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달님
지각이었다. 밤사이 달님을 걱정하며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던 탓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뇌리에 박힌 흐트러진 유정숙의 잔상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쇠똥을 치우던 소박했던 그녀의 모습이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서양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답답한 상황을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밤새도록 눈꺼풀을 잡고 늘어져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흔치 않은 지각이지만 사무실로 들어가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사무실 문을 되도록 소리 나지 않게 살짝 밀치고 들어섰다. 마침 안내데스크에서 커피를 마시던 경리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는 다른 손으로 나를 보자며 손짓했다.
“쉿, 조용히 들어가세요. 사무실 분위기 말이 아니에요.”
그녀의 속삭이는 귓속말을 들으며 영문도 모른 채 살금살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팀장 자리에 바위처럼 앉아 있던 임 실장은 굳은 얼굴로 쏘아보았다. 나는 늦어서 죄송하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건네고는 엉거주춤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옆자리 디자이너에게 무슨 일이냐고 속삭이듯 눈으로 물었다.
“달님이 유서를 써 놓고 어제 행방불명되었나 봐요. 지금 전무님이 사장님과 통화중인데 아직 자세한 건 몰라요.”
조용조용 말하는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일순 커다란 쇠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때렸다. 지난밤 유정숙과 있었던 일이 쏜살같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처럼 갈팡질팡하던 그녀의 혼돈스런 행동이 충격과 공포가 되어 엄습해왔다. 유서라니, 행방불명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믿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미스터 강, 나 좀 봐요.”
전무가 문을 열고 집무실로 나를 불렀다. 집무실로 가는 동안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혹시 유정숙의 편지에 내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면……. 그녀의 행방불명에 내가 연관되었다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큰일 정도가 아니라 이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전무는 이미 그것을 전해 듣고 나를 채근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목구멍에 밀어 넣고 전무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혹시 사장님 댁 알아요?”
“아뇨!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릅니다.”
시치미를 뗐다. 유정숙의 집을 차마 아는 체할 수도 없었지만, 밤늦게 택시를 타고 갔던 길을 더듬어 갈 만큼 길눈이 밝지도 않았다. 더구나 전무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무는 더 묻지 않았다. 다행히 전무가 그리 물은 것도 업무 차 리처드와 동행할 때, 혹 리처드의 집에 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 듯했다.
“그럼 약도를 그려줄 테니 지금 좀 그리로 가 봐요.”
“…….”
“어제 달님 씨가 유서를 써 놓고 없어진 모양이에요. 사장님이 아침에 들어가 보니 집에 없더랍니다. 혹시 낮에 들어올지도 모르니 그동안 미스터 강이 집을 좀 지켜주세요. 사장님은 사무실에 중요한 일 때문에 교대해야 해요. 혹시 달님이 들어오면 곧바로 사무실로 연락하고.”
나는 멍하니 서서 전무가 그리는 약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전무가 설명하는 약도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간밤에 보았던 그녀의 심리 상태로 보아 단순한 가출이 아니었다. 유서라는 말에 끝없는 불안이 일었다. 지난밤의 혼돈이 오락가락 뇌리를 헤집고 다녔다. 머릿속은 이미 온통 엉켜버렸다.
전무실을 나와 택시를 타고 유정숙이 사는 동네로 무작정 향했다. 술 취한 그녀를 업고 왔던 캄캄한 지난밤의 기억만으로는 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유정숙이 사는 근처 구멍가게에 들러 끊임없이 계속되는 갈증을 사이다로 해결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주인에게 리처드의 생김새와 특징을 이야기하자 주인은 자세하게 그녀의 집을 알려주었다. 주인은 리처드와 함께 사는 여자가 찬거리를 사러 자주 온다며 퍽 친절하게 알려주고는 나와 무슨 관계냐며 물었다. 리처드 회사의 직원이라고 시큰둥하게 말하자 가게 주인은 더 묻지 않았다.
아담한 한옥인 유정숙의 집은 지난밤 그녀를 부축하며 잠깐 스쳤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미리 전무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리처드가 문을 열어주었다. 리처드는 상당히 겁을 먹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어 보이며 토스트와 콜라가 있으니 배가 고프면 먹으라는 시늉을 했고, 텔레비전을 보라는 손짓과 화장실 위치까지 애써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있던 유서 쪽지를 들고 회사로 갔다.
나는 소파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도무지 답답하고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젯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리처드만 있었어도 유서를 써 놓고 집을 나가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시 집을 비웠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유서를 써 놓았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혹시 부모와 형제가 그리워 미아리에 갔을까?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녀의 상황으로 보아 틀린 추측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그녀의 행방을 유추해 보아도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점심때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끼니는 리처드가 설명한 대로 토스트와 콜라로 해결했다.
문득 유정숙의 체취가 묻어 있는 집 안 곳곳을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잠깐 방심한 사이 그녀가 혹시 들어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작은 방을 기웃거려 보았다. 또 화장실에 들어가 일부러 변기의 물소리까지 내려 보며 인기척을 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그녀가 잠을 잤을 안방 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갔다. 침대 시트는 금방 사용했던 것처럼 어지럽게 구겨져 있었다. 방 안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널린 채 뒹굴고 있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책을 들춰보았다.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책 속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아예 알몸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부끄러운 곳을 가리지도 않은 채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사진 속의 여자들보다 사진을 보게 된 내가 더 민망스러워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또 다른 책을 펴 보았다. 이 책은 더 민망했다. 실제의 행위를 노골적으로 촬영한 것은 물론이고 특정 부위만을 클로즈업시켜 눈을 현혹시켰다. 책 속의 모델들은 실제로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다양한 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따위 책들을 보면서 리처드에게 똑같은 행동을 강요당했을 유정숙을 상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하마 같은 몸집의 리처드에 비해 유정숙은 너무도 왜소하지 않은가! 유정숙은 리처드의 노리개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그 영상을 억지로 지우려 안간힘을 썼다. 내게는 영상을 지우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유정숙의 집에서 하루 종일 보초를 서고 리처드와 교대한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그때까지도 유정숙으로부터 소식은 없었다. 집으로 들어온 리처드는 달님이 집에 전화라도 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그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리처드를 뒤로 하고 나는 집을 나왔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전무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그는 오늘은 퇴근하고 내일 다시 상황을 보자고 말했다. 나는 사무실 정황도 궁금하고 내가 모르는 유정숙에 대한 소식이 또 있을지 몰라 경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리처드조차 유정숙의 원래 집 주소나 전화번호를 몰라 그녀의 행방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미아리의 유 씨를 찾아가 볼까 생각했지만, 일단 오늘은 기다려 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마음을 접었다.
그나저나 유정숙은 그동안 리처드에게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동거 생활을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리처드가 유정숙의 주변 이야기에 무관심했는지도……. 태평양을 건너온 성인잡지를 함께 보면서 리처드의 노리개로 전락한 유정숙은 리처드의 거짓 달링인 셈이었다. 유정숙은 그저 리처드에게 정부에 지나지 않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리처드는 어떤 존재였을까? 유정숙에게 리처드는 누런 털을 온몸에 덮어 쓴 달아난 송아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정숙 혼자 힘으로는 달아난 송아지를 붙잡을 수 없어서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가는 선택을 했을지도 또한 모를 일이다. 달님이 곧 달링이지만 유정숙은 그 이름에 맞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정숙의 갈등과 외로움을 어루만져 줄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 금전적으로 기댔을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 리처드까지.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왔을지 모르는 나마저 그녀를 외면하고 이해해 주지 못했다.
유정숙은 유서를 써 놓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달님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유정숙의 길을 찾아간 것이라면 좋으련만……. 무엇도 확신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또 지각이었다. 유정숙의 생사를 걱정하느라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며 잠을 설친 까닭이었다.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무기력한 근육 덩어리만 남겨진 형편없는 몸뚱어리 같았다. 황급히 회사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데 위쪽에서 임 실장이 황급히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실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십니까?”
“어, 이제 오는 거야? 큰일 났어. 달님이 자살했나 봐!”
임 실장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허공에 뒹굴었다. 나는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자살이라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이 일순간에 곤두서 올올이 뾰족한 바늘이 되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사무실은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직원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유정숙의 자살 소식에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벌써 그저께 밤에 죽었다는 거 아냐?”
“그렇대요. 글쎄 장롱 속 옷걸이 봉에 목을 맸대요.”
“어휴,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사장님이 오늘 아침에 장롱 문을 열었다가 발견했다나 봐.”
“장롱 문을 열자마자 달님이 길게 매달려 있는 거 보고 기겁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대, 글쎄.”
이야기를 엿들은 나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유정숙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그것도 장롱 속에서. 내가 보초를 선 전날 죽었다는 이야기다. 나를 만나고 잔뜩 취해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장롱 속으로 들어갔고 목을 맸다는 이야기다. 아! 나는 그녀가 장롱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어 있는데 하루 종일 집 안 곳곳을 기웃거렸던 것이다. 장롱 안에 그녀가 죽어 걸려 있는데 바로 옆에서 리처드가 보는 성인잡지를 보며 온갖 상상을 했던 것이다. 아! 유정숙!
눈앞이 캄캄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유정숙이 내 허리를 잡아 끌었을 때 억지로라도 끌려갔다면 최소한 그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달님이 아닌 유정숙으로 생각하고 그녀를 포근히 안고 위로해 주었더라면 최소한 자살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책감이 가슴을 때렸다. 눈물이 핑 돌아 안개처럼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전무의 지시로 상위 직급의 직원들이 소집되었다. 과장은 일단 주민등록증에 있는 주소를 토대로 유정숙의 집을 찾으러 나갔고, 차장은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확인받아야 한다며 경찰서로 향했다. 나는 과장을 따라 나설까 망설였지만 직원들은 유정숙의 관계를 모를 테니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박 기사가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리처드를 모시러 집에 갔다가 유정숙이 자살한 사건을 접하고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 사무실에 유정숙의 소식을 처음으로 전했던 박 기사는 전무에게 다시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박 기사의 보고를 받은 전무는 다른 두 명의 직원과 함께 나를 불렀다. 나를 포함해 현장에서 잔심부름을 해야 할 직원들이었다.
박 기사와 함께 리처드의 집으로 출발했다.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 탓에 아무 말 없이 뒷좌석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들 눈치만 살폈다. 한동안 조용히 운전하던 박 기사가 한숨을 돌린 듯 중얼거렸다.
“독하기도 하지. 사람이 어떻게 지 목숨을 지가 끊어.”
기회다 싶었는지 내 옆에 앉은 직원이 말을 받았다.
“박 기사님, 정말 많이 놀랐겠습니다.”
“말도 마라. 아침에 출근하자고 밖에서 빵빵 눌러대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 뭔 일이 생겼나 싶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큰 거구가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야. 퍼렇게 질려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방에서 기어 나오더니 소파에 엎어져 엉엉 울기 시작하더라고. 난 그때까지도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지. 리처드가 그러고 있으니깐 나도 모르게 그냥 방 안으로 들어갔지. 내 평생 그렇게 놀라기는 처음이야. 장롱 안에 시커먼 시체가 길게 매달려 있는데……. 후유, 어떻게 나왔는지 몰라. 아직도 정신이 멍멍해.”
평소 입이 가벼운 박 기사는 유정숙의 자살 사건을 마치 영웅담처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유정숙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박 기사가 또 사건을 혼자 해결한 것처럼 부풀리며 말했다.
“나라도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파출소에 신고했지. 경찰이 와서 시체를 풀고 방바닥에 눕혔는데 목을 맨 자리가 칼자국처럼 꺼멓게 멍이 들었더군. 죽어도 곱게 죽을 것이지, 그게 뭐람!”
“그런데 어쩜 감쪽같이 이틀 동안 몰랐을까?”
“글쎄 장롱 문을 열기는 했었는데 반대쪽 문을 열어봐서 몰랐다나 봐. 혹시 밤에 들어올지도 몰라서 집 안을 잘 살폈다는데…….”
박 기사의 이야기는 이미 사무실에 알려진 이야기에 살을 덧붙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니 만큼 직원들은 진지하게 박 기사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유정숙의 사건은 그들에겐 그저 남의 이야기로서 곧 긴장감은 사라져버렸다.
“그럼 장례는 어떻게 한답니까?”
“아직 몰라. 이런 경우 경찰에서 장례를 치르라고 허락이 떨어져야 한대. 자살인지 타살인지 가려야 한다는 거야. 그나저나 당분간 피곤하게 생겼어.”
박 기사는 유정숙의 죽음보다 자신이 번잡스러운 일을 맡게 될까 염려하는 듯했다. 직원 한 명도 맞장구를 쳤다.
“그건 저희들도 마찬가지죠. 할 일도 많이 밀려 있는데…….”
나는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라서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사정없이 달려와 차안에 곤두박질쳤다. 유정숙을 생각하자 또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눈물을 애써 삼키며 차장 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노수 씨는 시체하고 하루를 보낸 셈이군 그래.”
그들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슬슬 눈치를 살피며 농담까지 늘어놓았다. 나는 대꾸할 이유도 없었고 눈을 비벼 그저 눈물을 감추었다.
리처드의 집 앞에는 순찰차가 정차되어 있었다. 소문을 듣고 모인 마을 사람들이 집 안을 기웃거리며 웅성웅성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 나에게 리처드의 집이 어디인지 알려준 구멍가게 주인도 얼쩡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박 기사를 포함한 직원들과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구멍가게 주인이 나를 힐끔 흘기어 보는 눈치였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정숙이 자살한 것과 나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사건에 휘말려 조사를 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사람들이 나와 유정숙의 오랜 인연을 사실과 다르게 불륜이라고 오인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은근히 신경이 쓰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근거도 없이 나를 범인으로 보는 구멍가게 주인의 눈길이었기에 나는 더욱 태연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유정숙의 집을 찾아 나섰던 과장이 그녀의 두 동생을 데리고 현장에 들이닥쳤다. 어쩐 일인지 유 씨와 그녀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두 동생은 얼핏 봐도 매우 놀라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과장은 두 동생 몰래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달님이 미국인과 동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야.”
김 과장이 덧붙였다.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동안 달님이 숨겨 왔던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지 아무런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더라고……. 아버지 어머니는 자살한 불효자식을 보지 않겠다고 하고……. 가장 믿었던 자식인데 그런 자식이 배신을 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면서 안 왔어. 아무리 괴로워도 부모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불효를 저질렀다며 오히려 야단이더군. 그래도 그렇지 난 이해가 안 되더라.”
그러나 나는 유 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믿고 의지하던 딸의 소식을 듣고 유 씨 마음인들 오죽했으면 딸의 마지막 길을 외면했을까! 나는 훗날 유정숙이 가슴에 담았던 모든 괴로움을 그녀 대신 유 씨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경찰의 입회하에 달님을 덮어놓았던 흰 천이 젖혀졌다. 세상과의 고리를 끊어낸 상처가 목 줄기에 선명하게 검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유정숙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반듯하게 잠자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편안해졌을까? 달님이라는 이름을 끊어내기가 얼마나 힘겨웠으면 이토록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까? 가슴이 저리고 금방이라도 숨통이 멎을 것 같았다.
달님이 유정숙임을 확인한 가족들은 이내 주저앉으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통곡은 절규였고 남동생의 통곡은 원망과 죄스러움이었다. 여동생은 뒹굴었고 남동생의 무릎은 저절로 꺾어졌다. 가족들의 통곡과 흐느낌으로 촉발된 현장은 순식간에 슬픔의 바다가 되었다. 나는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삼킬 수 없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꺼이꺼이 울고 싶었던 내 심장마저 마침내 터뜨려 놓았다. 마치 가족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직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애써 그들의 통곡을 외면하려 등을 돌렸다.
저녁 무렵에야 유정숙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최종 판명이 떨어졌다. 이윽고 유정숙의 육신과 세상의 인연을 끊는 병풍이 둘러쳐지고 향이 준비되었다. 측근들은 모여 장례 절차를 의논했다. 장지를 선정하느냐, 화장을 시키느냐는 논쟁 끝에 그녀의 명예롭지 못한 죽음에 비중이 실려 화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유정숙과 마지막 정을 떼기라도 하듯이 삼삼오오 모여 그녀에 대한 옛날이야기들을 한 토막씩 꺼내놓았다. 리처드를 만나 행복해 하던 초창기의 달님과 남이섬 야유회 추억, 그녀가 자살하게 된 동기까지 유정숙과의 추억담을 회상하며 눅눅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음식을 대접해야 할 문상객도 없는 탓에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거의 없었다. 나는 직원들과 말을 섞기가 싫어 홀로 떨어져 있었다. 초저녁부터 자욱하던 안개는 점점 짙어져 온 집 안을 뒤덮었다. 그녀가 가꾸던 정원의 나무들은 오래 전부터 손이 닿지 않아 시들어가고 있었고, 선인장 가시만이 하늘에 삿대질이라도 하는 듯 무성하게 웃자라 있었다.
나는 담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엉덩이와 맞닿은 돌덩이에서 차가운 안개의 습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개에 가려진 그믐달이 희미하다 못해 스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몇 가지 물어봐도 돼요?”
유정숙의 여동생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나는 초면인 여동생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노수 씨 맞죠?”
내가 놀라서 되물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언니에게 들었어요. 언니가 나한테만 전화로 노수 씨 얘기를 했어요!”
“…….”
“언니는 이틀 동안 술만 먹었대요. 그저께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처음으로 노수 씨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취해서 횡설수설하면서도 잘 아는 충주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나와 돌아갈 수 없다며 엉엉 울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버리면 난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유정숙과의 통화 내용을 회상했다. 낮에도 문득문득 슬픔이 솟더니 또 눈물이 울컥 돌았다.
“평소에 남자 친구 얘기가 전혀 없었거든요. 언니는 노수 씨를 좋아했었어요.”
의외였다. 유정숙이 죽기 전 나에 대한 감정을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남겨놓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좋아했었다고 여동생에게 죽기 전에 말하고 떠났다. 아마도 그녀는 내게 달님이 아닌 유정숙으로 남겨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유정숙에 대한 내 느낌은 앞으로도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질 것은 분명했다.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언니와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요?”
여동생의 물음에 나는 유정숙과의 옛날을 떠올렸다. 충주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회상했다. 나에게 있어서 유정숙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학 같은 여자였다. 비록 일방적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게 해준 여자였다. 유정숙이란 이름이 난데없이 달님으로 바뀌어 앞에 나타났을 때도, 리처드와 동거하며 추락하는 모습을 보인 뒤에도, 내게 있어서 유정숙은 언제나 학이었다. 그녀의 싱그러움에 넋을 빼앗기고, 잊혀질만한 때 거짓말처럼 서울에서 재회한 것을 회상하며 그녀와의 관계를 동생에게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여동생은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처럼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는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잘 있는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언니는 근래에 많이 외로워했습니다.”
유정숙의 마지막 슬픈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감정의 기복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돈을 쏟아내던 유정숙을 뿌리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녀를 뿌리치고 나온 밤, 자살하기 직전, 혼란스럽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지 못한 것이 한없이 마음을 옥죄었다. 너무 멀리 떠나와 돌아갈 수 없다며 엉엉 울었다던 그녀의 외로움은 곧, 내 외로움과도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외면했었다.
여동생은 원망스러운 듯 습기 어린 눈초리로 나를 힐책했다.
“그걸 아시면서 왜 옆에서 좀 잡아주지 않았어요? 언니가 불쌍해서…… 미치겠어요! 우리 언니 어떻게 해! 정말 불쌍해서…….”
여동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어둠 속에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는 유정숙의 어깨와 너무도 많이 닮아 있었다. 파도치듯 흔들리는 여동생의 가녀린 어깨 위에 유정숙이 있었다. 나는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며 유정숙을 위로했다. 그동안 차마 위로조차 해줄 수 없었던 유정숙의 아픔을 여동생의 어깨를 빌어 비로소 부끄럽게 감싸 안았다. 여동생의 어깨는 유정숙의 어깨가 되어 나의 위로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여동생의 흐느낌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르고 내내 바닥으로 흘러내려 온 집 안을 적셨다.
밤이 이슥해지자 몇몇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적막과 함께 내려앉은 괴괴한 밤은 한없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가끔 유정숙의 남동생이 꺼져가는 향불을 피우기 위해 오가는 움직임만이 먼발치에서 아른거릴 뿐 주위는 온통 지독한 어둠과 안개로 덮여가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