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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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풍경은 일관적이다. 1980년대에 썼다는 저자의 문병일기는 지난날 나의 간병일기나 다름 아니다. 점점 나쁘게만 변해가는 상황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변화, 그리고 느닷없는 이별까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들 이별은 항상 느닷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처음 침대에 실수를 한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히며 저자가 쓴 한 줄 문장이 이 책의 전부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 딸의 마음과 어머니의 상황은 그 전부를 무색하게 만든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다가 어쩔 수 없이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시키게 된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며 글쓰기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까지 제기하게 된다. 그만큼 어머니의 치매증상은 상상이상으로 심각하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도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병실은 항상 역겨운 냄새로 가득하고 환자들은 남들이 보기엔 괴상한 행동들을 무한 반복할 따름이다. 물론 자신에겐 의미 있는 행동이지만 말이다. 가령 화장도구 세트를 가지런히 정리한 후 다시 집어 들고 끊임없이 산책을 하는 노인은 물건을 챙김으로써 이 세상에 매달려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저자는 어느 때는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자신을 소름끼치도록 무섭다고 느낄 때도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르는 말이다. 그런 때는 희망보다는 어느 정도의 체념이 훨씬 많은 위안을 준다. 시간이, 상황이 저절로 그런 쪽으로 밀어붙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더 유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억울해하지 않고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문병하면서 저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삶을 관조하게 된다. 언니의 죽음으로 태어나 그 자리를 대신해 살아왔고 이제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모습에서 미래의 자신을 본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지언정 죽음 앞에서는 별 다를 게 없다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썼다는 문장에서 삶의 애착과 동시에 어떤 해방감이 느껴지는 이유와 같다.

죽음이란 다른 모든 것을 추월해서 볼 때 목소리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저자의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 문병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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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 - 어쩌면 글을 쓰고 싶은 당신이 가장 궁금해할 현실작가 이야기
고혜원.민선이.지미준 외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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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운명은 행운일수도 있고 불행일수도 있다. 평생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헤매는 사람보다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분야에서 뛰어나야 한다는, 뛰어나고 싶다는 전제조건이 붙으면 불행일수도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들이 창작의 기쁨과 슬픔을 써 내려간 이 책은 행운과 불행 역시 인생과 같아서 번갈아 온다는 것을,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극작가,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스토리 작가 등 글을 쓴다는 행위는 같아도 방식과 목적은 다른 작가들의 시작과 방황은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완전 달라 보이기도 한다. 전공자는 전공자대로 비전공자는 비전공자대로 능력의 한계치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지만 단 한 번도 그와 관계된 직업을 가져본 적 없던 극작가는 글쓰기에 자신이 재능이 없음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글을 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몸이 아픈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다. 애써 외면해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영감이 되어 어떤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위 비전공자였던 소설가는 중학생 시절 겪은 사건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의 상대를 소설 속에 던져놓고 무한 복수하는 상상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목표가 확고해서 정석의 길을 걸어온 시나리오 작가의 고군분투는 글을 쓴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상화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배로 힘이 든다. 첫 번째 고비가 꿈을 가지면서부터였다는 스토리 작가는 좋아하는 CF기획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공황발작이 오자 자신을 돌보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좋은 걸 좋다 하고 싫은걸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라고 말한 공자의 말을 빌려 방전되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던 무모함을 경고한다.

누구는 영감이 벼락같이 오더라 하고 누구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어댄다. 수많은 장르의 수많은 공모전의 문을 다 두드려대다가 이제 그만 포기할 즈음 문이 열린다. 그것도 갑자기.

작가들의 시작과 방황은 천차만별이지만 기회를 잡은 시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갑자기 열리는 문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항상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창작가에 얼마나 유용한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작가들 덕분에 오늘도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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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공중부양 - 오늘도 수고해준 고마운 내 마음에게
정미령 지음 / 싱긋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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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던 일들이 사실은 정말이었구나 하고 수긍하며 체념할 일들이 하나 둘 생긴다. 하지만 체념은 또 포기와는 다르다. 어느 정도 희망은 접어두고라도 다른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라고 시작하는 질문을 꽤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은 마흔 초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질문은 천편일률적이지만 대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일관된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같은 나이대의 저자의 일상은 나와 매우 비슷해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일거리가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아라 하는 마음이 내심 자신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정욕구임을 시인하거나 회사가 망했다고 자신도 망한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것도 직장생활을 할 때 나의 주요 고민거리였다. 일의 유무에 따라 돈과 시간을 다 잡기가 용의하지 않고 갑자기 생긴 식탐에 당혹스러워 하고, 타인의 눈치 보기와 내 마음속 눈치 보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똑같다. 저자가 수많은 갈팡질팡 사이에서 일단 멈춤을 선택했듯이 나도 지금은 멈춤 상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는 있는데 수익이 아니 저자가 말한 월급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 역시 마음만은 열심히 공중부양 하는 상태인 것이다.

저자는 일단 멈춤에서 다시 시동을 걸어 지금 직업은 그림그리기

이왕 나이 드는 거, 이왕 생기는 주름 예쁘게 만들자는 긍정주의, 돈보다 시간을 선택하는 쪽이 힘이 덜 든다는 상쾌한 결론, 사회적 기준에 안 맞고 좀 늦더라도 나이에 쫄지 말자는 느긋함. 비혼에 비부동산 비정규직 프리랜서인 저자의 생활상은 마흔 즈음의 나이는 수긍과 체념사이에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잡아갈 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 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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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샘 J. 밀러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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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이라는 사전적 의미답게 그저 모든 게 빠르고 무섭게 변하는 것투성이다.

가난한 집안에 뚱뚱한 몸에 동성애자인 고등학생 맷에게 그 시기는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며칠사이에 나답게 살고 나인 것에 자부심을 가지라던 누나가 가출하고 아버지 없이 남매를 키우며 도축장에서 일하던 엄마는 직장을 잃는다. 심지어 정학도 당한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타리크가 누나와 마지막에 만난 유일한 용의자가 된 상황에서 초능력이라고 느끼는 힘이 발현되는 것도 시기적절하다. 빠르고 무섭게 주변상황이 바뀐다. 한편으로는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맷은 자신이 볼품없는 외모의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제일 큰 걸림돌이라고 여기며 스물 살도 안됐는데 벌써 인생의 실패자가 된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악조건 속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타나는 것은 여느 히어로 영화에서는 정석이다. 시기가 적절한 건지 조건이 적절한 건지 헷갈린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억누르고 참고 있을 수만은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칼로리에 신경 쓰며 그에 따른 예민한 청각과 뛰어난 감각을 초능력이라 믿으며 맷은 과감히 행동에 나선다. 누나가 왜 갑자기 가출을 하게 된 건지 알기위해 타리크에게 친근하게 굴며 함께 몰려다니는 무리에 끼어든다. 그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든 어떻게 대하든 이젠 상관없다. 자신에겐 초능력이 있고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었으며 누나의 복수(?)라는 목표가 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아파본 사람이라는 것을 맷은 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 저마다 취하는 행동이 다르다. 강한 척 허세를 부리거나 상대방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으로 치부를 숨긴다는 것을 맷이 알게 된 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이미 아파봤기 때문인 것이다.

얼굴도 못 본 아버지를 만나러 갔던 누나가 돌아오고, 엄마는 훨씬 더 좋은 일자리를 구했는데 맷은 타리크와의 짧고 비밀스러운 연애를 끝내고 섭식장애로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초능력도 사라져버렸다고 느낀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오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맷은 항상 자신을 찌질하고 못난 동성애자라고 비하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용감하고 당당함을 나는 첫 장부터 알았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맷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하고 숨기려고 급급하지 않았다. 세상에 떳떳하기가 이다지도 힘듦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맷의 거리낌없는 행보를 응원하게 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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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나려 흔들리는 당신에게 - 해낼 수 없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양소울 옮김 / 멀리깊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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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에 중년은 그야말로 한 가운데에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불확실하다보니 불안과 고민은 더 깊어져 흔들리다 못해 땅바닥에 몸, 아니 마음이 쓰러질 지경이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잘 왔는데 앞으로도 잘 살아갈지 심히 걱정스럽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건강도 챙겨야 하는 이중고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 저자도 심근경색으로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적이 있고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아버지를 간호하기도 했다.

독자들이 잡지매일이 발견에 보낸 편지에 저자가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 책에도 노후와 죽음을 생각하는 중년의 고민은 현실적이다.

충분한 사회생활에도 대인관계는 어렵고 어떻게 살아야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을까 하는 철학적 고뇌도 여전하지만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많이 가게 되면서 죽음이 가까워지는 기분은 생소한 것이다. 나부터도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시작하면서 부쩍 친지들의 부고를 많이 들었다. 이모의 임종소식은 차마 전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간호도 간호지만 병상에 있는 사람에게 솔직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 늘어난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고민거리다. 환자 본인에게 정확한 병세를 말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의견이 분분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저자는 전자 쪽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자기 식으로 극복할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는 호스피스 의사의 말을 빌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년을 향해 달려간다는 중년이라고 해서 병이라든가 죽음만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다. 불확실함이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당장 내일 죽는 건 아니니 오늘을 잘 사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이제껏 살던 대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치매인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는데 딱히 도움도 주지 않던 형님부부의 우리가 간호했으면 훨씬 잘 모셨을 것이라는 말에 참을 수 없어하고, 시어머니와의 불화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또 다른 고민은 더 이상 양보하고 배려만 할 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저자는 굳이 상처받았다고 화를 낼 필요도 없고 자신이나 시어머니를 바꾸려고 노려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한다. 판단은 보살핌을 받는 시어머니가 하는 것이고 타자를 바꾸기는 어려우니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변화를 꾀하라고. 연륜과 경험이라는 장점을 잘 활용하면 충분하다.

비록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도 일종의 이별이라 하니 최선의 이별이 되도록 오늘에 충실하자는 작가의 말에 십분 공감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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