어내주고 싶었다.   반란 주동자에게도 진심을 다하면 통하는데, 어느 누구에겐들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18세기 말 제정 러시아의 혼란스럽던 시대상과 그 시대 귀족들의 삶도 살펴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소설을 읽어내어 숙제를 끝마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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