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들의 생로병사
강영민 지음 / 이가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조선왕들의 생로병사
강영민 지음/이가출판사/355p./2009년 12월

‘조선 27대왕들의 생로병사 기록을 찾아 개인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을 조명해 보는 것으로 그 길잡이를 삼고자 했다.’ -저자 머리말 중

현직의사, 약 500년 전 왕들의 질병을 진단하다.
<조선왕들의 생로병사>는 현직 의사가 바라본 조선 시대의 역사이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질병과 치료법에 관해 연구하던 중 최고 권력자인 왕들의 생로병사에 주목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한의학과 현대의학을 접목시켜 왕들의 병과 사안을 철저히 밝혔다. 태조부터 마지막 왕 순종까지 27명의 왕의 건강과 질병을 통해 그들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한 사람의 질병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보인다. 어떤 체질인지, 어떻게 살았을지 무엇이 그 사람을 질병에 걸리게 한 원인이 되었을지 추측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한 국가를 책임지고 경영해 가는 막중한 일을 맡았던 왕의 생로병사는 더 흥미롭다. 왕의 생로병사는 나라 전체와 백성들의 생로병사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책은 개인인 왕의 건강과 질병을 살펴보면서 조선시대의 파란만장한 왕실사와 당시의 국내외의 정치적 사건, 왕의 업적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었다.

조선 전기의 왕들은 대체로 건강 체질이었던 것 같다. 무인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전쟁에 임하면 거의 대승을 거두었던 태조, 얼결에 왕이 되어 언제 목숨을 잃을 지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삶을 살았으나 권력을 이양하고 한결 건강하게 장수한 정종, 태조에 이어 실질적인 두 번째 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태종도 파란만장한 삶이었으나 56세까지 당시 수명으로 보면 장수한 편이다. 4대왕 세종은 육식을 좋아하고 체격이 좋았으나 왕실 집안 문제, 지나친 독서와 업무로 당뇨병, 두통, 이질, 기관지, 등창, 풍병 등 많은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22세에 즉위해서 53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32년 재위 기간 동안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위대한 수많은 업적을 남겨 당시 백성들과 후대는 그를 기꺼이 ‘조선 최고의 왕’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다스린 30여 년 동안 백성들은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기뻐했다.’ 고 기록했다.

조선 후기의 위대한 왕 정조는 세종만큼 독서광에 당대 최고의 학자라도 그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할 대학자요, 뛰어난 정치가였다. 어린 나이에 세손의 자리에 올라 49세에 질병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재위 24년 동안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세종만큼 여러 질병을 앓았다는 내용은 없지만 정치적 생존을 위한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지나친 학문 등은 면역력 결핍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조 임금이 ‘10년만 더 사셨어도 우리 역사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며 아쉬워한다. 이 책은 건강과 질병이라는 의학적 관점으로 조선의 역사에 쉽고 흥미롭게 접근했다. 최근에는 왕을 낳은 여인들, 조선 왕실 살인 사건, 왕세자의 입학식 등 흥미로운 주제로 접근한 역사서가 많이 출판되어 반갑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과 역사적 폐배주의를 벗어던지고 우리역사를 다양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저자들이 많아지고 있어 참 다행이다.

아침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된다는 글을 읽었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하고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어이가 없다. 국영수 3과목만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다른 과목들은 모두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것이다. 역사학계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며 교과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놓고 상당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그러자 교과부는 한국사를 모든 학교가 선택하도록 권장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상식적으로 권장한다는 것은 권하긴 하지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외국인에게라면 한국사를 배우도록 권장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자국민에게 자기 나라의 역사를 배우도록 권장한다니 이래도 되는 것인가.

요즘 우리 역사관련 책들을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지식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나를 깨닫게 된다. 학교에서도 즐겁고 재미있게 국사를 배웠던 기억이 거의 없고, 그저 시험을 위해 할 수 없이 교과서를 읽고 암기하는 정도였으니 역사 인식이라든가 해석이라든가 어떤 생각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교육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근대 이후, 우리나라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그 이후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 수도 없었고 제대로 역사교육을 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을 읽으니 온갖 쓰레기를 구덩이에 파묻어 흙으로 덮어버리고 그 위에 새 집을 지은 우리의 근현대사가 이해가 된다. 갈수록 험난한 대학입시와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청소년들이야말로 제대로 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입시를 위한 몇 개의 특정 과목만 죽어라 공부하고 대학 졸업장 받고 88만원 세대로 대부분 살아가야 하는 이 막막한 세상을 아이들은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자신의 삶과 이 세상에 대한 철학과 역사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투쟁하든, 타협하고 적응하고 새로운 생존의 분야를 개척하든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지 않을까? 이번 일로 우리의 역사 교육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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