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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샘 J. 밀러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평점 :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 이라는 사전적 의미답게 그저 모든 게 빠르고 무섭게 변하는 것투성이다.
가난한 집안에 뚱뚱한 몸에 동성애자인 고등학생 맷에게 그 시기는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며칠사이에 나답게 살고 나인 것에 자부심을 가지라던 누나가 가출하고 아버지 없이 남매를 키우며 도축장에서 일하던 엄마는 직장을 잃는다. 심지어 정학도 당한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타리크가 누나와 마지막에 만난 유일한 용의자가 된 상황에서 초능력이라고 느끼는 힘이 발현되는 것도 시기적절하다. 빠르고 무섭게 주변상황이 바뀐다. 한편으로는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맷은 자신이 볼품없는 외모의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제일 큰 걸림돌이라고 여기며 스물 살도 안됐는데 벌써 인생의 실패자가 된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악조건 속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타나는 것은 여느 히어로 영화에서는 정석이다. 시기가 적절한 건지 조건이 적절한 건지 헷갈린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억누르고 참고 있을 수만은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칼로리에 신경 쓰며 그에 따른 예민한 청각과 뛰어난 감각을 초능력이라 믿으며 맷은 과감히 행동에 나선다. 누나가 왜 갑자기 가출을 하게 된 건지 알기위해 타리크에게 친근하게 굴며 함께 몰려다니는 무리에 끼어든다. 그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든 어떻게 대하든 이젠 상관없다. 자신에겐 초능력이 있고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었으며 누나의 복수(?)라는 목표가 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아파본 사람이라는 것을 맷은 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 저마다 취하는 행동이 다르다. 강한 척 허세를 부리거나 상대방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으로 치부를 숨긴다는 것을 맷이 알게 된 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이미 아파봤기 때문인 것이다.
얼굴도 못 본 아버지를 만나러 갔던 누나가 돌아오고, 엄마는 훨씬 더 좋은 일자리를 구했는데 맷은 타리크와의 짧고 비밀스러운 연애를 끝내고 섭식장애로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초능력도 사라져버렸다고 느낀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오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맷은 항상 자신을 찌질하고 못난 동성애자라고 비하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용감하고 당당함을 나는 첫 장부터 알았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맷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하고 숨기려고 급급하지 않았다. 세상에 떳떳하기가 이다지도 힘듦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맷의 거리낌없는 행보를 응원하게 되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