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설움




 태평양기획은 일류호텔의 영문판 월간 매거진을 창간하면서 한결 바빠졌다. 나는 사진식자를 찾으랴, 제판집을 다니랴, 인쇄소며 제본소는 물론 광고업체 필름까지 전달받으러 다니는 등 거의 서울 전역을 찾아 다녀야만 했다. 광고업체는 그동안 다닐 기회가 없었던 초일류기업들로서 건물이 웅장해서 가는 곳마다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나는 최대한 여유 있는 척했지만 항상 마음이 움츠러들고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처드가 자신이 타고 다니던 회사 차를 내주어 박 기사와 가끔 동행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좀 낫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다니느라 내가 원했던 디자인 실무를 할 시간이 거의 없어 안타까웠다.

 어쨌든 매거진 창간호가 나왔고, 나는 몇 번이나 책 속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무슨 역할을 했던 월간지 첫 페이지, 디자이너 난에 'Nosoo Kang’이라는 내 영자 이름이 인쇄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충분히 흥분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덜렁 서울에 내던져졌던 이방인이 이 정도 일을 해냈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일취월장이었다. 

 호텔에서 매거진 창간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나와 박 기사는 차를 주차하고 22층 스카이라운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올라갔다. 출입구에 걸린 창간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먼저 나를 압도했다. 홀 중앙에 조각된 독수리 형상의 얼음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독수리 부리 끝에는 녹아내린 물방울이 맺혔다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홀 안의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음식까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화려했지만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이쪽저쪽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리처드와 전무는 외국 사람들과 무언가 부지런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먼저 도착한 임 실장과 직원들도 끼리끼리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 파티장을 흔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들 속에는 잡지에 등장하는 금발의 광고모델도 보였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옆으로 생머리를 등 뒤까지 길게 늘어뜨려 고운 자태를 한껏 뽐낸 유정숙이 보였다. 화사한 은빛 롱드레스에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정숙이 내게는 금발의 모델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유정숙은 홀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본 듯했지만,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행동으로 서로의 사이가 알려지는 것은 나 또한 원치 않는 일이었으므로 그녀의 모르쇠가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도록 좀 더 구석진  귀퉁이로 숨어버린 것은 오히려 나였다. 마침 눈이 마주친 임 실장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임 실장은 미소 같기도 한 야릇한 표정을 보이며 나를 보지 못한 듯 옆 사람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나를 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 경리인 미스 김에게도 미소를 건넸다. 하지만 미스 김에게서도 임 실장과 같은 억지 섞인 미소가 스치는 것을 순간적으로 목격했다. 직원들이 나를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몸으로 직감했다. 한낱 급사 역할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출판기념회장에 나타난 것이 그들에겐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정장 차림인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후줄근한 와이셔츠 차림의 나는 이미 그들 사이에 껴서는 안 될 이방인이었다.

  나는 신사복 한 벌이 없었다. 변변한 넥타이 하나도 없었다. 넥타이를 맬 줄도 모르는 나에게 박 기사가 자신의 넥타이를 매 줄 때부터 분위기를 알아차려야 했다. 출판기념회에 나도 가는 거냐고 임 실장에게 물었을 때, 그의 어정쩡한 표정과 건성으로 하는 대답의 의미를 진즉에 눈치 챘어야 했다. 그 정도의 눈치도 없었던 내가 순진했다.

  나는 슬며시 창가로 다가갔다. 발아래 펼쳐진 도시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로 찬란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와 굽어보는 서울의 야경은 오히려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 야경은 유 씨의 미아리 산꼭대기에서 느낀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서글픔은 찬란한 야경도 그저 서글픔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말없이 파티장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마침 나비넥타이의 말쑥한 보이가 잔을 소반에 받쳐 들고 홀을 돌고 있었다. 나는 훔치듯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척 한 모금 마셨다. 순간 코끝이 확 달아올랐다. 독한 알코올은 혓바닥을 타고 입천장을  훑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로 목젖으로 넘어가 이내 배 속까지 자극시켰다.

 “허허, 그래도 넌 스트레이트로구나!”

  박 기사가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박 기사 또한 그를 상대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는지 나를 찾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박 기사의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둥지에서 떨어져 아스팔트에 내던져진 새처럼 비참한 자괴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조가 내면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보직도 없는 머슴살이 급사였다. 명색은 디자이너로 스카웃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해온 일로 봐선 결코 그만한 대우는 받지 못했다. 애초부터 회사에서는 나를 심부름꾼으로 채용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부름꾼에 불과한 일을 지시받으면서 나는 여섯 달을 부단히도 열심히 일했다. 태평양기획에서의 여섯 달이 부푸러기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반딧불과도 같은 차들의 행렬이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이동하는 광경은 마치 시골에서 본 개미의 이동 행렬과 비슷해 보였다.

 “이봐, 우리도 저기 가서 꼽사리끼세.”

 박 기사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어 왔다. 그가 손짓하는 장소에서는 뷔페식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박 기사와 나는 물위에 뜬 기름과도 같았다. 파티장은  내 마음과는 다른 즐거움의 도가니였다. 어울리지 못하는 나만이 이질감에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무리 없이 곧잘 어울리던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특수한 환경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못마땅했다. 이곳은 초라한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기사님이나 하세요. 전 먼저 가렵니다.”

  나는 애꿎은 박 기사에게 화풀이를 하고 파티장을 나왔다.

 

 

 이튿날 파티 도중 나의 이탈을 꼬집거나 힐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흥겨웠던 추억들만 서로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누구는 양주를 맥주처럼 마시어 정신없이 취했다느니, 누구는 독수리 입에서 떨어지는 얼음물과 칵테일을 해서 함께  마셨다느니, 온통 그들만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아직도 파티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밤새 골똘히 고민했던 사안을 건의하기 위해 기획실을 나와 전무실로 갔다. 전무는 월간지‘경영과 마케팅’에 연재하는 원고를 작성 중에 있는 듯 보였다. 대학에서 광고학을 공부한 전무의 글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았지만, 직원들 말에 의하면 글 솜씨가 훌륭하다고 했다. 그는 카피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매월 원고료를 받으면 직원들 회식을 시켜주곤 했다.

 “전무님, 저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무가 만년필을 원고지 위에 올려놓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예, 그러세요.”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면서 톡톡 쏘는 전무의 말투는 전무라는 그의 체통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였다. 여성스러운 말투와 더불어 가벼운 목소리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전무는 자기 목소리에 불만이 많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목소리가 오늘따라 가볍게 느껴졌다.

 “전무님, 심부름 하는 여직원을 한 명 채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무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처음 임 실장님 말로는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달이 되도록 심부름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간단명료하게 절박한 불만을 밝히려고 애썼다. 전무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뜸  내 의견을 수용하고 리처드와 의논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돈을 넣더니 말했다.

 “사장님과 의논해서 생각해 보지요. 그리고 이 돈을 리처드에게 갖다 줘요. 지금 광고주와 만나고 있는 중이에요.”

 봉투를 받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막상 이야기를 하고 보니 나의 보잘것없는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직원을 뽑아달라고 한 것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결과가 나쁘면 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무의 답변을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리처드가 있는 스탠드바는 한낮인데도 제법 손님이 많았다. 근처에 외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고급 호텔이 많아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리처드는 화장이 짙은 여자를 옆에 앉혀두고 수염이 많은 외국인과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한 리처드는 이미 전무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대뜸 손을 내밀며 봉투를 달라고 했다. 누런 털이 숭숭 난 송아지 같은 손에 봉투를 건넸다. 나는 리처드의 옆에 앉은 짙은 화장의 여자를 힐끗 훔쳐보았다. 천박스러울 정도의 화장으로 도배한  얼굴 아래 깡마른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휘문인쇄소에 들렀다. 은애와 차 한 잔을 나눴다. 학교를 졸업한 은애는 날이 갈수록 어엿한 숙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보였다.

 “요즘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한가해서 살만 자꾸 쪄요.”

  그녀의 미소가 맑고 싱그러웠다. 곧 만개할 꽃봉오리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귀엽고 뽀얀 얼굴이 더없이 편안하게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그냥 지금이 보기 좋아요!”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은애는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날씬한 여자들을 좋아한다는데 엉뚱하네.”

 “정말이에요. 난 조금은 통통한  여자가 믿음직하고 편안해서 좋아요!  어떨 땐 누나 같은 생각도 들구…….”

  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오늘의 나를 있게끔 첫 단추를 끼워 준 은애의 몸집이 동글동글하고 통통하기 때문에 은연 중 각인된 느낌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아련해져가는 어머니와 너무도 닮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랬다. 흰 살결과  동그란 얼굴, 통통한 몸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분위기였다. 은애는 마치 누나와도 같았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분위기의 여자였다. 유정숙에게서 느끼는 어머니와 김은애에게서 느끼는 어머니는 분명 서로 달랐다.

 “노수 씨가 마른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통통한 사람을 좋아하나 보네요. 난 살이 찌는 게 정말 싫은데…….”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명랑하게 웃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애는 언제부터인가 순간순간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헐적으로 가슴에 자리 잡고 있던, 들킬까 염려되는 혼자만의 느낌이기도 했다. 은애의 편안함은 이미 유정숙에게 느끼는 보송보송한 이마의 땀방울과는 또 다른 의미로 정착되어 있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면 더없이 편할 것만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은애가 먼저 데이트라도 신청한다면 기쁠 일이겠지만, 내 처지에서 먼저 데이트를 신청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불쑥 데이트를 신청하고 말았다.

 “저어, 은애 씨! 이번 일요일에 저랑 데이트하면 어때요?”

 은애에게서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명랑하던 은애지만 말문이 막혔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은애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대책 없이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녀의 침묵에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마음에 있는 말을 힘겹게 꺼내 놓고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여진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이윽고 은애가 입을 열었다.

 “…난 그냥 노수 씨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요. 지금처럼 편안한 감정으로요.”

  그녀가 데이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멋쩍어졌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죄송해요. 좋은 감정을 흔들어 놓아서. 친구 같은 마음 변하지 않을게요.”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은애의 우정에 고마움을 표했다. 굳었던 은애의 얼굴이 조금씩 펴졌다.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떠나가 버린 어머니의 그리움을 은애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유정숙의 애틋함을 은애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은애가 승낙하면 유정숙에 대한 그리움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은애의 데이트 거절이 그다지 불쾌하거나 서운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로 은애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사무실의 리처드와 휘문인쇄소를 못마땅하게 대하는 임 실장의 권위적 태도에 대한 이야기, 별 볼일 없는 나의 위치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었다. 그래서 나는 은애 덕에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늦게 유정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요즘 리처드가 이상해요. 아직 집에 안 들어 왔어요. 전무님은 자꾸 딴소리만 하는데 노수 씨가 돈을 가져다 준 거기가 어디였죠?”

  유정숙은 내 상황을 뻔히 아는 듯 말했다. 전무의 심부름으로 내가 리처드를 만나고 왔다는 내용을 그녀는 상세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 스탠드바였습니다.”

 “어디에 있어요?”

 “…명동요.” 

 “누구와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외국인 남자와 업무상 만나는 눈치던데요.”

  나는 다른 여자도 한 명 있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관계도 모르면서 화근의 단초가 된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유정숙은 많이 흥분하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리처드의 외도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나와의 통화는 미리 추리해 놓은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그녀는 내 말까지도 의심하는 듯했다.

 

 

  나는 일주일 내내 유정숙의 전화로 인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또한 여사원의 채용을 기다리며 전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러나 리처드는 물론  전무 또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상의 업무에만 열중이었고, 유정숙으로부터 연락도 없었다. 나 외의 다른 직원 누구도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기에, 나 혼자만  전초전의 긴장감으로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일주일이 더 지나도록 그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가 타고 숨이 막히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결국 전무와 다시 대면했다.

 “전무님, 여직원 문제는…….”

 “바쁜 일들이 많아서 아직 사장님과 의논하지 못했어요.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전무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답변은 없었다. 이윽고 나는 은애를  만나 친구라도 추천받아 밀어붙이는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고, 은애의 생각을 타진하기 위해 그녀를 만났다.

  지난번 데이트 신청 사건이 있은 후 은애와는 한껏 편하고 친해진 느낌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은애는 흔쾌히 친구를 소개하겠노라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의 친구를 소개받아 전무와 대면시켰다.

 “됐어요.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의논해서 미스터 강을 통해 연락하죠.”

  은애의 친구를 면접보고 난 뒤 전무는 결심한 듯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여직원 문제가 일단락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무의 소식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함흥차사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전무는 번번이 미루기만 하는지, 그때그때 건성으로  일관하기만 하는지……. 전무의 태도는 정작 마음에도 없었으면서 내가 스스로 알아서 포기하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어쩌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줄곧 밀어붙인 내가 바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대로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운하다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일이었다. 불현듯 창간기념파티가 있기 전 회사를 떠난 선배가 떠올랐다. 선배는 전무의 우유부단이 진저리가 난다며 사표를 고집했다. 나는 비로소 선배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태평양기획에서 마음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내가 회사에서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회사에 취직을 보장받지 않고서 거취문제를 속단하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지경에 처한 내가 미웠다. 그런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현실은 더 미웠다.

  나는 며칠 동안 뻑적지근한 몸을 한없이 뒤척이는 밤을 되풀이하였다. 아침마다 훤하게 밝은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얼굴을 쪼고 있을 때 가까스로 일어날 만큼 지치기 시작했다. 마음이 지쳐 헤어 나오지도 못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까지 지치고 있었다.

  또 늦잠이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세수를 했다.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 아침을 해결하러 단골 식당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좀 늦었네!”

 나에게 유달리 친절한 아주머니였다. 하루 세 끼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가정식 백반집이었다. 밥값을 한 달 단위로 끊어서 선불을 주고 나면 깎아 주는 터라, 얼마 전부터는 선불을 주고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예, 늦잠 잤어요.”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불쑥 내뱉고 말았다.

 “아주머니, 여기도 이제 며칠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어디 다른 직장으로 가게?”

 “예, 곧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서운해서 어떡해. 단골손님 잃게  됐네. 요즘은 외상값도 제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미 사표를 낸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 나 자신에게 내심 놀랐다. 이제 사표를  내는 것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식당을 나왔다.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는 여름 햇살이 아침부터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었다. 곧장 걷다가 극장 옆을 돌아 왼쪽으로 돌았을 때였다.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숙녀에게 길이 막혀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나 또한 곧 숙녀처럼 히죽 웃고 말았다. 숙녀는 다름 아닌 출근길의 은애였다. 나는 출근이 늦었다고 망설이는 그녀를 끌고 무작정 지하다방으로 내려갔다.

  아침부터 냉커피를 시켰다. 그녀의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뜻이기도 했지만, 출근길에 마주친 은애가 더없이 반가워 다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은애 친구에 대한 전무의 무관심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태평양기획의 근황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다가 결국 직장을 옮겨야겠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왜? 내 친구 때문이에요?”

  은애의 놀란 물음에 나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친구와 내가 푸대접을 받은 것이 결정적 요인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무슨 다른 일이 있는 거예요?”

  은애가 다시 물었다. 어느 정도 진담이기 했지만, 예기치 못한 은애의 심각한 반응에 나는 난처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고향에나 좀 다녀올까 해서…….”

 엉뚱한 대답을 또 내뱉고 말았다. 유정숙과 유 씨를 만난 후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던 고향이 은애 앞에서 불쑥 생각난 이유는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친구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내가 잘 얘기하지 뭐.”

  고향 얘기를 듣고 은애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어떤 이유든 정 떨어진 직장이면 그만 둬야지요. 나도 한번 직장 알아볼 테니까 기다려 봐요.”

  그녀는 되레 다른 직장을 소개하겠노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에게 은애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마음이 착한, 운명과도 같은 여인이란 생각에 가슴이 시려왔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나는 은애로부터 직장을 소개받았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사진식자기 두 대를 놓고 도안까지 겸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기획사무실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태평양기획에서의 사환 노릇보다는 나을 듯했다. 무엇보다 휘문인쇄소를 다니며 즐거웠던 가족적인 분위기도 그리워, 규모가 작은 것이 오히려 맘에 들어 쾌히 승낙했다. 물론 내  쪽에서 승낙했다기보다 그들이 부족한 나를 뽑아주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었다. 은애는 그렇게 내 인생의 고비마다 큰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로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충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뼈마디가 아리도록 아픈, 마음의 상처를 움켜쥐고 도망친 3년 만이었다. 열차는 규칙적인 바퀴소리를 내며 평행선을 가슴으로 끌어안듯 삼키며 달렸다. 다시는 오지 못할 뻔했던 귀향길이었다.

  차창에 부딪히던 그날의 황량했던 겨울바람이 이제는 초여름 연녹색의 싱그러움으로 바뀌어 나를 맞고 있었다. 하얀 감자 꽃이, 아직은 덜 익어 파란 고추밭이, 콩밭이며 멀대처럼 키만 큰 옥수수 밭이, 여느 때보다 정겹게 느껴졌다. 실개천을 따라 도열해있는 이름 모를 잡풀조차 새롭게 각인되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이 새롭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동안 콘크리트 벽 일색의 회색 도시에서 정신을 빼앗겨 잊고 있었던 시골 풍경이었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고향이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가방을 방 안에 휙 던져 버리고 친구들과‘호암지’로 우르르 몰려갔던 여덟 살 어린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연못을 수영으로 가로지를 수 있었던 것은 연못이 있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자연의 혜택이었다. 물고기를 잡고, 편을 갈라 물싸움을 하고, 계단식 수로를 따라 기어오르기 경주를 했다. 이끼가 파랗게 덮인 수로에서 몇 번씩 미끄러져 곤두박질쳐도 아프지 않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 수로에서 다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맛은 일품이었다.

  오후반 등교를 할 때면 호숫가 나무뿌리에 붙어 탈피를 준비하는 장수잠자리 번데기를 잡았다. 번데기를 여학생들 책상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두면 두어 시간 뒤 번데기는 잠자리가 되어서 여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서랍을 열다 잠자리를 보고 기겁하며 놀라는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낄낄대며 웃곤 했다.

  겨울엔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탔고 정월대보름엔 쥐불놀이를 하며 노는 재미의 절정에 빠지곤 했다. 아이들은 보름 내내 몰려다니며 밤새도록 쥐불놀이를 했다. 저마다 주워온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철사 줄로 끈을  엮어 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른 쇠똥과 나무 조각을 주워 모아 불을 지폈다. 수십 명이 모여 빙빙 돌리던 깡통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수십 개의 불꽃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피날레를 장식할 때면 일렬로 서서 구령에 맞춰 일시에 연못 둑 아래로 깡통을 던졌다. 캄캄한 밤, 하늘로 솟구쳤다가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불꽃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낙하하는 불씨를 벗 삼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공처럼 굴러서 둑 아래까지 내려가도 다친 아이 하나 없이 잘만 놀던 여덟 살이었다. 아아, 그때는 고향이 이토록 절절히 가슴에 묻어날 줄은 몰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눈을 떴다. 난데없는 빗방울이 하나 둘 날아와 차창에 부딪혔다. 빗방울은 빠른 열차의 속도에 못 이겨 사선으로 흔적을 남기며 아우성쳤다.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그림을 유리창에 그려놓았다. 빗방울은 아우성치는 또 다른 빗방울에 맞아 일그러지면서 새로운 그림으로 변했다.

 안팎의 온도 차이 때문에 뽀얀 김이 유리창에 끼기 시작했다. 고향이 안개 속으로 숨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 위에 손가락으로 고향의 이름을 새겨보았다. 온통 뽀얗게 낀 유리창에 선명한 글자가 새겨졌다. 그 글자 틈으로 점점 낯익은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충주역에 내리자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나는 먼저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년 동안 방치한 탓이었다. 내 키만큼 자라난 커다란 쑥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봉분까지 내려앉아 도무지 봉분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잔디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한쪽 그늘에 고개를  숙인 할미꽃이 아버지의 서글픈 소망을 기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미꽃은 꽃술을 하늘로 향하지도 못한 슬픔을 안고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채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를 맞고 있었다.

 나는 무덤가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쑥대밭이 된 초라한 아버지의 무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몰이 소년의 힘겨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사건을 저지른 뒤 도망치듯 상경하여 처절하게 버텨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칠어져 마치 폭포수 아래에 서 있는 듯했다. 장대비는 나를 온통 휘감아 때리며 더 서럽게 만들었다. 장대비를 맞는 것보다  마음이 서럽고 아파 더 울었다.

  그렇게 목 놓아 지치도록 실컷 울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영락없는 생쥐  꼴이었다.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흠뻑 젖어 살갗에 엉겨 붙었다.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고 감기에 걸린 듯 기침이 잦아졌다. 나는 참으로 볼품없는 초라한 꼴이 되어 산소를 내려왔다.

 어스름해진 저녁 무렵에야 민기를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았다. 비안개로 자욱하게 덥힌 민기네 초가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세찬 빗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온통 집 언저리를 헤매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 음산했다.

 외양간 옆의 소쿠리에 풀이 가득 담긴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몰이 시절 소에게 먹일 풀을 소쿠리에 가득 싣고 일어서려다가 개여울에 나동그라진 적이 있었다. 구부렸던 무릎을 펼 힘이 모자라 지게를 짊어진 채 땅바닥에 꼬꾸라진 것이다. 팔꿈치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소몰이가 너무나 싫어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소 먹일 풀이 있어야겠기에 고랑의 언덕에 지게를 받치고 물 먹은 풀을 주워 담았다. 그나마 무릎을 구부릴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물 먹은 지게를 짊어지자 중심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물줄기가 등을 타고 대책 없이 흘러내려 금방 바지를 적셨다. 나는 겨우 수로를 첨벙첨벙 지나 비스듬한 고랑을 통해 비로소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에게는 소꼴을 베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내가 살던 민기네는 변한 것이 별로 없는 옛집 그대로 보였다. 단지 세월의 흐름만큼 지붕의 이엉이 검게 썩어있었고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의 그을음이 덧붙여진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 소죽을 끓이는 민기의 옆모습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 아궁이에서 토해내는 이글거리는 불빛이 민기의 한쪽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민기야? 오랜만이다!”

  내 목소리를 듣고 민기가 고개를  돌렸다. 자욱하게 뿜어 나오는 땔감 연기 사이로 민기의 놀란 눈동자가 번뜩이며 내게 달려와 박혔다. 번뜩이는 민기의  눈이 아궁이 불빛보다 빛났다.

 “아니, 니가 여긴 웬일이여?”

 민기가 놀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천방지축 달아나던 송아지를 잡으려던 민기와 그를 가로막던 내가 한바탕 뒤엉켜 싸우고는 생사도 모르고  지나온 날들이었다. 그나마 나는 유정숙을 통해 민기의 근황을 전해 들었지만, 그는 내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으리라.  민기에게 나는 여전히 자기를 실컷 패고는 도망친 나쁜 놈으로 생각될 것이었다.

 “…니가, 보고 싶어서 왔다!”

 “그래, 잘 왔다. 그런데 니 꼴이 이게 뭐여. 그렇게 떠났으면 잘 됐어야 할 거 아녀?”

  민기가 보기에도 내 몰골이 못 봐줄 모양인 것 같았다. 몇 시간째 비를 맞았으니 내 행색은 참으로 궁색 맞아 보였을 것이다. 민기는 나의 초라한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는 듯했다. 민기는 3년 만에 불쑥 찾아 온 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구로 대해주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좌우지간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그렇게 비 맞지 말고.”

  나는 무릎까지 오는 문지방을 건너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턱이 높아서 방심하면 넘어지던 문지방이었다. 이 문지방 위에서 몇 번을  넘어졌던가! 고향집을 생각하면 문지방이 떠올랐고, 다시는 이 문지방을 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 불쌍해서 못 봐 주겠다!”

 민기는 자신이 입는 편한 옷을 한 벌 꺼내 내가 앉은 자리에 무심하게 던졌다. 아직도 우리 사이에 앙금이 남았다는 듯. 그러나 나는 그런 민기의 마음이 오히려 고마웠다.

 배가 몹시 고팠다. 그래도 밥보다 술이 더 마시고 싶었다.

 “민기야. 나 술 좀 사다 주라. 술 마시고 싶다.”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술은 무슨 술.”  

 투덜대면서도 민기는 술을 사러 집 밖으로 나갔다. 민기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손님처럼 방 안을 훑어보았다. 민기 할아버지와 민기와 셋이 함께 자고 먹고 놀던 추억이 축축하게 되새김질되었다.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와 민기와 있어 위로가 되던 시절이었고, 그들과 함께한 정든 공간이었다. 벽면마다 헌 신문지로 도배된 방은 내 손때가 묻은 공간이라 그런지 편안했다.

  다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없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치솟아 코끝을 찡하게 했고 눈동자를 적셨다. 또렷하던 방 안 곳곳이 뿌연 눈물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내 눈의 안개 속에 갇혀버렸다.

  민기가 술과 주전부리 안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가 술을 권하며 말했다.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사냐?”

 “서울.” 

 “그럼, 그날 말처럼 결국 서울로 간 것이었구먼!”

  민기가 그날 일을 회상하는 듯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동안 못다 한 미안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서울로 도망친 그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마치 업무보고라도 하듯 상세하게 민기에게 털어놓았다. 민기는 솔깃이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나의 서울 생활이 너무나 잘 풀려나간 것에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안에는 나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이 다소 섞여 있음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감기 기운이 심해지는지 으슬으슬 춥고 재채기를 멈출 수 없었다. 갑자기 인중이 간지러워 코피인가 싶어 닦고 보니 맑은 콧물이었다.

 “어디 상처 좀 보자.”

 내가 민기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민기는 아무렇지 않게 상처 부위를 보여주었다. 나는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날 일을 사과했다.

 “…민기야, 유 씨한테서 그간의 얘기는 다 들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미안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힘없이 말을 꺼냈다. 민기는 적잖이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니가 어떻게 유 씨를 만났는데?”

 “우연이었어, 정말 기막힌 우연! 유 씨 딸을 만났어. 나중엔 유 씨도 만나고.”

 “니가 유 씨 딸은 또 어떻게 알아?”

 “니들이 동전치기 할 때, 유 씨 소를 집까지 몰아다 준 적이 있었어. 그때 소전에 나타났던 여자가 유 씨 딸이었어.”

  민기는 송아지를 놓아준 사건만을 기억할 뿐 내가 유 씨 소를 몰아준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자신도 그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민기가 그날 있었던 일의 원인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는 유정숙을 만난 경위와 유 씨를 만난 일이며 그들의 근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랬구나! 그런데 유 씨는 어때? 잘 있어?”

 “많이 힘든가 봐. 그건 그렇고 민기야, 할아버지 안 계신데, 혼자서 외롭지 않니?”

  할아버지 얘기에 민기의 눈시울이 금방  촉촉해졌다. 아들 며느리를 연탄가스에 잃고 혼자 남은 민기를 데리고 낙향하여 손자를 돌보아왔던  할아버지였다. 민기에게는 할아버지가 어머니고,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민기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불쑥 생각나게 만든 것이 미안했다. 민기의 촉촉해진 눈동자는 혼자 사는 것이 힘겹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 좀 견딜 만해.”

  민기가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그냥, 여기서 계속 살 거여?”

 “그럼 뭐, 별 뾰족한 수가 있어야지.”

  나는 휘문인쇄소 제판실을 생각했다. 나의 간청과 은애의 후원을 등에 업으면 어쩌면 민기 하나쯤은 취직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나랑 같이 서울 갈래?”

 “…….” 

 민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데가 있는데, 잘 얘기하면 될 것 같아서…….”

  무언가 한참을 생각하던 민기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난, 그냥 여기 있을려. 할아버지 산소두 그렇구, 자신이 없어!”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나 또한 그날의 사건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또한  두려움과 함께 동반되는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라며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민기가 내 소지품을 챙겨 나왔다. 보자기의 먼지를 털고 매듭을 풀었다. 어머니의 사진과 아버지가 쓰던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내가 두었던 그대로 싸여있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보관해 온 민기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한쪽 귀퉁이에는 어떤 이물질에 오염되었는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련한 윤곽으로 사라져가던 어머니의 기억만은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품속에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내 첫돌에 함께 찍었다던 가족사진과 함께 지갑에 챙겨 넣었다.

  민기와 나는 취기가 오를수록 서로에 대한 동질감으로 돌아갔다. 또 둘 다 신세가 나락으로 추락한 듯해 너무나 처량해지기도 했다. 취기와 기침과 넋두리가 밤새도록 이어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밤이었다.

  그날 밤 몹시 앓았다. 민기 말에 의하면 헛소리까지 하고 밤새 신음하며 앓았다고 했다.  민기는 끙끙 앓는 나를 지켜보면서 병원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 몹시 고민했었다고 했다. 그는 한숨도 못 잔 듯했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물론 민기의 눈도 퀭해져 버렸다. 나는 해가 떠도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오전 내내 앓기만 하다가 저녁 무렵에야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그리고 민기가 끓여준 찬밥에 간장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온몸을 얻어맞은 것처럼 등짝은 욱신거렸고 고향을 찾은 마음속 깊은 곳은 더욱더 욱신거렸다.

  그러나 감기도 낫지 않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야간열차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회색 도시로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나에게 고향에서 느끼는 욱신거리는 마음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고향을 떠나는 마음은 내려올 때 마음과는 전혀 달랐다. 너무나 무거운 상경 길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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