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의 왕실사 - 베개 밑에서 발견한 뜻밖의 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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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다윗의 불륜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왕이 저녁때에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만다. 그 여인이 전쟁에 나가 있는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라는 사실을 알고도 다윗왕은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한 후 동침한다. 그런데 얼마 후 밧세바가 임신하였다고 알려오자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함으로 자신과의 일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아내와 함께 잘 수 없다고 성문에서 군사들과 함께 잔 후 다시 전쟁터로 향한다. 할 수 없이 다윗은 우리아를 전투가 벌어질 때 맨 선두에 세우게 해 죽게 한다. 이스라엘 왕 중 가장 뛰어난 성군이요, 믿음의 왕으로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다윗왕, 성경은 그의 업적과 함께 불륜과 살인의 행위마저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양심을 가려 보려 했지만 성경에 기록되어 후대에 깊은 교훈을 주는 다윗의 불륜보다 더 적나라한 우리 역사의 불륜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은식의 <불륜의 왕실사>는 1부, ‘욕망에 휩쓸린 고려’, 2부, ‘본분을 망각한 조선’이란 제목으로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의 유명한 불륜 사건 세 가지씩을 다루고 있다. 외척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고려왕실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던 여인 천추태후,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목종을 폐하고 김치양과 낳은 어린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다 쫓겨나 결국 목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인이다. 몽고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 중기, 충선왕은 부왕의 후궁과의 불륜으로 신하에게 지탄을 받자 몽고로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왕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몽고에 살고 있으니 결재를 맡을 신하들은 그 옛날 몽고까지 힘겨운 걸음을 해야 했고 왕이 먹고, 쓸 모든 물품을 고려에서 몽고까지 실어 날랐다고 한다. 나라의 주권을 잃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충선왕을 패하지도 못하는 고려 조정과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은 고려의 멸망을 앞 당겼을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그 아들 충혜왕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여인을 범하는 똑 같은 짓을 하다가 쫓겨나 살해된다. 밖으로는 몽고의 지배로 국가의 주권을 잃어버리고 안으로는 탐욕스런 권력 쟁취에 급급한 무신정권의 혼란기에 왕실과 국가의 체면과 윤리는 아예 사라져 버린 듯하다.

한편 개인의 불륜사건이 형제 간 가족 간 왕위 다툼에 이용된 조선왕조의 불륜사건도 만만치 않다. 세자 방석의 아내인 세자빈 유씨의 내시와의 불륜사건은 본인과 세자인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태종 이방원의 왕위 등극에 큰 발판을 마련해 주는 사건이 되었다. 또 형제의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화의군은 단종을 폐하고 세조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세조의 정적을 제거하는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극악무도한 패륜아로 알려진 연산군의 기록은 위의 사건들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충격적이다.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안 후 부왕의 첩들을 손수 죽이고,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백성들이야 어찌 되었든 매일 잔치를 벌여 천여 명의 여자들에 둘러싸여 흥청거리며 지내는 것도 모자라 백모를 강간해 자결하게 하고, 이복누이동생을 강간하고 대신들의 아내를 범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다가 폐위되고 만다.
왕조실록 같은 정사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을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저자가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로 들추고 싶지 않은 ‘불륜’이란 파격적인 주제로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사건을 들추어 정리하고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인물들의 역사적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이 땅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몸소 발로 찾아 일일이 사진에 담고 민망한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특권층, 가진 자, 귀족이 지켜야 하는 도덕적 의무이다. 왕실이 아닌 백성들이 저지른 사소한 불륜은 단순히 개인과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지배자가 저지른 불륜은 그 비극적인 결과를 나라 전체가 감당해 내야 했다.
현재도 이 책의 역사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서민들은 벌벌 떨고 두려워하며 지켜나가는 법과 양심과 도덕과 의무를 가진 자들은 잘 지키고 있을까? 자신이 가진 것의 휘황찬란함에 눈이 멀어 법이니 하는 것들은 보이지도 않을지 모르겠다. 무슨 사건, 무슨 사건하고 연일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은 명확히 밝히지도 않고 시간만 끌 뿐이고, 개인이 파헤쳐 알자고 들면 스트레스만 치솟아 명만 단축시킬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불륜의 역사도 누가 이렇게 낱낱이 파헤쳐 드러내 주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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