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향기, 그녀의 아픔




 눈을 떴다. 지독한 갈증의 쓴 맛이 입천장에 메말라 있었다. 불을 켜고 사방을 훑어보았으나 온통 낯선 환경만이 눈에 들어와 박힐 뿐이었다. 방 안은 정지된 고요만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그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맡에는 물 컵과 주전자가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비에 젖은 옷이 깨끗하게 세탁되어 오징어처럼 옷걸이에 매달려 있는 것도 보였다. 아직도 어둠이 걸린 창밖에서는 간헐적인 빗방울소리가 유리창을 노크하듯 두들겼다.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는지 자동차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땅강아지처럼 파고 들어왔다.

  나는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되새김해 보았다. 필름이 끊어져 단편적인 기억만이 떠올랐다가 날아갔다. 숙희에게 이끌려 여관으로 들어온 후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꼬꾸라진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요금을 계산하러 간 사이 널브러졌다는 것 외에 그녀가 언제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젖은 옷은 어떻게 갈아입혔는지 느낌조차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끌어내 보아도 지난밤 숙희에게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던 내 꼴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이었을까? 주량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망가져서 그녀 앞에 널브러진 초라한 몸뚱이는 또 얼마나 왜소했을까? 참으로 숙희를 볼 낯이 없었다. 나는 주섬주섬 아직 덜 마른 옷을 걸쳐 입었다.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추리닝을 주전자 옆에 가지런히 포개어 놓았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오며 부끄러운 탈출을 시도했다.

 “젊은 사람이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하누. 그래도 애인 하나는 잘 두었더구랴.”

  마침 계단 청소를 하던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하던 일을 멈추며 말했다. 인기척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나는 민망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숙희가 궁금하여 여유 있는 척 시치미를 떼고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아주머니, 저랑 같이 왔던 그 사람은 언제 갔습니까?”

 “통행금지 끝나서 나간 지 얼마 안 돼! 밤새 옷 빨고, 이불 펴 주고, 물 떠 놓고, 시중들다가 여기서 나랑 잠깐 눈 붙이고 나갔네!”

  나로 인해 새벽잠을 설친 주인아주머니가 푸념하듯 말했다.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숙희는 만취하여 인사불성인 나의 옷을 갈아입히고, 젖은 옷을 빨아 널고, 깨어나면 갈증을 느낄까 싶어 물까지 준비해놓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혹 내가  어찌될까 걱정되어 주인아주머니의 카운터 실에서 잠시 잠을 청한 뒤 통행금지가 해제된 조금 전, 집으로 들어갔다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체면이 설지 대관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왔다. 덜 깬 숙취가 날아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반가웠다. 밤새 비가 온 뒤여서 된통 싸늘해진 새벽 공기는 혼미해진 머리를 말끔히 청소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했다.

  나는 터벅터벅 새벽 아스팔트에 발자국 도장을 찍으며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온통 숙희 생각뿐이었다. 한때나마 진 사장으로 인해 그녀를 몸가짐이 가벼운 여성이라 여겼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만약 새벽에 갈증을 느껴 눈을 떴을 때,  그녀가 윗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던가, 내 옆에서 정신 모르게 자고 있었더라면 그녀에 대한 생각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가버린 것에 안도하면서도 그녀가 가고 없는 것이 한편으론 아쉬운 나의 이중성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결혼한 사이도 아닌 남자의 궂은 시중을 들고 슬기로움을 보인 것은 비단 그녀의 이른 살림살이 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틋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난 참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못난 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숙희가 보고 싶다는 새로운 갈증에 몹시 목이 탔다. 그러나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하숙집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그녀가 출근하기 전에는 그녀와 연락할 수 있는 길도 전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찌뿌듯한 몸도 녹일 겸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목욕탕을 찾아 들어갔다. 나는 이미 모래알 같은 때를 탕 밖으로 불어 버리던 처음보다는 목욕탕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간단한 샤워를 끝내고 찬 바닥에 길게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간밤의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던 그녀의 율동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발등을 밟혀 가면서도 블루스를 가르치려 애쓰며 즐거워하던 그녀의 표정이 내 얼굴에 덮여왔다.

  눈을 감았다. 내 품에 맞닿았던 그녀의 앞가슴이 짜릿한 전율로 다시 되살아났다. 포도 알처럼 싱그럽던 입술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큰일이었다. 벌거벗은 아랫도리가 민망하게도 대책 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사람들 눈을 피하려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러나 녀석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아예 수건을 걸치고 컴컴한 수면실로 들어갔다. 한참 후 녀석은 진정되었고 서서히 잦아들었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단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내내 숙희의 앞가슴과 입술에 포로가 되어 끌려 다녔다. 꿈속에서도 숙희는 내내 갈증을 유발시켰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 목욕탕을 나왔을 때는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이었다. 선지해장국으로 대충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허 화백과 사장을 만나기 위해 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 직장에 대한 부탁 차 방문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근무하는 숙희가 궁금한 것이 더 큰 속셈이었다.

 “어, 미스터 강! 사무실 그만 두었다면서?”

  허 화백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사장은 무척이나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사장의 얼굴은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직장을 허 화백과 함께 떠밀듯 내보내서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직장을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되도록 부담을 덜 느끼게 하려 애쓰며 대답했다.

 “예. 멀리 이사 간다고 해서요.”

  사장과 허 화백은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며 직장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겠노라 약속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칸막이 뒤가 신경 쓰였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숙희가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니, 공개적으로 숙희에 대해 아는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칸막이에 가려진 숙희가 내가 온  것을 은근히 눈치 채 주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큰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며 칸막이 뒤를 훔쳐보아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간밤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생각되어 걱정이 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진 빗줄기를 맞고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밤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지쳐서 출근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잠시 후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다. 계단 밑에서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소리 없이 웃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꾸만 사무실 쪽을 돌아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 찾는 중인가 봐. 난 여기 이렇게 있는데 어디서 찾는 거야?”

  숙희가 농담까지 섞어가며 놀리듯 말했다. 거래처를 다녀오는 중인지 그녀의 손에는 하얀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안부를 물었다.

 “속은 괜찮아?”

 “그럭저럭 괜찮아. 그런데 어제 나 너무 많이 취했었지?”

 “사람이 그럴 때도 있지 뭐.”

  숙희는 관대하게 웃으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었다. 어설픈 해장국을 시원찮게 몇 숟가락만 먹은 탓인지 벌써 시장기가 돌았다. 마침 점심때가 되기도 했지만 그녀와 식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어젠 정말 미안했어. 지금 점심 같이 먹어도 돼?”

 “지금?” 

 “음, 오늘은 내가 사야지!”

 “잠깐만 기다려. 사무실에 서류 봉투 가져다 놓고 올게!”

  그녀가 계단을 오르며 사라졌다.‘동동동’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녀의 뒤태가 또 시선을 끌었다. 사무실로 올라간 그녀는 금세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사무실과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한식집을 가는 걸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혹시 아는 사람의 눈에 띄어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싫었지만 되도록 방해받지 않고 점심을 즐기고 싶어서였다. 둘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점심을 주문하고 음식이 준비되는 사이, 간밤에 내가 입고 있던 추리닝이 궁금해 물었다.

 “어제 어디까지 봤어?”

 “왜 그게 궁금해? 어디까지는. 전부 다 봤지. 후훗! 그게 억울한가 봐.”

  그녀가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나를 은근히 놀리려는 표정이 짙게 묻어 있음을 곧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도 익살스럽게 웃으며 되받았다.

 “너무하다. 이건 공평하지 못 해.”

 내 말이 짓궂다는 듯 그녀는 내 코를 툭 건드리고는 깔깔 웃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린 듯했다. 정숙희는 은애나 유정숙보다 내 마음속에 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은애나 유정숙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늘 그렇게 있었지만 숙희는 언제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심을 어느 때보다도 맛깔스럽게 먹었다. 아마도 숙희와 함께했던 점심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인근 다방에서 그녀와 커피까지 마시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숙희와 헤어진 나는 선이 닿을 만한 곳은 모두 다니며  취직을 부탁하기로 했다. 일단 은애의 일도 궁금하여 휘문인쇄소에 들렀다. 하지만 은애를 만날 수 없었다. 은애가 결혼 때문에 곧 퇴사한다는 말을 신입 도안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은애의 결혼 소식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남자의 지독한 애정공세에 은애가 결국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은애는 그 남자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살게 되었으니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은애에게 어떻게든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휘문인쇄소를 나왔다.

 이어서 태평양기획에 들렀다.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 임 실장은 때맞추어 잘 왔다며 의외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임 실장이 그동안 어디서 근무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중간 중간의 과정을 생략하고 제일 규모가 컸던 문구업체 개발부만을 말했다.

 “이제 일 제법 하겠군. 그런데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었어?”

  나는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어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었다며, 다른 약점은 최대한 숨겨 말했다.

 “마침 사람이 더 필요한데 사장님께 한번 말해보자. 어떠니? 다시 재입사할 생각은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열심히 해야죠.”

  임 실장은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처드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리처드를 매일같이 보며 유정숙을 의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잠시 후 집무실을 나온 그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며 환하게 웃었다. 임 실장은 그동안 과중한 업무로 힘들었는데 내가 오게 되어 한시름 덜게 되었다며 오히려 나보다 더 홀가분하게 짐을 내려놓는 듯했다. 그동안 걱정으로 증폭되던 취직 문제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쉽게 해결되어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쓸어내렸다.

  나는 월요일 출근으로 며칠의 휴식을 허락받은 셈이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희 씨, 나 취직했어. 월요일까지 휴가나 마찬가지야.”

 “참 잘 됐다. 어디?”

 “전에 일하던 태평양기획. 저녁에 그리로 갈까?”

 “여기로 온다고?”

  나는 숙희가 또 보고 싶었다.

 “그냥 또 보고 싶어서…….”

 “엉뚱하기는…….” 

  저녁이 되길 기다렸다. 허 화백이 내 직장을 알아보는 수고를 덜어줄 겸 취직되었다는 말을 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건 다 숙희를 만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사무실에 들어 허 화백과 사장에게 직장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진 사장에게 인사도 할 요량으로 숙희가 있는 사무실로 칸막이를 넘었다. 숙희는 이미 소지품을 챙겨 퇴근 준비를 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척 의례적인 눈인사만 했다. 나는 좀 더 확실한 위장을 위해 진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 오랜만이네!”

 “예에.”

 “지금은 어디서 근무해?”

 “월요일부터 태평양기획에 다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봐.”

 “예에,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진 사장에게 인사를 마치고 숙희에게 암묵적인 눈짓을 보낸 다음 사무실을 먼저 빠져나왔다. 그리고 길 건너 모퉁이에 숨어 숙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후 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건널목을 건너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냐? 어제오늘 일 년 치 몰아서 다 만나는 것 같다.”

  농담을 먼저 걸었다. 그녀는 웃으며 앙증맞게 대꾸했다.

 “왜? 벌써 귀찮아졌어?”

 “무슨 소리. 그냥 농담 한번 해본 거야! 저녁 먹고 갈래?”

 “아니. 오늘은 피곤하고 졸려서 그만 들어가는 게 좋겠어. 차라리 일요일에 인천 월미도나 갈래? 어머니가 있다는 끝섬은 아니지만…….”

  숙희는 끝섬을 생각하며 가까운 월미도라도 가자고 했다. 그녀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기억하는 숙희에게 울컥 감동이 복받쳤다.

 “그래 고마워.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은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조금도 망설이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가 없었다. 나는 숙희와 버스를 타고 마치 보디가드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집까지 동행했다.

 “저기 2층에 여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어. 집은 나중에 들어가고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

  그녀가 붉은 벽돌로 지어진 평범한 연립주택 2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주인과 별도로 놓아진 철제 계단 2층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숙희는 여동생이 먼저 퇴근하여 집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집 앞에서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연립주택 2층 계단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어스름한 조명 밑에서 그녀가 손을 흔들며 한참 동안 작별인사를 보냈다.

 

 

  일요일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숙희의 화사한  연분홍 투피스는 마치 봄날의 나비와도 같았다. 그녀의 화사한 옷차림을 보며 내 마음이 덩달아 화사해졌다. 나는 출발 전부터 이미 긴장되기 시작했다. 비록 어머니가 있다는 끝섬은 아닐지라도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충분히 흥분되었다. 더욱이 숙희와 함께 떠나는 바다는 끝섬이나 다름없는 황홀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며 월미도에 도착했다. 월미도 부둣가에 내리자 미역 냄새 비슷한 바다 향기가 코끝에 달라붙었다.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비릿한 생선 냄새도 바다 향기에 버무려져 모두 다 상큼하게 느껴졌다.

  바다 위에서는 수십 수백의 하얀 갈매기가 어지럽게 춤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닷물에 머리를 처박고 첨벙 빠졌다가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잔잔한 바람에도 일렁이며 춤추는 바다에서 음률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규칙적으로 밀려와 방파제를 때리고 다시 바다로 밀려가는 파도 소리는 어머니의 말 그대로 음률이었다. 파도 소리가 그렇게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음률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월미도의 바다라고 해도 어머니의 음률을 떠올리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바다 향기는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어 내 가슴을 맑게 했다.

 그녀가 물었다.

 “월미도 이름이 왜 월미도인 줄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묻는 것을 보니 숙희 씨는 그 유래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어제 조금 공부했지. 월미도는 섬 모양이 반달의 꼬리처럼 휘어져서 붙은 이름이래.”

 “제법인데. 그런데 월미도는 섬이 아니잖아?”

 “옛날에는 섬이었는데 육지와 연결돼서 지금은 아니지.”

  사전에 월미도에 대해 알아보고 온 야무진 그녀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숙희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해안관광지를 걷는 동안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곳곳에 즐비한 색다른 풍경 모두 우리의 관심대상이었다. 솜사탕 나눠먹기, 물방개 경주놀이, 인형 맞추기 놀이 등등 있는 그대로의 월미도를 즐겼다. 재미삼아 사주관상을  보고 싶었으나 숙희의 완강한 거절에 포기하고 길거리 화가에게 우리들의 초상화를 부탁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니 그녀와 나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화가는 우리의 그림을 예쁜 액자에 넣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 그림은 숙희 씨가 보관해!”

 “왜?” 

 “난 혼자 살잖아. 어디 놓을 때도 마땅치 않고…….”

 “알았어. 우리 저기 부두에 한번 가볼까?”

  그녀가 손짓하는 선착장에는 방금 도착한 여객선에서 한 무리의 사람과 차량이 줄지어 내리고 있었다. 양산을 펴든 아가씨, 봇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 짝을 지어 커다란 짐을 내리는 사내들로 여객선 주위는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나는 그곳에서 우시장을 보았다. 생동감 있고 활기찬 분위기는 우시장 못지않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장터였다. 눈앞에 떠있는 섬들과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토해내는 기적과 엔진 소리는 마치 송아지 울음소리로 범벅이 된 우시장을 연상케 했다.

 “우리도 배 타고 섬까지 가보면 어떨까?”

  내가 끝섬을 생각하며 숙희에게 물었다. 마침 매표소 안내판을 보던 숙희가 말을 받았다.

 “작약도가 제일 가까운 섬인 모양인데 거기까지 가지 뭐!”

  우리의 의견은 일치되었고 작약도를 거처 인근 섬을 왕래하는 배에 승선했다. 배가 출발한 후에는 좀 더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선실을 나와 갑판 후미로 나왔다. 하얀 포말을 뿜어내는 스크루의 굉음이 힘 있게 요동쳤다. 스크루가 뿜어 올린 하얀 포말은 길게 꼬리를 물고 여객선을 따라 붙었다. 갈매기가 지그재그로 춤추며 여객선 주위를  맴돌았다.

 손가락을 높이 들자 먹이를 주는 것으로 오인한 갈매기 떼가 손가락 가까이 접근하며 쪼려했다. 숙희가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다는 듯 몇 번씩 갈매기를 불러 모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영화에서처럼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나부꼈다. 그 바람결을 따라 올올이 흩날리는 숙희의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싱그러웠다. 사방으로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는 손가락에 잠시 정리된 머리카락은 또 다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런 숙희의 표정은 내 마음과 마찬가지로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작약도에 내렸다. 우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배치된 평상에 앉아 생선회와 소주를 주문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생선회는 고향에서 잡아먹던 피라미 민물 회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생선회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숙희와 함께 갯바위로 산책을 나갔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넘어질세라 숙희와 한 몸이 되어 걸었다. 그러다가 몸이 조금이라도 기우뚱해지면 균형을 잡으려 서로 엉겨 주변의 눈총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 생활이 자유로워지고 숙희와 함께 둥지를 틀게 되면 반드시 끝섬의 어머니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작약도와 월미도의 추억은 숙희와 함께여서 더욱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태평양기획에서 한 달이 지났다. 재입사를 한 경우라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어려움이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나의 재입사로 한결 일이 수월해진 임 실장이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었다. 임 실장은 그동안 지독히 많은 업무에 시달렸는지 틈만 나면 자리를 비우곤 했다.

  사무실이 서로 멀지 않은 관계로 숙희와의 데이트는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어떤 날은 점심을 함께 먹고 저녁에 또 만나 데이트를 하곤 했다. 데이트 횟수가 잦아지는 만큼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처음과는 달리, 아무도 몰랐던 숙희와의 관계가 서서히 노출되었다. 허 화백이 알게 되었고 진 사장이 알게 되었고 은애 또한 눈치를 챘다. 허 화백이나 진 사장은 퍽 놀라는 눈치였지만, 은애는 진정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다. 나는 숙희와의 교재 사실을 묻는 사람에게 사실 그대로 과감히 인정했다. 그들에게 굳이 변명이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숙희에 대한 나의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진  사장에게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경고의 표시이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 숙희의 전화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일요일 데이트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통화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유정숙의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다시 입사했다고 어제 리처드에게 들었어요. 지금 시간 좀 내 줄래요?”

  유정숙이 언젠가는 재입사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리고 반드시 전화가 올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이제야 리처드가 나의 입사 사실을 이야기했던 모양이었다.

 “시간은 괜찮지만…….”  

“전에 만났던 레스토랑 기억하시죠? 한 시간 후 그곳에서 만나요.”

  잠시 잊고 있었던 유정숙의 얼굴이 눈앞에 뚜렷이 되살아났다. 나는 또 다른 갈등에 휩싸였다. 그녀를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서였다. 그녀를 만나는 모습이 혹시라도 아는 사람의 눈에 띄어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곧이어 숙희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유정숙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유정숙의 이야기는 숙희와 나 사이에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공연한 일로 숙희의 신경을 건드릴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숙희와는 일요일 데이트 약속을 정하고 유정숙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나왔다.

  모처럼만에 본 유정숙, 아니 달님의 얼굴은 의외로 초췌해 보였다. 소녀 같던 청순함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기까지 했다. 한결 짙어진 화장도 화장이었지만 앞가슴이 패인 옷차림에서 풍기는 몸짓이 서양 여자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약간의 술 냄새까지 느껴졌다. 이미 술을 마시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저녁 대신 술과 안주만 시켰다.

 “……우리 아버지를 만났다면서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집에 다녀왔나 보죠?”

 “아뇨. 전화로만 들었어요. 노수 씨를 모르는 체 시침 떼었지만…….”

 “집에 한 번 다녀가지 그래요. 거의 매일 술로 사시나 보던데…….”

 “이 꼴을 해 가지고 어딜 가요.”

  그녀는 자조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가족을 보고 싶은 갈망이 짙게 깔려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유 씨의 소리 없던 눈물을 떠올리며 말했다.

 “유 씨 아저씨도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차피 리처드 얘기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갈 수 없는 내 마음이 더 문제죠.”

  나는 씁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와 노수 씨는 송아지를 몰아다 준 단순한 인연밖에 없죠. 아무리 고향 사람이라고는 하나 충분히 그냥 그렇게 흘려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노수 씨가 내 속사정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푸념도 할 겸 아무 얘기라도 하고 나면 후련해질 것 같아서 연락한 거예요.”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이미 취기가 있던 그녀였지만 술을 잔에 따르더니 단숨에 입안에 부어버렸다. 그리고는 내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몹시 할퀴기 시작했다.

 “세상에 못마땅한 것이 너무 많아요. 어쩌면 나 같은 여자가 못마땅해 하는 것이 더 많은지도 모르죠.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에요. 리처드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어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할수록 불안이 커지고 싸움도 잦아져요. 요즘은 리처드가  거의 매일 외박을 해요.”

  리처드가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심증은 나나 그녀나 같지만, 그녀는 심증 이상의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유정숙은 이미 리처드의 외도를 확인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래전 명동에서 보았던 천박스러울 정도로 마른 여자가 리처드의 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사형수가 되어 말없이 사형대에 올라서는 꿈을 근래에 자주 꾼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틀 앞에서 분노마저도 스스로 삭이다가 가위 눌리는 꿈에 시달린다고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순간임을 알고 있으면서 끝내 체념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마음이 과연 인간의 본심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도 했다. 이제는 감당하기도 벅찰 만큼 가위 눌리는  똑같은 꿈이 자주 되풀이되어 힘겹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쉽게 취해버렸다. 이미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 나온 상태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작정 술을 퍼붓는 터라 만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쉴 새 없이 토해내는 그녀의 하소연을 듣기만 하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아픈 내 마음을 유정숙은 알기나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리처드는 오늘도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 미워요. 하지만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요.”

  슬픔을 잔뜩 머금고는 내색하지 않으려 일그러진 마음, 오래도록 꺾여 있었으면서도 꺾이지 않은 듯 비틀거리는 몸짓, 체념하기에는 아직 미련이 많은 견디기 힘든 절망의 눈동자……. 그녀의 눈은 짙은 외로움에 절어 스러져가고 있었다. 이렇다 할 초점도 없이 쌓이고 쌓인 분노의 조각들을 뱉어 놓는 눈동자는 너무나 잔인했다. 토막 난 내면을 피나도록 문지르며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이미 그녀의 의지는 한계에 도달해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최소한 그녀의 마음을 위로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맞은편에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일이 리처드를 만난 지 2년이 되는 날이에요. 결혼기념일은 아니라도 정말 같이 있고 싶은데, 리처드가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정말 두려워요.”

 마침내 그녀는 내게로 다가와 쓰러지듯 가슴에 안겼다. 그녀는 연신 굴러 떨어지는 눈물을 내 셔츠에 비벼댔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파도를 쳤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멍하니 앉아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나무토막이 되어 굳어있었다. 그녀는 상처로 범벅이 된 마음을 내 셔츠와 가슴에 얼룩으로 마구 새겨놓았다. 그녀를 보며 마음은 물론 몸도 많이 상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쓰렸다. 나는 유정숙이 무너지는 아픔만큼 리처드의 태만이 증오스러웠다.

 “……노수 씨, 여잘 사랑해 본 적 있으세요?”

  그녀가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닦지도 않은 채 놀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황당한 질문을 내던졌다. 그녀가 토해내는 감정의 기복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서글프고 익살스럽고 절망스럽고 노엽기도 하여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녀는 유정숙이 되었다가 달님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

 “하긴, 샌님이 언제 여잘 사귀어 보기나 했겠어. 노수 씨, 이런 내가 불쌍하죠?”

 “오늘 많이 취했어요. 그만 집에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그럼 나 집까지 바래다줘요.”

 “그러죠. 정신 차리고 지금 일어나세요.”

  그녀가 쓰러지며 내게 엉겨 붙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술 냄새가 나긴 했어도 정신은 멀쩡했었다. 그런데 어찌나 술을 마셨던지 그녀는 벼랑으로 추락하듯 취해있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몹시 취한 그녀를 억지로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등판에 어린애처럼 업고서야 비로소 술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덜미를 휘감은 그녀의 여린 두 팔은 칡넝쿨처럼 엉키며 감겼다. 거친 호흡과  함께 나를 휘감는 술 냄새는 귓가를 더듬으며 마침내 코밑까지 흘러 내려왔다. 따스한 그녀의 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심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택시를 잡으려 도로에 내려섰다. 그러나 나와 그녀의 행색을 보고는 멈췄던 택시도 그냥 도망쳐버렸다. 얼마 후 좀처럼 잡히지 않는 택시를 겨우 잡아탔다. 하지만 기사는 그녀와 나를 보고는 내려줄 것을 종용했다. 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는 그녀를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웃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겨우 그녀의 집 근처까지 가기로 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그녀는 내내 횡설수설이었다. 겨우 그녀의 기억에 의지하여 집 언저리를 더듬어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가 비틀대며 억지로 내 허리를 잡고 일어섰다. 다시 그녀를 등에 업었다. 다 큰 성인 여자를 업고 골목에 들어서자 지나는 행인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떠받들고 있는 양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맨살의 느낌이 몹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꾸만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늘어진 그녀를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를 놓치면  땅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아 하는 수 없이 어린아이를 추스르듯 치켜 올렸다. 그녀의 엉덩이가 손바닥에 걸쳐졌고 뭉클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뇌리에 전해졌다. 등에 닿은 그녀의 가슴 또한 등줄기 표면에 밀착되어 자꾸만 움직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며 살갗에 자극되는 유정숙의 가슴에 녀석은 또 주책없이 꿈틀거리며 행동을 개시했다. 순식간에 단단해진 부위가 혹시 낯선 이의 눈에 띄면 민망해질 것 같아 허리를 구부려 자세를 낮췄다. 단단해진 이 녀석은 하여튼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었다. 유정숙을 처음 만난 우시장 담장 위에서 미처 사타구니에서 손을 빼지 못해 난처했었는데, 이제는 길가에서조차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술 취한 유정숙의 안내를 받아 겨우 그녀의 집 대문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잠시 녀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으나 녀석은 쉽게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무게에 눌려 더는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마침내 그녀에게 물었다.

 “정숙 씨, 집에 다 왔습니다. 이 집 맞아요?”

 그녀가 게슴츠레하게 눈초리를 올리며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집을 흘깃 확인했다. 그리고는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듯 등을 타고 내려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라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애쓰는 동안 비틀대던 그녀가 내 품에 와락 안겨버렸다. 단단해진 녀석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쇠죽을 끓일 때 느껴지던 아궁이의 후끈한 열기 같은 것이 온몸에 달라붙었다.

  나는 민망함을 모면하기 위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단단해진 녀석을 움켜쥐고 억지로 옆으로 꺾어버렸다. 다행히 그녀가 눈치 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다소 정신이 드는 듯 그녀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잠깐 들어왔다가 차 한 잔 하고 가면 안 돼요? 리처드는 오늘도 안 들어 왔나 봐요.”

 그녀의 습기 어린 눈빛을 보았다. 나를 믿는 쪽과 불신하는 쪽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수만 가지 생각에 수만 가지 갈등의 싸움이었다. 이성과 감성, 사랑과 연민, 승리와 배반에 이르는 이중적 갈등의 틈바구니를 헤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규나 다름없었다. 나 자신을 할퀴고 또 할퀴어야만 했다.

  나는 그녀가 유혹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유정숙은 지금의 혼돈스러운 마음을 잠시라도 잡아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뿌리쳤다. 그녀가 싫어서도 미워서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상처받고 피 흘리는 아픈 마음을 더는 어루만져 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위로하고 무엇을 또 위로해야 하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혼돈스러움을 나는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바보 같아, 정말!”

 유정숙이 푸념을 뱉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뒤통수에 꽂히는 그녀의 슬픈 목소리를 뒤로 하고 결국 대문을 나섰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 눈에 까닭 모를 눈물이 돌아 촉촉이 젖어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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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달님




 지각이었다. 밤사이 달님을 걱정하며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던 탓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뇌리에 박힌 흐트러진 유정숙의 잔상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쇠똥을 치우던 소박했던 그녀의 모습이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서양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답답한 상황을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밤새도록 눈꺼풀을 잡고 늘어져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흔치 않은 지각이지만 사무실로 들어가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사무실 문을 되도록 소리 나지 않게 살짝 밀치고 들어섰다. 마침 안내데스크에서 커피를 마시던 경리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는 다른 손으로 나를 보자며 손짓했다.

 “쉿, 조용히 들어가세요. 사무실 분위기 말이 아니에요.”

  그녀의 속삭이는 귓속말을 들으며 영문도 모른 채 살금살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팀장 자리에 바위처럼 앉아 있던 임 실장은 굳은 얼굴로 쏘아보았다. 나는 늦어서 죄송하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건네고는 엉거주춤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옆자리 디자이너에게 무슨 일이냐고 속삭이듯 눈으로 물었다.

 “달님이 유서를 써 놓고 어제  행방불명되었나 봐요. 지금 전무님이 사장님과 통화중인데 아직 자세한 건 몰라요.” 

  조용조용 말하는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일순 커다란 쇠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때렸다. 지난밤 유정숙과 있었던 일이 쏜살같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처럼 갈팡질팡하던 그녀의 혼돈스런 행동이 충격과 공포가 되어 엄습해왔다. 유서라니, 행방불명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믿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미스터 강, 나 좀 봐요.”

  전무가 문을 열고 집무실로 나를 불렀다. 집무실로 가는 동안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혹시 유정숙의 편지에 내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면……. 그녀의 행방불명에 내가 연관되었다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큰일 정도가 아니라 이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전무는 이미 그것을 전해 듣고 나를 채근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목구멍에 밀어 넣고 전무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혹시 사장님 댁 알아요?”

 “아뇨!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릅니다.”

  시치미를 뗐다. 유정숙의 집을 차마 아는 체할 수도 없었지만, 밤늦게 택시를 타고 갔던  길을 더듬어 갈 만큼 길눈이 밝지도 않았다. 더구나 전무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무는 더 묻지 않았다. 다행히 전무가 그리 물은 것도 업무 차 리처드와 동행할 때, 혹 리처드의 집에 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 듯했다.

 “그럼 약도를 그려줄 테니 지금 좀 그리로 가 봐요.”

 “…….” 

 “어제 달님 씨가 유서를 써 놓고 없어진 모양이에요. 사장님이 아침에  들어가 보니 집에 없더랍니다. 혹시 낮에 들어올지도 모르니 그동안 미스터 강이 집을 좀 지켜주세요. 사장님은 사무실에 중요한 일 때문에 교대해야 해요. 혹시 달님이 들어오면 곧바로 사무실로 연락하고.”

  나는 멍하니 서서 전무가 그리는 약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전무가 설명하는 약도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간밤에 보았던 그녀의 심리 상태로 보아 단순한 가출이 아니었다. 유서라는 말에 끝없는 불안이 일었다. 지난밤의 혼돈이 오락가락 뇌리를  헤집고 다녔다. 머릿속은 이미 온통 엉켜버렸다.

  전무실을 나와 택시를 타고 유정숙이 사는 동네로 무작정 향했다. 술 취한 그녀를 업고 왔던 캄캄한 지난밤의 기억만으로는 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유정숙이 사는 근처 구멍가게에 들러 끊임없이 계속되는 갈증을 사이다로 해결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주인에게 리처드의 생김새와 특징을 이야기하자 주인은 자세하게 그녀의 집을 알려주었다. 주인은 리처드와 함께 사는 여자가 찬거리를 사러 자주 온다며 퍽 친절하게 알려주고는 나와 무슨 관계냐며 물었다. 리처드 회사의 직원이라고 시큰둥하게 말하자 가게 주인은 더 묻지 않았다.

  아담한 한옥인 유정숙의 집은 지난밤 그녀를  부축하며 잠깐 스쳤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미리 전무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리처드가 문을 열어주었다. 리처드는 상당히 겁을 먹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어 보이며 토스트와 콜라가 있으니 배가 고프면 먹으라는 시늉을 했고, 텔레비전을 보라는 손짓과 화장실 위치까지 애써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있던 유서 쪽지를 들고 회사로 갔다.

 나는 소파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도무지 답답하고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젯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리처드만 있었어도 유서를 써 놓고 집을 나가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시 집을 비웠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유서를 써 놓았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혹시 부모와 형제가 그리워 미아리에 갔을까?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녀의 상황으로 보아 틀린 추측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그녀의 행방을 유추해 보아도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점심때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끼니는 리처드가 설명한 대로 토스트와 콜라로 해결했다. 

  문득 유정숙의 체취가 묻어 있는 집 안 곳곳을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잠깐 방심한 사이 그녀가 혹시 들어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작은 방을 기웃거려 보았다. 또 화장실에 들어가 일부러 변기의 물소리까지 내려 보며 인기척을 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그녀가 잠을  잤을 안방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갔다. 침대 시트는 금방 사용했던 것처럼 어지럽게 구겨져 있었다. 방 안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널린 채 뒹굴고 있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책을 들춰보았다.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책 속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아예 알몸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부끄러운 곳을 가리지도 않은 채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사진 속의 여자들보다 사진을 보게 된 내가 더 민망스러워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또 다른 책을 펴 보았다. 이 책은 더 민망했다. 실제의 행위를 노골적으로 촬영한 것은 물론이고 특정 부위만을 클로즈업시켜 눈을 현혹시켰다. 책 속의 모델들은 실제로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다양한 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따위 책들을 보면서 리처드에게 똑같은 행동을 강요당했을 유정숙을 상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하마 같은 몸집의 리처드에 비해 유정숙은 너무도 왜소하지 않은가! 유정숙은 리처드의 노리개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그 영상을 억지로 지우려 안간힘을 썼다. 내게는 영상을 지우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유정숙의 집에서 하루 종일 보초를 서고 리처드와 교대한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그때까지도 유정숙으로부터 소식은 없었다. 집으로 들어온 리처드는 달님이 집에 전화라도 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그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리처드를  뒤로 하고 나는 집을 나왔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전무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그는 오늘은 퇴근하고 내일 다시  상황을 보자고 말했다. 나는 사무실 정황도 궁금하고 내가 모르는 유정숙에 대한 소식이 또 있을지 몰라 경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리처드조차 유정숙의 원래 집 주소나 전화번호를 몰라 그녀의 행방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미아리의 유 씨를 찾아가 볼까 생각했지만, 일단 오늘은 기다려 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마음을 접었다.

  그나저나 유정숙은 그동안 리처드에게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동거 생활을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리처드가 유정숙의 주변 이야기에 무관심했는지도……. 태평양을 건너온 성인잡지를 함께 보면서 리처드의 노리개로 전락한 유정숙은 리처드의 거짓 달링인 셈이었다. 유정숙은 그저 리처드에게 정부에 지나지 않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리처드는 어떤 존재였을까? 유정숙에게 리처드는 누런 털을 온몸에 덮어 쓴 달아난 송아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정숙 혼자 힘으로는 달아난 송아지를 붙잡을 수 없어서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가는 선택을 했을지도 또한 모를 일이다. 달님이 곧 달링이지만 유정숙은 그 이름에 맞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정숙의 갈등과 외로움을 어루만져 줄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 금전적으로 기댔을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 리처드까지.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왔을지 모르는 나마저 그녀를 외면하고 이해해 주지 못했다.

  유정숙은 유서를 써 놓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달님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유정숙의 길을 찾아간 것이라면 좋으련만……. 무엇도 확신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또 지각이었다. 유정숙의 생사를 걱정하느라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며 잠을 설친 까닭이었다.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무기력한 근육 덩어리만 남겨진 형편없는 몸뚱어리 같았다. 황급히 회사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데 위쪽에서 임 실장이 황급히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실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십니까?”

 “어, 이제 오는 거야? 큰일 났어. 달님이 자살했나 봐!”

  임 실장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허공에 뒹굴었다. 나는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살이라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이 일순간에 곤두서 올올이 뾰족한 바늘이 되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사무실은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직원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유정숙의 자살 소식에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벌써 그저께 밤에 죽었다는 거 아냐?”

 “그렇대요. 글쎄 장롱 속 옷걸이 봉에 목을 맸대요.”

 “어휴,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사장님이 오늘 아침에 장롱 문을 열었다가 발견했다나 봐.”

 “장롱 문을 열자마자 달님이 길게 매달려 있는 거 보고 기겁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대, 글쎄.”

 이야기를 엿들은 나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유정숙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그것도 장롱 속에서. 내가 보초를 선 전날 죽었다는 이야기다. 나를 만나고 잔뜩 취해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장롱 속으로 들어갔고 목을 맸다는 이야기다. 아! 나는 그녀가 장롱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어 있는데 하루 종일 집 안  곳곳을 기웃거렸던 것이다. 장롱 안에 그녀가 죽어 걸려 있는데 바로 옆에서 리처드가 보는 성인잡지를 보며 온갖 상상을 했던 것이다. 아! 유정숙!

 눈앞이 캄캄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유정숙이 내 허리를 잡아 끌었을 때 억지로라도 끌려갔다면 최소한 그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달님이 아닌 유정숙으로 생각하고 그녀를 포근히 안고 위로해 주었더라면 최소한 자살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책감이 가슴을 때렸다. 눈물이 핑 돌아 안개처럼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전무의 지시로 상위 직급의 직원들이 소집되었다. 과장은 일단 주민등록증에 있는 주소를 토대로 유정숙의 집을 찾으러 나갔고, 차장은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확인받아야 한다며 경찰서로 향했다. 나는 과장을 따라 나설까 망설였지만 직원들은 유정숙의 관계를 모를 테니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박 기사가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리처드를 모시러 집에 갔다가 유정숙이 자살한 사건을 접하고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 사무실에 유정숙의 소식을 처음으로 전했던 박 기사는 전무에게 다시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박 기사의 보고를 받은 전무는 다른 두 명의 직원과 함께 나를 불렀다. 나를 포함해 현장에서 잔심부름을 해야 할 직원들이었다. 

 박 기사와 함께 리처드의 집으로 출발했다.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 탓에 아무 말 없이 뒷좌석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들 눈치만 살폈다. 한동안 조용히 운전하던 박 기사가 한숨을 돌린 듯 중얼거렸다.

 “독하기도 하지. 사람이 어떻게 지 목숨을 지가 끊어.”

  기회다 싶었는지 내 옆에 앉은 직원이 말을 받았다.

 “박 기사님, 정말 많이 놀랐겠습니다.”

 “말도 마라. 아침에 출근하자고 밖에서 빵빵 눌러대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 뭔 일이 생겼나 싶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큰 거구가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야. 퍼렇게 질려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방에서 기어 나오더니 소파에 엎어져 엉엉 울기 시작하더라고. 난 그때까지도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지. 리처드가 그러고 있으니깐 나도  모르게 그냥 방 안으로 들어갔지. 내 평생 그렇게 놀라기는 처음이야. 장롱 안에 시커먼  시체가 길게 매달려 있는데……. 후유, 어떻게 나왔는지 몰라. 아직도 정신이 멍멍해.”

  평소 입이 가벼운 박 기사는 유정숙의 자살 사건을 마치 영웅담처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유정숙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박 기사가 또 사건을 혼자 해결한 것처럼 부풀리며 말했다.

 “나라도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파출소에 신고했지. 경찰이 와서 시체를 풀고 방바닥에 눕혔는데 목을 맨 자리가 칼자국처럼 꺼멓게 멍이 들었더군. 죽어도 곱게 죽을 것이지, 그게 뭐람!”

 “그런데 어쩜 감쪽같이 이틀 동안 몰랐을까?”

 “글쎄 장롱 문을 열기는 했었는데 반대쪽 문을 열어봐서 몰랐다나 봐. 혹시 밤에 들어올지도 몰라서 집 안을 잘 살폈다는데…….”

  박 기사의 이야기는 이미 사무실에 알려진 이야기에 살을 덧붙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니 만큼 직원들은 진지하게 박 기사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유정숙의 사건은 그들에겐 그저 남의 이야기로서 곧 긴장감은 사라져버렸다.

 “그럼 장례는 어떻게 한답니까?”

 “아직 몰라. 이런 경우 경찰에서 장례를 치르라고 허락이 떨어져야 한대. 자살인지 타살인지 가려야 한다는 거야. 그나저나 당분간 피곤하게 생겼어.”

  박 기사는 유정숙의 죽음보다 자신이 번잡스러운 일을 맡게 될까 염려하는 듯했다. 직원 한 명도 맞장구를 쳤다.

 “그건 저희들도 마찬가지죠. 할 일도 많이 밀려 있는데…….”

  나는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라서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사정없이 달려와 차안에 곤두박질쳤다. 유정숙을 생각하자 또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눈물을 애써 삼키며 차장 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노수 씨는 시체하고 하루를 보낸 셈이군 그래.”

  그들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슬슬 눈치를 살피며 농담까지 늘어놓았다. 나는 대꾸할 이유도 없었고 눈을 비벼 그저 눈물을 감추었다.

  리처드의 집 앞에는 순찰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소문을 듣고 모인 마을 사람들이 집 안을 기웃거리며 웅성웅성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 나에게 리처드의 집이 어디인지 알려준 구멍가게 주인도 얼쩡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박 기사를 포함한 직원들과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구멍가게 주인이 나를 힐끔 흘기어 보는 눈치였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정숙이 자살한 것과 나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사건에 휘말려 조사를 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사람들이 나와 유정숙의  오랜 인연을 사실과 다르게 불륜이라고 오인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은근히 신경이 쓰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근거도 없이 나를 범인으로 보는 구멍가게 주인의 눈길이었기에 나는 더욱 태연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유정숙의 집을 찾아 나섰던 과장이 그녀의 두 동생을 데리고 현장에 들이닥쳤다. 어쩐 일인지 유 씨와 그녀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두 동생은 얼핏 봐도 매우 놀라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과장은 두 동생 몰래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달님이 미국인과 동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야.”

  김 과장이 덧붙였다.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동안 달님이 숨겨 왔던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지 아무런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더라고……. 아버지 어머니는 자살한 불효자식을 보지 않겠다고 하고……. 가장 믿었던 자식인데 그런 자식이 배신을 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면서 안 왔어. 아무리 괴로워도 부모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불효를 저질렀다며 오히려 야단이더군. 그래도 그렇지 난 이해가 안 되더라.”

  그러나 나는 유 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믿고 의지하던 딸의 소식을 듣고 유 씨 마음인들 오죽했으면 딸의 마지막 길을 외면했을까! 나는 훗날 유정숙이 가슴에 담았던 모든 괴로움을 그녀 대신 유 씨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경찰의 입회하에 달님을 덮어놓았던 흰 천이 젖혀졌다. 세상과의 고리를 끊어낸 상처가 목 줄기에 선명하게 검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유정숙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반듯하게 잠자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편안해졌을까? 달님이라는 이름을 끊어내기가 얼마나 힘겨웠으면 이토록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까? 가슴이 저리고 금방이라도 숨통이 멎을 것 같았다.

  달님이 유정숙임을 확인한 가족들은 이내 주저앉으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통곡은 절규였고 남동생의 통곡은 원망과 죄스러움이었다. 여동생은 뒹굴었고 남동생의 무릎은 저절로 꺾어졌다. 가족들의 통곡과 흐느낌으로 촉발된 현장은 순식간에 슬픔의 바다가 되었다. 나는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삼킬 수 없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꺼이꺼이 울고 싶었던 내 심장마저 마침내 터뜨려 놓았다. 마치 가족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직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애써 그들의 통곡을 외면하려 등을 돌렸다.

  저녁 무렵에야 유정숙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최종 판명이 떨어졌다. 이윽고 유정숙의 육신과 세상의 인연을 끊는 병풍이 둘러쳐지고 향이 준비되었다. 측근들은 모여 장례 절차를 의논했다. 장지를 선정하느냐, 화장을 시키느냐는 논쟁 끝에 그녀의 명예롭지 못한 죽음에  비중이 실려 화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유정숙과 마지막 정을 떼기라도 하듯이 삼삼오오 모여 그녀에 대한 옛날이야기들을 한 토막씩 꺼내놓았다. 리처드를 만나 행복해 하던 초창기의 달님과 남이섬 야유회 추억, 그녀가 자살하게 된 동기까지 유정숙과의 추억담을 회상하며 눅눅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음식을 대접해야 할 문상객도 없는 탓에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거의 없었다. 나는 직원들과 말을 섞기가 싫어 홀로 떨어져 있었다. 초저녁부터 자욱하던 안개는 점점 짙어져 온 집 안을 뒤덮었다. 그녀가 가꾸던 정원의 나무들은 오래 전부터 손이 닿지 않아 시들어가고 있었고, 선인장 가시만이 하늘에 삿대질이라도 하는 듯 무성하게 웃자라 있었다.

  나는 담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엉덩이와 맞닿은 돌덩이에서 차가운 안개의 습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개에 가려진 그믐달이 희미하다 못해 스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몇 가지 물어봐도 돼요?”

  유정숙의 여동생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나는 초면인 여동생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노수 씨 맞죠?”

 내가 놀라서 되물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언니에게 들었어요. 언니가 나한테만 전화로 노수 씨 얘기를 했어요!”

 “…….” 

 “언니는 이틀 동안 술만 먹었대요. 그저께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처음으로 노수 씨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취해서 횡설수설하면서도 잘 아는 충주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나와 돌아갈 수 없다며 엉엉 울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버리면 난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유정숙과의 통화 내용을 회상했다. 낮에도 문득문득 슬픔이 솟더니 또 눈물이 울컥 돌았다.

 “평소에 남자 친구 얘기가 전혀 없었거든요. 언니는 노수 씨를 좋아했었어요.”

  의외였다. 유정숙이 죽기 전 나에 대한 감정을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남겨놓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좋아했었다고 여동생에게 죽기 전에 말하고 떠났다. 아마도 그녀는 내게 달님이 아닌 유정숙으로 남겨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유정숙에 대한 내 느낌은 앞으로도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질 것은 분명했다.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언니와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요?”

  여동생의 물음에 나는 유정숙과의 옛날을 떠올렸다. 충주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회상했다. 나에게 있어서 유정숙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학 같은 여자였다. 비록 일방적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게 해준 여자였다. 유정숙이란 이름이 난데없이 달님으로  바뀌어 앞에 나타났을 때도, 리처드와 동거하며 추락하는 모습을 보인 뒤에도, 내게 있어서 유정숙은 언제나 학이었다. 그녀의 싱그러움에 넋을 빼앗기고, 잊혀질만한 때 거짓말처럼 서울에서 재회한 것을 회상하며 그녀와의 관계를 동생에게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여동생은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처럼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는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잘 있는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언니는 근래에 많이 외로워했습니다.”

  유정숙의 마지막 슬픈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감정의 기복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돈을 쏟아내던 유정숙을 뿌리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녀를 뿌리치고 나온 밤, 자살하기  직전, 혼란스럽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지 못한 것이 한없이 마음을 옥죄었다. 너무 멀리 떠나와 돌아갈 수 없다며 엉엉 울었다던 그녀의 외로움은 곧, 내 외로움과도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외면했었다.

  여동생은 원망스러운 듯 습기 어린 눈초리로 나를 힐책했다. 

 “그걸 아시면서 왜 옆에서 좀 잡아주지 않았어요? 언니가 불쌍해서…… 미치겠어요! 우리 언니 어떻게 해! 정말 불쌍해서…….”

  여동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어둠 속에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는 유정숙의 어깨와 너무도 많이 닮아 있었다. 파도치듯  흔들리는 여동생의 가녀린 어깨 위에 유정숙이 있었다. 나는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며 유정숙을 위로했다. 그동안 차마 위로조차 해줄 수 없었던 유정숙의 아픔을 여동생의 어깨를 빌어 비로소 부끄럽게 감싸 안았다. 여동생의 어깨는 유정숙의 어깨가 되어 나의 위로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여동생의 흐느낌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르고 내내 바닥으로 흘러내려 온 집 안을 적셨다.

  밤이 이슥해지자 몇몇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적막과 함께 내려앉은 괴괴한 밤은 한없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가끔 유정숙의 남동생이 꺼져가는 향불을 피우기 위해 오가는 움직임만이 먼발치에서 아른거릴 뿐 주위는 온통 지독한 어둠과 안개로 덮여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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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의 끝자락




 유정숙의 서럽고 안타까운 죽음과는 아랑곳없이 아침은 어김없이 밝았다. 밤새 내려앉은 지독한 안개는 미처 걷히지도 않았다. 여전히 집 안 곳곳을 핥고 있는 안개의 촉수는 구석진 곳마다 마지막 진액을 빨아올리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유정숙이 떠나는 것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영화에서 본 드라큘라의 성처럼 온 집 안을 에워쌌다.

  밤사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새우잠을 청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부비며 행동을 개시했다. 이미 잠에서 깨어나 여동생이 오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뒤척이던 나 또한 몸을 뒤틀며 일어나 앉았다. 이른 새벽부터 안개 속을 오가는 여동생은 움직이는 몸짓마다 언니에 대한 미안함이 절절이 묻어나 보였다. 

 나는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어 찬물로 세수를 했다. 세숫물 속에 푸석푸석한 내 얼굴이 비쳤다. 얼굴을 쪼개어 보며 유정숙을 떠올리던, 송아지 탈출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일이 떠올랐다. 대관절 유정숙은 무슨 생각으로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녀를 잡아주지 못하고 뿌리친 것이 울컥 뼛속 깊이 또 아려왔다.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연거푸 얼굴 여기저기에 찬물을 마구 뿌려 눈물을 감추었다.

 세수를 끝내고 무엇이든 도울 일이 있을까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공기 속을 헤매고 있는 안개가 온몸에 달라붙어 이슬을 맞은 듯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팔을 문지르자 작은 물방울이 맺힐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그것은 분명 유정숙의 눈물이었을 터였다. 떠나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하는 슬픈 마음이었을 터였다.

  때마침 대문 열리는 파열음이 아침의 고요를 깨뜨렸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대문 쪽으로 모아졌다. 유정숙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판정을 내렸던 경찰 2명이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직도 조사할 일이 남았으려니 여기며 가볍게 방 쪽으로 등을 돌렸다.

 “강노수 씨 계십니까?”

  경찰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 화살처럼 꽂혔다. 순간 몇몇 회사 직원들의 시선 이 나에게로 쏠렸다. 나에게 쏠리는 시선만 봐도 경찰이 찾는 강노수가 나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경찰서로 가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잠시 조사할 일이 있습니다!”

  경찰은 대번에 나를 알아보고 말했다. 나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경찰서라니……. 지금까지 경찰서는 단 한 번도 출입한 적이 없는 장소였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경찰서로 데려가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경찰서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눅이 들고 두려움이 앞서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양쪽에 한 명씩 팔을 붙잡아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항의하는 몸짓이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스르르 끌려갔다. 다만 왜  끌려가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눈길만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도 너무 놀란 나머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개 속에 말없이 서 있는 고목처럼 보였다. 경찰에 끌려 대문을 나서자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며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 틈에서 나를 흘기듯 쳐다보는 구멍가게 주인이 보였다.

  경찰에 끌려가는 이유를 그제야 알아차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경찰서에 가면 유정숙의 죽음에 내가 연관되어 있는지 조사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회사에는 물론 리처드와 유 씨 아저씨, 숙희에게까지 유정숙과 나의 관계가 드러날 것이다. 유정숙과의 순수한 인연은 불륜으로 오인되고 특히 리처드와 숙희는 단단히 오해할 것이다. 괜한 사람들까지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겨우겨우 서울에서 일하며 먹고 지내던 생활도 힘들어질 것이다.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머릿속은 텅 비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경찰서 정문에 이르자 마음은 더 사정없이 쪼그라들었다. 정복 차림의 위병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경찰은 거만하고 위압적인 몸짓으로 경례를 받았다. 경찰 건물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냉큼 삼켜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2층에 위치한 조사과로 끌려갔다. 마침내 조사과 의자에 경찰과 마주 앉게 되었다. 경찰이 타이프를 칠 자세를 취하며 조사는 시작되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하여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최대한 집중해서 조사에 응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정숙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는 문제였다.

 “유정숙이 발견되기 전날 자네가 그 집을 찾더라는 신고가 들어왔네. 신고가 접수되었으니 우리는 조사할 의무가 있지. 자 시작하자. 이름?”

 “강노수입니다.” 

 “나이?”

 “스물 셋입니다.”

 “부모는?” 

 “안 계십니다.”

 “직업?” 

 “회사원입니다. 한미합작기획실.”

 “리처드라는 미국 놈이 다니는 그 회사?”

 “예, 사장님이십니다.”

 “죽은 유정숙과는 어떤 관계야?”

 “고향사람입니다.” 

 “고향은 어디?”

 “충주입니다.” 

  순간순간 쏘아보며 묻는 위압적인 표정이 나를 압도했다.

 “양반 동네구먼! 그런데 왜 죽였어?”

 상투적인 질문을 하던 경찰은 넘겨짚으며 윽박질렀다.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를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없던 일을 꾸며내기라도 했다간 속수무책으로 낭패를 당할 것 같았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도 미치겠습니다. 정말 불쌍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그날 그 여자 집은 왜 찾은 거야? 미국 놈 몰래 연애 중이었나?”

 “아닙니다. 유서를 써 놓고 나갔다고 해서 사장님 대신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저희 회사 전무님께 물어보면 다 아실 겁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고, 난 자네 마음을 물어본 거야. 유정숙과 남몰래 사귀었냐고…….”

 “만나긴 했어도 그런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이라는 것도 숨긴 게 아니라 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은 것뿐이고요.”

 “충주에서부터 알던 사이라며? 그때부터 사귀던 거 아니었어?"

 “아니라니깐요. 유정숙 아버지를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충주에서 한 번 보았고 우연히 서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그렇고, 사장님하고 사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앞으로 조사해 보면 다 나와. 쉽게 가자고. 진 빼지 말고……. 유정숙 말고 애인 있어?”

 “예에…….” 

 “이거 쌍방 모두 삼각관계구먼. 죽은 여자 하나에 미국 놈과 자네. 자네 하나에 죽은 여자 와 애인…….”

 “그건 정말 아닙니다. 제가 유정숙과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것을 사장님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유정숙도 제 얘기를 사장님한테 말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리고 제 애인은 사장님도 유정숙도 다 모르는 사입니다.”

 “서로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문제지. 자네와 죽은 여자가 고향사람이든 서로 사귀는 애인이 든 동거하는 미국 놈에게는 비밀이었다는 얘기 아냐? 숨겼다는 건 그만큼 캥기는 게 있다는 뜻도 되지.”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경찰은 억지 논리를 펴며 추궁했다. 나는 더더욱 강도를 높여 항변했다.

 “유정숙이나 저나 사장님을 의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녀와는 그저 고향사람 이상도 이 하도 아니었습니다. 가끔 저를 찾아와 사장님과의 갈등을 털어놓았을 뿐 아무 일도 없던 사이입니다. 네?”

 “죽은 여자를 사랑한 거 아니었나?”

 ……제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네가 그 집에 들어간 다음 날 죽은 유정숙이 발견됐어. 그 여자를 언제 어떻게 죽였는지 빨리 털어 놔.”

  경찰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살인범으로 몰아 사건을 해결하려는 듯했다. 경찰의 억지 조사 과정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구멍가게에서 사이다를 사 먹고 그녀의 집 위치를 물어본 게 자살을 타살로 뒤바꾸고 살인범으로 몰릴 만한 행동인가! 그 단순한  행동이 불러온 결과치고는 엄청난 굴욕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억울함이 있다 해도 그건 괜찮았다. 다만 유정숙을 향한 나의 마음이 추하게 추락하고 그녀의 아픔이 치정 때문이었다고 알려진다면 그건 참을 수 없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마음이 너무나 비참하고 서글퍼 견딜 수가 없었다.

 “유정숙은 제가 집에 간 전날 이미  장롱 속에서 목을 맸던 게 분명합니다. 전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건 조사해 보면 알 일이고, 자넨 사실대로 진술만 하면 돼!”

 “모두 다 사실입니다. 유정숙을 제가 죽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내 대답이 어떻든 간에 경찰은 말을 비꼬며 질문을 계속해왔다.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가다듬고 조목조목 답변을 했다. 충주 우시장에서 유정숙을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진술했다.  서울로 올라와 회사에 취직해 그녀를 만나게 된 것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까지 기억나는 대로 털어놓았다. 유정숙에게서 들었던 그녀와 리처드의 관계까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리처드의 외도에서 비롯된 그녀의 아픔, 고리타분한 아버지와 집안 형제들이 그녀에게 보였던 심리적 압박까지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혹여 내 말이 유정숙의 마지막 길에 오점으로 남지 않을까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했다. 유정숙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진술을 타이핑하는 경찰에게 또 다른 경찰이 참견하며 말했다.

 “부모도 없구먼. 그냥 처넣어! 데모하는 대학생 놈들 때문에 가뜩이나 복잡한데…….”

  그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으면서 나를 벌레인 양 쳐다보았다. 데모가 나와 무슨 관계인지…….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타이핑을 치던 경찰이 덧붙였다.

 “신경 쓸 거 없어.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기댈 곳 하나 없다는 게 서러워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울컥 복받쳐 올라왔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편의 소설이구먼. 그래도 좀 더 확실한 조사를 위해 리처드라는 미국 놈하고 유 씨, 자네 애인까지는 조사를 해야 해. 그리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오늘 못 나가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긴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다소 누그러진 경찰의 말투에 나는 약간 평정을 찾고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그는 리처드와 유 씨, 숙희까지 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리처드가 나와 유정숙의 관계를 알면 어떻게 될 것이며, 유 씨는 또 어떻고, 숙희는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 회사 사람들은 나를 두고 수군댈 것이며 은애든 거래처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도마에 올려놓고 입방아를 찧어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참으로 지루하고 곤혹스러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대면1· 리처드와 전무】

 리처드가 전무와 함께 경찰서에 나타났다. 그들은 조사를 끝낸 뒤 대면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리처드보다 전무가 더 놀라는 눈치였다. 명동에 있는 리처드에게 돈 심부름을 시킨 것도, 유정숙이 유서를 써 놓고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 집을 지키라고 지시한 것도 전무였다. 나는 리처드보다 전무가 더 못마땅했다.

 “미스터 강, 달님과는 도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사장님은 그게 제일 궁금한가 봐요.” 

  전무는 리처드의 입장에서 나를 문책하듯 몰아붙였다. 전무의 그런 행동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했다. 리처드의 외도를 묵인한  전무도 유정숙의 자살에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무에게 어깃장 놓듯이 힘주어 대꾸했다.

 “달님은 같은 고향 사람입니다. 소장수인 달님 아버지를 먼저 알았고, 달님은 우시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회사 야유회 날 남이섬에서 다시 만났고요. 그 후로 두  번쯤 만나서 하소연을 들어줬습니다. 그뿐입니다.”

  전무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미 나와 유정숙의 관계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리처드 앞에서 권위적으로 확인하려 하는 태도가 역겨웠다. 더구나 전무는 나의 이야기를 걸러서 리처드에게 통역하는 듯 느껴졌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군.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해 왔다는 게…….”

  전무는 내가 유정숙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관계라는 사실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서로 비밀을 지켜온 것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전무가 내게 다시 물었다.

 “달님이 무슨 하소연을 하던가?”

 “사장님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오도 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하며 갈팡질팡했습니다. 달님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사장님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그렇게 팽개쳐 놓고 외도를 일삼아 온 사장님을 미워하지도 못하고 죽은 달님은 억 울해서 눈도 못 감을 거예요. 그녀의 불쌍한 인생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사장님한테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리처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거세게 토해냈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전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울분을 토해내는 것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는지, 리처드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나는 다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줄줄이 털어놓았다.

 “달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걸 숨긴 게 아닙니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달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만났지만 늘 슬픈 하소연만 들었습니다. 불쌍해서 어떻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달님이, 달님이 아니라  유정숙이었으면 했으니까요. 유정숙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녀가  너무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달님을  죽였다니 말도 안 됩니다. 더구나 무슨 불륜관계처럼 손가락질 받는 게 미치도록 슬픕니다!”

  전무가 리처드에게 내 항변을 길게 통역했다. 리처드의 얼굴은 슬픔으로 더 일그러졌다. 직원들로부터 유정숙과 리처드의 처음은 그 어떤 커플보다 다정한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관계를 깨뜨린 건 순전히 리처드의 외도였다. 나는 그런 리처드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유정숙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외면한 것이 사실이었다. 리처드는 유정숙과 나와의 인연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개방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한때 사랑했던 달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리처드는 전무를 통해 왜 좀 더 일찍 달님에 대한 마음 상태를 귀띔해 주지 않았느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는 더 이상 리처드의 회사에서 근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달님이 쓴 유서를 보여 주었으니 곧 조사가 마무리될 거예요. 밖으로 나오면 사무실로 전화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전무는 나를 안심시키며 동정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리처드는 전과 다르게 먼저 악수까지 청했다. 그가 청하는 악수의 의미를 나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유정숙에 대한 나의 우정을 이해한다는……. 누런 털이 가득해 송아지 엉덩이가 연상되던 리처드의 손이 모처럼 따뜻하게 나를 삼켜버렸다.

  나는 그들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유정숙은, 보송보송한 솜털의  유정숙은, 긴 머리를 똬리 틀었던 청순한 유정숙은, 가슴이 움푹 파인 옷을 입고 망가진  유정숙은 홀로 쓸쓸한 마음을 부여잡고 하늘로 떠나버렸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그녀는 달님으로 쓸쓸하게 떠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에겐 솜털 가득한 유정숙일 뿐이었다. 그들이 버리고 간 달님은 내 앞에 유정숙으로 떨어져 남았다. 




【대면2· 유 씨와 여동생】

 유 씨가 여동생을 앞세우고 경찰서에 출두했다. 유정숙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려 하지 않았던 유 씨가 둘째 딸의 전화를 받고 경찰서로 내쳐 달려왔다. 유 씨가 이토록 황급하게 경찰 서로 달려온 것은 유정숙의 자살과 연관된 인물이 나라는 사실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호통을 치는 유 씨에게서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이눔아, 대체 이게 뭔 짓거리야!”

  유 씨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노여움이 가득 찬 얼굴로 나를 힐책했다. 그 옛날 우시장에서 혈기 넘치던 유 씨일 때도 본 적 없는 노여움이었다. 어떤 변명으로도 딸을 잃은 아버지의 서러움을 위로할 수 없기에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 씨는 내가 유정숙의 죽음에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정숙의 자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이들보다 그녀의 죽음에 이토록 안타까워하는 나를 비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끝내는 참지 못하고 유 씨에게 내 울분을 쏟아냈다.

 “아저씨, 내용도 모르고 그러지 마세요.”

 “이 녀석 보게! 똥 싼 놈이 더 성낸다더니…….”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저도 미칠 지경이에요!”

 “언제부터 숨기고 딸년하고 왕래했던 게야? 지난번 집에 왔을 때도 모든 게 거짓이었단 말 아니여!”

  유 씨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유 씨의 노여움은 좀처럼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네 놈이 그년 입장을 알고 있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죽지는  못하게 막았어야 할 게 아니여! 이 녀석아…….”

 유 씨도 리처드처럼 유정숙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정을 하기 전 그녀에 대한 정황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자살만을 막았어야 하지 않았냐는 핀잔이 분명했다. 나는 갑자기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저씨, 따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아저씨가 싫어서 몇 번씩 충주를  떠나고 싶어 했고, 리처드가 바람을 피울 때 괴로워하며 혼란스러워 했어요. 얼마나 힘들어 하고 불쌍했는지 아저씨는 모르실 게예요.”

 “이런 우라질, 지난번에 집에 왔을 때 미국 놈과 산다고만  했어도 내가 나서서 말렸을 게 아니여. 옘병할…….”

  유 씨의 목소리는 마침내 울먹이기 시작했다. 유 씨는 유정숙을 잃은 슬픔을 내개 퍼붓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로서의 유 씨 속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 사람 잘못 없어요!”

 보다 못한 여동생이 유 씨를 만류하며 나를 옹호했다. 여동생은 죽기 전 나를 좋아했었다는 언니의 마지막 비밀을 기억하고 있는 듯, 우호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설마 이렇게 세상을 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나 또한 서러움이 복받쳐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이눔아,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여, 다 부질없는 짓이지.”

 유 씨는 슬픔을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내 유 씨와 여동생의 흐느낌은 좁은 면회실을 온통 슬픔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유 씨가 팔뚝으로 눈두덩을 닦으며 딸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연신 손짓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던 여동생은 유 씨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죄송해요. 아버지 대신 제가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괜찮을  거예요. 조사관도 언니가 스스로 그렇게 한 모양이라고 말했어요.”

 마침내 유 씨는 여동생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한때 우시장을 호령하던 기개는 간 데 없고 초라한 유 씨의 뒷모습만이 보였다. 유 씨의 힘 빠진 뒷모습은 비루먹은 송아지의 엉덩이처럼 처량 맞기 짝이 없었다.




【대면3· 정숙희와 진 사장】

 숙희가 진 사장과 함께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불려왔다. 아마도 그녀 혼자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어서 진 사장과 동행한 듯싶었다. 최소한 숙희만은 사건에 연루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지만 별 수 없이 숙희도 호출된 모양이었다. 숙희와 경찰서까지 동행해 준 진 사장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 사장이 우리 사이에 자꾸 낀다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그녀는 매우 흥분되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일요일에 만나기로 하고 이게 뭐예요.”

 그렇게 노여워하고 놀란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존대까지 하는 말투로 보아 그녀의 감정 또한 극에 달한 듯했다.

 “리처드는 뭐고 달님이란 여자는 또 뭐예요?”

 숙희는 나에 대한 배신감으로 성이 나 있었다.

  나는 숙희와 만나는 동안 단 한 번도 리처드나 달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굳이 할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해서 득이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불쑥 연락을 받은 그녀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 사장과 동행한 것만 해도 숙희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노수 씨, 그동안 양 다리 걸쳤던 거예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치부될 것이 뻔해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왜 말을 못하는 거예요?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봐요!”

  한없이 초라하고 말없는 내가 불쌍했던지 보다 못한 진 사장이 숙희의 말을 막았다.

 “미스 정, 그만 하지. 미스터 강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야. 나중에 밖에 나가면 서로 풀 건 풀고……. 여기서 큰 소리 낸들 무슨 소용인가!”

  진 사장의 만류에 그녀가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숙희는 나의 불편한 심중을 알아챘는지 진 사장과 동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장님이 여기 조사과 경찰하고 친분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모시고 왔어요! 하도 어이없고 막막해서 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진 사장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되받았다.  

“미스터 강, 잘 부탁해 놨네. 별일 없으면 오늘 나올 수 있을 거야.”

  숙희의 일로 늘 신경이 쓰이던 진 사장이 힘들고 어려울 때 위안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건이 꼬여도 너무 엉망으로 꼬여 엉켜진 실타래를 풀길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수 씨,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실망했어요.”

  숙희는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하더니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일방적인 힐책과 원망만을 감내해야만 했다. 단지 내게서 느끼는 배신감을 삭히지 못하고 극도로 혼란스러워하며 토라진 채 떠난 그녀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녀가 떠난 뒤 나는 저절로 무릎이 꺾여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숙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걱정되기도 했고, 초라한 내 신세도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엎어져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이 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아버지처럼 쇳소리 나는 울음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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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끝섬




 무혐의로 경찰서를 나왔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세상에 발가벗겨져 내던져진  참담한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숙희의 결별 선언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숙희가 나로 인해 아파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아팠다. 숙희와의 관계는 평행선을 그리며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감히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정리되어 먼저 연락을 주기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일은 내가 숙희를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숙희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숙희가 떠난 뒤 그녀에 대한 간절함은 더 커졌고 유정숙이 떠난 뒤 숙희는 내 마음속에 더욱 선명해졌다.

  리처드는 유정숙의 사건을 빌미로 나를 해고할 만큼 옹졸하고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우호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리처드는 스탠드바의 여자를 보고도 유정숙에게 말하지 않은 무거운 내 입을 상당히 신뢰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유정숙으로 인해 무기력하게 보냈다. 유정숙의 잔영이 오랜 동안 머물러 서글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정숙이 영구차에 실려 벽제 화장터로 향하던 아침, 나는 전무의 지시를 받고 사무실에 갔다. 그녀의 진짜 마지막 길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만 그리움이나 슬픔을 더 빨리 시간 속에 흘려보낼 수 있다며 위안을 삼았다.

  잡을 수도 없고 잡혀지지도 않는 세월이 그렇게 또 흘러갔다. 시간은 더디게 슬픔과 그리움을 싣고 흘러갔다. 나는 우울한 날들을 매일매일 견디며 그러한 감정들이 고여서 썩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우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라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가발공장의 여위원장이 사망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학생들은 경찰과 맞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학생들은 최루탄을 먹으면서 열심히 돌을 던졌다.

  은애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은애의 남편 될 이가 어머니에게도 저돌적인 공세를 펼쳐 결국 항복시켰다는 소식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허락하긴 했으나 결혼식 당일까지 그녀 어머니의 노여움은 덜 풀린 것 같았다. 신부 측은  친지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였다. 신랑 측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신랑 측 하객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사랑을 쟁취한 신랑을 칭찬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신랑을 향한 박수도 열정적이었다.

  신부가 입장하고 예식이 시작되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애의 모습은 정갈하고 화사했다.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은애는 행복해 보였다. 은애는 자신을 향해 지극한 충성심을 보였던 신랑 옆에서 내내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폐백을 마친 은애가 신랑과 함께 피로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위가 장모를 업고 피로연이 벌어지는 식당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신랑의 등에 업혀 춤추듯 덩실거리는 은애 어머니의 얼굴에서 노여움이 다소 누그러진 빛이 나타났다. 남편을 자살로 보내고 나서 혼자 3남매를 키워낸 뚝심의 어머니는 그 순간부터 곧 신랑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은애는 신입 도안사와 식사를 하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진정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녀도 환하고 예쁜 신부의 미소로 화답했다.

 “요즘, 그 여자랑은 잘돼 가요?”

  정신없을 와중에도 은애는 내 근황을  묻는 여유를 보였다. 좋은 날 숙희와의 결별 소식을 꺼낼 수도 없어서 말을 얼버무렸다.

 “예에, 그럭저럭요. 결혼 정말 축하합니다!”

 “고마워요. 결혼할 때 꼭 연락 줘요.”

  나는 은애의 결혼식을 보고 정말  모처럼만에 편안해진 마음을 얻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한 후 친구처럼 지내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오후 시간을 어찌 보낼까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토요일 오후였으므로 남은 직원보다 퇴근한 직원이 더 많았다. 나는 딱히 할 일도 없는 입장이어서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유정숙이 떠올랐다. 오늘 은애가 신랑과 나란히 섰던 그 자리에 유정숙과 내가 서 있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소몰이 시절 양지 쪽 담장에 올라 앉아 유정숙을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우시장의 오후, 그날의 햇살도 오늘처럼 따사로웠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쬐던  때도 생각났다. 따사로운 햇볕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오롯이 잠이 쏟아지는 나른한 시절이었다. 아지랑이가 보일락 말락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춤추면 그것이 아지랑이인지 춤추는 인형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한동안 아지랑이를 바라보다가 눈을 떼면 왜 그토록 많은 금싸라기들이 반짝거리는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우리는 여럿이 몰려다니며 개구리를 잡아  장난하며 놀았다. 주먹 크기의 떡개구리를 잡아 뒤집어 놓고 하얀 배 위에 풀잎으로 십자가를 놓은 다음 그곳에 침을 뱉으면 얼마 후 개구리는 거짓말같이 되살아나곤 했다. 나는 늘 개구리 배 위에 침을 뱉어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개구리가 살아나기를 기원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끝내 살아나지 못하고 햇볕에 말라 쪼그라든 개구리를 보았다. 통통하던 개구리 배가 마른 풀잎처럼 작아진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개미 떼가 개구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개구리를 가지고 장난하지 않았다. 

 유정숙도 개구리가 살아나는 것처럼 어떤 주술의 힘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정숙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유정숙의 인생에 우시장도 리처드도 없애 버리고 그녀가 꿈꾸던 간호사의 길을 가게 할 수는 없을까? 우시장에서 보았던 유정숙이 창살에 스치고 지나갔다. 유정숙은 흐르는 세월 속에 옅어져 가기는 했어도 그렇게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참으로 떨쳐버리고 싶지만 유정숙은 늘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때마침 뒤통수에서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는 직원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은근히 신경 쓰였다.

 “네에, 지금은 안 계십니다. 아직 퇴근 안 하셨는데요. 예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죠.”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누구예요?” 

 “왜 있죠. 사장님이 만나는 여자. 그 여자 같아요. 이태원에 있는 술집 여자라던데. 노수 씨는 봤죠?”

 유정숙이 죽은 뒤 그녀의 자살이 리처드의 외도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졌다. 명동에서 봤던 그 여자가 이태원에 있는 술집 여자라는 사실도 은밀하게 퍼졌다. 그 여자였다. 유정숙을 두고 거침없이 외도를 하던 리처드의 여자였다. 이제는 대놓고  사무실에 전화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죠.”

  직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장례식 날 영구차가 벤츠라고 분위기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미친놈들. 죽은 사람 장례식에 벤츠가 무슨 소용이라고…….”

  직원이 유정숙의 장례식 아침 일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여러 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씁쓸했다. 다시 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환데요?” 

  직원이 나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수화기를 건네받자 민기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잘 있었냐? 나, 민기야.”

 “야, 참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야?”

 내가 너무 반갑게 전화를 받자 오히려 민기가 멋쩍어하는 느낌이 전화기로 전해졌다.

 “노수야, 너 충주 한번 내려와야 할 것 같다.”

 “충주는 왜?”

 “우시장에 니 어머니가 찾아 왔었어!”

 “어머니가?” 

  말문이 막히고 숨이 턱 막혔다. 삼키려던 침이 목구멍에 걸려 사레까지 들렸다. 다시 민기가 말을 꺼다.

 “다녀가신 지 꽤 됐어. 물어물어 니 아버지 산소도 찾아 가셨나봐. 우시장에서 너도 찾더란다.”

 “어떻게, 연락처는 알아 두었니?”

 “나도 오늘 우연히 얘기만 듣고 알았어. 벌써 한 달 전에 다녀 가셨다더라. 일단  내려와서 국밥집에 물어보면 어디 사시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알았어. 오늘 내려갈 테니까 저녁에 국밥집에서 보자.”

 “알았어. 저녁에 거기서 보자!”

 내 마음은 하늘을 찌를 듯  흥분되기 시작했다. 민기와 수시로 연락하며 고향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내왔던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그 끈이 실낱같은 어머니와의  재회를 가능하게 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가 왔단다. 끝섬에서 어머니가 왔단다. 어머니의  행방을 숨긴 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시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문만으로는 도저히 어머니의 거처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끝섬의 어머니가 수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끝섬은 벌써부터 소리 내어 음률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퇴근 전인 전무를 찾아가 휴가를 요청했다. 충주에 들렀다가 내처 끝섬까지 내려갈 참이었다. 나는 대뜸 하숙집에 들러 간단한 옷가지와 소지품을 챙겼다. 그리고 곧바로 충주로 향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되고 떨렸다. 열차를 갈아타는  시간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기차 대신 굳이 직행버스를 이용했다.

 차창 밖을 보았다. 눈동자에 들어오는 싱그러움이 여느 때와  다른 느낌으로 온통 가슴으로 밀고 들어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이름 없는 풀조차 얼었던 땅을 밀고 올라와 논두렁에 파릇파릇한 연녹색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나지막한 산 중턱 음지에 늦게 핀 진달래꽃이 간혹 눈을 유혹하고, 버드나무 가지는 지나는 바람과 유희를 즐기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바둑판처럼 정리된 논 여기저기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꼬마 아이들까지 동원된 모내기 모습이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더욱 흥분되게 만들었다.

  국밥집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민기가 나를 반겼다. 해장국 끓이는 냄새며, 먼지투성이의 미닫이 출입문은 내가 떠나올 때 모습 그대로였다. 한쪽 벽에는 국회의원이 매년 나누어 주는 열두 달짜리 달력도 연도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 벽면에는 손으로 쓴 어설픈 메뉴판이 연기 때를 뒤집어쓰고 걸려있었다 선지꾹, 해장꾹, 술꾹…….‘꾹’자는 여전히 ‘국’자로 바뀌지 않은 채였다.

  나는 민기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민기가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사발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한 모금에 털어 넣고, 숨을 죽였다.

 “이 사람이 그 언니 아들인가벼!”

  초로의 국밥집 주인은 민기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국밥집 주인에게 넙죽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자네 어머니가 나하고 나이 차이는 얼마 안 되는데 많이 늙어 보였네.”

  어머니는 한 달 전쯤 우시장을 찾아왔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몇 안 남은 주릅을 찾아 물어물어 행방을 찾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실망했다. 다행히 장례식에 참석했던 소장수 한 명을 만나 산소는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며 다녀와서는 많이 우셨지.”

 어머니는 산소를 찾은 후 사람을 사서 사초까지 했다. 무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어머니는 결혼 전 몸담았던 국밥집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딱해  보여 위로라도 할 요량으로 옆에서 몇 마디 물어도 전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눈물만 훔치다가 어렵게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아들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을 떠날 때 9살이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기억할 나이인데 전혀 행적을 알 수 없다며 많이 우셨다.

 다음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참에  야반도주했다던 소장수 정 씨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정 씨가 고향으로 돌아와 변두리 하천에서 벽돌 공장을 한다는 것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 씨한테는 우시장을 떠난 후로는 소몰이를 하던 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만을 들었다. 어머니는 다시 소몰이 아이들에게 아들의 행방을 알아보았으나 그 일을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진 터라 그조차도 실패로 끝났다.

 “어머니 몸이 많이 아파 보였네.”

  더구나 어머니는 무슨 병에 걸렸는지 할머니처럼 늙어 보였으며, 기운이 없어 보여 몹시 안쓰러웠다고 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 전날 밤,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주인아주머니에게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오해로 갈등이 생기자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부득이 고향 섬마을로 내려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곳에서 재혼을 했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재혼한 남편이 먼저 죽고 줄곧 혼자 살아왔다. 나의 눈동자에는 이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죽기 전에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 나선 것 같아 보였네.”

  나는 마침내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윗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흐느껴 울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서러움으로, 그리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점철된 어머니였다. 이제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아련해져 있는 내가 미웠다.

  훌쩍이는 나를 보고 주인아주머니는 혀끝을 찼다.

 “참, 자네 어머니가 소장수 중에 유 씨라는 사람도 찾던데.”

  아주머니가 불현듯 생각났는지 생뚱맞게 유 씨 이름을 들먹였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번쩍 든 정신에 유 씨 얼굴이 쏜살같이 스쳐갔다.

 “유 씨라뇨?”

  내가 놀라서 묻자 아주머니는 어머니에게 들었다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유 씨라는 사람 때문에 오해가 생겨서 자네 어머니가 고향으로 내려 갔다더구만. 자네 어머니 말이 결혼 전 국밥집에 있을 때 손님으로 드나들었던 것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오해했던 모양이여. 유 씨라는 사람이 입이 가벼워 사실도 아닌 것을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아버지가 크게 오해를 했던 모양이네. 죽기 전에 유 씨를 만나 따지고 남편과 대면시키러 왔는데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고 유 씨도 없다며 풀이 죽어 있었지.”

  어머니를 울게 만든 장본인이 유  씨였다니 그저 놀랄 뿐이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 씨의 가벼운 입놀림을 액면 그대로 믿고 어머니를 몰아붙인 아버지 또한 납득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간단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해를 해서 어머니의 항변도 묵살한 채 파경으로 치닫게 한 아버지는 참으로 못난 사람이었다. 그 끝은 주벽으로 치달았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하물며 아들인 나에게조차 함구하여 오늘날까지 이렇게 서럽도록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리움은 병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나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흐느껴 우는 내 어깨를 다독거리는 민기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따뜻한 민기의 손길이 곧 어머니 손길 같았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적어 주었다는 쪽지 한 장을 찾아와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들이 혹시 소전에 찾아오게 되면 전해 달라고 쪽지를 주고 갔네. 아마 거문도라는 섬에 사신다고 그러던데…….” 

  모서리가 구겨진 쪽지가 코끝에 닿을 듯 출렁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돼버렸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받아 든 나는 어머니가 써 주었다는 서툰 글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귀퉁이가 찢겨지고 구겨진 작은 쪽지에는 어머니 것으로 보이는 눈물 얼룩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어머니의 눈물은 종이 색깔보다 진했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 끝섬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끝섬의 주소였다.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어머니의 끝섬이 찢겨진  노트에 얼룩으로 메말라 있었다. 어머니의 얼룩에 내 얼룩이 떨어졌다. 얼룩은 또 얼룩이 되었다. 나는 얼룩져가는 쪽지를 보고 또 보며  한없이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민기에게 기대어 쓰러질 때까지 얼룩진 주소를 보고 또 보았다.

 

 

  이른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지난밤의 지독한 취기를 생각한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체력은 벌써부터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배 속은 아리고 울렁거렸다. 유 씨에게 따질 일 따위는 뒤로 미루고 끝섬에 가는 일이 더 절박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몹시 안 좋다니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끝섬에 내려가기 전 먼저 아버지 산소를  들러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찾아 끝섬으로 떠난다고 이야기하고 어머니에 대한 오해는 단순한 오해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했다. 땅속의 아버지가 내 말을 들을 수 있고 없고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명확하게 전달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아버지 산소는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봉분을 높이고 잔디를 곱게 심어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 떠나셨다. 그토록 미웠을 아버지의 무덤에 어머니는 온갖 정성을 얹어주고 떠나셨다. 무너진 봉분을 돋우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나는 차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봉분은 말이 없었다.

  나는 열차를 타고 어머니의 끝섬을 찾아 긴 여정의 길을 재촉했다.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출렁이던 월미도의 바다에서 끝섬의 바다로 향했다. 완행열차를 타고 조치원에서 갈아 타 온종일 달려 여수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거문도로 떠나는 여객선은 마지막 배였다. 내가 배에 오른 잠시 후 여객선은 고동소리를 내고 항구를 미끄러져 끝섬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갑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곳곳에 짝을 이룬 연인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명화를 찍어내고 있었다. 어느 관광 엽서에서나 봄직한 정겨운 그림들이 이곳저곳에서 연출되었다. 나와 숙희는 엽서 속에 없었다.

  여객선 주위를 맴돌던 갈매기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항구의 도시가 작아져 멀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어머니의 끝섬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객선은 몇 개의 섬을 드나들며 승객을 태우고 내려놓았다. 그때마다 주전부리를 파는 광주리 아주머니들이 마치 갈매기 떼처럼 몰려들었다. 광주리에는 마른 오징어며 커피나 음료수, 인절미나 간식거리가 하나 가득 담겨져 있었다. 승객들에게 하는 호객행위가 어쩐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배는 다시 고동소리를 뿜으며 끝섬을 향해 미끄러졌다. 촘촘히 떠 있던 섬들이 점점 멀어져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은 바람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그림과 소리를 담아내며 이동했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노을이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노을은 수천 장의 아름다운 명화를 수평선 위에 그려놓고 있었다. 수평선 멀리에는 하나 둘 작은 불빛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빛은 고향의 반짝이던  별과도 같았다. 바다 위의 불빛은 사라질  듯 꺼졌다가 다시 반짝이는 고향의 별빛처럼 수평선 위에 점점 더 많은 수를 놓아갔다.

  남해의 푸른 바다를 다섯 시간이나 핥고  지나온 여객선이 거문도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는 이미 캄캄해진 밤이었다. 세 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항구는 어떤 파도에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배 속과도 같은 명당이었다. 아름다운 항구였다. 항구에 정박한 선박에서 비추는  불빛이 바다에도 똑같은 크기의 데칼코마니 불빛을 잉태시키고 화려한 밤은 출렁이고 있었다.

 나는 덕촌리로 건너가는 나룻배가 끊어져  거문리에 머물러야 했다. 날이 밝아야 덕촌리로 건너가는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 뾰족한 도리가 없었다. 나룻배라고 해야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목선이지만 모든 주민들이 맞은편 섬을 이동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여인숙을 잡아 짐을 풀어 놓고 부둣가로 산책을 나왔다. 방파제에서 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기웃거리기도 하고, 고무 바구니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활어를 담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 옆에서 머뭇거리기도 했다. 멀리 등대에서 비추는 불빛을 따라 고개를 쉴 새 없이 돌려보기도 하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의 빠른 손놀림에 감동하며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신비로운 섬에 매료되어 부둣가를 거닐었다.

  늦게 여인숙에 들어왔지만 밤새 잠을 설쳤다. 날이 밝으면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또한 밤새도록 해안을 때리는 파도  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큰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귀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더 큰 울림으로 들려왔다. 그러나 그 크고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음률처럼 정겨운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하자 마침내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파도 소리에 몸을 실어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내 가슴속은 이미 어머니의  따듯한 체온에 감겨 있었다. 어머니의 품속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늘 따뜻했다.

 출항을 떠나는 뱃고동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뱃고동은 나의 늦잠을  빼앗아 아예 바다로 끌고 나가며 다시 한 번 큰 기적소리를 뿜어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조바심에 식사를 주문하고 먼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배달된 아침식사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여 구석으로 밀쳐놓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예에, 누구세요?”

  그릇을 가지러 온 주인이려니 생각하며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문이 덜컥 열렸다.

 “죄송합니다. 간첩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확인도 하기 전에 두 명의 정복 경찰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간첩 신고라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놀라지 마십시오. 신고가 들어왔으니 잠깐이면 됩니다.”

  경찰은 대뜸 소지품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넋이 나간 나는 보잘것없는 옷가지와 소지품을 정신없이 공개했다. 내 소지품을 꼼꼼히 확인한 경찰이 말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 어머니 찾으러 왔, 습니다.”

 “어머니가 여기 거문도에 계십니까?”

 “예에, 덕촌리.”

 “죄송합니다. 여기서는 가끔 있는 일입니다. 허위 신고도 많지만 그렇다고 조사를 안 할 수도 없습니다.”

  경찰은 너무 놀라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미안했던지 사뭇 친절해진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섬에서 발생했던 실제 간첩신고 사건을 설명해 주었다.

 “일본군에 징용되었던 돈 없는 무지한 노인이 있었죠. 포상금이 탐이 나 보지도 않은 간첩을 보았다고 신고를 했었습니다. 산속에서 간첩을 보았다고 해 수색을 했지만 간첩을 찾지 못했죠. 결국 항만청 배가 도착해 대대적인 폭격을 하기로  결정되자 그제야 거짓 신고임을 자백했어요. 그러나 노인을 벌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간첩이 나타났을 때도 간첩이 아닐  경우 문책이 두려워 주민들이 신고를 회피할까 염려되어서였죠. 결국 노인을 무죄로 풀어 준 일이 있습니다.”

  경찰은 실제로 거문도에 간첩이 여러 차례 침투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현지처까지 두고 내 집 드나들 듯 몇 차례 남북을 오가며 활동했는데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간첩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 총싸움이 벌어졌다. 나중에 합류한  간첩들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했으나 실패하자 동료 둘을 죽이고 자수한 간첩이 있었다. 그 간첩의 증언으로 산 넘어 ‘신추’라는 마을은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 죽은 간첩 둘은 관용을 베풀어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매장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이 주소는 뭡니까?”

  어머니가 써 놓은 주소 쪽지를 발견한 경찰이 물었다.

 “어머니 주소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 순경, 이 순경은 거문도 토박이지? 여기는 덕촌리 귤 밭 주소 아니냐?”

 “예, 맞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보름 전인가 혼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비어 있어요.”

  하급자의 보고에 상급자가 상황을 정리하여 내게 다시 말했다.

 “귤 밭 할머니가 어머니신 모양인데, 보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는군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순간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그리워하며 어렵게 찾았던 어머니였는데 불과 보름 전에 이 세상을 떠나셨다니…….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머릿속은 순식간에 빗자루로 쓸어버린 듯 말끔하게 비워져 버렸다.

  어머니는 내가 보고 싶어 그리운 세월을 보내다 우시장을  찾았으리라…….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끝섬의 어머니는 옛날의 어머니 그대로 나를 반기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릴 거라는 상상이 전부였다.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국밥집이며 우시장 곳곳을 헤매며 나의 행적을 찾아다녔을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정신이 혼미해져 넋을 잃었다. 아무런 물음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 순경이 돌아가신 할머니하고 뭐가 되지 않아?”

 “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하고 먼 친척뻘 됩니다.”

 “그럼 난 먼저 갈 테니, 이 순경이 여기 이 청년 좀 진정시키고 돌아와!”

 “예에, 알았습니다.”

  상급자는 민망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내가 진정될 것을 기다리는 듯 한참을 침묵하던 하급자가 서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급자 순경은 내 어머니에 대한 모든  정황과 집안 사정을 토박이답게 너무나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새 남편이었다던 할아버지와 먼 친척 관계라며 집안 내력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는 거문도 출신이었다. 거문도가 영국군에 의해 점령당했던 시기가 있었다. 2년 동안 섬을 점령한 영국군은 비교적 신사적이었다. 영국군은 주민들과도 순조롭게 어울리고 마을 처녀가 지나가면 정중히 인사도 했다. 그러나 영국군이 철수하고 난 얼마 후 태풍을 피해 잠시 스쳐간 러시아 상선은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육지에 내린 러시아인들은 지나가는 처녀의 댕기 머리를 잡아끌기가 일쑤였다.

 한번은 어떤 선원이 물 긷는 처녀의 댕기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물동이를 던져 상처를 입었다. 이에 러시아인이 화가 나서 마을을 부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대포를 들이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산으로 피신해서 며칠을 살았다. 사건의 당사자인 처녀가 하는 수 없이 사과하기 위해 상선으로 다녀오고 나서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처녀는 열 달 후 혼혈 아이를 낳았다.

 그 처녀가 바로 어머니의 증조할머니라고 했다. 섬사람들은 할머니의 딸이 러시아선장의 자식이라고 단정 지었다. 다행히 본토 유럽인과는 달리 머리가 검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아이가 커서 섬을 지나며 드나드는 뱃사람의 아이를 낳고, 다시 아이가 커서 또 뱃사람의 아이를 낳은 것이 지금의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거문도가 싫다고, 주민들의 눈총과 따돌림이 싫다고 육지로 나갔다. 비록 섬사람과 뱃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당사자인 어머니에게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와도 같다며 섬을 떠났다. 그리고 소식이 끊긴 지 20년이 지나 어머니는 다시 거문도로 돌아왔다. 거문도로 돌아온 후 마땅한 일이 없어 여객선에서 오르내리는 손님에게 주전부리나 인절미를 팔며 생활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여객선이 거문도로 오면서 드나드는 섬마다 몰려들었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가 연명한 생계 수단이 여객선에서 보았던 광주리 아주머니들이라니…….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주전부리를 사라며 구걸하듯  외치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그 일을 그만둔 것은 두 아들을 태풍에 잃고 고기잡이를 팽개친 외로운 남자를 만나고 난 뒤부터였다. 그 남자는 한동안 폐인처럼 살다가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그 후로 두 분은 귤  밭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산 중턱에 거문도에서 잘 될지도 모르는 귤 밭을 처음으로 개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많이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 맺어진 두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귤 밭에 묻으며 고집스럽게 땅을 개간했다.

  첫 과실을 수확했을 때 기쁨도 잠시 남자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3년 후 어머니도 병을 얻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버리자 남자가 묻힌 귤 밭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그것이 불과 보름 전의 일이었다.

  토박이 순경은 아직도 무덤은 황토 흙 그대로일 것이라며 말했다.

 “그래도 기운 내십시오.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양지 바른 곳에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들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토박이 순경은 내 손을 꼭 잡으며 같이 슬퍼해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성의에 답했다. 그는 귤 밭의 위치와  간첩 사건으로 지금은 폐허가 된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신추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방을 나갔다. 나는 경찰이 돌아가고 난 후로도 한참을 엎어져 울었다.

 ‘아아, 어머니! 나는 더는 살아야 할 이유도 목적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외롭고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얻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나는 산다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백짓장처럼 하얀 마음으로 세상의 얼룩을 지우고 세상과 이별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어머니에 대한 희망도 산산이 부서지고 숙희와도 이별한 마당에 이제 내게 남겨진 것이라곤 어느 것 하나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미 자살을 계획했다.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 무덤이 있다는 귤 밭을 먼저 찾았다. 작은 해수욕장을 지나 어머니가 다녔을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다시 원두막을 지나 무덤을 찾았다. 무덤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귤 밭 양지쪽  한가운데 가지런히 모셔져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은 온통 무덤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무덤에 떨어진 햇살이 나의 가슴에 전율로 다가왔다.

  나는 무덤에 엎어져 흐느꼈다. 어머니는 수평선 너머 먼 바다를 보며 무척이나 나를 그리워했으리라. 비로소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바다를 굽어보며 누워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자 먼 길을 다녀가신 후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를 안고 누워계신 것은 아닐까. 강요당한 인생이 어긋나기 전 내가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조차 묻어버린 것은 아닐까. 무덤 위  햇살은 바람에 흩날리고 어머니의 그리움은 눈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에게 큰 절을 하고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세상을 버릴 마지막 장소를 찾아 거문도 등대로 걸음을 옮겼다. 바다로 뛰어내릴 장소라면 최대한 높고 절벽이 가파른 등대가 있는 곳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늘을 향해 뛰어내리리라 마음먹었다.

  귤 밭을 내려와 등대로 향하는 해안 길을 지나고, 동백나무로 우거진 동백 숲 터널을 지나자 마침내 하얀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등대 앞의 수평선은 장관이었다. 하늘과 바다는 푸른 코발트빛으로 시야를 압도했다.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맞닿아 있는 끝없는 수평선이 사방으로 등대를 에워싸고 있고 고기잡이배는 저 멀리 평화롭게 점점이 떠 있었다. 마침 등대지기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를 관광객으로 착각했는지 즐거운 여행이  되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이런 등대에 있으면 고독하지 않으세요?”

 “고독? 고독이란 이미 남의 것이 된지 오래요. 배부른 사람들이  팔자 좋아서 하는 투정이죠. 등대에 몇 년 만 근무하면 다 미쳐서 도망칠 사람들이요.”

  등대지기는 무척 지치고 힘들어 보였는데, 오히려 사람의 방문이 귀찮다는 눈치였다. 그는 거문도로 오기 전 인천 항만청 소속의 등대지기만 있고 사람은 살지 않는 섬에서 전근 왔다고 했다. 사람이라곤 한 달에 한 번, 항만청에서 식자재 가지고 오는 배가 유일한 방문객이었다고 했다. 그런 등대도 있는데 어디 감히 고독을 말하느냐, 그래도 이곳은 양반이다, 하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관사로 들어갔다.

  나는 등대지기의 눈길을 슬금슬금 살피며 등대 끝자락 절벽까지 갔다. 그리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바다가 발끝 아래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현기증과 함께 싸늘한 긴장감이 등줄기로 휘몰아쳤다. 눈을 감았다.

 “이보슈?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요?”

  언제 왔는지 등대지기의 목소리가 등 뒤에 날아와 꽂혔다.

 “그곳에서 뛰어내리려면 아예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괜히 사람만 병신 되기 십상이요!”

 종종 있는 일인 듯 태연한 등대지기의 목소리에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곳은 뛰어내려 봐야 데굴데굴 굴러 언덕에 떨어질 뿐이오. 태종대 생각하면 오판이지…….”

 사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향해 새처럼 날다 떨어지는 자살을 꿈꿨다. 세상을 버린다면 적어도 그런 환상적인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사치스러운 자살을 꿈꿨던 것이다. 등대지기 앞에서 나는 가소로운 몽상가에 불과했다.

 등대지기는 거문도 등대는 바다 속으로 뛰어내리기에 그리 적절하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가파른 절벽이 아니어서 뛰어내리다가 바다가 아닌 둔덕 바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십중팔구 불구만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며 내 의지를 일언지하에 꺾어버리고 말았다. 내 얼굴을 보니 아직 자살  같은 것은 할 사람이 아니라며 오히려 코웃음까지 쳤다. 등대지기는 나의 자살결행 의지를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나는 실패했다. 자살하기에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었고, 산다는 것에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인지 모르는 아쉬움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등대지기는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 마지막 마음을 붙잡고 늘어지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 다시 어머니 무덤을 찾았다. 귤 밭은 괴괴한 공포감마저 감돌았다. 나는 오전에 가져와 봉분에 뿌리고 무덤가에 그대로 남겨 놓았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던 탓에 몸은 금방 무너져 내렸다. 온몸이 으슬으슬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어머니가 기거하던 귤 밭 작은 집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공허한 그 집에서 어머니의 체취를 더듬었다. 어머니의 슬픔이 가득 숨겨져 있는 초라한 부엌이며, 흙 때 묻은 손잡이, 썩은 귤 조각이 뒹구는 헛간 창고, 작은 바람에도 요란하게 흔들리는 창문을 어루만지며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내내 울컥울컥 훌쩍였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재혼한 남자가  떠난 후 3년 동안을 외딴집에 홀로 있었다고 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아린 가슴을 어루만져줄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고 체취만이 남아 있었다.

 늦은 시각, 마침내 수렁에 빠진 듯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멀리 항구에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 잠을 깼다. 날은 이미 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고 고깃배는 서로 꼬리를 물고 항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뜬금없이 교회로 발길을 옮겼다. 신자도 아니면서 교회 종소리에 이끌려 걸음이 옮겨지는 신기함에 놀라면서도 그저 발 가는대로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곳에서 무언가 울부짖고 싶은 지독한 갈증 때문인지도 몰랐다.

  교회는 작고 아담했다. 두세 명의 신도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새벽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때마침 들어가는 여신도는 문 앞에 서성이는 나를 힐끗 곁눈질로 살피고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후 나이 든 여신도가 나왔다. 나는 교회 안으로 안내되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평온한 목소리를 가진 여신도의 물음에 나는 눈물부터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며 아픈 내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여신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나는 또 놀랐다. 교회를 몹시 싫어했던  아버지 앞에서 단 한 번도 교회를 말한 적이 없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니…….

 “아마도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가 아드님을 이곳으로 이끌었나 보군요. 어머니는 처음부터 독실한 신자는 아니셨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소극적이셨는데  병을 얻고부터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보니 그것이 모두 아드님을 위한 기도였군요. 어머니는 아픈 와중에도 매주 쉬지 않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를 나왔습니다.”

  여신도는 어머니를 회고하듯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신도의 안내를 받아 난생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갈구였다. 어머니가 내게 기도하였듯 나 또한 어머니에게 간절한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교회를 나온 나는 간첩 사건으로 집단 철거가 되어 폐허가 되었다는, 어머니의 고향인‘신추’라는 섬마을을 찾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두 번째 자살이 계획되어지고 있었다. 최소한 어머니가 뛰어놀던 신추에서의 자살이라면 덜 외로울 듯싶었다. 어머니의 외로움은 내 외로움과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덕촌리 마을에서 뒷동산 오솔길을 지나 산 정상을 넘었다. 어머니가 수없이 넘어 다녔을 구불구불한 길을 더듬으며 내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혼혈이라는 섬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다녔을 작은 발자국이 아직도 구불구불한 길에 서글프게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저린 가슴이 구불부불한 길에 떨어져 흩어졌다.

  간첩 사건의 충격과 집단 철거라는 고통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신추의 잔해는 살벌할 만큼 조용하고 공허했다. 돌담 틈에는 작은 대나무들이 애써 기생하고 있었고, 거친 바닷바람에 말라비틀어진 이끼가 부식된 쇠붙이처럼 표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바닷가 마을은 집집마다 경계였던 돌담만이 미로처럼 외롭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돌담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성곽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성싶었다. 신추는 마치 마추픽추의 축소판처럼 벌거벗고 살던 태고인은 멸종해 버리고 오래전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을 전해 주고 있었다.

  나는 키만큼 높은 돌담의 중압감에  불현듯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폐허에서 엄습하는 싸늘한 공포가 머리카락을 하늘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간첩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는 마구 뛰기 시작했다. 맞물고 돌아가는 돌담에 짓눌리는 위압감이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돌담이 좁혀지는 착각 때문에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곧 앞이 훤하게 트였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뛰어와 얼굴에 달라붙었다. 나는 지나온 통로를 되돌아보았다. 신추의 굴속 같은 돌담은 서너 걸음 뒤에 끝나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뛰어놀았을 해변으로 내려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기에도 섬뜩한 까만 바다 바퀴벌레들이 자갈 사이로 혹은 바위틈으로 우르르 숨어버렸다. 그러나 놈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곧이어 공격을 취하는 몸짓과도 같았다. 벌레들이 한꺼번에 엉겨 붙으면 나 하나쯤은 뼈도 남기지 않고 갉아 먹을 것만 같았다. 눈에 띄는 엄청난 숫자만 하더라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으므로 몸이 저절로 움츠려졌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놈들을 피해 주변을 살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멀리 배가 보일 듯 출렁이고, 파도가 달려와 순식간에 발밑을 때리고 도망쳤다. 하얀 포말을 이루며 도망친 파도가 햇살에 반사되어 무지개처럼 색채를 뿜어냈다.

  빨주노초파남보!

  어린 어머니와 놀던 어머니의 무지개였다. 빨주노초파남보로 보이지 않던 고향의 무지개가 비로소 신추에 있었다. 그 무지개 속에 조그만 고동 한 마리가 바위틈으로 밀려와 뒤집혀지며 곤두박질쳤다. 파도가 떠나자 고동은 재빨리 몸을 바로 세우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그러나 파도는 사정없이 고동을 다시 뒤집어 놓았다. 문득 뒤집혀진 고동 속에 작은 게의 앞발이 보였다.

  놈을 잡았다. 놈은 재빨리 몸을 움츠리고 기형 손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놈이 기어 나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놈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금방 기어 나올 듯하다가 좀처럼 얼굴을 내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놈을 버리고 더 큰 놈을 잡았다. 이번에도 놈은  손을 숨겨버렸지만 나는 아예 처음부터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놈도 지루할 만큼 뜸을 들였다. 나는 놈을 바닷물에 담갔다가 물을 가득히 담아 꺼내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놈이 손톱 가까이로 차근차근히 탐색하며 기어 나왔다. 거의 다 나왔을 때 번개처럼 덮쳤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고  나서 비로소 놈의 감촉을 느낄 수가 있었다. 놈의 집게를 잡아당겨 보았으나 버티는 힘이 제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힘이 탁 멈추며 놈의 허리가  끊어지고 상체가 빠져나왔다. 놈의 하체는 끝까지 집을 지킬 속셈이었는지 깊숙이 들어가 버리고 아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몸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두 촉각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져 손바닥에 누워버렸다. 놈의 몸은 분명 하나의 동체(同體)였었다. 이제는 서로 분리되어 죽고 말았다. 단지 나의 호기심 때문에 끝까지 지탱해 보려던 힘도 허망한 일이 되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놈을 바다에 버렸다. 이제 버려진 집게처럼 내 몸도 바다에 그렇게 버려야 할 일이었다.

 나는 바위 끝에 우뚝 몸을 세웠다. 이윽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동자에 숱한 영상이 투영되었다. 유정숙이 투영되었고, 김은애가 투영되었고, 정숙희의 영상 위에 어머니의 영상이 겹쳐 투영되었다. 마음은 비로소 한없이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이제 오래전 꿈속에서처럼 바다 위를 걸었던 어머니의 뒤를 따라 수면을 걷고 어느 순간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쯤 헤엄치면 그만이었다. 나는 바람 따라 몸이 앞뒤로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지러움이 엄습하여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새까만 바퀴벌레들이 숱하게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내 앞에서 쏜살같이 도망쳤던 바퀴벌레들이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진 줄 알고 다시 모여들었던 모양이었다. 소스라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내가 버린 집게는 바퀴벌레의 먹이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죽어서 바다에 버려지면 바퀴벌레에 의해 살점이 뜯겨지고, 새까맣게 달라붙어 눈으로 들어가 입으로 나오고 할 것이다. 낙지며 불가사리들은 온몸에 엉겨 붙을 것이다.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제일 먼저 갈치가 달려들어 눈을 먹어 치운다고 했다. 소름이 온몸을 훑고 경직시켰다.

  자살은 또 실패였다. 아니, 완전한 실패인지도 몰랐다. 등대지기의 훼방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다시 찾은 어머니의 고향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음률과도 같다던 신추의 파도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린 어머니에게 신추는 과연 어떤 그리움으로 비쳐졌을까. 돌담 사이를 뛰어 다니며 놀던 놀이터가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 맑고 깨끗했을 바닷가는 바퀴벌레에게 점령당했고 사람의 체취는 흔적으로만 남았다. 어머니는 한때 아름다웠던 이 바닷가에서 숱한 서러움을 파도에 실어 멀리멀리 흘려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있어서 파도 소리는 음률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끝섬이 간직한 진정한 음률을 비로소 온전히 받아 마시고 있었다. 

  파도는 다시 발목을 때리고 멀리멀리 달아났다. 파도는 나의 상처를 핥고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다시 가버리기를 반복했다. 어머니의 끝섬은, 어머니의 음률을 품고 언제나 그곳에  그렇게 출렁이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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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장구벌레의 우화(羽化)




 폭풍주의보가 발령되었다. 폭풍은 벌써 사흘째 여객선의 발을 묶어 놓았다. 태풍은 섬 전체를 온통 삼켜 버릴 듯 미친 듯이 달려와 무섭게 비바람을 뿌렸다. 잔잔하고 황홀하기기만 했던 항구가 피항선으로 홍수를 이루고, 선박에서 내린 뱃사람들이 사흘 내내 섬마을의 술집들을 모조리 점령하였다. 나 또한 그들처럼 폭풍주의보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발이 묶여 있는 처지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동안 내 마음도 줄곧 폭풍이었다.

  그 뱃사람들 중 누군가는 내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남자, 그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서글프게 했다. 그 후손도 조상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 또한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속을 할퀴었다.  

  가지고 온 여비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인숙에 처박혀 두문불출 술만 마셨다. 그렇게 술만 마시다가 쓰러져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면 싶었다. 어머니가 생각나고, 유정숙과 은애와 숙희가 생각날 때마다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내게 술을 목구멍에 쏟아 붓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는 동안 내 마음은 형편없이 피폐해져 갔다. 마음속에는 이미 서러움보다는 유 씨나 리처드를 향한 노여움이 더 많이 웃자라 있었다. 유정숙을 방관한 것은 물론 내 어머니를 수렁에 빠뜨린 유 씨가 노엽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리처드가 혐오스러웠다. 넋 놓고 땅을 빼앗겼다는 무기력했던 은애 할아버지와 산사태 후유증으로 아픈 부인을 두고 외도를 한 숙희의 아버지를 만나 숙희의 슬픔이 무엇인지도 알려야 한다고 되뇌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수없이 노여움을 곱씹으며 사흘 내내 술과 함께 바닥에 꼬꾸라지고 또 꼬꾸라지며 지냈다.

  그날 밤 늦게 술에 절어 엎어져 있을 때 교회 목사가 여인숙으로 찾아왔다. 목사는 내게 어머니의 소식을 알려주었던 여신도와 함께였다. 술에 절어 있는 내 몰골을 보고 측은했던지 여신도는 동정어린 어조로 말했다.

 “젊은 양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럴수록 더 힘을 내야죠.”

  고개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누구에게든 보이고 싶지 않았던 초라한 반항이었다. 그러나 굳이 목사까지 동행하며 여신도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자못 궁금해졌다.

  술병으로 어지럽던 자리를 대충 정리하자 목사는 조심스레 바닥에 앉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남겨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소식이었다. 갑자기 술이 번쩍 깨이며 동공이 열렸다. 전부 사라지고 없을 것만 같았던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다니 가슴이 복받쳤다. 유언이라니, 무언가 남겨 놓았다니, 어머니가! 여신도는 어머니에 대한 어떤 비밀이 있기에 목사까지 대동하고 나를 찾아왔는지 더욱 궁금했다.

 “귤 밭의 소유권을 저희에게 맡기셨습니다. 10년 동안 아드님이 안 나타나면 교회 재산으로 헌납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아드님이 찾아오셨으니 주인에게 돌려 드려야죠.”

  목사는 간결하게 결론부터 말했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다. 혼란스러웠으나 가슴은 벅차올랐다. 단순히 귤 밭이어서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땀 냄새와 체취가 녹아있는 곳을 내게 남겨놓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절명의 벼랑 끝이라도 어머니의 아련한 냄새를 호흡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있는 곳이면 족했다. 울컥 응어리진 그리움이 복받쳐 눈물로 치받혔다.

 “그래도 한 가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납득이 되도록 아드님임을 증명하셔야 할 텐데 어떻게 하죠?”

  목사의 말에 퍼뜩 뇌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민기가 정성스럽게 간직했다가 돌려주었던 보따리에 들어있던 얼룩진 가족사진이었다. 거문도에 내려오면서 어머니를 만나면 그 사진을 함께 보려고 소중하게 간직해두었던 것이었다.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사진을 찾아냈다.

 “오래된 사진이군요!”

  사진을 받아든 목사가 이리저리 돌려보며 나를 확인했다. 목사는 여신도에게도 확인하라는 듯 사진을 건네주었다. 사진을 확인한 여신도는 아들이 틀림없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가 말했다.

 “아드님이 맞습니다. 귤 밭은 앞으로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처리하죠. 구천 평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든 저희와 의논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거문도로 오시게  되면 저희 교회에도 열심히 나오시구요.”

  목사와 여신도는 나를 위해 기도까지 해주는 은혜를 베풀고 돌아갔다.

  아버지가 교회를 싫어하게 된 원인은 어머니와는 무관했다. 하던 일을 접고 소장수를 하게 만든 사기꾼이 지독한 교회 신봉자였다. 작은 일 하나로 비롯된 아버지의 편협한 생각은 외골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틈에서 교회라고는 문 앞에도 가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안식처는 교회가 되어 주었다. 거문도의 목사와 여신도가 내게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고 난 뒤 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꺼이꺼이 우는데 아버지처럼 쇳소리가 목구멍으로 튀어 올라왔다. 숙희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그녀와 함께 귤 밭으로 내려올  것이다. 숙희가 동의만 한다면 어머니의 뒤를 이어 귤 밭을 가꾸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치열한 회색 도시의 초라한 둥지를 버리고 광활한 바다를 벗 삼아 행복을 가꾸리라. 어머니의 음률을 내내 호흡하며 진정한 음률의 의미를 만끽하리라. 아아, 어머니! 나는 밤새 지쳐서 잠들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설움이  진정될 때까지 얼마를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폭풍 나흘째 아침을 맞았다. 바람이 조금은 힘을 잃은 듯했다. 나흘씩 바다와 섬을 유린했으니 힘이 빠질 만도 한 일이었다. 아침 8시를 기해 폭풍이 해제된다고 하여 발이 묶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선착장으로 몰려들었다. 비록 폭풍은 해제될 예정이라지만 바람은 완전히 잦아들지 않았고 파도 또한 여전히 거칠었다. 여객선에서는 폭풍이 완전히 가라앉은 후에 항해를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앞서 바다로 뛰어든 화물선을 보고 용기를 냈는지 출항하기로 결정되었다.

  며칠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승객들이 마침내 하나 둘 승선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아직 출항하기에는 거센 바람이라며 망설였고, 더러는 바쁜 일정이 있는지 빨리 출발하자고 채근하며 수선을 떨었다. 나는 바닥난 여비도 여비였지만 하루 빨리 상경하여 숙희를 만나고 싶은 조바심으로 승선을 택했다.

  여객선은 앞서 출항한 화물선처럼 이윽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파도는 예상보다 거세었다. 여객선이 섬을 벗어나자 무지막지한 파도가 옆구리를 수없이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 물기둥의 위력은 3층 높이의 배를 훌쩍 뛰어 넘어 반대편 선실 창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였다. 생각보다 거친 파도의 위력에 놀란 선장과 갑판장이 한바탕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출발하지 말자던 갑판장의 의견과 출발을 결행한 선장이 서로의 잘잘못을 탓하는 수위로 보아 결코 가볍게 볼 만만한 파도가 아닌 듯싶었다. 제멋대로 출렁이던 여객선의 뱃머리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쳤다. 선체가  45도로 치솟으며 여객선이 파도의 끝선에 올라탔다.

  육중한 여객선까지 손쉽게 밀어올린 파도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하강했다. 그 파도의 속도보다 끝선에 올라탔던 여객선의 하강 속도가 더 느렸다. 여객선과 수면 사이에 커다란 공간이 생겼다. 갑자기 생겨난 허공의 높이만큼 여객선은 수직으로 낙하했다. 여객선의 앞뒤가 다시 45도로 뒤바뀌었다. 그 충격으로 천장에 있던 형광등이 선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박살났다. 

  형광등의 파열음이 귀를 찢었다. 잔뜩 웅크리고 몸을 사리던 승객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실은 단박에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도는  여객선의 뱃머리를 치솟게 하고 수직으로 팽개치기를 반복했다. 왼쪽 구석에 모여 있던 승객들이 오른쪽 구석으로 한꺼번에 처박히면서 남녀노소가 한바탕 엉켜버렸다. 낯선 남자의 아랫배에 처박힌 여자는 부끄러워 얼굴을 바닥에 찧었다. 구석 모서리까지 굴러가 오그라든 할머니는 비명조차도 턱에 걸려 버렸다. 아장아장  걷던 어린아이는 공처럼 바닥을 굴러가  처박혔다.

  나는 가까스로 잡은 기둥을 뿌리라도 뽑을 듯 매달렸지만 몸은 이리저리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위험해진 여객선의 운명에 따라 승객들은 흔들리는 짐짝에 불과했다. 선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승객들이 하나 둘 배 속에 있는 오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객선은 죽으나 사나 앞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배가 지그재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90도로 부딪히며 항해하다가는 뒤집힐 위험이 있어 45도 각도로 항해하며 파도의 충격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되돌아가려고 배의 방향을 틀다가는 그대로 전복되어 물고기 밥이 되기 십상이라고 했다. 적어도 다음 정착지인 초도까지는 몇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다. 여객선이 침몰하면 수백 명의 사람이 수장되어 언론에  대서특필될 것이다. 가족들이 구조본부로 몰려와 통곡하고 생존자 수색으로 며칠 내내 바다가 시끄러울 것이다. 하늘에는 헬기가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군함까지 동원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대신하여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곧 잊혀 지겠지. 세월은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다만 숙희가 사망자 명단의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이라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려준다면 덜 외로울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초라한 전부였다.

 여객선은 참으로 오랜 시간을 요동치며 항해했다. 나는 지독한  뱃멀미에 지쳐 마치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미 쓴 물까지 모두 입으로 튀어 올라와 배 속이 텅 비어 버렸다. 똥물까지 치미는 기나긴 항해 끝에 다행히 배는 초도 항에 닿았다. 객선이 부두에 닿자 거센 비바람을 헤집고 광주리 아주머니들이 여지없이 몰려들었다. 여객선에서 일어났던 혼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하나라도 팔아야 생계가 이어지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지독한 뱃멀미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았지만 궁색한 주머니를 털어 이것저것 꽤 많은 주전부리를 샀다.

  잠시 쉬던 여객선은 다시 육지를 향해 출발했다. 멀미에 지친 몇몇 사람은 종착지까지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초도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광주리 아주머니들이 맨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팔고 남은 물건을 주섬주섬 정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의 지친 모습에서 문득 어머니가 보여 떠나온 끝섬으로 차라리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폭풍을 헤치고 지나온 어머니의 끝섬은 비안개에 파묻혀 이미 보이지가 않았다. 끝섬은 자욱한 안개 속에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 터였다.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위세는 약해졌지만 파도는 여전히 배를 뒤흔들었다. 여객선은 그렇게 평소보다 긴, 무려 열 시간을 파도에 시달리며 치솟고 추락하고 뒤뚱거리다가 항구에 도착했다. 여수항의 하늘은 바다와는 달리 언제 폭풍이 있었냐는 듯 질투 날 정도로 맑게 개어 있었다. 이미 태풍의 끝자락까지 육지에 상륙하여 생을 마감하고 쉴 곳을 찾아 북상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폭풍이 모든 찌꺼기를 훑고 지나간 하늘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청명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 부두에 내리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숙희를 생각한다면 쓰디쓴 입맛과 현기증에 비틀대더라도 여객선에서 반드시 내려야만 했다. 땅이 꺼지도록 심호흡을 하며 하선하는 승객들 틈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발끝이 땅에 닿자 예상치 못했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선했다. 상큼할 뿐만 아니라 박하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머리가 환하게 고요해졌다. 땅 냄새를 흡입하고는 거짓말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에 스스로도 놀랄 뿐이었다. 마치 몸속의 엄청나던 응어리가 빠져나간 듯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텅 비어 어질어질하던 몸 상태까지 갑자기 정갈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몸속의 찌꺼기가 모두 배출되고 태초의 흙냄새로 가득 채워진 신선한 기분은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듯 신비한 기분이었다. 에덴동산에 떨어진 아담의 기분이 이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깨를 뒤로 젖혀 맘껏 하늘을 빨아들였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찌꺼기를 툴툴 털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갑자기 식욕이 당기기 시작하고 갈증이 복받쳤다. 울렁이던 배 속도 잠잠해지고 정신이 맑아져 숙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욕구마저 솟구쳤다. 비로소 그녀에게 무릎 꿇고 엉엉 통곡이라도 하며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그녀가 용서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는 그녀를 기다릴 수도 기다려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압박해 왔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 일은 족히 넘은 시간인 듯했다.

  전화는 진 사장이 직접 받았다. 끈적끈적한 진 사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 하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숙희 앞에서 그런 일로 괘념할 이유가 없었다.

 “사장님, 숙희 씨 좀 바꿔 주세요!”

  내 목소리는 전과 다르게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미스터 강, 미스 정 만난 것 아니었어?”

 “예에? 무슨 말씀이신지?”

 “이틀 전에 자네 만나러 간다고 했네. 무슨 끝섬인가에 간다고 해서 휴가 보냈는데, 길이 어긋났나?”

  내가 놀라서 물었다.

 “끝섬이라뇨?” 

 “전국이 며칠 내내 태풍이 올라온다고 어수선했는데, 갑자기 자네 사무실을 다녀오고는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휴가를 내달라는 거야. 자네 만나러 간다고 하면서 무슨 섬이라고 했는데……. 끝섬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야. 미스 정이 자네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진 사장의 말을 유추해 보면 숙희가 나를 찾아 사무실까지 갔다. 사무실을 찾아가 내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끝섬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태풍 때문에 상경 일정이 늦어져 거문도에 있다는 전화를 사무실에 해 놓은 것이 그녀에게 끝섬의 위치를 알게 해준 듯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숙희의 노여움이 풀린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그렇게 토라진 후 그녀 또한 가슴앓이를 했다는 반증이었다. 숙희가  내 사무실을 찾아가 끝섬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비로소 그동안의 체증이 명경처럼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미 여객선을 타고 거문도로  떠났다면 길이 어긋나도 한참을 어긋나 있을 터였다.  급히 여객터미널 사무실을 찾았다. 여객선 승선자 명단 중에 숙희의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급했다.

 “아저씨, 어제나 오늘 중에 거문도로 떠난 여객선이 있었나요?”

 “어제, 오늘?”

 “예에, 승선자 중에 사람 좀 찾으려구요!”

 “며칠째 거문도는 배가 뜨지 않았어. 거문도에서 방금 들어온 배가 하나 있는데! 미친놈들, 그 태풍에 배를 띄워. 큰일 날 뻔했어! 거문도는 태풍이 끝났으니까 내일은 배가 뜰 거야!”

 터미널 사무원은 태풍을 무릅쓰고 거문도에서 출발했던 여객선이 무사히 도착한 것만이  천만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해 주었다. 나 또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문도행 여객선이 며칠째 뜨지 않았다면 다행히 숙희는 거문도로 떠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숙희는 지금 여수 어디쯤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연락할 길은 막연했다.

 다시 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희에게 전화라도 오면 내 근황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사장님, 저 미스터 강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다시 전화 드렸어요.”

 “어, 미스터 강 잠깐 기다려 봐. 미스 정, 방금 전에 들어왔네. 자네들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나 보군!”

  진 사장이 숙희를 바꿔주었다. 나는 다시 또 흥분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그녀가 다시 내 전화를 받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그 어느 과거보다도 가슴이 뛰었다. 내 심장은 바다를 건너온 폭풍보다도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친 듯 쉬어 있었으나 나를 몹시 기다린 목소리였다.

 “왜 이렇게 늦게 전화했어, 많이 걱정 했잖아.”

  숙희의 목소리는 애절했다. 그동안 있었던 반목의 과정을 모두 무시한 채 대뜸 힐책하는 목소리로 보아 그녀는 나를 아프도록 용서하는 것 같았다.

 “숙희 씨, 정말 미안해!”

  울컥 치미는 침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아니야, 내가 더 미안했어!”

 “그런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노수 씨 만나러 사무실에 찾아갔었어. 거기서 얘기 듣고 여수까지는 갔었는데, 태풍 때문에 끝섬에는 못 갔어. 광주 집에 들렀다가 방금 올라왔어. 그런데 지금 어디야?"

 “여수.” 

 “태풍 때문에 배가 없다던데 어떻게 나왔어?”

 “태풍 뚫고 겨우겨우 나왔어. 지독한 풍랑이었어.”

 “라디오 들어서 알고 있었어. 그런데 어머니는 잘 만났어?”

 “…….” 

 “왜 무슨 일 있었어?”

 “…보름 전에 돌아가셨대.”

 내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금방 침울해진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노수 씨, 그래도 기운을 내. 조심해서 올라 오구.”

 “그래, 올라가서 바로 연락할게. 할 얘기가 많아!”

  숙희는 지독한 응어리가 빠져나간 내 마음 고요한 곳에 다시 깊숙이 내려와 앉았다. 그동안 유정숙의 일로 촉발된 그녀의 마음을 나는 감히 어쩌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먼저 어찌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 차마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숙희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울컥했다.

  또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시도 때도 없이 울컥울컥 치밀고 올라오는 어머니의 그리움은 앞으로도 얼마간 나를 더 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길게 그리움을 들이키고 홍역을 치르며 건너온 바다를 뒤돌아보았다. 어머니의 끝섬을 품은 남해 바다는 여전히 일렁이며 변함없이 춤추고 있었다.

 

 

  저녁 8시에 여수를 출발하는 용산 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슬픈 더듬이를 한 열차는 늘 무심했다. 더듬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캄캄한 미지의 땅을  헤집고 나가는 몸짓이 오늘따라 유독 힘겨워보였다. 바다를 핥아 먹어 눈이 파랗게 변해 버린 열차는 간이역마다 승객을 모조리 삼키며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완행열차는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북적여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겨우 출입문 옆 의자 밑의 틈바구니를 찾아 두더지처럼 숨었다. 음산하고 컴컴한 그 틈새에 쪼그리고 누워 밤새 뒤척였다. 열차는 새벽 6시가 되어서야 겨우 용산역에 더듬이를 내려놓았다. 

 “아저씨, 잠깐 쉬었다 가요.”

  겨드랑이에 팔짱을 낀 낯선 여자들은 처음 서울에 상경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용산역’이라는 수은등이 새벽잠이 덜 깬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회색 도시의 첫날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난생 처음 보았던 고층 건물의 네온사인,  버스를 기다리던 교복의 여학생, 희미해진 가로등을 떠받들고 있던 그날의 행인은 없었다.  에나멜이 벗겨진 양철 표지판은 아직도 덩그렇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숙희에게 전화를 했으나 출근 전이라는 말만 들었다. 오후에 또 숙희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역시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걱정되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지독한 몸살에 걸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숙희 씨, 많이 아픈 거야? 목소리가 왜 그래?”

 “으응, 온몸이 꼼짝을 못하겠어.”

 “안 되겠다. 내가 지금 집으로 갈게.”

 “아니야. 여동생이 회사 안 나가고 옆에서 돌봐 주고 있어. 내일이면 좋아지겠지.”

 “미안해. 나 때문에…….”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보고 싶어서 내려갔는데 뭘.”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어!”

 “그랬으면서 왜 여태 전화는 못했어?”

 “숙희 씨가 너무 화가 난 것 같아서. 화 풀릴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 염치가 없어서…….”

 “바보 같기는……. 그동안  전화 많이 기다렸잖아. 내일은 출근할 테니 사무실로 전화해 줘.”

 “그래, 몸 잘 추스르고 내일 봐.”

  전화를 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이 쓸고 간 서울의 하늘은 여수의 하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숙희의 동그란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수줍은 듯 새침하게 웃고 있었다.

  유 씨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대관절 어머니와 유 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한 가족을 수렁에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들어야 했다. 진실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했다. 또한 유정숙이 유 씨에게 하지 못하고 떠난 이야기를 모두 전해 딸이 무엇을 괴로워했는지도 말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유정숙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녀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미소 지어줄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유 씨 집을 찾아갔다. 유 씨는 이미 술에 포로가 되어 있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흘기어 보았을 뿐 알아보지도 못했다. 유 씨의 눈두덩은 퉁퉁 부어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초점 잃은 시선은 허공을 헤매며 맴돌고 있었다.

 “아저씨, 저 알아 보시겠어요?”

  유 씨는 턱을 길게 내밀며 억지로 나를 확인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모르겠다고 치미를 떼듯 나를 등지고 앉았다. 황당하여 말문이 막혀 버렸다. 유 씨는 나를 알아보고도 굳이 외면하는 것일까! 여동생이 건넛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유 씨와 더는 부딪히지 않게 하려는 의도인 듯싶었다. 여동생이 조용조용 말했다.

 “요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술이에요. 언니가 그렇게 떠난 이후로는 더 심해졌어요. 갑자기 치매까지 왔나 봐요. 가끔 제 정신으로 돌아올 때 빼고 이제는 아들딸도 못 알아봐요. 저러다가 꼭 죽을 것만 같아 걱정이에요.”

  여동생은 유 씨의 상태를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면 유정숙의 일로 몹시 괴로워한다고 여동생이 전했다. 딸의 죽음이 오로지 자신의 잘못으로 비롯된 일이라고 자책하고 있다고 했다. 유 씨만이 아니라 형제자매 모두 유정숙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언니의 희생으로 그동안 편안하게 지냈던 것이 죄스럽다며 여동생은 눈물을 보였다.

  더 이상 그들에게 유정숙의 슬픔을 말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숙이 리처드와 살면서 무엇을 괴로워했는지 이제 와서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정숙의 슬픔은 나 혼자 간직해야 할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만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서러움만은 어디에서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했다. 이대로 묻어둘 수는 없었다. 유 씨가 제 정신이 아니라면  유정숙의 어머니에게라도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출타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의문투성이인 유 씨를 뒤로 하고 집을 나와야 했다.

  유 씨의 건강 상태로 보아 오늘이 유 씨와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저씨! 다음에 또 올게요!”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맥 빠진 마음으로 방문을 닫았다.  하지만 갑자기 괴성과 함께 유 씨의 목소리가 닫힌 문틈으로 튀어나왔다.

 “이 눔아, 가긴 어딜 가? 술이나 사와!”

  둔탁한 쇠망치로 얻어맞아 머리가 띵해진 기분이었다. 유 씨의 치매 증세는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 아들딸을 알아본다고 했다. 소리친 것을 보면 유 씨는 분명 나를 알아보고도 외면했을 뿐이지 제정신임이 분명했다. 다시 방문을 열었다.

 “여긴 왜 온 게야?”

  유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 씨는 아직도 내가 유정숙을 알고 지내면서도 비밀로 했던 지난날에 대한 노여움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유 씨의 관계를 확인해야 했다.

 “끝섬으로 어머니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보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지요. 도대체 아저씨와 무슨 관계였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벌어진 거예요. 말씀해 주세요!”

  나의 목소리는 벌써 울먹이고 있었다. 유 씨는 땅이 꺼지도록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열려진 문밖에는 여동생이 서 있었다. 여동생은 뜻밖의 대화에 놀랐는지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부모들끼리 관계가 오래 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젠 까맣게 지난 일이여. 새삼 들춰내서 뭐 해. 마음만 아픈 일이지!”

 “그래도 전 알아야겠어요. 이대로는 억울하고 서러워서 도저히 못 살겠어요!”

  마침내 나는 흐느끼며 울어 버렸다.

 “자네 아버지하고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하고 결혼 얘기가 먼저 나온 건 나였네. 그것 뿐이여. 그것을 아버지가 알고 오해한 것이여. 니  애비 똥고집이 오죽 심하냐? 아무 일도 아닌

일이 크게 벌어진 게여. 우라질 눔의 팔자들…….”

  유 씨의 목소리에는 분노까지 서려 흘렀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끝까지 함구하지 왜 그랬어요. 말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나는 방바닥에 엎어져 통곡하고 말았다. 온갖 서러움과 어처구니없는 분노가 복받쳐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건 내 실수였어. 그래도 그렇지, 그딴 일을 가지고 그 지경으로 만든 니 애비 놈이 더 못난 놈이여!”

  유 씨는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했다. 나는 더는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잃었다. 아버지의 평소 성정으로 보아 유 씨 입장에서는 그 어떤 개입도 엄두 낼 수 없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유 씨도 아버지로 인한 피해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눔아, 울긴 왜 울어. 사내자식이……. 그래, 니 애미 무덤은 잘 있드냐?”

  유 씨는 되레 어머니의 마지막 소식을 듣고 싶어 했다. 그것은 아직 어머니에 대하여 잊지 못하는 것이 남아 있는 유 씨의 연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개만을 끄덕여 물음에 답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는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유 씨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세요. 술 좀 덜 하시고 이제 모두 잊어버리세요. 훌훌 털어버려야지  어쩌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유 씨를 위로하고  집을 나왔다. 미아리 산 100번지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서글플 정도로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저마다 하늘을 향해  허공으로 올려 보내는 땅 아래의 불빛이 애처로웠다. 거문도의 밤 항구도 그랬다. 아름다움이 넘쳐흘러 차라리 슬픔이었던 어머니의 밤빛도 그러했다.

  말없이 대문 밖까지 나온 여동생은 고개만을 끄덕이며 물끄러미 나를 배웅했다. 터덜터덜 벼랑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내 눈 속에 유정숙 같은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은, 아니 유정숙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녀린 나무처럼 어둠 속에 힘겹게 버티고 서 있었다.

 

 

  이튿날 짧지만 긴 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했다. 폭풍 때문에 미리 전화를 하고 늦게 출근한 탓에 남모르는 화려한 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여기는 직원들은 점심이라도 사라며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오후에 민기의 전화를 받았다. 민기는 며칠 동안 끝섬에 내려간 소식이 궁금해 몇 번씩 확인 전화를 했다고 했다. 폭풍 소식을 들으며 짐작은 했었지만 마냥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 어머니는 만났니?”

 “못 만났어.”

 “아니, 왜?”

 “……보름 전에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셨어.”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민기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나를 위로했다.

 “충주에 다녀가셨을 때 많이 아파 보였다더니……. 그래, 산소는 잘 모셔져 있었구?”

 “귤 밭 양지쪽에.”

 “다행이다. 그래도 힘내라. 이제 모든 게 확인되었으니 마음 편하게 생각해야지 어쩌겠니. 그리고 나 다음 달에 군대 간다.”

 “군대?” 

 “응, 며칠 전에 영장 받았어!”

 “사내라면 가야지.”

 “너도 지난번에 같이 신검 받았으니까 아마  곧 영장 나올 것 같다. 내가 군대 가고 나면 편지 받을 사람 없으니 주소를 서울로 옮기는 게 좋겠어!”

  민기의 입대라는 말에 나는 불현듯 탈출구를 생각했다. 어차피 거쳐야 할 입대라면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입대하여 정신없이 보낸다면 잊어야 할 일들도 말끔하게 잊을 수 있을 듯싶었다. 숙희가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의 힘든 마음을 추스르는 데 그만한 선택은 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귤 밭 문제도 그렇고 숙희와 입대에 대한 의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며칠 있다가 내려갈게. 송별회 해야지.”

 나는 민기에게 송별회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숙희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 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끝섬에서 올라와 아직 만나지 못한 탓에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갑작스런 회식이 잡혔다. 리처드의 생일에 맞춰 달님의 사건으로 우울해진 사무실 분위기를 전환해 보고자 벌이는 회식이라고 했다.

 “숙희 씨, 오늘 약속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까 봐?”

 “왜?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사무실에서 회식이 있다고 그러네!”

 “할 수 없지 뭐. 신경 쓰지 말고 내일 전화 줘!”

  그녀와의 재회를 가로막고 질투하는 사건들이 꽤나 번잡스럽게 내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다. 회식은 비교적 화려한 호텔에서 뷔페로 진행되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한 장소였다. 직원들은 모처럼만에 찾아온 포식의 기회라며 좋아했고, 흘깃 리처드를 쳐다보니 얼굴은 윤기가 흐르고 근심 하나 없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는 황소만 한 덩치에 어울리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앞에 놓고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또한 언제 달님의 사건이 있었느냐는 듯 흥겨운 얼굴이었다. 그런 리처드가 그렇게 가증스러울 수가 없었다. 

  리처드를 보니 술이 당겼다. 다시 폭음을 시작했다. 끝섬에 다녀오는 동안 급격한 체력의 변화가 있었는지 취기가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은 직원은 적당히 마시라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내가 술의 힘으로 괴로움을 잊으려 허우적댈 때 한 여자 손님이 뷔페에 등장했다. 훤칠한 키에 화려한 옷차림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보석 치장으로 보아 과시욕이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유정숙의 자리를 꿰차고 당당하게 회식 자리에 나타난 전화 속의 이태원 여자였다. 오래전 명동의 스탠드바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자였다. 회식 자리는 그 여자가 나타날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리처드와 여자의 생각은 주변의 시선이나 체면과는 무관한 듯했다. 리처드는 공공연하게 여자를 직원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뻔뻔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쇠똥을 치우며 땀 흘리던 뽀얀 얼굴을 화장기에 찌들게 하고, 간호사가 되고 싶다던 소박한 꿈을 자살로 얼룩지게 한, 그런 장본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희희낙락이었다. 아니, 그들의 행동으로 보아 유정숙은 이미 먼 옛날의 흘러간  작은 사건으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울컥 역겨움과 함께 구토가 치받쳐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에 쏟아진 호사스런 내용물은 흩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지독한 토악질은 콧물이 눈물이 되고, 눈물이 콧물이 되어 서러움과 뒤섞여 나왔다. 변기를 부여잡고 지친 몸을 지탱하며 더러운 내용물을 모두 토해내는 동안, 구토의 끝에는 여수의 흙냄새 같은 것이 기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되도록 많이 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내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한참 후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벽을 더듬고 일어섰다. 그리고 비틀대며 화장실 문을 나서자 소변보는 일을 끝낸 이들이 미간을 찡그리고 슬금슬금 내 주위를 비켜가며 조소를 보냈다. 그들 중에는 아랫도리를 잡고 소변기에 물줄기를 배설하는 리처드도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처럼 낀 리처드의 심볼을 보니 그의 침대에서 보았던 잡지가 연상되었다. 충격적이었던 체위와 사진속의 나체 환영들이 내 심볼을 일으켜 세웠다. 울컥 솟구친 증오와 함께 순식간에 불거진 심볼이 사타구니에 텐트를 쳤다. 

  리처드는 나의 행색을 힐끗 쳐다보고는 조소를 보냈다.

 “……리처어드!” 

  내가 꼬부라지는 혓소리로 리처드의 이름을  불렀다. 리처드는 심볼을 털며 지퍼를 올리고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평소에 몇 마디 단어로는 의사소통을 했지만 정확한 대화가 통하지 않아 임 실장이나 전무가 통역을 하던 터라 리처드는 무슨 엉뚱한 일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리처드, 투데이 이즈 마이 스톱 컴퍼니(Today is my stop company).”

 “와이?” 

  리처드가 내 말을 알아듣고 이유를  물었다.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단어 조합의 뜻을 그가 알아차린 것이다.

 “넥스트 먼스리 마이 솔져(Next monthly my soldier).”

  리처드에게 뜬금없이 다음 달에 군대를 간다고 말했다. 민기의 입영 소식을 듣고 숙희와 의논하여 입대할 생각이었지만 나도 왜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도 리처드 앞에서 다음 달에 군에 간다는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은 지친 회색 도시에서의 탈출을 꾀하는 일종의 반란이었고. 유정숙을 잊고, 어머니를 잊고, 잠시 모든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리처드에게 어떤 형태로든 유정숙의 분노를 피력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정답인지도 몰랐다.

  리처드가 잘 다녀오라는 뜻으로 악수를 청했다. 누런 털이 숭숭 엉켜 있는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또 황소를 보았다. 리처드의 손등은 언제나 우시장의 황소를 연상케 했다. 유정숙이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싶었던 황소, 내 손아귀를 뿌리치고 달아난 황소,  민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우시장의 황소, 유 씨의 가슴에 묻은 비루먹은 황소, 아버지의 절규를  삼켜버린 황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랫도리 사타구니로부터 솟구치는 힘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등까지 치밀어 올라온 힘은 다시 힘껏 움켜쥔 주먹으로 쏠렸다. 그리고 주먹은 리처드의 얼굴을 향해 뛰어오르며 사정없이 날아갔다. 그것은 나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힘이었다.

  황소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타일 바닥에 널브러진 리처드의 콧구멍에서 금방 붉은 피가 흘렀다. 붉은 피는 타일 사이의 골진 틈새로 스며들며 소변들을 보고 털다가 떨어진 오줌 방울들과 융합되었다. 날벼락을 당한  황소는 일어나려 한두 번 버둥대었지만 비틀대며 다시 쓰러지고 쉽게 일어나지를 못했다. 갑자기 벌어진 화장실의 신기한 사건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내 작은 주먹에 황소 같은 리처드가 쓰러진  좀처럼 보기 힘든 진기한 광경에 사람들은 놀란 듯했다. 한편에서는 키득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뽀얀 살결에 피둥피둥 살이 찐 하마 같은 리처드가 버둥거리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기막힌 구경거리였다.

 그렇게 쓰러진 리처드를 보고 내가 더 놀랐다. 평소 리처드를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서부터 이 일을 수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로부터 되도록 멀리 도망치기 위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대단한  취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쏜살같이 내달려 호텔 밖으로 빠져나왔다. 잠시 가쁜 숨을 가다듬고 거친 호흡을 허공에 뱉어 버렸다. 불안한 마음이 회오리처럼 요동쳤다. 숙희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숙희 씨, 나 지금 일 저질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을 어떻게 저질렀는데?”

 “리처드를 혼내줬어. 내 주먹에 코피가 터지고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보고 무작정 도망 나왔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회식 있다고 했잖아. 혼내줬다니 무슨 말이야?”

 “언제 한 번 멋지게 혼내주고 싶었거든.”

 “그러지 말고 지금 우리 집 근처로 와. 만나서 이야기 해.”

 나는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 근처로 갔다. 이미 퇴근한 숙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집 앞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아프게 떠났던 그녀를 몇 달 만에 다시 만나는 만남치고는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재회였다. 숱하게 할퀴고 자책하며 꿈꾸어 왔던 재회의 그리움은 리처드를 응징하고 난 두려움에 묻혀 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 어머, 노수 씨 손에 이 피는 또 뭐야?”

  그녀의 말에 손등을 보았다. 나는 그제야 손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옷에도 몇 군데 핏방울이 튀어 있었다. 비록 한 방이었지만 리처드를 된통 세게 때린 모양이었다.

 “회사 사장, 리처드를 혼내주고 싶었어. 괜찮을 거야. 세게 한 방 날렸지만!”

  나는 용기를 내기 위해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리처드를 왜 혼내줘? 아직도 죽은 그 여자한테 미련 있는 거야?”

 의외의 반응이었다. 아직 털어버리지 못한  유정숙에 대한 연민이 은연 중 드러난 것 같아 움찔 놀랐다. 유정숙에 대한 잔영이 멀어지고 작아지는 만큼 숙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었다. 변명을 하자면 유정숙의 자살 이후 숙희는 그럴 기회조차 내게 안 주지 않았던가!

 “이제 잊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약속해.”

 “믿을게 그럼. 우선 피부터 닦아야겠어.”

  리처드의 망령을 아예 떨쳐 버려야 했다. 아니 유정숙을 먼저 지워야 하는 것인지도…….

 “안 되겠어. 차라리 옷을 갈아입는 게 좋겠어. 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숙희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물수건과 추리닝 한 벌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어디서 갈아입지?”

 그녀가 불안에 떨며 말했다.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말하는 동그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 빛났다. 사방을 훑어본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눈길이 멈춰진 곳이 있었다.‘여관’이라는 네온등이 유독 커다랗게 눈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두말없이 그곳으로 두더지처럼 숨듯 뛰어갔다.

 “노수 씨, 빨리 씻고 옷 갈아입어.”

 숙희가 옷을 건네주었다. 욕실로 들어온 나는 목욕을 시작했다. 토악질로 뽑아 올린 알콜이 체내에서 입 밖으로 한꺼번에 빠져 나간 탓일까. 언제 술에 절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은 이미 멀쩡해져 있었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며 미끄러운 손이 심볼 가까이 이르자 심볼에 힘이 쏠리고 갑자기 우람해지기 시작했다. 심볼은 유정숙을 업었을 때도 우람했었고, 리처드를 혼내주었을 때도 우람했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밀착되었던 숙희의 앞가슴을 생각하던 목욕탕에서도 심볼은 역시 솟아올랐었다. 하물며 욕실 밖에 숙희가 있지 않은가! 녀석은 기회가 되면 대책 없이 불거지고 사건을 저지르며 독립군처럼 움직거렸다.

 목욕을 끝내고 마침내 옷을 갈아입었다. 광주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숙희 남동생이 누나 집을 방문하면 입는 옷인 듯했다. 심볼이 가라앉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녀석을 애써 진정시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숙희는 침대 옆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씻고 나오는 나를 부끄러운 듯 외면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숙희의 반대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갑자기 만들어진 방 안 환경이 어색하고  낯설어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리처드에게 왜 응징을 자행했는지, 끝섬에서의 일은 어떠했는지, 군 입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귤 밭에서의 미래는 동의하는지, 그녀에게 할 말은 너무도 많았지만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녀 또한 내 말을 억지로 유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관방이기 때문인지 쉽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같은 마음을 서로가 느끼고 있으면서 눈치만 살피던 시간이 얼마간 흘렀다. 슬금슬금 엉덩이를 끌며 숙희에게 다가간 나는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입맞춤을 했다. 내 입술이  닿는 순간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개화되기 시작했다. 포도 맛이고 능금 맛이었다. 언제나 과일 맛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입술은 순백의 도화지였다.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려고 준비했던 미술시간의 하얀 도화지였다. 도화지에서는 포도 맛, 능금 맛이 났다.

  내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아 돌았다. 한 몸이 되었다. 또 다른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밀어 넣은 혀끝의 감촉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혀의 감촉이 이번에는 잘 익은 복숭아 맛 그대로였다. 도대체 그녀의 입술은 몇 가지 과일 향기를 품고 있는지 아찔해졌다. 포도도 능금도 복숭아도 깨물고 싶은 그녀의 향기였다.

 그녀를 바닥에 뉘였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내 손길이 가는대로 몸을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녀의 옷이 하나씩 벗겨졌다. 하얀 목덜미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내 입술은 그녀의 귓불을 타고 목덜미로 미끄러졌다. 짜릿한 전율이었다. 몸은 이미 전기에 감전된 지  오래였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꽃잎을 다시 한 겹 벗겼다. 숨겨놓은 뽀얀 속살이 수줍은 얼굴로 살포시 눈을 흘기었다. 그녀의 가슴은 연보라색 꽃송이 같은 브래지어 속에 부끄러운 듯 숨어 있었다. 나는 꽃을 찾는 꿀벌처럼 수국꽃송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꽃송이는 따뜻했다. 꽃송이를 한 겹 또 벗겼다. 부끄러워 잔뜩 웅크렸던, 아직은 덜 익어 탱탱한 복숭아  하나가 입술에 닿았다. 치명적인 감촉에 빨려 들어갔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전율이 오장육부사지 칠천마디에 소스라쳤다.

  그녀가 몸을 비틀고 돌아누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결혼하고 이러면 안 돼?”

 그녀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느다란 입술의  떨림이 내 심장 깊은 심연까지 전해졌다. 그래, 그래야만 했다.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그녀를 아끼고 지켜주어야 할 일이었다. 그 마음이 나를 받아들이려 하는 마음보다 더 예뻤다.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그리고 여러 번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는 다시 꼭 껴안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늦었는데 집에 들어가자. 내가 집까지 바래다주고 올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숙희가 옷차림을 여미며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녀는 피  묻은 내 옷을 빨겠다며 주섬주섬 챙기고 다소곳이 나를 따라 나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통행금지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지나는 행인들과 차량들도 거의 제 둥지로 들어갔는지 거리는 공허할 정도로 한산해져 있었다.

 “고마워.” 

  그녀가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그녀를 존중하므로 얻어진 값진 신뢰의 표현이었다. 그녀와의 지난 시간들 중 그 어느 순간보다도 뿌듯했다. 그녀에게 심어준 믿음도 믿음이었지만 나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손은 아직도 따뜻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갑자기 잊고 있었던 귤 밭이 생각났다.

 “참, 정신이 없어서 말하지 못한 게 있어.”

 “무슨 일인데?”

 “끝섬에 어머니가 남겨 놓은 귤 밭이 있어.”

 “어머니 일은 정말 안됐어. 그런데 귤 밭이라니 무슨 귤 밭?”

 “응,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남기신다고 유언을 하셨어.”

  숙희는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잊은 듯했다. 나는 어머니가 남겨 놓은 귤 밭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숙희는 다소곳이 듣고는 일간 끝섬에 내려가자고 했다. 그리고 끝섬을  다녀오는 길에 그녀의 아버지에게 인사도 드릴 겸 광주에도 들리자고 했다. 근래에 부쩍 학생운동 가담이 잦아진 남동생이 걱정 된다던 아버지의 전화를  받아 염려스럽다고 했다. 그런 마음씨가 또 한 번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숙희가 사랑스러웠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웠다. 진정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 위에만 머물다가 마음 깊숙이 상처만 남았다.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의 산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숙희가 있었다. 명랑하던 그녀에게서 다소곳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이제 유정숙도 김은애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모습이 교차되며 숙희 그대로의 소박한 아름다움만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목말랐던 세월을 묻고 귀한 만남으로 이어가리라. 누구든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 차라리 서러움이었던 고통을 가다듬고 비밀보다 진한 사랑을 엮어 가리라. 그리하여 꿈꾸기만 했던 은빛 날개를 단 미래를 항해하리라. 마음이 가난했던 슬픔에서 혼자 치열했던 그리움 또한 맘껏 토해내리라.

  나는 그녀의 허리를 더욱 힘껏 얼싸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프러포즈를 했다.

 “사실 난 숙희 씨와 끝섬에 가서 살고 싶어.”

  숙희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의 의미를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침묵은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숙희 씨, 사랑해! 정말 보고 싶었어!”

 “나도, 노수 씨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열심히 노력할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게!”

 “나도.” 

 “이제는, 정말 숙희 씨만 사랑할게!”

  숙희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녀의 온기는 물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빠르게 스며들며 번져갔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공습경보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자동차는 물론 사람도 모두 숨어버린 16차선 넓은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나갔다.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드넓은 도로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세상은 온통 우리 것이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통쾌하게 함성을 질렀다. 크고 멋지게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따라서 통쾌한 고함을 질렀다. 노래도  불렀다. 우리의 거침없는 노랫소리는 만물이 통행금지된 고요한 거리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회색 도시로, 은하수 빛 밤하늘로 우화(羽化)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후련함을 마음껏 가슴으로 마시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우리만이 느끼는 장구벌레의 날갯짓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장구벌레에 대하여 배운  게 생각났다. 장구벌레는 세상에 태어나서 며칠을 살기 위해 시궁창에서 숱한 시간 동안 탈피를 거듭한다고 했다. 온갖 고통이나 어려움도 단지 며칠의 일생을 위해 이겨내야만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자란 장구벌레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축복은 날개가 돋으며 시궁창을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공중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 화려한 결혼식을 위해 장구벌레는 시궁창에서 수차례 껍질을 벗으며 인내하고 탈피하며 살아야 한다고……. 나는 우화를 기다리며 탈피를 거듭하던 장구벌레였다.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몸을 쉴 새 없이 흔들며 물고기나 곤충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애쓰기를 얼마였던가. 성충이 될 때까지 껍질을 벗으며 감내했던 고통은 또 얼마였던가. 나는 비로소 장구벌레처럼 공중결혼식을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손전등 불빛이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고성방가를 서슴없이 토해내는 우리들을, 통행금지를 비웃으며 활보하는 그녀와 나를, 경찰서로 끌고 갈 단속원의 손전등 불빛이었다. 그러나 그 불빛은 오히려 장구벌레의 공중결혼식을 축복하는 불빛이 되어 점점 커다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불빛은 숙희와 내가 노래하며 춤추고 있는 활주로를 환하게 밝히며 점점 더 가까이 곁으로 다가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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