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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한국에는 아직 없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두명이나 배출한 일본이 부럽기만 하다. 그중 한명인 오에 겐자부로가 책만 읽는 인생을 얘기하는 <읽는 인간>을 읽으면서, 그의 책에 대한 사랑과 열의가 대단함을 알 수 있었고 왠지 나도 모르게 차분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이 책 <익사>를 읽으면서는 그의 문학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으로 봬는 노작가의 인상은 어찌 그리 온화하신지..
<익사>는 일본의 전통 사소설의 느낌이 난다.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여 전후 얘기를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작가의 오해와 화해를 그리고 장애를 가진 자식과의 대립과 화해를 중심 축으로 하여, 전후 근대 국가의 문제점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녹여내어 치밀한 구성을 이룬다.
주인공 코기토는 10살 때 목격한 아버지의 익사 상황이 60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늘 꿈에 나타난다. 코기토는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익사 소설'을 쓰기로 하고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유품을 보관한 '붉은 가죽 트렁크'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왠일인지 자신이 죽고 10년이 될 때 까지는 소설의 완성을 미루길 바란다. 그 10년이 지나 이제 '붉은 가죽 트렁크'를 받게 되지만, 그 안에는 소설을 쓰는데 도움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왜 소설 완성을 반대했는지, 아버지는 왜 붉은 가죽 트렁크를 가지고 배에 탔다가 익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버지는 정말로 군대 반란에 동조했는지, 소설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코기토는 아버지의 유품에 있던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제자의 증언을 듣고 군대 반란의 전모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읽는 인간>에서 보면 작가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운 경험을 소재로 한 글도 많이 써서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이 소설에서도 코기토와 아버지의 부자간 갈등 만큼이나 코기토와 장애 아들의 갈등 구조도 함께 한다. 별 것 아닌 것으로 틀어진 관계는 회복하기가 힘들다.
거기에 코기토의 작품을 연극 무대에 세우려는 우나이코라는 인물이 더해져 이 소설의 완성도는 더해간다.
코기토가 과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 오고 있었다면 우나이코는 어렸을 때 자신을 강간했던 국가 요직의 큰아버지를 계속 생각해왔다. 두 사람이 패전 후에 풀어내지 못한 문제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잊혀지지 않고 드러났다. 코기토는 아들과의 대립을 생각하며 아버지와의 화해를 풀어가고, 우나이코는 연극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여 극복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과거로부터구원에 성공할 수 있을까..
스토리 구성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다. 일본 전승담의 계승이나 메이지 정신의 영향, 그리고 근대 일본의 문제점 고찰, 폭력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지위 등 작가가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나의 소양이 부족하기만 하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고 얘기 나누어보면 풍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