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ㅇ난감 - 하 (완결)
꼬마비.노마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연재와는 다른 결말이라는 띠지에 웹툰을 찾아봐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 결말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정말 괜찮을까. "법률 없이는 범죄도 형벌도 없다"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나면서 이탕이 죽었을 땐 어쩐지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엇때문에 정의를 실현하겠는가라는 물음에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눈을 신경 쓰는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결국 타인에게 정의롭게 보이기만 한다면 그게 진정한 정의든 아니든, 선이든 악이든 상관없지 않은가. 어차피 인간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는 것만 보는데다가 거기에 감정이 섞이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는가. 딱 깨고 말하면 정말 이 세상은 보이는게 다가 아닌가.

 

 권력의 힘에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인 장난감 형사. 이름부터 특별하지 않은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세뇌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언제나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로 인해 한을 품고 법을 원망하면서 이탕과 같은 정의의 사도의 도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이탕이 죽인 사람들로부터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이탕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소중한 사람 역시 죽음으로 잃었는데,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줘서 고맙다고 말하다니,이거 참 아이러니 하다. 살인자에게 살인을 해줘서 고맙다니. 어차피 살인은 살인인데, 죽어서 마땅한 사람따윈 없는데 말이다.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건 법이 그만큼 허점이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만들었으니까 허점이 있는게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고 또 보완해나가며 정의 구현에 힘쓰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언제나 불합리한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 이탕과 같은 존재의 등장에 환호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법의 한계라한다면 그것도 맞겠지만,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옳지 않다거나 없어져야 된다는 것도 아니다.

 

 장난감 형사는 마지막에 이탕에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고 한다. 이탕을 믿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할 수 없다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지 않을까. 이탕이 한 살인은 분명 잘못 된 일인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그를 잡아서 사형에 처해야한다고, 그렇게 말 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 처해서, 정의라 세워둔 견고한 가치관과 그 정의의 한계에 대한 불안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이건 끊을 수 없는 딜레마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절대적인 것은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스스로를 믿는다.... 그런게 어딨어요. 그냥 사는 거지."라고 이탕은 말한다. 범죄자를 살인으로 처단한 것이 옳다고 믿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한다. 이탕은 처음부터 우발적인 살인으로 시작했고 살인 후 알고보니 그 사람은 죽어서 마땅한 자였다. 그렇다면 죽어서 마땅한 자가 있는가? 그런 자는 죽어야 마땅한가? 그런 사람을 살인을 한 것이 옳은가? 너 자신은 그렇게 믿고서 살인을 저질렀는가? 이탕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살인은 죽어서 마땅한 죄라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고픈 말은 늘 하나같다. 법은 완벽하지 않지만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라 하여도 살인으로는 아무것도 정당화 되지 않는다. 법적 처벌만이 정의다. 이 말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맞는 말이다. 정론이다. 하지만 항상 이러한 문장들 뒤에는 '그렇지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린다. 이상하게 저 문장으로 완벽해지지 않는다. 무언가 부족하다. 그리고 아마도 이탕은 그 부족한 틈에서 나온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여지를 두고 있는 이 결말이 꽤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여지라는 것도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삼기 위한 여지이지, 법에 있어서의 여지가 아니다.

 

 불친절하고 선정적인 제목에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는 네 컷 만화, '살인자ㅇ난감'. 책장을 덮었지만서도 도대체 이 제목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작가는 읽고 싶은 대로 읽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동생이 일전에 이 책 제목은 어떻게 읽느냐고 물어봤을 때 그야 말로 '난감'했었다. 살인자 난감으로 읽으면, 송천을 죽인 형사 장난감의 나쁜 행위라 생각되서 맘이 편치 않다. 죽어서 마땅한 사람은 없고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만 보면 난감은 살인자지만 그렇게 생각하려니 어쩐지 속이 쓰리다. 살인 장난감이라 읽으면 이탕과 노빈의 무차별적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여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일단 가능하다면 법으로 다스리는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살인자의 난감이라 하면 역시 송천의 숨겨진 이야기가 떠오르긴 하지만, 일단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나는 송천에게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물론 마지막에 송천이 대미를 장식하긴 했지만 말이다. 살인자O(알파벳 오) 난감이라 읽으신 분도 있다는데, 내겐 중간의 오가 감탄사처럼 느껴져서 재밌게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 나라면 살인자와 난감이라고 읽을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게 1권부터 3권까지 살인자들과 형사 장난감의 이야기가 계속 되지 않았던가. 정말 제목도 참 재밌다. 이렇게 다양하게 생각될 수 있다니. 하지만 제목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이름도 의미가 깊다. 이탕, 장난감, 노빈...  3권 마지막에 '신과 함께' 저자인 주호민 작가와 꼬마비 노마비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읽는 것도 읽는 재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오랜만에 정말 정신없이 읽었다. 혼란을 상징하는 보라색 표지. 과연 결말다웠다. 색 컬러가 각 권의 핵심을 콕콕 찝어내고 있어서 놀랍다. 이탕의 단죄(빨간색)과 법(파랑색)이 합쳐지니 혼란(보라색)이 나온 것이 아닌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색깔이다. 읽고 나면 다들 이런 보라색스러운 기분이 되지 않을까. '살인자와난감'은 하반기 읽은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을 작품 중 하나에 들어가지 싶다. 게다가 읽고나니 여기저기 추천하고 싶은 마음도 샘솟으니 말이다. 스토리텔링이 훌륭한 이 작가의 차기작은 또 어떤 작품이 나올까.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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