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육체언어인 몸과

세상을 이해하는 이중의 기호(기표+기의)로서의 책(소설책-보고서-자서전-법-테이프화 된 책)

 

 

여러분은 문자를 기록하고 해독할 줄 아시죠?

이 질문에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얼마전 한 신문 기사를 보니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0% 라고 당당히 밝히는 걸 보니 말이죠.

(그럼 워낭소리의 할아버지는 뭐지?)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가 이번엔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기호체계에 대해

여러분이 올바른 해독을 할 수 있는 지 묻고싶습니다.

여기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요?

 

기호에 대한 올바른 해독이 필요한 건,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과 실제의 요구가 다른 이중성을 갖고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보험회사의 보험금 신청 조정인이라는 직책의 드러난 기호는

'고객이 필요한 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서죠.

그러나 실제의 요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서랍니다.

만일 이 직책의 누군가가 겉으로 드러난 기호만을 직역해서

고객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면 그는 실직하게 되겟죠.

요즘같은 세상에선 아마 거액의 소송을 당할 지도 모르구요.

그래서 우린 이 세상을 지배하는 다중의 기호체계에 대해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합니다.

까딱 잘못 코드를 오역했다간

이 복잡한 기호체계의 세상에서 희생양이 되고 말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속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가 바로  '한나' 입니다.

'한나' 야 말로 경비원이라는 직책의 드러난 기호만을 직역했다가

뒤바뀐 세상, 뒤바뀐 가치관 속에서 결국 법의 희생양이 되는 인물이니까요,

게다가 그녀가 법정에서 형을 받는 장면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법보더 더 복잡한 다중의 기호를 가진 텍스트가 또 있을까요?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법을 어겼는가, 아닌가, 라는 교수의 말이

무척이나 상징적으로 들렸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발상이 시작된 지점이 바로 이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원작자가 독일대 법대 교수였다는 점에서 제 맘대로 막 추측해보기도 하고 말이죠...ㅋㅋ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면,

10대 소년 마이클은 귀가길 열병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30대 여인 한나의 도움을 받습니다.

병이 나은 뒤 감사인사를 하러 찾아갔다가

그녀에게 강한 이성의 끌림을 느끼고 둘은 연인이 됩니다.

학생인 마이클과 전차 검표원인 한나는 일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나의 침대에서 보냅니다.

실질적으로 한나는 마이클에게 섹스를 가르치고,

어느날부턴가는 사랑을 나누기 전 책을 읽어달라고 하죠.

그 첫번째가 오딧세이,

작가는 수업시간 중 교사의 입을 빌어

첫작품이 왜 오딧세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얘기합니다.

"흔히들 오딧세이가 귀향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실은 여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라고요.

영화의 맺음, 결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년 마이클과 여인 한나의

수십년을 뛰어넘도록 이어지는 생의 여정인거죠.

그리고 그 여정 사이에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바로 2차 대전입니다.

 

둘만의 꿈같은 자전거 여행 중

성가대 합창소리에 이끌리듯 들어간 성당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한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세대로 대표되는 '한나'와 그 전후 세대로 대표되는

 '마이클'의 길고 긴 인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클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데요,

그래서일까요, 후 세대가  전 세대를 바라보는 복잡미묘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완전히 포용할 수도 없으며 또 완전히 내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이랄까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묘한 힘의 균형을 갖게 되죠.

성에 원숙한 여인과 호기심에 다분히 충동적이었던 미숙한 소년 사이에

다소 불평등한 관계로 시작했던 둘 사이의 힘의 균형은

한나가 형을 받고 감옥에서 복역하면서 마이클에게 온전히 의지해

글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묘하게 균형을 갖게 됩니다.

한나가 처음에 사랑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듯, 마이클이 책을 읽어보내는 행위도

사랑이라기 보단 연민에서 비롯된 인간애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속에서 문자가 갖는 의미와 문자로 기록된 책(소설책-보고서-법-테이프화 된 책)을

통해 힘의 균형이 옮겨가는 걸 보는 것도 흥미로운데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소녀가 그 실상을 폭로하고 나치 전범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문자, 책을 통해서였고, 시간이 흐른 뒤 마이클이 찾아갔을 때

그녀의 호화로운 아파트(재산을 돌려받은 걸 수도 있지만) 또한 정말 아이러니 했습니다.

그녀가 한나와 다른 점은 문자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는 거 아닐까요...

 

오프라 윈프리가 “한 권의 책이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라고 극찬했으며, 

어느 평론가는 아예 대놓고 '이건 멜러가 아니다' 라고 선언까지 했던...ㅋㅋ

어떤 세계관을 갖고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달리 읽히는,

담론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열린 텍스트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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