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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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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It's a good life, if you don't weaken 이란 제목의 캐나다 작가 세스가 지은 만화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는 잭 캘로웨이라는 잊혀진 만화가를 찾아 나서는 만화가 세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흘러간 시대, 낡은 것들을 사랑하는 고집쟁이 만화가 세스가 잭 캘로웨이라는 잊혀진 무명 만화가를 찾아나서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인생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연속이 아니야.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끌려 다니는 거지.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좀 더 다르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게 마련이지만, 그건 정말 보통 의지로는 안 되었을 걸세.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러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했을 거야."(p.155)
세스는 묻는다. 옛날 잡지들을 뒤져보면 정체불명의 만화가들이 수백명은 되는데, 만약 자기가 오늘 캘로의 만화를 처음 보았더라면 이렇게 그를 찾아나섰을까, 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캘로의 삶을 추적하며 얻은 정보들을 떠올린다. 30년도 더 전에 반짝 스쳐지나간 작가의 작품에 관한 정보를 편지로 보내주는 수고를 할 뉴요커의 편집자부터 때마침 연이어 나타나는 정보들까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과거 속에 가라앉아 허우적대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나간 시절을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뭔가 실마리를 찾아내면 현재의 지긋지긋한 문제들도 해결될 것 같다. 5분만 가만히 나둬도 곧바로 우울해지는 게 나란 사람이다. 세상만사 슬프지 않은 게 없다. 안다. 내가 유난떤다는 것. 하지만 많은 게 날 우울하게 만든다." (p.41)
변화를 싫어하고 과거의 것을 사랑하는 우울하고 한편으로는 회의주의적인 세스의 여정. 보통의 만화와는 다른 낯설음에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도, 넘어가지 않는 매 장마다 공감과 메세지가 숨어있다.
"본질적인 삶의 질이 나날이 허망하고 부박해진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자..." (p.43)
"스스로를 직시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마침내 자신에게 정직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마음 저 깊은 곳에 내가 외면한 진실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신기할 따름이다. 뭔가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그걸 회피할 수 있다는 게." (p.44)
잭 캘로웨이라는 무명 만화가의 인생을 추적하며 세스는 자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나는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책을 덮고나서도 잔잔하게 마음에 잔향을 남기는 만화책은 오랜만에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