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오래 따뜻하지 않았다
차현숙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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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에 쓰인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의 제목이 솔직히 반가웠다.

작가의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다니. 그만큼 인상 깊게 읽었다는 반증이다. 2년 전 정신의학과가 있는 층수를 누르면 엘리베이터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는 어느 주부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14년 전에 나온 그 소설은 온통 우울증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구나 싶다.

여전히 사람들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장애를 금기시한다. 당장 나조차도 가족이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운전할 때마다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뛴다는 증상뿐인데 갑자기 받아든 병명 앞에서 서로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었다.

허구로만 생각하던 내용이 사실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이 에세이집을 읽고 알았다. 유명한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것도. 그때는 소설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우울과 무기력함에 잠식되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저자에게는 적기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그토록 바라는 열정역시 언제 발현되는지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혹자는 우울증이 유전이라는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저자의 유년시절을 들여다보면 가족들이 처한 환경이 전염의 성격을 뛴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료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 점점 더 커지고 우울이라는 형태로 가족 내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재혼한 엄마를 따라온 언니들과의 불화, 만나적도 없는 큰언니와 잘 살줄로만 알았던 조카들의 사고 같은 죽음은 저자에게 불안의 씨앗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흘러간 자신의 과거에 대해 관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아침을 맞이하고 현재를 살 수 있다. 또 그래야만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도 자리 잡지 못한다.”

저자는 우울증의 기저에 원망과 억울함을 떨쳐 내버리지 못한 불행했던 지난시절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한때 글쓰기가 인생의 구원이었지만 또다시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꽤 오랫동안 침잠해 있다가 가족의 비밀을 털어놓듯 글을 쓴 이유는 그래서 납득이 간다.

과거를 털어버리는 일이 우울을 털어 내버리는 일이고, 다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누구나 조금의 우울과 매일의 불안에 시달린다. 그런 시간을 길게 끌고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살면서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좋은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런 시간은 금방 지나 갈 것이다.

열정을 다해 쓴 글이 분명한 저자의 다음소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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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양이경 지음 / 포춘쿠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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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다운 시를 기대했다.

유년시절 여름방학만큼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날들이 또 있을까.

되돌아볼 여지가 많은 시들이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시집을 열었지만 낯선 시인의 이름만큼 낯선 시들로 가득해서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으레 라고 하면 조금은 뜬구름 같은 단어의 나열을 자의적으로 해석해가며 읽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여타의 시들과 다른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시들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제목과 내용이 상반되어서 시 한편을 다 읽을 때쯤에는 추리소설에서나 봄 직한 반전이 느껴진다. 시인의 개인사와 현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루 잘 내포되어있어 별 다른 정보가 없는 시인의 이력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글이 곧 자신임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누구나 여름방학을 맞이해 물놀이를 갔던 추억 하나쯤은 있다.

는 처음으로 놀러간 바닷가에서 밀려온 파도에 한순간 정신을 잃는다.

너까지 잃어버리는 줄 알았잖아.” 눈앞에 나타난 일그러진 표정의 엄마는 를 끌어안고 울먹인다. “, 아빠를 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말이 없고 손등으로 아이스크림은 흘러내리고, 여름이 지나간다.

누구나 물놀이가 즐거운 추억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튜브를 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살에 밀려 둥둥 떠내려갔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해수욕장에서 미아가 될 뻔한 적도 있다. 팔목에 천막번호가 적혀있었기에 망정이지.

가 그 찰나의 순간 이미 잃어버린 아빠를 보고, 엄마는 또 가족을 잃어버릴까 가슴 철렁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진 이유다.

시집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에 존재하는 상황을 애매하면서도 한편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앞뒤로 배치해 꿈인지 생시인지, 상상인지 경험인지 경계가 모호한 시들이 다수다.

산문과 달라야 한다는 운문의 정의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제목답지 않게 서늘한 시집 한권을 읽으니 본격적인 겨울이다.

사계절에 자유로운 시의 매력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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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 오브 매직 3 : 펜들윅의 마녀들 핀치 오브 매직 3
미셀 해리슨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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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국 데번에 있는 오래된 집에 밀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보기도 하면서 비밀의 방이 책을 쓰는데 좋은 소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장소며 그야말로 상상속 마법의 세계를 열어주는 곳으로 적절하다.

특히 새집의 옷장 안 밀실은 어느 나라 어느 때에 상관없이 흥미를 유발하며 두려움을 넘어서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오랫동안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까마귀바위섬을 떠나 펜들윅이라는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플리스, 베티, 찰리가 한층 더 성장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오게 된 자매들은 왠지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새집과 마을의 필윙스와 라이트윙 자매에게도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낀다.

불안한 것들은 못 들어오도록 막을 때 쓰는 방법이야. 사람들은 무언가를 지키는데 소금을 썼어. 나쁜 것은 소금을 못 넘거든

검은 새 오두막을 둘러싼 소금을 본 할머니의 한 마디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서막을 예고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소금의 효용은 새삼스럽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돋보이는 언니를 내심 부러워한 베티가 제일 먼저 그런 수상쩍고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은 왕성한 호기심과 모험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마녀라는 의심을 받고 사라져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베티의 의구심을 키우고 방안의 옷장 속 밀실에서 몇 년 전 그 집에 살았던 아이비 벨의 초상화와 일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가는 와중에 이미 마을사람들과 플리스는 마녀자매의 주술에 걸리고 만다. 베티와 찰리, 그리고 마녀에 의해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잡혀있던 아이비의 필사의 탈출이 시작된다.

자매들에게 타인의 눈에는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서로는 볼 수 있는 마술 같은 힘을 가진 마트료시카 인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한 사악한 마녀들의 온갖 술수에도 굴하지 않고 함정을 피해 달아나기에 때로 용기와 지혜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마녀들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주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에 자매들이 한 가지 마법만으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역시 언니 플리스와 가족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마음이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단지 마법 한 줌 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간 용기 한 줌만으로 마을을 구한 자매들의 활약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생생함과 재미를 안겨준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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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새벽 - 나를 깨우는 하루 한 문장 50일 고전 읽기
우승희 지음 / 청림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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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쓰인 말들이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용함은 사람의 선천적 미약함을 자각하게 한다.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도, 평생 공부라는 말도 모두 같은 의미이며, 불안과 초조로 점철된 방황하는 마음을 다잡아주기에도 고전은 적절하다.

베이징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저자가 결혼과 육아가 이어지면서 사회진출에 대한 조급함과 미련이 쌓여갈 때, 자신만의 공부로 택한 방식이 새벽의 고전 읽기와 글쓰기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수긍이 되고도 남는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누누이 읽고 들어온 말이지만 비록 외적이나마 어른이라고 불리는 이때 다시금 접하는 글들은 새롭게 느껴지고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불러온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고민과 불안의 주체는 별 다를게 없다.

그 주체가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서 오는 피로감인 것은 자명하다.

문명사회에서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끊임없는 마음수양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일에서든 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방이나 타인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실 쓸데없는 일이다.

나 자신만이 절대적인 내 편이고 타인인 그들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신경 쓰기 바쁘기 때문이다. 나와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도 이고 나의 마음과 몸을 제대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도 라는 말은 책의 핵심이다.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무엇이 되었던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저자는 한편으로 안자의 말을 빌려 나만의 지속가능한 즐거움을 만들어야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즐거움의 바탕에 행동하는 자의 성취와 목표하는 것에 닿을 수 있는 성공의 발판이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새벽 시간의 짧은 공부가 처음에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흘러 습관이 되자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멈춤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의 고전공부는 진정한 어른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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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사피엔스 - 와인을 이해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
김준근 지음 / 바림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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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월급날만 되면 친구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

와인 맛을 알고 좋아해서 마셨다기보다 이제 우리도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허세를 부리기에 적당한 매개체였던 것 같다. 어떤 맛을 느껴야 알고 마신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콤하면서도 끝맛은 조금 씁쓰레한 입맛은 여전하다.

소주나 맥주 등 다른 종류의 술은 어느 자리 어느 때나 상관없는데 와인은 시간적, 공간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특별한 날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처럼 일상다반사가 되고 보니 더욱 와인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책을 선정했다.

프랑스 국가공인 소믈리에 자격증 보유자인 저자는 맛보다 와인 자체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태도를 역설한다.

프랑스에 근간을 둔 와인은 우리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풍긴다.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재미도 매력도 없는 그저 그런 와인 인생을 살게 될 뿐이다.”

편의점에서 와인을 구매하는 시대다. 와인을 한층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대중적이고 가격도 무난하고 종류도 많아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는 자유는 덤이다. 섣불리 와인병에 손이 가지 않았던 나도 편의점은 물론이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와인코너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으니 머뭇거림이 사라진다.

처음부터 완벽한 와인을 마시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저렴한 와인부터 무작정 마셔보면서 눈과 코를 자꾸 닿아보기를 권하는 저자의 의중은 와인도 경험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포도가 주 원료니 그저 달콤한 레드와인만 진짜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깨고자 하는 것이다.

맛과 향과 눈으로 마시므로 행위가 아닌 방법의 차이로 여타의 술과 가름하는 저자의 탁월한 와인의 정의가 흥미로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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