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이은식 지음 / 청목산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인물사연구원이 펴낸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고려사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해설서’란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들어 <고려왕조실록>을 재편집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건국 초 태조 왕건으로부터 예종까지를 상권에서, 무신정권에서 고려 말 공민왕을 걸쳐 공양왕까지를 하권에 수록하였고, 각 권 하반부 1/3 분량으로 한국사와 주변국정세를 정리한 연표가 수록되었다. 저자의 서문에 이어, 근거 자료가 되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대한 소개, 고려 왕실 세계도, 고려 34대 왕의 계보, 각 왕들의 능의 위치가 소개된 후 본문이 시작된다. 치밀한 구성과 슬슬 읽히지만 가볍지 않은 문장, 아름답고 품위 있는 외관 등 이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상권에 수록된 고려 초부터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이전의 국가들과는 다른 고려다운 정치적 기틀 마련과 국가의 정체성 획득이라고 볼 수 있다. 태조 왕건은 정치적 안정과 백성을 융화시키는 불교 정책들을 펼쳐 건국 초기의 수많은 현실적 문제를 아주 유연하게 처리하였다. 이후 왕권 쟁탈에 희생된 혜종, 과도기적 혼란기에 잠시 왕위에 머물렀던 정종을 거쳐 광종에 이르러 고려의 국가적 발판이 다져진다. 과거제도 실시, 국가 재정의 안정, 노비안검법 실시로 호족 세력의 반발도 있었지만 왕권이 크게 강화된다. 요즘 방영되는 TV 드라마 천후태후는 고려 목종 재위 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 속의 천추태후는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장부요, 사대를 배척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역설한 당당한 여성인 반면 이 책 속 그녀의 행적은 드라마와는 정 반대의 인물로 보인다. 역사는 그녀를 왕족으로서의 품위도, 정조도, 모성애도 결여된 여자요, 권력을 남용하고 애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들인 임금까지 왕위에서 쫓겨나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인물로 적고 있다.
왕위 쟁탈의 혼란 속에 단명을 한 비운의 왕들과 고려만의 독자 노선을 펼치며 북방 민족에 과감히 맞선 싸웠던 강인한 왕들은 대조적이지만 상권으로 보는 고려의 전체적 이미지는 강인한 민족정신과 자주성을 가진 힘찬 모습의 국가이다.

하권에서는 무인정권이 들어서며 고려의 정통성이 훼손되었고, 어지러운 정국을 맞게 된다. 야욕으로 가득 찬 혼란스런 정치 상황에서 왕권은 처절할 정도로 추락하고 교과서에서 어렴풋이 한 두 번 보고 넘어간 여러 왕들의 이름으로 왕조 계보는 채워진다.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과 외부의 몽고의 침입 앞에 힘없는 나라의 가난한 백성은 무참히 짓밟히고 고려는 원나라의 제후국으로 전락한다. 고려 말에 이르러 민족적 자주성을 회복하고 옛 고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펼쳐지지만 오랜 질병으로 회복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 병자처럼 고려는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에 의해 새 왕조가 세워지게 된다.

약 450년 34대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고려에 대한 기록이 참 빈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왕조실록을 재편집해서 기록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만이 고려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고 있다. 역사책이 불타 사라져 보존되지 못 할 만큼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험난한 시간을 걸어왔다. 이제 이 땅에서 살아간 인물들과 사건, 행적, 문화와 발자취를 살피고 현재의 역사를 생생하게, 아름답게 기록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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