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 그리스 신화를 담아 - 그리스 신화와 함께 읽는 토종 야생 들꽃 생태 기행
진종구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들꽃에 그리스 신화를 담아
진종구/어문학사

북한의 연평도 폭격으로 나라 안팎이 무척 어수선한 겨울을 보내는 것 같다. 연평도 주민들이나 군 관계자들, 직접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전쟁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같지만 또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건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약 2시간가량 달리면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저 북한 땅을 직접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들꽃에 그리스 신화를 담아’란 다소 이색적인 제목의 이 책은 바로 그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2km 내의 지역인 DMZ 북방의 들꽃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2010년 현재 동북 아시아의 한반도 중앙의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정치적 오지의 땅에 피고 지는 들꽃들의 이야기뿐이 아니다. 서양문명의 시초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강렬하고 다양한 신들이 야생의 꽃과 어우러졌다. 이 세상의 창조, 생명의 탄생과 죽음, 신과 인간, 아름다움과 사랑, 질투, 전쟁, 질병 등 인간 세상의 온갖 이슈가 담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류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어떻게 저자가 우리 강산과 들에 피는 들꽃과 그리스 신화를 연관시킬지 궁금했었다. 제비꽃, 얼레지, 미치광이풀, 꽃무릇, 쑥부쟁이, 상사화 등 너무 작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귀해서 어쩌다 한번 보기도 어려운 이 들꽃들과 그리스신화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개불알꽃과 제우스, 광릉요강꽃과 아프로디테 등 남성적인, 또는 여성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이 꽃들과 함께 소개된 신들은 정열적인 제우스 신, 요염한 아프로디테다. 순수한 모습의 처녀치마, 얼레지와는 처녀의 상징인 아테나 여신이 소개되었다. 우리 야생화의 이름도 대부분이 그 생김새나 냄새, 그 꽃이 가진 특징으로 이름 붙여졌으니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개성 강한 신들과 잘 어울린다.

아름다운 사진과 다양한 신화가 등장하는 이 책을 보며 들꽃에 대한 나만의 추억들도 떠올랐다. 몇 년 전 햇살 좋은 가을 날, 뜻하지 않게 만났던 송광사 가는 길의 꽃무릇 무리, 금남리 운동장 한 편에서 조용히 피고 지는 상사화, 서리산의 얼레지, 천마산의 미치광이 풀... 그 풀꽃들을 보았던 시간, 함께 보았던 사람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잔잔히 떠올랐다 사라졌다. 저자가 들꽃을 따라서 한반도 남쪽의 청정한 섬들을 오가며 그 곳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준 것도 참 고맙다. 작년에 꼭 가보리라 계획하고 바람 때문에 포기한 울릉도의 성인봉 이야기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렇게 마음에 담다보면 언젠가는 실천에 옮겨질 것이다. DMZ이라는 긴박한 현실 때문인지 아름다운 이 땅의 풍경과 작은 들꽃의 모습은 더 감동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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