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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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출몰하는 동물과 맞닥뜨리는 것은 그 자체로 사고다.

부딪히든 피해가든 상관없이. 혹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여운은 길다.

나의 경우에는 운전연습도중 한적한 시골길에서 이미 자동차에 치어 누워있는 뒷모습의 고라니를 본적이 있다. 돌아올 때는 어떤 몰골로 있을지 모를 고라니의 정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일행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아직도 있으면 직접 신고를 해야지 하면서.

마침 등산객 한명이 고라니를 길가로 막 옮기는 중이었다. 자기 몸과 비등한 고라니를 힘겹게 끌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고속도로의 중앙분리지대를 질주하는 개를 목격한 사람들의 심리묘사를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저자의 의도도 그러하다. 사건은 하나지만 대처나 관점은 제각각인 것이다.

진실과 허구를 뒤섞어 경험담이라며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하곤 하는 트럭운전사는 개가 버려질 때의 과정을 생각한다. 과거 부모와 연인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직업을 가진 그의 눈에는 모든 게 환상이다. 오랫동안 주여, 내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기도를 간직하며 사제로써의 본분과 평범한 인간으로써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늙은 사제는 죽음에 맞서서 혼자 가는 길이 구원임을 개에게서 본다. ‘결별식을 하러 가던 여인에게 정신없이 달리는 개는 헤어짐을 통고받고 슬픔에 미쳐 고통으로 몸부림칠지도 모를 애인을 떠올리게 한다.

해고를 당하고 친구들과도 틀어지자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동성애자는 자신도 개처럼 실체 없는 사회의 부조리에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병으로 죽은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엄마와 확인할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서 먹기만 한다는 딸 은 여느 모녀가 그러하듯 갈등이 깊다. ‘별수 없다는 말로 개를 구해야 한다는 딸의 절박함을 외면함으로써 엄마는 체념한 것 같다. 과부가 됐음에도 보란 듯이 열심히 살던 일상을 포기하고 마음의 평온을 원한다. ‘또한 아빠와 달리 줄곧 무관심한 엄마에게 일말의 기대도 포기하고 자신을 개와 동일시하며 강한 자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책에는 마지막까지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내가 고라니의 처리보다 등산객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처럼 저자도 결과보다 그 찰나의 상황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연상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쓴듯하다.

지금 당장 위험에 빠진 것은 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 위태위태했다.

그 아슬함이 개를 통해 바깥으로 표출되면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아닐까.

벨기에에서 가장 권위있는 빅토르로셀상을 수상했다는 저자의 이력답게 심리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번역서라고 그런지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 때문에 반복해서 읽게도 하지만 그만큼 매사 오락가락하는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60여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소설인데 숨이 차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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