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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대화를 함으로써 관계를 맺는 것. 누구나 자신과 관계가 있는 대상은 좀 더 이해하려 하게 되고 한 걸음 나아가 애정을 갖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그 애정이 발전되면서 다른 사람 압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16
도서관에서 책이 아닌 사람을 빌려 읽는다?
영국의 어느 도서관에서 사람을 빌려 읽는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행사가 열렸다. 도서관에서 책이 아닌 사람을 빌려 읽다니 무슨 말일까.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도서관에서 사람을 빌려 대화와 소통을 통해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를 말한다. 김수정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견을 줄이려면, 내 세상을 넓히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인정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인식을 넓혀간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이게 교육의 본질 아닐까요?" p82
지금 조카들의 나이가 일곱 살, 아홉 살인데 이성끼리 올리는 결혼식에 데려 갔을 때 아이들이 결혼식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섹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굳이 동성애자들의 결혼식에서는 성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키아라는 그런 어른들의 행동이야 말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선입관과 편견을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아, 이 결혼식은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 그때부터 아이들 눈에 게이, 레즈비언 커플은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P95
아이들은 동성애자로서 사는 게 어떤지,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걸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생활은 어떻게 했는지를 지지하게 물어왔어요. 저도 진지하게 대답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 아이가 다른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이런 말을 건네더군요. '거봐,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 게이로서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잖아.'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 함께 찾아온 아이들을 보고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어요. 어린 친구들이지만 이런 친구들과 함께라면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인간으로서 참 행복할 것 같다는 부러움도 밀려왔어요. P102
세레나는 아홉 살 때 큰 병을 앓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으로 죽음을 맞닥뜨렸다. 그때 걱정하고 발을 동동 굴러봤자 소용없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럴 시간에 뭔가 도전하고 즐겁게 사는 게 좋다는 걸,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튈 수 있다는 걸 이미 그 나이에 알아버렸다. 그래서 세레나는 마음속에 뭔가 떠오르면 즉각 실천해버리는 화끈한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도, 숱한 스포츠에 도전한 것도 그녀의 철학이 바탕이 되었다. P139
아빠를 닮아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동생들과 달리 하나는 원래부터 고기가 별로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과연 저렇게 많은 고기가 필요한 것일까.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천성적으로 좋아하지 않아 손댄 기억이 없다. 닭이나 계란 같은 음식은 그래도 조금씩은 먹었는데, 열 살 때부터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무슨 굳은 결심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먹고 싶지 않아서, 엄마처럼 베지테리안 식단을 좀 더 즐기며 자랐다. 그리고 열여덟 살이 되는 해, 시냇물이 모여 바다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비간이 되었다.
"굳이 비간이 된 이유를 찾자면 이런 식생활이 자신에게 가장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 마음에 들어하는 요리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살찌우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식생활을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믿어요. 저는 육식이 아닌 채식을 택했구요. 무엇을 먹느냐는 일반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들에게 갖는 까다로움이나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서라는 편견과는 거리가 먼, 가장 기본적인 행복에 대해 제가 내린 답이었을뿐이에요.
그런데 비간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삐딱하다는 걸 알고 놀랐죠.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비간들은 고기 먹는 사람을 무조건 증오하고, 인간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웃겨 화도 나지 않더군요. '역시 사람들은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서 탈이야' 하고 넘겨버렸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이런 작은 편견들과 선입관들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비간에 대해 사람들이 은연중 반발심을 갖고 있는 이유가 있었는데 아주 간단했어요. 비가니즘(채식주의)을 강력하게 믿는 이들이 고기를 먹는 사람을 비난하기 때문이었던 거죠. 고기를 먹는 행위를 대놓고 비난하는 비간들도 많을 뿐 아니라, 꼭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말을 마구 해대는 불편한 존재였던 거죠." P223-225 (*책에는 '처름'이라고 적혀있었고 오자인 듯하다.)
"돈은 사실 인류가 고안해낸 여러 가지 도구 중에서 가장 멋지고 똑똑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인류의 삶을 정말 편리하게 바꿔주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소비 패턴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았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사용하는 물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솔직히 관심도 없어요. 모든 물건들을 본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잃어버렸죠. 그러면서 무차별적인 과소비가 생겨났어요."
마크의 주장은 이런 거다. 어느 날 누군가 방을 청소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어휴, 저 책상이 좀 낡았네. 내다 버려야지'라고. 하지만 만약 그 책상을 본인이 며칠 동안 공을 들여서 직접 만들었다면 그런 생각을 쉽게 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다. 혹은 그 책상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열심히 대패질해가며 만들어서 선물한 거라면 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수고와 에너지를 쉽게 저버릴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런데 돈을 사용하면서부터 우리는 그런 마음을 잃어버렸다. 물질 만능주의 사고방식과 습관에 길들어져 언제부터인가 아무 고민 없이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게 되었다.
(..) 돈은 우리 인생에서 주인공이 될 정도로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고. 돈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돈이 행복을 좌우할 수는 없다고. p296-297
-그의 근황은 돈이 주도하는 경제에 반기를 들기 위해 창립한 그의 조직 Freeco-nomy Community (www.justfortheloveofit.org) 에서 확인할 수 있다. p304
내 생각이 치우친 것은 아닐까.
동성애, 죽음, 비간, 소비 등은 낯선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의 연관성, 비중, 관심도를 떠나 사전적 의미 혹은 사회적 통념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아마 대부분의 단어가 그럴지도 모른다. 선입관과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은 의식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반추하지 않으면 그것이 치우친 것인지 조차도 모른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치우침 조차도 모르는 자신의 우매함에 경종을 울린다.
답은 하나가 아니며 다를 뿐이다.
내가 가진 생각이 편견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책 역시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어떤 문제든 답은 하나가 아니다.) 여기서 더 다양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무비판적 수용과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언제나 경계하고 수학을 제외하고 세상의 일들은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으며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