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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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박동욱 엮음/ 김영사/2008년/349쪽

 “인생이 얼마나 되겠느냐, 젊은 시절은 머물지 않는다.”

모든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염려와 당부의 말로 시작되는 책 표지의 이 문장은 늘 듣던 말이지만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편지>는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10명의 유학자들이 자식에게 쓴 서한을 골라 엮은 책이다. 이들의 편지를 읽다보면, 정통 유학을 공부하고, 여러 벼슬과 관직에 종사하면서 정치와 학문에 많은 업적을 이룬 선비들의 속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학문적, 정치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그들도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에 대한 기대와 안타까움과 염려, 꾸중, 곁에서 살뜰히 보살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애틋한 사랑이 절절히 묻어난다.     

  벼슬을 받아 가족과 떨어진 머나먼 타향에서 한번  편지를 보내면 두세 달이 훌쩍 넘어서야 답신을 받을 수 있던 그 시절, 얼마나 두고 온 자식이 걱정되고 보고 싶었을까. 정치의 혹한이 몰아치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마음대로 오 갈수도 서신도 보낼 수 없는 유배지에서 또 얼마나 자식들이 걱정되고 그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애간장이 끊어졌을까.

  이런저런 마음들을 생각들을 가슴에 품고 이들은 자식들의 학업과 인성, 생활 습관, 친구 관계, 예절  등 여러 부분에 걸쳐 꾸지람을 하기도 하고, 칭찬으로 격려도 하며, 반복해서 여러 가지를 당부한다.  

  백광훈은 “한 겨울 석달 공부는 평생을 쓰기에 족한 법이다.” 라며 한 겨울 산사에 들어가 경전을 공부하는 아들을 독려했다.

  유성룡은 퇴계선생이 손자에게 준 아래 시를 인용해 자녀가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기를 소원했다.

“소년 시절 산사의 즐거움 가장 아끼나니, 푸른 창 깊은 곳에 등불 하나 밝았구나. 평생에 허다한 그 모든 사업들이, 이 등불 하나에서 발원하여 나온다네.”

라 한 것을 아꼈었다. 너희가 이를 본받기를 바란다.“

또 아들의 글을 읽고 엄하고, 냉정하게 평하며 학업에 더욱 분발하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나름대로 맛이 있다. 나머지는 모두 고만고만한 말이고, 게다가 기상도 잔뜩 움츠러들어 툭 터져 날아 움직이는 느낌이 없다. 이는 담력을 펼침에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대선배이며, 학문적 많은 업적을 이룬 아버지의 가슴 서늘한 평을 보고 아들은 더욱 학문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이식은 병자호란의 난리 중 임금을 모시고 피난을 떠나 있던 중, 아들의 글에 투덜거리는 기색이 보이자  “조금 형편이 편해지자 더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 안일을 탐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라고 질책한다. 전쟁중 이전의 사치스런 생활 습관을 버리고 소박하며 장래를 바라보는 큰 생각을 품을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또한 “부형과 선대에게 들으니, 글 쓰는 재주 같은 것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지 말고, 날마다 시 한 수나 작은 문장을 지어보는 것이 묘결이라 하셨다.”  며 날마다  꾸준히 글을 지어 보도록 권한다.

  박세당은 “글을 쓸 때 -말이 좋기만을 구하지 말고,  오로지 근근이 일 없이 평범하여 기이하지 않기만을 위주로 한다면, 절로 흠이나 장애가 많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뜻이 그 사이에 행해져서 조리가 들어맞고, 조화를 얻게 됨에 있어서이겠느냐. 무릇 글을 지을 때는 온협, 즉 평온하고 가락이 잘 맞는 것만 함이 없다. 어그러져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은 고상한 것만 좋아하거나, 새로운 것에 힘쓰고 평범한 것에 힘쓰지 않는데 있을 뿐이다. 라고 했다.

  글을 쓸 때 잘 쓰려고 하다보면, 평소 자신의 모습과 맞지 않는 화장을 한 여자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로 꾸민듯 한 글이 되고 만다. 소박한 마음으로 평범하여 기이하지 않기만을 구하라는 말은 쉬운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내공을 요한다.

  연암 박지원은 첫 글부터 다른 선비들의 편지와는 사뭇 다르다. 당대의 최고 문장가라는 사람들의 찬사가 관연 틀린 말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눈이 확 떠진다. 위의 박세당의 글짓기 지도를 한 수 넘은 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하고 유머러스한 글은 이 책의 절정이구나 싶다.

  아들이 보내온 그림 한 점을 보고 ‘온종일 강물 소리가 울부짖는데, 마치 몸이 배 가운데 앉은 것처럼 흔들흔들 했다’며 그런 자신의 적막한 마음에 그 그림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얼마나 그림이 마음에 들었으면 문을 닫아걸고 날마다 열 몇 번씩은 말았다 폈다 하며 거기서 글을 짓는 영감을 얻었다고 했을까. 시인지, 편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림에 대한 멋드러진 감상 후,

갑자기,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후배이며 벗인 박제가가 가지고 있는데,‘ 그 인간이 꼴같지 않고, 무도해서 지극한 보물을 절대 빌려주지 않을거다.’ 하고 농을 했다가, 그래도 살짝 꼬리를 내리시며, 당신이 직접 빌리러 가시는 게 아니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름지기 이를 빌려 오도록 하라’고 분부하신다.

아들은 아버지의 농담에 참 난감하면서도 껄껄 웃었을 것이다.

  다른 편지에는 이러 이러하게 휴가를 위한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갑자기 휴가를 퇴짜 맞아서 결국 쭈그리고 앉아 멍하게 도모할 수 없게 되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누구누구에게 부탁한 일은 어찌 되었느냐?

누구는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 바로 알아보고 부치도록 해라...하며 투정을 부리면서도, 또 한편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일들을 재촉하는 아버지의 글에 그 아버지의 성정을 잘 아는 아들은  “ 아이고, 우리 아버지 또 시작하시는구나.” 하지 않았을까?

 유쾌한 연암의 편지 이후 박제가와 김정희의 편지는 가슴이 아프다.

박제가는 정조임금의 승하 후 함경도 유배 중 보낸 편지에, 힘든 이 시간에서 놓여나면 남은 세월을 산천을 떠돌며 지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쓴다. 아버지로서 자식의 학문과 생활을 걱정하면서도, 무언가 애석한 자신의 삶에 대한 푸념이 아니었을까.

김정희는 당대 금석학의 대가요. 글씨와 그림의 천재답게, 제주도 유배 중 쓴 그의 편지에는 난을 치는 법, 글씨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매섭다.

  스토리를 따라가며 통째로 읽는 문학서와는 달리 한편 한편,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을 형광펜으로 표시 해 놓고, 읽는 도중 메모도 해 보았다. 기회가 되면 붓글씨로도 써서 방에 붙여놓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들을 때는 잔소리인데, 듣고 나서 자꾸 생각해보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어른들의 잔소리처럼 약이 되는 글이라고 하고 싶다. 언젠가 그 잔소리가 달다고 느껴진다면 철이 좀 들었다는 것일까?

  <아버지의 편지>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정성스레 묶어 보낸 편지묶음처럼, 책꽂이에 오래 오래 꽂아두고, 자꾸 꺼내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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