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향기, 그녀의 아픔




 눈을 떴다. 지독한 갈증의 쓴 맛이 입천장에 메말라 있었다. 불을 켜고 사방을 훑어보았으나 온통 낯선 환경만이 눈에 들어와 박힐 뿐이었다. 방 안은 정지된 고요만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그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맡에는 물 컵과 주전자가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비에 젖은 옷이 깨끗하게 세탁되어 오징어처럼 옷걸이에 매달려 있는 것도 보였다. 아직도 어둠이 걸린 창밖에서는 간헐적인 빗방울소리가 유리창을 노크하듯 두들겼다.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는지 자동차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땅강아지처럼 파고 들어왔다.

  나는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되새김해 보았다. 필름이 끊어져 단편적인 기억만이 떠올랐다가 날아갔다. 숙희에게 이끌려 여관으로 들어온 후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꼬꾸라진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요금을 계산하러 간 사이 널브러졌다는 것 외에 그녀가 언제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젖은 옷은 어떻게 갈아입혔는지 느낌조차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끌어내 보아도 지난밤 숙희에게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던 내 꼴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이었을까? 주량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망가져서 그녀 앞에 널브러진 초라한 몸뚱이는 또 얼마나 왜소했을까? 참으로 숙희를 볼 낯이 없었다. 나는 주섬주섬 아직 덜 마른 옷을 걸쳐 입었다.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추리닝을 주전자 옆에 가지런히 포개어 놓았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오며 부끄러운 탈출을 시도했다.

 “젊은 사람이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하누. 그래도 애인 하나는 잘 두었더구랴.”

  마침 계단 청소를 하던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하던 일을 멈추며 말했다. 인기척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나는 민망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숙희가 궁금하여 여유 있는 척 시치미를 떼고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아주머니, 저랑 같이 왔던 그 사람은 언제 갔습니까?”

 “통행금지 끝나서 나간 지 얼마 안 돼! 밤새 옷 빨고, 이불 펴 주고, 물 떠 놓고, 시중들다가 여기서 나랑 잠깐 눈 붙이고 나갔네!”

  나로 인해 새벽잠을 설친 주인아주머니가 푸념하듯 말했다.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숙희는 만취하여 인사불성인 나의 옷을 갈아입히고, 젖은 옷을 빨아 널고, 깨어나면 갈증을 느낄까 싶어 물까지 준비해놓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혹 내가  어찌될까 걱정되어 주인아주머니의 카운터 실에서 잠시 잠을 청한 뒤 통행금지가 해제된 조금 전, 집으로 들어갔다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체면이 설지 대관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왔다. 덜 깬 숙취가 날아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반가웠다. 밤새 비가 온 뒤여서 된통 싸늘해진 새벽 공기는 혼미해진 머리를 말끔히 청소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했다.

  나는 터벅터벅 새벽 아스팔트에 발자국 도장을 찍으며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온통 숙희 생각뿐이었다. 한때나마 진 사장으로 인해 그녀를 몸가짐이 가벼운 여성이라 여겼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만약 새벽에 갈증을 느껴 눈을 떴을 때,  그녀가 윗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던가, 내 옆에서 정신 모르게 자고 있었더라면 그녀에 대한 생각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가버린 것에 안도하면서도 그녀가 가고 없는 것이 한편으론 아쉬운 나의 이중성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결혼한 사이도 아닌 남자의 궂은 시중을 들고 슬기로움을 보인 것은 비단 그녀의 이른 살림살이 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틋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난 참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못난 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숙희가 보고 싶다는 새로운 갈증에 몹시 목이 탔다. 그러나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하숙집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그녀가 출근하기 전에는 그녀와 연락할 수 있는 길도 전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찌뿌듯한 몸도 녹일 겸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목욕탕을 찾아 들어갔다. 나는 이미 모래알 같은 때를 탕 밖으로 불어 버리던 처음보다는 목욕탕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간단한 샤워를 끝내고 찬 바닥에 길게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간밤의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던 그녀의 율동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발등을 밟혀 가면서도 블루스를 가르치려 애쓰며 즐거워하던 그녀의 표정이 내 얼굴에 덮여왔다.

  눈을 감았다. 내 품에 맞닿았던 그녀의 앞가슴이 짜릿한 전율로 다시 되살아났다. 포도 알처럼 싱그럽던 입술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큰일이었다. 벌거벗은 아랫도리가 민망하게도 대책 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사람들 눈을 피하려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러나 녀석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아예 수건을 걸치고 컴컴한 수면실로 들어갔다. 한참 후 녀석은 진정되었고 서서히 잦아들었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단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내내 숙희의 앞가슴과 입술에 포로가 되어 끌려 다녔다. 꿈속에서도 숙희는 내내 갈증을 유발시켰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 목욕탕을 나왔을 때는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이었다. 선지해장국으로 대충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허 화백과 사장을 만나기 위해 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 직장에 대한 부탁 차 방문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근무하는 숙희가 궁금한 것이 더 큰 속셈이었다.

 “어, 미스터 강! 사무실 그만 두었다면서?”

  허 화백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사장은 무척이나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사장의 얼굴은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직장을 허 화백과 함께 떠밀듯 내보내서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직장을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되도록 부담을 덜 느끼게 하려 애쓰며 대답했다.

 “예. 멀리 이사 간다고 해서요.”

  사장과 허 화백은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며 직장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겠노라 약속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칸막이 뒤가 신경 쓰였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숙희가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니, 공개적으로 숙희에 대해 아는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칸막이에 가려진 숙희가 내가 온  것을 은근히 눈치 채 주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큰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며 칸막이 뒤를 훔쳐보아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간밤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생각되어 걱정이 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진 빗줄기를 맞고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밤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지쳐서 출근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잠시 후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다. 계단 밑에서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소리 없이 웃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꾸만 사무실 쪽을 돌아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 찾는 중인가 봐. 난 여기 이렇게 있는데 어디서 찾는 거야?”

  숙희가 농담까지 섞어가며 놀리듯 말했다. 거래처를 다녀오는 중인지 그녀의 손에는 하얀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안부를 물었다.

 “속은 괜찮아?”

 “그럭저럭 괜찮아. 그런데 어제 나 너무 많이 취했었지?”

 “사람이 그럴 때도 있지 뭐.”

  숙희는 관대하게 웃으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었다. 어설픈 해장국을 시원찮게 몇 숟가락만 먹은 탓인지 벌써 시장기가 돌았다. 마침 점심때가 되기도 했지만 그녀와 식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어젠 정말 미안했어. 지금 점심 같이 먹어도 돼?”

 “지금?” 

 “음, 오늘은 내가 사야지!”

 “잠깐만 기다려. 사무실에 서류 봉투 가져다 놓고 올게!”

  그녀가 계단을 오르며 사라졌다.‘동동동’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녀의 뒤태가 또 시선을 끌었다. 사무실로 올라간 그녀는 금세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사무실과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한식집을 가는 걸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혹시 아는 사람의 눈에 띄어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싫었지만 되도록 방해받지 않고 점심을 즐기고 싶어서였다. 둘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점심을 주문하고 음식이 준비되는 사이, 간밤에 내가 입고 있던 추리닝이 궁금해 물었다.

 “어제 어디까지 봤어?”

 “왜 그게 궁금해? 어디까지는. 전부 다 봤지. 후훗! 그게 억울한가 봐.”

  그녀가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나를 은근히 놀리려는 표정이 짙게 묻어 있음을 곧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도 익살스럽게 웃으며 되받았다.

 “너무하다. 이건 공평하지 못 해.”

 내 말이 짓궂다는 듯 그녀는 내 코를 툭 건드리고는 깔깔 웃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린 듯했다. 정숙희는 은애나 유정숙보다 내 마음속에 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은애나 유정숙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늘 그렇게 있었지만 숙희는 언제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심을 어느 때보다도 맛깔스럽게 먹었다. 아마도 숙희와 함께했던 점심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인근 다방에서 그녀와 커피까지 마시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숙희와 헤어진 나는 선이 닿을 만한 곳은 모두 다니며  취직을 부탁하기로 했다. 일단 은애의 일도 궁금하여 휘문인쇄소에 들렀다. 하지만 은애를 만날 수 없었다. 은애가 결혼 때문에 곧 퇴사한다는 말을 신입 도안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은애의 결혼 소식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남자의 지독한 애정공세에 은애가 결국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은애는 그 남자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살게 되었으니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은애에게 어떻게든 고마움의 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휘문인쇄소를 나왔다.

 이어서 태평양기획에 들렀다.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 임 실장은 때맞추어 잘 왔다며 의외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임 실장이 그동안 어디서 근무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중간 중간의 과정을 생략하고 제일 규모가 컸던 문구업체 개발부만을 말했다.

 “이제 일 제법 하겠군. 그런데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었어?”

  나는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어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었다며, 다른 약점은 최대한 숨겨 말했다.

 “마침 사람이 더 필요한데 사장님께 한번 말해보자. 어떠니? 다시 재입사할 생각은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열심히 해야죠.”

  임 실장은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처드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리처드를 매일같이 보며 유정숙을 의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잠시 후 집무실을 나온 그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며 환하게 웃었다. 임 실장은 그동안 과중한 업무로 힘들었는데 내가 오게 되어 한시름 덜게 되었다며 오히려 나보다 더 홀가분하게 짐을 내려놓는 듯했다. 그동안 걱정으로 증폭되던 취직 문제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쉽게 해결되어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쓸어내렸다.

  나는 월요일 출근으로 며칠의 휴식을 허락받은 셈이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희 씨, 나 취직했어. 월요일까지 휴가나 마찬가지야.”

 “참 잘 됐다. 어디?”

 “전에 일하던 태평양기획. 저녁에 그리로 갈까?”

 “여기로 온다고?”

  나는 숙희가 또 보고 싶었다.

 “그냥 또 보고 싶어서…….”

 “엉뚱하기는…….” 

  저녁이 되길 기다렸다. 허 화백이 내 직장을 알아보는 수고를 덜어줄 겸 취직되었다는 말을 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건 다 숙희를 만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사무실에 들어 허 화백과 사장에게 직장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진 사장에게 인사도 할 요량으로 숙희가 있는 사무실로 칸막이를 넘었다. 숙희는 이미 소지품을 챙겨 퇴근 준비를 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척 의례적인 눈인사만 했다. 나는 좀 더 확실한 위장을 위해 진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 오랜만이네!”

 “예에.”

 “지금은 어디서 근무해?”

 “월요일부터 태평양기획에 다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봐.”

 “예에,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진 사장에게 인사를 마치고 숙희에게 암묵적인 눈짓을 보낸 다음 사무실을 먼저 빠져나왔다. 그리고 길 건너 모퉁이에 숨어 숙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후 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건널목을 건너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냐? 어제오늘 일 년 치 몰아서 다 만나는 것 같다.”

  농담을 먼저 걸었다. 그녀는 웃으며 앙증맞게 대꾸했다.

 “왜? 벌써 귀찮아졌어?”

 “무슨 소리. 그냥 농담 한번 해본 거야! 저녁 먹고 갈래?”

 “아니. 오늘은 피곤하고 졸려서 그만 들어가는 게 좋겠어. 차라리 일요일에 인천 월미도나 갈래? 어머니가 있다는 끝섬은 아니지만…….”

  숙희는 끝섬을 생각하며 가까운 월미도라도 가자고 했다. 그녀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기억하는 숙희에게 울컥 감동이 복받쳤다.

 “그래 고마워.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은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조금도 망설이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가 없었다. 나는 숙희와 버스를 타고 마치 보디가드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집까지 동행했다.

 “저기 2층에 여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어. 집은 나중에 들어가고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

  그녀가 붉은 벽돌로 지어진 평범한 연립주택 2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주인과 별도로 놓아진 철제 계단 2층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숙희는 여동생이 먼저 퇴근하여 집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집 앞에서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연립주택 2층 계단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어스름한 조명 밑에서 그녀가 손을 흔들며 한참 동안 작별인사를 보냈다.

 

 

  일요일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숙희의 화사한  연분홍 투피스는 마치 봄날의 나비와도 같았다. 그녀의 화사한 옷차림을 보며 내 마음이 덩달아 화사해졌다. 나는 출발 전부터 이미 긴장되기 시작했다. 비록 어머니가 있다는 끝섬은 아닐지라도 처음으로 바다를 보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충분히 흥분되었다. 더욱이 숙희와 함께 떠나는 바다는 끝섬이나 다름없는 황홀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며 월미도에 도착했다. 월미도 부둣가에 내리자 미역 냄새 비슷한 바다 향기가 코끝에 달라붙었다.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비릿한 생선 냄새도 바다 향기에 버무려져 모두 다 상큼하게 느껴졌다.

  바다 위에서는 수십 수백의 하얀 갈매기가 어지럽게 춤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닷물에 머리를 처박고 첨벙 빠졌다가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잔잔한 바람에도 일렁이며 춤추는 바다에서 음률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규칙적으로 밀려와 방파제를 때리고 다시 바다로 밀려가는 파도 소리는 어머니의 말 그대로 음률이었다. 파도 소리가 그렇게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음률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월미도의 바다라고 해도 어머니의 음률을 떠올리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바다 향기는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어 내 가슴을 맑게 했다.

 그녀가 물었다.

 “월미도 이름이 왜 월미도인 줄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묻는 것을 보니 숙희 씨는 그 유래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어제 조금 공부했지. 월미도는 섬 모양이 반달의 꼬리처럼 휘어져서 붙은 이름이래.”

 “제법인데. 그런데 월미도는 섬이 아니잖아?”

 “옛날에는 섬이었는데 육지와 연결돼서 지금은 아니지.”

  사전에 월미도에 대해 알아보고 온 야무진 그녀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숙희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해안관광지를 걷는 동안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곳곳에 즐비한 색다른 풍경 모두 우리의 관심대상이었다. 솜사탕 나눠먹기, 물방개 경주놀이, 인형 맞추기 놀이 등등 있는 그대로의 월미도를 즐겼다. 재미삼아 사주관상을  보고 싶었으나 숙희의 완강한 거절에 포기하고 길거리 화가에게 우리들의 초상화를 부탁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니 그녀와 나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화가는 우리의 그림을 예쁜 액자에 넣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 그림은 숙희 씨가 보관해!”

 “왜?” 

 “난 혼자 살잖아. 어디 놓을 때도 마땅치 않고…….”

 “알았어. 우리 저기 부두에 한번 가볼까?”

  그녀가 손짓하는 선착장에는 방금 도착한 여객선에서 한 무리의 사람과 차량이 줄지어 내리고 있었다. 양산을 펴든 아가씨, 봇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 짝을 지어 커다란 짐을 내리는 사내들로 여객선 주위는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나는 그곳에서 우시장을 보았다. 생동감 있고 활기찬 분위기는 우시장 못지않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장터였다. 눈앞에 떠있는 섬들과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토해내는 기적과 엔진 소리는 마치 송아지 울음소리로 범벅이 된 우시장을 연상케 했다.

 “우리도 배 타고 섬까지 가보면 어떨까?”

  내가 끝섬을 생각하며 숙희에게 물었다. 마침 매표소 안내판을 보던 숙희가 말을 받았다.

 “작약도가 제일 가까운 섬인 모양인데 거기까지 가지 뭐!”

  우리의 의견은 일치되었고 작약도를 거처 인근 섬을 왕래하는 배에 승선했다. 배가 출발한 후에는 좀 더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선실을 나와 갑판 후미로 나왔다. 하얀 포말을 뿜어내는 스크루의 굉음이 힘 있게 요동쳤다. 스크루가 뿜어 올린 하얀 포말은 길게 꼬리를 물고 여객선을 따라 붙었다. 갈매기가 지그재그로 춤추며 여객선 주위를  맴돌았다.

 손가락을 높이 들자 먹이를 주는 것으로 오인한 갈매기 떼가 손가락 가까이 접근하며 쪼려했다. 숙희가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다는 듯 몇 번씩 갈매기를 불러 모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영화에서처럼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나부꼈다. 그 바람결을 따라 올올이 흩날리는 숙희의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싱그러웠다. 사방으로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는 손가락에 잠시 정리된 머리카락은 또 다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런 숙희의 표정은 내 마음과 마찬가지로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작약도에 내렸다. 우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배치된 평상에 앉아 생선회와 소주를 주문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생선회는 고향에서 잡아먹던 피라미 민물 회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생선회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숙희와 함께 갯바위로 산책을 나갔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넘어질세라 숙희와 한 몸이 되어 걸었다. 그러다가 몸이 조금이라도 기우뚱해지면 균형을 잡으려 서로 엉겨 주변의 눈총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 생활이 자유로워지고 숙희와 함께 둥지를 틀게 되면 반드시 끝섬의 어머니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작약도와 월미도의 추억은 숙희와 함께여서 더욱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태평양기획에서 한 달이 지났다. 재입사를 한 경우라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어려움이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나의 재입사로 한결 일이 수월해진 임 실장이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었다. 임 실장은 그동안 지독히 많은 업무에 시달렸는지 틈만 나면 자리를 비우곤 했다.

  사무실이 서로 멀지 않은 관계로 숙희와의 데이트는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어떤 날은 점심을 함께 먹고 저녁에 또 만나 데이트를 하곤 했다. 데이트 횟수가 잦아지는 만큼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처음과는 달리, 아무도 몰랐던 숙희와의 관계가 서서히 노출되었다. 허 화백이 알게 되었고 진 사장이 알게 되었고 은애 또한 눈치를 챘다. 허 화백이나 진 사장은 퍽 놀라는 눈치였지만, 은애는 진정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다. 나는 숙희와의 교재 사실을 묻는 사람에게 사실 그대로 과감히 인정했다. 그들에게 굳이 변명이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숙희에 대한 나의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진  사장에게 행동을 신중하게 하라는 경고의 표시이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 숙희의 전화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일요일 데이트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통화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유정숙의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다시 입사했다고 어제 리처드에게 들었어요. 지금 시간 좀 내 줄래요?”

  유정숙이 언젠가는 재입사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리고 반드시 전화가 올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이제야 리처드가 나의 입사 사실을 이야기했던 모양이었다.

 “시간은 괜찮지만…….”  

“전에 만났던 레스토랑 기억하시죠? 한 시간 후 그곳에서 만나요.”

  잠시 잊고 있었던 유정숙의 얼굴이 눈앞에 뚜렷이 되살아났다. 나는 또 다른 갈등에 휩싸였다. 그녀를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서였다. 그녀를 만나는 모습이 혹시라도 아는 사람의 눈에 띄어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곧이어 숙희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유정숙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유정숙의 이야기는 숙희와 나 사이에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공연한 일로 숙희의 신경을 건드릴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숙희와는 일요일 데이트 약속을 정하고 유정숙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나왔다.

  모처럼만에 본 유정숙, 아니 달님의 얼굴은 의외로 초췌해 보였다. 소녀 같던 청순함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기까지 했다. 한결 짙어진 화장도 화장이었지만 앞가슴이 패인 옷차림에서 풍기는 몸짓이 서양 여자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약간의 술 냄새까지 느껴졌다. 이미 술을 마시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저녁 대신 술과 안주만 시켰다.

 “……우리 아버지를 만났다면서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집에 다녀왔나 보죠?”

 “아뇨. 전화로만 들었어요. 노수 씨를 모르는 체 시침 떼었지만…….”

 “집에 한 번 다녀가지 그래요. 거의 매일 술로 사시나 보던데…….”

 “이 꼴을 해 가지고 어딜 가요.”

  그녀는 자조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가족을 보고 싶은 갈망이 짙게 깔려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유 씨의 소리 없던 눈물을 떠올리며 말했다.

 “유 씨 아저씨도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차피 리처드 얘기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갈 수 없는 내 마음이 더 문제죠.”

  나는 씁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와 노수 씨는 송아지를 몰아다 준 단순한 인연밖에 없죠. 아무리 고향 사람이라고는 하나 충분히 그냥 그렇게 흘려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노수 씨가 내 속사정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푸념도 할 겸 아무 얘기라도 하고 나면 후련해질 것 같아서 연락한 거예요.”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이미 취기가 있던 그녀였지만 술을 잔에 따르더니 단숨에 입안에 부어버렸다. 그리고는 내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몹시 할퀴기 시작했다.

 “세상에 못마땅한 것이 너무 많아요. 어쩌면 나 같은 여자가 못마땅해 하는 것이 더 많은지도 모르죠.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에요. 리처드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어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할수록 불안이 커지고 싸움도 잦아져요. 요즘은 리처드가  거의 매일 외박을 해요.”

  리처드가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다는 심증은 나나 그녀나 같지만, 그녀는 심증 이상의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유정숙은 이미 리처드의 외도를 확인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래전 명동에서 보았던 천박스러울 정도로 마른 여자가 리처드의 여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사형수가 되어 말없이 사형대에 올라서는 꿈을 근래에 자주 꾼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틀 앞에서 분노마저도 스스로 삭이다가 가위 눌리는 꿈에 시달린다고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순간임을 알고 있으면서 끝내 체념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마음이 과연 인간의 본심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도 했다. 이제는 감당하기도 벅찰 만큼 가위 눌리는  똑같은 꿈이 자주 되풀이되어 힘겹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쉽게 취해버렸다. 이미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 나온 상태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작정 술을 퍼붓는 터라 만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쉴 새 없이 토해내는 그녀의 하소연을 듣기만 하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아픈 내 마음을 유정숙은 알기나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리처드는 오늘도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 미워요. 하지만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요.”

  슬픔을 잔뜩 머금고는 내색하지 않으려 일그러진 마음, 오래도록 꺾여 있었으면서도 꺾이지 않은 듯 비틀거리는 몸짓, 체념하기에는 아직 미련이 많은 견디기 힘든 절망의 눈동자……. 그녀의 눈은 짙은 외로움에 절어 스러져가고 있었다. 이렇다 할 초점도 없이 쌓이고 쌓인 분노의 조각들을 뱉어 놓는 눈동자는 너무나 잔인했다. 토막 난 내면을 피나도록 문지르며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이미 그녀의 의지는 한계에 도달해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최소한 그녀의 마음을 위로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맞은편에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일이 리처드를 만난 지 2년이 되는 날이에요. 결혼기념일은 아니라도 정말 같이 있고 싶은데, 리처드가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정말 두려워요.”

 마침내 그녀는 내게로 다가와 쓰러지듯 가슴에 안겼다. 그녀는 연신 굴러 떨어지는 눈물을 내 셔츠에 비벼댔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파도를 쳤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멍하니 앉아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나무토막이 되어 굳어있었다. 그녀는 상처로 범벅이 된 마음을 내 셔츠와 가슴에 얼룩으로 마구 새겨놓았다. 그녀를 보며 마음은 물론 몸도 많이 상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쓰렸다. 나는 유정숙이 무너지는 아픔만큼 리처드의 태만이 증오스러웠다.

 “……노수 씨, 여잘 사랑해 본 적 있으세요?”

  그녀가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닦지도 않은 채 놀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황당한 질문을 내던졌다. 그녀가 토해내는 감정의 기복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서글프고 익살스럽고 절망스럽고 노엽기도 하여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녀는 유정숙이 되었다가 달님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

 “하긴, 샌님이 언제 여잘 사귀어 보기나 했겠어. 노수 씨, 이런 내가 불쌍하죠?”

 “오늘 많이 취했어요. 그만 집에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그럼 나 집까지 바래다줘요.”

 “그러죠. 정신 차리고 지금 일어나세요.”

  그녀가 쓰러지며 내게 엉겨 붙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술 냄새가 나긴 했어도 정신은 멀쩡했었다. 그런데 어찌나 술을 마셨던지 그녀는 벼랑으로 추락하듯 취해있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몹시 취한 그녀를 억지로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등판에 어린애처럼 업고서야 비로소 술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덜미를 휘감은 그녀의 여린 두 팔은 칡넝쿨처럼 엉키며 감겼다. 거친 호흡과  함께 나를 휘감는 술 냄새는 귓가를 더듬으며 마침내 코밑까지 흘러 내려왔다. 따스한 그녀의 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심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택시를 잡으려 도로에 내려섰다. 그러나 나와 그녀의 행색을 보고는 멈췄던 택시도 그냥 도망쳐버렸다. 얼마 후 좀처럼 잡히지 않는 택시를 겨우 잡아탔다. 하지만 기사는 그녀와 나를 보고는 내려줄 것을 종용했다. 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는 그녀를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웃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겨우 그녀의 집 근처까지 가기로 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그녀는 내내 횡설수설이었다. 겨우 그녀의 기억에 의지하여 집 언저리를 더듬어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가 비틀대며 억지로 내 허리를 잡고 일어섰다. 다시 그녀를 등에 업었다. 다 큰 성인 여자를 업고 골목에 들어서자 지나는 행인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떠받들고 있는 양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맨살의 느낌이 몹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꾸만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늘어진 그녀를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를 놓치면  땅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아 하는 수 없이 어린아이를 추스르듯 치켜 올렸다. 그녀의 엉덩이가 손바닥에 걸쳐졌고 뭉클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뇌리에 전해졌다. 등에 닿은 그녀의 가슴 또한 등줄기 표면에 밀착되어 자꾸만 움직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며 살갗에 자극되는 유정숙의 가슴에 녀석은 또 주책없이 꿈틀거리며 행동을 개시했다. 순식간에 단단해진 부위가 혹시 낯선 이의 눈에 띄면 민망해질 것 같아 허리를 구부려 자세를 낮췄다. 단단해진 이 녀석은 하여튼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었다. 유정숙을 처음 만난 우시장 담장 위에서 미처 사타구니에서 손을 빼지 못해 난처했었는데, 이제는 길가에서조차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술 취한 유정숙의 안내를 받아 겨우 그녀의 집 대문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잠시 녀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으나 녀석은 쉽게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무게에 눌려 더는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마침내 그녀에게 물었다.

 “정숙 씨, 집에 다 왔습니다. 이 집 맞아요?”

 그녀가 게슴츠레하게 눈초리를 올리며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집을 흘깃 확인했다. 그리고는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듯 등을 타고 내려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라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애쓰는 동안 비틀대던 그녀가 내 품에 와락 안겨버렸다. 단단해진 녀석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쇠죽을 끓일 때 느껴지던 아궁이의 후끈한 열기 같은 것이 온몸에 달라붙었다.

  나는 민망함을 모면하기 위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단단해진 녀석을 움켜쥐고 억지로 옆으로 꺾어버렸다. 다행히 그녀가 눈치 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다소 정신이 드는 듯 그녀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잠깐 들어왔다가 차 한 잔 하고 가면 안 돼요? 리처드는 오늘도 안 들어 왔나 봐요.”

 그녀의 습기 어린 눈빛을 보았다. 나를 믿는 쪽과 불신하는 쪽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수만 가지 생각에 수만 가지 갈등의 싸움이었다. 이성과 감성, 사랑과 연민, 승리와 배반에 이르는 이중적 갈등의 틈바구니를 헤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절규나 다름없었다. 나 자신을 할퀴고 또 할퀴어야만 했다.

  나는 그녀가 유혹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유정숙은 지금의 혼돈스러운 마음을 잠시라도 잡아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뿌리쳤다. 그녀가 싫어서도 미워서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상처받고 피 흘리는 아픈 마음을 더는 어루만져 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위로하고 무엇을 또 위로해야 하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혼돈스러움을 나는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바보 같아, 정말!”

 유정숙이 푸념을 뱉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뒤통수에 꽂히는 그녀의 슬픈 목소리를 뒤로 하고 결국 대문을 나섰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 눈에 까닭 모를 눈물이 돌아 촉촉이 젖어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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