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나요 - 책으로 인연을 만드는 남자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기차 여행을 가기로 약속 한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놀랍게도 책 속의 주인공 역시 여행길에 오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어쩐지 내일 여행은 더 즐거울 것 같다는 기대감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차 여행에서 나는 빠지게 되었고, 집에서 골골 거리며 안타까운 마음에 이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직접 할 여행 못하게 되었으니, 대리 만족이라고 느껴야겠다라는 마음에서였다.

 

 『도서관에서 만나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마주 소설이다. 띠지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바치는 <<해변의 카프카>>의 변주곡"이라고 적혀 있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이야기의 토대는 물론이고 모든 상황이 전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해변의 카프카>>와 연결된다. 인물들이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서, 그 작품에 나오는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 음식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입에 군침이 돌면서 그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나 역시 얼마전에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으면서 굴튀김과 행복에 관한 글을 읽고 굴튀김이 먹고 싶다고 얘기를 했는데, 굴튀김 대신 생굴을 먹고 탈이 났다. 그럼에도 다음번에는 생굴 대신 꼭 굴튀김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점이 책 속의 주인공들이 책을 읽으면 책 속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지는 것과 닮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 책에서 가장 날 설레게 했던 점은 책을 통해 누군가와 인연을 만든다는 자체였다. 굳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책을 통해 인연이 생기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본 로망이 아닐까.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상대방과 나눌 수 있고, 또 좋아하게 되고, 책을 주제로 한 여행도 떠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인연도 만들고...

말은 쉽지만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상대방이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나눌 수는 있어도, 같은 세계를 공유하긴 힘든 것이다. 그래서 나즈나와 와타루는 정말 놀랍고 부러운 관계다. 책을 접점으로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빌려줌으로써 소통하고 친해져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하다니. 거기다가 둘 다 <<해변의 카프카>>를 좋아해서 여행까지 계획할 정도다. 그것도 작품 속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정말이지 엄청나다. 완전히 로망이다.

게다가 정말 소설답게 둘이 떠난 여행지에서 또 다른 화자인 작가 고마치와 만난다. 그 역시 <<해변의 카프카>> 작품에 등장한 장소와 음식점을 순례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동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읽는 내내 이 사람들 만나게 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만나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충실하게 내 로망이 구현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쓴 소설 속에서 만나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다들 비슷한 로망을 꿈꾸는가 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나도 <<해변의 카프카>>든 뭐든 손에 들고 여행 떠나고 싶다라고, 나도 이런 인연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자신이 머릿 속으로 떠올리며 꿈꿔왔던 일들-책을 통해 인연을 만드는 것-이 타인의 손에 의해 소설로 쓰여져 읽을 수 있다는 건, 고마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한 생각과도 닮았다.

"20여 년 전부터 계속 생각했다. 주인공이 낯선 마을의 도서관에서 지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p.8)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 도서관이 배경 장소로 나오는데, 고마치는 자신이 생각해왔던 이야기를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만남으로써 놀란다. 이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심정과도 무척이나 흡사해서, 주인공이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작품도 분명 소설이고 허구지만, 이상하게 리얼리티를 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또 이상하게 지명이나 장소까지 사실적임에도 소설 특유의 허구라는 느낌이 많이 느껴지는 것은 <<해변의 카프카>>가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또 다른 세계로 가져와 구현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세계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 다른 세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만나요』를 읽고 있으면 다케우치 마코토가 책을 사랑하는 느낌이 진하게 전해져와서,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분명 책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해 무려 부록에서는 나왔던 책들의 제목과 작가, 책 소개도 간략하게 해 두고 있다. 다른 책 제목이 등장할 때 마다 포스트잇을 붙이던 나는 이 부록을 보고 어쩐지 허탈해졌지만, 붙여놓은 포트스잇은 부록에서 정리 된 책 목록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따로 정리할 필요도 없이 요약되어 있으니 편하다. 덕분에 이제 추가로 더 찾가 읽기만 하면 된다.

 

 『도서관에서 만나요』은 다른 작품을 이쪽 작품의 현실로 가져와 여행을 통해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 속에서 흔들리면서 진행된다.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을 떠나게 될까, 또 누구와 만나게 될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읽는 내내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와타루와 나즈나와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된 고마치는 작가의 길을 걷게 만든 또 다른 작가를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 장면은 살짝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현실이라면 몰라도 이야기 속에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능하지 않은가. 얼마든지 자유롭게 내가 꿈꾸는 일들을 벌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꿈 같은 일들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예견하며 끝내는데, 과연 모든 작품에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성장 스토리를 다루는 다케우치 마코토라는 작가다웠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정이 넘치고 또 따뜻하고 엄청난 우연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꿈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책을 읽음으로써 꿈을 꾸고 또 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내일을 즐겁게 맞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부터 어수룩하게 빠져들지 말자고 조심했다. '인연'이라든가 '징크스'라든가 '점' 같은 것도 나는 믿지 않는다."(p.113)

 작가인 고마치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도서관이, 책이 만들어준 인연은 그의 이런 생각까지 바꿔 놓지 않을까. 담담하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듯한 느낌에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하고 행복한 꿈을 꾼 것만 같다. 이것은 분명 텍스트가 가지는 힘일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현실을 잊고 꿈꿔 왔던 일들을 보여줌으로써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텍스트로써의 가장 큰 기능을 이 책은 하고 있고 거기다가 메세지까지 준다. 사람은 책을 통해 치유 받고 또 자신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을. '인연'을 믿지 않는 고마치의 세계도 분명 넓어져 다음 작품을 쓸 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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