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의 슬픔




  태평양기획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휘문인쇄소의 시멘트 바닥과는 다르게 사무실 전체에 카펫이 깔려있는 것부터 다분히 위압적이었다. 또한 각 부서마다 별도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사무실 분위기는 나를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회의실 벽면에는 직원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임 실장은 솜씨가 탁월한 그림 작가의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곧 내 얼굴도 그려서 붙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실장은 나를 신입사원이라며 직원들에게 소개했다.‘리처드’라는 미국인 사장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외국인을 처음 본 나는 너무나 놀라서 큰절을 하다시피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했다. 리처드는 임 실장의 소개를 듣고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걸어왔다. 눈동자는 파랬고, 몸집은 가히 하마와도 맞먹을  정도였다. 와이셔츠 틈으로 누런 털이 삐져나와 있었고, 팔과 손등까지 털이 숭숭 돋아나 있었다. 그가 악수를 청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작은 손을 덥석 집어삼켰다. 순간 나는 누런 송아지의 엉덩이가 떠올랐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우연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서 도대체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리처드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알아보니 영어로 된 책자나 광고물을 대행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겐 더없는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보다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새로운 거래처와 영문 IBM 형태를 익히고 제작에 필요한 전문용어를 다시 배워야 했지만, 처음에 걱정한 것보다는 태평양기획에서의 일은 원만하게 풀려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보다 늦게 입사한 운전사와 친해졌고, 불교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 카피라이터와도 잘 어울려 다녔다. 중학교에 다닐 때 기본 단어를 익혀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단순히 단어만 나열했는데 리처드가 알아듣는 것이 신기했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다소 붙었다.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다.

   첫 봄이 찾아왔다. 거래처들은 저마다 봄 야유회로 술렁였고, 그 술렁임은 봄바람을 타고 태평양기획까지 날아 왔다. 우리 회사도 남이섬으로 봄 야유회를 가기로 결정되었다. 야유회의 아침은 꽤나 부산했다. 캔맥주를 사느라 늦은 리처드는 어린애처럼 수선을 떨었고, 계약을 펑크 낸 버스 때문에 임 실장도 꽤나 바빴다. 그들의 부산함은 오히려 야유회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결혼한 직원들은 가족들도 함께했는데 박 기사의 어린 두 자녀가 흥을 돋우는 데 제법 한몫을 했다. 그리고 리처드 애인도 야유회에 동행했다. 박 기사에게 리처드의 애인 이름이 달님’이라는 말을 듣고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검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거렸는데, 그 모습이 꽤 매력적으로 너풀거렸다. 허리까지 곱게 빗어 넘긴 그녀의 머리칼은 걸을 때마다 춤을 추듯 일렁거렸다.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에서 묻어나는 느낌 또한 예사 분위기는 아니었다. 몇몇 직원들은 그녀와 구면인지 목례를 나눴다. 멀리 있던 그녀는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그런데 가까이서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번개처럼 나의 뇌리에 꽂힌 충격적인 영상이 떠올랐다. 나의 뇌리에 박힌 쇠똥과 땀방울과 달아나던 송아지가 한꺼번에 가슴속 어딘가로 끝도 없이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아니… 저, 달님은…….’

  그녀의 변한 모습에 나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이미 희미한 영상으로 남은 유정숙, 소장수의 딸 유정숙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언제 서울로 상경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리처드의 여자가 되었는지는 더욱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달님이라니. 그녀의 이름이 달님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리처드의 여자라니……. 그럴 가능성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라 눈앞에서 펼쳐진 엄연한 현실이었다. 민기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생사도 확인하지 않고 충주를 떠나온 지 3여 년 만의 일이다. 나에게 유정숙은 보송보송한 솜털의 땀방울이었다. 나에게 유정숙은 고향 충주에서 식육점과 우시장을 왕래하며 여전히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유정숙이 그때와는 다른 섹시한 도시여자, 그것도 유정숙이 아닌 달님으로 변모해 있는 게 아닌가! 달님 또한 나를 보고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나를 알아본 거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분명  나를 알아본 것 같았는데,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전무에게 인사를 하더니 리처드의 옆자리로 가버렸다. 리처드는 달님이 옆으로 오자 싱글벙글 웃으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달님과는 꽤 떨어진 뒷좌석에 앉았다.

  이윽고 차가 출발했다. 그녀의 뒤통수를 훔쳐보았다. 내 마음은 송두리째 뒤엉켜 좀처럼  진정되지가 않았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유정숙이 달님으로 등장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사건이었다.

  ‘유정숙이 달님일 리는 없다. 하지만 달님은 분명 유정숙이다.’

  나는 수없이 도리질을 쳤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달님은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서 내렸다. 선글라스 뒤에 숨은 달님의 눈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간혹 나를 눈여겨보는 것 같았지만, 혼자만 느끼는 착각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님은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할 때도 섬에 도착해서도 나를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 또한 그녀를 아는 척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아, 그녀가 나를 모른 체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야유회는 한껏 무르익은 봄날을 만끽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는 손수건 돌리기를 했다. 닭싸움과 씨름과 공놀이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야유회가 진행되는 내내 건성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리 팀의 패인에 결정적 원인이 될 때마다 핀잔소리가 들렸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야유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 어스름해질 때 겨우 끝이 났다. 마지막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유정숙과 나는 야유회 내내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늦은 저녁까지 그저 달님과 나인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정숙의 등장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달아나던 송아지의 엉덩이, 아스팔트 길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쇠똥, 비닐포대를 가져와 쇠똥을 치우던 유정숙의 모습이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정숙에 대한 그리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송아지를 놓아주고 민기가 쏟아내는 붉은 피를 뒤로 하고 도망치지 않았는가! 유정숙은 그 일을 낱낱이 알고 있을 테니 이를 어쩐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보다 두려움이 한꺼번에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유정숙은 너무 오랜 세월 잊고 지낸 고향의 잔상을 물결처럼 아른거리게 했다. 아버지 무덤의 잡초는 누가 뽑을까? 민기는 살아 있을까? 또 민기 할아버지는……. 달아난 송아지는 어찌 되었을까? 소장수 유 씨는 유정숙이 달님이 된 사실은 알고 있을까? 

  고향이 그리워졌다. 고향의 여름엔 언제나 신바람이 났다. 꼬마였을 적 개여울은  알몸뚱이 그대로 즐거웠다. 햇살이 스며든 맑은 물에 그저 심통이 나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흙탕물을 치고 물거품을 만들곤 했다. 하지만 흙탕물은 한 뼘만큼 흘러가며 다시 맑아졌고, 하동들의 마음도 모두 그랬다. 여울에 미끄러져 발목에 상처가 나도 개의치 않았고, 목덜미와 궁둥이에 찜질했던 모래들이 미처 씻기지 않았어도, 마냥 벗어 제치고 놀기만 하던 여름이 있었다. 따가운 햇볕이 하동들을 시샘하는 한낮이 되면 버드나무 밑으로 숨어버렸다. 낮잠 자는 녀석의 맹꽁이 같은 배위에 모래성을 쌓는 녀석,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가 원숭이처럼 나무를 흔들며 희롱하는 녀석, 개구리나 도마뱀을 잡아 모래에 묻고 장난하는 녀석, 버드나무 줄기를 뽑아 풀피리를 만들어 잠자는 친구의 귀에 불어대는 녀석……. 그래서 여름은 언제나 신바람이 났다.

  꿈같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주전자를 들고 논밭으로 나가 메뚜기사냥을 했다. 풍성한 벼이삭에 수없이 긁히고 찔리면서도 메뚜기를 잡아 엄마에게 볶아달라고 했다. 들들 볶아지는 메뚜기를 바라보면서 연신 군침을 삼키다가 메뚜기를 먹을 때면 멍석 위에 말려놓은 참깨를 훔쳐 먹는 것보다 더 고소했다. 콩서리도 잊지 못할 가을만의 신바람이었다. 볏짚을 훔치고 논두렁마다 누렇게 익은 콩을 통째로 뽑아 불을 지폈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콩 터지는 소리를 행여 주인에게 들킬세라, 마음도 콩 볶여지듯 초초했다. 허겁지겁 콩을 주워 먹다보면 덜 익어 비린 콩이나 이미 타버려 쓴 맛이 나는 콩을 먹기 일쑤였다.

  “엣 퉤퉤! 증말 비리구 비리다.”

 동그랗게 둘러앉았던 녀석들이 한바탕 소리 높여 맘껏 웃었다.

  “야, 너 꼭 원세이 같다!”

 “니는 어떻구, 증말 지새끼 같다야!”

 “히힛, 영화에서 본 손오공 같은 걸…….”

  검댕 묻은 친구의 얼굴을 보며 서로들 깔깔대며 웃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고 외치는 술래놀이는 아슬아슬한 게 즐거웠다.‘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는 밤새도록 마을의 고요와 함께 흘렀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그렇게 노랫가락과 함께 가을이 깊어갔다. 마을 공회당에 멍석과 가마니가 깔렸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모일 때쯤이면 늦가을의 하늘에는 어쩌면 별들이 그리도 많은지 황홀할 지경이었다. 밤하늘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은 금방이라도 멍석으로 쏟아져 내릴 듯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실타래처럼 끝이 없었다. 곶감 소리에 도망친 호랑이, 주인을 내몰고 천막으로 들어간 낙타, 여우의 칭찬에 입에 물고 있던 물고기를 놓친 까마귀, 강남 못 간 제비와 황금동상의 왕자, 가난한 선비와 올챙이 적 개구리가 준 냄비……. 은은한  옛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분명 모두에게 무지개였다.

 “오 분단 셋째 줄 일어나. 무지개가 무슨 색인지 말해 봐!”

 “빨주노초파남보!”

  나는 책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게 늘 궁금했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로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는 단지 울컥 그리움을 솟구치게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혹시 바닷가 어디에 살아있는 건 아닐까? 도대체 유정숙은 어떻게 달님이 되었을까? 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회의실 응접 소파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거머리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난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가져다 준 무기력이었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적막감이 감돌뿐이었다. 그림 작가가 그린, 벽에 걸려 있는 내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다른 내가 나를 내려다보며 조소를 보내는 듯했다. 그때 불현듯 낯설게 느껴지는 전화 벨소리가 주위를 삼켰다. 넋 놓고 있던 차에 놀라서 수화기를 거꾸로 들었다.

 “…….”

 그러나 가는 숨소리만이 느껴질 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화기를 바로 고쳐 잡았다.

 “…태평양입니까?”

  “예에.”

  잠시 망설이는 듯 짧은 호흡이 들렸고 이어서 조용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여쭤볼게요. 혹시, 회사에 충주가 고향인 분이 계신가요?”

  “예에? 제 고향이 충주입니다만…….”

  “저, 아시겠어요? 유정숙.”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은 나는 소파 위로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금 좀 만날 수 있나요?”

  가느다란 유정숙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튀어나와 소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잽싸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시간은 괜찮지만.”

  “그럼 됐어요. 회사에서 성당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호수다방’이 있어요. 그곳에서 뵙죠.”

  전화는 이내 끊어졌다. 정신이 멍했다. 마치 둔탁한  쇠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기를 놓은 후에도, 나는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유정숙은 야유회에서 나를 알아봤음에도 그동안 모른 척했던 것이다. 선글라스 뒤에서 야유회 내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는 모르쇠였다. 몹시 불안했다. 도대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유정숙이 만나자고 한 호수다방은 꽤나 한적한 곳이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곱게 빗어 뒤쪽에 여민 정갈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야유회에서 느꼈던 섹시해 보였던 생머리의 도시적 이미지와는 또 다른 원숙한 여인의 이미지였다. 그녀는 마치 카멜레온 같았다. 나는 그녀와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녀는 내가 놓아준 송아지, 민기와의 사건을 모를 리 없는 소장수 유 씨의 딸이었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솜털과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나를 얽매었고 오랜 시간 유정숙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서울은 언제?”

  유정숙이 먼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마치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이라도 당하는 듯 불안하여 겨우 들릴 만한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예에, 벌써 3년 돼갑니다.”

  잔뜩 긴장하여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그랬군요. 그럼 노수 씨는 송아지가 달아나던 그날, 곧바로 올라온 모양이군요.”

  그녀는 놀랍게도 내 이름은 물론 송아지가 달아난 날, 내가 서울에 상경한 사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에‘씨’자를 붙여 불렀다. 회사의 여직원들이 나를“노수 씨”라고 부를 때와는 다른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예에.”

  “그동안 많이 변했군요. 사투리도 거의 안 쓰고.”

  “매우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태연하게 보이려 애쓰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랬을 거예요. 나도 많이 놀랐으니까요. 정말 기막힌 일이죠. 남이섬에서 아는 체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어요. 미안해요. 노수 씨는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리처드의  여자가 되었는지 궁금하겠죠? 유정숙이 아니고 달님은 또 뭔지…….”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차분했다. 그러나 달님도  달님이었지만 그녀가 유정숙임을 알았을 때부터 도망쳐온 고향 소식이 가장 궁금했다.

  “달님은 그냥 달링이 변한 이름이에요.”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달님’이란 이름의 해명이 싱겁게 끝났다. 그녀가 달님’으로 불린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고향의 보름달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았던‘달님’인 유정숙이 리처드에게는 그저 달링’이었다니, 씁쓸했다. 이름만으로도 리처드에게 소중한 사람이려니 생각했던 기대가 무너졌다. 리처드의‘달님’과 나의‘달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나 내가 더 궁금한 건 달아난 송아지의 행방, 피 흘리며 쓰러진 민기의 생사, 달아난 송아지의 주인인 그녀의 아버지 유 씨의 이야기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덥석 물었다.

  “송아지는?”

  “먼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송아진 왜 놓아 주었죠?”

  그녀는 웃음 섞인 어조로 그러나 약간은 취조하듯 되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애써 침착하게 대꾸했다.

  “저도 그때 맘 잘 몰라요.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굳이 그렇게 대답한 것은 당시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또 왜 그랬는지 꼬집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라면 그녀에게 마음을 사로잡힌 탓일 것이다. 아버지 유 씨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기에, 나는 유 씨의 송아지를 놓아주는 것으로라도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쇠똥을 치우던 유정숙과 내 손아귀에 붙들린 송아지가 교차되면서 나도 모르게 저지른 행동이었다.

 “됐어요. 꼭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미 오래전 일인데요 뭘.”

  그녀가 미소 띤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웃음을 쳤다. 그 눈웃음에 나는 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솜털 사이사이에 맺혔던 이마의 땀방울에 빨려 들어간 그날 이후로 나는 아직까지 유정숙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의 눈웃음에 다시 텀벙 빠진 것이다. 나는 애써 마음을 부여잡았다.

  “그날 별일은 없었어요. 도망가던 소는 바로 찾았고, 친구도 몇 바늘 꿰맬 정도의 상처였고요. 소전에서는 오히려 도망간 노수 씨가 잘 지내나 걱정할 정도로 작은 사건이었어요. 혹시 송아지 주인이 우리 아버지라서 놓아준 것 아녜요?”

  그녀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며 긴 한숨을 들이켰다. 오랫동안 가슴을 조이며 살게 했던 그날 일이 그렇게 싱겁게 끝난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 가위 눌리며 괴로워했던 일이었다. 누구에게 확인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가슴앓이가 유정숙으로 인해 말끔히 씻겨 지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는 참으로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수없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금도 그때 왜 그랬는지 잘 생각나질 않습니다. 송아지가 날뛰는 것을 보니까 그냥 불쌍하기도 하구, 괜히 아가씨 생각도 나구.”

  비밀이 엉뚱하게 튀어나왔다. 엉겁결에 말해 놓고는 나도 놀랐다. 늘 마음에 있었지만  그녀에게 말할 수 없던 비밀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해놓고도 그녀가 어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요.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 사건은 나하고 상관도 없고 또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여자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젠 다 잊은 일이기도 하구요.”

  그녀는 그동안 불안했던 내 마음을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3년 내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묵직한 체증이 일시에 녹아내렸다. 그녀로 인하여 녹아내리고 있는 것은 비단 체증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땀방울에 녹아내렸고 그녀의 눈웃음에 녹아내리는 내 마음을 그녀는 아마도 모를 것이었다.

  때마침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어와  다방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성경책을  하나씩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 교회의 일행인 듯 보였다. 그들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손님이 그녀와 나뿐임을 확인하고는 마구 떠들기 시작했다. 고작 일행 중 여자 한 명만이 슬금슬금 주변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달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리를 힐끗 흘기어보았다. 나와의 대화를 방해받고  있는 것이 몹시 신경 쓰인다는 표정이었다.

  “여기는 시끄럽군요. 다른 곳으로 옮기죠. 내가 저녁 살 테니.”

  유정숙이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춤주춤 망설이는 나에게 마치 동생을 다루듯 채근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술이나 한 잔 해요!”

   나의 겸연쩍은 표정은 무시당했다. 그녀는 이미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일방적인 행동에 이끌려 다방을 나왔다. 엉겁결에 다방을 나온 나는 말없이 그녀의 발자국을 밟으며 인근 경양식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양식 집은 분위기 있는 조명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마치 연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밀폐된 공간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낯선 분위기 탓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기둥에 의지해 겨우 균형을  잡았다. 또 소파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더듬거려야 했다. 컴컴한 탓에 가까스로 자리를 찾아 그녀와 마주앉게 되었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말쑥한 사내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그가 정중히 메뉴판을 내밀자 그녀는 일방적으로 맥주와 과일안주,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내가 낼 테니…….”

  유정숙은 민망해 하는 나의 표정을 금방 알아채고는 선심을 쓰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녀의 자유스러운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리처드와 종종 들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드가 앉았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유 씨 소식이 궁금해 물었다.

  “그런데 유 씨 아저씨는요?”

 “지금 미아리에 살아요. 아마도 노수 씨를 보면 무척 반가워할 거예요. 주소 알려줄 테니 언제 한번 시간 내서 가 봐요. 나 만났다는 말은 하지말구요.”

  “예에, 그래야죠!”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그때부터 장사가 잘 안되었어요. 차차 빚을 지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다가 정육점 정리하고 집안 모두 상경했죠.”

  맥주와 안주가 도착하자 그녀가 먼저 나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술 잘하세요?”

 “그저 별로…….”

  “남자는 술도 약간은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녀가 건배를 하자는 뜻으로 잔을 들어 내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최소한의 보조는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잔을 부딪쳤다. 그녀는 건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단숨에 잔을 비웠다. 나 또한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갑자기 들어온 술이 배 속을 싸늘하게 훑고 내려갔다.

   그녀는 술잔을 놓고 옛일을 회상하듯 달변을 거침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본래 어려서부터 아버질 싫어했죠. 그래서 상경한 후 집을 나와 외국인광고회사에 다니는 친구 집에서 살았어요. 그곳에서 한국에 들어온 리처드를 알게 됐고요. 친구가 다니는 회사 사장과 리처드는 친구였어요. 리처드는 태권도 관련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했어요.  그러다 리처드가 지금 노수 씨가 다니는 태평양기획을 만든 거죠. 리처드는 뉴욕대 광고학과 출신이거든요. 일 년 전부터는 리처드와 동거하고 있어요. 물론 집에선 전혀 몰라요.”

   아스팔트 위 쇠똥 사건이 있던 그날, 광고회사에 다닌다는 친구가 서울로 상경하면 책임지겠다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결국 그 친구와의 인연이 태평양기획과 연줄이 닿아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와의 인연은 문득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끈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가 단숨에 다음 술잔을 비우고는 또 잔을 부딪쳐 건배를 요청했다.

  “노수 씨하고는 참으로 기이한 만남인데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죠?”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변해 있었다. 짧은 시간에 소녀에서 숙녀로 뒤바뀐 모습을 그녀는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변한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고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꿈이 있었다고 했다. 간호보조원이 되어 흰색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고 싶었던 소박한 소녀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 고집을 꺾지 못해 꿈이 무산되고 오늘에 이른 것을 후회한다고도 했다. 아버지, 소장수 유 씨에 대한 불만이 유달리 많았고 유 씨의  주벽에 앙칼져진 어머니, 몇 년째 무위도식인 오빠, 여동생도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매달 생활비를 보낸다는 그녀는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리처드와의 동거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스테이크가 들어오고 맥주를 추가로 더 주문할 때까지도 그녀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리처드는 미국에 부인이 있어요. 언제 미국으로 갈지는 몰라도 나를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아요. 외국인의 사고방식은 우리와는 다르죠.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해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이젠 나 자신한테도 결코 자유스럽지 못해요.”

  불현듯 누런 털이 숭숭 난 리처드의 커다란 손이 나의  손을 삼켜버렸던 일이 떠올랐다. 씨름선수 버금갈 정도의 체격인 리처드와 지극히 동양적인 몸집의 유정숙은 그다지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 그림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술기운을 빌어 토해내는 그녀의 하소연이 내 가슴에 또 다른 아픔으로 밀려왔다. 어떻게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스스로를 학대했는지……. 그녀의 눈동자에서 참나무 껍질처럼 붉은 노을이 보였다. 하늘과 땅이 간데없이 붉은 빛으로 고향을 덮을 때면 나는 미친 듯이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 노을에 있던 어머니 얼굴이 유정숙의 눈동자에 고여 있었다. 취기로 인해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양쪽 볼은 사과처럼 익어있었다. 솜털 속의 땀방울이,  생머리의 섹시함이, 머리를 똬리 틀어 여민 원숙함이, 붉은 사과 속에 숨어있었다.

 “…리처드와는 행복합니까?”

  내가 연민을 퍼부었다. 마음 한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유정숙에 대한 향수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둥글게 살려고 애써요. 모가 나면 정에 맞으니까요.”

  그녀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이슬은 졸린 조명 불빛에도 구슬처럼 빛났다. 이슬은 몇 번의 깜박임으로 이내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그녀의 이슬은 비단 술기운 때문만은 아닌 듯 보였다.

 “미안합니다. 공연히 물어봐서.”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마음을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진정으로 미안했다. 어루만져 주어야 할 상처를 덧낸 격이나 다름없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내 짐을 덜어내려고 한 말 아니에요. 그냥 넋두리 삼아…….”

  그녀는 조금은 후련해졌다는 듯 미소마저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에는 슬픔이 있었다. 슬픔을 감추려고 하는 미소가 더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 후로도 유정숙은 고향 소식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털어놓고 싶지만, 그럴 상대가 없었을 터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애꿎은 술만 입안에 털어 넣었다. 마침내 취기가 올라 내 코끝으로 트림이 치받힐 때가 되어서야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오늘은 고마웠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유정숙이 먼저 인사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비틀대는 그녀를 잡아주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유정숙은 마침내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그녀가 동공에서 자취를 감춰버릴 때까지 끝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그녀가 사라진 출구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남은 맥주만을 입안에 또 털어 넣었다.

 

 

  며칠 후 나는 유정숙이 알려준 미아리 산 100번지 주소를 가지고 유 씨를 찾아갔다. 그러나 길이 복잡해 같은 골목을 몇 번씩 오가며 헤맸다. 가파른 골목길은 끝도 없이 하늘 가까이 이어져 있었다. 시골에서처럼 쉽게 집을 찾으리라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산 수박과 정종은 왜 그렇게도 무거운지 땅바닥에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벼랑을 오르고 또 오르는 사이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옷과 살은 서로 달라붙어 끈적끈적하기까지 했다. 유 씨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렸다.

  한 시간여를 헤맨 끝에 겨우 유 씨 집을 찾았다. 산 하나를 완전히 점령하며 다닥다닥 붙은 초라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동네였다. 집들이 어찌나 낡았는지 집 모양새를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모은 자재를 엮어 엉성하게 지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고작 눈비나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청계천과 중랑천의 판잣집이 대대적으로 철거되어, 철거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산으로 밀려난다더니, 유 씨가 사는 미아리 산 100번지도 그곳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혹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이들의 둥지인 듯 고달픈 냄새를 가득 품고 있었다. 그 집단의 언저리에 유 씨가 있었다.

  “어이쿠 이게 뉘기여?”

   초저녁인데도 이미 취기가 올라 있는  유 씨는 신기할 정도로 나를  쉽게 알아보았다. 속옷 차림으로 앉아 혼자 술을 마시던 유 씨는 나의 등장으로 인해 외로움과 무료함이 한꺼번에 해갈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집을 찾는데 지쳐버린 나는 우선 큰절로 인사만을 대신했다. 

  “그래,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서울은 언제 올라온 거구?”

  유 씨는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동사무소에서 주소를 알아냈다는 거짓말을 덧붙였다. 물론 도망친 송아지와 민기의 일은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유정숙과의 약속대로 내가 유정숙을 만난 사실을 눈치 챌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도망친 송아지는 바로 잡았지. 충주 바닥에 놈이 가면 어딜 가겠어. 재수가 없는 놈 같아서 이튿날 주덕 장에서 본전에 팔았어. 자네두 알지. 그때가 좋았어. 내가 사겠다고 마음먹은 소는 못 산 게 없었으니까 말여. 배짱두 꽤 있었지.”

  유 씨는 그날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내가 고삐를  놓은 것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소장수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동안 우시장에서 잔뼈가 굳은 유 씨를 인정하고 대우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 씨는 나로 인해 우시장을 주름잡던 옛 시절이 더 그리워진 듯했다. 유 씨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다가 안 되기 시작하는데 지랄같이 안 풀리더군. 사는 소마다 밑지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었어. 일 년 만에 가진 돈 다 까먹었지. 아예 망해버렸어. 제기럴……. 죽어두 고향에서 죽겠다구 했는데, 고향 떠나오니 제대루 되는 게 더 없어. 큰 딸년은 딸년대루 나가  살구, 집안이 엉망이여. 요새는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어. 미치구 환장하겠구먼……. 우시장이 그립네 그려.”

  푸념을 늘어놓은 유 씨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입가에는 거품까지 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유 씨가 망하게 된 것이 공교롭게도 내가 송아지를 놓아준 그 사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 원망의 화살이 내게 쏟아질까 초조했다. 하지만 기세당당하게 황소를 낚아채고 우시장을 주름잡던 유 씨의 눈매는 술에 절어 빛을 잃고 있었다. 다만 작은 일에도 흥분하던 그의 목소리만이 여전할 뿐이었다.

 “또 그 듣기 싫은 소리, 그 입 좀 가만히 못 혀유!”

  유정숙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핀잔을 쏟아 부었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내가 사온 정종으로 술상까지 받아 내오던 중이었다. 그녀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녀의 환대는 고향처럼 따뜻했다. 유 씨는 늘 그래왔다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다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식 키우는 게 다 헛것이여. 사내 녀석은 몇 년째 뭔 공부를 한다고 지랄이구, 뭘 하는지 밤낮을 바꿔 처질러 자는 년 하구……. 큰 딸년 아니면 밥도 못 먹을 판이여.”

  무너진 가장의 울분이 쏟아졌다. 유 씨는 유정숙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비록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딸일지라도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딸이 대견스럽고 그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정숙의 소식을 전해줄 수 없었다. 유 씨가 유정숙이 외국인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 씨의 푸념과 자랑과 회상이 술잔과  함께 서너 차례 오고갔다. 이미 취해 있던 유 씨는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술을 마셨다. 내가 약간의 취기를 느낄 때까지 부부의 푸념과 핀잔은 반복되었다. 푸념과 딱 그만큼의 핀잔이 되풀이되는 집안 분위기가 몹시 짜증스럽다던 유정숙의 하소연이 이해됐다. 더 있다가는 곤란해질 것 같아 은근슬쩍 자리를 정리했다.

 “아저씨,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들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여,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더 있다가 가게나!”

  나는 유정숙의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남편이 못마땅해 화가 잔뜩 올라 있었다. 행여 술 취한 남편이 나에게 실수라도 할까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유 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아저씨 건강하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유 씨는 아쉬운 듯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를 따라 나섰다. 그는 골목 어귀를 빠져나와 한참을 배웅했다. 유 씨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것인지 술친구가 필요해서인지 주춤주춤 망설이다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잡아끄는 손목의 힘이 황소를 낚아채던 때처럼 힘이 남아 있었다.

 “한잔 더 하세 그랴.”

  나는 유정숙의 어머니 얼굴이 자꾸 떠올라 사양했다. 그러나 유 씨의 성화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손을 이끄는 대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동네 작은 구멍가게 옆의 들마루에 앉았다.

  “유 씨, 오늘도 벌써 취했구랴. 적당히 들게나. 몸 생각도 좀 해야지.”

  가게 주인인 듯한 노인이 유 씨를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나 유 씨는 시큰둥할 뿐 대꾸가 없었다. 유 씨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유 씨가 술을 시키자 코웃음을 친 것으로 보아 유 씨와 막역한 사이인 듯했다. 

  못마땅한 표정의 가게 주인이 김치 몇 조각과 막걸리를 가지고 나왔다. 유 씨가 막걸리를 한 대접 따랐다. 그리고 보는 사람도 시원할 정도로 한 입에 쏟아 부었다. 막걸리가 턱 밑으로 몇 줄기 흘러내리자 유 씨는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맛있게 입맛까지 다셨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유 씨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소장수들의 이야기, 국밥집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전의 풍경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그는 유정숙의 이야기와 민기 할아버지의 죽음까지 터진 봇물처럼 쏟아냈다. 민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놀랐지만, 별 다른 질문은 할 수 없었다. 유 씨의 이야기에는 고향이 있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져 나는 곧 짬을 내서 고향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한 그리움 속에는 민기와 아버지의 산소가 있었다.

  유 씨는 끝내 인사불성이 될 상태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마치 그 자리에 꼬꾸라져 죽을 사람처럼 술을 마구 쏟아 부었다. 그리고 꼬부라진 혀로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어둠은 혼돈을 먹어치웠다.  유 씨의 혼돈도 나의  혼돈도 모두 집어삼켰다. 산 아래는 야경이 빛나고 있었다. 치열했던 한낮의 열기를 모두 삼켜버린 거대한 고요가 마치 별빛처럼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빛 없는 도시의 밤은 야경이 곧 별빛이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야경만으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산 아래의 밤이었다.

  “자네, 혹시 어머니가 어디 사는지 소식은 알고 있는 겐가?”

  뜬금없이 유 씨는 어머니를 이야기했다. 술기운에 나른해져 기운조차 없던 내 눈에 핏발이 돋았다. 유 씨의 입에서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튀어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유 씨는 내 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있는 데를 아세요?”

  “들은 얘기가 있지. 아마 끝섬이라고 했지. 끝섬은 멀리 있다는 뜻일 게야. 섬 이름은 나도 모르네.”

  “누가 얘기했어요?”

 “누구는 이 눔아, 니 애비지.”   

유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짧은 순간이지만 생각했다. 쉰 목소리로  딸꾹질과 함께 쏟아내던 아버지의 마지막 절규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의 행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찾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면서 그 중요한 이야기를 유 씨에게는 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 눔아, 여적 모르고 있었던 게여?”

  유 씨의 호통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섬에서 무슨 장사를 한다더구먼.”

  유 씨가 한심스럽다는 투로 다시 중얼거렸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어머니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토록 알 수 없었던 어머니 소식을 이렇게 쉽게 유 씨에게 듣게 된 것이 어이없었다.

  어머니의 소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간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다. 나를 제외한 우시장의 소장수는 모두 알고 있었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단지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거처를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최소한 아들인 나에게는 그 거처를 알려주었어야 옳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행방을 까맣게 잊도록 비밀에 붙여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그 비밀을 유 씨에게는 말했던 것인가!

  나는 유 씨를 채근하여 어머니에 대한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어찌나 취했던지 유 씨는 마지막 기운까지 소진되어 죽어 널브러진 문어마냥 늘어진 지 오래였다.

  “이제 집에 들어가시죠, 아저씨!”

  그때까지도 가게 주인은 유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짜증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한지 주인은 유 씨를 잔뜩 노려보았다. 유 씨가 비틀대며 일어서자 주인은     “또 지독히 퍼 마셨군!”하며 빈정댔다.

 “오늘도 외상인가?”

  가게 주인의 퉁명한 물음에 유 씨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았다. 유 씨는 그의 빈정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꾸조차 없었다. 나는 술값을 계산하고 유 씨에게 줄 담배 한 보루를 산 다음 어깨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골목으로 돌아섰다. 골목은 술에 취해 흔들거렸다. 몇 걸음 걷던 유 씨가 갑자기 담벼락에 비스듬히 버티고 서서 소변을 배설하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배설하는 소변 줄기가 지그재그로 춤을 추며 돌담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러다가 유 씨는 토악질을 하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식환자처럼 기침을 되풀이했다. 놀란 내가 등을 꽤 오래 문질렀음에도 유 씨의 기침과 구토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기침이 멎었을 때 유 씨는 나의 등에 엉겨 붙었다. 술기운 탓도 있겠지만 초여름인데도 날이 더워 유 씨를 업은 등줄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에이구 지랄, 술이 원수여.”

  내 등에 업힌 유 씨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아내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한탄했다. 이 지경까지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유정숙의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애비가 저 모양이니 집안 꼴이 이 모양이지!”

   그녀는 혼잣말처럼 또 푸념을 뱉어냈다.

  “우이씨!”

  갑자기 유 씨 입에서 험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아내의 혼잣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유 씨가 등에서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그리고 난데없이 허공에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힘이 어디서 솟았는지 제법 공격적인 자세까지 나왔다.

  순간 마룻바닥 가장자리에 둔 화병이 유 씨의 발끝에 닿았다. 화병이 유 씨의 발길질에 허공으로 날았고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거울은 조각났다. 마른  꽃가지와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지럽게 흩어진 유리 조각 사이로 화병에 채워져 있던 물이 유 씨의 발끝을 적셨다.

  충격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은 나와 유 씨의 얼굴을 모자이크처럼 쪼개어 놓고 징글맞게 비웃고 있었다. 거울은 흔들릴 때마다 또 다른 각도의 모자이크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술독에 빠졌던 흉측한 유 씨와 나의 얼굴은 더욱 볼썽사납게 괴물이 되어 비틀거렸다. 거울이 비틀거리는지 내가 비틀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자알 하는 구랴. 이제 없는 살림까지 다 부수는 구랴!”

  유정숙의 어머니는 한술 더 떠 유 씨를 윽박질렀다. 나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유 씨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 씨는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고삐 잡힌 송아지처럼 방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마침내 천장을 향해 그가 길게 누워버렸다.

  밖으로 나와 보니 유정숙의 어머니가 깨진 유리 조각을 청승맞은 몸짓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괜찮으이, 그 양반은 잠든 모양이지?”

  “예에.”

  “밤도 늦었는데 자구 가지 그랴.”

  “아닙니다. 가 봐야죠.”

  “그러지 말구 내일 가시구랴. 저 양반 밤새 주정할지두 모르니 옆에 있으면 좀 낫지 않겠슈.”

   나는 마지못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무거운 고요가 가득했고, 전등불은 전구의 수명이 다 되었는지 깜박거리며 졸고 있었다.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유 씨 옆에 나란히 누웠다. 하지만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유 씨를 보았다. 유 씨는 교도소의 높은 철창을 올려다보듯 방바닥에 달라붙어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공을 주시하는 듯 보이는 유 씨의 감긴 눈가에 창밖에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았다. 불빛은 유 씨의 움직임에 따라 눈가에서 잠깐 빛났다가 귀밑으로 흘러내렸다. 유 씨는 잠든 것이 아니라 홀로 눈물을 흘리는 듯 보였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시끌벅적했던 충주의 우시장과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정숙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바다, 아버지의 쇳소리, 유정숙의 하소연이 나의 마음을 옥죄었다. 눈을 감았다. 나도 유 씨처럼 울고 싶은 서글픈 밤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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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설움




 태평양기획은 일류호텔의 영문판 월간 매거진을 창간하면서 한결 바빠졌다. 나는 사진식자를 찾으랴, 제판집을 다니랴, 인쇄소며 제본소는 물론 광고업체 필름까지 전달받으러 다니는 등 거의 서울 전역을 찾아 다녀야만 했다. 광고업체는 그동안 다닐 기회가 없었던 초일류기업들로서 건물이 웅장해서 가는 곳마다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나는 최대한 여유 있는 척했지만 항상 마음이 움츠러들고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처드가 자신이 타고 다니던 회사 차를 내주어 박 기사와 가끔 동행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좀 낫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다니느라 내가 원했던 디자인 실무를 할 시간이 거의 없어 안타까웠다.

 어쨌든 매거진 창간호가 나왔고, 나는 몇 번이나 책 속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무슨 역할을 했던 월간지 첫 페이지, 디자이너 난에 'Nosoo Kang’이라는 내 영자 이름이 인쇄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충분히 흥분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덜렁 서울에 내던져졌던 이방인이 이 정도 일을 해냈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일취월장이었다. 

 호텔에서 매거진 창간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나와 박 기사는 차를 주차하고 22층 스카이라운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올라갔다. 출입구에 걸린 창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먼저 나를 압도했다. 홀 중앙에 조각된 독수리 형상의 얼음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독수리 부리 끝에는 녹아내린 물방울이 맺혔다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홀 안의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음식까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화려했지만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이쪽저쪽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리처드와 전무는 외국 사람들과 무언가 부지런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먼저 도착한 임 실장과 직원들도 끼리끼리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 파티장을 흔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들 속에는 잡지에 등장하는 금발의 광고모델도 보였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옆으로 생머리를 등 뒤까지 길게 늘어뜨려 고운 자태를 한껏 뽐낸 유정숙이 보였다. 화사한 은빛 롱드레스에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정숙이 내게는 금발의 모델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유정숙은 홀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본 듯했지만,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행동으로 서로의 사이가 알려지는 것은 나 또한 원치 않는 일이었으므로 그녀의 모르쇠가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도록 좀 더 구석진  귀퉁이로 숨어버린 것은 오히려 나였다. 마침 눈이 마주친 임 실장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임 실장은 미소 같기도 한 야릇한 표정을 보이며 나를 보지 못한 듯 옆 사람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나를 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 경리인 미스 김에게도 미소를 건넸다. 하지만 미스 김에게서도 임 실장과 같은 억지 섞인 미소가 스치는 것을 순간적으로 목격했다. 직원들이 나를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몸으로 직감했다. 한낱 급사 역할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출판기념회장에 나타난 것이 그들에겐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정장 차림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후줄근한 와이셔츠 차림의 나는 이미 그들 사이에 껴서는 안 될 이방인이었다.

  나는 신사복 한 벌이 없었다. 변변한 넥타이 하나도 없었다. 넥타이를 맬 줄도 모르는 나에게 박 기사가 자신의 넥타이를 매 줄 때부터 분위기를 알아차려야 했다. 출판기념회에 나도 가는 거냐고 임 실장에게 물었을 때, 그의 어정쩡한 표정과 건성으로 하는 대답의 의미를 진즉에 눈치 챘어야 했다. 그 정도의 눈치도 없었던 내가 순진했다.

  나는 슬며시 창가로 다가갔다. 발아래 펼쳐진 도시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로 찬란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와 굽어보는 서울의 야경은 오히려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 야경은 유 씨의 미아리 산꼭대기에서 느낀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서글픔은 찬란한 야경도 그저 서글픔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말없이 파티장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마침 나비넥타이의 말쑥한 보이가 잔을 소반에 받쳐 들고 홀을 돌고 있었다. 나는 훔치듯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척 한 모금 마셨다. 순간 코끝이 확 달아올랐다. 독한 알코올은 혓바닥을 타고 입천장을  훑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로 목젖으로 넘어가 이내 배 속까지 자극시켰다.

 “허허, 그래도 넌 스트레이트로구나!”

  박 기사가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박 기사 또한 그를 상대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는지 나를 찾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박 기사의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둥지에서 떨어져 아스팔트에 내던져진 새처럼 비참한 자괴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조가 내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보직도 없는 머슴살이 급사였다. 명색은 디자이너로 스카웃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해온 일로 봐선 결코 그만한 대우는 받지 못했다. 애초부터 회사에서는 나를 심부름꾼으로 채용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부름꾼에 불과한 일을 지시받으면서 나는 여섯 달을 부단히도 열심히 일했다. 태평양기획에서의 여섯 달이 부푸러기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반딧불과도 같은 차들의 행렬이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이동하는 광경은 마치 시골에서 본 개미의 이동 행렬과 비슷해 보였다.

 “이봐, 우리도 저기 가서 꼽사리끼세.”

 박 기사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어 왔다. 그가 손짓하는 장소에서는 뷔페식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박 기사와 나는 물위에 뜬 기름과도 같았다. 파티장은  내 마음과는 다른 즐거움의 도가니였다. 어울리지 못하는 나만이 이질감에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무리 없이 곧잘 어울리던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특수한 환경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못마땅했다. 이곳은 초라한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기사님이나 하세요. 전 먼저 가렵니다.”

  나는 애꿎은 박 기사에게 화풀이를 하고 파티장을 나왔다.

 

 

 이튿날 파티 도중 나의 이탈을 꼬집거나 힐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흥겨웠던 추억들만 서로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누구는 양주를 맥주처럼 마시어 정신없이 취했다느니, 누구는 독수리 입에서 떨어지는 얼음물과 칵테일을 해서 함께  마셨다느니, 온통 그들만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아직도 파티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밤새 골똘히 고민했던 사안을 건의하기 위해 기획실을 나와 전무실로 갔다. 전무는 월간지‘경영과 마케팅’에 연재하는 원고를 작성 중에 있는 듯 보였다. 대학에서 광고학을 공부한 전무의 글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았지만, 직원들 말에 의하면 글 솜씨가 훌륭하다고 했다. 그는 카피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매월 원고료를 받으면 직원들 회식을 시켜주곤 했다.

 “전무님, 저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무가 만년필을 원고지 위에 올려놓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예, 그러세요.”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면서 톡톡 쏘는 전무의 말투는 전무라는 그의 체통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였다. 여성스러운 말투와 더불어 가벼운 목소리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전무는 자기 목소리에 불만이 많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목소리가 오늘따라 가볍게 느껴졌다.

 “전무님, 심부름 하는 여직원을 한 명 채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무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처음 임 실장님 말로는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이 되도록 심부름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간단명료하게 절박한 불만을 밝히려고 애썼다. 전무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뜸  내 의견을 수용하고 리처드와 의논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돈을 넣더니 말했다.

 “사장님과 의논해서 생각해 보지요. 그리고 이 돈을 리처드에게 갖다 줘요. 지금 광고주와 만나고 있는 중이에요.”

 봉투를 받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막상 이야기를 하고 보니 나의 보잘것없는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직원을 뽑아달라고 한 것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결과가 나쁘면 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무의 답변을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리처드가 있는 스탠드바는 한낮인데도 제법 손님이 많았다. 근처에 외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고급 호텔이 많아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리처드는 화장이 짙은 여자를 옆에 앉혀두고 수염이 많은 외국인과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한 리처드는 이미 전무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대뜸 손을 내밀며 봉투를 달라고 했다. 누런 털이 숭숭 난 송아지 같은 손에 봉투를 건넸다. 나는 리처드의 옆에 앉은 짙은 화장의 여자를 힐끗 훔쳐보았다. 천박스러울 정도의 화장으로 도배한  얼굴 아래 깡마른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휘문인쇄소에 들렀다. 은애와 차 한 잔을 나눴다. 학교를 졸업한 은애는 날이 갈수록 어엿한 숙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보였다.

 “요즘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한가해서 살만 자꾸 쪄요.”

  그녀의 미소가 맑고 싱그러웠다. 곧 만개할 꽃봉오리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귀엽고 뽀얀 얼굴이 더없이 편안하게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그냥 지금이 보기 좋아요!”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은애는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날씬한 여자들을 좋아한다는데 엉뚱하네.”

 “정말이에요. 난 조금은 통통한  여자가 믿음직하고 편안해서 좋아요!  어떨 땐 누나 같은 생각도 들구…….”

  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오늘의 나를 있게끔 첫 단추를 끼워 준 은애의 몸집이 동글동글하고 통통하기 때문에 은연 중 각인된 느낌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아련해져가는 어머니와 너무도 닮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랬다. 흰 살결과  동그란 얼굴, 통통한 몸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분위기였다. 은애는 마치 누나와도 같았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분위기의 여자였다. 유정숙에게서 느끼는 어머니와 김은애에게서 느끼는 어머니는 분명 서로 달랐다.

 “노수 씨가 마른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통통한 사람을 좋아하나 보네요. 난 살이 찌는 게 정말 싫은데…….”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명랑하게 웃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애는 언제부터인가 순간순간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헐적으로 가슴에 자리 잡고 있던, 들킬까 염려되는 혼자만의 느낌이기도 했다. 은애의 편안함은 이미 유정숙에게 느끼는 보송보송한 이마의 땀방울과는 또 다른 의미로 정착되어 있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면 더없이 편할 것만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은애가 먼저 데이트라도 신청한다면 기쁠 일이겠지만, 내 처지에서 먼저 데이트를 신청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불쑥 데이트를 신청하고 말았다.

 “저어, 은애 씨! 이번 일요일에 저랑 데이트하면 어때요?”

 은애에게서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명랑하던 은애지만 말문이 막혔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은애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대책 없이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녀의 침묵에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마음에 있는 말을 힘겹게 꺼내 놓고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여진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이윽고 은애가 입을 열었다.

 “…난 그냥 노수 씨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 지금처럼 편안한 감정으로요.”

  그녀가 데이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멋쩍어졌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죄송해요. 좋은 감정을 흔들어 놓아서. 친구 같은 마음 변하지 않을게요.”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은애의 우정에 고마움을 표했다. 굳었던 은애의 얼굴이 조금씩 펴졌다.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떠나가 버린 어머니의 그리움을 은애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유정숙의 애틋함을 은애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은애가 승낙하면 유정숙에 대한 그리움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은애의 데이트 거절이 그다지 불쾌하거나 서운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로 은애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사무실의 리처드와 휘문인쇄소를 못마땅하게 대하는 임 실장의 권위적 태도에 대한 이야기, 별 볼일 없는 나의 위치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었다. 그래서 나는 은애 덕에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늦게 유정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요즘 리처드가 이상해요. 아직 집에 안 들어 왔어요. 전무님은 자꾸 딴소리만 하는데 노수 씨가 돈을 가져다 준 거기가 어디였죠?”

  유정숙은 내 상황을 뻔히 아는 듯 말했다. 전무의 심부름으로 내가 리처드를 만나고 왔다는 내용을 그녀는 상세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 스탠드바였습니다.”

 “어디에 있어요?”

 “…명동요.” 

 “누구와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외국인 남자와 업무상 만나는 눈치던데요.”

  나는 다른 여자도 한 명 있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관계도 모르면서 화근의 단초가 된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유정숙은 많이 흥분하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리처드의 외도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나와의 통화는 미리 추리해 놓은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그녀는 내 말까지도 의심하는 듯했다.

 

 

  나는 일주일 내내 유정숙의 전화로 인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또한 여사원의 채용을 기다리며 전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러나 리처드는 물론  전무 또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상의 업무에만 열중이었고, 유정숙으로부터 연락도 없었다. 나 외의 다른 직원 누구도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기에, 나 혼자만  전초전의 긴장감으로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일주일이 더 지나도록 그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가 타고 숨이 막히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결국 전무와 다시 대면했다.

 “전무님, 여직원 문제는…….”

 “바쁜 일들이 많아서 아직 사장님과 의논하지 못했어요.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전무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답변은 없었다. 이윽고 나는 은애를  만나 친구라도 추천받아 밀어붙이는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고, 은애의 생각을 타진하기 위해 그녀를 만났다.

  지난번 데이트 신청 사건이 있은 후 은애와는 한껏 편하고 친해진 느낌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은애는 흔쾌히 친구를 소개하겠노라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의 친구를 소개받아 전무와 대면시켰다.

 “됐어요.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의논해서 미스터 강을 통해 연락하죠.”

  은애의 친구를 면접보고 난 뒤 전무는 결심한 듯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여직원 문제가 일단락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무의 소식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함흥차사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전무는 번번이 미루기만 하는지, 그때그때 건성으로  일관하기만 하는지……. 전무의 태도는 정작 마음에도 없었으면서 내가 스스로 알아서 포기하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어쩌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줄곧 밀어붙인 내가 바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대로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운하다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일이었다. 불현듯 창간기념파티가 있기 전 회사를 떠난 선배가 떠올랐다. 선배는 전무의 우유부단이 진저리가 난다며 사표를 고집했다. 나는 비로소 선배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태평양기획에서 마음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내가 회사에서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회사에 취직을 보장받지 않고서 거취문제를 속단하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지경에 처한 내가 미웠다. 그런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현실은 더 미웠다.

  나는 며칠 동안 뻑적지근한 몸을 한없이 뒤척이는 밤을 되풀이하였다. 아침마다 훤하게 밝은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얼굴을 쪼고 있을 때 가까스로 일어날 만큼 지치기 시작했다. 마음이 지쳐 헤어 나오지도 못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까지 지치고 있었다.

  또 늦잠이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세수를 했다.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아침을 해결하러 단골 식당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좀 늦었네!”

 나에게 유달리 친절한 아주머니였다. 하루 세 끼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가정식 백반집이었다. 밥값을 한 달 단위로 끊어서 선불을 주고 나면 깎아 주는 터라, 얼마 전부터는 선불을 주고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예, 늦잠 잤어요.”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불쑥 내뱉고 말았다.

 “아주머니, 여기도 이제 며칠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어디 다른 직장으로 가게?”

 “예, 곧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서운해서 어떡해. 단골손님 잃게  됐네. 요즘은 외상값도 제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미 사표를 낸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 나 자신에게 내심 놀랐다. 이제 사표를  내는 것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식당을 나왔다.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는 여름 햇살이 아침부터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었다. 곧장 걷다가 극장 옆을 돌아 왼쪽으로 돌았을 때였다.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숙녀에게 길이 막혀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나 또한 곧 숙녀처럼 히죽 웃고 말았다. 숙녀는 다름 아닌 출근길의 은애였다. 나는 출근이 늦었다고 망설이는 그녀를 끌고 무작정 지하다방으로 내려갔다.

  아침부터 냉커피를 시켰다. 그녀의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뜻이기도 했지만, 출근길에 마주친 은애가 더없이 반가워 다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은애 친구에 대한 전무의 무관심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태평양기획의 근황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다가 결국 직장을 옮겨야겠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왜? 내 친구 때문이에요?”

  은애의 놀란 물음에 나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친구와 내가 푸대접을 받은 것이 결정적 요인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무슨 다른 일이 있는 거예요?”

  은애가 다시 물었다. 어느 정도 진담이기 했지만, 예기치 못한 은애의 심각한 반응에 나는 난처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고향에나 좀 다녀올까 해서…….”

 엉뚱한 대답을 또 내뱉고 말았다. 유정숙과 유 씨를 만난 후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던 고향이 은애 앞에서 불쑥 생각난 이유는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친구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내가 잘 얘기하지 뭐.”

  고향 얘기를 듣고 은애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어떤 이유든 정 떨어진 직장이면 그만 둬야지요. 나도 한번 직장 알아볼 테니까 기다려 봐요.”

  그녀는 되레 다른 직장을 소개하겠노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에게 은애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마음이 착한, 운명과도 같은 여인이란 생각에 가슴이 시려왔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나는 은애로부터 직장을 소개받았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사진식자기 두 대를 놓고 도안까지 겸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기획사무실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태평양기획에서의 사환 노릇보다는 나을 듯했다. 무엇보다 휘문인쇄소를 다니며 즐거웠던 가족적인 분위기도 그리워, 규모가 작은 것이 오히려 맘에 들어 쾌히 승낙했다. 물론 내  쪽에서 승낙했다기보다 그들이 부족한 나를 뽑아주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었다. 은애는 그렇게 내 인생의 고비마다 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로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충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뼈마디가 아리도록 아픈, 마음의 상처를 움켜쥐고 도망친 3년 만이었다. 열차는 규칙적인 바퀴소리를 내며 평행선을 가슴으로 끌어안듯 삼키며 달렸다. 다시는 오지 못할 뻔했던 귀향길이었다.

  차창에 부딪히던 그날의 황량했던 겨울바람이 이제는 초여름 연녹색의 싱그러움으로 바뀌어 나를 맞고 있었다. 하얀 감자 꽃이, 아직은 덜 익어 파란 고추밭이, 콩밭이며 멀대처럼 키만 큰 옥수수 밭이, 여느 때보다 정겹게 느껴졌다. 실개천을 따라 도열해있는 이름 모를 잡풀조차 새롭게 각인되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이 새롭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동안 콘크리트 벽 일색의 회색 도시에서 정신을 빼앗겨 잊고 있었던 시골 풍경이었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고향이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가방을 방 안에 휙 던져 버리고 친구들과‘호암지’로 우르르 몰려갔던 여덟 살 어린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연못을 수영으로 가로지를 수 있었던 것은 연못이 있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자연의 혜택이었다. 물고기를 잡고, 편을 갈라 물싸움을 하고, 계단식 수로를 따라 기어오르기 경주를 했다. 이끼가 파랗게 덮인 수로에서 몇 번씩 미끄러져 곤두박질쳐도 아프지 않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 수로에서 다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맛은 일품이었다.

  오후반 등교를 할 때면 호숫가 나무뿌리에 붙어 탈피를 준비하는 장수잠자리 번데기를 잡았다. 번데기를 여학생들 책상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두면 두어 시간 뒤 번데기는 잠자리가 되어서 여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서랍을 열다 잠자리를 보고 기겁하며 놀라는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낄낄대며 웃곤 했다.

  겨울엔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탔고 정월대보름엔 쥐불놀이를 하며 노는 재미의 절정에 빠지곤 했다. 아이들은 보름 내내 몰려다니며 밤새도록 쥐불놀이를 했다. 저마다 주워온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철사 줄로 끈을  엮어 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른 쇠똥과 나무 조각을 주워 모아 불을 지폈다. 수십 명이 모여 빙빙 돌리던 깡통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수십 개의 불꽃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피날레를 장식할 때면 일렬로 서서 구령에 맞춰 일시에 연못 둑 아래로 깡통을 던졌다. 캄캄한 밤, 하늘로 솟구쳤다가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불꽃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낙하하는 불씨를 벗 삼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공처럼 굴러서 둑 아래까지 내려가도 다친 아이 하나 없이 잘만 놀던 여덟 살이었다. 아아, 그때는 고향이 이토록 절절히 가슴에 묻어날 줄은 몰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눈을 떴다. 난데없는 빗방울이 하나 둘 날아와 차창에 부딪혔다. 빗방울은 빠른 열차의 속도에 못 이겨 사선으로 흔적을 남기며 아우성쳤다.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그림을 유리창에 그려놓았다. 빗방울은 아우성치는 또 다른 빗방울에 맞아 일그러지면서 새로운 그림으로 변했다.

 안팎의 온도 차이 때문에 뽀얀 김이 유리창에 끼기 시작했다. 고향이 안개 속으로 숨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 위에 손가락으로 고향의 이름을 새겨보았다. 온통 뽀얗게 낀 유리창에 선명한 글자가 새겨졌다. 그 글자 틈으로 점점 낯익은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충주역에 내리자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나는 먼저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년 동안 방치한 탓이었다. 내 키만큼 자라난 커다란 쑥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봉분까지 내려앉아 도무지 봉분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잔디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한쪽 그늘에 고개를  숙인 할미꽃이 아버지의 서글픈 소망을 기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미꽃은 꽃술을 하늘로 향하지도 못한 슬픔을 안고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채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를 맞고 있었다.

 나는 무덤가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쑥대밭이 된 초라한 아버지의 무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몰이 소년의 힘겨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사건을 저지른 뒤 도망치듯 상경하여 처절하게 버텨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칠어져 마치 폭포수 아래에 서 있는 듯했다. 장대비는 나를 온통 휘감아 때리며 더 서럽게 만들었다. 장대비를 맞는 것보다  마음이 서럽고 아파 더 울었다.

  그렇게 목 놓아 지치도록 실컷 울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영락없는 생쥐  꼴이었다.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흠뻑 젖어 살갗에 엉겨 붙었다.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고 감기에 걸린 듯 기침이 잦아졌다. 나는 참으로 볼품없는 초라한 꼴이 되어 산소를 내려왔다.

 어스름해진 저녁 무렵에야 민기를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았다. 비안개로 자욱하게 덥힌 민기네 초가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세찬 빗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온통 집 언저리를 헤매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 음산했다.

 외양간 옆의 소쿠리에 풀이 가득 담긴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몰이 시절 소에게 먹일 풀을 소쿠리에 가득 싣고 일어서려다가 개여울에 나동그라진 적이 있었다. 구부렸던 무릎을 펼 힘이 모자라 지게를 짊어진 채 땅바닥에 꼬꾸라진 것이다. 팔꿈치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소몰이가 너무나 싫어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소 먹일 풀이 있어야겠기에 고랑의 언덕에 지게를 받치고 물 먹은 풀을 주워 담았다. 그나마 무릎을 구부릴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물 먹은 지게를 짊어지자 중심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물줄기가 등을 타고 대책 없이 흘러내려 금방 바지를 적셨다. 나는 겨우 수로를 첨벙첨벙 지나 비스듬한 고랑을 통해 비로소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에게는 소꼴을 베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내가 살던 민기네는 변한 것이 별로 없는 옛집 그대로 보였다. 단지 세월의 흐름만큼 지붕의 이엉이 검게 썩어있었고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의 그을음이 덧붙여진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 소죽을 끓이는 민기의 옆모습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 아궁이에서 토해내는 이글거리는 불빛이 민기의 한쪽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민기야? 오랜만이다!”

  내 목소리를 듣고 민기가 고개를  돌렸다. 자욱하게 뿜어 나오는 땔감 연기 사이로 민기의 놀란 눈동자가 번뜩이며 내게 달려와 박혔다. 번뜩이는 민기의  눈이 아궁이 불빛보다 빛났다.

 “아니, 니가 여긴 웬일이여?”

 민기가 놀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방지축 달아나던 송아지를 잡으려던 민기와 그를 가로막던 내가 한바탕 뒤엉켜 싸우고는 생사도 모르고  지나온 날들이었다. 그나마 나는 유정숙을 통해 민기의 근황을 전해 들었지만, 그는 내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으리라.  민기에게 나는 여전히 자기를 실컷 패고는 도망친 나쁜 놈으로 생각될 것이었다.

 “…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

 “그래, 잘 왔다. 그런데 니 꼴이 이게 뭐여. 그렇게 떠났으면 잘 됐어야 할 거 아녀?”

  민기가 보기에도 내 몰골이 못 봐줄 모양인 것 같았다. 몇 시간째 비를 맞았으니 내 행색은 참으로 궁색 맞아 보였을 것이다. 민기는 나의 초라한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는 듯했다. 민기는 3년 만에 불쑥 찾아 온 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구로 대해주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좌우지간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그렇게 비 맞지 말고.”

  나는 무릎까지 오는 문지방을 건너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턱이 높아서 방심하면 넘어지던 문지방이었다. 이 문지방 위에서 몇 번을  넘어졌던가! 고향집을 생각하면 문지방이 떠올랐고, 다시는 이 문지방을 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 불쌍해서 못 봐 주겠다!”

 민기는 자신이 입는 편한 옷을 한 벌 꺼내 내가 앉은 자리에 무심하게 던졌다. 아직도 우리 사이에 앙금이 남았다는 듯. 그러나 나는 그런 민기의 마음이 오히려 고마웠다.

 배가 몹시 고팠다. 그래도 밥보다 술이 더 마시고 싶었다.

 “민기야. 나 술 좀 사다 주라. 술 마시고 싶다.”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술은 무슨 술.”  

 투덜대면서도 민기는 술을 사러 집 밖으로 나갔다. 민기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손님처럼 방 안을 훑어보았다. 민기 할아버지와 민기와 셋이 함께 자고 먹고 놀던 추억이 축축하게 되새김질되었다.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와 민기와 있어 위로가 되던 시절이었고, 그들과 함께한 정든 공간이었다. 벽면마다 헌 신문지로 도배된 방은 내 손때가 묻은 공간이라 그런지 편안했다.

  다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없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치솟아 코끝을 찡하게 했고 눈동자를 적셨다. 또렷하던 방 안 곳곳이 뿌연 눈물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내 눈의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민기가 술과 주전부리 안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가 술을 권하며 말했다.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사냐?”

 “서울.” 

 “그럼, 그날 말처럼 결국 서울로 간 것이었구먼!”

  민기가 그날 일을 회상하는 듯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동안 못다 한 미안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서울로 도망친 그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마치 업무보고라도 하듯 상세하게 민기에게 털어놓았다. 민기는 솔깃이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나의 서울 생활이 너무나 잘 풀려나간 것에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안에는 나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이 다소 섞여 있음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감기 기운이 심해지는지 으슬으슬 춥고 재채기를 멈출 수 없었다. 갑자기 인중이 간지러워 코피인가 싶어 닦고 보니 맑은 콧물이었다.

 “어디 상처 좀 보자.”

 내가 민기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민기는 아무렇지 않게 상처 부위를 보여주었다. 나는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날 일을 사과했다.

 “…민기야, 유 씨한테서 그간의 얘기는 다 들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미안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힘없이 말을 꺼냈다. 민기는 적잖이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니가 어떻게 유 씨를 만났는데?”

 “우연이었어, 정말 기막힌 우연! 유 씨 딸을 만났어. 나중엔 유 씨도 만나고.”

 “니가 유 씨 딸은 또 어떻게 알아?”

 “니들이 동전치기 할 때, 유 씨 소를 집까지 몰아다 준 적이 있었어. 그때 소전에 나타났던 여자가 유 씨 딸이었어.”

  민기는 송아지를 놓아준 사건만을 기억할 뿐 내가 유 씨 소를 몰아준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자신도 그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민기가 그날 있었던 일의 원인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는 유정숙을 만난 경위와 유 씨를 만난 일이며 그들의 근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유 씨는 어때? 잘 있어?”

 “많이 힘든가 봐. 그건 그렇고 민기야, 할아버지 안 계신데, 혼자서 외롭지 않니?”

  할아버지 얘기에 민기의 눈시울이 금방  촉촉해졌다. 아들 며느리를 연탄가스에 잃고 혼자 남은 민기를 데리고 낙향하여 손자를 돌보아왔던  할아버지였다. 민기에게는 할아버지가 어머니고,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민기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불쑥 생각나게 만든 것이 미안했다. 민기의 촉촉해진 눈동자는 혼자 사는 것이 힘겹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 좀 견딜 만해.”

  민기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그냥, 여기서 계속 살 거여?”

 “그럼 뭐, 별 뾰족한 수가 있어야지.”

  나는 휘문인쇄소 제판실을 생각했다. 나의 간청과 은애의 후원을 등에 업으면 어쩌면 민기 하나쯤은 취직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나랑 같이 서울 갈래?”

 “…….” 

 민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데가 있는데, 잘 얘기하면 될 것 같아서…….”

  무언가 한참을 생각하던 민기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난, 그냥 여기 있을려. 할아버지 산소두 그렇구, 자신이 없어!”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나 또한 그날의 사건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또한  두려움과 함께 동반되는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라며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민기가 내 소지품을 챙겨 나왔다. 보자기의 먼지를 털고 매듭을 풀었다. 어머니의 사진과 아버지가 쓰던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내가 두었던 그대로 싸여있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보관해 온 민기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한쪽 귀퉁이에는 어떤 이물질에 오염되었는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련한 윤곽으로 사라져가던 어머니의 기억만은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품속에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내 첫돌에 함께 찍었다던 가족사진과 함께 지갑에 챙겨 넣었다.

  민기와 나는 취기가 오를수록 서로에 대한 동질감으로 돌아갔다. 또 둘 다 신세가 나락으로 추락한 듯해 너무나 처량해지기도 했다. 취기와 기침과 넋두리가 밤새도록 이어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밤이었다.

  그날 밤 몹시 앓았다. 민기 말에 의하면 헛소리까지 하고 밤새 신음하며 앓았다고 했다.  민기는 끙끙 앓는 나를 지켜보면서 병원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 몹시 고민했었다고 했다. 그는 한숨도 못 잔 듯했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물론 민기의 눈도 퀭해져 버렸다. 나는 해가 떠도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오전 내내 앓기만 하다가 저녁 무렵에야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그리고 민기가 끓여준 찬밥에 간장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온몸을 얻어맞은 것처럼 등짝은 욱신거렸고 고향을 찾은 마음속 깊은 곳은 더욱더 욱신거렸다.

  그러나 감기도 낫지 않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야간열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회색 도시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나에게 고향에서 느끼는 욱신거리는 마음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고향을 떠나는 마음은 내려올 때 마음과는 전혀 달랐다. 너무나 무거운 상경 길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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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주 -  내츄럴 캔디




 직속상관인 도안사는 깡마르고 깐깐해 보였다. 그는 친절한 시선과 함께 위압적인 말투로 악수를 청해왔다.

 “아마도 나하고 가장 많이 싸워야 할 겁니다.”

 나는 웃으며 두 손으로 악수에 응했다. 첫인사에서 으레 고의적인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소 소심한 척했다. 사실 그의 위압적인 태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에서는 야릇한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우리 차나 한잔 합시다.”

  도안사가 앞장을 섰다. 사무실에서 해도 될 말을 굳이 다방에서 하려는 의중이 의심스러워,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가 다방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아가씨와 레지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아가씨들과 매우 친한 듯 인사를 받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나는 도안사가 열심히 설명하는 거래처 내역을 들으며, 필요 이상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다섯 명 남짓 되는 직원들 중에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가를 구분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도안사는 바짝 긴장하게 만들려 애썼지만, 나는 그저 그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침내 맥이 빠진 도안사는 나를 흘겨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직장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인쇄일이 여름엔 워낙 한산한 탓이었다. 지나치게 일이 없다는 게 흠이었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그럭저럭 근무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낮에는 도안사가 지시하는 일에 열중했고, 밤에는 사진식자 기술을  습득하는 야간 견습오퍼레이터에게 쓸데없는 참견까지 하며 세월을 보냈다.

 열흘째가 되어서 태평양기획에서 보름을 일한 대가로 한 달 월급을 받았다. 조금은 사무적이고 개인적인 회사였지만 외국 스타일의 월급 지급 방식은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겐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때마침 나는 직원들 사이에서 신고식을 종용받고 있던 터라 부담 없이 저녁 술자리를 마련했다. 술자리라야 일이 끝난 저녁, 사무실로 중국요리를 주문해 나눠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쪼잔하다는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첫 출근 시 대강 넘어갔던 통성명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내가 나이를  밝히자 그들은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나에게 속았다며 즐거워했다. 분위기는 술잔이 돌수록 무르익어갔다.

  중국집에서 배달된 독한 고량주에 얼마 되지 않아 술기운이 거나하게 돌았다. 이윽고 도안사의 거드름이 주정으로 바뀌어 이어졌다. 경리는 떠들썩해진 틈을 타 데이트니 뭐니 핑계를 대며 퇴근을 했다. 견습오퍼레이터는 과자 한 줌을 챙겨 들고 식자실로 슬쩍 숨어버렸다. 그녀들의 행동으로 보아 그동안 도안사의 술버릇으로 여러 번 고생했던 듯했다.

  도안사는 이내 2차를 내라며 나를 압박했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2차를 내야할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도안사의 요구는 물론 도안사와 다름없이 끼어들며 나서는 제판실 직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2차에 나섰다.

  그들은 골목 허름한 술집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우두커니 앉아있던 아가씨들이 반색을 하며 달려들었다. 도안사는 마치 유명인사라도 되는 듯 손을 흔들고 너스레를 떨며 그녀들의 인사를 받았다. 도안사의 거만하고 요란한 인사에 아가씨들은 이미 길들어져 있는 듯 보였다.

 “어, 잘들 있었어? 오랜만이야!”

 한 아가씨가 도안사의 팔짱을 끼며 온갖 애교를 부렸다. 그녀는 도안사에게 몸을 밀착시키고는 나를 힐끗 훔쳐보았다. 낯선 얼굴의 등장에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음흉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건너편에 앉은 사람도 식별하기 힘든 어두운 조명에 퀴퀴한 습기 냄새까지 느껴지는 지하실은 나를 더욱 숨 막히게 만들었다. 낯선 분위기에 소름이 돋고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경직된 몸은 경계심을 잔뜩 일으켜 세웠다.

  마담은 시키지도 않은 안주와 술을 자동으로 가져왔고 아가씨 세 명에게 술시중을 들게 했다. 짝을 맞추어 등장한 아가씨들은 각자의 성 앞에 '미스’를 붙여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미니스커트에 가슴의 계곡이 훤히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도안사가 손가락을 까닥까닥 움직이며 아가씨들이 앉을 자리를 정해 주었다. 내 옆에는 미스 손이라고 소개했던 아가씨가 앉았다. 낯선 여자와 이렇게 가까이 앉기는 처음이라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움츠린 몸에 소름까지 돋아났다.

  짙게 화장했지만 미스 손은 앳된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스 손이 나에게 착 달라붙었지만 나는 어쩔 줄 몰라서 허둥대었다. 그런 나의 당황하는 행동을 본 미스 손은 도안사를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민망해 하는 그녀의 표정을 알아챈 도안사는 귀한 손님이니 잘 모시라며 오히려 미스 손을 독려했다. 그가 나를 두고 '귀한 손님’이라 하는 것은 오늘 술값을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귀한 손님이라는 말이 영 못마땅하게 들렸다.

  미스 손이 도안사의 채근에 더욱더 내 곁으로 바짝 달려들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여 엉덩이를 밀며 옆으로 도망쳤다. 초짜인 나를 금방 알아차린 미스 손은 결국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아서 새침한 얼굴로 술을 따라주었다.

  전주가 있었던 탓일까? 술 몇 잔에 모두 쉽게 취해버렸다. 도안사와 아가씨들은 별 의미 없는 농지거리를 해대며 마냥 즐거워했다. 청계천 여왕봉에 있는 6번 여자가 어떠니, 경리처럼 엉덩이가 처진 여자는 어떠니, 하며 일상 대화를 하듯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음담패설은 평소에 나누는 이야기보다 자연스러웠고 열정적이었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내 표정을 훔쳐보며 재미있다는 눈짓을 보였다.

 도안사는 간간히 자기 옆에 앉은 파트너의 젖가슴은 물론 엉덩이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파트너는 흘깃 내 눈치를 살피고는 간지럽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게다가 순간순간 입술을 마주대고 수도 없이 키스를 했다. 도안사는 자기처럼 한번 해보라는 시늉으로 아래턱을 간헐적으로 내게 치밀며 채근했다. 그동안 자연스러웠던 일들을 나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그것은 그들과 함께 공범이 되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정말 엉뚱한 봉변이었다. 나라고 여자에게 호기심이 없을까! 휘문인쇄소 다락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 사진을 보며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을 상상한 적이 없었을까?

  그러나 언제부턴가 남자든 여자든 몸가짐에 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할 여자에게 떳떳한 남자로 인정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만약 유정숙이나 은애와 결혼한다면……. 그녀들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이는 어머니의 행방불명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내 술이 떡이 된 도안사와 직원은 한 번 해야 한다며 아가씨들에게 끌려 나갔다. 내 옆에 앉았던 미스 손은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마음속 욕망을 피나도록 문지르며 털끝만큼의 흥분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몹시 갈등했지만 마침내 이성이 감성을 물리쳤다.

  나는 홀로 밤거리에 우뚝 섰다. 탈선의 유혹을 이겨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독거려야 했다. 처참할 정도의 불쾌감이 울컥 치솟았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통째로 털린 것도 더러웠지만, 모자라는 술값에 외상까지 달아주던 마담에겐 매스꺼움까지 느껴졌다. 매스꺼움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컸다.

  빌어먹을, 갈증이 복받쳤다. 숨을 훅훅 내뿜어 보았으나 역한 술 냄새가 곤두박질치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하더니 이내 코털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갑자기 소피가 마려웠다. 근처 화장실을 찾았다. 손가락 사이로 아랫도리를 잡고 생리적인 팽창을 배설하면서 거울에 비친 얼굴과 싸웠다. 푸석푸석한 얼굴에 조소 어린 눈동자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를 비웃는 거울 속의 나는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바보 같으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거울에 비친 내가 또 다른 나를 희롱했다. 나의 내면을 때리는 치열한 싸움은 소변이 끝날 때까지도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설을 끝내고 뒤로 돌아서자 이번에는 뒤가 팽창된 느낌이 치밀었다. 소변을 보는 동안 마치 요충이 기어 나오는 듯 느껴지는 간지러움 때문에 꽁무니에 힘을 주어 소가 실 오줌 싸듯이 오줌 줄을 끊어서 소변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다시 칸막이 변소로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고 웅크리고 앉았다. 때 묻은 석회질이 벅벅 벗겨진 제법 그럴듯한 음화(淫畵)를 보니 어느새 아랫도리에 힘이 쏠렸다.

 “선생니임…….” 

 “으음, 앞이야 뒤야?”

  선생님이 꽁무니를 움켜쥐고 엉거주춤 일어서 있는 나에게 묻자 아이들은 와아,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홍당무가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를 본 선생님이 말했다.

 “빨리 갔다가 와.”

  나는 부리나케 변소로 달려가 오줌을 눴다. 그때도 소변을 본 다음 대변을 보았고, 대변을 보면서 눈앞에 그려진 낙서를 한참 동안 정독했었다.

  사방에 어지럽게 그려진 온갖 낙서들이 낄낄대고 있었다.

 - 나는 어느 날 친구 여동생과 무엇을 했다.

- 앞을 봐라. 옆을 봐라. 뒤를 봐라. 인마 보긴 뭘 봐.

- 신사는 장미를 꺾지 마라. 꺾어진 장미는 뒤를 돌아다보지 마라.

- 세월은 구보로 청춘은 동작 그만!

  키득거리며 낙서들을 보다가 문득 도안사를 떠올렸다. 도안사의 다음 행동을 떠올리자니 아랫도리는 움찔움찔 힘이 실렸다. 마침내 충열된 독립군은 단단한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하늘을 향했다. 나는 녀석을 부여잡고 상상의 애정행각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직접적인 탈선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상상의 애정행각은 도안사처럼 낯선 작부에게 아무렇게나 손쉽게 던지는 행동보다는 차라리 명분 있는 행동일 터였다. 나는 한참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나왔다.

 

 

 아침이 되자 어젯밤 함께 어울렸던 직원들이 출근했다. 그들이 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자신들의 외도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술로 인한 실수 때문이었다는 듯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책상을 닦으며 아침청소를 하던 경리가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머, 두 분이 출근하다가 만난 모양이죠?”

  둘은 경리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없이 내 눈치만 살폈다. 그들의 눈빛은 입조심 하라는 무언의 암시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도안사의 어떤 말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엿듣게 된 뒤로 그런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야, 어째 이상하다. 파이프가 새는 모양이야.”

  나는 그들이 내뱉은 파이프란 말뜻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파이프는 그들만의 은어로 남성의 심벌을 가리키는 것이고, 파이프가 샌다는 것은 성병에 걸렸다는 말이었다.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래도 남의 일은 쉽게 잊고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또한 사람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게 마련인 것 같았다. 도안사를 비롯한 직원들의 그날 밤 일은 시간이 흐르자, 별 의미 없는 일로 잊혀졌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이 계속되었고, 애꿎은 나만 외상값을 갚느라 여섯 달의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 다소 늦게 출근한 도안사가 잠바도 벗지 않은 채 일을 지시했다.

 “요즘 한창 선전하는 핵산조미료‘아이미’라는 게 있지. 그 타이틀을 가지고 한번 레터링 해봐. 아이미 선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 가정주부 둘 얘긴데,‘요즘 많이 선전하는 아이미란 게 뭐예요? 물으니까 ‘그거 미원 있죠. 그 회사에서 나온 조미료인가 봐요!’하더라는 거야. 사실 아이미는 경쟁회사인 미풍 회사에서 만든 신제품이거든. 이게 바로 광고의 전달이 잘못된 예지.”

  나는 별 싱거운 일도 다 시키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뾰족하게 중요한 업무도 없고 하여 타이틀에 어울릴 만한 글씨체를 착안하여 한나절 만에 레터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도안사에게 보이자 그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내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노수 씨, 사장님이 요 앞 다방으로 좀 나오시래요.”

 사장의 전화를 받은 경리가 나에게 전했다. 무슨 일이냐고 경리에게 되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사장이 나를 따로 보자고 한 건, 그것도 사무실이 아닌 곳으로 불러내는 건 입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방으로 들어서자 도안사와 사장, 그리고 평소 안면이 있는 거래처 사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도안사 옆에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레지가 다가오자 사장은 나에게 묻지도 않고 쌍화차를 시켜주었다.

 도안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나오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구, 여기 이 형님이 미스터 강이 맘에 든다고, 달라고 하네.”

  도안사는 거래처 사장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도안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까 글씨를 써 보라고 했던 거야. 형님이 오케이 했으니까 미스터 강이 어떻게 생각하나 듣고 싶어서 불렀어. 우리끼리는 이미 다 끝난 얘기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승낙해야 하지 않겠어.”

 도안사의 억양에서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도안사는 늘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금 벌어진 일은 나를 몰아내려는 작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거래처 사장의 회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지금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흑백 제판시설을 구비하고 있는 소규모의 개인사무실이라는 것, 사장들끼리 학교 동창이고 사진식자를 의뢰하는 거래처의 하나라는 것 정도. 이것이 내가 그 회사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조금의 언질도 없었던 일이다. 그들끼리 일방적으로 물건 거래하듯 하고는 이제 와서 나에게 결정을 내리라고 하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어이도 없었다. 결코 쉽게 결정내릴 문제가 아니어서 한참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은 일감이 없네. 처음 미스터 강을 쓸 때는 그래도 좋았는데 이 상태가 장기화될 것 같아.”

 사장이 비로소 솔직한 문제를 털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의 고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힘없이 물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면 됩니까?”

 “그거야 빠를수록 좋지. 내일 당장이라도 괜찮아!”

  거래처 사장, 이제 곧 내가 다닐 회사의 사장은 반색하며 말을 되받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는 매듭지어졌다. 그들은 굳이 나의 확실한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설득하려고도,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미스터 강, 그럼 형님하고 좀 더 얘기하다가 사무실 구경하고 들어 와. 우린 먼저 들어갈 테니까.”

  도안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찻값을 지불하고는 사장과 다방을 빠져나갔다.

  새로운 사장은 사무실에 대한 이것저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직원은 나를 포함하여 고작 네 명이고 월급은 지금 받는 것보다 조금 더 인상시켜 준다는 이야기, 사무실은 칸을 막아 다른 도안 사무실과 같이 쓴다는 이야기,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사장은 조급하게 사무실의 위치도 알려주겠다며 다방을 나왔다. 

  사장을 따라 사무실에 가 보았다. 사무실은 의상실 2층에 위치한 작고 한산해 보이는 곳이었다. 햇살이 창틈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이 기울어 보였다. 그 햇살을 받으며 나른하게 생긴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어린 직원 하나가 무슨 일인가 긁적이고 있었다. 사장이 안으로 들어가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자신의 일만 하는 소년의 모습처럼 정말 한산한, 어쩌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사무실이었다. 사장은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자리한 책상을 가리키며 내 자리니 앉아보라고 했다. 나는 공연히 서랍을 열어 보고 의자도 뒤로 굴려보면서 민망함을 모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내일 곧바로 출근하겠다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무심코 닫은 문이‘쾅’소리를 내며 닫히는 바람에 민망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려는데 목조계단이‘동동동’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지나가기에 조금은 비좁은 계단이어서 올라오는 사람이 다 올라온 뒤 내려가려고 잠시 기다렸다. 곧이어 계단 모퉁이를 돌아 올라오는 낯익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 여긴 웬일이세요?”

 여자 쪽에서 놀라며 먼저 물어왔다. 정숙희였다. 사진식자 관계로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경리 여직원과 재잘거리던, 그래서 일하던 중에 가끔 쳐다보게 만들던, 웃기도 참 잘  웃던 정숙희였다.

 “예, 내일부터 여기서 근무하기로 했거든요.”

 “어머, 그래요! 나도 여기 근무해요. 바로 옆 사무실! 이제 매일 보겠네요. 하긴 그동안에도 매일 봐왔지만……. 후훗!”

  그녀는 콧등에 잔주름까지 만들어 보이며 말괄량이 소녀처럼 웃었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리와 오퍼레이터를 언니라고 부르며, 마치 같은 사무실 직원처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겸연쩍게 마주 웃어주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경리는 벌써 정숙희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잘해 보세요. 숙희 괜찮은 애예요!”

 오고갔음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 음흉한 미소였다. 언제부터인가 경리와 정숙희는 일하고 있는 나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키득거리곤 했었다. 그 행동은 도안사와의 회식 사건 이후로 더욱 빈번해졌었다. 그녀들은 도안사의 외도나 술자리에서 있었던 내 행동을 낱낱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들의 음흉한 미소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었다.

 경리의 말뜻을 눈치 챈 나는 결국 싱거운 쓴웃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장과 도안사가 나를 두고 거래를 했듯이 정숙희와 경리는 나를 두고 염탐을 했다. 어찌 되었든 참으로 음흉한 일들이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초겨울이었다.

 

 

  이튿날 사무실을 옮겼다. 송별회 따위는 없는 지극히 간단한 이동이었다. 누구에게나 큰집에서 작은집으로 이사하는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환경이 바뀌어 낯설기만 한 느낌은 당사자인 나 혼자 스스로 삭혀야 하는 숙제일 뿐이었다.

  첫날부터 사장은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집착했다.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임에도 노파심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그때마다 이 정도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하지만 사장도 계속 나만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일감이 많아지는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사장은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많아졌고 처음 같은 친절은 자연스럽게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장이 부재중일 때 의뢰가 들어오면 내가 직접 설명을 듣고, 그 일을 스스로 처리하기도 했다.

 

 점점 사무실에서의 위치는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정숙희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그녀는 틈날 때마다 우리 사무실과 그녀 사무실을 가르는 공동 칸막이를 무시하고 업무 공간을 침범해 왔다. 언제나 명랑한 그녀는 내 앞에서 만큼은 조신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녀는 어느 틈엔지 콧마루를 자극시키는 봄 향기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초겨울 햇살이 나른하게 창가를 비추던 오후였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녀가 등 뒤로 와서 오래도록 나를 지켜본 것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마침내 하던 일을 멈추고 창피한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곱상하게 웃는 얼굴로 내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좀, 구경하면 안 돼요?”

 그녀의 양 볼이 발그레해진 것은 꼭 햇빛이 반사되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귓바퀴까지 빨개진 그녀의 모습을 분명 보았다.

 “다음부터 사진식자 보낼 것 있으면 날 주세요. 바쁜데 바보처럼 직접 가지 말구요. 우리 것 갈 때 같이 가면 되니까요.”

  숙희는 나를‘바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바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진짜 바보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하긴 그녀의 사무실이나 우리 사무실이나 전에 다니던 회사에 사진식자를 의뢰하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동안 사진식자를 가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5분 거리를 다니면서 골목과 계단에서 마주쳤었다.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서로 먼저 지나가라며 길을 비켜주곤 했었다. 

 “일하는 손이 참 예쁘세요?”

  작고 여성스럽기는 하지만 내 손을 보고 예쁘다니, 그녀의 말이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며 내 손을 달라고 했다.

 “손 좀 만져 보면 안 돼요?”

  나는 엉거주춤 망설이다가 손을 엉덩이에 쓰윽 문질러 닦은 다음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나의 손과  맞닿았을 때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쇠붙이 문고리를 잡았다가 튀어 올랐던 정전기처럼 손끝이 짜릿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번개였다. 섬광이었다. 컴컴한 하늘이 일순간 환해졌다가 사라지는 번개처럼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곧 천둥소리처럼 울림이 찾아왔다. 그녀와 내 얼굴이 똑같이 홍당무가  되었다. 창가에 비친 나른한 저녁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어린아이처럼 도망치듯 사무실로 숨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부쩍 스스로도 멋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사진식자를 매번 찾아다 주고 약간의 잔심부름도 대신해 줬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고마워서 차라도 한잔 마주하고 싶었지만, 정작 그녀가 나타나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창밖에는 어느새 겨울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일을 일찍 끝내고 제도기를 손질하여 서랍에 정리했다. 그리고 창틈을 비집고 들어온 저녁 햇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에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녁 햇살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음률을 토해낼 것만 같이 구름에 다리를 걸고 매달려 있었다. 모필(毛筆)이 닿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현악기처럼 구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과 소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느덧 라디오에서 캐럴이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왔다. 하여 숙희에게 선물이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달리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 데 대한 답례 차원이었다.

 “미스터 강, 경치 끝내주네!”

 뒤통수에 꽂힌 남자의 목소리가 선물  생각에 빠진 나를 깨웠다. 그는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다른 회사로 간 전직 도안사였다. 그가 좋은 회사로 가게 되어 내가 급하게 그의 자리에 오게 되었음을 후일 사장에게 들었다. 비록 도안사이기는 했어도 그림 실력이 탁월하여‘허 화백’이라고 불렸다. 꽁지머리를 한 그는 여느 기획실 도안사와는 다른 실력자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요즘 자주 뵈네요!”

 나는 얼마 전에도 그를 보았던 기억을 상기하며 가볍게 물었다.

 “어, 그럴 일이 좀 있어. 미스터 강, 오늘 나하고 술 한 잔 하지 않을래? 마침 일도 일찍 끝낸 모양인데…….”

 “술이요? 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술 잘한다고 하던데 뭘. 미스터 강하고 의논할 것도 있으니 우리 지금 나가면 어떨까?”

  결국 그의 재촉과 ‘의논할 것’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이, 옆 골목 불고기집에 있을 테니 사장님 오시면 그리 오시라고 해!”

  허 화백이 오후의 햇살에 나른해하는 소년에게 부탁하고는 먼저 나섰다. 라이트테이블에서 필름수정을 하던 나른한 소년은 나른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소년은 대답 대신 늘 고개만 끄덕이는 버릇 때문에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받을 정도였다.

 허 화백은 술과 고기를 주문하고는 음식이 차려지기도 전에‘의논할 것’이 무엇인지 대뜸 말문을 열었다.

 “내가 야간대학 응용미술학과에 합격했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시간상 학교 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있던 회사에 미스터 강이 들어가고 내가 다시 이리로 오면 어떨까? 여기 사장님하고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됐어.”

  허 화백은 사장하고는 이미 상의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도록 자신의 입장과 옮길 회사의 좋은 점을 열심히 설명했다.

 “내가 다니는 데가 흔히 있는 소규모 디자인사무실이 아닌 것은 잘 알지. 국내 굴지의 문구 개발사야. 그곳에서도 디자인 개발부에 근무하게 될 거야. 정식 보너스는 300%야. 월급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의논해 볼 참이고. 어떠냐? 괜찮지?”

 그가 근무하는 회사라면 업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부러움을 살 만한 회사였다. 물론 허 화백이 말한 대로만 된다면 더 바랄 것 없는 좋은 조건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만 제외하고 그들끼리 내 문제를 왈가왈부했다는 것은 언짢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우연이라고 할만치 내 거취 문제가 늘 남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참으로 못마땅했다.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출타했던 사장이 나른한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다방으로 내려왔다.

 “이거 미안하게 됐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미스터 강 실력이 문제가 아니고 허 화백 입장이 안타까워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네.”

  사장이 해명을 덧붙였다. 나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고 버터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 언제쯤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내일 전화하면 이력서 가지고 면접 와. 나이도 지금보다 세 살 정도 높이자구. 경력도  조금 더 붙여서…….”

  나이를 속이고 경력을 거짓으로 부풀리자는 허 화백의 말에 나는 반대했다.

 “이럴 땐 그쪽 회사 기준에 맞게 조금 속이는 게 정상이야. 미스터 강은 나이를 올려도 괜찮은 애늙은이처럼 보여서 오히려 다행인데 뭘!”

  허 화백은 이미 일이 다 해결된 것처럼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리고 그곳의 장단점과 조직구조에 대해 조언을 덧붙이면서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사장과 허 화백은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처럼 내가 떠난 후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내가 모르는 큰 전시회 건이 있었다. 마침 경력 있는 실력자가 필요했던 터라 허 화백의 제안에 따라 쉽게 결정된 듯했다.

 “참, 미스 정 요즘도 술, 여전한가요?”

 이야기 끝에 허 화백이 불쑥 내뱉었다. 나는 정숙희를 두고 하는 얘기임을 직감하고 그들의 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으음, 여전히 그래. 진 사장이 술을 어지간히 많이 해야지. 툭하면 미스 정한테 술집 어디어디로 돈 가져오라고 시키는가 봐. 수고했다고 한두 잔 받아먹다 보면 술이 늘게 마련이지.”

 진 사장이라면 정숙희 회사의 사장이었다. 나는 둔탁한 쇠망치로 얻어맞아 바닥에 팽개쳐진 벌레처럼 온몸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늘 웃기를 잘해서 지조 없이 푼수처럼 보이기는 했어도 명랑함으로 인정받고 심성도 고운 숙희였다. 비록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어도 배우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착한 여자였다. 그런 숙희가 그녀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선입견을 남겼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괴로운 만큼 그녀에 대한 노여움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 더는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갑작스런 취기가 몰려와 몇 차례 뒷걸음질을 쳤다. 머리에 가스가 찬 것처럼 멍해지기 시작하더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술을 받아 목에 털어 넣을 때는 상관없던  취기였다. 취기는 정숙희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나는 숙희에 대한 분노를 얼싸안고 비틀대며 밖으로 나왔다. 지나치는 행인과 부딪혔다.  부딪힌 행인은 발끈 성을 내다가 비틀거리는 나를 보고 비아냥거리며 이내 피해버렸다. 남은 것 하나 없이 모두 빼앗긴 지독히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 허망함은 진 사장에 대한 노여움보다도 자신을 그렇게 방치하며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 정숙희에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허 화백 같은 사람에게 가볍게 보이고 그녀의 이름을 쉽게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게슴츠레 흐려진 눈으로 사무실을 올려다보았다. 사무실 불빛은 창틈을 비집고 비스듬히 계단 아래까지 스미어 나와 있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의아했다. 나는 아직 숙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난간을 잡고 잠시 비틀거렸다. 겨우겨우 우악스럽게 계단을 짓누르고 2층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형광등 불빛 하나만이 추위에 쪼그라들어 희미하게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칸막이를 밀치고 숙희의 사무실 쪽을 훑어보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은 없었다.

 사람의 인기척도 없는데 그대로 비워진 채 불이 켜져 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고 있는데 화장실 닫히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려왔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억지로 몸을 돌리려 하자 비틀대는 동작이 저절로 커졌다. 나는 내 행동을 통제할 힘이 없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머!”

 허리춤을 추스르며 화장실을 나오던 숙희가 나를 보고는 기겁하여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을 터였다.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민망한 표정으로 서둘러 옷매무새를 마무리했다.

 “어머, 놀랬잖아요! 인기척도 없이……. 그런데 이렇게 늦게 어쩐 일이에요?”

  그러나 나는 평소와 다르게 퉁명스럽게 씹어뱉었다.

 “…왜, 아직 퇴근 안 했나요?”

 “사장님이 퇴근하라고 해야지 가죠!”

  그녀는 나의 기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오히려 명랑하게 대꾸했다. 불쑥 진 사장이 술집으로 그녀를 또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숙희도 진 사장이 자기를 부르길 은근히 기다릴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자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 술 냄새!”

 그녀가 마치 파리를 쫓아버리듯이 콧구멍에 손부채질을 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게슴츠레 쏘아보았다. 커피색의 도톰한 입술, 봉곳하게 솟은 앞가슴, 복숭아처럼 잘 익은 뽀얀 종아리를 감싼 검은색 스타킹……. 울컥 그녀를 훔치고 싶었다.

 “숙희 씨, 루주 이름이 뭐요?”

 나는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평소와 다른 내 말투를 듣고 그녀는 비로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놀란 표정을 보니 그녀를 훔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비로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듯 보였다. 그녀의 큰 눈이 더 커졌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연신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녀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마침내 핸드백을 옆구리에 꿰찼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혀를 날름거렸다.

 “저 말이죠. 우리 사장님한테 전화 오면 먼저 퇴근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루주 이름이 뭐냐 하면요. 내추럴 캔디!”

 그녀는 약을 올리듯 혀를 삐죽이 내밀고는 토끼처럼 재빨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하기보다 그것은 도망이었다. 그녀는 나를 피해 멀리 도망치는 한 마리 양이었다.

 내추럴 캔디는 내 마음을 온통 헤집고 다니며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내추럴 캔디의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른거리는 내추럴 캔디는 고향의 아지랑이보다 더욱 아롱거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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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만남 - 하나 그리고 열하나




 숙희에 대한 입소문은 나를 더없이 강한 의심으로 몰아넣었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전 같지 않은 속마음을 들킬까 몹시 신경이 쓰였다. 엉망으로 뒤엉킨 마음도 모르고 오히려 내추럴 캔디 사건으로 한층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이런 가시방석이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내추럴 캔디 색상이 좀 더 강렬해졌고, 얼굴은 복숭아처럼 뽀얗게 생기가 돌았으며, 그녀의 향기는 언저리를 그윽하게 맴돌았다. 차라리 허 화백이 대신 제출한 이력서의 결과가 몹시 기다려졌다. 직장을 옮길 날이 기다려질 만큼 초조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꼭 숙희와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만두어야 할 사무실이므로 이미 마음이 떠난 탓도 있었다.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불안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입맛이 없어져 끼니를 거르는 일이 종종 생겼다. 가끔 무턱대고 버스에 올라 종점까지 가서 동시상영 영화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회색 도시의 거리를 쏘다니곤 했다. 그렇게 애꿎은 시간만을 죽이며 맥없이 흘려보낸 날이 보름 남짓 되었을까? 허 화백에게서 연락이 왔다. 며칠 후인 다음 달 월초부터 출근하라는 명령 같은 통보였다.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단정 지었다. 일단 숙희와 멀리 떨어져 지낸 다음 차근차근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직장을 옮긴다는 것을 알게 된 숙희는 이별주를 나눠야 한다며 점심때부터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적당한 핑계라도 둘러대어 자리를 피하고 싶었으나 그녀는 거의 끌다시피 하여 분위기 좋은 양식 레스토랑으로 나를 안내했다

 “서운해서 어쩌죠? 소식 없이 그냥 가면 안 돼요!”

  그녀는 내가 떠나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전화하는 것 말고는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그녀가 아쉬워하는 것도 이해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들로 여전히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연락을 끊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꼭 연락하겠노라는 거짓 섞인 입찬말을 할 수 없었다.

 “그 회사 사정이 어떨지 아직 몰라서……. 좀 지켜봐야죠.”

  나는 말끝을 흐리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연락 안 하면 허 화백한테 위치 물어서 쳐들어갈 거예요!”

 숙희는 나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모든 일에 저돌적이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부담이 되었지만 싫지도 않았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거의 듣기만 하면서 돈가스와 맥주를 말없이 먹고 마셨다.

 “그동안 매일 봤는데, 그래도 앞으로는 좀 뜸해지겠죠?”

 그녀는 애교마저 부리며 입술을 쫑긋거리고 말했다. 그리고 처음 있는 둘만의 시간에 상기되어 또 재잘거렸다.

 “그래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니까 노수 씨는 좋겠다. 그 대신 난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겠지만……. 자주 못 만날 것 같아서 불안하고, 연락이 뜸해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참, 여사원도 꽤 많을 텐데 은근히 걱정되는 거 있죠? 차라리 내가 그 근처에 있는 회사를 알아볼까요? 옆에서 감시나 하게. 후훗!”

  그녀의 재잘거림 속에는 은근한 압박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마주하는 내내 몹쓸 진 사장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녀는 나를 취하게 하는 재주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유 없이 술만 마시다보니 어느새 몹시 취하게 되었다. 내가 많이 취했다고 생각했는지 마주앉아 있던 그녀가 갑자기 옆으로 자리를 옮겨 이동했다. 그리고 예쁘다던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자주 연락주세요!”

 그녀는 내 손을 잡고는 만지작거리며 좀처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숙희의 얼굴을 보았다. 입술을 연신 오물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박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너무도 매력 있게 눈앞에서 오물거렸다. 입술에서는 온통 내추럴  캔디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에 비친 캔디 입술은 엷은 초콜릿 빛깔이었다.

  꼭 술기운 때문만을 아니었다. 나 자신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행동이 발생하였다. 나는 그만 그녀의 내추럴 캔디를 덥석 훔치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달콤한 느낌과 향기가 온몸에 젖어들며 전율로 다가왔다. 숙희는 내 기습적인 키스에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희고 동그란 얼굴은 어느 틈에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숙희는 내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포개었다. 빼앗긴 그녀의 입술이 빼앗았던 내 입술 위에 밀착되었다. 그녀는 도둑질 한 내 입술을 그렇게 도로 훔쳐가 버렸다.

  그녀의 입맞춤에 당황하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녀의 입술을 훔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내 입술을 훔쳐 갔는지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는 심장의 요동을 잠재우기 위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첫 키스가 몰고 온 전율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숙희의 입술은 마치 마술과도 같았다. 그녀의 입술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묘약이었다.  나의 나약한 의심은 그녀의 입술 한 번에 이미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나는 그녀의 내추럴 캔디에 완전히 포박되어 황홀한 울타리에 감금되었다. 그녀의 입술은 나를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묶어버린 동아줄이었고 비로소 평온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머리를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대어왔다. 키스의 흥분이 몰고 온 숨소리가 아직도 새근거렸다. 내가 그녀의 숨소리를 느끼고 있듯 그녀 또한 내 숨소리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필요한 말이 없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둘만의 데이트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내내 상기되어 있었고 나는 그녀의 향기에 내내 취해 있었다. 향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내츄럴 캔디의 입술에 취한 이별의 밤이었다.

 

 

 며칠 후 허 화백과 맞바꾼 사무실로 첫 출근을 했다. 첫날은 200명이 넘는 각 부서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소규모의 기획사무실이 아니라서 업무를 금방 전달받지 못했고, 동료들과 사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는 숙희라는 청량제가 없었다면 너무도 지루하고 형편없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숙희의 입술 한 번이 나를 변화시켜도 너무나 변화시켜 놓았던 모양이다. 소심했던 성격이 서서히 바뀌어 갔다. 말은 못하고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말도 거침없이 내뱉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숙희와의 데이트 이후에 생긴 변화였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엉뚱함에 내 스스로도 놀라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미스 노, 내가 미스 노에게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하죠?”

 개발부 경리 미스 노에게 내뱉는 농담은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미스 노가 대학을 졸업한 지성인이라는 것도, 나이가 나보다 두 살은 더 많음에도 툭툭 농담을 던지고는 혹시 그녀가 털끝만큼이라도 관심을 보이는지 살피는 못난 행동까지 했다.

 숙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소스라쳤던 첫 키스의 추억과 함께 진 사장과 숙희의 관계에 대한 염려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희를 생각하면 늘 진 사장이 떠올랐다. 숙희의 진실을 알면서도 무엇인가를 자꾸 확인하려 시도하는 나의 마음, 치졸한 자학이었다.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어 보이는 숙희에 비해 나는 교활하게도 이중적인 인간이었다. 아마도 마음속 그리움을 채우기에는 숙희에 대한 애틋함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모른다. 받기 전에는 주는 것을 모르는 나 자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짓이었다.

  그것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갈증의 표출이었다. 숙희의 마음을 온몸에 받으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인 수렁에서 허우적대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기 이전에 배운 그리움의 몸짓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미스 노가 친척 결혼식 사진을 사무실에 꺼내놓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개발부 직원들은 별 생각 없이 사진을 돌려보며 신부가 예쁘다는 둥, 예쁘지 않은 신부도 있냐는 둥, 한마디씩 했다. 나는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미스 노에게 무작정 들이댔다.

 “미스 노, 이 아가씨 좀 소개시켜 주세요.”

 내가 가리킨 사진 속의 아가씨는 갸름한 얼굴에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들보다 돋보이는 미모는 보는 사람의 눈길을 멈추게 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리 사촌 동생이야. 간호사. 예쁘지?”

 미스 노는 내가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농담으로 되받았다. 그리고 서로 편하고 가벼운 웃음이 오고갔다.

  나는 점심을 먹고 목적도 없이 근처 다방을 찾았다. 그저 커피나 한 잔 하려던 것이 다방에서 미스 노를 만나면서 사진 속의 사촌은 다시 내 표적이 되었다. 그래야만 하는 절대적 이유는 없었지만 오기가 발동하여 사진 속 그녀를 소개시켜줄 것을 재촉했다. 미스 노는 깔깔대고 웃으며 말했다.

 “미스터 강, 정말 웃기는 사람이네! 기다려 봐. 사촌 동생에게 한 번 말해 볼 테니…….”

  미스 노는 한바탕 웃고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먼저 다방을 나갔다.

  그리고 사흘 후 장난으로 시작된 사촌과의 데이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숙희와의 강렬한 추억을 간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사이 엉뚱한 곳에서 무엇인가 찾으려는 갈증이 꿈틀대며 시도되고 있었다.




【만남 하나】

 나는 다방의 한쪽 모퉁이에 앉아 그녀와  커피를 마주하고 사진 속에서 보았던 아름다움을 열심히 훔쳤다. 약간의 기초화장과 목을 에워싼 하얀색 스카프, 포근한 옷차림에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내 소개를 했다. 별 말 없이 물음에만 답하는 그녀의 엷은 미소가 정갈한 귀여움을 더해 주었다. 비록 사촌 언니의 권유에 못 이겨 나온 것일 텐데도, 그녀는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글쎄요. 제가 얼마나 친해질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다소곳이 말했다.

  첫 만남에서, 나는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나와 사람들 사이에 쌓아놓았던 성벽을 허물고 잠시 성을 떠나보리라, 조심스럽게 마음먹었다.




【만남 둘】

 일요일이었다. 밤부터 내린 함박눈으로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다. 덩달아 마음도 가볍게  흥분되는 분위기였다.

 옛날 왕들이 살았던 고궁을 찾았다. 그녀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그녀와 나 사이는 좁혀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닿을 듯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지만, 멀어지면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 또 멀어졌다. 그렇게 그녀와 나의 발걸음은 규칙적이었다.

 헤어질 때‘이티오피아’라는 레스토랑에서 경양식을 함께 했다. 그녀는 칵테일을 한 잔 했고 나는 가볍게 맥주 한 병을 마셨다. 헤어질 무렵인 저녁에는 또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만남 셋】 

 그녀가 퇴근하고 내 사무실 근처로 와 주었다. 저녁을 먹기에도 조금 이르고 해서 사무실과 가까운 명동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의 홍수 속에 유독 그녀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빨간  반코트를 걸쳐 입은 옷맵시에 튀는 미모는 앙증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명동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무뚝뚝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봐요?”

  그녀가 엷은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겨울냉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냉면에 만족해하지 않는 내 표정을 보고 그녀는 오히려 미안해했다.

 “친구들하고 왔을 적엔 맛이 좋았는데 오늘은 좀 다르네요! 이 집 냉면은 겨울이 별미인

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를 세심히 배려하며 애쓰는 그녀에게 오히려 민망해졌다.




【만남 넷】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를 해 그녀에게 시간을 허락받았다. 그녀가 보고 싶다던 영화표도 미리 예매해 두었다. 극장 인근에서 간단한 분식으로 저녁을 하고 팝콘을 샀다. 나는 팝콘을 집으며 간헐적으로 스치는 그녀의 손을 잡을까 망설이다가 하지 못했다. 그녀도 순간순간 스치는 감촉을 의식했는지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슬픈 영화를 봤다. 그녀는 클라이맥스에서 눈물을 훔쳤다. 내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나는 그녀가 민망해할까 봐 그저 모르는 척했다.

  극장을 나오니 눈이 왔다. 눈송이는 그녀의 머리며 내 어깨에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갑자기 내 팔을 끼며 밀착해 왔다. 그녀의 돌발적이고 당돌한 행동에 짜릿한 흥분이 몸에 감겼다. 그녀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버스가 떠난 차창 뒤에 그녀의  얼굴이 한참을 아른거렸다.




【만남 다섯】

 지하철을 타고 수원에 내렸다. 수원성을 찾아가는 내내 많은 시간을 걸었다. 조금은 힘겨워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손바닥 좀 펴 봐.”

  그녀가 작고 아담한 손을 펴 보였다. 나는 장난스럽게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가볍게 눈을 흘기고는 상기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수원성을 가는 동안 작은 손을 아예 내게 맡겨 버렸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도 투명 매니큐어의 매끄러운 감촉을 내내 놓아주지 않았다.




【만남 여섯】 

 그녀는 매우 토라져 있었다. 무려 세 시간 동안 나를 기다리다가 돌아갔다고 했다.“별일 없으면 만나자.”라고 가볍게 통화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늘 만나던 약속 장소에  전화도 없이 나와 있었는데, 나는 그녀에게서 전화가 없기에 오늘은 그녀가 일이 있어 오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서로의 생각 차이는 약속이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녀는 바람맞은 것보다 더 비참했고, 세 시간 동안 별 생각을 다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세 시간씩 기다렸다는 그녀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쉴 새 없이 어필시키며 사과했다. 그녀는 입술 끝을 미묘하게 찡그리며 잠시 노여움을  푸는 듯하면서도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만남 일곱】 

 일주일간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녀의 노여움이 풀려 전화가 오길 기대하면서 나는 아예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의 마음이 풀리면 연락이 오겠지 생각하며 고집스럽게 버텼다. 마침내 그녀가 먼저 전화를  했고 일요일에 만날 것을 요청해왔다. 무슨 남자가 그 정도 일을 가지고 삐쳤느냐며 오히려 힐책하는 것으로 보아 노여움이 제법 풀어진 느낌이었다.

  온종일 이어진 데이트는 옛 모습을 다소나마 되찾아 주었다. 오전 내내 서먹서먹했던 것도 오후에 남한산성으로 장소를 옮기며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산성의 아름다운 설경은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산성을 오르는 끝없는 계단을 영화에서처럼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올랐다. 지나는 등산객들이 우리를 보고 덩달아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올라갔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딴은 자랑스럽기도 한 내 마음을 헤아리는 듯한 야릇한 기분 변화를 그녀에게서 감지했다.

  계단을 다 오르자 때마침 사진사가 보였다. 사진을 찍자고 강력히 제의했다. 그녀는 극구 사양했으나 결국 다정한 연인처럼 사진을 찍었고 서로 한 장씩 나누어 가졌다.




【만남 여덟】 

 겨울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처럼만에 경양식 레스토랑을 찾았다. 스테이크와 곁들인 그녀의 칵테일과 나의 맥주는 긴장을 한껏 풀어 주었다. 술이란 의외의 행동을 하고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할 만큼 참으로 이상한 음식이었다. 평소보다 적은 양의 술이었지만 꽤 취기가 올랐다. 그러나 술기운에 그녀의 입술에서, 눈동자에서, 얼굴에서, 정숙희가 비치는 것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녀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적으로 입술을 빼앗았다. 달착지근한 이름 모를 향이 혀끝에 묻어났다. 그녀가 나를 가볍게 밀쳐냈다. 그리고는 새침해진 표정으로 자꾸만 의식하며 내 눈을 외면했다.

  나는 깊은 밤까지 잠 못 이루며 뒤척였다. 그녀는 나의 돌발적인 행동을 겪고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잠 못 이루고 있을까, 그것을 차마 헤아릴 수가 없는 어두운 밤이었다.




【만남 아홉】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돌발 행동을 거론하지 않는 그녀를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보며 친근감 있게 전보다 많이 재잘거리는 그녀의 속마음은 더구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데이트 내내 전처럼 작은 손을 내게 맡겨버렸고 평소보다 많은 말을 했다.

  그날의 도발이 오히려 그녀와 가까워진 촉매가 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데이트 내내 알 듯 모를 듯 명랑해진 그녀의 행동을 보며 비로소 우려했던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만남 열】 

 그녀는 대단히 토라져 있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약속 시간에 착오가 생겨 서로 만나지 못한 것은 애당초 어느 쪽도 잘못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늦겠다던 그녀의 전화를 받은 사촌 언니 미스 노가 내게 내용을 전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녀에게 몇 번이나 진정한 사과를 했지만, 그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이미 멀리 도망치고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그녀는 한 시간을 기다리고는 몇 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자리를 뜬 것이 더 서운한 일이라고 했다.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렸던 그녀보다 참을성이 없다는 핀잔은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그녀의 세 시간에 나의 한 시간은 비교도 안 되는 거였지만, 그래도 진정으로사과를 받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녀의 똑같은 대답에 나는 오기마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만남 열하나】

 그녀에게 벌써 세 번째 전화를 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아무리 설득해 보아도 그녀는 좀처럼 약속 시간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똑같은 대답만을 되풀이했다.

 “만나는 것이 자꾸 부담스러워요. 우린 처음부터 그랬어요. 날 예전처럼 그냥 두세요. 사실 지난번 약속이 어긋났을 때 이미 그랬어야 했어요.”

 그녀의 태도는 너무도 완강했다.

 그녀와 만나는 내내 숙희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숙희에 대한 미안함이 커질수록 그녀에게 충실하여 미안함을 잊으려 애썼다. 숙희가 만나자고 했을 때 더러는 사무실 일이 바빠 시간이 없노라고 거짓을 말하고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숙희에게 뭐라 둘러댈 말이 없을 땐 숙희에게 아픈 이별을 말하리라, 그렇게 비열한 준비를 해 왔었다.

 또 얼마나 많이 나 자신을 자학하며 때려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우적대고 헤매야 하는 것일까? 다시 시작된 내면의 자조가 한동안 날 괴롭힐 것이었다. 혼돈스럽고 어지러웠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어쩌라고 그래요. 지난 일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요.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잖아요. 전화를 받고 왜 자꾸 우울해야 하나요? 이제 머릿속에서 지워 주세요. 도대체 제게서 무엇을 알고 싶으세요?”

 다섯 번째 전화도 그렇게 끊어졌다.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 기필코 매듭을 지어야만 했다.

 나는 택시를 탔다. 가고자 하는 장소를 말하자 운전기사는 가속페달을 힘 있게 밟으며 비좁은 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그러나 곧 혼잡에 묻혀 기어가기 시작했고, 한참 후에야 십여  개의 육교 밑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는 그녀가 직접 받았다.

 “왜, 또 전화하셨어요?”

 “지금 좀 나와요.”

 “왜요?” 

 “할 얘기가 있소.”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왜 자꾸 그래요?”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잖소. 잠깐이면 돼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지난번 만나던 병원 근처 다방에 있을게요. 나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나오세요.”

  나는 다방에 먼저 자리 잡고 앉았지만 순간순간 불안이 엄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초조함을 이겨내기 위해 탁자에 있는 성냥을 꺼내어 마디마디 꺾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출입구로 돌려 확인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성냥 몇 개를 꺾고 또 꺾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는 쉽게 나를 발견하고는 다소곳이 다가와 마주앉았다. 분위기를 짐작했는지 우두커니 앉아 내가 먼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며 양손을 서로 맞잡았다. 되도록 태연하게 보이려 애쓰는 기색 또한 역력했다.

  나는 겨드랑이에 팔짱을 끼고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에게 하려던 말을 못하는 것은 비단 찢어지는 음악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명 때문에 붉게 물든 그녀의 당황한 눈동자와 가녀린 어깨에서 피어오르는 노을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어디인지도 모를 아득한 그곳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분위기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박여 촉촉해지려는 습기를 그녀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의 어깨 위에 유정숙이, 은애가, 그리고 숙희가 있었다.

  나는 말없이 포켓에서 사진을 꺼내어 탁자 위에 놓고 슬며시 그녀 앞으로 밀었다. 남한산성 사진사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고는 서로 하나씩 간직해 오던 하얀 설경이 배경인 그녀와 나의 유일한 사진이었다.

 “왜 달라고 하진 않으세요?”

  조심스럽게 사진을 챙겨 핸드백에 넣으며 그녀가 물었다. 나는 퉁명하게 말했다.

 “그냥 태워 버리시오!”

  내 대답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 다시 침묵이 흘렀다.

 “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그녀가 불안한 듯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지나온 것은 분명했다. 또 침묵은 한없이 흘렀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만나는 것을 피해 왔다는 사실이 다소 서운했지만 진심으로 편하게 보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와는 필연적이 아닌 인위적인 만남으로 출발했지만 한 번 최선을 다해 보자는 강한 의지가 내 안에 있었다. 어떤 계기로 만나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던 그녀였다. 나는 어차피 헤어질 바에는 차라리 남자답게 보내야 한다는 궤변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가세요. 앞으로는 거짓이든 참이든 주위를 맴돌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되도록 남자답게 힘주어 말하려 애썼다. 사실 아직은 거짓이든 참이든 그녀의 주위를 맴돌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녀와 깊이 정들기 전에 헤어지게 된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실패한 내가 초라하고 미워 그녀로부터 좀 더 매몰찬 상처를 당해야만 잊어질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목 인사를 하고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맥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녀가 나간 뒤 비로소 촉촉했던 두 눈을 주책 맡게 깜박였다. 나는 거짓이든 참이든 그녀의 주위를 맴돌지 말아야 한다고 독하게 다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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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또 다른 그녀




 회사가 경기도 외곽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갑자기 전해졌다. 직원들은 술렁거렸다. 각자의 거취에 갈등이 생길 수 있는 비교적 출퇴근이 먼 거리였다. 나는 경리인 미스 노를 볼 면목도 없어 때마침 핑계 삼아 사표를 제출했다. 다음 직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표는 모험이었지만, 당분간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했다. 또 하나 직장을 다니기 민망한  사건이 생겼다. 술자리에서 직원 하나가 띠가 뭐냐고 갑자기 물었는데, 제대로 답하지 못해 나이를 속인 것이 들통 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리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나는 아쉬운 나머지 염치없게 은애를 찾아갔다. 은애라면 이런 복잡한 상황을 누구보다 진솔하게 들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나를 보자 얼마 전 입사한 신입 도안사가 의외로 반색을 하며 반겼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시골에서 상경한 그는 처치가 비슷해서 그런지 나에게 남다른 관심과 친절을 보였다. 나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내려는 의중이 다분히 느껴졌다. 직원들과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사무실 곳곳을 기웃거리며 은애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은애는 보이지 않았다.

 “은애 씨는?”

 “지금 피신해 있어요!”

 “피신이라뇨?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얘기하면 복잡합니다. 소설 같은 얘기거든요.”

  은애의 소설 같은 이야기도 금시초문이지만 피신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마음이 정직하고 착한 은애에게 피신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뭔가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이 틀림없었다.

 “사무실 뒤에 귀빈다방 아시죠? 거기 한번 내려가 보세요.”

  신입 도안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급히 귀빈다방으로 갔다. 귀빈다방은 휘문인쇄소 직원들 모두의 단골 미팅 장소일 뿐만 아니라 아쉬울 때마다 은애와 차를 마시던 곳이다. 다방으로 들어서자 다방 안 귀퉁이 탁자에 숨은 듯 은애가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잔뜩 짜증이 붙어있었고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이 황당하여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대답 대신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얘기하면 길어요!”

  은애가 한숨을 길게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잘 왔어요. 바쁘지 않으면 오늘 잠깐 내 옆에 있어줘요.”

  그녀는 보디가드를 원했다. 나는 평소와 달리 맞은편이 아닌 그녀의 옆자리에 보호자처럼 앉았다. 이윽고 은애는 영화 같은 소설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날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어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내야 한다며 무작정 기다리나봐.”

 “갑자기 무슨 얘기예요? 애인 없지 않았어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은애의 남자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자가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평소에 눈치 챌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5년씩이나 쫓아다닌 남자가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5년이라면 내가 그녀의 도움으로 휘문인쇄소에 취직하기 전으로 그때부터 은애는 이미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비밀 때문에 나와는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은 사무실로 쳐들어온다고 해서 피신해  왔어요. 계속 일방적이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 큰일 아니에요?”

 “뭐에 쫓기는지 이제는 막무가내로 청혼까지 해서 미치겠어. 정말!”

  그녀가 투덜댔다. 청혼을 했다는 것과 은애의 반응으로 보아 그 남자는 거의 사생결단을 낼 각오인 듯했다. 은애는 오랜 세월 비밀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그만큼 그 남자와의 관계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은애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일면이었다.

  은애는 그 남자와의 5년 내력을 푸념하듯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은애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미 지주와 머슴으로 맺어진 주종 관계의 후손이었다. 은애 할아버지가 부농의 지주였을 때 머슴들 중 그 남자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일본인에 의해 강제로 대대적인 토지정리가 들어갔을 때 머슴들은 할아버지로부터 경작하던 토지의 일부를 나누어 받았다. 지주와 머슴의 관계는 무너졌고 머슴들은 인근 마을에 흩어져 가족을 구성하고 살았다.

  그때부터 은애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 대에 이르자 형편없이 빈곤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살던 곳이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지목되어 일본군에 의해 온 마을이 모조리 불태워졌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그나마 남은 임야나 토지는 장남이었던 어린 아버지를 속인 동네 친일파가 날치기해 갔다. 당시 정 판사라는 사람을 대동한 마름이 채 4살도 되지 않은 아버지의 인장을 강제로 찍어갔다. 눈 뜨고 재산을 탈취당한 것이었지만 나이 어린 아버지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땅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장손이었지만 형편없이 몰락한 아버지는 궁여지책으로 작은 할아버지에게 양자를 갔다.

  그곳에서 가문의 장남으로 성장한 은애 아버지는 열아홉에 보국대로 끌려가 다리를 놓는 현장에서 지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교각을 세우는 밑바닥에 배치되어 둑 터진 물에 휩쓸리기도 하고, 위에서 떨어진 장비에 머리를 맞는 등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렵게 보국대를 탈출한 아버지는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살았지만 곧 창씨개명과 함께 일본군으로 다시 강제징용 되었다. 제주도에 끌려간 아버지는 종전이 임박하던 해 미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다리를 잃었다. 일본 패망 후 함께 징용되었던 고향 사람 유골 두 구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정신적 충격 탓인지 술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집안에 아들이 여럿 있으면 암묵적으로 하나씩 나누어 우익과 좌익에 내주어야 하는 뼈아픈 현실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작은할아버지의 장남이며 호적상 아버지의 동생을 남로당에 입당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한국전쟁 후 작은아버지의 남로당 경력으로 온 집안은 곤욕을 겪어야 했다. 휴전 후 마을 청년들은 아버지를 공회당으로 끌고 갔다. 청년들은 작은아버지를 숨긴 곳을 말하라며 윽박질렀고 아버지는 수없이 뭇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3일을 감금당했고 3일을 맞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작은아버지의 전쟁 중 행방불명이 밝혀지고, 아버지의 보국대 차출과 강제징용도 인정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뭇매의 핵심에 그 남자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 남자의 아버지가 은애 아버지를 끌고 간 마을 청년 부장이었던 것이다.

  은애 아버지는 끝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미 상당히 버려진 몸이었지만 단 하루도 끊을 수 없는 술로 인해 몸은 점점 형편없이 망가져갔다. 술집에 널브러져 지내는 날이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하천에 쓰러진 채 발견되어 리어카에 실려 오기도 하고, 무턱대고 저수지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끌어내기도 했다. 연좌제 때문에 공부 잘하는 동생들이 뜻을 펼쳐 보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찰에게 조사를 당하기까지 했다. 경찰이 종종 드나드는 것으로 보아 행방불명된 작은아버지가 혹시 북쪽에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지만 진위를 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도대체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아버지는 결국 은애가 네 살 되던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은애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은애를 사랑한다는 그 남자와는 지주와 머슴의 관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고 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가해자의 아들이 피해자의 딸인 은애에게 반해 5년 넘도록 끈질기게 구애를 해왔지만. 은애의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모르는 아픈 구석이 많았구나 생각되었다. 하지만 너무도 궁금해서 힘주어 물었다.

 “그런데 은애 씨는 그 남자가 싫지는 않으세요?”

 “사람은 그렇게까지 밉지 않아요. 착하거든…….”

 “그럼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군요!”

 “꼭 그런 건 아니고……. 다른 건 몰라도 근본이 착하다는 얘기지.”

  은애는 그 남자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지주의 후손이 머슴의 후손에게, 그것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시집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라고 했다. 아직도 그 당시의 장본인들이 살아 있는 마당에 그것은 추호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결혼이란 당사자만이 결정해서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 간의 결합을 의미하므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한편으로는 죄 없는 그 남자가 불쌍하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가 되어 용서가 되더라고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어요. 그 사람 아버지 말고 또 다른 머슴의 딸이 그 남자 형하고 결혼했어요. 내가 그 남자와 결혼하면 그 머슴 딸의 아랫동서가 되는 거예요. 나보다 나이도 어린 여자인데……. 참 기막힌 관계도 다 있죠?”

  은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뒤틀린 관계를 줄줄이 설명했다.

  갑자기 그녀가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그 정도의 저돌적인 남자도 남자지만, 5년 넘게 그  남자를 뿌리치고 거절해온 은애도 참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죽기 살기로 사랑한다는 남자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일이라는 묘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얘기는 소설이나 영화에만 있는 줄 알았지 나한테 닥치리라곤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오늘은 결판내야 한다고 저 난리이니 어쩌면 좋아?”

  은애는 정말 좌불안석이었다. 내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어머니는 뭐래요?”

 “어림없는 소리예요.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서 말도 못 꺼내게 해요.”

 “어머니도 아시는 얘기인가 보죠?”

 “그 남자가 열 번도 더 찾아와 무릎을 꿇고 빌며 울고 그랬어요. 아마도 삼촌들한테는 몰매 맞을지도 몰라요.”

 “그 남자, 은애 씨를 사랑하긴 엄청 사랑하는가 보군요.”

 “모르긴 해도 결혼 안 해주면 죽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든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공무원.” 

  그녀에게 또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쩔 셈이에요?”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이미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꼬인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 잘못도, 그 남자의 아버지 잘못도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러 세대가 지난 작금에 이르러 모두가 피해자가 되었다. 그것부터가 정녕 정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신입 도안사가 급하게 다방으로 내려와 은애를 찾았다.

 “누나, 사무실로 빨리 올라가 보세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녀가 놀란 토끼눈으로 물었다.

 “그 남자, 지금 사무실에  와 있어요. 오늘은 꼭 누나를 보고 가야 한다며 꼼짝도 안  해요!”

 “행패 부리는 건 아니고…….”

 “행패는 무슨……. 원래 착한 사람이잖아요.”

 “알았어! 금방 올라갈게. 먼저 올라가 있어.”

  내가 모르는 사이 은애의 소설 같은 얘기는 사무실에서 공공연한 이야깃거리로 오르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5년이란 세월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혼자만 걱정해 오다가 근래에 노출된 것을 보면 어쩌면 은애도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치겠어 정말! 오늘은 결판을 내야지 도저히 창피해서 안 되겠어!”

 은애는 중얼거리며 핸드백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방을 나갔다. 다방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꽤나 당당해 보였다.

  은애를 만나 한심한 내 현실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려 했으나 입도 벙긋 못하고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쓸쓸해졌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 남자와 잘 매듭지어 은애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다방을 나온 나는 땅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당분간 은애에게 내 문제를 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게 불안하고 맥이 풀렸다. 서울이라는 이 넓은 공간에서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무직기간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수렁으로 처박힐 위기에 처한 현실이 처량 맞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두워지는 검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온통 짙은 어둠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은 곧 내 미래와도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질주하는 차들의 엔진소리가, 오가는 행인들의 구둣발 소리가, 아련히 바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밀려오던 파도 소리가 조용해지고 뒤로 넘어지며 다시 바다로 밀려가고……. 하얀 모래톱이 쓸려 덮여가고 또 덮여가고……. 그 끝섬에 어머니가 있다고 했다.

  이제는 얼굴조차도 희미한 잔영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어머니가 그곳에 있다고 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어머니가 더욱 그리웠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들이마셨다.

  그때 갑자기 어깨를 노크하듯이 톡톡 치며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머, 여긴 어쩐 일이세요?”

  놀라서 눈을 뜨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색을 하며 서 있는 정숙희의 눈웃음이 두 눈에 확 들어와 박혔다. 나는 울적하던 차에 그녀의 등장이 반가웠다. 하지만 겸연쩍은 웃음으로 대꾸했다.

 “나야 그냥……. 그런 숙희 씨는 어디 가는 길이에요?”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어쨌든 이렇게 만났는데 차나 한잔 하죠?”

  좁은 인쇄타운에서 은애든 숙희든 우연히 만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숙희는 약속 없이 길에서 나를 만난 것은 대단한 사건이라는 듯 흥분하는 분위기였다.

 “친구 만나러 간다면서.”

 “친구한테는 늦는다고 전화하면 돼요! 커피보다 차라리 저녁을 먹는 게 좋겠어요.”

  그녀가 먼저 팔을 잡아끌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지만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어서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잡아끌었고 나는 공연히 버티었다. 그러자 그녀가 옆에 있는 돼지갈비 집으로 일방적으로 떠밀며 나를 밀어 넣었다.

 내가 먼저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사이 숙희는 노란 공중전화 앞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스듬히 기대어 전화를 하고 있는 그녀의 뒤태가 매력적으로 다가와 눈을 어지럽혔다. 살집 있는 여자에게 늘 시선이 가던 나의 눈에 그녀의 뒷모습은 눈길을 오래 머물도록 만들었다.

 “이제 됐어요. 간단한 모임이라 친구한테 못 간다고 했어요. 저녁도 안 했죠? 아예 술도 한 잔 해요.”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를 시켰다.

 “참 이상해요. 팔백만 서울 시민 중에 어떻게 길에서 이렇게 만날 수가 있죠? 서로 한 발짝만 어긋나도 힘들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회사 그만 두고 어디 있었어요?”

 “회사 그만둔 건 어떻게…….”

 “허 화백님한테 들었어요. 오늘 전화했더니 벌써 그만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난 은근히  걱정했는데, 무심하게 연락도 없어요?”

  숙희가 살짝 눈을 흘기었다. 그녀는 허 화백을 통해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늘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우울했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다.

  그동안 미스 노의 사촌과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 숙희와는 의례적 행사인 양 세 번의 만남밖에 갖지 않았었다. 숙희에게 숨겨왔던 순간들을 떠올리자 더없이 미안해졌다. 숙희에게  꼭 숨기려고 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굳이 이야기를 꺼내 숙희에게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변명하는 것이 더 어처구니없는 꼴이 될 것만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술이 준비되고 돼지갈비가 불판에 올려졌다.

 “먼저 한 잔 받으세요.”

  나는 최소한 그녀의 상기된 분위기 정도는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따라준 술잔을 가뿐하게 비웠다. 빈속을 훑고 내려가는 시원한 소주의 감촉이 금방 배 속까지 전해졌다. 전과 다르게 술맛이 달게 느껴졌다.

 “노수 씨 고향이 충주랬죠?”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그 정도는 다 아는 수가 있어요. 나는 전라도 광주에서 자랐어요.”

 숙희는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갈 요량인지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검은 스타킹 사이에 통통하고 뽀얀 살이 탐스럽게 숨어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다리를 외면하는 척했다. 오늘따라 자꾸만 눈이 가는 그녀의 구석구석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숙희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성장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숙희는 어머니가 늘 앓고 있어서 어린 나이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어머니가 누워 지내게 된 건 장마철 산사태 때문이었다. 잠시 친정에 들렀던 어머니는 산사태를 만나 진흙더미 속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기사회생으로 살아났지만 후유증 때문에 어머니는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숙희는 위로 오빠와 아래로 두 동생을 뒷바라지해야 했고 누워있는 어머니까지 보살펴야 하는 장녀인 관계로 많이 배울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아픈 와중에도 아버지는 딴 여자를 만났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를 방치하고 이혼을 요구할 만큼 염치없었던 사람이라며, 그녀는 거침없이 자기 집안의 치부를 드러냈다. 그녀가 12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지만, 그해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더니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그녀는 이미 하늘이 두 쪽 나는 치열한 절망을 경험했다.

 수입이 일정치 않았던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두 동생의 학비를 대면서 까지는 살림을 꾸려나가기가 몹시 어려웠다. 군대 간 오빠가 적은 월급을 모아 부쳐주기도 했지만, 돈은 늘  부족했고 결국 주변에 빚을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그녀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숙희가 엉뚱한 데 빚을 진 것으로 몰아붙였다. 숙희는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 갈 곳이 없었던 그녀는 부천에 있는 먼 친척의 사랑방에 기숙하면서 소위 식모생활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수소문 끝에 시골 동창의 소개로 봉제 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급료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을 정도로 신통치 않은 곳이었다. 그 후 봉제 공장 책임자의 소개로 오늘날 진 사장이 운영하는 작은 기획실에 취직하게 되었다.

  숙희의 오빠는 군 제대 후 시청소속으로 트럭운전을 하는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 올케의 왜곡된 신앙생활로 형제관계가 틀어져버렸다. 올케의 맹목적인 신앙생활은 늘 형제간의 불화를 촉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케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며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숙희를 포함한 동생들이 뒷걸음치게 되었다.

 숙희는 차라리 포기하는 게 마음 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케로 인한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녀는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결코 그런 행동은 안 할 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만 남동생만이 그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를 따른다고 했다. 학비까지 벌며 광주에 있는 대학교를 어렵게 다니는 남동생이 안쓰럽다고 했다. 반정부 동아리서클에 입단하여 가끔 피해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 없는 동생이라며 보고 싶다고 했다. 숙희는 형제들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나도 참 주책이다. 노수 씨한테 별 얘기를 다 하고…….”

 숙희의 눈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녀의 명랑함 속에 이토록 강한 외로움이 깔려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알 수 없는 울분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속내를 감추려는 나의 모습과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쉽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나에게 모두 털어 놓은 것을 보면 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돼지갈비가 익기도 전 오고간 몇 차례의 술잔에 그녀는 물론 나 또한 빠르게 취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제법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온몸으로 번진 술기운이 감정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나 또한 그동안 숨겨놓은 아픔을 서서히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음속에 깊이 감추어 놓았던 비밀을 스스럼없이 말한 것에 대한 답례라도 하듯 나의 지난날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나의 회상은 숙희의 회상만큼이나 촉촉했다.

 “숙희 씨, 난 고아나 다름없는 사람이에요. 소장수였던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나는 겨우 중학교를 마치고 소몰이 생활을 하다가 그 생활이 싫어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유년기의 추억도 많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부터는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 형편없어졌다고도 말했다. 캄캄한 지하에서 한 층 한 층 기어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더 추락할 곳도 없는 초라한 신세라고 말했다.

  민기나 유정숙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었지만, 처음으로 은애 이야기는 꺼냈다. 서울에 올라와 막막하기만 했던 시절, 천만다행으로 은애를 만나 그녀의 도움으로 도안사가 되었고 몇몇 직장을 옮겨 다니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낱낱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남해안 끝섬이라는 곳에 살아계신다는 말만  들었는데, 아직 끝섬이 어디인지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늘 바다가 그립다고 했다. 어머니와는 파도소리를 음률과 같다며  들려주던 추억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끝섬이라는 곳을 찾아 꼭 어머니를 만날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말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네.”

  내가 피식 웃으며 회상을 마무리했다. 그러자 숙희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받았다.

 “어머니는…… 나중에 시간 내서 같이 한번 찾아보도록 해요.”

  그녀는 어머니를 찾아 인사를 드리자고 덧붙였다.

 “고마워요. 아무리 힘들어도 용기 잃지 말고 우리 힘내죠!”

  내가 그녀에게 건배를 요청하며 ‘우리’라고 했다. ‘우리’는 그녀가 혼자가 아니며, 나 또한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주길 진정으로 바랐다.

  숙희가 눈가에 맺힌 이슬을 훔치고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 기분 너무 좋다. 노수 씨 나이트클럽 가봤어요?”

 “아니요. 그런데 오늘은 너무 취한 것 같아서…….”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내가 낼 테니! 엊그제 보너스 조금 받았어요.”

 “벌써 밤 열 시인데 통행금지 걸리지 않을까요?”

  내 은근한 걱정은 뒷전으로 하고 숙희는 벌써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약간 취기가 오른 그녀의 얼굴 위로 전에 보지 못한 즐거운 표정이 드러났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그녀는 서둘러 계산을 마친 모양이었다. 음식점을 나오자 이른 봄비가 지척지척 내리고 있었다. 버스는 버스대로 택시는 택시대로 갑작스런 비를 피해 서로 타려는 사람들로 거리는 온통 아우성이었다. 빗방울이 머리며 어깨 위로 마구 튀어 성가시기 이를 데 없었다.

 우왕좌왕 뛰다가 택시를 몇 번 놓치게 되자 내가 물었다.

 “숙희 씨, 어디 멀어요?”

 “아뇨. 가까우니까 차라리 걸어가요.”

  숙희가 내 옆구리에 바짝 달라붙으며 팔짱을 꼈다. 온몸에 취기가 올랐는데도 따스한 온기는 짜릿한 전기처럼 내 몸을 관통해 심장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휘감았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감촉이 등줄기를 타고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왔다.

 우리가 도착한 나이트클럽은 일본관광객이 많이 드나든다는 비교적 저렴한 호텔 내에 있는 곳이었다. 현관에서 머리와 어깨의 빗물을 털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비넥타이를 한 말끔한 청년이 우리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청년이 안내한 4층은 엘리베이터 문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문이 열리자 갑자기 현란한 불빛의 조명과 네온사인, 시끄러운 음악이 한꺼번에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당황한 나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낯선 광경에 짐짓 놀라는 나를 본 숙희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씩 웃어버렸다. 씩 웃는 그녀의 얼굴은 내추럴 캔디 립글로스와 함께 앙증스러웠다.

  클럽 안으로 들어서자 한 평 남짓한 원형 무대 곳곳에 몇몇의 무희들이 음악에 맞춰 뱀처럼 몸을 비틀고 있었다. 꿈틀대는 몸짓에 노랗고 파란 불빛들이 반사되고 교차되어 더욱 커다란 율동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들의 의상은 해수욕장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속옷 같은 비키니 차림이었는데, 온통 구슬을 달아 놓아 움직일 때마다  현란한 몸놀림으로 살아 움직였다.

  웨이터가 안내한 좌석에 앉은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한 바퀴 훑어보았다. 홀 중앙에는 음악에 따라 여러 팀의 남녀들이 한 덩어리로 뒤섞여 빠르게 또는 느리게 출렁이고 있었다. 운동장처럼 넓어 보이는 나이트클럽에 어쩌면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지 무척 놀랐다.  넋이 빠질 지경이었다. 로봇 춤을 추는 무대 위의 공연이  끝나자 잠시 시끄럽던 음악이 멎었다. 그리고 이어서 흐르는 느린 블루스 음악에 연인들은  뒤엉켜 잔잔해진 물결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남녀가 서로 달라붙어 회전하는 낯선 풍경에 나는 몹시 긴장했다. 그녀는 긴장한 내 마음을 속속들이 읽고 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 놀랐지?”

 숙희가 오히려 재미있다는 투로 귀엽게 약을 올렸다.  

“정신을 못 차리겠어!”

 “처음에는 다 그래. 하지만 저길 좀 봐. 여자들이 맘 놓고 담배도 피잖아!”

 그녀가 손짓한 건너편 좌석에는 자연스럽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여자들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다. 진한 화장으로 보아 평범한 여자들은 아니리라 추측은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드러내놓고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광경을 보긴 처음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여자들일까?”

 “신경 쓸 거 없어. 술집 여자들인지도 모르지.”

 어느새 우리들은 말을 트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만 편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나이트클럽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당황하는 나를 보는 게 몹시 즐거운 듯 연신 생글거렸다.

  잠시 후 기본이라며 안주 한 접시와 맥주 다섯 병이 놓여졌다.

 “오늘 큰일 났네. 지금도 취했는데…….”

 “취하면 어때. 나도 취했는데!”

 그녀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맥주를 따라주며 건배를 하자고 잔을 높이 들었다. 나는 그녀와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비웠다. 그렇게 연거푸 마시는 술맛은 돼지갈비 집 소주 맛과는 또 다르게 달콤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흥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홀은 디스코에 이어 블루스로 이어지고, 다시 블루스에서 디스코로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음악이 바뀔 때마다 무희도 바뀌었고  춤추는 손님들도 바뀌었다. 천장에 붙어  돌아가는 미러볼과 현란한 조명은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에 충분할 만큼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맥주 다섯 병을 마시고 다시 다섯 병을 시켰다. 그녀와 나는 이미 과한 알코올을 몸 안으로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브레이크를 잡지 못했다. 빠른 디스코 음악으로 바뀌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도 나가서 춤추자!”

  나는 난생 처음 나이트클럽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율동에 따라 어색하게, 그녀의 몸짓과 비슷하게 따라 하려 애쓰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이 어색하여 주위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몸을 흔들었다. 맞은편 대형거울에 내 모습이 비췄다. 음악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엉거주춤 비틀대는 것처럼 보이는 내 몸놀림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나를 보고 있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어색하여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녀는 흥에 겨운 율동과 함께  제법 리듬을 타고 있었다. 좌우로 흔드는 동작마다 동그란 그녀의 가슴 또한 가볍게 흔들리며 율동을 보였다. 발동작은 발동작대로, 손놀림은 손놀림대로, 언제 그 율동을 몸에 익혔는지 의심될 정도로 그녀는 나를 자연스럽게 리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에는 열기가 가득했고 이내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고고 타임에도 블루스 타임에도 숙희는 나를 리드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이트클럽의 열기를 만끽했다. 블루스 타임이 되자 그녀는 자리로 돌아가려는 나를 극구 잡아끌었다.  그리고 내 양손의 위치를 잡아준 다음 블루스 스텝을 유도했다. 하지만 스텝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그녀는 몇 번이나 발을 밟히면서도 뒤뚱거리는 나를 잡아주는 게 재미있는지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주위의 연인들은 서로의 가슴이 맞닿을 정도로 밀착하고 춤을 추었지만, 우리는 가슴은커녕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의 블루스를 췄다.

 그녀에게서 땀 냄새가 났다. 그 싱그러운 냄새는 목 뒤로  감아 묶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뽀얀 목덜미 아래 어깨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보스스한 코밑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땀 냄새는 차라리 향기로웠다.

  나는 억지로 스텝을 밟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서로 한 몸처럼 밀착하고 돌아가는 커플처럼 무작정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슴이 내 몸에 닿았다. 나는 뭉클한 그녀의 감촉에 감전될 지경이었다. 그녀 또한 정전기처럼 스치는 촉감에 잠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스스로 팔 안으로 파고들며 내 안에 자신을 가뒀다. 우리는 음악이 멈출 때까지 한참동안 그렇게 돌고 또 돌았다. 그녀는 발이 몇 번씩 밟혀도 개의치 않았다. 마침내 숙희는 그녀의 발을 아예 내 발 위에 올려놓고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다.

  다시 빠른 디스코음악으로 바뀌자 자리로 돌아왔다. 남은 맥주로 갈증을 풀고 다시 다섯 병을 더 주문했다. 나는 온몸이 무너져 내릴 지경으로 취해버렸다. 빈속에 소주부터 시작한 탓도 있었지만, 숙희가 편해 마음 놓고 마시는 사이 평소보다 몇 배 더 빨리 취한 것 같았다.

  우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통행금지가 가까워진 한밤중이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도 뜸해진 시간이었다. 그녀는 마침“우산이요!”을 소리치는 소년에게서 마지막 남은 비닐우산 하나를 샀다. 숙희가 우산을 펴며 비틀거리는 나에게 밀착해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어깨를 감쌌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그녀에게 매달렸다고 봐야 옳은 몸짓이었다. 한 사람이 써야 될 정도로 작은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자 빗물은 얼굴까지 튀어 올랐고 숙희는 아예 나를 끌어안으며 한 몸처럼 부축했다.

 “어떻게 할래? 택시 잡아 줄까?”

 그녀가 물었다.

 “……아니, 그냥 이렇게 걷자!”

 “어떻게 하려고? 오늘은 너무 취했어.”

 “걸으면서…… 걸으면서 생각하자!”

 “늦어서 택시도 어차피 못 타. 통행금지 되기 전에 어디 여관에라도 가서 자. 내가 데려다 줄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는 어두운 골목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멀리 여관이라는 희미한 수은등 간판이 쏟아지는 빗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흐려진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자욱한 어둠만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숙희 씨?”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날 어떻게 생각하니?”

 “뭘?” 

 “무엇 때문에 우리가 만나고 이러는 걸까?”

 “우리 그런 말, 안 하기로 하구선…….”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인 내가 두렵지 않아?”

 “바보같이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숙희의 떨리는 목소리는 금방 울음을 토해낼 것만 같았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위태롭던 비닐우산을 마침내 찢어놓았다. 그 틈 사이로 세찬 빗방울이 마구 튀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우수에 젖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빗방울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그녀를 온통 적셨다. 빗물에 그녀의 가슴과 몸태가 점점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녀를 와락 얼싸안았다. 그리고 서툴게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의 입술이 서서히 개화되었다. 빗물도 눈물도 그녀의 입술에서는 달콤한 포도 알처럼 변해있었다. 나는 목석처럼 버티고 서서 한동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졌고 바닥에 떨어진 비닐우산은 을씨년스럽게 뒤집힌 채 바람에 휩쓸려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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