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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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이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나는 것이 서양의 유명한 작가 에드거 앨런 포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아 악명인지 뭔지를 떨치고 있는 추리만화 명탐정 코난이다. 전자는 필명을 따왔기에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후자는 다르다. 명탐정 코난은 추리 만화로 그 주인공의 이름이 에도가와 코난이다. 추리만화의 주인공의 이름이 에도가와 란포를 뜻하는 에도가와와 코난 도일에서 따온 코난을 붙여서 만들었다는 것이 꽤 재미있지 않은가? 아마 일본 미스터리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을 몇 번 들어보았을 것이고, 에드거 앨런 포와 명탐정 코난 말고도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몇 개를 꼽으며 유식한 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상당히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시류에 편승하여 쏟아져 나오는 일본 미스터리소설의 띠지를 훑어보다보면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이라는 말은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도 있고 말이다. 접해본 적이 없다 해도, 추리소설계에서 가장 손에 꼽히는 상이 에도가와 란포상이라고 할 만큼 큰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감이 오지 않을까?

 

에 도가와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에 크게 기여를 한 작가로, 1955년 그의 환갑을 맞아 탄생한 에도가와 란포 상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도 수많은 추리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물론 작가의 유명세가 사람들의 호불호에서 좋은 쪽만을 갈라간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한번쯤은 뒤적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일본 미스터리계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에도가와 란포의 명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번역서들이 줄지어 쏟아질만도 한데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저절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현해탄 건너 나라에서 일본미스터리ㅡ 그것도 음울하고 잔인하고 어쩐지 클로즈드 서클! 시골 변두리에 박힌 자그마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 발을 디디자 하필 그 마을에는 뭔가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 외부인, 이 저주받을 인간들이여! 하고 외치는 할머니 무녀가 등장하며, 마지막은 안개 낀 도로처럼 흐릿하고 조금은 서늘한 오픈 엔딩이다~! 라는 이야기ㅡ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명탐정 코난보다는 코난의 라이벌 격인 김전일 군을 좀 더 (많이) 좋아하고 있었으니(물론 김전일 군으로 인해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미리나름을 나도 모르게 당하고 난 다음에는 치를 떨었지만)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이 에도가와 코난? 작가가 에도가와라는 성을 좋아했나보지 라는 짧은 감상밖에 주지 못했었다.  일본 미스터리에 대해 조금 조금씩 파가다가 에도가와 란포와 에도가와 코난의 연관성이 있겠군 하며 검색을 통해 알게 되고, 김전일에서 나오는 아케치 경시가 란포의 작품에서 나오는 아케치 코고로에서 따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어떤 천사같은 출판사가 에도가와 란포 전집을 내주시는 은혜를 베품으로 에도가와 란포의 위명과 맛을 살짝이나마 보게 되었다고 할까? 에도가와 란포는 대단해! 라고 해봤자 읽어본 것은 몇 없는, 텅텅 빈 주제에 소리만 대단한 수레였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맨 처음 읽게 되었던 란포의 작품으로는 아주 오래전 어떤 제목인지도 잊어버린- 그러니까, 동서양 가리지 않고 너무 여러 가지 작가의 단편을 담았는 데다가 그 작가들의 작품의 특성을 묶어주는 훌륭한 제목이지도 않아 제목을 지금까지 기억할 수 없다는 슬픈 사연이 담긴- 책에 있던 '빨간 방' 이었다. 그 소설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특징이랄까 독특한 맛이랄까를 읽어내고 나는 깊은 감명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ㅡ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저 짧은 이야기였지만 꽤 흡입성이 있는 이야기이고 마지막에서 사람의 진을 빼놓는 반전이었다는 재미없는 감상만이 남았다. 그러나 다른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작은 호기심을 일깨워주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호기심이 이어져 구입한 에도가와 란포의 전단편집 두 권.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3권인 기괴환상편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자와 고구마벌레를 좋아한다. 인간의자에서는 (순전히 거기까지 머리가 닿지 못한 내 상상력의 부족함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 실소를 자아냈으며, 고구마벌레는 탐미적이라서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탐미적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감상은 그렇다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약간은 낯설고 기괴한 느낌이 호기심을 자아내고, 내용 또한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어둡고 어둡기 그지 없으니. 

 

확실히 란포의 작품에는 모두들 말하듯 미스터리라는 말로 정의하기에는 부족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괴하고 음울하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사실, 기괴하고 암울하다는 말은 변태적이고 혐오스럽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렇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이게 뭐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 줄 한 줄에 집중하게 되어 그야말로 책에 꿀을 발라놓기라도 한 듯 눈을 뗄 수가 없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을 수밖에 없듯 마음 한켠에 드리워진 어두운 욕망을 살살 긁는다고나 할까? 사람의 마음 속에는 금기라든가, 혐오스러운 것, 변태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숨어있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아주는 작가다.  신 기한 것이 그러면서도 미스터리에도 꽤나 충실하다는 것. 물론 지금에 와서는 식상해진 트릭들도 있지만,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대단하지 않은가 싶다. 에드거 앨런 포가 검은 고양이나 리지아 같은 어쩐지 서늘한 소설을 쓰면서도 거기에 발랄함과 위트를 잃지 않았듯 에도가와 란포 역시 미스터리만이 아닌, 거기에 음울함과 환상이라는 테마를 엮어 이야기를 그려낼 줄 아니 미스터리와 호러를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손에 땀을 쥐며 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렇게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몇 개 읽고, 일본 드라마 중 란포R이라는 드라마까지 훑게 될 줄은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유명한 여배우들이 한 편에 한 명씩 등장하여(..라고 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한국에서 히트친 일드에 출연한 여배우 몇의 얼굴만 알아 볼 수 있었다) 매력을 더해주는 드라마이다. 아니, 더해준다고 한다. 나로서는 별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으니 아쉬울 따름.

사 실 본 사람들의 평가는 상당히 좋지 않아 몇 번 망설였지만, 인간의자라든가 괴인20면상을 한번 꼬아서 만든 에피소드를 보면서 상당히 즐거웠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읽어보고 본다면 분명 평가가 조금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런 식으로 따져 보자면 아직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가 아쉽고, 여기에 실리지 못한 소설들이 아쉽다. 위에서 줄기차게 말했듯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여러 작품들을 읽음으로서 그 위명을 되새기지 못하는 것이, 또 그런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것이 어찌나 아쉬운지 모르겠다. 현해탄 건너의 이웃주민인 탓에 언어의 장벽으로 미스터리를 읽을 수 없어 슬픈 독자들의 마음을 읽은 출판사의 러쉬가 좀 많이 쏟아지길 바랄 수밖에. 그러려면 독자들이 지금 나오고 있는 것부터 많이 팔아주어야 하니 이거야말로 상부상조라 하겠다. 통장에 푼돈을 모으고 모아 겨우 산 책을 들며 ‘그저 이 ‘2전짜리 동전’이 읽고 싶었습니다’라는 개그 같지도 않은 개그가 떠오르는 건 왜인지.

 

(* 이 서평은 네이버 블로그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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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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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온 에도가와 란포란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그 장난기가 인간의자나 붉은방에서 얼핏 드러나는 것도 좋고, 고구마벌레같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퇴폐적이고 음습한 분위기도 정말 좋습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오는 일본 미스터리들을 보다 보면 띠지에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는 경우가 꽤 있음을 아실 겁니다. 에도가와 란포 상은 미스터리계에 있어 꽤나 권위를 갖고 있는 상입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는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따서 주는 상이니 오죽할까요.

에도가와 란포를 처음 접한 것은 여러 작가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에 실려있던 '붉은방'이었는데 뭔가 흥미로운 일을 찾는 사람들의 은밀한 모임으로 시작하여 펼쳐지는 이야기에 몰입하여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말을 보고 반쯤 아쉽고 반쯤은 감탄했습니다. 엄청난 반전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장난기를 얼핏 느낄 수 있었던 단편이었어요. 그 후에는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접하지 못하다가, 두드림에서 나온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선으로 인해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제대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가 대단한 작가라는 말만 들었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자세히 읽어볼 기회는 없었기에 두드림에서 나온다는 전단편선 소식은 정말 반갑더군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고구마벌레와 2전짜리 동전입니다. 2전짜리 동전에서는 역시나 란포의 독자를 들었다 놓는 장난스러운 반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번역하기가 꽤나 까다로운 (까다롭다기 보다 이건 번역이 아니라 직역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추리의 트릭 설명은 오오-하면서 읽었는데 그 뒤에 한 번 더 뒤집어줄 줄이야! 결말을 보고 한숨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고구마 벌레는 어딘가 음습하고, 퇴폐적인 느낌때문에 좋아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사지가 모두 절단되어 돌아온, 그 흉물스러움이 마치 고구마 벌레와 같은 남편. 그 남편에게 욕망을 품은 아내의 묘사가 징그러운 느낌도 들면서 굉장히 흥미진진했다고 할까요? 남편을 살아있으나 지옥인 세계로 밀어넣은 아내가 남편을 찾아 달려갔을 때 본 광경은 정말이지 그로테스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상하기 조차 무섭고 소름이 끼치네요.

에도가와 란포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전단편선을 읽으며 그의 상상력과 필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또,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접하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도 수없이 많기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트릭이나 이야기도 있었으나, 그와 반대로 지금 읽어도 깜짝 놀랄만한 새로움을 선사하는 작품들도 한데 섞여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어두운 면-인간의 악한 본성과 어두운 욕망-을 파헤치며 묘사함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릴 사람을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두드림에서 나온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선에 더욱 애착이 가는 이유는 두드림에서 나왔던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선 한정판 때문인데,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기획하고 만든 이가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 여실히 느껴져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데, 애장판까지 만들어주니 팬으로서는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오려면, 독자들도 책을 많이 사주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 주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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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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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은 옥문도와 더불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1,2위를 다투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세 번의 영화와 여섯 번의 드라마로 옮겨졌다는 것을 보면 팔묘촌의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팔묘촌과 옥문도는 같은 작가의 같은 주인공을 내세운 시리즈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른 양상을 띱니다. 옥문도는 섬이라는 폐쇄성이 짙은 장소에서 독특한 트릭을 내세운 살인이 일어난다면, 팔묘촌은 주인공의 시점으로 모험을 겪으며 결국은 해피엔딩을 맞이하며 희망을 찾는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스릴을 즐길 수 있으며, 소설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에 8명의 패주무사들이 황금을 가득 싣고 한 마을로 몸을 숨겼다가, 황금에 눈이 먼 마을 사람들에게 몰살당한다. 무사들의 우두머리는 마지막 호흡을 내쉬는 순간까지 마을을 저주하며 숨을 거둔다. 그 후, 마을에서는 괴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두려움에 떨던 마을 사람들은 무사들의 시체를 극진히 매장하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마을은 그 이후 팔묘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다이쇼 시대, 팔묘촌의 동쪽집이라고 불리는 세가 다지미 가문의 주인 요조가 미쳐 마을 사람 32명을 참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요조는 산으로 도망쳐 행방이 묘연하다. 그로부터 26년 후 다지미 집안의 후사로 판명된 '나'는 팔묘촌에 방문한다. 이상한 미신에 얽매인 마을 사람과 살인마였던 아버지의 업보로 공포에 떠는 나. 이윽고 미치광이의 소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연속살인사건이 차례차례 일어난다. 

이것이 팔묘촌의 대강의 스토리인데, 등장인물이 제대로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몇십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서술되며 마을의 폐쇄적인 모습, 전통적 인습이 굳어져 그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모습은 보는 독자마저도 간담이 서늘하게 만듭니다. 8명의 패주무사 이야기는 사람의 욕망이 무섭다고 느꼈네요. 마을 사람들의 황금에 대한 탐욕, 그로 인해 모두 합심해 무사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오싹하네요. 괴이한 일이 일어나자 무사들의 시체를 매장해 수호신으로 삼았다는 건 그들도 자신들이 한 짓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뜻도 될 수 있겠죠. 괴이한 일이 꼭 무사들 때문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떠올라요. 괴이한 일을 없애고 죄책감을 밀어넣기 위해 한 일이 좀처럼 곱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건 후에 32명 참살 사건이라니. 너무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떼죽음-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특징은 말했듯 이런 폐쇄성, 인습과 거기서 일어나는 살의, 퇴폐미 등인데 1인칭이기 때문에 살짝 옅어지긴 했으나 팔묘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누님이 그에게 보여주는 애정에서 살짝 근친에의 낌새를 느꼈습니다. 베스터마르크(Westermarck) 효과가 떠올랐네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남녀는 상대를 이성으로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가 섞이지 않은 사이임에도 연애감정을 발현시키기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 반대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지 못한 남녀라면 오히려 혈연이나 기타 사회적인 관계를 순식간에 애정으로 변환시키는 경향이 보인다네요.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뉘앙스가 살짝 느껴졌어요. 이누가미 일족에서도 모자간의 어딘가 비틀린 애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말이죠. 퇴폐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가 아닐까요?  이것 또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얘기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괴한 전설이나 전통적인 인습에 얽매여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마을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으스스하지만 읽는 재미가 있거든요. 마지막 결말도 매우 훈훈하여 마음 편히 책장을 덮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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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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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 만화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이 아닐까 싶습니다. 둘 다 명작이지만, 개인적으로 전자를 더 선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오페라의 유령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방영했던 것을 우연히 봤었는데요. 그 때의 그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책을 읽게 되자, 김전일(긴다이치라고 한다지만 김전일이 더 익숙하니 김전일로 쓰도록 할게요)과 미유키의 간질간질한 관계에 반쯤은 분노하고 반쯤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더랬죠. 김전일이 가는 곳마다 살인이 일어나는 것에는 '아 김전일이 재앙을 몰고오는 녀석이 아닐까?'하는 마음도 들었구요. 

할아버지가 유명한 탐정이라는 김전일이 사건에 뛰어들 때 하는 말이 있었으니, 모두들 알고 계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입니다. 이 할아버지라는 것은 일본의 국민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를 말합니다. 유족들과 문제가 생겨, 긴다이치 코스케를 긴다이치 코스케라 부르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이름을 건다는 어중간함으로 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요. 

우리나라에는 이 국민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잘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시공사에서 옥문도를 시작으로 시리즈를 펴냄으로서 드디어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맨 먼저 나온 옥문도는 역대 일본 추리소설 1위,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이자 그의 스타일을 제일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다고 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스타일이라면 전통적 인습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와 거기에서 태어난 살인, 퇴폐적이고 음습한 분위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옥문도는 그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흰 가루를 날려대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귀환선 안에서 여동생들을 지켜달라는 전우 기토 치마타의 유언을 듣고 옥문도로 가게됩니다. 거기에서 코스케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이상한 세 자매를 만나게 됩니다. 이 아가씨들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병적인 느낌을 풍깁니다. 꺄르르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지만 아이의 잔혹함도 같이 느껴지는 그런 이미지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 옥문도라는 클로즈드 서클에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트릭이 무척이나 독특한데, 번역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트릭도 있습니다.(이 말인즉슨 이 책에서 살인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일어난다는 사실....)


여동생들을 지켜달라는 유언을 듣고 갔으나 긴다이치 코스케는 살인을 막지 못하고, 뒷북을 치며 범인을 알아냅니다. 긴다이치가 가나 안 가나 살인이 일어날 거라면,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이 굳이 갈 필요가 있을 지 의문이지만 일단 범인은 알아내야 하는 거니까요. 이런데도 명탐정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까 싶지만, 비범하게 범인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클로즈드 서클이나 기묘한 이야기가 섞인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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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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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량의 상자는 교고쿠도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우부메의 여름 리뷰를 쓰면서도 표지에 극찬을 한 바가 있는데, 손안의 책에서 나온 교고쿠도 시리즈의 볼륨이나 디자인은 독특한 맛이 있으면서도 모으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망량의 상자의 표지는 인형이 분해된 채 널려 있는 모습인데, 내용과의 관련성이라는 부분에서도 점수를 줄 만 하다고 여겨집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데, 내용과의 괴리감이 든 표지로는 아시야 가의 전설이 있었습니다. 이건 나중에 리뷰를 쓰게된다면 언급하기로 할게요.

사실 리뷰 제목을 쓰면서 이건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다른 시리즈를 더 마음에 들어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망량의 상자가 교고쿠도 시리즈의 백미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니 혹시라도 오해할 분은 없기 바랍니다.  

망량의 상자 또한 전작인 우부메의 여름과 같이 인물들의 관계가 알게 모르게 얽혀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요리코라는 소녀와 신비로운 느낌의 미소녀 가나코의 얘기입니다. 그 둘이 친해져 함께 호수에 가기로 합니다. 그러다가 가나코가 의문의 사고를 당하게 되죠. 이 이야기와 토막살인사건, 온바코님을 모시는 종교, 상자.........이야기가 참 여러갈래로 뻗어나갑니다. 여러갈래인 동시에 알게모르게 요소요소가 관련성을 띠고 있다는 게 참 재미있네요.

예를 들자면 요리코의 친구 가나코는 사실 재벌의 손녀였고, 그녀는 사고를 당해 상자같은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가나코의 언니인 요코는 기바 형사가 암암리에 좋아하던 여배우였으며, 요리코의 어머니는 온바코님을 모시는 종교에 빠져들어 집안의 돈을 가져다 바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각기 따로 노는 것 같지만, 다발적으로 터진 것 같이 보였던 일들이 관련성을 띠면서 몰아칩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목에도 상자가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상자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옵니다. 상자에 집착하는 남자, 온바코님이라는 상자와 관련된 종교, 커다란 상자 같은 병원......제목인 망량의 상자와 엇물려 독자에게 으스스함을 주네요. 모두 하나 허투루 쓰인 것이 없습니다. 내용과 커다란 관련성을 지닌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니 교고쿠 나츠히코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가나코를 민 범인은 누구일까요? 토막 살인의 범인은? 망량은 어떤 존재일까요? 씌인 우부메를 떼어냈던 교고쿠도가 이번에도 망량을 떼어낼 수 있을까요?

망량의 상자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소설의 복잡하면서 치밀한 구성, 복선 등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망량의 상자를 모르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망량의 상자에 관심을 가지고 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원작을 읽고 보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이 보였다고 할까요. 작화는 유명한 CLAMP로, 그들의 유려한 그림체로 이 망량의 상자를 그려내려니 어쩐지 으스스한 맛이 조금 죽은 느낌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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