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야쿠자에 어울리지 않아. 빠져나가고 싶은데 빠져나갈 수 없다, 이 세계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다, 그런 건 전부 핑계야. 목숨을 맡겨놓고 있다고? 그렇다면 그렇게 불평하지마. 투?덜 불평할 거라면 그냥 죽지그래. 목숨 맡기는 곳을 바꾸는 것뿐이잖아? 간단하네."

 목숨 맡기는 곳 .....

 "대장인지 선배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 싫어하지? 당신, 싫어하는 사람한테 목숨 맡겨놓고 좋아하는 여자를 허무하게 죽게 했잖아? 그래서 그게 지금 미치도록 싫은 거 아냐? 슬픈 거 아냐? 보통은 그런 데다 목숨 같은 거 맡기지 않는다고. 죽네 사네 말하는 것도 한심하지만, 어차피 맡겨놓은 목숨이라면 간단하잖아."

 죽어?

 "못 죽겠다면, 당신 인생이란 거 애초에 거짓말 아냐?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놈들이야 얼마든지 있고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죽으니 사느니 목숨을 맡겨놓았느니 하는 건 웃기잖아. 야쿠자라는 것도 그저 좋지 않은 짓을 해서 돈 버는 사람일 뿐이잖아? (중략)" - p159

 


 사람은 좋다. 아니,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남 도와주는 걸 좋아하게 생겨서 남의 생활에 거침없이 들어온다. 친절을 베풀 셈인 거다. 친절하기는 하지만 징그럽게 싫다. 말을 걸어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평생 상관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거슬린다. 언제나 뻔뻔하게 유치한 정론을 떠드는데, 세간에서 옳다고 하는 건 의심할 바 없이 옳다고, 만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한다. 하지만 누구나 옳고 바르게만 살아가는 건 아니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때란게 있다. 얼마든지 있다.-p168

 


 나는 어떤 꼴을 하고 있을까? 화장도 하지 않았다. 막 일어난 참은 아니지만 겨우 잠을 깬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거의 자고 바로 일어난 차림에 가까웠다. 택배인 줄 알고 나갔던 것이다. 택배였으면 좋았을걸. 그럼 짐을 들일 정도의 공간만 만들면 됐을 테니까. 물건만 건네고 바로 돌아갔을 테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따위. 그 이상이 되면 관계는 썩는다.-p174



 


 "(-) 당신은 아마시 안에 없어."

 "아사미 안에 .... 내가 없다고?"

 "없어. 아사미는 당신을 핏줄이 통하는 은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 생명의 은인이랄까, 그런 느낌? 키워줬다, 고생시켰다, 그런 얘기를 곧잘 했거든.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킹는 건 당연하잖아. 키우느라 고생하는 것도 당연하고."

 "당연하다니...."

 "당연한 일을 해놓고 힘들었네, 괴로웠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당신이 한 일은 별로 특별한 것도 아냐. 당신 안에 아사미가 없었으니까 아사미 안에도 없었던 거야. 이제야 잘 알겠네."-p206

 

 

 


 "아사미하고는 관계없었잖아. 당신, 나오코 씨도 혼자 살아가는 게 두려웠던 거 아냐? 누군가한테 기대고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거지. 그건 그냥 게으름뱅이 아닌가? 부모나 남편이나 자식한테 기대서 모든걸 남한테 뒤집어씌우기나 하고. 그래놓고 자기는 암것도 하지 않았으니 나쁘지 않다는 거야? 아니면..."

 "그래, 그랬어. 그게 뭐가 나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일하고 싶지 않아, 귀찮아, 잠만 퍼질러 자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이야? 다들 그러잖아. 입으로는 잘난 척 떠들지만 누구라도 그런다고!"

 "그래서 당신도 그런 식으로 살 수 있다는 건가?"

 "살 수 없지.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되고 싶어. 그렇게 되지 못한 건 운이 나빴기 때문이야. 바보 같은 부모와 거치적거리는 딸과 찌질한 남편들 탓이었을 뿐이야."

 그럼, 그럼,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단 말이야!"

 "그럼 죽.지.그.래."

 겐야는 그렇게 말했다.

(중략)

 "(-) 하지만 그런 거 반복해봤자 일걸. 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산다는 건 어려울 테니까. 불만이라는 건 없어지지 않아."

 "없어지지 않을 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니까. 죽는 수 밖에 없어."

-p211-~212

 

 

 


 "그럼 죽.지.그.래."

 "뭐?"

 "그렇잖아.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참든가, 못 참겠으면 죽어버리면 되지."

 "뭐라고?"

 "그러니까 당신.... 뭐, 당신만은 아니지만, 어째서 그렇게 간단한 걸 몰라?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는데 말이야. 그런 일 별로 없다고. 반드시 어떻게든 될 텐데 어떻게도 '하지 않는' 것 뿐이지."

 하지 않는다고?

 "싫으면 그만두면 되잖아. 그만ㄷ고 싶지 않으면 바꾸면 되잖아. 바꾸고 싶지 않으면 타협하라고. 타협하고 싶지 않으면 싸워! 뭐든 할 수 있잖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히키코모리로 살든가. 히키코모리도 될 수 없는 등신이란 거야? 무시당하는 게 싫다, 출세하고 싶다, 돈 벌고 싶다, 그런 식으로 투덜거리는 건 응석일 뿐이지. 차라리 히키코모리로 지내는 녀석들이 훨씬 낫다고. 그 사람들은 그런 것 전부 버리고 방구석에 틀어박힌 거잖아. 두 다리로 돌아다니고 잘 살고 있으면서 투덜거리지 말라는 얘기야."

 와타라이는 내 손을 뿌리쳤다.

 "정말로 도저히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면, 그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면 죽는 수밖에 없잖아? 죽고 싶지 않다면 참아. 둘 중 하나야." -p266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그게 정상이죠. 죽음을 갈망한다는 건 일종의 병이니까요. 그 경우 치료가 필요하겠죠. 또 한가지는 병에 가까운 지경까지 몰린 경우예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데까지 몰렸을 때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게 되죠. 이것 역시 정상은 아니에요.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다면 죽음이 반드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 테니까요. 사람도 생물이에요. 생물은 살아가기 위해 살죠. 스스로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경우가 있는 거예요.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편하고 빠른 해결법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 세상에는 절망의 씨앗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벗어날 길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에요. 구원의 여지가 없는 일은 절대 없어요. 벗어날 길이 없다고 믿는, 그게 문제죠. 죽으면 편해질 거다, 죽으면 끝이다, 그렇지 않아요. 죽어서 호전될 상황은 절대 없어요. (중략)"

 

-p309

 

 

 세포자살(apoptosis)라는 것이 있다. 생물은 스스로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지만,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나 뉴런 단위에서는 스스로 자살하는 기제도 있다. 그러니까 생물은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도,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살인도, 자살도, 어느 쪽이든 어찌할 수 없는데까지 몰렸다면, 그렇게 몰아간 원인을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면, 주변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선택하게 되는 건 죽음뿐이지 않을까. 몰아가서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도 정상적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원인을 만들어내는 이 세계 자체도 정상은 아니지 않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누가 학대받는다고? 범죄자는 범죄자야.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지. 범죄자가 아닌 사람은 범죄자가 아닌 거고. 아니, 그러니까 더 간단하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나무라고 바로잡고 하는 건 당신 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런 놈들이 설치면 화가 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자의 죄를 가볍게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걸로 균형을 맞춰봐야 소용없다고."

 "균형?"

 "균형이지. 이봐, 그 당신이 얘기한 사건의 범인, 정말로 불쌍하네. 게다가 그 피해자의 부모나 회사, 친척, 모두 몹쓸 사람들이고. 심하긴 해. 하지만 가장 불쌍한 건 죽인 사람이 아니라 죽은 아이들이잖아?"

 그렇다. 죽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만이 아니야. 그 범인이 가엾다 해도 역시 벌은 받아야지. 오 년이건 십 년이건 종신형이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마찬가지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니까. 당신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재판을 하는 거야. 하지만 부모, 회사, 친척, 그런 사람들까지 간섭하는 건 당신들 일이 아니잖아?"

 

 "세상이고 개뿔이고, 그러는 게 아니지. 이봐, 법에 저촉되지 않는 짓을 하는 놈들은 재판할 수 없잖아. 그렇다면 이러니저러니 떠들지 말고 그런 점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는 게 당신들 할 일 아냐? 재판을 제대로 하면 그런 것도 알게 될 거 아냐."

 

 "봐, 뭐든지 자기 영역에서 정리하려고 하잖아. 범죄자가 아닌 놈들이 설친다고 범죄자의 죄를 가볍게 하는 건 이상하다고."

 

 "그 공정이란 게 어느새 상대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았어? 당신 말이야, 그 재판에 져서 억울할 뿐인 거 아냐? 판사란 게 그렇게 언론이나 바보 부부의 연기에 좌우되는 얼간이가 아니잖아? 엄격하지? 훌륭하잖아? 판결이란 게 그렇게 여론이고 뭐고 하는 것 때문에 휙휙 바뀌는거야? 그렇게 한심한 것들한테 재판받고 있는 건가, 우리?"

 

 "재판에 진 건 당신의 주장이 잘못됐거나 당신의 변호 방법이 나빴거나 둘 중 하나 아냐? 판사가 훌륭하긴 해도 완벽하진 않을 테고 잘못도 할 수 있겠지만, 당신이 정말 옳았다면 당신의 변호가 잘못 된 거야. 그런 걸로 화내면 안 되지. 민폐라고, 그런 걸 강요당하는 건 이봐, 당신은 쓰레기라고 불렀지만 아사미의 어머니는 아사미를 싫어하지도 학대하지도 않았어. 사랑하는 법을 몰랐을 뿐이지. 사쿠마 씨도 야쿠자 졸때기지만 아사미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지만 나름대로 사정도 있었고 다들 아사미를 싫어하지 않았어. 가오리 씨고 그런 짓은 했지만 나름대로 괴로워하고 슬퍼했어. 사람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라고. 사람은 바보니까, 실수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거야. 스스로도 혐오스러울 만큼 찌질하지. 나는 말이야, 아사미를 알고 싶어서 얘기를 들으러 돌아다녔지만 모두들 자기들 얘기밖에 하지 않았어. 그래서 잘 알게 됐지. 다.들. 그.렇.게. 다.르.지. 않.아."

-p319~321

 

  그런 걸 정상참작이라 하던가. 범죄자의 사정을 헤아려 형벌을 좀 덜 받게 하는 거. 물론 그런 건 어느 정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인 등의 법을 어긴 죄 자체는 용서 할 수 없는 것이다.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에 있었고, 범죄는 안 질렀지만 범죄보다 더 악질인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해서 범법자를 용서해서 세상의 악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건 정말 오만이다. 애초에 당신은 누구길래 마음대로 잣대를 들이대고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거지? 법의 수호자라 그래서 그런 게 합리화되는 건가? 그러니까 간단하다. 법을 어긴 사람은 처벌. 법을 어긴 사람보다 더 고약하고 악하지만 벌을 어기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정 분이 안 풀리면 그 사람이 법을 어기길 기다렸다가 사형이든 뭐든 시키던지. 하지만 지금은 전부 법 너머의 일이니까. 그렇다고 법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런 물렁한 잣대로 처벌하려고 마음 먹는다면, 법도 정의도, 공정도 다 소용없는 거잖아.

 


 "(-) 내가 얘기 들으러 돌아다녔던 사람들은 모두 '죽지그래'라고 하면 싫다 그랬어. 그게 보통이지. 당연히 모두 살고 싶어 해. 미련이 많지. 미련이 뚝뚝 떨어져. 모두들 만족하지 못하니까. 이러니저리니 핑계만 대고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하다, 말하잖아. 그게 당연해. 사람이란 모두 찌질이고 쓰레기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당신이 말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으니까, 죽고 싶지 않겠지. 그런데 아사미는 달랐어. 그런 게 있을 수 있어? 나는 .... 무서워졌어." -p232 

 

 

 

 

  대화로만 계속 되는 이야기가 이렇게 흡인력있고 헐렁한 느낌(?)도 없고 철학적일 수 있단 말인가.

  '죽음'. 이건 도대체 뭘까. 그렇게 세상에 불평불만이 많아도 죽지 않는 인간들은 뭐지?  그렇게 불행하다고 느끼면 저절로 죽어지지 않아? 불행하다고 말하면서 왜 죽을 생각은 들지 않는 거지? 나같으면 그렇게 불행하다, 난 불행하다 떠들정도면 죽는 것도 생각해볼텐데. 왜 이 사람들은 그런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불행하다고 말하는 거지? 사실은 정말, 그 정도로, 불행하지 않은 거잖아? 그냥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처럼. 싫다. 그런 거. 차라리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난 행복하다고 거짓말이라도 하지 그래? 부끄럽잖아. 자기가 불행하다는 걸 그렇게 밝히는 거 부끄럽지 않아? 나 같으면 부끄러울텐데. 위선자보다, 또는 만큼이나 싫다. 뭐야, 정말. 좀 더 겸손할 순 없는건가? 삶에 대해서 좀 더 겸손해지면 안 되는 거지? 역시 이상해. 겸손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조금 만족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불만불평에, 그렇게 짜증만 내면 사는게 재미도 없겠다. 그러니까 다들 '죽지그래'라는 말이나 듣는거지, 안 그래?  백치미의 불행한 삶의 대표자 격인 아사미가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녀가 했을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당신네들이 잘 하는 그 '비교'라는 걸 자기 삶이랑 해보면서 조금 반성하지 그래? 그래도 불만불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정말 다 해봤는데도 더 이상 수가 없다면 그냥 죽고. 하지만 죽을 생각이 없다면 그건 정말 다 안 해본 건 아닌지 의심도 해 보고. 그렇게라도 살아가야지, 뭐. 어쩔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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