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최소한 잊지는 말아야겠기에...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하루 중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대체 얼마나 되는 거지? 그리고 거기에 거의 하루종일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팔뚝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더랬다. 먹는 시간, 씻고 자는 시간, 더 보태보면, 뭐 재미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한 두 개 정도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보내는 일상의 대부분을 인터넷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시간을 인터넷과 보내는 구나, 하고 내 현실을 깨닫긴 했지만, 또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걸까? 싶었다. 나는 그동안 인터넷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사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원하는 정도에 따라 인터넷 서핑의 분량과 시간도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누구나 세상의 지식,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그 편리성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인터넷의 편리성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부류중의 하나였다. 인터넷으로 얕은 지식들을 검색하고,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를 제목 위주로 읽어댔으며, 집안에 필요한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며, 심지어 식품 종류도 인터넷으로 쇼핑하는 일이 많았다. 이렇듯 인터넷의 바다에 깊숙히 빠져 그 달디 단 편리성에 허우적대고 있었으니 나의 현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저 인터넷의 부정적인 영향이라면 전자파가 몸에 나쁘다니까, 컴퓨터 근처에 전자파 흡수에 용이하다는 선인장을 놓아두는 정도? 그 수준에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점점 책읽기가 힘들다거나, 뭔가에 집중하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노화의 탓이거니, 나도 이제 다 됐구나.. 그저 세월을 탓하며, 푸념을 늘어놓곤 했었다. 사실 오래도록 그렇게 오해하고 살았더라면 내 인생이 그냥저냥 편했을 거란 생각은 든다. 나는 어쩌자고 이 책을 읽어버린 걸까?

기억을 아웃소싱하는 시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저자는 선형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선형적 사고란 생각의 흐름이 일정한 체계성을 갖는 것을 말하는 데,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읽기와 같은 활동은 일정한 체계로 진행되는 책의 논리를 통해 선형적 사고가 가능하게 하므로 사고력 증진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얻는 지식의 경우, 쉽게 말하면 우리가 필요한 부분만 뚝뚝 끊어서 보게 되기 때문에 그 지식의 앞뒤좌우에 대해 충분히 살펴볼 수 없고 그 논리의 체계를 간과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 유용하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한 기준을, 예전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로 보았다면,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얻은 그 지식을 얼마나 오랫동안 잘 기억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검증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마치 암기가 시간낭비인 것처럼 적재적소에 훌륭한 정보를 쌓아두고 언제 어느 때라도 와서 보라고 너그러운 듯 웃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을지는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뇌가 지식을 저장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린다면, 다시 돌아가 찾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진정한 나의 지식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게 아닐까?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습득하는 지식들은 처음엔 단기 기억으로 임시 저장돼 있다가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선형적 사고를 거친 기억이 좀 더 장기 기억으로 우리의 뇌 속에 잘 저장된다고 한다.

그 장기기억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정체성이 바로, 그가 가진 장기기억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저자는, 인간이 경험해온 것들과 그 경험들 중 어떤 것들이 장기기억으로 남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고 했다. 나 역시 충분히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하는 일을 이렇게 홀대해선 안되는 게 아닐까? 매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 중, 더 좋은 경험을 더 오래 간직할수록 우리가 더 좋은 사람에 가까워진다는 얘기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걸 꿈꾸지 않나?

기억을 인터넷에 아웃소싱한 채, 쉽게 휘발되는 정보만을 쫓아 살아간다는 건,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비로소 내가 깨닫게 된 사실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할 소중한 기억들은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란 것이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기억하고 보존해야하는 소중한 것!

인터넷이 현대사회에 끼친 긍정적 영향을 모두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조금 속도를 줄여보는 것도 충분할거란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귀찮은 것, 불편한 것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노력,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 그 작은 부분에서부터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세상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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