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피어나려 흔들리는 당신에게 - 해낼 수 없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양소울 옮김 / 멀리깊이 / 2021년 6월
평점 :
백세시대에 중년은 그야말로 한 가운데에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불확실하다보니 불안과 고민은 더 깊어져 흔들리다 못해 땅바닥에 몸, 아니 마음이 쓰러질 지경이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잘 왔는데 앞으로도 잘 살아갈지 심히 걱정스럽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건강도 챙겨야 하는 이중고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 저자도 심근경색으로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적이 있고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아버지를 간호하기도 했다.
독자들이 잡지≪매일이 발견≫에 보낸 편지에 저자가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 책에도 노후와 죽음을 생각하는 중년의 고민은 현실적이다.
충분한 사회생활에도 대인관계는 어렵고 어떻게 살아야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을까 하는 철학적 고뇌도 여전하지만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많이 가게 되면서 죽음이 가까워지는 기분은 생소한 것이다. 나부터도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시작하면서 부쩍 친지들의 부고를 많이 들었다. 이모의 임종소식은 차마 전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간호도 간호지만 병상에 있는 사람에게 솔직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 늘어난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고민거리다. 환자 본인에게 정확한 병세를 말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의견이 분분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저자는 전자 쪽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자기 식으로 극복할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는 호스피스 의사의 말을 빌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년을 향해 달려간다는 중년이라고 해서 병이라든가 죽음만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다. 불확실함이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당장 내일 죽는 건 아니니 오늘을 잘 사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이제껏 살던 대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치매인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는데 딱히 도움도 주지 않던 형님부부의 “우리가 간호했으면 훨씬 잘 모셨을 것”이라는 말에 참을 수 없어하고, 시어머니와의 불화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또 다른 고민은 더 이상 양보하고 배려만 할 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저자는 굳이 상처받았다고 화를 낼 필요도 없고 자신이나 시어머니를 바꾸려고 노려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한다. 판단은 보살핌을 받는 시어머니가 하는 것이고 타자를 바꾸기는 어려우니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변화를 꾀하라고. 연륜과 경험이라는 장점을 잘 활용하면 충분하다.
비록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도 일종의 이별이라 하니 최선의 이별이 되도록 오늘에 충실하자는 작가의 말에 십분 공감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