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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1. ‘없음’ 과 ‘있음’ 그사이 어디쯤
이야기는, 어느 푸른 여름날, 소년 연우가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준비를 하면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는 사실은 ‘없음’ 이다. 그 집엔 아버지란 존재가 없고, 화분이나 액자도 없다. 하지만 금세 또 깨닫게 되는 사실은 옷상자와 의자, 양초박스처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물건들은 또 보통이상으로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의 대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가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이란 단어에서 조금 빗겨나 있다. 화분이나 액자가 전통적인 가족상을 상징한다면 신민아 씨가 선택한 의자나 양초, 고양이는 어쩌면 혁신에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그녀의 의자들은 자신들의 원래 목적 말고도 다양한 기능을 담당해내고 있는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이며, 그녀의 연하 남자친구 재욱도,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양초나 의자 그사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사 때마다 물음표를 유발시키는 신민아씨의 옷상자는 사실 그녀의 직업과 관련된 것이다. 신민아씨는 옷 칼럼니스트다. 옷의 역사에서부터 옷에 얽힌 모든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낸다. 그녀의 남자친구 재욱은 문화평론가다. 두 사람 모두 글을 갖고 있다. 세대를 초월해 두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아마 그때문일 것이다.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는, 그야말로 어른이기 때문에.., 하지만 소년 연우에게는 아직 자신만의 ‘언어’가 없다. 연우의 세계에서 화분과 액자가 ‘없음’ 이었다면, 어른들의 세계에서 연우는 아직 ‘없음’ 이다. 중간에 끼인 세대로서 신민아 씨의 표현을 빌자면, 미완성의 기계로서, 완벽하게 있다고도 또 없다고도 얘기할 수 없는 소년이란 존재이기에...
책표지 뒷면의 어느 짧은 소개글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년이 그토록 ‘파란’ 단어인줄은 나 역시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으므로...
슬픔이라고 쓰고, 가정의 진정한 리얼리티라고 읽는다.
나는 진정한 슬픔이란 여름날의 눈꽃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희귀하고, 공감하기 어려우며, 쉽게 잊을 수 없는... 그래서 진정한 슬픔을 겪은 인간이야말로 더 완전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거라고... 슬픔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슬픔과 같은 말인 것 같다.
소년이란 단어처럼...
2. 우주와 연결되는 수많은 창(窓)
어렸을 때 나는 거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나를 비추는 큰 거울은 언제나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했고, 어쩌면 거울이 창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좁은 방이라도 거울과 함께 있으면 심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내 거울이 그 창을 열어 다른 우주로 나를 들여보내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었다.
연우가 새로운 집, 새로운 자신의 방에서 제일 처음으로 한 일도 바로 자신의 거울을 거는 일이었다. 사실, 거울이란 자신만의 우주를 비추는 비밀스런 창(窓)과 충분히 같은 말이다. 예전 거울이 있던 자리에 자신의 거울이 맞춘 듯 꼭 들어맞는 것을 보며 이전 방의 주인도 자신과 같은 우주를 가졌던 걸까, 호기심을 갖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야. 평상시에 우린 각기 이기적으로 살수밖에 없는데, 그건 비상시가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개인의 권리이고, 그리고 비상이라는 건, 지금과 같은 극진한 슬픔의 발생이라고. 엄마가 나의 슬픔을 비슷하게라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둘이 가족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가정식 백반에는 없는, 가정의 진정한 리얼리티라고. - 19p.
그리고 열린 창 아래, 정확히 바로 자신의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던 소녀, 채영
신민아 씨의 설명에 의하면 어제까지 그 방은 의젓하고 수영과 인사도 잘하고 또 교지편집부원이면서 반장이기도 한, 연우보다 한 학년 위인 어느 고등학생이 쓰던 방이었다. 그러니까 소녀의 시선은 엄밀히 말하면 과거를 향해있는 것이었다. 소녀의 시선을 통해, 소녀가 보고 싶어 하던 거울 속의 주인을 생각하던 연우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더욱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있는’ 존재가 되고픈 강렬한 욕망 또한 갖게 된다.
고독도 방학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하듯, 연우 자신에 관련된 일은 언제나 연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므로 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전학추첨관리교에 가는 일도 연우 몫이었다. 그곳에 보호자 없이 온 사람은 연우와 다른 아이 태수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부터 연우를 알아봐주고 호감으로 다가오는 아이, 연우는 태수를 통해 힙합이라는 새로운 창(窓)을 만나게 된다.
태수의 MP3를 통해 흘러나오는 멋진 신세계같은 음악의 주인공은 고등학생 래퍼 G. 그리핀이라고 한다. 그리핀? 전설의 새인가... 자신의 방 거울 맞은편 벽에서도 흐릿한 날개 낙서를 발견했던 연우, 채영의 엽서에도 그리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상하게 겹치는 이미지들. 어쨌거나 상처받기 쉬운 소년의 내면을 노래하는 고등학생 래퍼라니, 연우는 자신의 목소리로 마음껏 노래 부른다. 그가 좋아지려한다.
엄마의 남자친구들 중 가장 친절한 건 아니지만 가장 친밀한 존재인, 재욱 형
신민아 씨는 키 크는데 좋다며 재욱형과의 달리기를 추천한다. 글이 마음의 언어라면, 달리기는 몸의 언어랄까. 오래 잘 달리기 위해선 호흡의 완급조절이 필수인 달리기라는 운동에서 테크니션으로 조련돼가는 연우. 달리기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습득해간다.
함께 있어도 늘 먼 곳을 보는 듯 아득한 시선을 가진 채영
다분히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가진 채영을 이해하기 위해 그녀가 인용하는 카프카를 읽기 시작한다. 카프카부터 시작했다지만, 생전 관심조차 갖지 않던 다른 이의 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신민아씨의 칼럼에서, 재욱 형의 칼럼까지, 글을 통해 이전엔 보지 못했던 타인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3. 삼각형의 꼭대기, G. 그리핀
소년은 우주로 나 있는 수많은 창(窓)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간다.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서 있던 그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안녕. 미안
Goodbye Boy-
연우를 둘러싼 소년들의 욕망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존재가 G. 그리핀이다.
욕망이 스스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전제하에 욕망의 대리자가 존재한다면, 연우는 태수를 통해 G. 그리핀을 알게 되었고, G. 그리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되기를 욕망한다.
G. 그리핀
△↖
연우→태수
그리고 연우가 좋아하게 된 소녀 채영,
처음에 채영은 그저 이름 없는 창밖의 소녀였지만 채영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녀가 바라보는 사람이 이전 방의 주인인 민기훈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연우가 채영에게 호기심을 가지면서 연우는 채영의 시선을 통해 이전 거울의 주인에게까지 평범한 관심 이상을 갖게 되었고, 채영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녀에게서 민기훈 같은 존재, 그 같은 위치에 서고자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민기훈
△↖
연우 → 채영
그리고 흩어져있던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완성된 순간,
민기훈과 G. 그리핀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G. 그리핀 민기훈
△↖ = △↖
연우→ 태수 연우 → 채영
자신이 진정 원하던 인물이 채영의 민기훈인지, 태수의 G.그리핀인지, 아니면 날개 낙서의 주인 민기훈인지, 또 채영의 자신에 대한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지금까지 굳게 믿었던 모든 진실들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순간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소년은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새가 알을 깨고 나가려면 이전의 세계를 파괴하는 고통을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처럼
연우를 둘러싸고 있던 하나의 세계가 깨어지는 고통은 오로지 소년 혼자만의 몫이었다.
4. ‘단자’로 홀로서기
라이프니츠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실재의 최소단위로 ‘단자’라는 말을 썼다.
나는 미셀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 에서 ‘단자’로 돌아가고자 했던 중년의 브뤼노의 슬픈 회한을 기억한다. 우리는 때때로 관계의 옷이 너무 무거울 때 그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우주의 개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대개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가능한 일이 됐는지 잊어버린 것 같다. 그건 옷이 아니라 이미 나의 뼈와 살이 되었으므로...
살면서 우리는 몇 순간이나 ‘단자’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 안의 ‘소년’이 그렇게 아픈 것은 우리가 바로 그 몇 순간을 ‘소년’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 이제 막 시작하려는 소년 연우를 통해 우주의 고독한 개인으로서 홀로 서있어야 할 소년의 두려움을 부러움 가득한 두 눈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쪼개지고 부서지고 나눠지다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고유의 존재 단위로 우주에 홀로 서있을 소년의 외로움과 두려움, 슬픔이 오롯이 전해져온다.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렴,
5. 봄눈 지나 다시, 여름
우리가 ‘단자’로 홀로 서야 하는 건, 궁극적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롯이 혼자 설 수 있어야 둘도 행복해진다는 불변의 진리.
‘없음’ 에서 ‘채워짐’ 으로 ‘채워짐’에서 무수한 ‘분리’의 과정을 거쳐 ‘단자’ 로 홀로 선 뒤,
두 팔 벌려 채영을 맞이할 수 있게 된 연우가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봄눈이 지나면 다시, 여름. 이제 정말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