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끝        섬

                                  EDGE ISLAND

 

소몰이 소년




  얼음 끝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바람이 쏜살같이 얼굴로 달려왔다. 바람은 한바탕 내 볼따구니를 할퀴며 어깨를 타고 등 뒤로 미끄러졌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바람은 흙먼지를 안고 뒹굴며 땅바닥을 핥아 유린했다. 오늘은 황소마저 게걸스럽게 울지 않았다. 놈이 내뿜는 콧김이 허공에 뒹굴었다. 콧김은 곧 뿌옇게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벙어리장갑을 꼈어도 고삐 잡은 손은 시리고 아렸다. 손끝은 이미 얼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 걸어가는 민기는 우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행인들은 코트 깃을 끌어올려 귀밑까지 덮고는 바삐 걸었다. 그들의 움츠러진 어깨와 총총걸음이 수년 만에 찾아온 추위를 실감케 했다. 충주 우시장으로 연결되는 길로 들어서니 소전(牛市場)으로 향하는 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어미와 생이별한 송아지의 애절한 울음소리와 놀부 심통 같은 황소의 울음소리가 제법 우시장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허리를 젖혀 등을 곧게 폈다.

  소전 가는 길목에 있는 국밥집에서 해장국 끓는 냄새가 스미어 나와 코끝에 닿았다. 반쯤 열린 미닫이문으로 주릅(우시장에서 소개를 붙여주고 구전을 받는 중개인)들과 사내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리어카 엿장수는 여느 때처럼 왼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양말과 나일론 점퍼를 떨이하는 낯익은 보따리상인도 우리를 알아보고는 눈웃음을 보냈다.

  우시장은 늘 시끌벅적하고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추운 날씨에도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이라 사람들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소들의 울음소리는 마치 전쟁나팔 소리를 방불케 했다. 우리는 비로소 소전 안으로 소를 몰았다. 소장수는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소를 넘겨받은 소장수는 고삐를 말뚝에 맸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손바닥을 마주쳐 먼지를 털었다. 무의식적으로 사방을 훑어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소들의 울음소리와 사내들이 한데 어울려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열네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기라도 하듯…….

 

 

   내가 열네 살이던 그해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렸다. 개학을 앞두고 사흘 동안 전국적으로 폭설이 쏟아졌다. 라디오에서는 수십 년만의 폭설로 일부 학교에서는 개학이 늦춰질 것이라는 보도를 냈다. 그날 아버지는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한 채 폭설을 뚫고 소전에서 돌아왔다. 그리고는 쇳소리가 나는 딸꾹질을 하며 절규하듯 이야기했다.

   “노수야, 애빈 백정 같은 쇠장수여. 니 눔은 그 가생이두 가지 말아야 혀어. 쇠장수두 올가미가 있어야 하는 벱이여. 니 눔은 애비처럼 쇠가죽 먹구 살아선 안 되어. 니 눔은 면서기래두 혀야 헌단 말여. 무슨 일이 있어두, 니 대루 가야 내 꼴이 안 나는 게여!”

  아버지는 숨소리를 짧게 끊어내며 힘겹게 토해냈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은 4년 전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부터였다. 어머니의 가출 이후부터 거의 매일 술로 식사를 대신했던 아버지는 점점 야위었고, 몰골은 병색이 완연하게 보일 정도로 초췌해졌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단지 찾지 않는 것이 좋으니 찾지 말라는 말만 강조했다.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에는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원망만이 가득 배어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잠든 사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일체의 소식을 남기지 않고 나 혼자만 남겨둔 채 영원히 떠나버렸다. 나에게는 어머니를 찾아갈 아무런 단서도 없었으므로 세상에 내던져진 고아가 된 셈이었다. 나는 슬픔이 북받치고 눈물이 앞을 가려 주위를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진 눈앞에 아버지는 웅크리고 누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넋 나간 채 하루를 보냈다.

  생전의 아버지 친구인 소장수 몇몇과 마을 사람들이 장례는 3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초라하게 마련된 빈소에 바위처럼 앉아 그저 흘러내리는 초의 눈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냄새는 오랫동안 코끝을 맴돌았다. 코끝이 매웠다.

  상여 나가는 날엔 잠시 그쳤던 눈이 또 내렸다. 메기꾼들의 종소리에 맞춰 상여가 일어서자 나는 받침대에 손톱자국을 만들고 눈 위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하늘 끝에서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눈송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입과 얼굴에 마구 내려앉아 눈물로 녹아버렸다. 녹아내린 눈물과 함께 어머니도 아버지도 녹아내렸다.

   그날 뒷산에는 없던 무덤이 하나 생겼다. 친구들의 발에 심장이 밟히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눌리고 눌려……. 무덤은 생전의 아버지처럼 작고 보잘것없이 초라했다. 봉분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저 눈으로 하얗게 덮여가는 아버지의 무덤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제기럴, 눈 한번 찢어지게 퍼붓는구먼.”

  안장을 끝내고 무덤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아버지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투덜댔다. 그러나 막걸리만 마실 뿐 그 누구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 한마디라도 덧붙인다면 곧 흐느낌으로 이어질 듯한 음산한 분위기였다. 참으로 찢어지게 침통하고 을씨년스러운 함박눈이었다. 그러나 함박눈은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하얀 순백이었다. 아버지 무덤도 순백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그 스산한 저녁부터 병이 나 사흘을 내리 앓았다. 그렇게 그해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담임선생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했고, 그해부터 아버지 친구인 소장수 정 씨를 따라 소몰이 소년이 되었다. 소전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도리가 없었다. 소전 일에 익숙해지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배워야 했다. 이웃 마을에 서는 장을 찾아다니며 몰이소를 부탁받아 그 품삯으로 생활했다.

  정 씨는 풋내기 소장수였던 아버지와 식당 노처녀였던 어머니가 어찌어찌하여 결혼까지  했는지 마치 옛날 영화를 보듯이 내 앞에서 풀어놓곤 했다. 아버지는 소를 사고파는 중개인 일을 막 시작한 참이었고 어머니는 우시장 입구의 국밥집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라 둘 다 궁색한 처지였다. 그러다 내가 생기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바로 살림을 차렸다는 게 정 씨의 설명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정 씨의 입에 가볍게 오르내리는 게 몹시 못마땅했지만 도리가 없어 묵묵히 듣기만 했다. 혹시라도 정 씨에게서 어머니의 행적에 대한 작은 소식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던 정 씨는 나의 소몰이생활이 채 1년이 되기도 전, 소전에서 자취를 감췄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큰 금전사고를 치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했다. 그래도 딴에는 정 씨를 의지했던지라 아버지를 잃었을 때만큼 허전했다. 하지만 소몰이생활을 익숙하게 만든 3년이라는 세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 씨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할아버지와 살며 소몰이를 하던 민기를 만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외로움은 한결 덜어졌다. 마침내 정 씨의 얼굴은 잔상으로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아련한 시간 속에 흘러가버렸다.

 

 

  찬바람이 불던 아침과는 달리 제법 따사로운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오후가 되었다. 잔치국수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나는 양지쪽 담장 위에 터를 잡았다. 한겨울의 해바라기는 추위와는 상관없이 나른한 피곤을 몰고 왔다. 팔짱을 끼자 긴 하품이 절로 올라왔다. 소몰이  소년 몇몇이 동전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담장 아래로 보였다. 어떤 때는 낮잠을 자고, 어떤 때는 시내로 가서 동시상영영화를 보고, 또 어떤 때는 동전치기를 하는 것 외에는 우시장이 끝날 무렵 몰이소를 부탁받기 전까지는 할 일도 없고 갈 곳은 더욱 없는 소몰이 소년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은 담 밑에 작은 구멍을 파고 동전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구멍에 돌을 던져 누가 더 가까이 던졌는지 선후를 가린 다음 동전을 때려 맞추기를 했다. 그들의 손에 오고가는 때 묻은 동전은 돌에 맞아 찌그러진 것이 대다수였다.

   “노수야, 너두 할려?”

   나는 대답 대신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비루먹은 송아지처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더벅머리에 부스럼이 말라붙어 있는 녀석에게 메스꺼움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녀석의 머리는 언젠가 발로 까서 먹고 버린 지저분한 밤송이를 닮았다. 낡은 담벼락, 마음대로 휘갈겨진 낙서들, 허물어진 돌담 사이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여럿이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술래가 된 아이가 그림자를 밟으려고 뒤따르고, 다른 아이들은  온갖 재주로 요리조리 구멍을 빠져 다니며 도망을 다녔다. 그러다가 그림자를 밟히고는 재미있다는 양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눔은 열아홉 장만 혀!”

  유독 큰 사내의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소리 나는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져 있었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녀석들은 동전 따먹기를 계속했다.

  마치 고향 생각이라도 하듯이 멍하니 서 있던 소가 질겁하여 말뚝 주위를 맴돌았다. 맴도는 걸음마다 뒷발굽에 찍히는 땅바닥 위로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그러나 여지없이 주릅에게 고삐가 잡혔다. 고삐를 잡혀 뒤뚱거리는 소의 양쪽 코에서 콧김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입에서 흐른 타액은 턱수염에 걸려 있었다. 매매 도중에는 으레 주릅들의 기 싸움이 시작되는 줄 뻔히 아는데도, 돌연 소의 엉덩이를 후려치며 외치는 소리가 익숙해지지 않았다. 술에 취해 쇳소리를 뱉어내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때는 무척이나 놀라서 며칠을 불안에 떨기도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소장수가 놀란 소를 달래려 등을 긁어주었다. 소는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다른 주릅이 소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리고 아가리 속으로 손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육질이 튼실한 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이빨이 돋아난 숫자를 헤아리는 모양이었다. 소의 머리는 다시 하늘로 치켜졌고 중심을 잃고 허둥대는 발밑에 뽀얀 먼지가 일었다.

  “에이, 이 녀석이 밋 살인데 그려, 열아홉 장은 말두 안 돼! 한 장만 더 쓰지 그려!”

  소의 턱이 더욱 곧추세워지자 소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뒤뚱거렸다. 그때 뒤에 있던 주릅이 소의 사타구니를 훑어버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누런 털이 한 움큼 뽑혀 나왔다.

  “살찐 걸 보니 믹이긴 실하게 믹였군 그려.”

  사내가 손바닥을 펴고 입김을 훅 불었다. 누런 털이 너풀너풀 허공으로 흩어져 곤두박질치며 겨울 햇살과 함께 은빛으로 내려앉았다. 햇살에 반사되는 털은 마치 떨어지는 꽃잎과도 같이 사뿐했다. 나는 양쪽 손을 슬그머니 사타구니로 밀어 넣었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 전해졌다. 짧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긴 호흡은 목젖을 타고 배 속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나는 소변을 본 다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멀리서 양손을 주머니 깊숙이 찌르고 소전으로 들어오는 빨간 코트의 소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들만이 수두룩한 소전에서 그것도 소녀처럼 보이는 여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색다른 광경이었다. 동전치기 하던 녀석들이 소녀를 힐끔 훑어보았다. 그러나 금세  녀석들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동전치기를 계속했다. 소녀는 타박타박 걸어서 사내들이 모여 있는 틈을 비집고 소장수 유 씨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유 씨에게 건네주었다. 유 씨는 소녀와 대화를 나누며 내가 있는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자 소녀는 내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 돌담 위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소녀를 훔쳐보던 것을 들킨 것 같아 놀랐지만, 순간적으로 소녀가 참 예쁘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언젠가 동시상영영화에서 보았던 영화 속 여주인공이 뇌리에 스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 씨의 손가락 방향을 확인한 소녀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푹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저어… 아버지가 우리 집까지 소 좀 몰아다 주래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발끝에 그림자를 들이댄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소녀였다. 나는 하마터면 담 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소녀를 훔쳐본 것을 진짜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까지 화끈 달아올랐다. 사타구니에서 미처 손을 빼지 못한 것이 더욱 창피했다.

  나는 급하게 담에서 뛰어 내렸지만, 소녀는 이미 등을 돌려 유 씨에게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맥없이 소녀의 발자국을 밟으며 뒤따랐다. 화끈하여 붉어진 얼굴로 유 씨에게 다가가자 유 씨가 고삐를 넘겨주며 말했다.

  “이놈을 집에까지 몰아다 주고 오게!”

  나는 유 씨에게서 몰이소를 건네받고 나서야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다시 말없이 앞서 가는 소녀의 뒤를 따라 터덜터덜 소를 몰았다. 소녀는 나의 부끄러운 마음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묵묵히 걸었다. 소녀가 갑자기 뒤돌아보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느라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렸던 고삐 잡은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사타구니의 민망함을 은근슬쩍 모면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말을 꺼내려고 하니 얼굴이 훅훅 달아올라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턱턱 막히는 숨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올라왔다.

  이상하리만치 크게 들리는 내 발자국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제발 소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니면 소녀가 돌아보기라도 해주길……. 그런데  불쑥, 정말 불쑥 소녀의 목소리가 나의 앞이마에 꽂혔다.

   “……빨리 좀 오세요.”

  갑작스러운 소녀의 말에 나는 몹시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을 뱉어 버렸다.  

  “여잔, 여기 잘 안 와유.”

  내 말에 소녀는 힐끗 나를 돌아봤다. 눈동자는 맑고 순진해 보였다. 나는 곧 후회했다.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소의 뒷발굽만을 애꿎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또 얼마를 걸었을까!

  “나도, 여기는 오기 싫은 곳이에요.”

  소녀의 두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버지가 돈을 가져 오래서 할 수 없이 온 거예요.”

  다행히 소녀가 먼저 말을 이었다.

  “돈은 왜유?”

  내가 촌스럽게 물었다.

  “소 살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유 씨 아저씨 말여유?”

 “우리 아버질 아세요?”

  “그럼유! 소장수 아저씨들은 전부 다 알지유!”

  말하고 보니 큰 자랑이라도 한 것 같아 겸연쩍은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앞서 가는 소녀를 바짝 따라가 곁눈질로 살짝 얼굴을 훔쳐보았다. 다시 봐도 역시, 시내 영화관에서 본  영화의 여주인공 마냥 동그랗고 예쁜 얼굴이었다.

  “아가씬, 학교에 안 다니나유?”

  나는 소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고등학교에 다닐 정도의 얼굴로 보였지만, ‘아가씨’ 말고 달리 부를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가씨’란 말에 소녀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소녀는 더 이상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경계심을 풀어버린 눈빛이 순하디순한 어린 송아지 눈빛처럼 선하게 보였다. 

  “재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대학은 안 가구유?”

  “안 간 게 아니구 못 갔어요.”

   “…….”

  “학교 다니세요?”

  소녀가 되물었다. 불안했던 내 마음도 어느새 편안해졌다.

   “아뉴, 고등학교 붙었는데 못 갔어유.”

  “왜요?”

  “그해 아부지가 돌아가셨거든유.”

  아버지의 쇳소리 같던 음색이 들려오는 듯했다.

  “오래된 모양이죠?”

  “하마, 4년 되었지유.”

  “어머닌요?”

  이번에는 어머니의 흐느낌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없어유.”

  “돌아가셨나요?”

  “아뇨, 어딘가 살아 있을 거래유.”

  “같이 안사나 보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오래전, 집을 나갔지유. 그 후 아버진 술 때문에 먼저 가시구…….”

  “그럼, 혹시 이름이 노수?”

  “야아. 맞어유. 어떻게 알지유?”

  “언젠가 아버지가 거기 이야기를 했어요.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셔서는…….”

  “…….”

   처음 본 소녀 앞에서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던 나는 할 말이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버지 장례 때 유 씨를 언뜻 본 것 같았다. 함박눈 한 번 찢어지게 퍼붓는다고 푸념하던 이가 유 씨 아니던가! 그땐 어리기도 했고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에 아버지의 장례를 도와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못했다.

  집나간 어머니와 술독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둔 내 사연은 소장수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소녀까지 알고 있다니 기분이 야릇해졌다. 그러면서도 소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지금은 어디 살아요?”

  “민기라는 애랑 있지유. 할아버지하구 사는 녀석인데, 1년 됐어유.”

  “다행이네요.”

  소녀는 고운 얼굴에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무심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하늘 높이 떠 있었고 날씨는 차고 바람은 매서웠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소몰이 생활이 즐거우세요?”

  나는 아뉴, 하고 대꾸하고는 실쭉 웃었다. 그리고는 눈으로 소녀의 답을 재촉했다.

  “나도 그래요, 우시장엔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예요.”

   “…….”

   “서울로 올라가 무언가 해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보내주질 않아요. 난 졸업해서 간호전문학교라도 가려고 했지만 계집애가 배워서 뭣에 쓰겠냐는 식이죠. 여자가 많이 배우면 버릇만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냥 식육점에 있으면서 고기나 팔고, 그러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하세요. 정말이지 답답하고 신경질이 나요!”

  소녀는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고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녀의 하소연도 하소연이지만, 봇물 터진 듯 쏟아내는 달변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서울에 있어요. 광고대행사에 다닌대요. 나보고 언제든지 서울 오면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쉽게 안  되네요. 여자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죠. 서울 가려고 여러 번 결심도 했는데, 마지막엔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소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시내 신작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소녀의 구둣발 소리와 소 발굽 소리가 리듬처럼 묘한 조화를 이뤘다. 아스팔트가 깔린 신작로는 타악기처럼 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소녀의 목소리 또한 끊임없이 터져 나와 신작로를 뒹굴었다.

  “오늘 아버지가 우시장으로 돈을 가져오라고 전화했을 때도 그 돈을 가지고 서울로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 눈치를 살폈는데 엄마가 아무 의심 없이 돈을 건네주는 거예요. 돼지고기 썰던 기름 낀 손으로요. 차마 못 떠나겠더라고요.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면서  빨리 갔다 오라고 하는 엄마 얼굴 보고 그만 또 포기해 버렸어요.”

   소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눅눅한 습기가 배어 있었다. 그 뒤로도 소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마 소가 길 위에 배설물을 흩뿌리지만 않았어도, 이야기는 한참 더 계속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쇠똥은 한 군데가 아니라 소가 발을 움직일 때마다 길 위에 쇠똥 그림을 남겼다. 금방 떨어진 쇠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쇠똥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찬바람과 마찰을 일으키며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 찐빵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처럼.

  “조심혀, 아스팔트에선 벌금을 낸다는 소문도 있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민기에게 들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쇠똥 때문에 벌금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황한 나는 금방 화롯불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소녀가 쳐다봤다. 나의 시선과 소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오늘, 세수도 안 한 모양이네요.”

  소녀는 실눈을 예쁘게 흘기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골목으로 동동동 사라져버렸다. 나는 쇠똥을 치울 일보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춘 소는 앞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고삐 잡은 손을 세게 틀어쥐었다. 발버둥 치던 녀석이 뒤뚱대며 균형을 잡았다. 그렇게 소와 씨름하며 한참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소녀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던 그림자처럼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비료를 담았던 비닐 포대와 작은 삽이 들려있었다. 소녀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그냥, 이거나 들구 있어요!”

  충주비료공장 상호가 새겨진 요소비료포대를 내 앞으로 획 던졌다.

  “근처 아는 집에서 빌렸어요. 어서 주둥이 벌려요!”

  주위를 지나는 행인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구겨진 비료포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쇠똥을 쓸어 담는 소녀를 쳐다보며 엉거주춤 비닐의 주둥이를 벌리고 서 있었다.

   “아, 아가씨… 미, 미안혀유…….”

   나는 소녀를 또 ‘아가씨’라고 불렀다.

   “난 아가씨가 아니구 유정숙, 유정숙이에요.”

  소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복숭아 솜털같이 보송보송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탐스러운 구슬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송글송글한 그 땀방울이 나의 눈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가슴까지 밀고 들어와 심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내 심장 속에 탐스러운 구슬들이 마구 뛰어다녔다.

 

 

  한낮의 욕망을 먹어치운 포만한 태양은 벌써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노을의 힘조차 미치지 못해 오색으로 물들지도 못한 구름은 손가락을 대면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듯 힘겹게 걸려있었다. 태양은 제 할 도리를 다한 듯 비스듬히 서쪽 산꼭대기에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나와 민기는 그렇게 스러지는 겨울 석양을 등지고 맥없이 걸었다. 우리의 그림자는 언덕에 이르러 더욱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는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줄곧 꽁무니를 따라붙었다. 

  오늘은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족히 서너 마리는 몰이소를 부탁받았다. 그러나 오늘은 우시장이 거의 끝날 때까지 몰이소를 얻지 못했다. 막바지에 이르러 가까스로 얻은 소는 코도 뚫지 않은 암송아지 한 마리뿐이었다. 게다가 비루 때문에 털까지 듬성듬성 뽑혀나간 메마른 놈이었다. 놈은 게으른 시골 농부가 마지못해 키우던 복 없는 송아지임이 틀림없었다.

  “한 사날 잘 믹여야 혀!”

   송아지를 부탁한 주인은 이미 술이 얼큰하게 취한 유정숙의 아버지 유 씨였다.

  “이 눔두, 빨리 코를 뚫어야 지랄을 않겠구나!”

  민기가 갑자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송아지의 난동을 제지하며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나는 고삐의 끝자락을 잡았지만 삼부자가 달려들어도 못 당한다는 옛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놈은 억셌다. 놈과의 힘겨루기는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졌다. 송아지는 제 힘을 믿고 공중으로 날뛰다가 고삐에 걸려 팽이처럼 빙그르 돌았다. 그렇게 몇 차례 요동치던 송아지는 결국 우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송아지의 코를 어째서 꼭 뚫어야 할까? 왜 멍에를 씌우고 고삐를 매야 할까?’

 참으로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다 큰 송아지의 코를 뚫지 않으면 다루기가 힘들다는 것은 소를 다루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람이 소를 제압하기 위하여 코뚜레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코뚜레는 송아지에게 평생의 멍에를 씌우는 일이 아닌가. 유정숙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내 마음을 괴롭혔듯 송아지 또한 몹시 나대며 멍에처럼 나를 괴롭혔다.

  “민기야!”

  “응?”

  “넌… 소몰이생활이 즐겁니?”

 유정숙이 나에게 물었듯이 나도 민기에게 물었다. 민기는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을 대신했다. 할아버지가 있고 그런대로 문제없이 사는 민기에 비하면 나는 턱없이 외로운 입장이었다. 그에게서 강한 긍정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몰이생활을 이토록 내켜하지 않는 줄은 몰랐다.

   “왜?”

  “그냥, 싫어! 할아버지 덕에 야간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짓을 계속 해야 할까?”

   “우리, 이 짓 안 하면 안 될까?”

   “뭐? 그럼, 뭐하게?”

  “서울로 가문…….”

   “서울?”

   “그려, 서울!”

   “…안 돼. 할아부지 두고 갈 순 없어. 하나 있는 아들 서울에서 잃구 이리로 온 거야. 연탄 때지 않는 시골만 살았어두 아들 며느리 한꺼번에 잃지 않았을 거라구, 술 취하면 늘 울면서 말했어.”

   민기의 단호한 어조에 속마음만 들킨 것 같아 할 말을 닫았다. 민기의 할아버지는 10년 전 민기만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외아들과 며느리를 연탄가스에 잃고 낙향하여 어린 민기를 혼자 키워온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것만큼은 한사코 고집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를 잊고 민기에게 속내를 드러낸 것이 무안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넘어 ‘마즈막재’ 언덕 끝에 이르렀다. 이곳을 지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왼쪽의 계명산과 오른쪽의 남산은 이미 어둠이 깔려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어지럽게 엉켜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와 겨울의 쓸쓸함, 여기저기 녹지 않은 지저분한 눈, 작은 계곡으로 흐르는 힘없는 물줄기를 따라 늘어선 얼음 조각들, 어느 것 하나 오늘 같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만한 것은 없었다.

  “노수야!”

  “왜!”

  “넌 서울 가구 싶니?”

  내 의견을 일언지하에 묵살한 것이 미안했던지 민기가 물었다.

  “…….”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아부지 돌아가실 때 소전에는 가생이두 가지 말라구 했다지.  소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구.”

  “쇳소리 나는 목소리였어…….”

  “넌 아니?”

  “뭘?”

  “올가미!”

  “아니…….”

  민기는 더 묻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말하던 올가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쇳소리가 나던 아버지의 절규가 귓전에 맴돌며 나를 괴롭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몰이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늘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굳이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계곡의 얼음 조각들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침묵은 한참 더 이어졌다. 유정숙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민기야, 이 고삐 좀 잡구 있으려?”

 “왜?”

 “나, 낯 좀 씻구 올게.”

  “물이 찰 텐데…….”

  “그래도 오늘은 낯 씻고 싶어!”

  “그래 알았어.”

  나는 민기에게 고삐를 건네준 다음,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팔을 휘두르며 계곡 아래로 뛰어내렸다. 발밑의 얼음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졌다. 조각난 얼음 틈으로 흐르는  물속에 내 얼굴이 있었다. 물속에 손을 담그니 얼굴은 여러 조각으로 나눠지며 일그러졌다. 손을 거두면 얼굴은 돌아오고 다시 손을 넣으면 일그러지고……. 그렇게 몇 번 손을 넣어 물장난을 쳐보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고 싶었다. 양손을 모아 물을 담아 얼굴에 뿌렸다. 머릿속 깊숙한 곳까지 냉기가 느껴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덜미 밑으로 들어간 얼음알갱이가 가슴팍을 타고 아랫배까지 녹아 흘렀다.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세수를 끝내고 언덕을 올라오며 말했다.

  “민기야, 너두 낯 씻을려?”

  “안 추워?”

  “응, 시원해!”

   민기가 잡고 있던 고삐를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나처럼 계곡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민기를 쳐다보며 내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송아지가 순간적으로 날뛰어 하마터면 고삐를 놓칠 뻔했다. 놈의 힘은 상상외로 억셌지만, 나는 그만한 일로 두려워할 풋내기는 아니었다. 놈의 반항이 심하면 심할수록 제압하는 여러 가지 방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놈과 겨루면서 순간순간 유정숙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참으로 못 견딜 일이었다. 아버지의 쇳소리 나는 절규, 유정숙의 습기 찬 목소리.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나도 모르게 고삐를 잡았던 손의 힘을 풀며 놈이 달아나길 바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놈이 뛰었다. 고삐 풀린 송아지는 뿔난 엉덩이를 요동치며 천방지축 날뛰더니 이내 달음박질쳐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야아! 물이 시원하다드니 얼음이잖어!”

  세수를 끝낸 민기가 계곡 아래에서 얼굴을 빠끔히 내밀며 나타났다. 내게는 시원했던 물이 민기에게는 얼음처럼 차가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민기는 순간 멀리 도망치는 송아지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야! 너 뭐 해? 송아지 달아나잖아!”

  그는 놀란 눈으로 달아나는 송아지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송아지를 뒤쫓을 생각도 않고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는 사태를 짐작했는지 재빨리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송아지를 잡으려 내쳐 뛰기 시작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리는 민기를 뒤쫓아 팔을 움켜쥐었다.

   “야! 너 미쳤어?”

  민기가 내 팔을 우악스럽게 뿌리쳤다.

  “소몰이가 싫다구 했잖여!”

 “지랄하지 마아!”

  민기가 울부짖으며 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냥, 도망가게 내버려 둬. 민기야아…….”

  순간 민기의 주먹이 내 얼굴에 날아와 꽂혔다.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래도 민기의 팔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졌다. 민기는 내가 붙잡은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고 나는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쓰러진 나를 향해 민기의 주먹이 날아왔고, 민기와 나는  뒤엉켜 한참을 뒹굴었다. 마구 날아오는 민기의 주먹에 이내 코피가 터져 나왔다. 찝찔한 코피가 입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냥, 도망가게 두란 말이야!”

  민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절규하고 소리 지르고 마구 흔들며 울었다. 마침내 떨어지지 않는 민기를 힘껏 걷어찼다. 민기는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는 더는 싸울 힘이 없는지 그대로 누워버렸다. 나 또한 힘을 잃고 털썩 주저앉았다. 알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라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었다. 대책 없이 솟구치는 눈물 밑으로 어머니의 잔영이, 유정숙의 땀방울이 스쳐지나갔다.

  얼마나 엉엉 울었을까. 기척조차 없는 민기가 궁금해진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였다. 일어나 민기를 돌아보니 그의 뒤통수 아래로 붉은 피가 흥건하고 흙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없었다. 민기가 죽은 건 아닌지 겁에 질린 나는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정신없이 뛰었다. 그림자는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마즈막재를 완전히 넘어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도 민기가 일어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미 산등성이를 덮어버린 검은 어둠만이 달음질치고 있는 나의 뒤를 쏜살같이 쫓아오며 엉겨 붙으려 안달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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