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의 끝자락




 유정숙의 서럽고 안타까운 죽음과는 아랑곳없이 아침은 어김없이 밝았다. 밤새 내려앉은 지독한 안개는 미처 걷히지도 않았다. 여전히 집 안 곳곳을 핥고 있는 안개의 촉수는 구석진 곳마다 마지막 진액을 빨아올리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유정숙이 떠나는 것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영화에서 본 드라큘라의 성처럼 온 집 안을 에워쌌다.

  밤사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새우잠을 청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부비며 행동을 개시했다. 이미 잠에서 깨어나 여동생이 오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뒤척이던 나 또한 몸을 뒤틀며 일어나 앉았다. 이른 새벽부터 안개 속을 오가는 여동생은 움직이는 몸짓마다 언니에 대한 미안함이 절절이 묻어나 보였다. 

 나는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어 찬물로 세수를 했다. 세숫물 속에 푸석푸석한 내 얼굴이 비쳤다. 얼굴을 쪼개어 보며 유정숙을 떠올리던, 송아지 탈출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일이 떠올랐다. 대관절 유정숙은 무슨 생각으로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녀를 잡아주지 못하고 뿌리친 것이 울컥 뼛속 깊이 또 아려왔다.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연거푸 얼굴 여기저기에 찬물을 마구 뿌려 눈물을 감추었다.

 세수를 끝내고 무엇이든 도울 일이 있을까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공기 속을 헤매고 있는 안개가 온몸에 달라붙어 이슬을 맞은 듯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팔을 문지르자 작은 물방울이 맺힐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그것은 분명 유정숙의 눈물이었을 터였다. 떠나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하는 슬픈 마음이었을 터였다.

  때마침 대문 열리는 파열음이 아침의 고요를 깨뜨렸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대문 쪽으로 모아졌다. 유정숙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판정을 내렸던 경찰 2명이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직도 조사할 일이 남았으려니 여기며 가볍게 방 쪽으로 등을 돌렸다.

 “강노수 씨 계십니까?”

  경찰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 화살처럼 꽂혔다. 순간 몇몇 회사 직원들의 시선 이 나에게로 쏠렸다. 나에게 쏠리는 시선만 봐도 경찰이 찾는 강노수가 나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경찰서로 가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잠시 조사할 일이 있습니다!”

  경찰은 대번에 나를 알아보고 말했다. 나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경찰서라니……. 지금까지 경찰서는 단 한 번도 출입한 적이 없는 장소였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경찰서로 데려가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경찰서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눅이 들고 두려움이 앞서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양쪽에 한 명씩 팔을 붙잡아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항의하는 몸짓이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스르르 끌려갔다. 다만 왜  끌려가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눈길만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도 너무 놀란 나머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개 속에 말없이 서 있는 고목처럼 보였다. 경찰에 끌려 대문을 나서자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며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 틈에서 나를 흘기듯 쳐다보는 구멍가게 주인이 보였다.

  경찰에 끌려가는 이유를 그제야 알아차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경찰서에 가면 유정숙의 죽음에 내가 연관되어 있는지 조사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회사에는 물론 리처드와 유 씨 아저씨, 숙희에게까지 유정숙과 나의 관계가 드러날 것이다. 유정숙과의 순수한 인연은 불륜으로 오인되고 특히 리처드와 숙희는 단단히 오해할 것이다. 괜한 사람들까지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겨우겨우 서울에서 일하며 먹고 지내던 생활도 힘들어질 것이다.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머릿속은 텅 비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경찰서 정문에 이르자 마음은 더 사정없이 쪼그라들었다. 정복 차림의 위병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경찰은 거만하고 위압적인 몸짓으로 경례를 받았다. 경찰 건물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냉큼 삼켜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2층에 위치한 조사과로 끌려갔다. 마침내 조사과 의자에 경찰과 마주 앉게 되었다. 경찰이 타이프를 칠 자세를 취하며 조사는 시작되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하여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최대한 집중해서 조사에 응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정숙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는 문제였다.

 “유정숙이 발견되기 전날 자네가 그 집을 찾더라는 신고가 들어왔네. 신고가 접수되었으니 우리는 조사할 의무가 있지. 자 시작하자. 이름?”

 “강노수입니다.” 

 “나이?”

 “스물 셋입니다.”

 “부모는?” 

 “안 계십니다.”

 “직업?” 

 “회사원입니다. 한미합작기획실.”

 “리처드라는 미국 놈이 다니는 그 회사?”

 “예, 사장님이십니다.”

 “죽은 유정숙과는 어떤 관계야?”

 “고향사람입니다.” 

 “고향은 어디?”

 “충주입니다.” 

  순간순간 쏘아보며 묻는 위압적인 표정이 나를 압도했다.

 “양반 동네구먼! 그런데 왜 죽였어?”

 상투적인 질문을 하던 경찰은 넘겨짚으며 윽박질렀다.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를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없던 일을 꾸며내기라도 했다간 속수무책으로 낭패를 당할 것 같았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도 미치겠습니다. 정말 불쌍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그날 그 여자 집은 왜 찾은 거야? 미국 놈 몰래 연애 중이었나?”

 “아닙니다. 유서를 써 놓고 나갔다고 해서 사장님 대신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저희 회사 전무님께 물어보면 다 아실 겁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고, 난 자네 마음을 물어본 거야. 유정숙과 남몰래 사귀었냐고…….”

 “만나긴 했어도 그런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이라는 것도 숨긴 게 아니라 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은 것뿐이고요.”

 “충주에서부터 알던 사이라며? 그때부터 사귀던 거 아니었어?"

 “아니라니깐요. 유정숙 아버지를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충주에서 한 번 보았고 우연히 서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그렇고, 사장님하고 사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앞으로 조사해 보면 다 나와. 쉽게 가자고. 진 빼지 말고……. 유정숙 말고 애인 있어?”

 “예에…….” 

 “이거 쌍방 모두 삼각관계구먼. 죽은 여자 하나에 미국 놈과 자네. 자네 하나에 죽은 여자 와 애인…….”

 “그건 정말 아닙니다. 제가 유정숙과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것을 사장님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유정숙도 제 얘기를 사장님한테 말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리고 제 애인은 사장님도 유정숙도 다 모르는 사입니다.”

 “서로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문제지. 자네와 죽은 여자가 고향사람이든 서로 사귀는 애인이 든 동거하는 미국 놈에게는 비밀이었다는 얘기 아냐? 숨겼다는 건 그만큼 캥기는 게 있다는 뜻도 되지.”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경찰은 억지 논리를 펴며 추궁했다. 나는 더더욱 강도를 높여 항변했다.

 “유정숙이나 저나 사장님을 의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녀와는 그저 고향사람 이상도 이 하도 아니었습니다. 가끔 저를 찾아와 사장님과의 갈등을 털어놓았을 뿐 아무 일도 없던 사이입니다. 네?”

 “죽은 여자를 사랑한 거 아니었나?”

 ……제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네가 그 집에 들어간 다음 날 죽은 유정숙이 발견됐어. 그 여자를 언제 어떻게 죽였는지 빨리 털어 놔.”

  경찰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살인범으로 몰아 사건을 해결하려는 듯했다. 경찰의 억지 조사 과정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구멍가게에서 사이다를 사 먹고 그녀의 집 위치를 물어본 게 자살을 타살로 뒤바꾸고 살인범으로 몰릴 만한 행동인가! 그 단순한  행동이 불러온 결과치고는 엄청난 굴욕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억울함이 있다 해도 그건 괜찮았다. 다만 유정숙을 향한 나의 마음이 추하게 추락하고 그녀의 아픔이 치정 때문이었다고 알려진다면 그건 참을 수 없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마음이 너무나 비참하고 서글퍼 견딜 수가 없었다.

 “유정숙은 제가 집에 간 전날 이미  장롱 속에서 목을 맸던 게 분명합니다. 전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건 조사해 보면 알 일이고, 자넨 사실대로 진술만 하면 돼!”

 “모두 다 사실입니다. 유정숙을 제가 죽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내 대답이 어떻든 간에 경찰은 말을 비꼬며 질문을 계속해왔다.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가다듬고 조목조목 답변을 했다. 충주 우시장에서 유정숙을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진술했다.  서울로 올라와 회사에 취직해 그녀를 만나게 된 것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까지 기억나는 대로 털어놓았다. 유정숙에게서 들었던 그녀와 리처드의 관계까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리처드의 외도에서 비롯된 그녀의 아픔, 고리타분한 아버지와 집안 형제들이 그녀에게 보였던 심리적 압박까지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혹여 내 말이 유정숙의 마지막 길에 오점으로 남지 않을까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했다. 유정숙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진술을 타이핑하는 경찰에게 또 다른 경찰이 참견하며 말했다.

 “부모도 없구먼. 그냥 처넣어! 데모하는 대학생 놈들 때문에 가뜩이나 복잡한데…….”

  그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으면서 나를 벌레인 양 쳐다보았다. 데모가 나와 무슨 관계인지…….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타이핑을 치던 경찰이 덧붙였다.

 “신경 쓸 거 없어.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기댈 곳 하나 없다는 게 서러워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울컥 복받쳐 올라왔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편의 소설이구먼. 그래도 좀 더 확실한 조사를 위해 리처드라는 미국 놈하고 유 씨, 자네 애인까지는 조사를 해야 해. 그리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오늘 못 나가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긴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다소 누그러진 경찰의 말투에 나는 약간 평정을 찾고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그는 리처드와 유 씨, 숙희까지 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리처드가 나와 유정숙의 관계를 알면 어떻게 될 것이며, 유 씨는 또 어떻고, 숙희는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 회사 사람들은 나를 두고 수군댈 것이며 은애든 거래처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도마에 올려놓고 입방아를 찧어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참으로 지루하고 곤혹스러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대면1· 리처드와 전무】

 리처드가 전무와 함께 경찰서에 나타났다. 그들은 조사를 끝낸 뒤 대면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리처드보다 전무가 더 놀라는 눈치였다. 명동에 있는 리처드에게 돈 심부름을 시킨 것도, 유정숙이 유서를 써 놓고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 집을 지키라고 지시한 것도 전무였다. 나는 리처드보다 전무가 더 못마땅했다.

 “미스터 강, 달님과는 도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사장님은 그게 제일 궁금한가 봐요.” 

  전무는 리처드의 입장에서 나를 문책하듯 몰아붙였다. 전무의 그런 행동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했다. 리처드의 외도를 묵인한  전무도 유정숙의 자살에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무에게 어깃장 놓듯이 힘주어 대꾸했다.

 “달님은 같은 고향 사람입니다. 소장수인 달님 아버지를 먼저 알았고, 달님은 우시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회사 야유회 날 남이섬에서 다시 만났고요. 그 후로 두  번쯤 만나서 하소연을 들어줬습니다. 그뿐입니다.”

  전무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미 나와 유정숙의 관계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리처드 앞에서 권위적으로 확인하려 하는 태도가 역겨웠다. 더구나 전무는 나의 이야기를 걸러서 리처드에게 통역하는 듯 느껴졌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군.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해 왔다는 게…….”

  전무는 내가 유정숙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관계라는 사실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서로 비밀을 지켜온 것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전무가 내게 다시 물었다.

 “달님이 무슨 하소연을 하던가?”

 “사장님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오도 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하며 갈팡질팡했습니다. 달님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사장님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그렇게 팽개쳐 놓고 외도를 일삼아 온 사장님을 미워하지도 못하고 죽은 달님은 억 울해서 눈도 못 감을 거예요. 그녀의 불쌍한 인생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사장님한테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리처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거세게 토해냈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전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울분을 토해내는 것을 보고 말뜻을 짐작했는지, 리처드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나는 다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줄줄이 털어놓았다.

 “달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걸 숨긴 게 아닙니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달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만났지만 늘 슬픈 하소연만 들었습니다. 불쌍해서 어떻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달님이, 달님이 아니라  유정숙이었으면 했으니까요. 유정숙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녀가  너무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달님을  죽였다니 말도 안 됩니다. 더구나 무슨 불륜관계처럼 손가락질 받는 게 미치도록 슬픕니다!”

  전무가 리처드에게 내 항변을 길게 통역했다. 리처드의 얼굴은 슬픔으로 더 일그러졌다. 직원들로부터 유정숙과 리처드의 처음은 그 어떤 커플보다 다정한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관계를 깨뜨린 건 순전히 리처드의 외도였다. 나는 그런 리처드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유정숙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외면한 것이 사실이었다. 리처드는 유정숙과 나와의 인연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개방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한때 사랑했던 달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리처드는 전무를 통해 왜 좀 더 일찍 달님에 대한 마음 상태를 귀띔해 주지 않았느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는 더 이상 리처드의 회사에서 근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달님이 쓴 유서를 보여 주었으니 곧 조사가 마무리될 거예요. 밖으로 나오면 사무실로 전화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전무는 나를 안심시키며 동정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리처드는 전과 다르게 먼저 악수까지 청했다. 그가 청하는 악수의 의미를 나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유정숙에 대한 나의 우정을 이해한다는……. 누런 털이 가득해 송아지 엉덩이가 연상되던 리처드의 손이 모처럼 따뜻하게 나를 삼켜버렸다.

  나는 그들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유정숙은, 보송보송한 솜털의  유정숙은, 긴 머리를 똬리 틀었던 청순한 유정숙은, 가슴이 움푹 파인 옷을 입고 망가진  유정숙은 홀로 쓸쓸한 마음을 부여잡고 하늘로 떠나버렸다.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그녀는 달님으로 쓸쓸하게 떠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에겐 솜털 가득한 유정숙일 뿐이었다. 그들이 버리고 간 달님은 내 앞에 유정숙으로 떨어져 남았다. 




【대면2· 유 씨와 여동생】

 유 씨가 여동생을 앞세우고 경찰서에 출두했다. 유정숙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려 하지 않았던 유 씨가 둘째 딸의 전화를 받고 경찰서로 내쳐 달려왔다. 유 씨가 이토록 황급하게 경찰 서로 달려온 것은 유정숙의 자살과 연관된 인물이 나라는 사실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호통을 치는 유 씨에게서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이눔아, 대체 이게 뭔 짓거리야!”

  유 씨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노여움이 가득 찬 얼굴로 나를 힐책했다. 그 옛날 우시장에서 혈기 넘치던 유 씨일 때도 본 적 없는 노여움이었다. 어떤 변명으로도 딸을 잃은 아버지의 서러움을 위로할 수 없기에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 씨는 내가 유정숙의 죽음에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정숙의 자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이들보다 그녀의 죽음에 이토록 안타까워하는 나를 비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끝내는 참지 못하고 유 씨에게 내 울분을 쏟아냈다.

 “아저씨, 내용도 모르고 그러지 마세요.”

 “이 녀석 보게! 똥 싼 놈이 더 성낸다더니…….”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저도 미칠 지경이에요!”

 “언제부터 숨기고 딸년하고 왕래했던 게야? 지난번 집에 왔을 때도 모든 게 거짓이었단 말 아니여!”

  유 씨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유 씨의 노여움은 좀처럼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네 놈이 그년 입장을 알고 있었으면, 어떻게 해서든 죽지는  못하게 막았어야 할 게 아니여! 이 녀석아…….”

 유 씨도 리처드처럼 유정숙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정을 하기 전 그녀에 대한 정황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자살만을 막았어야 하지 않았냐는 핀잔이 분명했다. 나는 갑자기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저씨, 따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아저씨가 싫어서 몇 번씩 충주를  떠나고 싶어 했고, 리처드가 바람을 피울 때 괴로워하며 혼란스러워 했어요. 얼마나 힘들어 하고 불쌍했는지 아저씨는 모르실 게예요.”

 “이런 우라질, 지난번에 집에 왔을 때 미국 놈과 산다고만  했어도 내가 나서서 말렸을 게 아니여. 옘병할…….”

  유 씨의 목소리는 마침내 울먹이기 시작했다. 유 씨는 유정숙을 잃은 슬픔을 내개 퍼붓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로서의 유 씨 속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 사람 잘못 없어요!”

 보다 못한 여동생이 유 씨를 만류하며 나를 옹호했다. 여동생은 죽기 전 나를 좋아했었다는 언니의 마지막 비밀을 기억하고 있는 듯, 우호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설마 이렇게 세상을 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나 또한 서러움이 복받쳐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이눔아,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여, 다 부질없는 짓이지.”

 유 씨는 슬픔을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내 유 씨와 여동생의 흐느낌은 좁은 면회실을 온통 슬픔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유 씨가 팔뚝으로 눈두덩을 닦으며 딸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연신 손짓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던 여동생은 유 씨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죄송해요. 아버지 대신 제가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괜찮을  거예요. 조사관도 언니가 스스로 그렇게 한 모양이라고 말했어요.”

 마침내 유 씨는 여동생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한때 우시장을 호령하던 기개는 간 데 없고 초라한 유 씨의 뒷모습만이 보였다. 유 씨의 힘 빠진 뒷모습은 비루먹은 송아지의 엉덩이처럼 처량 맞기 짝이 없었다.




【대면3· 정숙희와 진 사장】

 숙희가 진 사장과 함께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불려왔다. 아마도 그녀 혼자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어서 진 사장과 동행한 듯싶었다. 최소한 숙희만은 사건에 연루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지만 별 수 없이 숙희도 호출된 모양이었다. 숙희와 경찰서까지 동행해 준 진 사장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 사장이 우리 사이에 자꾸 낀다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그녀는 매우 흥분되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일요일에 만나기로 하고 이게 뭐예요.”

 그렇게 노여워하고 놀란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존대까지 하는 말투로 보아 그녀의 감정 또한 극에 달한 듯했다.

 “리처드는 뭐고 달님이란 여자는 또 뭐예요?”

 숙희는 나에 대한 배신감으로 성이 나 있었다.

  나는 숙희와 만나는 동안 단 한 번도 리처드나 달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굳이 할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해서 득이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불쑥 연락을 받은 그녀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 사장과 동행한 것만 해도 숙희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노수 씨, 그동안 양 다리 걸쳤던 거예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치부될 것이 뻔해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왜 말을 못하는 거예요?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봐요!”

  한없이 초라하고 말없는 내가 불쌍했던지 보다 못한 진 사장이 숙희의 말을 막았다.

 “미스 정, 그만 하지. 미스터 강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야. 나중에 밖에 나가면 서로 풀 건 풀고……. 여기서 큰 소리 낸들 무슨 소용인가!”

  진 사장의 만류에 그녀가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숙희는 나의 불편한 심중을 알아챘는지 진 사장과 동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장님이 여기 조사과 경찰하고 친분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모시고 왔어요! 하도 어이없고 막막해서 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진 사장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되받았다.  

“미스터 강, 잘 부탁해 놨네. 별일 없으면 오늘 나올 수 있을 거야.”

  숙희의 일로 늘 신경이 쓰이던 진 사장이 힘들고 어려울 때 위안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건이 꼬여도 너무 엉망으로 꼬여 엉켜진 실타래를 풀길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수 씨,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실망했어요.”

  숙희는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하더니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일방적인 힐책과 원망만을 감내해야만 했다. 단지 내게서 느끼는 배신감을 삭히지 못하고 극도로 혼란스러워하며 토라진 채 떠난 그녀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녀가 떠난 뒤 나는 저절로 무릎이 꺾여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숙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걱정되기도 했고, 초라한 내 신세도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엎어져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이 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아버지처럼 쇳소리 나는 울음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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