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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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백 살이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  어쩌면 이제 겨우 아흔 살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첫문장이다.    나에게 첫문장이 강렬한 소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이 소설의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첫문장만 보고 자석에 끌리듯 안고 왔으니 말이다.

한 때 젊었던 그리고 현재 젊은 여자들이라면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으리라.  마냥 젊을 것 같고, 자신이 늙는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  거기에 백살이라니 어쩌면 아흔 살일 수도 있다니, 결말도 의외여서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저자 모니카 마론은 나치시대, 독일 분단, 구동독의 사회주의, 그리고 통일이라는 독일 역사의 흐름 속에 있었다.  이런 흐름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소설에서도 화자인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나치시대에, 결혼 이후엔 구동독에서, 중년의 나이에 찾아온 사랑은 통일 이후였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독일인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했다.   특히 구동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소설은 그들의 사랑과 배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화자는 동독에서 자연사박물관에서 근무했다.   자유롭지 못할 때에는 기이한 새종류의 발자국 유적지를 찾아 미국을 가보고 싶었지만, 통일후 자유로울 땐 오히려 또 다른 감금 상태와 맞바꾸고 싶었던 것일까.  서독의 박물관 위원회에서 파견나온 프란츠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90살, 아니 100살이 될 때 까지 그를 기억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한다.  베를린 분단과 통일이 없었다면 프란츠에게 그렇게 빠져들지 못했으리라.   "모든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사랑"에 망각과 기억 속에서 집착한다.

 

분단 이전 서독에서 소송에 휘말린 알리는 동독 아테의 집에 남아버리고, 범죄의 낙인에서 자유로워지자 아테를 떠나버린다.    이런 부부도 있었다.  앙케가 구동독인 라이너를 장벽에서 빼내주어 서독에서 결혼해 15년간 살지만, 통일이 되자마자 앙케를 버린다.  통일이 되었으니 더이상 그녀에게 빚진게 없으므로,   지그린데의 경우는,  남편이 젊었을 때 사랑했던 여자가 통일 후에 나타난다.  지그린데는 남편을 그녀에게 보낸다.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그리고 통일로 인해 모두의 이야기인 사랑의 비극이 생겨났다.  이 소설은 그들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 통일이 된다면 우리의 사랑 또한 배신과 비극이 만연하리란 생각이 든다.   만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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