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든은 화면에서 흘러나온 빛을 은은하게 머금은 아름의 옆얼굴을 봤다. 참 사랑스러운 생물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진 탓에, 그간 아름과 내내 붙어 일을 하는 동안 아름을 향해 모나 있었던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대로. 나는 왜 은연중에 아름이 좋은 가족과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름을 보면 항상 어느 부분이 구겨진 자신과 달리 말끔하게 펴진 사람인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심술궂게 굴 때가있었다. 아름도 그걸 알고 있을까. 내 안에 저런 구덩이가 있어서, 나도 구덩이인 척 자꾸 너를 헛디디게 한다는 걸 알까.
나는 그런 내가 싫은데, 아름은 그런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슬프고 달콤했다. 해든 자신이 가진 쓴맛이 아름이 가진 단맛에 중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잘봤어.
어땠어?
춥고, 위태롭고, 좀 슬펐어.
왜? 폐허라고 다 슬픈가?
글쎄. 내가 아직 초보라 그런지도 모르지. 그냥 해든이 그걸 찍으려고 가까이 서 있는 모습 있잖아. 그런 게 생각이 나네.
넌 참.
......
좋은 사람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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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태양이 떴다!"
왕먀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거대한 태양 세 개가 보이지 않는 구심점을 따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선풍기가 대지를향해 죽음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하늘 대부분을 차지한 세 개의 태양이 서쪽으로 움직이더니 금세 지평선 아래로 반쯤 가라앉았다. ‘선풍기‘는 여전히 회전하면서 눈부신 날개로 가끔 지평선을 그으며 멸망한 세계에 짧은 일출과 일몰을 가져왔다. 해가 지자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가 검붉은 빛을 발산했고 잠깐 동안 나타난 일출이 다시 강한 직사광선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세 개의 태양이 완전히 지자 대지에 솟아오르는 증기가 만든 짙은 구름이 빛을 쏟아냈고 끊임없이 타는 하늘은 지옥 같은 참혹한 아름다움을 내뿜었다. 명멸하던 노을이 마지막으로 사라지고 구름 속에 지옥 같은 불기둥의 핏빛만 남자, 글씨 몇 줄이 나타났다.
-제183호 문명은 세 개의 태양이 뜬 가운데 멸망했다. 이 문명은 중세 단계로 진화한다.
긴 시간이 흐른 뒤 생명과 문명은 다시 살아나 삼체 세계의 운명은 알 수 없는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문명에서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기본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해 삼체 문명은 첫 번째로 도약해 게임은 제2단계로 들어간다.

-2단계 삼체로 로그인하십시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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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인생에서 중대한 이변을 경험한 적 있습니까? 교수님의 인생을 단숨에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지는 일 말입니다."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삶은 일종의 우연입니다. 세상에 변화무쌍한 요소가 이렇게 많은데 교수님의 인생에는 이변이 없었다니요."
왕먀오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이 모두 우연인 것이지요."
"하지만......여러 세대가 모두 이렇게 평탄하게 살아왔습니다."
"모두 우연입니다."
왕먀오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겠군요. 장군님의 말씀은...."
"그렇습니다. 인류 전체의 역사 역시 우연입니다. 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중대한 이변이 없었으니 운이 아주 좋았지요. 하지만 행운도 결국엔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아니, 끝났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하세요. 지금 제구 교수님께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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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네 왕국의 이 같은 비극은 인간이 욕망과 야망으로 타락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결과로 도덕성, 정의,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스 비극의 주요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은 흉터이며, 고통과 고난과 같은 경험에서 얻어지는 지혜는 어떤 종교적 믿음보다 더 가치가 있거나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통찰의 기원은 고통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아이킬로스의 《아가멤논》에서 코러스는 인간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합창을 이렇게 노래한다.

‘인간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제우스, 그분께서 "지혜는 고난에서 나온다"는 확고한 법칙을 세우셨으니, 잠이 들 때 고통의 기억이 마음에 흘러내리듯이,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혜는 생기는 법‘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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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고 고작 열여섯 달 만에 네르바가 고열로 사망했을 때, 국가 위기도 발생하지 않았고 내전으로 돌입하는 일도 없었다. 새로운 황제는 콜로니아에서 자신의 황제 옹립 소식을 들었고, 이제 로마 권력의 중추가 된 야전 사령관은 서둘러 수도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게르마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그는 제국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라인강 방어 시설은 강력했다. 군단들은 전투 경험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국고는 가득 차 있었다. 통화 가치는 굳건한 강세였다. 속주들은 번영하고 있었다. 로마 세계는 평화로웠다.
트라야누스는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런 제국을 물려받은 신임 황제는 사실 도미티아누스에게 엄청난 빚을 진 것이었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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