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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끝        섬

                                  EDGE ISLAND

 

소몰이 소년




  얼음 끝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바람이 쏜살같이 얼굴로 달려왔다. 바람은 한바탕 내 볼따구니를 할퀴며 어깨를 타고 등 뒤로 미끄러졌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바람은 흙먼지를 안고 뒹굴며 땅바닥을 핥아 유린했다. 오늘은 황소마저 게걸스럽게 울지 않았다. 놈이 내뿜는 콧김이 허공에 뒹굴었다. 콧김은 곧 뿌옇게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벙어리장갑을 꼈어도 고삐 잡은 손은 시리고 아렸다. 손끝은 이미 얼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 걸어가는 민기는 우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행인들은 코트 깃을 끌어올려 귀밑까지 덮고는 바삐 걸었다. 그들의 움츠러진 어깨와 총총걸음이 수년 만에 찾아온 추위를 실감케 했다. 충주 우시장으로 연결되는 길로 들어서니 소전(牛市場)으로 향하는 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어미와 생이별한 송아지의 애절한 울음소리와 놀부 심통 같은 황소의 울음소리가 제법 우시장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허리를 젖혀 등을 곧게 폈다.

  소전 가는 길목에 있는 국밥집에서 해장국 끓는 냄새가 스미어 나와 코끝에 닿았다. 반쯤 열린 미닫이문으로 주릅(우시장에서 소개를 붙여주고 구전을 받는 중개인)들과 사내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리어카 엿장수는 여느 때처럼 왼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양말과 나일론 점퍼를 떨이하는 낯익은 보따리상인도 우리를 알아보고는 눈웃음을 보냈다.

  우시장은 늘 시끌벅적하고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추운 날씨에도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이라 사람들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소들의 울음소리는 마치 전쟁나팔 소리를 방불케 했다. 우리는 비로소 소전 안으로 소를 몰았다. 소장수는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소를 넘겨받은 소장수는 고삐를 말뚝에 맸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손바닥을 마주쳐 먼지를 털었다. 무의식적으로 사방을 훑어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소들의 울음소리와 사내들이 한데 어울려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열네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기라도 하듯…….

 

 

   내가 열네 살이던 그해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렸다. 개학을 앞두고 사흘 동안 전국적으로 폭설이 쏟아졌다. 라디오에서는 수십 년만의 폭설로 일부 학교에서는 개학이 늦춰질 것이라는 보도를 냈다. 그날 아버지는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한 채 폭설을 뚫고 소전에서 돌아왔다. 그리고는 쇳소리가 나는 딸꾹질을 하며 절규하듯 이야기했다.

   “노수야, 애빈 백정 같은 쇠장수여. 니 눔은 그 가생이두 가지 말아야 혀어. 쇠장수두 올가미가 있어야 하는 벱이여. 니 눔은 애비처럼 쇠가죽 먹구 살아선 안 되어. 니 눔은 면서기래두 혀야 헌단 말여. 무슨 일이 있어두, 니 대루 가야 내 꼴이 안 나는 게여!”

  아버지는 숨소리를 짧게 끊어내며 힘겹게 토해냈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은 4년 전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부터였다. 어머니의 가출 이후부터 거의 매일 술로 식사를 대신했던 아버지는 점점 야위었고, 몰골은 병색이 완연하게 보일 정도로 초췌해졌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단지 찾지 않는 것이 좋으니 찾지 말라는 말만 강조했다.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에는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원망만이 가득 배어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잠든 사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일체의 소식을 남기지 않고 나 혼자만 남겨둔 채 영원히 떠나버렸다. 나에게는 어머니를 찾아갈 아무런 단서도 없었으므로 세상에 내던져진 고아가 된 셈이었다. 나는 슬픔이 북받치고 눈물이 앞을 가려 주위를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진 눈앞에 아버지는 웅크리고 누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넋 나간 채 하루를 보냈다.

  생전의 아버지 친구인 소장수 몇몇과 마을 사람들이 장례는 3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초라하게 마련된 빈소에 바위처럼 앉아 그저 흘러내리는 초의 눈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냄새는 오랫동안 코끝을 맴돌았다. 코끝이 매웠다.

  상여 나가는 날엔 잠시 그쳤던 눈이 또 내렸다. 메기꾼들의 종소리에 맞춰 상여가 일어서자 나는 받침대에 손톱자국을 만들고 눈 위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하늘 끝에서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눈송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입과 얼굴에 마구 내려앉아 눈물로 녹아버렸다. 녹아내린 눈물과 함께 어머니도 아버지도 녹아내렸다.

   그날 뒷산에는 없던 무덤이 하나 생겼다. 친구들의 발에 심장이 밟히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눌리고 눌려……. 무덤은 생전의 아버지처럼 작고 보잘것없이 초라했다. 봉분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저 눈으로 하얗게 덮여가는 아버지의 무덤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제기럴, 눈 한번 찢어지게 퍼붓는구먼.”

  안장을 끝내고 무덤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아버지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투덜댔다. 그러나 막걸리만 마실 뿐 그 누구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 한마디라도 덧붙인다면 곧 흐느낌으로 이어질 듯한 음산한 분위기였다. 참으로 찢어지게 침통하고 을씨년스러운 함박눈이었다. 그러나 함박눈은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하얀 순백이었다. 아버지 무덤도 순백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그 스산한 저녁부터 병이 나 사흘을 내리 앓았다. 그렇게 그해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담임선생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했고, 그해부터 아버지 친구인 소장수 정 씨를 따라 소몰이 소년이 되었다. 소전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도리가 없었다. 소전 일에 익숙해지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배워야 했다. 이웃 마을에 서는 장을 찾아다니며 몰이소를 부탁받아 그 품삯으로 생활했다.

  정 씨는 풋내기 소장수였던 아버지와 식당 노처녀였던 어머니가 어찌어찌하여 결혼까지  했는지 마치 옛날 영화를 보듯이 내 앞에서 풀어놓곤 했다. 아버지는 소를 사고파는 중개인 일을 막 시작한 참이었고 어머니는 우시장 입구의 국밥집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라 둘 다 궁색한 처지였다. 그러다 내가 생기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바로 살림을 차렸다는 게 정 씨의 설명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정 씨의 입에 가볍게 오르내리는 게 몹시 못마땅했지만 도리가 없어 묵묵히 듣기만 했다. 혹시라도 정 씨에게서 어머니의 행적에 대한 작은 소식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던 정 씨는 나의 소몰이생활이 채 1년이 되기도 전, 소전에서 자취를 감췄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큰 금전사고를 치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했다. 그래도 딴에는 정 씨를 의지했던지라 아버지를 잃었을 때만큼 허전했다. 하지만 소몰이생활을 익숙하게 만든 3년이라는 세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 씨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할아버지와 살며 소몰이를 하던 민기를 만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외로움은 한결 덜어졌다. 마침내 정 씨의 얼굴은 잔상으로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아련한 시간 속에 흘러가버렸다.

 

 

  찬바람이 불던 아침과는 달리 제법 따사로운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오후가 되었다. 잔치국수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나는 양지쪽 담장 위에 터를 잡았다. 한겨울의 해바라기는 추위와는 상관없이 나른한 피곤을 몰고 왔다. 팔짱을 끼자 긴 하품이 절로 올라왔다. 소몰이  소년 몇몇이 동전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담장 아래로 보였다. 어떤 때는 낮잠을 자고, 어떤 때는 시내로 가서 동시상영영화를 보고, 또 어떤 때는 동전치기를 하는 것 외에는 우시장이 끝날 무렵 몰이소를 부탁받기 전까지는 할 일도 없고 갈 곳은 더욱 없는 소몰이 소년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은 담 밑에 작은 구멍을 파고 동전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구멍에 돌을 던져 누가 더 가까이 던졌는지 선후를 가린 다음 동전을 때려 맞추기를 했다. 그들의 손에 오고가는 때 묻은 동전은 돌에 맞아 찌그러진 것이 대다수였다.

   “노수야, 너두 할려?”

   나는 대답 대신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비루먹은 송아지처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더벅머리에 부스럼이 말라붙어 있는 녀석에게 메스꺼움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녀석의 머리는 언젠가 발로 까서 먹고 버린 지저분한 밤송이를 닮았다. 낡은 담벼락, 마음대로 휘갈겨진 낙서들, 허물어진 돌담 사이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여럿이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술래가 된 아이가 그림자를 밟으려고 뒤따르고, 다른 아이들은  온갖 재주로 요리조리 구멍을 빠져 다니며 도망을 다녔다. 그러다가 그림자를 밟히고는 재미있다는 양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눔은 열아홉 장만 혀!”

  유독 큰 사내의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소리 나는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져 있었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녀석들은 동전 따먹기를 계속했다.

  마치 고향 생각이라도 하듯이 멍하니 서 있던 소가 질겁하여 말뚝 주위를 맴돌았다. 맴도는 걸음마다 뒷발굽에 찍히는 땅바닥 위로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그러나 여지없이 주릅에게 고삐가 잡혔다. 고삐를 잡혀 뒤뚱거리는 소의 양쪽 코에서 콧김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입에서 흐른 타액은 턱수염에 걸려 있었다. 매매 도중에는 으레 주릅들의 기 싸움이 시작되는 줄 뻔히 아는데도, 돌연 소의 엉덩이를 후려치며 외치는 소리가 익숙해지지 않았다. 술에 취해 쇳소리를 뱉어내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때는 무척이나 놀라서 며칠을 불안에 떨기도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소장수가 놀란 소를 달래려 등을 긁어주었다. 소는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다른 주릅이 소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리고 아가리 속으로 손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육질이 튼실한 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이빨이 돋아난 숫자를 헤아리는 모양이었다. 소의 머리는 다시 하늘로 치켜졌고 중심을 잃고 허둥대는 발밑에 뽀얀 먼지가 일었다.

  “에이, 이 녀석이 밋 살인데 그려, 열아홉 장은 말두 안 돼! 한 장만 더 쓰지 그려!”

  소의 턱이 더욱 곧추세워지자 소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뒤뚱거렸다. 그때 뒤에 있던 주릅이 소의 사타구니를 훑어버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누런 털이 한 움큼 뽑혀 나왔다.

  “살찐 걸 보니 믹이긴 실하게 믹였군 그려.”

  사내가 손바닥을 펴고 입김을 훅 불었다. 누런 털이 너풀너풀 허공으로 흩어져 곤두박질치며 겨울 햇살과 함께 은빛으로 내려앉았다. 햇살에 반사되는 털은 마치 떨어지는 꽃잎과도 같이 사뿐했다. 나는 양쪽 손을 슬그머니 사타구니로 밀어 넣었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 전해졌다. 짧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긴 호흡은 목젖을 타고 배 속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나는 소변을 본 다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멀리서 양손을 주머니 깊숙이 찌르고 소전으로 들어오는 빨간 코트의 소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들만이 수두룩한 소전에서 그것도 소녀처럼 보이는 여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색다른 광경이었다. 동전치기 하던 녀석들이 소녀를 힐끔 훑어보았다. 그러나 금세  녀석들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동전치기를 계속했다. 소녀는 타박타박 걸어서 사내들이 모여 있는 틈을 비집고 소장수 유 씨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유 씨에게 건네주었다. 유 씨는 소녀와 대화를 나누며 내가 있는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자 소녀는 내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 돌담 위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소녀를 훔쳐보던 것을 들킨 것 같아 놀랐지만, 순간적으로 소녀가 참 예쁘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언젠가 동시상영영화에서 보았던 영화 속 여주인공이 뇌리에 스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 씨의 손가락 방향을 확인한 소녀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푹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저어… 아버지가 우리 집까지 소 좀 몰아다 주래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발끝에 그림자를 들이댄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소녀였다. 나는 하마터면 담 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소녀를 훔쳐본 것을 진짜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까지 화끈 달아올랐다. 사타구니에서 미처 손을 빼지 못한 것이 더욱 창피했다.

  나는 급하게 담에서 뛰어 내렸지만, 소녀는 이미 등을 돌려 유 씨에게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맥없이 소녀의 발자국을 밟으며 뒤따랐다. 화끈하여 붉어진 얼굴로 유 씨에게 다가가자 유 씨가 고삐를 넘겨주며 말했다.

  “이놈을 집에까지 몰아다 주고 오게!”

  나는 유 씨에게서 몰이소를 건네받고 나서야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다시 말없이 앞서 가는 소녀의 뒤를 따라 터덜터덜 소를 몰았다. 소녀는 나의 부끄러운 마음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묵묵히 걸었다. 소녀가 갑자기 뒤돌아보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느라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렸던 고삐 잡은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사타구니의 민망함을 은근슬쩍 모면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말을 꺼내려고 하니 얼굴이 훅훅 달아올라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턱턱 막히는 숨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올라왔다.

  이상하리만치 크게 들리는 내 발자국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제발 소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니면 소녀가 돌아보기라도 해주길……. 그런데  불쑥, 정말 불쑥 소녀의 목소리가 나의 앞이마에 꽂혔다.

   “……빨리 좀 오세요.”

  갑작스러운 소녀의 말에 나는 몹시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을 뱉어 버렸다.  

  “여잔, 여기 잘 안 와유.”

  내 말에 소녀는 힐끗 나를 돌아봤다. 눈동자는 맑고 순진해 보였다. 나는 곧 후회했다.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소의 뒷발굽만을 애꿎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또 얼마를 걸었을까!

  “나도, 여기는 오기 싫은 곳이에요.”

  소녀의 두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버지가 돈을 가져 오래서 할 수 없이 온 거예요.”

  다행히 소녀가 먼저 말을 이었다.

  “돈은 왜유?”

  내가 촌스럽게 물었다.

  “소 살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유 씨 아저씨 말여유?”

 “우리 아버질 아세요?”

  “그럼유! 소장수 아저씨들은 전부 다 알지유!”

  말하고 보니 큰 자랑이라도 한 것 같아 겸연쩍은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앞서 가는 소녀를 바짝 따라가 곁눈질로 살짝 얼굴을 훔쳐보았다. 다시 봐도 역시, 시내 영화관에서 본  영화의 여주인공 마냥 동그랗고 예쁜 얼굴이었다.

  “아가씬, 학교에 안 다니나유?”

  나는 소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고등학교에 다닐 정도의 얼굴로 보였지만, ‘아가씨’ 말고 달리 부를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가씨’란 말에 소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소녀는 더 이상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경계심을 풀어버린 눈빛이 순하디순한 어린 송아지 눈빛처럼 선하게 보였다. 

  “재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대학은 안 가구유?”

  “안 간 게 아니구 못 갔어요.”

   “…….”

  “학교 다니세요?”

  소녀가 되물었다. 불안했던 내 마음도 어느새 편안해졌다.

   “아뉴, 고등학교 붙었는데 못 갔어유.”

  “왜요?”

  “그해 아부지가 돌아가셨거든유.”

  아버지의 쇳소리 같던 음색이 들려오는 듯했다.

  “오래된 모양이죠?”

  “하마, 4년 되었지유.”

  “어머닌요?”

  이번에는 어머니의 흐느낌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없어유.”

  “돌아가셨나요?”

  “아뇨, 어딘가 살아 있을 거래유.”

  “같이 안사나 보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오래전, 집을 나갔지유. 그 후 아버진 술 때문에 먼저 가시구…….”

  “그럼, 혹시 이름이 노수?”

  “야아. 맞어유. 어떻게 알지유?”

  “언젠가 아버지가 거기 이야기를 했어요.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셔서는…….”

  “…….”

   처음 본 소녀 앞에서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던 나는 할 말이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버지 장례 때 유 씨를 언뜻 본 것 같았다. 함박눈 한 번 찢어지게 퍼붓는다고 푸념하던 이가 유 씨 아니던가! 그땐 어리기도 했고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에 아버지의 장례를 도와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못했다.

  집나간 어머니와 술독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둔 내 사연은 소장수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소녀까지 알고 있다니 기분이 야릇해졌다. 그러면서도 소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지금은 어디 살아요?”

  “민기라는 애랑 있지유. 할아버지하구 사는 녀석인데, 1년 됐어유.”

  “다행이네요.”

  소녀는 고운 얼굴에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무심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하늘 높이 떠 있었고 날씨는 차고 바람은 매서웠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소몰이 생활이 즐거우세요?”

  나는 아뉴, 하고 대꾸하고는 실쭉 웃었다. 그리고는 눈으로 소녀의 답을 재촉했다.

  “나도 그래요, 우시장엔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예요.”

   “…….”

   “서울로 올라가 무언가 해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보내주질 않아요. 난 졸업해서 간호전문학교라도 가려고 했지만 계집애가 배워서 뭣에 쓰겠냐는 식이죠. 여자가 많이 배우면 버릇만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냥 식육점에 있으면서 고기나 팔고, 그러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하세요. 정말이지 답답하고 신경질이 나요!”

  소녀는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고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녀의 하소연도 하소연이지만, 봇물 터진 듯 쏟아내는 달변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서울에 있어요. 광고대행사에 다닌대요. 나보고 언제든지 서울 오면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쉽게 안  되네요. 여자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죠. 서울 가려고 여러 번 결심도 했는데, 마지막엔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소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시내 신작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소녀의 구둣발 소리와 소 발굽 소리가 리듬처럼 묘한 조화를 이뤘다. 아스팔트가 깔린 신작로는 타악기처럼 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소녀의 목소리 또한 끊임없이 터져 나와 신작로를 뒹굴었다.

  “오늘 아버지가 우시장으로 돈을 가져오라고 전화했을 때도 그 돈을 가지고 서울로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 눈치를 살폈는데 엄마가 아무 의심 없이 돈을 건네주는 거예요. 돼지고기 썰던 기름 낀 손으로요. 차마 못 떠나겠더라고요.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면서  빨리 갔다 오라고 하는 엄마 얼굴 보고 그만 또 포기해 버렸어요.”

   소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눅눅한 습기가 배어 있었다. 그 뒤로도 소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마 소가 길 위에 배설물을 흩뿌리지만 않았어도, 이야기는 한참 더 계속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쇠똥은 한 군데가 아니라 소가 발을 움직일 때마다 길 위에 쇠똥 그림을 남겼다. 금방 떨어진 쇠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쇠똥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찬바람과 마찰을 일으키며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 찐빵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처럼.

  “조심혀, 아스팔트에선 벌금을 낸다는 소문도 있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민기에게 들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쇠똥 때문에 벌금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황한 나는 금방 화롯불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소녀가 쳐다봤다. 나의 시선과 소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오늘, 세수도 안 한 모양이네요.”

  소녀는 실눈을 예쁘게 흘기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골목으로 동동동 사라져버렸다. 나는 쇠똥을 치울 일보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춘 소는 앞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고삐 잡은 손을 세게 틀어쥐었다. 발버둥 치던 녀석이 뒤뚱대며 균형을 잡았다. 그렇게 소와 씨름하며 한참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소녀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던 그림자처럼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비료를 담았던 비닐 포대와 작은 삽이 들려있었다. 소녀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그냥, 이거나 들구 있어요!”

  충주비료공장 상호가 새겨진 요소비료포대를 내 앞으로 획 던졌다.

  “근처 아는 집에서 빌렸어요. 어서 주둥이 벌려요!”

  주위를 지나는 행인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구겨진 비료포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쇠똥을 쓸어 담는 소녀를 쳐다보며 엉거주춤 비닐의 주둥이를 벌리고 서 있었다.

   “아, 아가씨… 미, 미안혀유…….”

   나는 소녀를 또 ‘아가씨’라고 불렀다.

   “난 아가씨가 아니구 유정숙, 유정숙이에요.”

  소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복숭아 솜털같이 보송보송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탐스러운 구슬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송글송글한 그 땀방울이 나의 눈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가슴까지 밀고 들어와 심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내 심장 속에 탐스러운 구슬들이 마구 뛰어다녔다.

 

 

  한낮의 욕망을 먹어치운 포만한 태양은 벌써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노을의 힘조차 미치지 못해 오색으로 물들지도 못한 구름은 손가락을 대면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듯 힘겹게 걸려있었다. 태양은 제 할 도리를 다한 듯 비스듬히 서쪽 산꼭대기에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나와 민기는 그렇게 스러지는 겨울 석양을 등지고 맥없이 걸었다. 우리의 그림자는 언덕에 이르러 더욱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는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줄곧 꽁무니를 따라붙었다. 

  오늘은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족히 서너 마리는 몰이소를 부탁받았다. 그러나 오늘은 우시장이 거의 끝날 때까지 몰이소를 얻지 못했다. 막바지에 이르러 가까스로 얻은 소는 코도 뚫지 않은 암송아지 한 마리뿐이었다. 게다가 비루 때문에 털까지 듬성듬성 뽑혀나간 메마른 놈이었다. 놈은 게으른 시골 농부가 마지못해 키우던 복 없는 송아지임이 틀림없었다.

  “한 사날 잘 믹여야 혀!”

   송아지를 부탁한 주인은 이미 술이 얼큰하게 취한 유정숙의 아버지 유 씨였다.

  “이 눔두, 빨리 코를 뚫어야 지랄을 않겠구나!”

  민기가 갑자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송아지의 난동을 제지하며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나는 고삐의 끝자락을 잡았지만 삼부자가 달려들어도 못 당한다는 옛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놈은 억셌다. 놈과의 힘겨루기는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졌다. 송아지는 제 힘을 믿고 공중으로 날뛰다가 고삐에 걸려 팽이처럼 빙그르 돌았다. 그렇게 몇 차례 요동치던 송아지는 결국 우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송아지의 코를 어째서 꼭 뚫어야 할까? 왜 멍에를 씌우고 고삐를 매야 할까?’

 참으로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다 큰 송아지의 코를 뚫지 않으면 다루기가 힘들다는 것은 소를 다루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람이 소를 제압하기 위하여 코뚜레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코뚜레는 송아지에게 평생의 멍에를 씌우는 일이 아닌가. 유정숙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내 마음을 괴롭혔듯 송아지 또한 몹시 나대며 멍에처럼 나를 괴롭혔다.

  “민기야!”

  “응?”

  “넌… 소몰이생활이 즐겁니?”

 유정숙이 나에게 물었듯이 나도 민기에게 물었다. 민기는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할아버지가 있고 그런대로 문제없이 사는 민기에 비하면 나는 턱없이 외로운 입장이었다. 그에게서 강한 긍정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몰이생활을 이토록 내켜하지 않는 줄은 몰랐다.

   “왜?”

  “그냥, 싫어! 할아버지 덕에 야간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짓을 계속 해야 할까?”

   “우리, 이 짓 안 하면 안 될까?”

   “뭐? 그럼, 뭐하게?”

  “서울로 가문…….”

   “서울?”

   “그려, 서울!”

   “…안 돼. 할아부지 두고 갈 순 없어. 하나 있는 아들 서울에서 잃구 이리로 온 거야. 연탄 때지 않는 시골만 살았어두 아들 며느리 한꺼번에 잃지 않았을 거라구, 술 취하면 늘 울면서 말했어.”

   민기의 단호한 어조에 속마음만 들킨 것 같아 할 말을 닫았다. 민기의 할아버지는 10년 전 민기만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외아들과 며느리를 연탄가스에 잃고 낙향하여 어린 민기를 혼자 키워온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것만큼은 한사코 고집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를 잊고 민기에게 속내를 드러낸 것이 무안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넘어 ‘마즈막재’ 언덕 끝에 이르렀다. 이곳을 지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왼쪽의 계명산과 오른쪽의 남산은 이미 어둠이 깔려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어지럽게 엉켜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와 겨울의 쓸쓸함, 여기저기 녹지 않은 지저분한 눈, 작은 계곡으로 흐르는 힘없는 물줄기를 따라 늘어선 얼음 조각들, 어느 것 하나 오늘 같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만한 것은 없었다.

  “노수야!”

  “왜!”

  “넌 서울 가구 싶니?”

  내 의견을 일언지하에 묵살한 것이 미안했던지 민기가 물었다.

  “…….”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아부지 돌아가실 때 소전에는 가생이두 가지 말라구 했다지.  소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구.”

  “쇳소리 나는 목소리였어…….”

  “넌 아니?”

  “뭘?”

  “올가미!”

  “아니…….”

  민기는 더 묻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말하던 올가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쇳소리가 나던 아버지의 절규가 귓전에 맴돌며 나를 괴롭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몰이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늘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굳이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계곡의 얼음 조각들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침묵은 한참 더 이어졌다. 유정숙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민기야, 이 고삐 좀 잡구 있으려?”

 “왜?”

 “나, 낯 좀 씻구 올게.”

  “물이 찰 텐데…….”

  “그래도 오늘은 낯 씻고 싶어!”

  “그래 알았어.”

  나는 민기에게 고삐를 건네준 다음,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팔을 휘두르며 계곡 아래로 뛰어내렸다. 발밑의 얼음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졌다. 조각난 얼음 틈으로 흐르는  물속에 내 얼굴이 있었다. 물속에 손을 담그니 얼굴은 여러 조각으로 나눠지며 일그러졌다. 손을 거두면 얼굴은 돌아오고 다시 손을 넣으면 일그러지고……. 그렇게 몇 번 손을 넣어 물장난을 쳐보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고 싶었다. 양손을 모아 물을 담아 얼굴에 뿌렸다. 머릿속 깊숙한 곳까지 냉기가 느껴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덜미 밑으로 들어간 얼음알갱이가 가슴팍을 타고 아랫배까지 녹아 흘렀다.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세수를 끝내고 언덕을 올라오며 말했다.

  “민기야, 너두 낯 씻을려?”

  “안 추워?”

  “응, 시원해!”

   민기가 잡고 있던 고삐를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나처럼 계곡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민기를 쳐다보며 내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송아지가 순간적으로 날뛰어 하마터면 고삐를 놓칠 뻔했다. 놈의 힘은 상상외로 억셌지만, 나는 그만한 일로 두려워할 풋내기는 아니었다. 놈의 반항이 심하면 심할수록 제압하는 여러 가지 방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놈과 겨루면서 순간순간 유정숙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참으로 못 견딜 일이었다. 아버지의 쇳소리 나는 절규, 유정숙의 습기 찬 목소리.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나도 모르게 고삐를 잡았던 손의 힘을 풀며 놈이 달아나길 바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놈이 뛰었다. 고삐 풀린 송아지는 뿔난 엉덩이를 요동치며 천방지축 날뛰더니 이내 달음박질쳐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야아! 물이 시원하다드니 얼음이잖어!”

  세수를 끝낸 민기가 계곡 아래에서 얼굴을 빠끔히 내밀며 나타났다. 내게는 시원했던 물이 민기에게는 얼음처럼 차가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민기는 순간 멀리 도망치는 송아지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야! 너 뭐 해? 송아지 달아나잖아!”

  그는 놀란 눈으로 달아나는 송아지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송아지를 뒤쫓을 생각도 않고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는 사태를 짐작했는지 재빨리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송아지를 잡으려 내쳐 뛰기 시작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리는 민기를 뒤쫓아 팔을 움켜쥐었다.

   “야! 너 미쳤어?”

  민기가 내 팔을 우악스럽게 뿌리쳤다.

  “소몰이가 싫다구 했잖여!”

 “지랄하지 마아!”

  민기가 울부짖으며 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냥, 도망가게 내버려 둬. 민기야아…….”

  순간 민기의 주먹이 내 얼굴에 날아와 꽂혔다.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래도 민기의 팔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졌다. 민기는 내가 붙잡은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고 나는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쓰러진 나를 향해 민기의 주먹이 날아왔고, 민기와 나는  뒤엉켜 한참을 뒹굴었다. 마구 날아오는 민기의 주먹에 이내 코피가 터져 나왔다. 찝찔한 코피가 입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냥, 도망가게 두란 말이야!”

  민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절규하고 소리 지르고 마구 흔들며 울었다. 마침내 떨어지지 않는 민기를 힘껏 걷어찼다. 민기는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는 더는 싸울 힘이 없는지 그대로 누워버렸다. 나 또한 힘을 잃고 털썩 주저앉았다. 알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라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었다. 대책 없이 솟구치는 눈물 밑으로 어머니의 잔영이, 유정숙의 땀방울이 스쳐지나갔다.

  얼마나 엉엉 울었을까. 기척조차 없는 민기가 궁금해진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였다. 일어나 민기를 돌아보니 그의 뒤통수 아래로 붉은 피가 흥건하고 흙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없었다. 민기가 죽은 건 아닌지 겁에 질린 나는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정신없이 뛰었다. 그림자는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마즈막재를 완전히 넘어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도 민기가 일어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미 산등성이를 덮어버린 검은 어둠만이 달음질치고 있는 나의 뒤를 쏜살같이 쫓아오며 엉겨 붙으려 안달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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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도시




  내가 마지막 승객인 듯싶었다.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황급히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에 올라선 후로도 가쁜 숨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열차의 연결통로에 숨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흙먼지를 털었다. 열차는 어둠을 헤집고 평행선을 더듬으며 서서히 충주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객들이 모조리 나만 쏘아보는 것 같아 불안했다. 열차 안 어스름한 귀퉁이에 몸을 감췄다. 그리고 승객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누군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살쾡이처럼 할퀴어버릴 것처럼 잔뜩 웅크리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눈빛은 공포에 질린 야행성 동물처럼 번뜩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차라리 모른 체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여유로운 척 팔짱을 껴보고 이리저리 몸도 비틀었다. 시선은 창밖으로 돌렸다. 도시의 끝을 지나는 열차의 차창으로 쏜살같은 불빛이 눈동자를 할퀴고 지나갔다.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뒤죽박죽된 생각을 듬성듬성, 조심스럽게 되새김질해보았다.

  ‘민기는 죽은 것일까? 달아난 송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송아지 주인인 유정숙의 아버지 유 씨는 어찌하나…….’

   짧은 신음을 삼켰다. 그간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나를 괴롭혔다. 다시금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떻게 해도 헤어날 수 없는 너무나도 큰 공포였다. 그 공포는 떨쳐버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생생해졌다.       

   밤이 깊어지자 승객들은 너저분하게 흩어진 채로 추위와 선잠으로 꿈틀댔다. 터널을 지나는 듯 덜컹거리는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밤의 무게를 가르고 열차는 달렸다.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소리에 빠져들다 보니 무심한 열차에 버려져 있는 것을 겨우  알았다.

  얼마를 달렸을까? 나에게도 추위가 찾아왔다. 정신은 흐릿해지고 온몸의 맥이 풀려 마치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곤두세웠던 신경은 이내 지치고 눈꺼풀까지 가물가물 내려앉았다. 졸음이 장맛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래도 애써 참으며 얼마를 더 버텼는지 모른다.

  “이봐, 내려야지!”

  어깨를 툭툭 치는 웬 사내의 고함에 놀라 눈을 떴다. 언제 잠들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입술 밑을 혀로 훑으니 쓴 맛이 느껴졌다. 

  내가 골아 떨어져 있는 동안 열차는 종착역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흐릿한 조명으로 어두컴컴한 것을 겨우 모면한 철길 사이로 승객들이 줄지어 내렸다. 피난민 행렬과도 같은 그들 틈에 끼어 열차 밖으로 빠져 나왔다. ‘조치원’이라는 역명이 아스라이 시야에 박혔다. 분명 용산 행 열차표를 구입했는데 조치원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리고 있는 것이 의아했다. 승객들은 대합실로 들어가지도 않고 열차 주변에 쪼그리고 앉거나 삼삼오오 서서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민기가 죽어서 그 범인을 잡으려고 열차를 세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포는 또 다시 내 몸을 살쾡이처럼 도사리게 만들었다. 때마침 먼발치에서 정복 차림의 사내가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인 듯싶었다. 훤칠한 키의 사내는 요란하게 호각까지 불어대며 깃발을 흔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사내를 보니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사내의 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본능적으로 사람들 틈바구니로 슬금슬금 숨었다. 턱이 덜덜 떨려 위아래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길게 호흡을 삼켰다. 차디찬 냉기에 콧구멍이 얼어 버릴 것처럼 코털에 엉겨 붙었다.

  다행히 사내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유니폼을 입은 역무원이었다. 역무원이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다. 번개처럼 나타난 열차의 세찬 바람이 온몸을 강타해왔다. 열차가 몰고 온 차디찬 바람은 사람들의 몸을 일제히 한쪽 방향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마침내 열차가 멈추자 추위에 무방비상태였던 승객들이 벌떼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엉겁결에 그들 속에 휩쓸려 열차에 올라탔다. 비로소 열차가 멈춘 이유를 알고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열차는 출발했다. 조치원에서 갈아탄 열차는 다시 어둠을 뚫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나는 여전히 구석에 처박혀 눈빛을 번뜩이다가 또 잠이 들고 말았다.

  “이봐, 종점이야!”

  종점을 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입안은 추위에 바짝 메말라 있었다. 침을 모아 간신히 삼켰다. 쓴 맛이 목구멍을 타고 힘겹게 넘어갔다. 푸석푸석해진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목소리의 사내와 일행인 것처럼 위장하며 열차에서 내렸다. 그의 꽁무니에 붙어 서울에 처음 온 두려움을 모면해 볼 심산이었다.

  주위는 아직 어두웠다. 바람조차 바짓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추위를 피하려 파고드는, 참으로 찢어지게 추운 겨울새벽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고층건물과 네온사인 불빛에 어리둥절 놀란 나를 ‘용산역’이라는 수은등이 새벽잠이 덜 깬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차에서부터 뒤따르던 사내와 광장을 지났다. 발끝까지 덮은 긴 코트를 걸친 여자들이 두 손을 겨드랑이에 깊숙이 넣고 서 있었다. 광장 여기저기에서 서성이던 여자들은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추운데 쉬었다 가요. 통행금지 안 풀렸어요.”

  대부분의 사내들은 여자들을 힐끗 흘겨볼 뿐 대꾸조차 없이 지나쳤다. 한둘의 사내가 주변을 휭 하니 둘러보고는 못 이기는 척 여자들에게 한쪽 팔을 빼앗긴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여자들이 건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자들이 말하는 곳에는 따듯한 방이 있는 모양이려니 짐작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뒤따르는 사내에게는 그 어떤 여자도 말을 걸지 않았다. 사내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일순간 일어난 일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사내를 실쭉 외면했다.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엷은 미소를 띠우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남들이 보면 영락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를 뒤따른 내 계획은 일단 성공이었다.

  사내를 따라 큰길로 나왔고 육교를 건넜다. 그사이 통행금지가 해제된 모양이었다. 정류장에는 정갈한 교복의 여학생과 행인 한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움츠러진 어깨로 얼어붙어 희미해진 가로등을 떠받들고 있었다. 사내가 정류장 가까이 도착하자 마침 택시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택시는 사내를 꿀꺽 삼긴 채 번개처럼 내 시야에서 달아났다. 택시가 사라진 뒤에는 곧이어 버스가 꽁무니를 물고 도착했다. 곧이어 버스의 찬바람이 나의 얼굴에 나뒹굴었고, 학생과 행인이 사라진 정류장에는 에나멜이 벗겨진 양철 표지판만이 뎅그렇게 남아있었다.

  나는 어디랄 것도 없이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도시의 짓눌리는 위압감과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길 바라면서 계속 걸었다. 골목을 끼고 모퉁이를 돌았다. 또 골목을 끼고 모퉁이를 돌았다. 걷는 일에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울의 아스팔트에 점을 찍었다. 아스팔트에 찍힌 점처럼 서울에서의 나는 보잘것없는 작은 점이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차들이 긴 행렬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미 수없이 쏟아져 나와 거리는 번잡해졌다. 나는 자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하릴없이 이것저것을 살피며 걷기만 했다. 음식점이나 중국집에 들어가는 것은 겁이 나 포기하고, 호주머니 속 동전을 털어 빵과 우유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렇게 어디인지도 모를 길을 얼마나 더 걸었을까? 오후가 되자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 골목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자리 잡은 골목에는 건물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손바닥 크기의 햇살이 따사로이 멈춰 있었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깐씩 햇살을 가렸다가 돌려주는 일이 계속됐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 숱한 행인들을 나 또한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무기력한 나의 움직임처럼 시간도 공간도 멈춰버린 것 같았다.

  얼마를 더 버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결국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 천길 수렁으로 추락하는 듯 아무것도 부여잡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나는 회색 도시에 팽개쳐져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회색 도시의 지독한 무관심에 나는 점으로 버려졌다. 

 

 

  어머니는 내게 바다의 울음소리를 남겨두고 떠나갔다. 춤추는 파도가 가득한 남쪽 섬마을이 고향이라던 어머니는 파도소리가 속삭이는 음률에 가깝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설명으로 그림으로만 보았을 뿐 바다의 음률을 듣진 못했지만, 아랫동네의 머슴애에게 늘 자랑삼아 얘기했다. 녀석이 비웃기에 한 번은 녀석을 실컷 패주었다. 녀석은 코피가 나는데도 울지도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시 한 번 바다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어머니는 떠나고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떠난 것도 모르고 천장을 향해 벌렁 누운 채 어머니를 기다렸다. 때 묻은 벽지에 그려져 있는 낙서들, 뚫어진 문구멍을 때운 85점짜리 시험지, 반쯤 찢겨진 채 대들보에 힘겹게 붙어 있는 부적, 박쥐처럼 메주가 열린 서까래, 다락을 통하는 비밀스런 통로를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났다. 나는 어느 이름 모를 바닷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포말이 바윗돌에 달려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하얗게 날아갔다. 나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어머니를 기다리며 포말 가까이 돌을 던지는 일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돌연  바닷물 위를 땅위를 걷듯 하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유유히 바다 위를 걸어 점점 더 먼 바다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모습은 작아지거나 멀어지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꾸만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한없이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 뿐 소리로 되어 나오지가 않았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어머니는 갑자기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순간이었다. 바다는 다시 끝없는 수평선이 되었다. 목이 터지도록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문지방의 걸린 어린애의 발처럼 입안에서만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어머니처럼 바다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라진 지점에서는 깊은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었고 마치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기까지 했다. 바다 속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머니는 바로 내 눈앞에서 물고기로 변해 헤엄을 쳤다. 어머니 주위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풀숲 사이를 헤치며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평화로워 보였다.

  큰 소리로 “어머니!” 하고 불러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의 꼬리를  덥석 물었다. 비로소 뒤를 돌아본  어머니는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었다. 거대한 이빨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었다. 기겁해서 사방을 둘러봤지만, 주위에서 평화롭게 노닐던 물고기들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는 나를 노려봤다.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그러나 마음처럼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손발은 무질서하게 허공을 헤맬 뿐 물위로 떠오르거나 놈들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내 목소리가 귓가를 쟁쟁히 울렸고, 그 순간 코와 입으로 바닷물이  사정없이 헤집고 들어왔다. 숨이 턱턱 막혔고 정신은 혼미했다.

  “자아식, 또 새우잠이군!”

  그때 아버지의 까칠한 손바닥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엄청난 가위에 눌려 고생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우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술에 절어 있었다.  나는 콧등에 잔주름을 만들며 눈두덩을 비볐다. 그때까지도 꿈이 덜 깬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부지, 엄마 왔어유?”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방 안 곳곳을 두리번거렸다. 그 어디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잠깐 기다리거라. 오늘부턴 내가 하마…….”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아버지에게 꿈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 꿈이지만 음률의 바다가 공포의 바다로 나타난 것은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암시인지도 몰랐다. 며칠 전 잠결에 윗목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놈이 누구냐며 다그쳤었다. 어머니는 그런 일이 없다며 오해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분노는 밤새 계속되었다. 어머니의 흐느낌 또한 밤새 이어졌다. 내가 아랫동네 머슴애를  실컷 패주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없었다. 밤새 흐느껴 울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나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도 어머니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끈질기게 어머니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버지의 태도는 너무 완강했다. 어머니가 잘못을 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향한 엄청난 노여움이 아버지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주량이 늘수록 몸도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했다. 걱정은 됐지만 아버지를 말릴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우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 중개인 중 누군가를 지칭하며 욕설을 퍼붓고 원망하며 술주정을 늘어놓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와 연루된 사람이 우시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모든 의문을 가슴속에 품은 채 입을 꼭꼭 다물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우시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의문 중 어느 것 하나 밝혀내거나 주워듣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머니의 따듯한 품이 그리웠다. 어머니의 바닷가, 바다의 음률이 너무도 그리웠다. 힘겹고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의 바다는 놀라운 깊이를 지닌 채 그리움으로, 서러움으로 또는 슬픔으로 나의 마음을 출렁이게 하곤 했는데…….

 

 

   눈을 떴다. 짧지만 단꿈이었다. 눈언저리에는 촉촉한 물기가 흘러 있었다. 그 물기는 차디찬 겨울바람과 마찰을 일으켜 한기를 가져왔다. 입천장은 말라붙어 입안의 씁쓸함이 목구멍까지 길게 맴돌았다.

   “저런, 나이도 젊은 사람이…….”

  할머니가 나를 보고는 딱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거리에 쓰러져 잠들었던 주정꾼처럼 민망한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얼마를 더 버티고 서서 무엇을 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막막하고 답답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엄청난 피로와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벌써 서울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버린 시간만큼 두려움도 무뎌지는 걸까?

   그런데 몹시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생겼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잠깐씩 훔쳐가는 햇살의 아쉬움이 아니었다. 점심을 걸렀어도 배고프지 않은, 알 수 없는 배 속에 관련된 문제도  아니었다. 길 건너 간판 ‘휘문인쇄소’에서 나를 훔쳐보는 교복 입은 여학생 때문이었다. 여학생은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드나들면서 쉴 새 없이 나를 확인하는 행동이 몹시 신경 쓰였다. 더구나 드르륵 소리를 내며 미닫이문을 드나들 때마다 몇 번이고 마주치는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였다. 비록 신경은 쓰여도 그런 행동이 그다지 싫지 않은 것은 깨끗하고 단정해 보이는 교복 때문이었다. 하루 사이에 걸인이 된 듯한 나와는 대조적인 단정함이 한껏 정갈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시 한동안의 시간이 지났다. 잠시 후 휘문인쇄소 여학생 때문에 거의 주저앉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드르륵 미닫이 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그 여학생이려니 생각하고는 눈길을 피하고 딴청을 피웠다. 그저 무심한 척 골목 어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틈에 길을 건너왔는지 단발머리의 그 여학생이 코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돼버렸다.

  “가출한 거 맞지요?”

  “…….”

  나는 놀랍고 두려운 마음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사장님이 좀 오래요!”

  여학생에게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여학생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미닫이문을 열자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난로 열기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하루 종일 추운 곳에서 얼어버린 얼굴이 갑자기 아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책상에 쪼그리고 앉아 일하던 두세 명의 시선까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여학생이 사장인 듯싶은 사람에게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사람이에요.”

  나는 사장에게 거의 반절을 하다시피 인사를 했다. 코가 땅에 닿을 듯이 구부정하게 허리가 숙여졌다. 그리고 여학생이 가져다주는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은애 얘기를 듣자니 아침부터 있었다고 하던데, 가출했냐?”

  사장은 은애라고 불리는 여학생을 가리키며 다짜고짜 물었다. 인물이 썩 잘난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떨어졌다. 멋쩍고 민망한 얼굴은 난로 열기로 계속 후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예에.”

   내 목소리는 작고 지쳐 있었다. 사장은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고향, 가족관계, 나이, 학력, 취미, 아침부터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이유까지 궁금한 사항 모두를 비교적 상세히 물어왔다. 나는 애써 정확하게 말하려고 더듬거렸다. 하지만 무슨 말을 어찌 대답했는지 곧 기억나지 않았다.

  사장이 말했다.

  “너 그림 좀 그리냐? 도안(圖案) 배우고 싶은 생각은 없니?”

  나는 도안이 어떤 것이냐고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어느 곳이든 당장 눈 비 가리고 몸뚱이 하나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입장이었다.

  “도안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할 게유!”

  “허허, 고향 사투리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용기가 맘에 들었어. 그럼 어디 한번 근무해 보자. 은애가 이 친구 잘 가르쳐 줘라.”

  사장이 말하자 은애는 내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사장에게 수십 번 절하듯 인사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은애를 뒤따라가면서도 또 뒤돌아보며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은애로부터 곧바로 사무실의 모든 상황을 안내받았다. 휘문인쇄소는 20여 명의 직원과 1·2층에 다양한 인쇄보조설비를 갖춘 비교적 큰 인쇄소라고 했다. 인쇄용 필름을 다루는 제판이라는 기계시설이 있는 2층에는 다락이 꾸며져 있었다. 가끔 철야를 하는 직원이 수면을 취하도록 만들어진 그곳이 나의 숙소라며 알려주었다. 은애는 때마침 다락에 기거하며 도안을 배우던 보조도안사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취직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사장과 같은 고향 출신이어서 이런 행운을 얻었는지 모른다며 그녀의 생각까지 덧붙여 주었다.

  “난 열아홉이에요. 이제 여고 1학년이지만…….”

 은애는 주간에는 인쇄소에 다니고 늦은 나이에 야간전수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은애가 학교에 가는 오후 3시 이후에는 은애의 일을 내가 대신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은애는 참으로 친절하면서도 상냥하고 열심히 사는 여학생인 듯싶었다. 내가 취직하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천운 같은 일이었다.

  “돈은 좀 가지고 왔어요? 한 달 정도 생활할 정도는…….”

  은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궁색한 변명이겠지만 소몰이를 하는 동안 돈을 모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루하루 생활하기도 벅찬 빈곤의 연속이었던 것이 창피했다. 창피한 마음에 한없이 주눅이 들었다. 은애는 사장에게 건의하여 가불 명목으로 약간의 돈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사장에게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장과 그녀의 세심한 배려에 울컥해졌다.

  내 몰골이 흉했던지 은애가 목욕탕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입장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목욕탕에 갔다. 기껏해야 여름철 개여울에서 물장구치며 몸을 씻는 것 외는 겨울 내내 목욕 한 번 할 수 없었던 나였다. 늦봄부터 물가에 가면 겨울동안 낀 때가 복숭아 뼈에 모래알처럼 박혀있던 처지였으니……. 그래도 동네에서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목욕탕의 따뜻한 물은 사치스럽고 낯설게 느껴졌다.  알몸으로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들의 당당한 모습을 쳐다보기도 민망했지만, 벌거벗은 내 아랫도리가 더 민망했다. 나는 한참을 탕 속에 숨어서 몸을 담그고 있었다. 얼었던 몸이 서서히 녹았다. 온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하면서 벌레가 온몸으로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했다. 몸을 긁을 수밖에 없었다. 가려워진 곳을 긁을 때마다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시골의 때가 물위로 떠올랐다. 둥둥 떠다니는 그것은 내 몸에서 기생하던 찌꺼기였다. 군더더기처럼 나를 괴롭히던 찌꺼기가 서울의 목욕탕에서 떨어져 물위를 떠다녔다. 떠다니는 찌꺼기를 입으로 불어 물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사람들이 조금 뜸해진 틈을 타 대충 몸을 씻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군에 간 전임 도안사의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꼭 맞는 추리닝은 나를 제법 도시적 모습으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어둡고 궁색한 다락도 내게는 최고로 훌륭한 둥지라 생각했다.  다락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임 도안사가 보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은 성인잡지 ‘선데이서울’을 정리하는데 얼굴이 붉어졌다. 가릴 곳만 겨우 가린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행여 잡지가 은애의 눈에 뜨여 오해를 받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되도록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숨겨 버렸다.  그러나 맨살의 여자들이 예쁘기도 할 뿐만 아니라 호기심까지 자극하여 한 번 더 훔쳐 본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마침내 자리에 누웠다. 길게 심호흡을 삼키자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곧 천길 바닥으로 가라앉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고향이 보였다. 어머니가 보였다.  아버지가, 민기가, 유정숙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깊은 잠에, 서울에서의 첫 번째 밤에 깊이깊이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서울에서의 첫날밤인데도 그런대로 단잠을 잤다. 잠자리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숨에 잠을 잔 결정적 이유는 아마 극도로 지친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침을 해결하기 이전에 간밤에 제판실 직원이 일러 준대로, 서둘러 사무실 청소부터 했다.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은애가 출근했다. 사무실 청소가 말끔히 된 것을 눈치 챈 은애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소개한 것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은애가 각 부서의 직원들과 첫인사를 시켜주었다. 대다수의 직원들은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다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학벌이 좋은 사람은 없다고 귀띔해 주었다.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니 적응하기 쉬울 것이라며 은애는 나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서울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단생활의 요령도 모르고 경험도 없던 탓인지 하루하루가 언제 지났는지 모를 만큼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사무실 청소를 시작으로 쉴 새 없는 심부름으로 이어지는 오전 시간을 보내면, 난롯불에  라면을 끓여먹는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점심을 해결했다 싶으면 이내 하루는 저물어 있었다. 더욱이 은애가 학교에  가는 오후 무렵에는 그녀의 몫까지 대신 일해야 했으므로 나는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비록 은애가 하는 일보다 단순한 일들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회사에서 나오는 돈은 겨우 보름 정도의 끼니를 챙길 수 있을 뿐 무엇 하나 다른 곳에 쓸 형편은 못됐다. 최소한의 생활조차도 벅찬 궁색한 금액이었다. 그것도 점심을 늘 라면으로 해결해야만 보름을 견딜 수 있는 액수에 불과했다. 야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남은 반찬으로 다음날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날은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래도 다른 인쇄소에 비하면 급료가 후한 편이라서 박봉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나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기술을 습득하는 동안에는 일체의 보수가 없는 곳이 대다수였다. 고작 야식 한 끼만을 보조해 주면서 야간에 기술을 배워야 하는 열악한 곳도 꽤 많았다. 그들은 야간 팀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주간 팀으로 옮겨야만 비로소 나만큼의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회사에 종이를 납품하는 지업사에서 재단기술을 배우는 내 또래의 사내는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잘 곳이 없어서 재단된 파지더미 속에 들어가 파지를 이불 삼아 덮고 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에 비하면 나의 푸념은 사치에 불과했다. 정말로 막막하기만 했던  용산역의 새벽에 비하면 나는 참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강해져야 했다. 사무실 분위기에 빨리 익숙해지려 애썼고 선배들에게 인정받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정신없고 춥기만 했던 석 달의 겨울이 번개처럼 흘렀다. 선선한 바람을 앞세우고 봄의 계절은 어김없이 내 코앞에 와 있었다. 길게 심호흡을 삼킬 때마다 제법 향긋한 봄 냄새가 코털을 간질이는 봄이었다. 서울의 봄 냄새는 고향의 봄 냄새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 직원들은 사장이 퇴근하고 난 저녁이면 기계실 직원들과 어울려 화투놀이를 했다. 나는 그들의 유혹도 뒤로 하고 선배의 어깨너머로 훔쳐본 그림을 도안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그려 놓고 보면 멋대로 휘갈긴 낙서 같아서 찢고 또 찢기를 반복해야 했다. 도안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끈기와 소질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도안을  하기에 적합한 섬세한 성격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우선 필요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것에 의미를 두어야 했다. 다시 얼마동안 글자 레터링을 되풀이했다. 지독한 습작의 연속이었다. 나는 점차 나만의 방법과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또 몇 달이 지났다. 사무실은 평소보다 많이 바빠졌다. 선배는 일이 넘쳐났다. 일이 벅찬 선배는 비교적 간단한 디자인을 나에게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순조롭게 작업을 성공시켰고 나는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봄이 지나 일이 뜸한 여름이 되었다. 어느덧 서울에 온 지도 일 년을 훌쩍 넘기고 반년이 더 지나 있었다. 점심메뉴는 라면에서 자장면이나 볶음밥으로 바뀌었다. 일요일이면 시골이 고향인 몇몇 동료들과 서울나들이를 다녔다.  남산과 고궁은 물론 북한산이며 남한산성 등 비교적 서울과 가까운 여러 곳을 어울려 구경했다. 그리고 술도 배웠다.

  그즈음 버릇이 하나 생겼다. 무료할 때면, 다락 깊숙이 묻어두었던 비키니 여자들을 간간히 꺼내보는 습관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염려되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걱정은 무뎌졌다. 끝내는 ‘선데이서울’의 신간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구입한 ‘선데이서울’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선데이서울’의 치정에 얽힌 기사는 말초신경을 자극해 묘한 흥분을 가져왔다. 기사 속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던 욕구를 자극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아랫도리에 불쑥불쑥 힘이 실리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엉뚱하게도 유정숙과 결혼하는 상상을 하거나 은애와 데이트하는 밑도 끝도 없는 공상도 했다. 은애를 보면서 유정숙을 떠올리는 것은 또 다른 내면의 비밀이 되었다. 유정숙에 대한 비밀은 아련하게 간직되어 고착되어 갔다.

  시간은 그녀들에 대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시간은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정숙의 얼굴을 가물가물 흐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민기에 대한 궁금증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또한 점차 잊게 만들었다. 불쑥 민기와의 그날이 떠올라 자책하기도 했지만 고향을 찾아 생사를 알기 전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안타깝게 세월의 강물은 그렇게 흐르고 또 흘렀다.

  다시 가을이 왔다. 사보의 마지막 수정자를 쳐서 편집을 끝내야만 한 달이 마무리되는 바쁜 월말이었다. 스카라 극장에서 이소룡 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원고를 가지고 사진식자 집을 찾았다. 거래처 사람들로 북적이는 틈에 평소 안면이 있던 ‘태평양기획’의 임 실장이 보였다. 나는 임 실장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실장님, 많이 바쁘신가 보네유?”

  태평양기획은 휘문인쇄소에 인쇄를 의뢰하는 거래처 중 제법 비중이 큰 곳이었다.

   “어, 강 군! 어때, 요즘 할만 해?”

   “예, 그럭저럭요.”

  “허허, 제법이야. 적응력 빠른데. 이젠 사투리도 많이 안 쓰네.”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나의 서울 생활을 낱낱이 알고 있는 임 실장 앞에서는 늘 주눅이 들었다. 임 실장은 고학력을 앞세워 우쭐하는 일이 많았다. 자신감이 몸에 밴 그는 가끔  영화감독과 여배우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곤 했다. 그는 나에겐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강 군, 마침 할 말도 있고 한데 우리 차나 한잔 할까?”

  “저하구유?”  

 “으음, 중요한 얘기야.”

  나는 임 실장에게 끌리듯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위 ‘중요한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랐다.

  “우리 회사에 퇴사하는 디자이너 녀석이 있어. 그놈 대신으로 디자이너를 구하는데, 혹시 생각이 있나 해서 보자고 한 거야. 추천하고 싶어서…….”

 내가 놀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태평양기획은 한미합작회사로서 업계에서는 선망이 되는 종합광고대행사로 명성이 대단한 회사였다. 하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실장님, 생각 좀 해야 되겠습니다.”

  “그도 그렇겠지. 그럼 며칠 고민하고 결정해서 알려줘.”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방을 나왔다. 불현듯 그동안의 서울생활이 떠올랐다. 조치원역의 공포와 용산역의 두려움이 한꺼번에 겹쳐왔다. 목욕탕의  궁상과 밀폐된 다락의 비밀스러움이 또한 겹쳐왔다. 오랜 기간의 라면이, 자장면이, 볶음밥이 겹쳐왔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살기 위해 버틴 서러움이 차올라 목젖을 적셨다. 태평양기획의 책임자급인 임 실장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나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임 실장의 제안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주었다. 그러나 은인과도 같은 사장님과 은애에게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며칠 후 나는 임 실장을 거래처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어떻게 생각해 봤어?”

  나는 또 겸연쩍게 웃기만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임 실장은 내 마음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임 실장은 이미 그의 목표를 정해놓고 있는 듯했다.

  “사장에게 말하기 곤란하면 내가 대신 얘기하면 어떨까?”

  나는 또 침묵했다. 임 실장은 침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사장에게 직접 말하겠다며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 임 실장을 만류하지도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사장에게 불려갔다.

 “임 실장에게 얘기 들었다. 네가 부탁한 거니?”

  사장의 목소리에는 노여움이 잔뜩 섞여 있었다. 무작정 상경한 형편없던 나를 거두어 준 결과가 배신으로 돌아왔다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사장은 내가 은애의 눈에 띈 것은 운명이었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말했던 자신을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사장이 은애를 그토록 신뢰하는 것은 그녀가 성실하다는 것 이전에 둘 사이의 혈연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묵으로 그 상황을 버텼다. 어떤 이유에서든 할 말이 없었다. 염치가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헛… 이제 좀 쓸 만하게 되었다 했더니, 딴 놈이 채 가는구먼 그려! 젠장…….”

   사장의 푸념에는 임 실장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도 담겨 있었다. 태평양기획에서 넘어오는 일이 휘문인쇄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임 실장의 입김이 셀 수밖에.

 “어떻게 할 것인지 며칠 생각해 보자!”

  사장은 풀이 죽은 내가 측은했던지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사장실을 나오자 동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몹시 궁금해 하는 그들을 뿌리치고 어두운 다락에 처박혔다. 다락에 처박혀 저녁도 거르고 두문불출했다.

  이튿날 소식을 들은 직원들은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오갈 데 없는 나를 거두어준 걸 뻔히 아는 동료들은 아무도 내 행동을 좋게 받아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변명을 꾸밀 줄도 모르는 나는 그 상황이 가시방석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선배는 가슴이 시릴 정도의 따끔한 핀잔을 주었다.

  “…정말, 가고 싶으세요?”

   은애가 동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은애로 인해 취직을 하게 된 걸 생각하면 누구보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구차한 변명이 될 것 같아 내 독단적인 의지가 아니었음을 말하지도 않았다.

 “나에겐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난 이해해요.” 

  어느덧 졸업반이 된 은애는 제법 어른스럽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의 단발머리는 그동안 긴 머리로 변해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교복 대신 사복을 즐겨 입는, 숙녀 티가 물씬 풍기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성격에 늘 단정한 은애는 교탁 앞의 여선생님 같았다. 그녀는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아득히 날아오르는 나비였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서 사장은 다시 나를 불렀다.

  “미스터 강, 도안사와 의논했는데 자네를 보내기로 했네. 태평양기획과의 인연도 있고 미스터 강한테 그게 좋을 것 같아서……. 하지만 거기서도 열심히 하게. 우리가 바쁠 때 전화하면 저녁이나 일요일에 가끔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말이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저 사장의 넓은 마음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를 태평양기획에 심어놓는 것만큼 두 회사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방법이 없다는 판단으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나를 스파이로 태평양기획에 보낸다면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인지도 몰랐다.

   사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핀잔을 주던 선배는 처음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선배는 오랜 실무경험에서 우러나온 기술적 문제까지 지적해 주었다. 그리고 태평양기획에 대한 정보와 임 실장의 성격까지 말하며 오히려 나를 다독거려주었다. 며칠 동안 소원했던 기계실과 제판실 동료들의 분위기도 반전되었다. 그들은 함께 축하해 주었고 이제는 거래처 고객이 되었다며 너스레까지 떨었다.

  송별회 자리에서 동료들은 나에게 과하게 술을 권했다. 나는 그들의 채근에 못 이겨 ‘울고 넘는 박달재’를 서투르게 불렀고, 정말이지 꿀꺽 눈물까지 삼켰다. 어머니가, 유정숙이, 그리고 은애가 마음속에서 눈물로 뒤엉켜 흘렀다. 쉽게 보일 수 없는 마음속의 눈물은 회색 도시에 내던져졌던 지난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분명 파도 같은 눈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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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의 슬픔




  태평양기획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휘문인쇄소의 시멘트 바닥과는 다르게 사무실 전체에 카펫이 깔려있는 것부터 다분히 위압적이었다. 또한 각 부서마다 별도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사무실 분위기는 나를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회의실 벽면에는 직원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임 실장은 솜씨가 탁월한 그림 작가의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곧 내 얼굴도 그려서 붙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실장은 나를 신입사원이라며 직원들에게 소개했다.‘리처드’라는 미국인 사장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외국인을 처음 본 나는 너무나 놀라서 큰절을 하다시피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했다. 리처드는 임 실장의 소개를 듣고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걸어왔다. 눈동자는 파랬고, 몸집은 가히 하마와도 맞먹을  정도였다. 와이셔츠 틈으로 누런 털이 삐져나와 있었고, 팔과 손등까지 털이 숭숭 돋아나 있었다. 그가 악수를 청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작은 손을 덥석 집어삼켰다. 순간 나는 누런 송아지의 엉덩이가 떠올랐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우연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서 도대체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리처드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알아보니 영어로 된 책자나 광고물을 대행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겐 더없는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보다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새로운 거래처와 영문 IBM 형태를 익히고 제작에 필요한 전문용어를 다시 배워야 했지만, 처음에 걱정한 것보다는 태평양기획에서의 일은 원만하게 풀려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보다 늦게 입사한 운전사와 친해졌고, 불교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 카피라이터와도 잘 어울려 다녔다. 중학교에 다닐 때 기본 단어를 익혀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단순히 단어만 나열했는데 리처드가 알아듣는 것이 신기했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다소 붙었다.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다.

   첫 봄이 찾아왔다. 거래처들은 저마다 봄 야유회로 술렁였고, 그 술렁임은 봄바람을 타고 태평양기획까지 날아 왔다. 우리 회사도 남이섬으로 봄 야유회를 가기로 결정되었다. 야유회의 아침은 꽤나 부산했다. 캔맥주를 사느라 늦은 리처드는 어린애처럼 수선을 떨었고, 계약을 펑크 낸 버스 때문에 임 실장도 꽤나 바빴다. 그들의 부산함은 오히려 야유회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결혼한 직원들은 가족들도 함께했는데 박 기사의 어린 두 자녀가 흥을 돋우는 데 제법 한몫을 했다. 그리고 리처드 애인도 야유회에 동행했다. 박 기사에게 리처드의 애인 이름이 달님’이라는 말을 듣고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검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거렸는데, 그 모습이 꽤 매력적으로 너풀거렸다. 허리까지 곱게 빗어 넘긴 그녀의 머리칼은 걸을 때마다 춤을 추듯 일렁거렸다.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에서 묻어나는 느낌 또한 예사 분위기는 아니었다. 몇몇 직원들은 그녀와 구면인지 목례를 나눴다. 멀리 있던 그녀는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그런데 가까이서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번개처럼 나의 뇌리에 꽂힌 충격적인 영상이 떠올랐다. 나의 뇌리에 박힌 쇠똥과 땀방울과 달아나던 송아지가 한꺼번에 가슴속 어딘가로 끝도 없이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아니… 저, 달님은…….’

  그녀의 변한 모습에 나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이미 희미한 영상으로 남은 유정숙, 소장수의 딸 유정숙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언제 서울로 상경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리처드의 여자가 되었는지는 더욱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달님이라니. 그녀의 이름이 달님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리처드의 여자라니……. 그럴 가능성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라 눈앞에서 펼쳐진 엄연한 현실이었다. 민기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생사도 확인하지 않고 충주를 떠나온 지 3여 년 만의 일이다. 나에게 유정숙은 보송보송한 솜털의 땀방울이었다. 나에게 유정숙은 고향 충주에서 식육점과 우시장을 왕래하며 여전히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유정숙이 그때와는 다른 섹시한 도시여자, 그것도 유정숙이 아닌 달님으로 변모해 있는 게 아닌가! 달님 또한 나를 보고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나를 알아본 거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분명  나를 알아본 것 같았는데,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전무에게 인사를 하더니 리처드의 옆자리로 가버렸다. 리처드는 달님이 옆으로 오자 싱글벙글 웃으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달님과는 꽤 떨어진 뒷좌석에 앉았다.

  이윽고 차가 출발했다. 그녀의 뒤통수를 훔쳐보았다. 내 마음은 송두리째 뒤엉켜 좀처럼  진정되지가 않았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유정숙이 달님으로 등장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사건이었다.

  ‘유정숙이 달님일 리는 없다. 하지만 달님은 분명 유정숙이다.’

  나는 수없이 도리질을 쳤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달님은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서 내렸다. 선글라스 뒤에 숨은 달님의 눈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간혹 나를 눈여겨보는 것 같았지만, 혼자만 느끼는 착각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님은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할 때도 섬에 도착해서도 나를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 또한 그녀를 아는 척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아, 그녀가 나를 모른 체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야유회는 한껏 무르익은 봄날을 만끽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는 손수건 돌리기를 했다. 닭싸움과 씨름과 공놀이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야유회가 진행되는 내내 건성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리 팀의 패인에 결정적 원인이 될 때마다 핀잔소리가 들렸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야유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 어스름해질 때 겨우 끝이 났다. 마지막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유정숙과 나는 야유회 내내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늦은 저녁까지 그저 달님과 나인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정숙의 등장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달아나던 송아지의 엉덩이, 아스팔트 길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쇠똥, 비닐포대를 가져와 쇠똥을 치우던 유정숙의 모습이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정숙에 대한 그리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송아지를 놓아주고 민기가 쏟아내는 붉은 피를 뒤로 하고 도망치지 않았는가! 유정숙은 그 일을 낱낱이 알고 있을 테니 이를 어쩐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보다 두려움이 한꺼번에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유정숙은 너무 오랜 세월 잊고 지낸 고향의 잔상을 물결처럼 아른거리게 했다. 아버지 무덤의 잡초는 누가 뽑을까? 민기는 살아 있을까? 또 민기 할아버지는……. 달아난 송아지는 어찌 되었을까? 소장수 유 씨는 유정숙이 달님이 된 사실은 알고 있을까? 

  고향이 그리워졌다. 고향의 여름엔 언제나 신바람이 났다. 꼬마였을 적 개여울은  알몸뚱이 그대로 즐거웠다. 햇살이 스며든 맑은 물에 그저 심통이 나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흙탕물을 치고 물거품을 만들곤 했다. 하지만 흙탕물은 한 뼘만큼 흘러가며 다시 맑아졌고, 하동들의 마음도 모두 그랬다. 여울에 미끄러져 발목에 상처가 나도 개의치 않았고, 목덜미와 궁둥이에 찜질했던 모래들이 미처 씻기지 않았어도, 마냥 벗어 제치고 놀기만 하던 여름이 있었다. 따가운 햇볕이 하동들을 시샘하는 한낮이 되면 버드나무 밑으로 숨어버렸다. 낮잠 자는 녀석의 맹꽁이 같은 배위에 모래성을 쌓는 녀석,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 원숭이처럼 나무를 흔들며 희롱하는 녀석, 개구리나 도마뱀을 잡아 모래에 묻고 장난하는 녀석, 버드나무 줄기를 뽑아 풀피리를 만들어 잠자는 친구의 귀에 불어대는 녀석……. 그래서 여름은 언제나 신바람이 났다.

  꿈같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주전자를 들고 논밭으로 나가 메뚜기사냥을 했다. 풍성한 벼이삭에 수없이 긁히고 찔리면서도 메뚜기를 잡아 엄마에게 볶아달라고 했다. 들들 볶아지는 메뚜기를 바라보면서 연신 군침을 삼키다가 메뚜기를 먹을 때면 멍석 위에 말려놓은 참깨를 훔쳐 먹는 것보다 더 고소했다. 콩서리도 잊지 못할 가을만의 신바람이었다. 볏짚을 훔치고 논두렁마다 누렇게 익은 콩을 통째로 뽑아 불을 지폈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콩 터지는 소리를 행여 주인에게 들킬세라, 마음도 콩 볶여지듯 초초했다. 허겁지겁 콩을 주워 먹다보면 덜 익어 비린 콩이나 이미 타버려 쓴 맛이 나는 콩을 먹기 일쑤였다.

  “엣 퉤퉤! 증말 비리구 비리다.”

 동그랗게 둘러앉았던 녀석들이 한바탕 소리 높여 맘껏 웃었다.

  “야, 너 꼭 원세이 같다!”

 “니는 어떻구, 증말 지새끼 같다야!”

 “히힛, 영화에서 본 손오공 같은 걸…….”

  검댕 묻은 친구의 얼굴을 보며 서로들 깔깔대며 웃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고 외치는 술래놀이는 아슬아슬한 게 즐거웠다.‘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는 밤새도록 마을의 고요와 함께 흘렀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그렇게 노랫가락과 함께 가을이 깊어갔다. 마을 공회당에 멍석과 가마니가 깔렸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모일 때쯤이면 늦가을의 하늘에는 어쩌면 별들이 그리도 많은지 황홀할 지경이었다. 밤하늘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은 금방이라도 멍석으로 쏟아져 내릴 듯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실타래처럼 끝이 없었다. 곶감 소리에 도망친 호랑이, 주인을 내몰고 천막으로 들어간 낙타, 여우의 칭찬에 입에 물고 있던 물고기를 놓친 까마귀, 강남 못 간 제비와 황금동상의 왕자, 가난한 선비와 올챙이 적 개구리가 준 냄비……. 은은한  옛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분명 모두에게 무지개였다.

 “오 분단 셋째 줄 일어나. 무지개가 무슨 색인지 말해 봐!”

 “빨주노초파남보!”

  나는 책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게 늘 궁금했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로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는 단지 울컥 그리움을 솟구치게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혹시 바닷가 어디에 살아있는 건 아닐까? 도대체 유정숙은 어떻게 달님이 되었을까? 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회의실 응접 소파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거머리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난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가져다 준 무기력이었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적막감이 감돌뿐이었다. 그림 작가가 그린, 벽에 걸려 있는 내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다른 내가 나를 내려다보며 조소를 보내는 듯했다. 그때 불현듯 낯설게 느껴지는 전화 벨소리가 주위를 삼켰다. 넋 놓고 있던 차에 놀라서 수화기를 거꾸로 들었다.

 “…….”

 그러나 가는 숨소리만이 느껴질 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화기를 바로 고쳐 잡았다.

 “…태평양입니까?”

  “예에.”

  잠시 망설이는 듯 짧은 호흡이 들렸고 이어서 조용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여쭤볼게요. 혹시, 회사에 충주가 고향인 분이 계신가요?”

  “예에? 제 고향이 충주입니다만…….”

  “저, 아시겠어요? 유정숙.”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은 나는 소파 위로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금 좀 만날 수 있나요?”

  가느다란 유정숙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튀어나와 소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잽싸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시간은 괜찮지만.”

  “그럼 됐어요. 회사에서 성당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호수다방’이 있어요. 그곳에서 뵙죠.”

  전화는 이내 끊어졌다. 정신이 멍했다. 마치 둔탁한  쇠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기를 놓은 후에도, 나는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유정숙은 야유회에서 나를 알아봤음에도 그동안 모른 척했던 것이다. 선글라스 뒤에서 야유회 내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는 모르쇠였다. 몹시 불안했다. 도대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유정숙이 만나자고 한 호수다방은 꽤나 한적한 곳이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곱게 빗어 뒤쪽에 여민 정갈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야유회에서 느꼈던 섹시해 보였던 생머리의 도시적 이미지와는 또 다른 원숙한 여인의 이미지였다. 그녀는 마치 카멜레온 같았다. 나는 그녀와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녀는 내가 놓아준 송아지, 민기와의 사건을 모를 리 없는 소장수 유 씨의 딸이었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솜털과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나를 얽매었고 오랜 시간 유정숙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서울은 언제?”

  유정숙이 먼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마치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이라도 당하는 듯 불안하여 겨우 들릴 만한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예에, 벌써 3년 돼갑니다.”

  잔뜩 긴장하여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그랬군요. 그럼 노수 씨는 송아지가 달아나던 그날, 곧바로 올라온 모양이군요.”

  그녀는 놀랍게도 내 이름은 물론 송아지가 달아난 날, 내가 서울에 상경한 사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에‘씨’자를 붙여 불렀다. 회사의 여직원들이 나를“노수 씨”라고 부를 때와는 다른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예에.”

  “그동안 많이 변했군요. 사투리도 거의 안 쓰고.”

  “매우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태연하게 보이려 애쓰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랬을 거예요. 나도 많이 놀랐으니까요. 정말 기막힌 일이죠. 남이섬에서 아는 체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어요. 미안해요. 노수 씨는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리처드의  여자가 되었는지 궁금하겠죠? 유정숙이 아니고 달님은 또 뭔지…….”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차분했다. 그러나 달님도  달님이었지만 그녀가 유정숙임을 알았을 때부터 도망쳐온 고향 소식이 가장 궁금했다.

  “달님은 그냥 달링이 변한 이름이에요.”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달님’이란 이름의 해명이 싱겁게 끝났다. 그녀가 달님’으로 불린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고향의 보름달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았던‘달님’인 유정숙이 리처드에게는 그저 달링’이었다니, 씁쓸했다. 이름만으로도 리처드에게 소중한 사람이려니 생각했던 기대가 무너졌다. 리처드의‘달님’과 나의‘달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나 내가 더 궁금한 건 달아난 송아지의 행방, 피 흘리며 쓰러진 민기의 생사, 달아난 송아지의 주인인 그녀의 아버지 유 씨의 이야기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덥석 물었다.

  “송아지는?”

  “먼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송아진 왜 놓아 주었죠?”

  그녀는 웃음 섞인 어조로 그러나 약간은 취조하듯 되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애써 침착하게 대꾸했다.

  “저도 그때 맘 잘 몰라요.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굳이 그렇게 대답한 것은 당시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또 왜 그랬는지 꼬집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라면 그녀에게 마음을 사로잡힌 탓일 것이다. 아버지 유 씨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기에, 나는 유 씨의 송아지를 놓아주는 것으로라도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쇠똥을 치우던 유정숙과 내 손아귀에 붙들린 송아지가 교차되면서 나도 모르게 저지른 행동이었다.

 “됐어요. 꼭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미 오래전 일인데요 뭘.”

  그녀가 미소 띤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웃음을 쳤다. 그 눈웃음에 나는 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솜털 사이사이에 맺혔던 이마의 땀방울에 빨려 들어간 그날 이후로 나는 아직까지 유정숙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의 눈웃음에 다시 텀벙 빠진 것이다. 나는 애써 마음을 부여잡았다.

  “그날 별일은 없었어요. 도망가던 소는 바로 찾았고, 친구도 몇 바늘 꿰맬 정도의 상처였고요. 소전에서는 오히려 도망간 노수 씨가 잘 지내나 걱정할 정도로 작은 사건이었어요. 혹시 송아지 주인이 우리 아버지라서 놓아준 것 아녜요?”

  그녀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며 긴 한숨을 들이켰다. 오랫동안 가슴을 조이며 살게 했던 그날 일이 그렇게 싱겁게 끝난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 가위 눌리며 괴로워했던 일이었다. 누구에게 확인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가슴앓이가 유정숙으로 인해 말끔히 씻겨 지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는 참으로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수없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금도 그때 왜 그랬는지 잘 생각나질 않습니다. 송아지가 날뛰는 것을 보니까 그냥 불쌍하기도 하구, 괜히 아가씨 생각도 나구.”

  비밀이 엉뚱하게 튀어나왔다. 엉겁결에 말해 놓고는 나도 놀랐다. 늘 마음에 있었지만  그녀에게 말할 수 없던 비밀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해놓고도 그녀가 어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요.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 사건은 나하고 상관도 없고 또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여자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젠 다 잊은 일이기도 하구요.”

  그녀는 그동안 불안했던 내 마음을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3년 내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묵직한 체증이 일시에 녹아내렸다. 그녀로 인하여 녹아내리고 있는 것은 비단 체증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땀방울에 녹아내렸고 그녀의 눈웃음에 녹아내리는 내 마음을 그녀는 아마도 모를 것이었다.

  때마침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어와  다방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성경책을  하나씩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 교회의 일행인 듯 보였다. 그들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손님이 그녀와 나뿐임을 확인하고는 마구 떠들기 시작했다. 고작 일행 중 여자 한 명만이 슬금슬금 주변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달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리를 힐끗 흘기어보았다. 나와의 대화를 방해받고  있는 것이 몹시 신경 쓰인다는 표정이었다.

  “여기는 시끄럽군요. 다른 곳으로 옮기죠. 내가 저녁 살 테니.”

  유정숙이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춤주춤 망설이는 나에게 마치 동생을 다루듯 채근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술이나 한 잔 해요!”

   나의 겸연쩍은 표정은 무시당했다. 그녀는 이미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일방적인 행동에 이끌려 다방을 나왔다. 엉겁결에 다방을 나온 나는 말없이 그녀의 발자국을 밟으며 인근 경양식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양식 집은 분위기 있는 조명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마치 연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밀폐된 공간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낯선 분위기 탓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기둥에 의지해 겨우 균형을  잡았다. 또 소파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더듬거려야 했다. 컴컴한 탓에 가까스로 자리를 찾아 그녀와 마주앉게 되었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말쑥한 사내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그가 정중히 메뉴판을 내밀자 그녀는 일방적으로 맥주와 과일안주,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내가 낼 테니…….”

  유정숙은 민망해 하는 나의 표정을 금방 알아채고는 선심을 쓰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녀의 자유스러운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리처드와 종종 들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드가 앉았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유 씨 소식이 궁금해 물었다.

  “그런데 유 씨 아저씨는요?”

 “지금 미아리에 살아요. 아마도 노수 씨를 보면 무척 반가워할 거예요. 주소 알려줄 테니 언제 한번 시간 내서 가 봐요. 나 만났다는 말은 하지말구요.”

  “예에, 그래야죠!”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그때부터 장사가 잘 안되었어요. 차차 빚을 지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다가 정육점 정리하고 집안 모두 상경했죠.”

  맥주와 안주가 도착하자 그녀가 먼저 나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술 잘하세요?”

 “그저 별로…….”

  “남자는 술도 약간은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녀가 건배를 하자는 뜻으로 잔을 들어 내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최소한의 보조는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잔을 부딪쳤다. 그녀는 건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단숨에 잔을 비웠다. 나 또한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갑자기 들어온 술이 배 속을 싸늘하게 훑고 내려갔다.

   그녀는 술잔을 놓고 옛일을 회상하듯 달변을 거침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본래 어려서부터 아버질 싫어했죠. 그래서 상경한 후 집을 나와 외국인광고회사에 다니는 친구 집에서 살았어요. 그곳에서 한국에 들어온 리처드를 알게 됐고요. 친구가 다니는 회사 사장과 리처드는 친구였어요. 리처드는 태권도 관련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했어요.  그러다 리처드가 지금 노수 씨가 다니는 태평양기획을 만든 거죠. 리처드는 뉴욕대 광고학과 출신이거든요. 일 년 전부터는 리처드와 동거하고 있어요. 물론 집에선 전혀 몰라요.”

   아스팔트 위 쇠똥 사건이 있던 그날, 광고회사에 다닌다는 친구가 서울로 상경하면 책임지겠다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결국 그 친구와의 인연이 태평양기획과 연줄이 닿아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와의 인연은 문득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끈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가 단숨에 다음 술잔을 비우고는 또 잔을 부딪쳐 건배를 요청했다.

  “노수 씨하고는 참으로 기이한 만남인데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죠?”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변해 있었다. 짧은 시간에 소녀에서 숙녀로 뒤바뀐 모습을 그녀는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변한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고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꿈이 있었다고 했다. 간호보조원이 되어 흰색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고 싶었던 소박한 소녀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 고집을 꺾지 못해 꿈이 무산되고 오늘에 이른 것을 후회한다고도 했다. 아버지, 소장수 유 씨에 대한 불만이 유달리 많았고 유 씨의  주벽에 앙칼져진 어머니, 몇 년째 무위도식인 오빠, 여동생도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매달 생활비를 보낸다는 그녀는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리처드와의 동거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스테이크가 들어오고 맥주를 추가로 더 주문할 때까지도 그녀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리처드는 미국에 부인이 있어요. 언제 미국으로 갈지는 몰라도 나를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아요. 외국인의 사고방식은 우리와는 다르죠.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해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이젠 나 자신한테도 결코 자유스럽지 못해요.”

  불현듯 누런 털이 숭숭 난 리처드의 커다란 손이 나의  손을 삼켜버렸던 일이 떠올랐다. 씨름선수 버금갈 정도의 체격인 리처드와 지극히 동양적인 몸집의 유정숙은 그다지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 그림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술기운을 빌어 토해내는 그녀의 하소연이 내 가슴에 또 다른 아픔으로 밀려왔다. 어떻게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스스로를 학대했는지……. 그녀의 눈동자에서 참나무 껍질처럼 붉은 노을이 보였다. 하늘과 땅이 간데없이 붉은 빛으로 고향을 덮을 때면 나는 미친 듯이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 노을에 있던 어머니 얼굴이 유정숙의 눈동자에 고여 있었다. 취기로 인해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양쪽 볼은 사과처럼 익어있었다. 솜털 속의 땀방울이,  생머리의 섹시함이, 머리를 똬리 틀어 여민 원숙함이, 붉은 사과 속에 숨어있었다.

 “…리처드와는 행복합니까?”

  내가 연민을 퍼부었다. 마음 한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유정숙에 대한 향수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둥글게 살려고 애써요. 모가 나면 정에 맞으니까요.”

  그녀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이슬은 졸린 조명 불빛에도 구슬처럼 빛났다. 이슬은 몇 번의 깜박임으로 이내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그녀의 이슬은 비단 술기운 때문만은 아닌 듯 보였다.

 “미안합니다. 공연히 물어봐서.”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마음을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진정으로 미안했다. 어루만져 주어야 할 상처를 덧낸 격이나 다름없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내 짐을 덜어내려고 한 말 아니에요. 그냥 넋두리 삼아…….”

  그녀는 조금은 후련해졌다는 듯 미소마저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에는 슬픔이 있었다. 슬픔을 감추려고 하는 미소가 더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 후로도 유정숙은 고향 소식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털어놓고 싶지만, 그럴 상대가 없었을 터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애꿎은 술만 입안에 털어 넣었다. 마침내 취기가 올라 내 코끝으로 트림이 치받힐 때가 되어서야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오늘은 고마웠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유정숙이 먼저 인사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비틀대는 그녀를 잡아주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유정숙은 마침내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그녀가 동공에서 자취를 감춰버릴 때까지 끝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그녀가 사라진 출구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남은 맥주만을 입안에 또 털어 넣었다.

 

 

  며칠 후 나는 유정숙이 알려준 미아리 산 100번지 주소를 가지고 유 씨를 찾아갔다. 그러나 길이 복잡해 같은 골목을 몇 번씩 오가며 헤맸다. 가파른 골목길은 끝도 없이 하늘 가까이 이어져 있었다. 시골에서처럼 쉽게 집을 찾으리라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산 수박과 정종은 왜 그렇게도 무거운지 땅바닥에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벼랑을 오르고 또 오르는 사이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옷과 살은 서로 달라붙어 끈적끈적하기까지 했다. 유 씨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렸다.

  한 시간여를 헤맨 끝에 겨우 유 씨 집을 찾았다. 산 하나를 완전히 점령하며 다닥다닥 붙은 초라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동네였다. 집들이 어찌나 낡았는지 집 모양새를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모은 자재를 엮어 엉성하게 지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고작 눈비나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청계천과 중랑천의 판잣집이 대대적으로 철거되어, 철거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산으로 밀려난다더니, 유 씨가 사는 미아리 산 100번지도 그곳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혹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이들의 둥지인 듯 고달픈 냄새를 가득 품고 있었다. 그 집단의 언저리에 유 씨가 있었다.

  “어이쿠 이게 뉘기여?”

   초저녁인데도 이미 취기가 올라 있는  유 씨는 신기할 정도로 나를  쉽게 알아보았다. 속옷 차림으로 앉아 혼자 술을 마시던 유 씨는 나의 등장으로 인해 외로움과 무료함이 한꺼번에 해갈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집을 찾는데 지쳐버린 나는 우선 큰절로 인사만을 대신했다. 

  “그래,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서울은 언제 올라온 거구?”

  유 씨는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동사무소에서 주소를 알아냈다는 거짓말을 덧붙였다. 물론 도망친 송아지와 민기의 일은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유정숙과의 약속대로 내가 유정숙을 만난 사실을 눈치 챌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도망친 송아지는 바로 잡았지. 충주 바닥에 놈이 가면 어딜 가겠어. 재수가 없는 놈 같아서 이튿날 주덕 장에서 본전에 팔았어. 자네두 알지. 그때가 좋았어. 내가 사겠다고 마음먹은 소는 못 산 게 없었으니까 말여. 배짱두 꽤 있었지.”

  유 씨는 그날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내가 고삐를  놓은 것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소장수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동안 우시장에서 잔뼈가 굳은 유 씨를 인정하고 대우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 씨는 나로 인해 우시장을 주름잡던 옛 시절이 더 그리워진 듯했다. 유 씨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다가 안 되기 시작하는데 지랄같이 안 풀리더군. 사는 소마다 밑지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었어. 일 년 만에 가진 돈 다 까먹었지. 아예 망해버렸어. 제기럴……. 죽어두 고향에서 죽겠다구 했는데, 고향 떠나오니 제대루 되는 게 더 없어. 큰 딸년은 딸년대루 나가  살구, 집안이 엉망이여. 요새는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어. 미치구 환장하겠구먼……. 우시장이 그립네 그려.”

  푸념을 늘어놓은 유 씨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입가에는 거품까지 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유 씨가 망하게 된 것이 공교롭게도 내가 송아지를 놓아준 그 사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 원망의 화살이 내게 쏟아질까 초조했다. 하지만 기세당당하게 황소를 낚아채고 우시장을 주름잡던 유 씨의 눈매는 술에 절어 빛을 잃고 있었다. 다만 작은 일에도 흥분하던 그의 목소리만이 여전할 뿐이었다.

 “또 그 듣기 싫은 소리, 그 입 좀 가만히 못 혀유!”

  유정숙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핀잔을 쏟아 부었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내가 사온 정종으로 술상까지 받아 내오던 중이었다. 그녀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녀의 환대는 고향처럼 따뜻했다. 유 씨는 늘 그래왔다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다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식 키우는 게 다 헛것이여. 사내 녀석은 몇 년째 뭔 공부를 한다고 지랄이구, 뭘 하는지 밤낮을 바꿔 처질러 자는 년 하구……. 큰 딸년 아니면 밥도 못 먹을 판이여.”

  무너진 가장의 울분이 쏟아졌다. 유 씨는 유정숙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비록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딸일지라도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딸이 대견스럽고 그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정숙의 소식을 전해줄 수 없었다. 유 씨가 유정숙이 외국인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 씨의 푸념과 자랑과 회상이 술잔과  함께 서너 차례 오고갔다. 이미 취해 있던 유 씨는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술을 마셨다. 내가 약간의 취기를 느낄 때까지 부부의 푸념과 핀잔은 반복되었다. 푸념과 딱 그만큼의 핀잔이 되풀이되는 집안 분위기가 몹시 짜증스럽다던 유정숙의 하소연이 이해됐다. 더 있다가는 곤란해질 것 같아 은근슬쩍 자리를 정리했다.

 “아저씨,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들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여,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더 있다가 가게나!”

  나는 유정숙의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남편이 못마땅해 화가 잔뜩 올라 있었다. 행여 술 취한 남편이 나에게 실수라도 할까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유 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아저씨 건강하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유 씨는 아쉬운 듯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를 따라 나섰다. 그는 골목 어귀를 빠져나와 한참을 배웅했다. 유 씨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것인지 술친구가 필요해서인지 주춤주춤 망설이다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잡아끄는 손목의 힘이 황소를 낚아채던 때처럼 힘이 남아 있었다.

 “한잔 더 하세 그랴.”

  나는 유정숙의 어머니 얼굴이 자꾸 떠올라 사양했다. 그러나 유 씨의 성화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손을 이끄는 대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동네 작은 구멍가게 옆의 들마루에 앉았다.

  “유 씨, 오늘도 벌써 취했구랴. 적당히 들게나. 몸 생각도 좀 해야지.”

  가게 주인인 듯한 노인이 유 씨를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나 유 씨는 시큰둥할 뿐 대꾸가 없었다. 유 씨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유 씨가 술을 시키자 코웃음을 친 것으로 보아 유 씨와 막역한 사이인 듯했다. 

  못마땅한 표정의 가게 주인이 김치 몇 조각과 막걸리를 가지고 나왔다. 유 씨가 막걸리를 한 대접 따랐다. 그리고 보는 사람도 시원할 정도로 한 입에 쏟아 부었다. 막걸리가 턱 밑으로 몇 줄기 흘러내리자 유 씨는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맛있게 입맛까지 다셨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유 씨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소장수들의 이야기, 국밥집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전의 풍경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그는 유정숙의 이야기와 민기 할아버지의 죽음까지 터진 봇물처럼 쏟아냈다. 민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놀랐지만, 별 다른 질문은 할 수 없었다. 유 씨의 이야기에는 고향이 있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져 나는 곧 짬을 내서 고향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한 그리움 속에는 민기와 아버지의 산소가 있었다.

  유 씨는 끝내 인사불성이 될 상태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마치 그 자리에 꼬꾸라져 죽을 사람처럼 술을 마구 쏟아 부었다. 그리고 꼬부라진 혀로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어둠은 혼돈을 먹어치웠다.  유 씨의 혼돈도 나의  혼돈도 모두 집어삼켰다. 산 아래는 야경이 빛나고 있었다. 치열했던 한낮의 열기를 모두 삼켜버린 거대한 고요가 마치 별빛처럼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빛 없는 도시의 밤은 야경이 곧 별빛이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야경만으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산 아래의 밤이었다.

  “자네, 혹시 어머니가 어디 사는지 소식은 알고 있는 겐가?”

  뜬금없이 유 씨는 어머니를 이야기했다. 술기운에 나른해져 기운조차 없던 내 눈에 핏발이 돋았다. 유 씨의 입에서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튀어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유 씨는 내 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있는 데를 아세요?”

  “들은 얘기가 있지. 아마 끝섬이라고 했지. 끝섬은 멀리 있다는 뜻일 게야. 섬 이름은 나도 모르네.”

  “누가 얘기했어요?”

 “누구는 이 눔아, 니 애비지.”   

유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짧은 순간이지만 생각했다. 쉰 목소리로  딸꾹질과 함께 쏟아내던 아버지의 마지막 절규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의 행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찾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면서 그 중요한 이야기를 유 씨에게는 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 눔아, 여적 모르고 있었던 게여?”

  유 씨의 호통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섬에서 무슨 장사를 한다더구먼.”

  유 씨가 한심스럽다는 투로 다시 중얼거렸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어머니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토록 알 수 없었던 어머니 소식을 이렇게 쉽게 유 씨에게 듣게 된 것이 어이없었다.

  어머니의 소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간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다. 나를 제외한 우시장의 소장수는 모두 알고 있었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단지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거처를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최소한 아들인 나에게는 그 거처를 알려주었어야 옳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행방을 까맣게 잊도록 비밀에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그 비밀을 유 씨에게는 말했던 것인가!

  나는 유 씨를 채근하여 어머니에 대한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어찌나 취했던지 유 씨는 마지막 기운까지 소진되어 죽어 널브러진 문어마냥 늘어진 지 오래였다.

  “이제 집에 들어가시죠, 아저씨!”

  그때까지도 가게 주인은 유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짜증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한지 주인은 유 씨를 잔뜩 노려보았다. 유 씨가 비틀대며 일어서자 주인은     “또 지독히 퍼 마셨군!”하며 빈정댔다.

 “오늘도 외상인가?”

  가게 주인의 퉁명한 물음에 유 씨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았다. 유 씨는 그의 빈정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꾸조차 없었다. 나는 술값을 계산하고 유 씨에게 줄 담배 한 보루를 산 다음 어깨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골목으로 돌아섰다. 골목은 술에 취해 흔들거렸다. 몇 걸음 걷던 유 씨가 갑자기 담벼락에 비스듬히 버티고 서서 소변을 배설하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배설하는 소변 줄기가 지그재그로 춤을 추며 돌담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러다가 유 씨는 토악질을 하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식환자처럼 기침을 되풀이했다. 놀란 내가 등을 꽤 오래 문질렀음에도 유 씨의 기침과 구토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기침이 멎었을 때 유 씨는 나의 등에 엉겨 붙었다. 술기운 탓도 있겠지만 초여름인데도 날이 더워 유 씨를 업은 등줄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에이구 지랄, 술이 원수여.”

  내 등에 업힌 유 씨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아내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한탄했다. 이 지경까지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유정숙의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애비가 저 모양이니 집안 꼴이 이 모양이지!”

   그녀는 혼잣말처럼 또 푸념을 뱉어냈다.

  “우이씨!”

  갑자기 유 씨 입에서 험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아내의 혼잣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유 씨가 등에서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그리고 난데없이 허공에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힘이 어디서 솟았는지 제법 공격적인 자세까지 나왔다.

  순간 마룻바닥 가장자리에 둔 화병이 유 씨의 발끝에 닿았다. 화병이 유 씨의 발길질에 허공으로 날았고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거울은 조각났다. 마른  꽃가지와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지럽게 흩어진 유리 조각 사이로 화병에 채워져 있던 물이 유 씨의 발끝을 적셨다.

  충격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은 나와 유 씨의 얼굴을 모자이크처럼 쪼개어 놓고 징글맞게 비웃고 있었다. 거울은 흔들릴 때마다 또 다른 각도의 모자이크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술독에 빠졌던 흉측한 유 씨와 나의 얼굴은 더욱 볼썽사납게 괴물이 되어 비틀거렸다. 거울이 비틀거리는지 내가 비틀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자알 하는 구랴. 이제 없는 살림까지 다 부수는 구랴!”

  유정숙의 어머니는 한술 더 떠 유 씨를 윽박질렀다. 나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유 씨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 씨는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고삐 잡힌 송아지처럼 방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마침내 천장을 향해 그가 길게 누워버렸다.

  밖으로 나와 보니 유정숙의 어머니가 깨진 유리 조각을 청승맞은 몸짓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괜찮으이, 그 양반은 잠든 모양이지?”

  “예에.”

  “밤도 늦었는데 자구 가지 그랴.”

  “아닙니다. 가 봐야죠.”

  “그러지 말구 내일 가시구랴. 저 양반 밤새 주정할지두 모르니 옆에 있으면 좀 낫지 않겠슈.”

   나는 마지못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무거운 고요가 가득했고, 전등불은 전구의 수명이 다 되었는지 깜박거리며 졸고 있었다.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유 씨 옆에 나란히 누웠다. 하지만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유 씨를 보았다. 유 씨는 교도소의 높은 철창을 올려다보듯 방바닥에 달라붙어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공을 주시하는 듯 보이는 유 씨의 감긴 눈가에 창밖에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았다. 불빛은 유 씨의 움직임에 따라 눈가에서 잠깐 빛났다가 귀밑으로 흘러내렸다. 유 씨는 잠든 것이 아니라 홀로 눈물을 흘리는 듯 보였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시끌벅적했던 충주의 우시장과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정숙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바다, 아버지의 쇳소리, 유정숙의 하소연이 나의 마음을 옥죄었다. 눈을 감았다. 나도 유 씨처럼 울고 싶은 서글픈 밤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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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설움




 태평양기획은 일류호텔의 영문판 월간 매거진을 창간하면서 한결 바빠졌다. 나는 사진식자를 찾으랴, 제판집을 다니랴, 인쇄소며 제본소는 물론 광고업체 필름까지 전달받으러 다니는 등 거의 서울 전역을 찾아 다녀야만 했다. 광고업체는 그동안 다닐 기회가 없었던 초일류기업들로서 건물이 웅장해서 가는 곳마다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나는 최대한 여유 있는 척했지만 항상 마음이 움츠러들고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처드가 자신이 타고 다니던 회사 차를 내주어 박 기사와 가끔 동행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좀 낫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다니느라 내가 원했던 디자인 실무를 할 시간이 거의 없어 안타까웠다.

 어쨌든 매거진 창간호가 나왔고, 나는 몇 번이나 책 속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무슨 역할을 했던 월간지 첫 페이지, 디자이너 난에 'Nosoo Kang’이라는 내 영자 이름이 인쇄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충분히 흥분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덜렁 서울에 내던져졌던 이방인이 이 정도 일을 해냈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일취월장이었다. 

 호텔에서 매거진 창간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나와 박 기사는 차를 주차하고 22층 스카이라운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올라갔다. 출입구에 걸린 창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먼저 나를 압도했다. 홀 중앙에 조각된 독수리 형상의 얼음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독수리 부리 끝에는 녹아내린 물방울이 맺혔다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홀 안의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음식까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화려했지만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이쪽저쪽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리처드와 전무는 외국 사람들과 무언가 부지런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먼저 도착한 임 실장과 직원들도 끼리끼리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 파티장을 흔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들 속에는 잡지에 등장하는 금발의 광고모델도 보였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옆으로 생머리를 등 뒤까지 길게 늘어뜨려 고운 자태를 한껏 뽐낸 유정숙이 보였다. 화사한 은빛 롱드레스에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정숙이 내게는 금발의 모델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유정숙은 홀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본 듯했지만,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행동으로 서로의 사이가 알려지는 것은 나 또한 원치 않는 일이었으므로 그녀의 모르쇠가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도록 좀 더 구석진  귀퉁이로 숨어버린 것은 오히려 나였다. 마침 눈이 마주친 임 실장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임 실장은 미소 같기도 한 야릇한 표정을 보이며 나를 보지 못한 듯 옆 사람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나를 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 경리인 미스 김에게도 미소를 건넸다. 하지만 미스 김에게서도 임 실장과 같은 억지 섞인 미소가 스치는 것을 순간적으로 목격했다. 직원들이 나를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몸으로 직감했다. 한낱 급사 역할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출판기념회장에 나타난 것이 그들에겐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정장 차림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후줄근한 와이셔츠 차림의 나는 이미 그들 사이에 껴서는 안 될 이방인이었다.

  나는 신사복 한 벌이 없었다. 변변한 넥타이 하나도 없었다. 넥타이를 맬 줄도 모르는 나에게 박 기사가 자신의 넥타이를 매 줄 때부터 분위기를 알아차려야 했다. 출판기념회에 나도 가는 거냐고 임 실장에게 물었을 때, 그의 어정쩡한 표정과 건성으로 하는 대답의 의미를 진즉에 눈치 챘어야 했다. 그 정도의 눈치도 없었던 내가 순진했다.

  나는 슬며시 창가로 다가갔다. 발아래 펼쳐진 도시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로 찬란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와 굽어보는 서울의 야경은 오히려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 야경은 유 씨의 미아리 산꼭대기에서 느낀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서글픔은 찬란한 야경도 그저 서글픔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말없이 파티장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마침 나비넥타이의 말쑥한 보이가 잔을 소반에 받쳐 들고 홀을 돌고 있었다. 나는 훔치듯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척 한 모금 마셨다. 순간 코끝이 확 달아올랐다. 독한 알코올은 혓바닥을 타고 입천장을  훑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로 목젖으로 넘어가 이내 배 속까지 자극시켰다.

 “허허, 그래도 넌 스트레이트로구나!”

  박 기사가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박 기사 또한 그를 상대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는지 나를 찾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박 기사의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둥지에서 떨어져 아스팔트에 내던져진 새처럼 비참한 자괴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조가 내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보직도 없는 머슴살이 급사였다. 명색은 디자이너로 스카웃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해온 일로 봐선 결코 그만한 대우는 받지 못했다. 애초부터 회사에서는 나를 심부름꾼으로 채용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부름꾼에 불과한 일을 지시받으면서 나는 여섯 달을 부단히도 열심히 일했다. 태평양기획에서의 여섯 달이 부푸러기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반딧불과도 같은 차들의 행렬이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이동하는 광경은 마치 시골에서 본 개미의 이동 행렬과 비슷해 보였다.

 “이봐, 우리도 저기 가서 꼽사리끼세.”

 박 기사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어 왔다. 그가 손짓하는 장소에서는 뷔페식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박 기사와 나는 물위에 뜬 기름과도 같았다. 파티장은  내 마음과는 다른 즐거움의 도가니였다. 어울리지 못하는 나만이 이질감에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무리 없이 곧잘 어울리던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특수한 환경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못마땅했다. 이곳은 초라한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기사님이나 하세요. 전 먼저 가렵니다.”

  나는 애꿎은 박 기사에게 화풀이를 하고 파티장을 나왔다.

 

 

 이튿날 파티 도중 나의 이탈을 꼬집거나 힐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흥겨웠던 추억들만 서로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누구는 양주를 맥주처럼 마시어 정신없이 취했다느니, 누구는 독수리 입에서 떨어지는 얼음물과 칵테일을 해서 함께  마셨다느니, 온통 그들만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아직도 파티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밤새 골똘히 고민했던 사안을 건의하기 위해 기획실을 나와 전무실로 갔다. 전무는 월간지‘경영과 마케팅’에 연재하는 원고를 작성 중에 있는 듯 보였다. 대학에서 광고학을 공부한 전무의 글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았지만, 직원들 말에 의하면 글 솜씨가 훌륭하다고 했다. 그는 카피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매월 원고료를 받으면 직원들 회식을 시켜주곤 했다.

 “전무님, 저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무가 만년필을 원고지 위에 올려놓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예, 그러세요.”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면서 톡톡 쏘는 전무의 말투는 전무라는 그의 체통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였다. 여성스러운 말투와 더불어 가벼운 목소리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전무는 자기 목소리에 불만이 많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목소리가 오늘따라 가볍게 느껴졌다.

 “전무님, 심부름 하는 여직원을 한 명 채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무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처음 임 실장님 말로는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이 되도록 심부름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간단명료하게 절박한 불만을 밝히려고 애썼다. 전무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뜸  내 의견을 수용하고 리처드와 의논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돈을 넣더니 말했다.

 “사장님과 의논해서 생각해 보지요. 그리고 이 돈을 리처드에게 갖다 줘요. 지금 광고주와 만나고 있는 중이에요.”

 봉투를 받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막상 이야기를 하고 보니 나의 보잘것없는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직원을 뽑아달라고 한 것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결과가 나쁘면 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무의 답변을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리처드가 있는 스탠드바는 한낮인데도 제법 손님이 많았다. 근처에 외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고급 호텔이 많아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리처드는 화장이 짙은 여자를 옆에 앉혀두고 수염이 많은 외국인과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한 리처드는 이미 전무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대뜸 손을 내밀며 봉투를 달라고 했다. 누런 털이 숭숭 난 송아지 같은 손에 봉투를 건넸다. 나는 리처드의 옆에 앉은 짙은 화장의 여자를 힐끗 훔쳐보았다. 천박스러울 정도의 화장으로 도배한  얼굴 아래 깡마른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휘문인쇄소에 들렀다. 은애와 차 한 잔을 나눴다. 학교를 졸업한 은애는 날이 갈수록 어엿한 숙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보였다.

 “요즘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한가해서 살만 자꾸 쪄요.”

  그녀의 미소가 맑고 싱그러웠다. 곧 만개할 꽃봉오리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귀엽고 뽀얀 얼굴이 더없이 편안하게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그냥 지금이 보기 좋아요!”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은애는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날씬한 여자들을 좋아한다는데 엉뚱하네.”

 “정말이에요. 난 조금은 통통한  여자가 믿음직하고 편안해서 좋아요!  어떨 땐 누나 같은 생각도 들구…….”

  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오늘의 나를 있게끔 첫 단추를 끼워 준 은애의 몸집이 동글동글하고 통통하기 때문에 은연 중 각인된 느낌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아련해져가는 어머니와 너무도 닮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랬다. 흰 살결과  동그란 얼굴, 통통한 몸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분위기였다. 은애는 마치 누나와도 같았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분위기의 여자였다. 유정숙에게서 느끼는 어머니와 김은애에게서 느끼는 어머니는 분명 서로 달랐다.

 “노수 씨가 마른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통통한 사람을 좋아하나 보네요. 난 살이 찌는 게 정말 싫은데…….”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명랑하게 웃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애는 언제부터인가 순간순간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헐적으로 가슴에 자리 잡고 있던, 들킬까 염려되는 혼자만의 느낌이기도 했다. 은애의 편안함은 이미 유정숙에게 느끼는 보송보송한 이마의 땀방울과는 또 다른 의미로 정착되어 있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면 더없이 편할 것만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은애가 먼저 데이트라도 신청한다면 기쁠 일이겠지만, 내 처지에서 먼저 데이트를 신청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불쑥 데이트를 신청하고 말았다.

 “저어, 은애 씨! 이번 일요일에 저랑 데이트하면 어때요?”

 은애에게서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명랑하던 은애지만 말문이 막혔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은애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대책 없이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녀의 침묵에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마음에 있는 말을 힘겹게 꺼내 놓고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여진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이윽고 은애가 입을 열었다.

 “…난 그냥 노수 씨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 지금처럼 편안한 감정으로요.”

  그녀가 데이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멋쩍어졌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죄송해요. 좋은 감정을 흔들어 놓아서. 친구 같은 마음 변하지 않을게요.”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은애의 우정에 고마움을 표했다. 굳었던 은애의 얼굴이 조금씩 펴졌다.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떠나가 버린 어머니의 그리움을 은애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유정숙의 애틋함을 은애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은애가 승낙하면 유정숙에 대한 그리움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은애의 데이트 거절이 그다지 불쾌하거나 서운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로 은애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사무실의 리처드와 휘문인쇄소를 못마땅하게 대하는 임 실장의 권위적 태도에 대한 이야기, 별 볼일 없는 나의 위치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었다. 그래서 나는 은애 덕에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늦게 유정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요즘 리처드가 이상해요. 아직 집에 안 들어 왔어요. 전무님은 자꾸 딴소리만 하는데 노수 씨가 돈을 가져다 준 거기가 어디였죠?”

  유정숙은 내 상황을 뻔히 아는 듯 말했다. 전무의 심부름으로 내가 리처드를 만나고 왔다는 내용을 그녀는 상세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 스탠드바였습니다.”

 “어디에 있어요?”

 “…명동요.” 

 “누구와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외국인 남자와 업무상 만나는 눈치던데요.”

  나는 다른 여자도 한 명 있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관계도 모르면서 화근의 단초가 된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유정숙은 많이 흥분하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리처드의 외도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나와의 통화는 미리 추리해 놓은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그녀는 내 말까지도 의심하는 듯했다.

 

 

  나는 일주일 내내 유정숙의 전화로 인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또한 여사원의 채용을 기다리며 전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러나 리처드는 물론  전무 또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상의 업무에만 열중이었고, 유정숙으로부터 연락도 없었다. 나 외의 다른 직원 누구도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기에, 나 혼자만  전초전의 긴장감으로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일주일이 더 지나도록 그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가 타고 숨이 막히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결국 전무와 다시 대면했다.

 “전무님, 여직원 문제는…….”

 “바쁜 일들이 많아서 아직 사장님과 의논하지 못했어요.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전무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답변은 없었다. 이윽고 나는 은애를  만나 친구라도 추천받아 밀어붙이는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고, 은애의 생각을 타진하기 위해 그녀를 만났다.

  지난번 데이트 신청 사건이 있은 후 은애와는 한껏 편하고 친해진 느낌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은애는 흔쾌히 친구를 소개하겠노라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의 친구를 소개받아 전무와 대면시켰다.

 “됐어요.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의논해서 미스터 강을 통해 연락하죠.”

  은애의 친구를 면접보고 난 뒤 전무는 결심한 듯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여직원 문제가 일단락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무의 소식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함흥차사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전무는 번번이 미루기만 하는지, 그때그때 건성으로  일관하기만 하는지……. 전무의 태도는 정작 마음에도 없었으면서 내가 스스로 알아서 포기하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어쩌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줄곧 밀어붙인 내가 바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대로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운하다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일이었다. 불현듯 창간기념파티가 있기 전 회사를 떠난 선배가 떠올랐다. 선배는 전무의 우유부단이 진저리가 난다며 사표를 고집했다. 나는 비로소 선배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태평양기획에서 마음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내가 회사에서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회사에 취직을 보장받지 않고서 거취문제를 속단하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지경에 처한 내가 미웠다. 그런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현실은 더 미웠다.

  나는 며칠 동안 뻑적지근한 몸을 한없이 뒤척이는 밤을 되풀이하였다. 아침마다 훤하게 밝은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얼굴을 쪼고 있을 때 가까스로 일어날 만큼 지치기 시작했다. 마음이 지쳐 헤어 나오지도 못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까지 지치고 있었다.

  또 늦잠이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세수를 했다.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아침을 해결하러 단골 식당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좀 늦었네!”

 나에게 유달리 친절한 아주머니였다. 하루 세 끼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가정식 백반집이었다. 밥값을 한 달 단위로 끊어서 선불을 주고 나면 깎아 주는 터라, 얼마 전부터는 선불을 주고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예, 늦잠 잤어요.”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불쑥 내뱉고 말았다.

 “아주머니, 여기도 이제 며칠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어디 다른 직장으로 가게?”

 “예, 곧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서운해서 어떡해. 단골손님 잃게  됐네. 요즘은 외상값도 제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미 사표를 낸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 나 자신에게 내심 놀랐다. 이제 사표를  내는 것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식당을 나왔다.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는 여름 햇살이 아침부터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었다. 곧장 걷다가 극장 옆을 돌아 왼쪽으로 돌았을 때였다.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숙녀에게 길이 막혀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나 또한 곧 숙녀처럼 히죽 웃고 말았다. 숙녀는 다름 아닌 출근길의 은애였다. 나는 출근이 늦었다고 망설이는 그녀를 끌고 무작정 지하다방으로 내려갔다.

  아침부터 냉커피를 시켰다. 그녀의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뜻이기도 했지만, 출근길에 마주친 은애가 더없이 반가워 다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은애 친구에 대한 전무의 무관심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태평양기획의 근황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다가 결국 직장을 옮겨야겠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왜? 내 친구 때문이에요?”

  은애의 놀란 물음에 나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친구와 내가 푸대접을 받은 것이 결정적 요인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무슨 다른 일이 있는 거예요?”

  은애가 다시 물었다. 어느 정도 진담이기 했지만, 예기치 못한 은애의 심각한 반응에 나는 난처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고향에나 좀 다녀올까 해서…….”

 엉뚱한 대답을 또 내뱉고 말았다. 유정숙과 유 씨를 만난 후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던 고향이 은애 앞에서 불쑥 생각난 이유는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친구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내가 잘 얘기하지 뭐.”

  고향 얘기를 듣고 은애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어떤 이유든 정 떨어진 직장이면 그만 둬야지요. 나도 한번 직장 알아볼 테니까 기다려 봐요.”

  그녀는 되레 다른 직장을 소개하겠노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에게 은애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마음이 착한, 운명과도 같은 여인이란 생각에 가슴이 시려왔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나는 은애로부터 직장을 소개받았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사진식자기 두 대를 놓고 도안까지 겸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기획사무실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태평양기획에서의 사환 노릇보다는 나을 듯했다. 무엇보다 휘문인쇄소를 다니며 즐거웠던 가족적인 분위기도 그리워, 규모가 작은 것이 오히려 맘에 들어 쾌히 승낙했다. 물론 내  쪽에서 승낙했다기보다 그들이 부족한 나를 뽑아주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었다. 은애는 그렇게 내 인생의 고비마다 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로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충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뼈마디가 아리도록 아픈, 마음의 상처를 움켜쥐고 도망친 3년 만이었다. 열차는 규칙적인 바퀴소리를 내며 평행선을 가슴으로 끌어안듯 삼키며 달렸다. 다시는 오지 못할 뻔했던 귀향길이었다.

  차창에 부딪히던 그날의 황량했던 겨울바람이 이제는 초여름 연녹색의 싱그러움으로 바뀌어 나를 맞고 있었다. 하얀 감자 꽃이, 아직은 덜 익어 파란 고추밭이, 콩밭이며 멀대처럼 키만 큰 옥수수 밭이, 여느 때보다 정겹게 느껴졌다. 실개천을 따라 도열해있는 이름 모를 잡풀조차 새롭게 각인되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이 새롭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동안 콘크리트 벽 일색의 회색 도시에서 정신을 빼앗겨 잊고 있었던 시골 풍경이었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고향이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가방을 방 안에 휙 던져 버리고 친구들과‘호암지’로 우르르 몰려갔던 여덟 살 어린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연못을 수영으로 가로지를 수 있었던 것은 연못이 있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자연의 혜택이었다. 물고기를 잡고, 편을 갈라 물싸움을 하고, 계단식 수로를 따라 기어오르기 경주를 했다. 이끼가 파랗게 덮인 수로에서 몇 번씩 미끄러져 곤두박질쳐도 아프지 않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 수로에서 다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맛은 일품이었다.

  오후반 등교를 할 때면 호숫가 나무뿌리에 붙어 탈피를 준비하는 장수잠자리 번데기를 잡았다. 번데기를 여학생들 책상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두면 두어 시간 뒤 번데기는 잠자리가 되어서 여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서랍을 열다 잠자리를 보고 기겁하며 놀라는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낄낄대며 웃곤 했다.

  겨울엔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탔고 정월대보름엔 쥐불놀이를 하며 노는 재미의 절정에 빠지곤 했다. 아이들은 보름 내내 몰려다니며 밤새도록 쥐불놀이를 했다. 저마다 주워온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철사 줄로 끈을  엮어 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른 쇠똥과 나무 조각을 주워 모아 불을 지폈다. 수십 명이 모여 빙빙 돌리던 깡통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수십 개의 불꽃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피날레를 장식할 때면 일렬로 서서 구령에 맞춰 일시에 연못 둑 아래로 깡통을 던졌다. 캄캄한 밤, 하늘로 솟구쳤다가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불꽃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낙하하는 불씨를 벗 삼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공처럼 굴러서 둑 아래까지 내려가도 다친 아이 하나 없이 잘만 놀던 여덟 살이었다. 아아, 그때는 고향이 이토록 절절히 가슴에 묻어날 줄은 몰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눈을 떴다. 난데없는 빗방울이 하나 둘 날아와 차창에 부딪혔다. 빗방울은 빠른 열차의 속도에 못 이겨 사선으로 흔적을 남기며 아우성쳤다.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그림을 유리창에 그려놓았다. 빗방울은 아우성치는 또 다른 빗방울에 맞아 일그러지면서 새로운 그림으로 변했다.

 안팎의 온도 차이 때문에 뽀얀 김이 유리창에 끼기 시작했다. 고향이 안개 속으로 숨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 위에 손가락으로 고향의 이름을 새겨보았다. 온통 뽀얗게 낀 유리창에 선명한 글자가 새겨졌다. 그 글자 틈으로 점점 낯익은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충주역에 내리자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나는 먼저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년 동안 방치한 탓이었다. 내 키만큼 자라난 커다란 쑥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봉분까지 내려앉아 도무지 봉분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잔디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한쪽 그늘에 고개를  숙인 할미꽃이 아버지의 서글픈 소망을 기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미꽃은 꽃술을 하늘로 향하지도 못한 슬픔을 안고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채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를 맞고 있었다.

 나는 무덤가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쑥대밭이 된 초라한 아버지의 무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몰이 소년의 힘겨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사건을 저지른 뒤 도망치듯 상경하여 처절하게 버텨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칠어져 마치 폭포수 아래에 서 있는 듯했다. 장대비는 나를 온통 휘감아 때리며 더 서럽게 만들었다. 장대비를 맞는 것보다  마음이 서럽고 아파 더 울었다.

  그렇게 목 놓아 지치도록 실컷 울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영락없는 생쥐  꼴이었다.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흠뻑 젖어 살갗에 엉겨 붙었다.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고 감기에 걸린 듯 기침이 잦아졌다. 나는 참으로 볼품없는 초라한 꼴이 되어 산소를 내려왔다.

 어스름해진 저녁 무렵에야 민기를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았다. 비안개로 자욱하게 덥힌 민기네 초가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세찬 빗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온통 집 언저리를 헤매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 음산했다.

 외양간 옆의 소쿠리에 풀이 가득 담긴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몰이 시절 소에게 먹일 풀을 소쿠리에 가득 싣고 일어서려다가 개여울에 나동그라진 적이 있었다. 구부렸던 무릎을 펼 힘이 모자라 지게를 짊어진 채 땅바닥에 꼬꾸라진 것이다. 팔꿈치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소몰이가 너무나 싫어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소 먹일 풀이 있어야겠기에 고랑의 언덕에 지게를 받치고 물 먹은 풀을 주워 담았다. 그나마 무릎을 구부릴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물 먹은 지게를 짊어지자 중심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물줄기가 등을 타고 대책 없이 흘러내려 금방 바지를 적셨다. 나는 겨우 수로를 첨벙첨벙 지나 비스듬한 고랑을 통해 비로소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에게는 소꼴을 베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내가 살던 민기네는 변한 것이 별로 없는 옛집 그대로 보였다. 단지 세월의 흐름만큼 지붕의 이엉이 검게 썩어있었고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의 그을음이 덧붙여진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 소죽을 끓이는 민기의 옆모습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 아궁이에서 토해내는 이글거리는 불빛이 민기의 한쪽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민기야? 오랜만이다!”

  내 목소리를 듣고 민기가 고개를  돌렸다. 자욱하게 뿜어 나오는 땔감 연기 사이로 민기의 놀란 눈동자가 번뜩이며 내게 달려와 박혔다. 번뜩이는 민기의  눈이 아궁이 불빛보다 빛났다.

 “아니, 니가 여긴 웬일이여?”

 민기가 놀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방지축 달아나던 송아지를 잡으려던 민기와 그를 가로막던 내가 한바탕 뒤엉켜 싸우고는 생사도 모르고  지나온 날들이었다. 그나마 나는 유정숙을 통해 민기의 근황을 전해 들었지만, 그는 내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으리라.  민기에게 나는 여전히 자기를 실컷 패고는 도망친 나쁜 놈으로 생각될 것이었다.

 “…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

 “그래, 잘 왔다. 그런데 니 꼴이 이게 뭐여. 그렇게 떠났으면 잘 됐어야 할 거 아녀?”

  민기가 보기에도 내 몰골이 못 봐줄 모양인 것 같았다. 몇 시간째 비를 맞았으니 내 행색은 참으로 궁색 맞아 보였을 것이다. 민기는 나의 초라한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는 듯했다. 민기는 3년 만에 불쑥 찾아 온 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구로 대해주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좌우지간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그렇게 비 맞지 말고.”

  나는 무릎까지 오는 문지방을 건너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턱이 높아서 방심하면 넘어지던 문지방이었다. 이 문지방 위에서 몇 번을  넘어졌던가! 고향집을 생각하면 문지방이 떠올랐고, 다시는 이 문지방을 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 불쌍해서 못 봐 주겠다!”

 민기는 자신이 입는 편한 옷을 한 벌 꺼내 내가 앉은 자리에 무심하게 던졌다. 아직도 우리 사이에 앙금이 남았다는 듯. 그러나 나는 그런 민기의 마음이 오히려 고마웠다.

 배가 몹시 고팠다. 그래도 밥보다 술이 더 마시고 싶었다.

 “민기야. 나 술 좀 사다 주라. 술 마시고 싶다.”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술은 무슨 술.”  

 투덜대면서도 민기는 술을 사러 집 밖으로 나갔다. 민기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손님처럼 방 안을 훑어보았다. 민기 할아버지와 민기와 셋이 함께 자고 먹고 놀던 추억이 축축하게 되새김질되었다.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와 민기와 있어 위로가 되던 시절이었고, 그들과 함께한 정든 공간이었다. 벽면마다 헌 신문지로 도배된 방은 내 손때가 묻은 공간이라 그런지 편안했다.

  다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없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치솟아 코끝을 찡하게 했고 눈동자를 적셨다. 또렷하던 방 안 곳곳이 뿌연 눈물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내 눈의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민기가 술과 주전부리 안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가 술을 권하며 말했다.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사냐?”

 “서울.” 

 “그럼, 그날 말처럼 결국 서울로 간 것이었구먼!”

  민기가 그날 일을 회상하는 듯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동안 못다 한 미안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서울로 도망친 그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마치 업무보고라도 하듯 상세하게 민기에게 털어놓았다. 민기는 솔깃이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나의 서울 생활이 너무나 잘 풀려나간 것에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안에는 나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이 다소 섞여 있음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감기 기운이 심해지는지 으슬으슬 춥고 재채기를 멈출 수 없었다. 갑자기 인중이 간지러워 코피인가 싶어 닦고 보니 맑은 콧물이었다.

 “어디 상처 좀 보자.”

 내가 민기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민기는 아무렇지 않게 상처 부위를 보여주었다. 나는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날 일을 사과했다.

 “…민기야, 유 씨한테서 그간의 얘기는 다 들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미안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힘없이 말을 꺼냈다. 민기는 적잖이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니가 어떻게 유 씨를 만났는데?”

 “우연이었어, 정말 기막힌 우연! 유 씨 딸을 만났어. 나중엔 유 씨도 만나고.”

 “니가 유 씨 딸은 또 어떻게 알아?”

 “니들이 동전치기 할 때, 유 씨 소를 집까지 몰아다 준 적이 있었어. 그때 소전에 나타났던 여자가 유 씨 딸이었어.”

  민기는 송아지를 놓아준 사건만을 기억할 뿐 내가 유 씨 소를 몰아준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자신도 그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민기가 그날 있었던 일의 원인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는 유정숙을 만난 경위와 유 씨를 만난 일이며 그들의 근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유 씨는 어때? 잘 있어?”

 “많이 힘든가 봐. 그건 그렇고 민기야, 할아버지 안 계신데, 혼자서 외롭지 않니?”

  할아버지 얘기에 민기의 눈시울이 금방  촉촉해졌다. 아들 며느리를 연탄가스에 잃고 혼자 남은 민기를 데리고 낙향하여 손자를 돌보아왔던  할아버지였다. 민기에게는 할아버지가 어머니고,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민기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불쑥 생각나게 만든 것이 미안했다. 민기의 촉촉해진 눈동자는 혼자 사는 것이 힘겹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 좀 견딜 만해.”

  민기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그냥, 여기서 계속 살 거여?”

 “그럼 뭐, 별 뾰족한 수가 있어야지.”

  나는 휘문인쇄소 제판실을 생각했다. 나의 간청과 은애의 후원을 등에 업으면 어쩌면 민기 하나쯤은 취직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나랑 같이 서울 갈래?”

 “…….” 

 민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데가 있는데, 잘 얘기하면 될 것 같아서…….”

  무언가 한참을 생각하던 민기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난, 그냥 여기 있을려. 할아버지 산소두 그렇구, 자신이 없어!”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나 또한 그날의 사건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또한  두려움과 함께 동반되는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라며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민기가 내 소지품을 챙겨 나왔다. 보자기의 먼지를 털고 매듭을 풀었다. 어머니의 사진과 아버지가 쓰던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내가 두었던 그대로 싸여있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보관해 온 민기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한쪽 귀퉁이에는 어떤 이물질에 오염되었는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련한 윤곽으로 사라져가던 어머니의 기억만은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품속에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내 첫돌에 함께 찍었다던 가족사진과 함께 지갑에 챙겨 넣었다.

  민기와 나는 취기가 오를수록 서로에 대한 동질감으로 돌아갔다. 또 둘 다 신세가 나락으로 추락한 듯해 너무나 처량해지기도 했다. 취기와 기침과 넋두리가 밤새도록 이어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밤이었다.

  그날 밤 몹시 앓았다. 민기 말에 의하면 헛소리까지 하고 밤새 신음하며 앓았다고 했다.  민기는 끙끙 앓는 나를 지켜보면서 병원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 몹시 고민했었다고 했다. 그는 한숨도 못 잔 듯했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물론 민기의 눈도 퀭해져 버렸다. 나는 해가 떠도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오전 내내 앓기만 하다가 저녁 무렵에야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그리고 민기가 끓여준 찬밥에 간장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온몸을 얻어맞은 것처럼 등짝은 욱신거렸고 고향을 찾은 마음속 깊은 곳은 더욱더 욱신거렸다.

  그러나 감기도 낫지 않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야간열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회색 도시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나에게 고향에서 느끼는 욱신거리는 마음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고향을 떠나는 마음은 내려올 때 마음과는 전혀 달랐다. 너무나 무거운 상경 길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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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주 -  내츄럴 캔디




 직속상관인 도안사는 깡마르고 깐깐해 보였다. 그는 친절한 시선과 함께 위압적인 말투로 악수를 청해왔다.

 “아마도 나하고 가장 많이 싸워야 할 겁니다.”

 나는 웃으며 두 손으로 악수에 응했다. 첫인사에서 으레 고의적인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소 소심한 척했다. 사실 그의 위압적인 태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에서는 야릇한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우리 차나 한잔 합시다.”

  도안사가 앞장을 섰다. 사무실에서 해도 될 말을 굳이 다방에서 하려는 의중이 의심스러워,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가 다방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아가씨와 레지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아가씨들과 매우 친한 듯 인사를 받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나는 도안사가 열심히 설명하는 거래처 내역을 들으며, 필요 이상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다섯 명 남짓 되는 직원들 중에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가를 구분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도안사는 바짝 긴장하게 만들려 애썼지만, 나는 그저 그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침내 맥이 빠진 도안사는 나를 흘겨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직장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인쇄일이 여름엔 워낙 한산한 탓이었다. 지나치게 일이 없다는 게 흠이었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그럭저럭 근무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낮에는 도안사가 지시하는 일에 열중했고, 밤에는 사진식자 기술을  습득하는 야간 견습오퍼레이터에게 쓸데없는 참견까지 하며 세월을 보냈다.

 열흘째가 되어서 태평양기획에서 보름을 일한 대가로 한 달 월급을 받았다. 조금은 사무적이고 개인적인 회사였지만 외국 스타일의 월급 지급 방식은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겐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때마침 나는 직원들 사이에서 신고식을 종용받고 있던 터라 부담 없이 저녁 술자리를 마련했다. 술자리라야 일이 끝난 저녁, 사무실로 중국요리를 주문해 나눠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쪼잔하다는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첫 출근 시 대강 넘어갔던 통성명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내가 나이를  밝히자 그들은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나에게 속았다며 즐거워했다. 분위기는 술잔이 돌수록 무르익어갔다.

  중국집에서 배달된 독한 고량주에 얼마 되지 않아 술기운이 거나하게 돌았다. 이윽고 도안사의 거드름이 주정으로 바뀌어 이어졌다. 경리는 떠들썩해진 틈을 타 데이트니 뭐니 핑계를 대며 퇴근을 했다. 견습오퍼레이터는 과자 한 줌을 챙겨 들고 식자실로 슬쩍 숨어버렸다. 그녀들의 행동으로 보아 그동안 도안사의 술버릇으로 여러 번 고생했던 듯했다.

  도안사는 이내 2차를 내라며 나를 압박했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2차를 내야할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도안사의 요구는 물론 도안사와 다름없이 끼어들며 나서는 제판실 직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2차에 나섰다.

  그들은 골목 허름한 술집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우두커니 앉아있던 아가씨들이 반색을 하며 달려들었다. 도안사는 마치 유명인사라도 되는 듯 손을 흔들고 너스레를 떨며 그녀들의 인사를 받았다. 도안사의 거만하고 요란한 인사에 아가씨들은 이미 길들어져 있는 듯 보였다.

 “어, 잘들 있었어? 오랜만이야!”

 한 아가씨가 도안사의 팔짱을 끼며 온갖 애교를 부렸다. 그녀는 도안사에게 몸을 밀착시키고는 나를 힐끗 훔쳐보았다. 낯선 얼굴의 등장에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음흉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건너편에 앉은 사람도 식별하기 힘든 어두운 조명에 퀴퀴한 습기 냄새까지 느껴지는 지하실은 나를 더욱 숨 막히게 만들었다. 낯선 분위기에 소름이 돋고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경직된 몸은 경계심을 잔뜩 일으켜 세웠다.

  마담은 시키지도 않은 안주와 술을 자동으로 가져왔고 아가씨 세 명에게 술시중을 들게 했다. 짝을 맞추어 등장한 아가씨들은 각자의 성 앞에 '미스’를 붙여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미니스커트에 가슴의 계곡이 훤히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도안사가 손가락을 까닥까닥 움직이며 아가씨들이 앉을 자리를 정해 주었다. 내 옆에는 미스 손이라고 소개했던 아가씨가 앉았다. 낯선 여자와 이렇게 가까이 앉기는 처음이라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움츠린 몸에 소름까지 돋아났다.

  짙게 화장했지만 미스 손은 앳된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스 손이 나에게 착 달라붙었지만 나는 어쩔 줄 몰라서 허둥대었다. 그런 나의 당황하는 행동을 본 미스 손은 도안사를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민망해 하는 그녀의 표정을 알아챈 도안사는 귀한 손님이니 잘 모시라며 오히려 미스 손을 독려했다. 그가 나를 두고 '귀한 손님’이라 하는 것은 오늘 술값을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귀한 손님이라는 말이 영 못마땅하게 들렸다.

  미스 손이 도안사의 채근에 더욱더 내 곁으로 바짝 달려들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여 엉덩이를 밀며 옆으로 도망쳤다. 초짜인 나를 금방 알아차린 미스 손은 결국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아서 새침한 얼굴로 술을 따라주었다.

  전주가 있었던 탓일까? 술 몇 잔에 모두 쉽게 취해버렸다. 도안사와 아가씨들은 별 의미 없는 농지거리를 해대며 마냥 즐거워했다. 청계천 여왕봉에 있는 6번 여자가 어떠니, 경리처럼 엉덩이가 처진 여자는 어떠니, 하며 일상 대화를 하듯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음담패설은 평소에 나누는 이야기보다 자연스러웠고 열정적이었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내 표정을 훔쳐보며 재미있다는 눈짓을 보였다.

 도안사는 간간히 자기 옆에 앉은 파트너의 젖가슴은 물론 엉덩이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파트너는 흘깃 내 눈치를 살피고는 간지럽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게다가 순간순간 입술을 마주대고 수도 없이 키스를 했다. 도안사는 자기처럼 한번 해보라는 시늉으로 아래턱을 간헐적으로 내게 치밀며 채근했다. 그동안 자연스러웠던 일들을 나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그것은 그들과 함께 공범이 되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정말 엉뚱한 봉변이었다. 나라고 여자에게 호기심이 없을까! 휘문인쇄소 다락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 사진을 보며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을 상상한 적이 없었을까?

  그러나 언제부턴가 남자든 여자든 몸가짐에 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할 여자에게 떳떳한 남자로 인정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만약 유정숙이나 은애와 결혼한다면……. 그녀들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이는 어머니의 행방불명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내 술이 떡이 된 도안사와 직원은 한 번 해야 한다며 아가씨들에게 끌려 나갔다. 내 옆에 앉았던 미스 손은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마음속 욕망을 피나도록 문지르며 털끝만큼의 흥분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몹시 갈등했지만 마침내 이성이 감성을 물리쳤다.

  나는 홀로 밤거리에 우뚝 섰다. 탈선의 유혹을 이겨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독거려야 했다. 처참할 정도의 불쾌감이 울컥 치솟았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통째로 털린 것도 더러웠지만, 모자라는 술값에 외상까지 달아주던 마담에겐 매스꺼움까지 느껴졌다. 매스꺼움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컸다.

  빌어먹을, 갈증이 복받쳤다. 숨을 훅훅 내뿜어 보았으나 역한 술 냄새가 곤두박질치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하더니 이내 코털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갑자기 소피가 마려웠다. 근처 화장실을 찾았다. 손가락 사이로 아랫도리를 잡고 생리적인 팽창을 배설하면서 거울에 비친 얼굴과 싸웠다. 푸석푸석한 얼굴에 조소 어린 눈동자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를 비웃는 거울 속의 나는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바보 같으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거울에 비친 내가 또 다른 나를 희롱했다. 나의 내면을 때리는 치열한 싸움은 소변이 끝날 때까지도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설을 끝내고 뒤로 돌아서자 이번에는 뒤가 팽창된 느낌이 치밀었다. 소변을 보는 동안 마치 요충이 기어 나오는 듯 느껴지는 간지러움 때문에 꽁무니에 힘을 주어 소가 실 오줌 싸듯이 오줌 줄을 끊어서 소변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다시 칸막이 변소로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고 웅크리고 앉았다. 때 묻은 석회질이 벅벅 벗겨진 제법 그럴듯한 음화(淫畵)를 보니 어느새 아랫도리에 힘이 쏠렸다.

 “선생니임…….” 

 “으음, 앞이야 뒤야?”

  선생님이 꽁무니를 움켜쥐고 엉거주춤 일어서 있는 나에게 묻자 아이들은 와아,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홍당무가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를 본 선생님이 말했다.

 “빨리 갔다가 와.”

  나는 부리나케 변소로 달려가 오줌을 눴다. 그때도 소변을 본 다음 대변을 보았고, 대변을 보면서 눈앞에 그려진 낙서를 한참 동안 정독했었다.

  사방에 어지럽게 그려진 온갖 낙서들이 낄낄대고 있었다.

 - 나는 어느 날 친구 여동생과 무엇을 했다.

- 앞을 봐라. 옆을 봐라. 뒤를 봐라. 인마 보긴 뭘 봐.

- 신사는 장미를 꺾지 마라. 꺾어진 장미는 뒤를 돌아다보지 마라.

- 세월은 구보로 청춘은 동작 그만!

  키득거리며 낙서들을 보다가 문득 도안사를 떠올렸다. 도안사의 다음 행동을 떠올리자니 아랫도리는 움찔움찔 힘이 실렸다. 마침내 충열된 독립군은 단단한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하늘을 향했다. 나는 녀석을 부여잡고 상상의 애정행각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직접적인 탈선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상상의 애정행각은 도안사처럼 낯선 작부에게 아무렇게나 손쉽게 던지는 행동보다는 차라리 명분 있는 행동일 터였다. 나는 한참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나왔다.

 

 

 아침이 되자 어젯밤 함께 어울렸던 직원들이 출근했다. 그들이 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자신들의 외도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술로 인한 실수 때문이었다는 듯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책상을 닦으며 아침청소를 하던 경리가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머, 두 분이 출근하다가 만난 모양이죠?”

  둘은 경리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없이 내 눈치만 살폈다. 그들의 눈빛은 입조심 하라는 무언의 암시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도안사의 어떤 말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엿듣게 된 뒤로 그런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야, 어째 이상하다. 파이프가 새는 모양이야.”

  나는 그들이 내뱉은 파이프란 말뜻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파이프는 그들만의 은어로 남성의 심벌을 가리키는 것이고, 파이프가 샌다는 것은 성병에 걸렸다는 말이었다.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래도 남의 일은 쉽게 잊고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또한 사람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게 마련인 것 같았다. 도안사를 비롯한 직원들의 그날 밤 일은 시간이 흐르자, 별 의미 없는 일로 잊혀졌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이 계속되었고, 애꿎은 나만 외상값을 갚느라 여섯 달의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 다소 늦게 출근한 도안사가 잠바도 벗지 않은 채 일을 지시했다.

 “요즘 한창 선전하는 핵산조미료‘아이미’라는 게 있지. 그 타이틀을 가지고 한번 레터링 해봐. 아이미 선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 가정주부 둘 얘긴데,‘요즘 많이 선전하는 아이미란 게 뭐예요? 물으니까 ‘그거 미원 있죠. 그 회사에서 나온 조미료인가 봐요!’하더라는 거야. 사실 아이미는 경쟁회사인 미풍 회사에서 만든 신제품이거든. 이게 바로 광고의 전달이 잘못된 예지.”

  나는 별 싱거운 일도 다 시키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뾰족하게 중요한 업무도 없고 하여 타이틀에 어울릴 만한 글씨체를 착안하여 한나절 만에 레터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도안사에게 보이자 그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내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노수 씨, 사장님이 요 앞 다방으로 좀 나오시래요.”

 사장의 전화를 받은 경리가 나에게 전했다. 무슨 일이냐고 경리에게 되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사장이 나를 따로 보자고 한 건, 그것도 사무실이 아닌 곳으로 불러내는 건 입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방으로 들어서자 도안사와 사장, 그리고 평소 안면이 있는 거래처 사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도안사 옆에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레지가 다가오자 사장은 나에게 묻지도 않고 쌍화차를 시켜주었다.

 도안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나오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구, 여기 이 형님이 미스터 강이 맘에 든다고, 달라고 하네.”

  도안사는 거래처 사장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도안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까 글씨를 써 보라고 했던 거야. 형님이 오케이 했으니까 미스터 강이 어떻게 생각하나 듣고 싶어서 불렀어. 우리끼리는 이미 다 끝난 얘기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승낙해야 하지 않겠어.”

 도안사의 억양에서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도안사는 늘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금 벌어진 일은 나를 몰아내려는 작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거래처 사장의 회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지금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흑백 제판시설을 구비하고 있는 소규모의 개인사무실이라는 것, 사장들끼리 학교 동창이고 사진식자를 의뢰하는 거래처의 하나라는 것 정도. 이것이 내가 그 회사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조금의 언질도 없었던 일이다. 그들끼리 일방적으로 물건 거래하듯 하고는 이제 와서 나에게 결정을 내리라고 하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어이도 없었다. 결코 쉽게 결정내릴 문제가 아니어서 한참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은 일감이 없네. 처음 미스터 강을 쓸 때는 그래도 좋았는데 이 상태가 장기화될 것 같아.”

 사장이 비로소 솔직한 문제를 털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의 고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힘없이 물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면 됩니까?”

 “그거야 빠를수록 좋지. 내일 당장이라도 괜찮아!”

  거래처 사장, 이제 곧 내가 다닐 회사의 사장은 반색하며 말을 되받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는 매듭지어졌다. 그들은 굳이 나의 확실한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설득하려고도,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미스터 강, 그럼 형님하고 좀 더 얘기하다가 사무실 구경하고 들어 와. 우린 먼저 들어갈 테니까.”

  도안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찻값을 지불하고는 사장과 다방을 빠져나갔다.

  새로운 사장은 사무실에 대한 이것저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직원은 나를 포함하여 고작 네 명이고 월급은 지금 받는 것보다 조금 더 인상시켜 준다는 이야기, 사무실은 칸을 막아 다른 도안 사무실과 같이 쓴다는 이야기,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사장은 조급하게 사무실의 위치도 알려주겠다며 다방을 나왔다. 

  사장을 따라 사무실에 가 보았다. 사무실은 의상실 2층에 위치한 작고 한산해 보이는 곳이었다. 햇살이 창틈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이 기울어 보였다. 그 햇살을 받으며 나른하게 생긴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어린 직원 하나가 무슨 일인가 긁적이고 있었다. 사장이 안으로 들어가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자신의 일만 하는 소년의 모습처럼 정말 한산한, 어쩌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사무실이었다. 사장은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자리한 책상을 가리키며 내 자리니 앉아보라고 했다. 나는 공연히 서랍을 열어 보고 의자도 뒤로 굴려보면서 민망함을 모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내일 곧바로 출근하겠다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무심코 닫은 문이‘쾅’소리를 내며 닫히는 바람에 민망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려는데 목조계단이‘동동동’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지나가기에 조금은 비좁은 계단이어서 올라오는 사람이 다 올라온 뒤 내려가려고 잠시 기다렸다. 곧이어 계단 모퉁이를 돌아 올라오는 낯익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 여긴 웬일이세요?”

 여자 쪽에서 놀라며 먼저 물어왔다. 정숙희였다. 사진식자 관계로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경리 여직원과 재잘거리던, 그래서 일하던 중에 가끔 쳐다보게 만들던, 웃기도 참 잘  웃던 정숙희였다.

 “예, 내일부터 여기서 근무하기로 했거든요.”

 “어머, 그래요! 나도 여기 근무해요. 바로 옆 사무실! 이제 매일 보겠네요. 하긴 그동안에도 매일 봐왔지만……. 후훗!”

  그녀는 콧등에 잔주름까지 만들어 보이며 말괄량이 소녀처럼 웃었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리와 오퍼레이터를 언니라고 부르며, 마치 같은 사무실 직원처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겸연쩍게 마주 웃어주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경리는 벌써 정숙희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잘해 보세요. 숙희 괜찮은 애예요!”

 오고갔음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 음흉한 미소였다. 언제부터인가 경리와 정숙희는 일하고 있는 나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키득거리곤 했었다. 그 행동은 도안사와의 회식 사건 이후로 더욱 빈번해졌었다. 그녀들은 도안사의 외도나 술자리에서 있었던 내 행동을 낱낱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들의 음흉한 미소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었다.

 경리의 말뜻을 눈치 챈 나는 결국 싱거운 쓴웃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장과 도안사가 나를 두고 거래를 했듯이 정숙희와 경리는 나를 두고 염탐을 했다. 어찌 되었든 참으로 음흉한 일들이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초겨울이었다.

 

 

  이튿날 사무실을 옮겼다. 송별회 따위는 없는 지극히 간단한 이동이었다. 누구에게나 큰집에서 작은집으로 이사하는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환경이 바뀌어 낯설기만 한 느낌은 당사자인 나 혼자 스스로 삭혀야 하는 숙제일 뿐이었다.

  첫날부터 사장은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집착했다.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임에도 노파심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그때마다 이 정도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하지만 사장도 계속 나만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일감이 많아지는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사장은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많아졌고 처음 같은 친절은 자연스럽게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장이 부재중일 때 의뢰가 들어오면 내가 직접 설명을 듣고, 그 일을 스스로 처리하기도 했다.

 

 점점 사무실에서의 위치는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정숙희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그녀는 틈날 때마다 우리 사무실과 그녀 사무실을 가르는 공동 칸막이를 무시하고 업무 공간을 침범해 왔다. 언제나 명랑한 그녀는 내 앞에서 만큼은 조신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녀는 어느 틈엔지 콧마루를 자극시키는 봄 향기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초겨울 햇살이 나른하게 창가를 비추던 오후였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녀가 등 뒤로 와서 오래도록 나를 지켜본 것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마침내 하던 일을 멈추고 창피한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곱상하게 웃는 얼굴로 내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좀, 구경하면 안 돼요?”

 그녀의 양 볼이 발그레해진 것은 꼭 햇빛이 반사되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귓바퀴까지 빨개진 그녀의 모습을 분명 보았다.

 “다음부터 사진식자 보낼 것 있으면 날 주세요. 바쁜데 바보처럼 직접 가지 말구요. 우리 것 갈 때 같이 가면 되니까요.”

  숙희는 나를‘바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바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진짜 바보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하긴 그녀의 사무실이나 우리 사무실이나 전에 다니던 회사에 사진식자를 의뢰하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동안 사진식자를 가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5분 거리를 다니면서 골목과 계단에서 마주쳤었다.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서로 먼저 지나가라며 길을 비켜주곤 했었다. 

 “일하는 손이 참 예쁘세요?”

  작고 여성스럽기는 하지만 내 손을 보고 예쁘다니, 그녀의 말이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며 내 손을 달라고 했다.

 “손 좀 만져 보면 안 돼요?”

  나는 엉거주춤 망설이다가 손을 엉덩이에 쓰윽 문질러 닦은 다음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나의 손과  맞닿았을 때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쇠붙이 문고리를 잡았다가 튀어 올랐던 정전기처럼 손끝이 짜릿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번개였다. 섬광이었다. 컴컴한 하늘이 일순간 환해졌다가 사라지는 번개처럼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곧 천둥소리처럼 울림이 찾아왔다. 그녀와 내 얼굴이 똑같이 홍당무가  되었다. 창가에 비친 나른한 저녁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어린아이처럼 도망치듯 사무실로 숨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부쩍 스스로도 멋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사진식자를 매번 찾아다 주고 약간의 잔심부름도 대신해 줬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고마워서 차라도 한잔 마주하고 싶었지만, 정작 그녀가 나타나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창밖에는 어느새 겨울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일을 일찍 끝내고 제도기를 손질하여 서랍에 정리했다. 그리고 창틈을 비집고 들어온 저녁 햇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에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녁 햇살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음률을 토해낼 것만 같이 구름에 다리를 걸고 매달려 있었다. 모필(毛筆)이 닿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현악기처럼 구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과 소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느덧 라디오에서 캐럴이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왔다. 하여 숙희에게 선물이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달리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 데 대한 답례 차원이었다.

 “미스터 강, 경치 끝내주네!”

 뒤통수에 꽂힌 남자의 목소리가 선물  생각에 빠진 나를 깨웠다. 그는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다른 회사로 간 전직 도안사였다. 그가 좋은 회사로 가게 되어 내가 급하게 그의 자리에 오게 되었음을 후일 사장에게 들었다. 비록 도안사이기는 했어도 그림 실력이 탁월하여‘허 화백’이라고 불렸다. 꽁지머리를 한 그는 여느 기획실 도안사와는 다른 실력자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요즘 자주 뵈네요!”

 나는 얼마 전에도 그를 보았던 기억을 상기하며 가볍게 물었다.

 “어, 그럴 일이 좀 있어. 미스터 강, 오늘 나하고 술 한 잔 하지 않을래? 마침 일도 일찍 끝낸 모양인데…….”

 “술이요? 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술 잘한다고 하던데 뭘. 미스터 강하고 의논할 것도 있으니 우리 지금 나가면 어떨까?”

  결국 그의 재촉과 ‘의논할 것’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이, 옆 골목 불고기집에 있을 테니 사장님 오시면 그리 오시라고 해!”

  허 화백이 오후의 햇살에 나른해하는 소년에게 부탁하고는 먼저 나섰다. 라이트테이블에서 필름수정을 하던 나른한 소년은 나른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소년은 대답 대신 늘 고개만 끄덕이는 버릇 때문에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받을 정도였다.

 허 화백은 술과 고기를 주문하고는 음식이 차려지기도 전에‘의논할 것’이 무엇인지 대뜸 말문을 열었다.

 “내가 야간대학 응용미술학과에 합격했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시간상 학교 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있던 회사에 미스터 강이 들어가고 내가 다시 이리로 오면 어떨까? 여기 사장님하고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됐어.”

  허 화백은 사장하고는 이미 상의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도록 자신의 입장과 옮길 회사의 좋은 점을 열심히 설명했다.

 “내가 다니는 데가 흔히 있는 소규모 디자인사무실이 아닌 것은 잘 알지. 국내 굴지의 문구 개발사야. 그곳에서도 디자인 개발부에 근무하게 될 거야. 정식 보너스는 300%야. 월급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의논해 볼 참이고. 어떠냐? 괜찮지?”

 그가 근무하는 회사라면 업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부러움을 살 만한 회사였다. 물론 허 화백이 말한 대로만 된다면 더 바랄 것 없는 좋은 조건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만 제외하고 그들끼리 내 문제를 왈가왈부했다는 것은 언짢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우연이라고 할만치 내 거취 문제가 늘 남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참으로 못마땅했다.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출타했던 사장이 나른한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다방으로 내려왔다.

 “이거 미안하게 됐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미스터 강 실력이 문제가 아니고 허 화백 입장이 안타까워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네.”

  사장이 해명을 덧붙였다. 나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고 버터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 언제쯤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내일 전화하면 이력서 가지고 면접 와. 나이도 지금보다 세 살 정도 높이자구. 경력도  조금 더 붙여서…….”

  나이를 속이고 경력을 거짓으로 부풀리자는 허 화백의 말에 나는 반대했다.

 “이럴 땐 그쪽 회사 기준에 맞게 조금 속이는 게 정상이야. 미스터 강은 나이를 올려도 괜찮은 애늙은이처럼 보여서 오히려 다행인데 뭘!”

  허 화백은 이미 일이 다 해결된 것처럼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리고 그곳의 장단점과 조직구조에 대해 조언을 덧붙이면서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사장과 허 화백은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처럼 내가 떠난 후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내가 모르는 큰 전시회 건이 있었다. 마침 경력 있는 실력자가 필요했던 터라 허 화백의 제안에 따라 쉽게 결정된 듯했다.

 “참, 미스 정 요즘도 술, 여전한가요?”

 이야기 끝에 허 화백이 불쑥 내뱉었다. 나는 정숙희를 두고 하는 얘기임을 직감하고 그들의 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으음, 여전히 그래. 진 사장이 술을 어지간히 많이 해야지. 툭하면 미스 정한테 술집 어디어디로 돈 가져오라고 시키는가 봐. 수고했다고 한두 잔 받아먹다 보면 술이 늘게 마련이지.”

 진 사장이라면 정숙희 회사의 사장이었다. 나는 둔탁한 쇠망치로 얻어맞아 바닥에 팽개쳐진 벌레처럼 온몸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늘 웃기를 잘해서 지조 없이 푼수처럼 보이기는 했어도 명랑함으로 인정받고 심성도 고운 숙희였다. 비록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어도 배우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착한 여자였다. 그런 숙희가 그녀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선입견을 남겼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괴로운 만큼 그녀에 대한 노여움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 더는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갑작스런 취기가 몰려와 몇 차례 뒷걸음질을 쳤다. 머리에 가스가 찬 것처럼 멍해지기 시작하더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술을 받아 목에 털어 넣을 때는 상관없던  취기였다. 취기는 정숙희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나는 숙희에 대한 분노를 얼싸안고 비틀대며 밖으로 나왔다. 지나치는 행인과 부딪혔다.  부딪힌 행인은 발끈 성을 내다가 비틀거리는 나를 보고 비아냥거리며 이내 피해버렸다. 남은 것 하나 없이 모두 빼앗긴 지독히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 허망함은 진 사장에 대한 노여움보다도 자신을 그렇게 방치하며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 정숙희에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허 화백 같은 사람에게 가볍게 보이고 그녀의 이름을 쉽게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게슴츠레 흐려진 눈으로 사무실을 올려다보았다. 사무실 불빛은 창틈을 비집고 비스듬히 계단 아래까지 스미어 나와 있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의아했다. 나는 아직 숙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난간을 잡고 잠시 비틀거렸다. 겨우겨우 우악스럽게 계단을 짓누르고 2층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형광등 불빛 하나만이 추위에 쪼그라들어 희미하게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칸막이를 밀치고 숙희의 사무실 쪽을 훑어보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은 없었다.

 사람의 인기척도 없는데 그대로 비워진 채 불이 켜져 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고 있는데 화장실 닫히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려왔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억지로 몸을 돌리려 하자 비틀대는 동작이 저절로 커졌다. 나는 내 행동을 통제할 힘이 없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머!”

 허리춤을 추스르며 화장실을 나오던 숙희가 나를 보고는 기겁하여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을 터였다.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민망한 표정으로 서둘러 옷매무새를 마무리했다.

 “어머, 놀랬잖아요! 인기척도 없이……. 그런데 이렇게 늦게 어쩐 일이에요?”

  그러나 나는 평소와 다르게 퉁명스럽게 씹어뱉었다.

 “…왜, 아직 퇴근 안 했나요?”

 “사장님이 퇴근하라고 해야지 가죠!”

  그녀는 나의 기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오히려 명랑하게 대꾸했다. 불쑥 진 사장이 술집으로 그녀를 또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숙희도 진 사장이 자기를 부르길 은근히 기다릴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자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 술 냄새!”

 그녀가 마치 파리를 쫓아버리듯이 콧구멍에 손부채질을 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게슴츠레 쏘아보았다. 커피색의 도톰한 입술, 봉곳하게 솟은 앞가슴, 복숭아처럼 잘 익은 뽀얀 종아리를 감싼 검은색 스타킹……. 울컥 그녀를 훔치고 싶었다.

 “숙희 씨, 루주 이름이 뭐요?”

 나는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평소와 다른 내 말투를 듣고 그녀는 비로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놀란 표정을 보니 그녀를 훔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비로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듯 보였다. 그녀의 큰 눈이 더 커졌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연신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녀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마침내 핸드백을 옆구리에 꿰찼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혀를 날름거렸다.

 “저 말이죠. 우리 사장님한테 전화 오면 먼저 퇴근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루주 이름이 뭐냐 하면요. 내추럴 캔디!”

 그녀는 약을 올리듯 혀를 삐죽이 내밀고는 토끼처럼 재빨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하기보다 그것은 도망이었다. 그녀는 나를 피해 멀리 도망치는 한 마리 양이었다.

 내추럴 캔디는 내 마음을 온통 헤집고 다니며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내추럴 캔디의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른거리는 내추럴 캔디는 고향의 아지랑이보다 더욱 아롱거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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