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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 - 나의 자발적 비대면 집콕 생활
정재혁 지음 / 파람북 / 2020년 12월
평점 :
가끔 책표지에 반해 책을 고를 때가 있는데, 이 책은 반했다기보다 제목에 어울리는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가 반쯤 보이는 거실, 햇빛이 들어차있는 벽과 방바닥, 열린문너머로 보이는 바다. 자발적일 수밖에 없는 집콕 생활이지만 마음만은 언제라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충동을 정갈한 수채화로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오랫동안 영화전문지와 여행지 등에서 근무한 저자는 가족, 친구, 동네라는 가깝지만 멀었던 존재와 공간에서의 새로운 관계를 이야기한다.
갑작스러운 병원생활로 인해 5년 전부터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어머니의 병간호를 시작으로 비직업인이 된지 몇 년째다.
집 안에만 머물러달라는 말이 어떤 지장을 주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다는 저자와 똑같은 처지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강제적이 다분한 멈춤은 답답하고 우울하다. 그래서인지 무심히 지나쳐간 어떤 것에 조금은 긴 시간이나, 시선을 줄 때라는 것을 책장을 넘기면서 자각했다. 시선을 준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집 청소를 또 한 번의 기회, 찬스라고 생각하는 것도, ‘산 너머 남촌’같은 동네일지라도 오랜 세월 살아온 ‘우리 동네’만의 정취가 있고, <미스터 트롯>의 열정적인 시청을 함께 하며 자신의 취향은 필요 없이 엄마의 계절에 있고 싶은 마음뿐임을 느낀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싶다.
집안에서 흐르는 시간이란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시간이며, 아무리 집 앞이라고 해도 편의점 갈 때, 담배 피러 갈 때, 쓰레기 버리러 갈 때 옷차림에 어느 정도의 구색은 필요하다는 말에도 십 분 공감되고 동네친구와의 허물없는 만남은 요즘처럼 함부로 먼 곳을 가지 못하는 때에 아무나 누리는 못하는 특권 같기도 하다.
17년을 함께 살았던 애완견 곰돌이와의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멈춤의 시간이 있었기에 더 깊이 애틋한 마음으로 뒤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가끔 내가 집안에서의 시간에 적응한 건지 시간이 내게 적응한 건지 헷갈릴때가 있었다. 처음엔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는데 갈수록 하루가 어쩌면 그렇게 잘 지나가는지. 저자의 말대로 ‘집에서 생활할 땐 나름의 시간, 나름의 스피드, 나름의 질양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혼자라도 즐겁다는 취지였겠지만 읽는 내내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이 있고 아파트주민이 있고 동네 친구가 있다. 애완견이 있었고 지난 여행지의 추억과 취재하면서 관람한 영화와 책이 있었다.
자발적 혼자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