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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평점 :
며칠전 일요일 종영한 드라마중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이라는 드라마가있었다.
100여년 전통을 가진 양복점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그속에는 제목처럼 신사들이 주로 에피소드를 이끌어간다.
오랫동안 양복점을 이끈 아버지,그 뒤를 잇는 아들, 그 양복점의 마스터,가수인 사위,며느리를 사랑했던 건달,대기업의 철부지아들의 남자캐릭터들이 이야기의 축이다.그속에서 여성캐릭터는 불륜으로 재벌가둘째 부인이 된 여자, 건달에게 속아 결혼할뻔한 여자,많은 결혼을 한여자, 억척스런 여자,사랑스런 여자,악역을 맡은 여자,자식을 걱정하는 엄마로 나온다
이야기속 캐릭터는 낯설지않다.흔히 드라마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성역할이아닐까하지만, 맨마지막 장면속에서 남성들만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이 묘한 씁슬함을 느끼게 하였다.
잠깐 애덤 스미스씨,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한마디로 월계수양복점을 100 여년동안 지탱하게 해준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힘이 남성들이 단지 양복만 잘 만들어서 된것인지 그 남성들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밥하기,집안돌보기,자식기르기등의 잊혀진 노동의 주체인 여성을 비추고있다.여성인 나조차 경제학을 배울때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스미스의 저녁밥상,그가 국부론을 쓸때 집안일을 해준 누군가를 생각해본적이 없다.
저자는 잊혀진 누군가의 노동,그중에 여성의노동을 이야기한다.
이책은 서문처럼 특정한 경제학적 시각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은밀하게 우리의 의식속에 기어들어오게 된 과정을 실제 겪었던 리먼브라더스 사태나 구제금융등사례에서 그 시각이 가치관을 어떻게 장악했는지,그리하여 세계경제와 우리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잊고있었던 나자신조차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여성노동에 대한 이해와 뒤집기를 해보는 책이다.
저자는 1776년 애덤스미스가 경제학에 대해 내린 현대적 정의를 적고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주인,양조장주인,혹은 빵집주인의 자비심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때문이다
라고 정의한다.경제학은 돈을 바라보는 학문이 아니고 인간을 살피는 학문이었다고 하며,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익을 보기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기술하는 역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애덤스미스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때문에 저녁식사가 차려진다고 했지만 저자는 질문한다.실제 스테이크를 구운사람은 누구였을까?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않는 성이 있다
"경제적인간"으로 정의내려진 생산활동에서는 착취도 억압도 존재하지않는 자신의 욕구로 선택한 경제활동만 남게된다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논조는 여성의 노동을 경제에 포함하지 않은 50프로의 경제학임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된다.자녀양육,청소,빨래,다림질등의가족을 위한 활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수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이에따라 여성들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해 주는 일은 보이지 않게되었다.
p53. 이들이 지닌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본성이 자연스레 발현된것에 불과하다.여성은 이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할것이기 때문에 그성과를 측정하는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결국 이런 관점들이 여성의 노동을 노동이 아닌 본성의 문제로 귀결시키게 되는 함정일것이다.
시카고학파의 논리 여성의 보수가 낮은 것은 집안일을 더 많이 해서고.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것은 보수가 낮기때문이라는 것이 자기당착적이라는 저자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이것은 결국 여성은 집안일,남자는 바깥일이라는 봉건적 이분법적 성역할론을 포장한것이니까.
특히 가사노동을 맡았던 사람은 직업경험면에서 뒤떨어지기 때문에 더 낮은 임금을 받는게 당연하다는 논리는 지금도 혁파되지 않는 관점일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능력이부족한 여성이라는 논리는 아직도 이어진다.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차이난다는 점은 문제가 아니다.중요한 것은 그 차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일뿐이다.여성이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가 대학에갈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부유해지면 일을 덜하고 소비도 덜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현실은 반대다.부유해졌지만 더 소비하며 더 많은 환경오염과 빈부격차가 생기고 있고, 가난한 나라는 더욱더 굶주리고 있다.
우리모두가 합리적개인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 인종,계층,성별등에 의문은 의미없어지며 주류경제학은 이점을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작년의 브렉시트.미국우선주의를 택한 미국,난민을 경제적 관점에서 추방하는 국가들.그리고 우리들 모두 경제적인 관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니 섬뜩하다.
여성은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한다.
p99.남자를 잡고 그 남자를 지키고 아이들을 기르는데 집중하면서 자신의 욕구와 필요는 무시하고 사는 삶이 어떻게 그들을 안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는지에 대해서.그리고 어떻게 그 모든것을 기적의 알약과 함께 삼키고 꾹꾹 눌러담아 이상적인 모습을 유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그리고 여성들이 집에 머무르면서 자녀를 낳고 소비만 해야하는 아이같고 섬세한 존재라고 설득하는 속임수에 어떻게 넘어가는지에 대해서
p100. 그녀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곳은 집이라는 생각을 종식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이와 동시에 여성은 남성과 달리 가정과 가족을 보살피는 능력도 심판받는다.그 결과로 빚어지는 일과 가정사이의 갈등은 여성의 문제로 묘사된다.
"진정한 성공이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정의를 우리 딸들에게 가르치는데 실패했다"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 나오미 울프의 말처럼 경제적인간의 굴레에서 여성은 여성이 아닌 나자신으로 사는것은 현재 반걸음도 못간거 같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주류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잊혀진 마가릿 더글라스를 기억해야할것이다.
p299.페미니즘의 관점이 불평등,인구증가,감소,복지혜택,환경 그리고 노령화사회가 직면한 돌봄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이상의 훨씬 큰문제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 젓는것까지는 했다.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경제,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경제적 인간을 단상에서 내려오게 해서 작별을 고하고,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경제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책은 애덤스미스 이후 주류경제학이 생각하지 않은 여성의 노동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저자의 예시들이 전세계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은 아직도 여성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인간성의 문제,엄마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 유지되고 있는 것의 반증이리라.
어쩌면 경제학의 단편적인 면만 봤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애덤스미스의 저녁을 실제 차려준 그의 엄마의 노동을 직시하는 것이 새롭고 신선하다.올해 세권의 페미니즘 저서중 경제적 면에서 사라진 여성을 주목한점이 흥분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