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겠죠. 장님들 세상에서는 애꾸눈이 왕이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다들 멍청한 인간들이라오. 온 마음이 벽 두개 사이, 돈과정략 사이에 갇혀버린 인간들이죠." 

p153

 
 벨아미는 프랑스 어로 '잘생긴 친구, 미남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본 책 <벨아미>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만큼 미남으로 나옵니다. 잘생기고 멋지고. 특히 콧수염이 아주 멋져서 여성분들이 넘어간다고.. :)

 이건 벨아미와 노시인의 대화 중에 노시인이 말한 부분입니다. 

 노시인은 상류사회로의 야망이 가득한 벨아미에게 위와 같이 새로운 하원의 인물에 대해, 정권에 대해, 무비판적인 시민들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비단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일만은 아니겠죠. 현대사회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벨아미는 자신이 지향하는 상류층 사회의 부패를 잘 알고 있으면서, 속으로 비난하면서도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여성들을 농락하고 이용하고 가차없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벨아미의 모습을 통해 더 여실히 드러나는 사회상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노시인은 젊고 야망 가득하고 상류층의 여자들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미남계와 입솜씨를 갖춘 영악한 남자 벨아미에게(수식어 한번 길다!) '죽음'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사실 뭐가 중요하겠소? 재주가 좀 많든 적든 어차피 끝나긴 마찬가지인데."

 " - 인생이란 비탈길과 같다오. 올라가는 동안은 정상이 보이니까 행복하지. 하지만 다 오르고 나면 갑자기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종말이, 죽음이라는 종말이 보이기 시작한다오. 또 올라갈 때는 천천히 가지만 내려갈 때는 빠르답니다. 당신 나이 때야 즐겁지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 해도 희망도 많고 말이오. 그런데 내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오. 그저... 죽음이 있을 뿐."
 

p154

 

 당연하겠지만 벨아미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젊고 앞으로 올라갈 길만이 있을 뿐인데 내리막길이니, 끝이니 그런 소릴 다 죽어가는 노시인한테 들어봤자 아무런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하죠. 결국 노시인은 노시인이고 벨아미는 벨아미 자기 자신일 뿐인, 각기 다른 개체일 뿐이니까요. 노시인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언젠가 벨아미의 그 젊음도 사라지고 죽음만이 남을 때가 오면 그도 노시인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쉽게도 책에선 벨아미의 성공기 절정에서 끝을 맞이하며 끝이 나버리죠. 저는 이 결말을 통해서 기득권층은 여전히 기득권층으로 남는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 이후에 벨아미가 어떻게 되었든, 이렇게 끝이 나버린 이상 사회구조상 상류계층은 언제나 지배층으로 남는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나 합니다.

 

 개인적으로 벨아미가 상류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일대기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가는 것이니까요. 그것도 자신이 타고난 외모와 재능으로 말이죠. 물론 여기서 재능이란 여성들을 유혹하는 말솜씨부터 여성들을 이용해 자신이 상류사회로 올라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는 기발함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그렇게 상류사회로 한발짝씩 다가가는 벨아미는 처음엔 냉소적입니다. 상류사회 사람들을 비난하며 사회구조에도 불만을 품죠. 하지만 어느 이상의 정점에 오르자 물욕과 권력욕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이미 벨아미도 자신이 욕하던 그 상류사회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벨아미의 모습은 꽤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도 평등사회에 민주사회를 외치지만 분명하게 명시되지 않은 계층으로 분화되어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표를 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사회나 지금 사회나 모두들 상류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버둥은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신데렐라표 드라마들의 유행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로망이라고도 하는데, 어디까지가 로망이고 어디까지가 상류사회를 향한 욕망인지에 대해서는 전 잘 구분이 안 갑니다. 겉으론 로망이라 하지만 내적으로는 욕망을 품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데 재밌는 점은, 저는 이 노시인의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는 점입니다. 벨아미가 이해 못하는 것도 이해하면서도 노시인의 말도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피부에 노화가 오고 소화기능도 떨어지고 뇌세포들도 죽어버리고.. 모든 것이 꽃이 시들해져가듯 그렇게 스러져갑니다. 꿈을 꾸기엔 기력이 부족하고, 희망을 품기엔 죽음이 너무 가깝습니다.

 

 하지만 전 죽음이 곧 외양적인, 세포의 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꿈을 꾸고 희망을 품으면 그게 곧 젊음이고 삶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꿈을 꾸고 희망을 품어도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는 때가. 노시인은 그런 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죽어볼 순 없다, 즉 경험을 해 볼 수 없는 유일한 것 중의 하나라 시험해볼 수도 없고. 유체이탈에 대해서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후 세계에 대해서 믿는 것도 아니니, 정말 죽으면 끝일까요.

 

 


" (-) 더 이상 웃지 못하는 날이 올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그 뒤에 죽음이 보이는 날이 말이오. 그 날이 일찍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오.

 (-) 그래.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될 거요.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삶의 모든 모습이 바뀔 거요. 그래 십오 년 전부터 몸속에 세균이라도 들어 앉은 것처럼 죽음이 나를 먹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매달, 매시간, 마치 집이 무너져 내리듯 그렇게 날 무너뜨리고 있지.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하고 말았다오. 이전의 내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지. 서른 살 시절의 그 눈부시고 싱그럽고 기운 넘치던 나는 이제 아무데도 없소. 죽음이란 놈이 내 검은 머리를 허옇게 물들였지. 그런데 그놈은 어찌나 사악한지 아주 교묘하게 천천히 찾아온다오. 이제 나는 팽팽하던 피부, 근육, 치아, 이전의 육체 전부를 빼앗겼고,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에 빠진 영혼뿐이오. 그나마도 곧 빼앗기고 말테지만.

 그렇소. 그놈이, 죽음이라는 그 비열한 놈이 날 부스러뜨렸소. 천천히, 무참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매 순간 내 존재를 파괴하지. 무슨 일을 하든 난 늘 나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소.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죽음에 다가가고,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숨 쉴 때 마다 그 끔찍한 죽음이 걸음을 재촉하지. 숨을 쉬고, 자고, 마시고, 먹고, 일하고, 꿈꾸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죽는 일이오. 결국 산다는 것은 죽는 일이한 말이오!

 오, 당신도 알게 될 거요. 일이십 분만 생각해 보면 죽음이 보일테니까!

 당신은 무얼 기대하고 있소? 사랑? 몇 번 더 사랑을 나누고 나면 머지않아 그것도 끝이오.

 그리고 또 뭐가 있지? 돈? 무엇 때문에? 여자를 사려고? 그게 무슨 행복이란 말이오! 실컷 먹고 피둥피둥 살이 쪄서 밤이면 관절염에 신음하려고?

 또 뭐지? 명예? 그것도 사랑이라는 형태로 거둬들일 수 없다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니오? 그 다음엔? 마지막엔 언제나 죽음이 있소. 난 지금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걸 볼 수 있소. 팔을 뻗어서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지. (-) 내가 하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 달빛, 일출, 끝없이 펼쳐진 바다, 아름다운 강, 상쾌한 여름 저녁의 공기,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을 죽음이 망치고 있단 말이오."

 

p154-156


 

 

 벨아미는 죽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젊음과 투기, 야망의 상징이죠. 그런데 이런 벨아미에게 노시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뒤이어서 벨아미가 상류사회의 발을 떼도록 도와준 친구의 죽음이 나타납니다. 아마 그러한 죽음을 예견한 복선은 아닐까.

 

 프랑스 사회의 뒷면을 자세하게 다룰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과 죽음 그리고 젊음과 노쇠에 대해서까지 말하는 벨아미. 생각해볼 것도 많게 만들어주지만 우선 재밌다는 점에서 별 다섯개입니다! 기 드 모파상이 플로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감정교육>도 같이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감정교육>을 숨은 명작이라고 어느 책에서 봤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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