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가, 나의 악마
조예 스테이지 지음, 이수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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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흑백영화로 보았던 가스등을 생각했다.

남편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멀쩡한 아내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가는 영화를 보면서 서스펜스의 정의를 확실히 깨달았었다. 지금이야 그런류의 추리소설이 차고 넘치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신선했다. 이 소설도 곧 영화화가 된다는데 영상으로 먼저 보았다면 과연 누가 더 이상(?)한지 솔직히 헛갈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보고서야 남편인 알렉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듯이 중후반으로 넘어갈 때쯤 알아차렸을 것이다. 알렉스가 항상 말하듯 일곱 살 아이가 다 그렇지 하면서.

크론병이라는 만성질환을 가진 엄마 수제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홈스쿨링을 하는 딸 해나가 점점 버거워져 간다. 청각에 이상도 없는데 일곱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 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안다고 해도 케어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녀의 딸은 정말로 또래보다 지능이 뛰어났던 것이다. 엄마의 간섭을 참을 수 없고, 비범함을 넘고 넘어서 세 살의 나이에 언뜻 본 엄마의 무력한 얼굴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챌 만큼. 해나는 처음엔 엄마를 시험하느라 그녀를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만 할 뿐이었다. 수제트는 어느 엄마가 하듯이 달랬다가 얼렀다가 무시하다가 아빠인 알렉스에게 고충을 털어놓기 이르고 해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빠와의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생각에 엄마를 아예 없애버리기로 한다. 엄마가 먹는 캡슐약을 밀가루로 채워 넣고, 침대주위에 압정을 놓고, 급기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하다가 아빠에게 모든 게 들통 나고 만다. 역시 어느 아빠가 하듯이 퇴근 한 후 서너 시간만 좋은 아빠 노릇에 충실했던 알렉스는 아내의 볼에 생긴 화상자국에 자기가 데인 듯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아동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수긍한다. 그럴 수도 있다며 해나의 고집스럽고 괴기한 행동도 다 눈감아주더니 이런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이라니. 해나가 느끼는 배신감을 그 순간만큼은 나도 십분의 일은 공감했다.

해나가 엄마인 자신을 해치도록 극한 상황으로 일부로 몰고 가게 한 건 아닌지 수제트의 고의성까지 살짝 의심했더랬다. 그렇다고 해나의 악마적인 행동을 눈감아줄 용의는 없다. 아빠가 엄마처럼 집에 하루 종일 자신과 함께 있었더라면 아빠조차도 해나는 참을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 행복하지 않은 유년시절과 수차례의 수술로 복부에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수제트에게 딸인 해나는 사랑스러운 존재이면서도 가끔은 알렉스와 둘만 있었을 때의 자유로움을 아쉬워하게 만들었다. 해나는 엄마의 그 아쉬운 마음을 너무나 빨리 알아채고 수제트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하게끔 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아빠와 둘만 있을 수 있다고 판단 한 것이다. 해나가 타고난 소시오패스였다는 것이 작은 일을 크게 만든 면이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이의 눈치가 아무리 빠르다 하나 엄마의 한 순간 스쳐가는 표정에서 누가 그런 생각까지 한단 말인가. 수제트에게 가한 행위는 앞으로 해나가 갈 길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

정신병원이나 다름 아닌 곳에서 아빠 때문에 나쁜 소녀가 되어야 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착한 소녀가 되어야한다고 다짐하는 해나의 전략은 그러나 사실, 모든 평범한 아이들의 전략과 같다. 해나가 그 전략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진정성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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