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끝섬




 무혐의로 경찰서를 나왔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세상에 발가벗겨져 내던져진  참담한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숙희의 결별 선언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숙희가 나로 인해 아파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아팠다. 숙희와의 관계는 평행선을 그리며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감히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정리되어 먼저 연락을 주기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일은 내가 숙희를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숙희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숙희가 떠난 뒤 그녀에 대한 간절함은 더 커졌고 유정숙이 떠난 뒤 숙희는 내 마음속에 더욱 선명해졌다.

  리처드는 유정숙의 사건을 빌미로 나를 해고할 만큼 옹졸하고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우호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리처드는 스탠드바의 여자를 보고도 유정숙에게 말하지 않은 무거운 내 입을 상당히 신뢰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유정숙으로 인해 무기력하게 보냈다. 유정숙의 잔영이 오랜 동안 머물러 서글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정숙이 영구차에 실려 벽제 화장터로 향하던 아침, 나는 전무의 지시를 받고 사무실에 갔다. 그녀의 진짜 마지막 길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만 그리움이나 슬픔을 더 빨리 시간 속에 흘려보낼 수 있다며 위안을 삼았다.

  잡을 수도 없고 잡혀지지도 않는 세월이 그렇게 또 흘러갔다. 시간은 더디게 슬픔과 그리움을 싣고 흘러갔다. 나는 우울한 날들을 매일매일 견디며 그러한 감정들이 고여서 썩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우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라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가발공장의 여위원장이 사망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학생들은 경찰과 맞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학생들은 최루탄을 먹으면서 열심히 돌을 던졌다.

  은애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은애의 남편 될 이가 어머니에게도 저돌적인 공세를 펼쳐 결국 항복시켰다는 소식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허락하긴 했으나 결혼식 당일까지 그녀 어머니의 노여움은 덜 풀린 것 같았다. 신부 측은  친지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였다. 신랑 측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신랑 측 하객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사랑을 쟁취한 신랑을 칭찬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신랑을 향한 박수도 열정적이었다.

  신부가 입장하고 예식이 시작되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애의 모습은 정갈하고 화사했다.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은애는 행복해 보였다. 은애는 자신을 향해 지극한 충성심을 보였던 신랑 옆에서 내내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폐백을 마친 은애가 신랑과 함께 피로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위가 장모를 업고 피로연이 벌어지는 식당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신랑의 등에 업혀 춤추듯 덩실거리는 은애 어머니의 얼굴에서 노여움이 다소 누그러진 빛이 나타났다. 남편을 자살로 보내고 나서 혼자 3남매를 키워낸 뚝심의 어머니는 그 순간부터 곧 신랑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은애는 신입 도안사와 식사를 하고 있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진정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녀도 환하고 예쁜 신부의 미소로 화답했다.

 “요즘, 그 여자랑은 잘돼 가요?”

  정신없을 와중에도 은애는 내 근황을  묻는 여유를 보였다. 좋은 날 숙희와의 결별 소식을 꺼낼 수도 없어서 말을 얼버무렸다.

 “예에, 그럭저럭요. 결혼 정말 축하합니다!”

 “고마워요. 결혼할 때 꼭 연락 줘요.”

  나는 은애의 결혼식을 보고 정말  모처럼만에 편안해진 마음을 얻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한 후 친구처럼 지내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오후 시간을 어찌 보낼까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토요일 오후였으므로 남은 직원보다 퇴근한 직원이 더 많았다. 나는 딱히 할 일도 없는 입장이어서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유정숙이 떠올랐다. 오늘 은애가 신랑과 나란히 섰던 그 자리에 유정숙과 내가 서 있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소몰이 시절 양지 쪽 담장에 올라 앉아 유정숙을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우시장의 오후, 그날의 햇살도 오늘처럼 따사로웠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쬐던  때도 생각났다. 따사로운 햇볕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오롯이 잠이 쏟아지는 나른한 시절이었다. 아지랑이가 보일락 말락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춤추면 그것이 아지랑이인지 춤추는 인형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한동안 아지랑이를 바라보다가 눈을 떼면 왜 그토록 많은 금싸라기들이 반짝거리는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우리는 여럿이 몰려다니며 개구리를 잡아  장난하며 놀았다. 주먹 크기의 떡개구리를 잡아 뒤집어 놓고 하얀 배 위에 풀잎으로 십자가를 놓은 다음 그곳에 침을 뱉으면 얼마 후 개구리는 거짓말같이 되살아나곤 했다. 나는 늘 개구리 배 위에 침을 뱉어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개구리가 살아나기를 기원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끝내 살아나지 못하고 햇볕에 말라 쪼그라든 개구리를 보았다. 통통하던 개구리 배가 마른 풀잎처럼 작아진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개미 떼가 개구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개구리를 가지고 장난하지 않았다. 

 유정숙도 개구리가 살아나는 것처럼 어떤 주술의 힘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정숙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유정숙의 인생에 우시장도 리처드도 없애 버리고 그녀가 꿈꾸던 간호사의 길을 가게 할 수는 없을까? 우시장에서 보았던 유정숙이 창살에 스치고 지나갔다. 유정숙은 흐르는 세월 속에 옅어져 가기는 했어도 그렇게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참으로 떨쳐버리고 싶지만 유정숙은 늘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때마침 뒤통수에서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는 직원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은근히 신경 쓰였다.

 “네에, 지금은 안 계십니다. 아직 퇴근 안 하셨는데요. 예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죠.”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누구예요?” 

 “왜 있죠. 사장님이 만나는 여자. 그 여자 같아요. 이태원에 있는 술집 여자라던데. 노수 씨는 봤죠?”

 유정숙이 죽은 뒤 그녀의 자살이 리처드의 외도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졌다. 명동에서 봤던 그 여자가 이태원에 있는 술집 여자라는 사실도 은밀하게 퍼졌다. 그 여자였다. 유정숙을 두고 거침없이 외도를 하던 리처드의 여자였다. 이제는 대놓고  사무실에 전화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죠.”

  직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장례식 날 영구차가 벤츠라고 분위기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미친놈들. 죽은 사람 장례식에 벤츠가 무슨 소용이라고…….”

  직원이 유정숙의 장례식 아침 일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여러 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씁쓸했다. 다시 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환데요?” 

  직원이 나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수화기를 건네받자 민기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잘 있었냐? 나, 민기야.”

 “야, 참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야?”

 내가 너무 반갑게 전화를 받자 오히려 민기가 멋쩍어하는 느낌이 전화기로 전해졌다.

 “노수야, 너 충주 한번 내려와야 할 것 같다.”

 “충주는 왜?”

 “우시장에 니 어머니가 찾아 왔었어!”

 “어머니가?” 

  말문이 막히고 숨이 턱 막혔다. 삼키려던 침이 목구멍에 걸려 사레까지 들렸다. 다시 민기가 말을 꺼다.

 “다녀가신 지 꽤 됐어. 물어물어 니 아버지 산소도 찾아 가셨나봐. 우시장에서 너도 찾더란다.”

 “어떻게, 연락처는 알아 두었니?”

 “나도 오늘 우연히 얘기만 듣고 알았어. 벌써 한 달 전에 다녀 가셨다더라. 일단  내려와서 국밥집에 물어보면 어디 사시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알았어. 오늘 내려갈 테니까 저녁에 국밥집에서 보자.”

 “알았어. 저녁에 거기서 보자!”

 내 마음은 하늘을 찌를 듯  흥분되기 시작했다. 민기와 수시로 연락하며 고향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내왔던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그 끈이 실낱같은 어머니와의  재회를 가능하게 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가 왔단다. 끝섬에서 어머니가 왔단다. 어머니의  행방을 숨긴 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시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문만으로는 도저히 어머니의 거처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끝섬의 어머니가 수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끝섬은 벌써부터 소리 내어 음률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퇴근 전인 전무를 찾아가 휴가를 요청했다. 충주에 들렀다가 내처 끝섬까지 내려갈 참이었다. 나는 대뜸 하숙집에 들러 간단한 옷가지와 소지품을 챙겼다. 그리고 곧바로 충주로 향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되고 떨렸다. 열차를 갈아타는  시간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기차 대신 굳이 직행버스를 이용했다.

 차창 밖을 보았다. 눈동자에 들어오는 싱그러움이 여느 때와  다른 느낌으로 온통 가슴으로 밀고 들어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이름 없는 풀조차 얼었던 땅을 밀고 올라와 논두렁에 파릇파릇한 연녹색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나지막한 산 중턱 음지에 늦게 핀 진달래꽃이 간혹 눈을 유혹하고, 버드나무 가지는 지나는 바람과 유희를 즐기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바둑판처럼 정리된 논 여기저기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꼬마 아이들까지 동원된 모내기 모습이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더욱 흥분되게 만들었다.

  국밥집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민기가 나를 반겼다. 해장국 끓이는 냄새며, 먼지투성이의 미닫이 출입문은 내가 떠나올 때 모습 그대로였다. 한쪽 벽에는 국회의원이 매년 나누어 주는 열두 달짜리 달력도 연도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 벽면에는 손으로 쓴 어설픈 메뉴판이 연기 때를 뒤집어쓰고 걸려있었다 선지꾹, 해장꾹, 술꾹…….‘꾹’자는 여전히 ‘국’자로 바뀌지 않은 채였다.

  나는 민기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민기가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사발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한 모금에 털어 넣고, 숨을 죽였다.

 “이 사람이 그 언니 아들인가벼!”

  초로의 국밥집 주인은 민기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국밥집 주인에게 넙죽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자네 어머니가 나하고 나이 차이는 얼마 안 되는데 많이 늙어 보였네.”

  어머니는 한 달 전쯤 우시장을 찾아왔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몇 안 남은 주릅을 찾아 물어물어 행방을 찾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실망했다. 다행히 장례식에 참석했던 소장수 한 명을 만나 산소는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며 다녀와서는 많이 우셨지.”

 어머니는 산소를 찾은 후 사람을 사서 사초까지 했다. 무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어머니는 결혼 전 몸담았던 국밥집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딱해  보여 위로라도 할 요량으로 옆에서 몇 마디 물어도 전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눈물만 훔치다가 어렵게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아들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을 떠날 때 9살이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기억할 나이인데 전혀 행적을 알 수 없다며 많이 우셨다.

 다음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참에  야반도주했다던 소장수 정 씨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정 씨가 고향으로 돌아와 변두리 하천에서 벽돌 공장을 한다는 것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 씨한테는 우시장을 떠난 후로는 소몰이를 하던 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만을 들었다. 어머니는 다시 소몰이 아이들에게 아들의 행방을 알아보았으나 그 일을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진 터라 그조차도 실패로 끝났다.

 “어머니 몸이 많이 아파 보였네.”

  더구나 어머니는 무슨 병에 걸렸는지 할머니처럼 늙어 보였으며, 기운이 없어 보여 몹시 안쓰러웠다고 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 전날 밤,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주인아주머니에게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오해로 갈등이 생기자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부득이 고향 섬마을로 내려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곳에서 재혼을 했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재혼한 남편이 먼저 죽고 줄곧 혼자 살아왔다. 나의 눈동자에는 이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죽기 전에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 나선 것 같아 보였네.”

  나는 마침내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윗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흐느껴 울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서러움으로, 그리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점철된 어머니였다. 이제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아련해져 있는 내가 미웠다.

  훌쩍이는 나를 보고 주인아주머니는 혀끝을 찼다.

 “참, 자네 어머니가 소장수 중에 유 씨라는 사람도 찾던데.”

  아주머니가 불현듯 생각났는지 생뚱맞게 유 씨 이름을 들먹였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번쩍 든 정신에 유 씨 얼굴이 쏜살같이 스쳐갔다.

 “유 씨라뇨?”

  내가 놀라서 묻자 아주머니는 어머니에게 들었다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유 씨라는 사람 때문에 오해가 생겨서 자네 어머니가 고향으로 내려 갔다더구만. 자네 어머니 말이 결혼 전 국밥집에 있을 때 손님으로 드나들었던 것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오해했던 모양이여. 유 씨라는 사람이 입이 가벼워 사실도 아닌 것을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아버지가 크게 오해를 했던 모양이네. 죽기 전에 유 씨를 만나 따지고 남편과 대면시키러 왔는데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고 유 씨도 없다며 풀이 죽어 있었지.”

  어머니를 울게 만든 장본인이 유  씨였다니 그저 놀랄 뿐이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 씨의 가벼운 입놀림을 액면 그대로 믿고 어머니를 몰아붙인 아버지 또한 납득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간단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해를 해서 어머니의 항변도 묵살한 채 파경으로 치닫게 한 아버지는 참으로 못난 사람이었다. 그 끝은 주벽으로 치달았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하물며 아들인 나에게조차 함구하여 오늘날까지 이렇게 서럽도록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리움은 병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나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흐느껴 우는 내 어깨를 다독거리는 민기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따뜻한 민기의 손길이 곧 어머니 손길 같았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적어 주었다는 쪽지 한 장을 찾아와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들이 혹시 소전에 찾아오게 되면 전해 달라고 쪽지를 주고 갔네. 아마 거문도라는 섬에 사신다고 그러던데…….” 

  모서리가 구겨진 쪽지가 코끝에 닿을 듯 출렁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돼버렸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받아 든 나는 어머니가 써 주었다는 서툰 글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귀퉁이가 찢겨지고 구겨진 작은 쪽지에는 어머니 것으로 보이는 눈물 얼룩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어머니의 눈물은 종이 색깔보다 진했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 끝섬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끝섬의 주소였다.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어머니의 끝섬이 찢겨진  노트에 얼룩으로 메말라 있었다. 어머니의 얼룩에 내 얼룩이 떨어졌다. 얼룩은 또 얼룩이 되었다. 나는 얼룩져가는 쪽지를 보고 또 보며  한없이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민기에게 기대어 쓰러질 때까지 얼룩진 주소를 보고 또 보았다.

 

 

  이른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지난밤의 지독한 취기를 생각한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체력은 벌써부터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배 속은 아리고 울렁거렸다. 유 씨에게 따질 일 따위는 뒤로 미루고 끝섬에 가는 일이 더 절박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몹시 안 좋다니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몸은 무거웠지만 끝섬에 내려가기 전 먼저 아버지 산소를  들러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찾아 끝섬으로 떠난다고 이야기하고 어머니에 대한 오해는 단순한 오해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했다. 땅속의 아버지가 내 말을 들을 수 있고 없고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명확하게 전달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아버지 산소는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봉분을 높이고 잔디를 곱게 심어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 떠나셨다. 그토록 미웠을 아버지의 무덤에 어머니는 온갖 정성을 얹어주고 떠나셨다. 무너진 봉분을 돋우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나는 차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봉분은 말이 없었다.

  나는 열차를 타고 어머니의 끝섬을 찾아 긴 여정의 길을 재촉했다.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출렁이던 월미도의 바다에서 끝섬의 바다로 향했다. 완행열차를 타고 조치원에서 갈아 타 온종일 달려 여수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거문도로 떠나는 여객선은 마지막 배였다. 내가 배에 오른 잠시 후 여객선은 고동소리를 내고 항구를 미끄러져 끝섬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갑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곳곳에 짝을 이룬 연인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명화를 찍어내고 있었다. 어느 관광 엽서에서나 봄직한 정겨운 그림들이 이곳저곳에서 연출되었다. 나와 숙희는 엽서 속에 없었다.

  여객선 주위를 맴돌던 갈매기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항구의 도시가 작아져 멀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어머니의 끝섬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객선은 몇 개의 섬을 드나들며 승객을 태우고 내려놓았다. 그때마다 주전부리를 파는 광주리 아주머니들이 마치 갈매기 떼처럼 몰려들었다. 광주리에는 마른 오징어며 커피나 음료수, 인절미나 간식거리가 하나 가득 담겨져 있었다. 승객들에게 하는 호객행위가 어쩐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배는 다시 고동소리를 뿜으며 끝섬을 향해 미끄러졌다. 촘촘히 떠 있던 섬들이 점점 멀어져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은 바람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그림과 소리를 담아내며 이동했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노을이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노을은 수천 장의 아름다운 명화를 수평선 위에 그려놓고 있었다. 수평선 멀리에는 하나 둘 작은 불빛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빛은 고향의 반짝이던  별과도 같았다. 바다 위의 불빛은 사라질  듯 꺼졌다가 다시 반짝이는 고향의 별빛처럼 수평선 위에 점점 더 많은 수를 놓아갔다.

  남해의 푸른 바다를 다섯 시간이나 핥고  지나온 여객선이 거문도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는 이미 캄캄해진 밤이었다. 세 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항구는 어떤 파도에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배 속과도 같은 명당이었다. 아름다운 항구였다. 항구에 정박한 선박에서 비추는  불빛이 바다에도 똑같은 크기의 데칼코마니 불빛을 잉태시키고 화려한 밤은 출렁이고 있었다.

 나는 덕촌리로 건너가는 나룻배가 끊어져  거문리에 머물러야 했다. 날이 밝아야 덕촌리로 건너가는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 뾰족한 도리가 없었다. 나룻배라고 해야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목선이지만 모든 주민들이 맞은편 섬을 이동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여인숙을 잡아 짐을 풀어 놓고 부둣가로 산책을 나왔다. 방파제에서 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기웃거리기도 하고, 고무 바구니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활어를 담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 옆에서 머뭇거리기도 했다. 멀리 등대에서 비추는 불빛을 따라 고개를 쉴 새 없이 돌려보기도 하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의 빠른 손놀림에 감동하며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신비로운 섬에 매료되어 부둣가를 거닐었다.

  늦게 여인숙에 들어왔지만 밤새 잠을 설쳤다. 날이 밝으면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또한 밤새도록 해안을 때리는 파도  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큰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귀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더 큰 울림으로 들려왔다. 그러나 그 크고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음률처럼 정겨운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하자 마침내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파도 소리에 몸을 실어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내 가슴속은 이미 어머니의  따듯한 체온에 감겨 있었다. 어머니의 품속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늘 따뜻했다.

 출항을 떠나는 뱃고동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뱃고동은 나의 늦잠을  빼앗아 아예 바다로 끌고 나가며 다시 한 번 큰 기적소리를 뿜어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조바심에 식사를 주문하고 먼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배달된 아침식사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여 구석으로 밀쳐놓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예에, 누구세요?”

  그릇을 가지러 온 주인이려니 생각하며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문이 덜컥 열렸다.

 “죄송합니다. 간첩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확인도 하기 전에 두 명의 정복 경찰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간첩 신고라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놀라지 마십시오. 신고가 들어왔으니 잠깐이면 됩니다.”

  경찰은 대뜸 소지품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넋이 나간 나는 보잘것없는 옷가지와 소지품을 정신없이 공개했다. 내 소지품을 꼼꼼히 확인한 경찰이 말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 어머니 찾으러 왔, 습니다.”

 “어머니가 여기 거문도에 계십니까?”

 “예에, 덕촌리.”

 “죄송합니다. 여기서는 가끔 있는 일입니다. 허위 신고도 많지만 그렇다고 조사를 안 할 수도 없습니다.”

  경찰은 너무 놀라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미안했던지 사뭇 친절해진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섬에서 발생했던 실제 간첩신고 사건을 설명해 주었다.

 “일본군에 징용되었던 돈 없는 무지한 노인이 있었죠. 포상금이 탐이 나 보지도 않은 간첩을 보았다고 신고를 했었습니다. 산속에서 간첩을 보았다고 해 수색을 했지만 간첩을 찾지 못했죠. 결국 항만청 배가 도착해 대대적인 폭격을 하기로  결정되자 그제야 거짓 신고임을 자백했어요. 그러나 노인을 벌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간첩이 나타났을 때도 간첩이 아닐  경우 문책이 두려워 주민들이 신고를 회피할까 염려되어서였죠. 결국 노인을 무죄로 풀어 준 일이 있습니다.”

  경찰은 실제로 거문도에 간첩이 여러 차례 침투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현지처까지 두고 내 집 드나들 듯 몇 차례 남북을 오가며 활동했는데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간첩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 총싸움이 벌어졌다. 나중에 합류한  간첩들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했으나 실패하자 동료 둘을 죽이고 자수한 간첩이 있었다. 그 간첩의 증언으로 산 넘어 ‘신추’라는 마을은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 죽은 간첩 둘은 관용을 베풀어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매장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이 주소는 뭡니까?”

  어머니가 써 놓은 주소 쪽지를 발견한 경찰이 물었다.

 “어머니 주소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 순경, 이 순경은 거문도 토박이지? 여기는 덕촌리 귤 밭 주소 아니냐?”

 “예, 맞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보름 전인가 혼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비어 있어요.”

  하급자의 보고에 상급자가 상황을 정리하여 내게 다시 말했다.

 “귤 밭 할머니가 어머니신 모양인데, 보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는군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순간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그리워하며 어렵게 찾았던 어머니였는데 불과 보름 전에 이 세상을 떠나셨다니…….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머릿속은 순식간에 빗자루로 쓸어버린 듯 말끔하게 비워져 버렸다.

  어머니는 내가 보고 싶어 그리운 세월을 보내다 우시장을  찾았으리라…….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끝섬의 어머니는 옛날의 어머니 그대로 나를 반기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릴 거라는 상상이 전부였다.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국밥집이며 우시장 곳곳을 헤매며 나의 행적을 찾아다녔을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정신이 혼미해져 넋을 잃었다. 아무런 물음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 순경이 돌아가신 할머니하고 뭐가 되지 않아?”

 “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하고 먼 친척뻘 됩니다.”

 “그럼 난 먼저 갈 테니, 이 순경이 여기 이 청년 좀 진정시키고 돌아와!”

 “예에, 알았습니다.”

  상급자는 민망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내가 진정될 것을 기다리는 듯 한참을 침묵하던 하급자가 서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급자 순경은 내 어머니에 대한 모든  정황과 집안 사정을 토박이답게 너무나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새 남편이었다던 할아버지와 먼 친척 관계라며 집안 내력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는 거문도 출신이었다. 거문도가 영국군에 의해 점령당했던 시기가 있었다. 2년 동안 섬을 점령한 영국군은 비교적 신사적이었다. 영국군은 주민들과도 순조롭게 어울리고 마을 처녀가 지나가면 정중히 인사도 했다. 그러나 영국군이 철수하고 난 얼마 후 태풍을 피해 잠시 스쳐간 러시아 상선은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육지에 내린 러시아인들은 지나가는 처녀의 댕기 머리를 잡아끌기가 일쑤였다.

 한번은 어떤 선원이 물 긷는 처녀의 댕기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물동이를 던져 상처를 입었다. 이에 러시아인이 화가 나서 마을을 부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대포를 들이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산으로 피신해서 며칠을 살았다. 사건의 당사자인 처녀가 하는 수 없이 사과하기 위해 상선으로 다녀오고 나서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처녀는 열 달 후 혼혈 아이를 낳았다.

 그 처녀가 바로 어머니의 증조할머니라고 했다. 섬사람들은 할머니의 딸이 러시아선장의 자식이라고 단정 지었다. 다행히 본토 유럽인과는 달리 머리가 검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아이가 커서 섬을 지나며 드나드는 뱃사람의 아이를 낳고, 다시 아이가 커서 또 뱃사람의 아이를 낳은 것이 지금의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거문도가 싫다고, 주민들의 눈총과 따돌림이 싫다고 육지로 나갔다. 비록 섬사람과 뱃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당사자인 어머니에게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와도 같다며 섬을 떠났다. 그리고 소식이 끊긴 지 20년이 지나 어머니는 다시 거문도로 돌아왔다. 거문도로 돌아온 후 마땅한 일이 없어 여객선에서 오르내리는 손님에게 주전부리나 인절미를 팔며 생활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여객선이 거문도로 오면서 드나드는 섬마다 몰려들었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가 연명한 생계 수단이 여객선에서 보았던 광주리 아주머니들이라니…….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주전부리를 사라며 구걸하듯  외치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그 일을 그만둔 것은 두 아들을 태풍에 잃고 고기잡이를 팽개친 외로운 남자를 만나고 난 뒤부터였다. 그 남자는 한동안 폐인처럼 살다가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그 후로 두 분은 귤  밭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산 중턱에 거문도에서 잘 될지도 모르는 귤 밭을 처음으로 개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많이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 맺어진 두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귤 밭에 묻으며 고집스럽게 땅을 개간했다.

  첫 과실을 수확했을 때 기쁨도 잠시 남자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3년 후 어머니도 병을 얻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버리자 남자가 묻힌 귤 밭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 그것이 불과 보름 전의 일이었다.

  토박이 순경은 아직도 무덤은 황토 흙 그대로일 것이라며 말했다.

 “그래도 기운 내십시오.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양지 바른 곳에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들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토박이 순경은 내 손을 꼭 잡으며 같이 슬퍼해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성의에 답했다. 그는 귤 밭의 위치와  간첩 사건으로 지금은 폐허가 된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신추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방을 나갔다. 나는 경찰이 돌아가고 난 후로도 한참을 엎어져 울었다.

 ‘아아, 어머니! 나는 더는 살아야 할 이유도 목적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외롭고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얻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나는 산다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백짓장처럼 하얀 마음으로 세상의 얼룩을 지우고 세상과 이별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어머니에 대한 희망도 산산이 부서지고 숙희와도 이별한 마당에 이제 내게 남겨진 것이라곤 어느 것 하나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미 자살을 계획했다.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 무덤이 있다는 귤 밭을 먼저 찾았다. 작은 해수욕장을 지나 어머니가 다녔을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다시 원두막을 지나 무덤을 찾았다. 무덤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귤 밭 양지쪽  한가운데 가지런히 모셔져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은 온통 무덤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무덤에 떨어진 햇살이 나의 가슴에 전율로 다가왔다.

  나는 무덤에 엎어져 흐느꼈다. 어머니는 수평선 너머 먼 바다를 보며 무척이나 나를 그리워했으리라. 비로소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바다를 굽어보며 누워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자 먼 길을 다녀가신 후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를 안고 누워계신 것은 아닐까. 강요당한 인생이 어긋나기 전 내가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조차 묻어버린 것은 아닐까. 무덤 위  햇살은 바람에 흩날리고 어머니의 그리움은 눈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에게 큰 절을 하고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세상을 버릴 마지막 장소를 찾아 거문도 등대로 걸음을 옮겼다. 바다로 뛰어내릴 장소라면 최대한 높고 절벽이 가파른 등대가 있는 곳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늘을 향해 뛰어내리리라 마음먹었다.

  귤 밭을 내려와 등대로 향하는 해안 길을 지나고, 동백나무로 우거진 동백 숲 터널을 지나자 마침내 하얀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등대 앞의 수평선은 장관이었다. 하늘과 바다는 푸른 코발트빛으로 시야를 압도했다.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맞닿아 있는 끝없는 수평선이 사방으로 등대를 에워싸고 있고 고기잡이배는 저 멀리 평화롭게 점점이 떠 있었다. 마침 등대지기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를 관광객으로 착각했는지 즐거운 여행이  되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이런 등대에 있으면 고독하지 않으세요?”

 “고독? 고독이란 이미 남의 것이 된지 오래요. 배부른 사람들이  팔자 좋아서 하는 투정이죠. 등대에 몇 년 만 근무하면 다 미쳐서 도망칠 사람들이요.”

  등대지기는 무척 지치고 힘들어 보였는데, 오히려 사람의 방문이 귀찮다는 눈치였다. 그는 거문도로 오기 전 인천 항만청 소속의 등대지기만 있고 사람은 살지 않는 섬에서 전근 왔다고 했다. 사람이라곤 한 달에 한 번, 항만청에서 식자재 가지고 오는 배가 유일한 방문객이었다고 했다. 그런 등대도 있는데 어디 감히 고독을 말하느냐, 그래도 이곳은 양반이다, 하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관사로 들어갔다.

  나는 등대지기의 눈길을 슬금슬금 살피며 등대 끝자락 절벽까지 갔다. 그리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바다가 발끝 아래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현기증과 함께 싸늘한 긴장감이 등줄기로 휘몰아쳤다. 눈을 감았다.

 “이보슈?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요?”

  언제 왔는지 등대지기의 목소리가 등 뒤에 날아와 꽂혔다.

 “그곳에서 뛰어내리려면 아예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괜히 사람만 병신 되기 십상이요!”

 종종 있는 일인 듯 태연한 등대지기의 목소리에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곳은 뛰어내려 봐야 데굴데굴 굴러 언덕에 떨어질 뿐이오. 태종대 생각하면 오판이지…….”

 사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향해 새처럼 날다 떨어지는 자살을 꿈꿨다. 세상을 버린다면 적어도 그런 환상적인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사치스러운 자살을 꿈꿨던 것이다. 등대지기 앞에서 나는 가소로운 몽상가에 불과했다.

 등대지기는 거문도 등대는 바다 속으로 뛰어내리기에 그리 적절하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가파른 절벽이 아니어서 뛰어내리다가 바다가 아닌 둔덕 바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십중팔구 불구만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며 내 의지를 일언지하에 꺾어버리고 말았다. 내 얼굴을 보니 아직 자살  같은 것은 할 사람이 아니라며 오히려 코웃음까지 쳤다. 등대지기는 나의 자살결행 의지를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나는 실패했다. 자살하기에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었고, 산다는 것에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인지 모르는 아쉬움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등대지기는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 마지막 마음을 붙잡고 늘어지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 다시 어머니 무덤을 찾았다. 귤 밭은 괴괴한 공포감마저 감돌았다. 나는 오전에 가져와 봉분에 뿌리고 무덤가에 그대로 남겨 놓았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온종일 먹은 것이 없던 탓에 몸은 금방 무너져 내렸다. 온몸이 으슬으슬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어머니가 기거하던 귤 밭 작은 집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공허한 그 집에서 어머니의 체취를 더듬었다. 어머니의 슬픔이 가득 숨겨져 있는 초라한 부엌이며, 흙 때 묻은 손잡이, 썩은 귤 조각이 뒹구는 헛간 창고, 작은 바람에도 요란하게 흔들리는 창문을 어루만지며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내내 울컥울컥 훌쩍였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재혼한 남자가  떠난 후 3년 동안을 외딴집에 홀로 있었다고 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아린 가슴을 어루만져줄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고 체취만이 남아 있었다.

 늦은 시각, 마침내 수렁에 빠진 듯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멀리 항구에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 잠을 깼다. 날은 이미 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고 고깃배는 서로 꼬리를 물고 항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뜬금없이 교회로 발길을 옮겼다. 신자도 아니면서 교회 종소리에 이끌려 걸음이 옮겨지는 신기함에 놀라면서도 그저 발 가는대로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곳에서 무언가 울부짖고 싶은 지독한 갈증 때문인지도 몰랐다.

  교회는 작고 아담했다. 두세 명의 신도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새벽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때마침 들어가는 여신도는 문 앞에 서성이는 나를 힐끗 곁눈질로 살피고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후 나이 든 여신도가 나왔다. 나는 교회 안으로 안내되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평온한 목소리를 가진 여신도의 물음에 나는 눈물부터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며 아픈 내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여신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나는 또 놀랐다. 교회를 몹시 싫어했던  아버지 앞에서 단 한 번도 교회를 말한 적이 없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니…….

 “아마도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가 아드님을 이곳으로 이끌었나 보군요. 어머니는 처음부터 독실한 신자는 아니셨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소극적이셨는데  병을 얻고부터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보니 그것이 모두 아드님을 위한 기도였군요. 어머니는 아픈 와중에도 매주 쉬지 않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를 나왔습니다.”

  여신도는 어머니를 회고하듯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신도의 안내를 받아 난생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갈구였다. 어머니가 내게 기도하였듯 나 또한 어머니에게 간절한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교회를 나온 나는 간첩 사건으로 집단 철거가 되어 폐허가 되었다는, 어머니의 고향인‘신추’라는 섬마을을 찾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두 번째 자살이 계획되어지고 있었다. 최소한 어머니가 뛰어놀던 신추에서의 자살이라면 덜 외로울 듯싶었다. 어머니의 외로움은 내 외로움과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덕촌리 마을에서 뒷동산 오솔길을 지나 산 정상을 넘었다. 어머니가 수없이 넘어 다녔을 구불구불한 길을 더듬으며 내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혼혈이라는 섬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다녔을 작은 발자국이 아직도 구불구불한 길에 서글프게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저린 가슴이 구불부불한 길에 떨어져 흩어졌다.

  간첩 사건의 충격과 집단 철거라는 고통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신추의 잔해는 살벌할 만큼 조용하고 공허했다. 돌담 틈에는 작은 대나무들이 애써 기생하고 있었고, 거친 바닷바람에 말라비틀어진 이끼가 부식된 쇠붙이처럼 표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바닷가 마을은 집집마다 경계였던 돌담만이 미로처럼 외롭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돌담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성곽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성싶었다. 신추는 마치 마추픽추의 축소판처럼 벌거벗고 살던 태고인은 멸종해 버리고 오래전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을 전해 주고 있었다.

  나는 키만큼 높은 돌담의 중압감에  불현듯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폐허에서 엄습하는 싸늘한 공포가 머리카락을 하늘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간첩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는 마구 뛰기 시작했다. 맞물고 돌아가는 돌담에 짓눌리는 위압감이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돌담이 좁혀지는 착각 때문에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곧 앞이 훤하게 트였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뛰어와 얼굴에 달라붙었다. 나는 지나온 통로를 되돌아보았다. 신추의 굴속 같은 돌담은 서너 걸음 뒤에 끝나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뛰어놀았을 해변으로 내려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기에도 섬뜩한 까만 바다 바퀴벌레들이 자갈 사이로 혹은 바위틈으로 우르르 숨어버렸다. 그러나 놈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곧이어 공격을 취하는 몸짓과도 같았다. 벌레들이 한꺼번에 엉겨 붙으면 나 하나쯤은 뼈도 남기지 않고 갉아 먹을 것만 같았다. 눈에 띄는 엄청난 숫자만 하더라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으므로 몸이 저절로 움츠려졌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놈들을 피해 주변을 살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멀리 배가 보일 듯 출렁이고, 파도가 달려와 순식간에 발밑을 때리고 도망쳤다. 하얀 포말을 이루며 도망친 파도가 햇살에 반사되어 무지개처럼 색채를 뿜어냈다.

  빨주노초파남보!

  어린 어머니와 놀던 어머니의 무지개였다. 빨주노초파남보로 보이지 않던 고향의 무지개가 비로소 신추에 있었다. 그 무지개 속에 조그만 고동 한 마리가 바위틈으로 밀려와 뒤집혀지며 곤두박질쳤다. 파도가 떠나자 고동은 재빨리 몸을 바로 세우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그러나 파도는 사정없이 고동을 다시 뒤집어 놓았다. 문득 뒤집혀진 고동 속에 작은 게의 앞발이 보였다.

  놈을 잡았다. 놈은 재빨리 몸을 움츠리고 기형 손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놈이 기어 나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놈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금방 기어 나올 듯하다가 좀처럼 얼굴을 내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놈을 버리고 더 큰 놈을 잡았다. 이번에도 놈은  손을 숨겨버렸지만 나는 아예 처음부터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놈도 지루할 만큼 뜸을 들였다. 나는 놈을 바닷물에 담갔다가 물을 가득히 담아 꺼내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놈이 손톱 가까이로 차근차근히 탐색하며 기어 나왔다. 거의 다 나왔을 때 번개처럼 덮쳤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고  나서 비로소 놈의 감촉을 느낄 수가 있었다. 놈의 집게를 잡아당겨 보았으나 버티는 힘이 제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힘이 탁 멈추며 놈의 허리가  끊어지고 상체가 빠져나왔다. 놈의 하체는 끝까지 집을 지킬 속셈이었는지 깊숙이 들어가 버리고 아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몸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두 촉각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져 손바닥에 누워버렸다. 놈의 몸은 분명 하나의 동체(同體)였었다. 이제는 서로 분리되어 죽고 말았다. 단지 나의 호기심 때문에 끝까지 지탱해 보려던 힘도 허망한 일이 되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놈을 바다에 버렸다. 이제 버려진 집게처럼 내 몸도 바다에 그렇게 버려야 할 일이었다.

 나는 바위 끝에 우뚝 몸을 세웠다. 이윽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동자에 숱한 영상이 투영되었다. 유정숙이 투영되었고, 김은애가 투영되었고, 정숙희의 영상 위에 어머니의 영상이 겹쳐 투영되었다. 마음은 비로소 한없이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이제 오래전 꿈속에서처럼 바다 위를 걸었던 어머니의 뒤를 따라 수면을 걷고 어느 순간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쯤 헤엄치면 그만이었다. 나는 바람 따라 몸이 앞뒤로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지러움이 엄습하여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새까만 바퀴벌레들이 숱하게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내 앞에서 쏜살같이 도망쳤던 바퀴벌레들이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진 줄 알고 다시 모여들었던 모양이었다. 소스라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내가 버린 집게는 바퀴벌레의 먹이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죽어서 바다에 버려지면 바퀴벌레에 의해 살점이 뜯겨지고, 새까맣게 달라붙어 눈으로 들어가 입으로 나오고 할 것이다. 낙지며 불가사리들은 온몸에 엉겨 붙을 것이다.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제일 먼저 갈치가 달려들어 눈을 먹어 치운다고 했다. 소름이 온몸을 훑고 경직시켰다.

  자살은 또 실패였다. 아니, 완전한 실패인지도 몰랐다. 등대지기의 훼방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다시 찾은 어머니의 고향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음률과도 같다던 신추의 파도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린 어머니에게 신추는 과연 어떤 그리움으로 비쳐졌을까. 돌담 사이를 뛰어 다니며 놀던 놀이터가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 맑고 깨끗했을 바닷가는 바퀴벌레에게 점령당했고 사람의 체취는 흔적으로만 남았다. 어머니는 한때 아름다웠던 이 바닷가에서 숱한 서러움을 파도에 실어 멀리멀리 흘려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있어서 파도 소리는 음률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끝섬이 간직한 진정한 음률을 비로소 온전히 받아 마시고 있었다. 

  파도는 다시 발목을 때리고 멀리멀리 달아났다. 파도는 나의 상처를 핥고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다시 가버리기를 반복했다. 어머니의 끝섬은, 어머니의 음률을 품고 언제나 그곳에  그렇게 출렁이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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