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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ㅣ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삶의 격>, 제목이 참 격조 있어서 맘에 든다. 게다가 소설 <리스본행 야간 열차>의 저자가 쓴 책이라니 더욱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는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이다. 작가는 소설을 쓸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따로 사용한다. 학문적인 분야의 글을 쓸 때의 자아와 소설을 쓸 때의 자아를 분리하고 싶었던 것일까. <리스본행 야간 열차>는 곧 북클럽에서 함께 읽어보기로 했는데, 회원님들 중 한 분인 잡동산속토끼님께서 적극 추천해주셔셔 기대된다. 이 책 <삶의 격>도 토끼님의 블로그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삶의 격>의 부제는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저자는 인간의 존업성이란 삶의 주체로서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하는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물음들에 부딪히게 될 때가 많다. 저자는 이 세가지 분석의 차원이 모두 존엄성이라는 개념으로 모아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존엄이 위배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굴욕과 무력감을 언급한다. 굴욕은 나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긴다. 종속족인 관계에서 굴욕을 당한 자는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굴욕과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을 영화나 소설 속에서 예시를 들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런 상황들은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저자는 이런 일상적인 사건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추상적인 존엄의 개념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한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특정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여 결국 존엄에 대한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스로 삶을 주도해 가는 주체로서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 감정, 의지를 통제하고 이런 의미에서 타인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자립적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이런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 인간은 존엄성에 관계되는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개입하기와 거리 두기가 적절한 만남으로서의 존엄성.. 누군가를 대면할 때, 우리는 행위와 체험으로서 그에게 반응하게 된다. 그가 내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나의 다음 대답도 달라진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 연루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개입하기와 거리 두기가 적절히 이루어져야 서로의 존엄성을 확보하게 된다.
자신만의 것과 남이 알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고자 하는 사적 은밀함의 존엄성.. 사적인 것에 대해 말을 아낌으로써 타인과의 사이에 유지되는 간격에도 존엄성은 존재한다.
정직함과 진실함을 토대로 한 존엄성.. 자신의 참됨을 버림으로써 존엄성이 상실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면 자신의 존엄성도 따라서 해를 입는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에 관한 자아 존중으로서의 존엄성.. 자아상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자신을 평가하여 자신의 행위와 감정을 존중할지 경시할지가 결정되고, 이것이 자아 존중감의 획득과 상실로 이어진다.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은 인간 존엄성의 한 면을 이룬다.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는지를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균형과 조화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것 또한 인간 존암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노화 또는 질병으로 인해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잃어버리는 경우와 죽음으로 인해 친밀한 인간 관계가 상실하는 경우, 존엄성은 위험에 빠진다. 소멸과 종말의 과정에서 맞이하는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경험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존엄성을 지켜내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왔던 것들은 주로 사고의 주변에 머물러 있을 뿐 개념화되어 정리되어 있긴 힘들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의 나열 같지만 이렇게 규정해 준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집중도가 떨어져 건너뛰면서 읽었다. 도서관 반납일은 어김없이 돌아와 두고 꺼내보지는 못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격이 녹아 있을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