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하는 인생의 문장들
최진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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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다음을 향해 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저자가 독후감으로 언급한 카테고리는 고전이다.

그런 면에서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한편으로는 그래서 변하려고 노력하는 자성과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열권의 책은 탁월하다. 어떤 책은 수긍하게 하고 어떤 책은 자문하게 한다.

저자는 공감과 질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정해진 답만 읊는 일을 경계하는데 학습된 생각은 다음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다. 허구의 총합이지만 현실이 바탕인 이야기의 소용과 유용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황당무계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돈키호테의 행보가 그렇고 자신만의 고유한 장미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어린왕자의 모험이 그렇다. 멈춰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끊임없는 여행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걸리버처럼.

페스트는 무려 1947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코로나 19의 발병과 맞물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굳이 전염병이라는 공통점이 아니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마다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하는지에 초점을 둔 보편적 이야기로 성실과 소명, 희생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려고 거짓말까지 하는 싱클레어의 진짜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나, 어부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노인의 사투 또한 진일보를 위한 행위이자 각성이다.

무엇보다 인간군상을 동물로 의인화한 동물농장은 혁명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동시에 학습된 규범의 패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꾸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자신이 이제껏 답습했던 지난날과 똑같은 모습은 지금의 사회정세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수해가 매해 반복되는 걸 보면 잘못된 일을 경계해서 다시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뜻으로 쓴 징비록이 왠지 빛이 바래지는 이유와 같다.

저자는 열 권의 고전을 통해 항상 자신을 갈고 닦아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토로한다.

사유하고 행동하고 실천하기를.

철학자의 깊이 있는 독서내공과 고전이 왜 고전인지를 인지하게 된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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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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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출몰하는 동물과 맞닥뜨리는 것은 그 자체로 사고다.

부딪히든 피해가든 상관없이. 혹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여운은 길다.

나의 경우에는 운전연습도중 한적한 시골길에서 이미 자동차에 치어 누워있는 뒷모습의 고라니를 본적이 있다. 돌아올 때는 어떤 몰골로 있을지 모를 고라니의 정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일행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아직도 있으면 직접 신고를 해야지 하면서.

마침 등산객 한명이 고라니를 길가로 막 옮기는 중이었다. 자기 몸과 비등한 고라니를 힘겹게 끌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고속도로의 중앙분리지대를 질주하는 개를 목격한 사람들의 심리묘사를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저자의 의도도 그러하다. 사건은 하나지만 대처나 관점은 제각각인 것이다.

진실과 허구를 뒤섞어 경험담이라며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하곤 하는 트럭운전사는 개가 버려질 때의 과정을 생각한다. 과거 부모와 연인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직업을 가진 그의 눈에는 모든 게 환상이다. 오랫동안 주여, 내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기도를 간직하며 사제로써의 본분과 평범한 인간으로써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늙은 사제는 죽음에 맞서서 혼자 가는 길이 구원임을 개에게서 본다. ‘결별식을 하러 가던 여인에게 정신없이 달리는 개는 헤어짐을 통고받고 슬픔에 미쳐 고통으로 몸부림칠지도 모를 애인을 떠올리게 한다.

해고를 당하고 친구들과도 틀어지자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동성애자는 자신도 개처럼 실체 없는 사회의 부조리에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병으로 죽은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엄마와 확인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서 먹기만 한다는 딸 은 여느 모녀가 그러하듯 갈등이 깊다. ‘별수 없다는 말로 개를 구해야 한다는 딸의 절박함을 외면함으로써 엄마는 체념한 것 같다. 과부가 됐음에도 보란 듯이 열심히 살던 일상을 포기하고 마음의 평온을 원한다. ‘또한 아빠와 달리 줄곧 무관심한 엄마에게 일말의 기대도 포기하고 자신을 개와 동일시하며 강한 자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책에는 마지막까지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내가 고라니의 처리보다 등산객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처럼 저자도 결과보다 그 찰나의 상황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연상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쓴듯하다.

지금 당장 위험에 빠진 것은 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 위태위태했다.

그 아슬함이 개를 통해 바깥으로 표출되면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아닐까.

벨기에에서 가장 권위있는 빅토르로셀상을 수상했다는 저자의 이력답게 심리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번역서라고 그런지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 때문에 반복해서 읽게도 하지만 그만큼 매사 오락가락하는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60여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소설인데 숨이 차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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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 나를 지키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
정아은 지음 / 마름모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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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개인의 결혼이나 가족이야기가 TV만 틀면 여과 없이 방송되고 있다.

어린부부의 미성숙함이 불러오는 총체적 어려움,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맞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위기의 부부들, 평범해 보이지 않는 내 아이의 속내가 못내 궁금한 부모들.

몇몇 방송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사랑은 때로는 너무 빨리 와서 힘들고 너무 빨리 식어서 허무하고 너무 맹목적이어서 간과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소설가인 저자가 영화와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실존하는 인물들 간의 사랑이야기를 매개로 좀 더 깊고 넓은 의미의 사랑을 정의하고자 하는 이유도 허구와 실재사이의 간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세대의 반영에 있다. 혹은 변하지 않는 일관성일수도 있겠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이고 아니면 아니지 라는 딱 부러짐 사이에서 망설임은 여전하다.

처음 느꼈던 불타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미련과 아쉬움으로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든다.

스칼렛은 상대가 이미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한 남자만 쫓는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기만 한 애슐리를 갈망하는 스칼렛의 행보를 레트만이 이해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같은 부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은 것처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어긋나기도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상대의 어느 한 부분이 나머지를 상쇄시킬 여지가 많으므로.

스칼렛의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열망을 사랑했던 레트는 그 열망이 사라지자 그녀의 곁을 떠났다. 저자는 멜라니의 죽음이 스칼렛으로 하여금 좀 더 이성적인 시각을 가지게 해 주었다고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금기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태지의 첫 번째 결혼이 실패한 이유가 금기가 너무 많아서였음을 언급한 대목에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의 고등학교 교사와 결혼한 마크롱 대통령은 금기를 정면으로 돌파한 경우다. 그는 상대방의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을 조언삼아 상호존중하는 관계에서 좋은 시너지를 얻었음을 고백한다.

두 사람이 사랑함에 있어서 별 장애물 없이 순탄한 생활을 이어가면 정말 좋겠지만 각기 다른 개별적인 사람들이 함께 지내는데 어떻게 아무 일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저자는 사랑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라 말한다. 사건이니 애초에 문제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금기앞에 정면으로 맞서서 서로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대화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음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고차원적인 사랑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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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커빌리티
김현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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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받을 만한 능력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설사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지속하기가 매우 힘들다.

호감이나 인기를 얻기는 어려운데 잃어버리는 경우는 한순간이다. 굳이 물리학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떨어지는데 가속도가 붙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한 번쯤은 다 겪어봤고 여러 번 보기도 많이 봤겠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계속 실수를 한다. 리더십 코치인 저자는 한 번의 실수에서 멈추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그렇게 특별한 방법이 아닌 기본적인 사회적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매력적이고 괜찮은 사람으로.

저자가 책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단 한가지다.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도의 사람이면 된다.”

적당히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애매모호하다거나 어중간하다는 개념과는 다르다.

이상과 동질감 사이에서 사람들은 헤매는 경향이 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의 동경은 질투가 될 확률이 크고, 나와 유사한 동류의식은 신비감이 없어 관심이 금방 사라진다.

저자는 분노는 질투를 내포하고 있다는 말로 잘난 사람을 그대로 두고 보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무명의 연예인들의 승승장구는 처음에는 응원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점점 보기 불편해진다. 손에 잡힐 듯한 가까운 거리의 별과 아득하게 보일 듯 말 듯한 별은 같은 별이라고 해도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저자의 말에 빗대어 본다면 팬들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 붙잡고 있기가 용의하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방탄소년단은 진정 라이커빌리티하다.

과유불급하지 않고 중용하기 위한 적당함의 기준이, 즉 호감 받을 좋은 사람이 되는 기준이 친절하고 관대해야 한다는 상식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쉽고도 어려운 일임을 잘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굳이 누구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톱의 자리에 있는 연예인의 장점이 바로 경청이다.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하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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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철학 - 실체 없는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사는 법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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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안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엄마의 지병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가져와 유년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

온갖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몰두했던, 잠이 오지 않는 밤 책을 읽는 습관은 그때부터 형성되었던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드디어 불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이번에는 실체를 알 수가 없는 게 문제다. 뭐가 불안한지 딱히 꼬집어 말 할 수 없어 더 불안하다.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철학자인 저자는 불안은 목적이 있다.’는 말로 불안을 정의한다.

그 목적은 인생의 고난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그 고난에서 도망치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고난에 뛰어들고 싶지 않은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라고 해석한다면 지금 나의 상황과 유사한 것 같기는 하다.

엄마의 간병으로 수 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로 다시 취업하기가 용의하지 않다.

처음엔 적극적으로 알아봤지만 점점 온갖 핑계거리를 대고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과, 뭔가를 하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기대와 맞바꾼 무력감이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의 실체인가 싶다.

무엇보다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이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에 불과하다는 말에도 뜨끔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끌어다가 불안을 눈덩이처럼 뭉치고 있는 듯하다. 과거처럼 확실한 것도 불안하고 미래처럼 불확실한 것도 불안하니 저자가 오늘, 지금에 전념하자고 말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원초적인 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죽음에 좌지우지 하지 말 것이며,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죽음을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만을 살며, 후대에 무언가를 남길 공헌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굳이 눈에 보이는 업적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일이라는 말은 누구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사실은 매우 필요한 일임을 상기시켜 준다.

공동체, 소속감, 연대가 불안을 조금이라도 제거해줄 수 있음을, 불안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봐야 답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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