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ㅇ난감 - 중
꼬마비.노마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테닝도하고 머리 염색도 새로한 이탕을 처음 보고는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고 나서도 다른 등장인물 인줄 알았다. 그리고 읽다가 1권에서 나온 이탕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에 놀라서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노빈이라 부르는 사람과 송천 그리고 1권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 이탕을 쫓는 형사가 나온다. 노빈은 이탕과 같이 법망을 피해 살아가는 범죄자를 처단할 수 있는 정의의 사도를 찾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선 이탕은 굳이 살인 증거를 없애려 하지 않아도 증거가 남지 않는 사람임과 동시에, 악질 범죄자를,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 찾아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그의 정의의 사도로 삼기엔 완벽그 자체였다. 송천은 그런 이탕을 만나기 전에 정의의 사도 일지도 모른다며 착각했던 사람인데, 2권은 이 송천이 저지르는 살인 사건과 경찰의 추척이야기가 주가 된다. 작가가 말했듯 1권의 붉은 색은 이탕의 단죄였고 2권의 파란색은 법치의 색과 닮아있었다.

 

 2권은 1권에서 죽어서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에 이어서, 죽어서 마땅한 사람은 누가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건 정말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이 사람은 죽어서 마땅하다고 그렇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절대적인 선과 정의의 기준이 존재하는가? 그 선의 기준에 따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존재 할 수 있는가? 사람이 같은 사람의 생사 여부를 판결 내는 것이 합당한가?

 

 1권에서 이탕이 사람을 죽이고, 그가 당황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막상 밝혀진 바에 의하면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이었고, 나 자신도 모르게 이탕의 편에 서서 어차피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이었다면, 굳이 이탕이 형사들에게 붙잡히지 않는다면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마디로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런 사람들은 죽어서 마땅하다며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죽어서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 송천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그 역시 이탕처럼 자신의 감에 따라 불쾌하게 여겨지는, 사회의 악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살해하지만, 송천의 살인은 그저 단순한 연쇄 살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의감에 도취한 자기 만족적인 살인말이다. 아마 이렇게 느끼는 것은 이탕과 달리 송천 살해 후, 그 사람들이 진정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인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과 이탕, 노빈, 형사들의 일이 교차되서 벌어지면서 1권에서 들었던 생각에 차츰 의구심을 품게 된다. 정말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이 있는지, 그걸 결정하는 사람은 누군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이 책의 파란색이 의미하는 바와 같은 법이 해야하는 일이다. 죽어서 마땅한 사람들이 있는가의 여부는 결코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져선 안 된다.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사람의 손으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법이다. 죄는 법으로 다스려야지, 죄를 죽음으로 되갚는 행위 즉, 살인은 결코 법이 아니다. 살인은 어쨌거나 살인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살며시 드는 의구심은 과연 법이 얼마나 정의를 구현 할 수 있느냐다. 이야기에선 형사는 무능력하며 범인을 찾는데 정치나 이익관계와 얽매여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도 하고 법을 집행 하는 사람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 또한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이탕의 존재가 이상하게 합리화되어버린다. 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니까 그런 법을 대신 해 신과 닮은 완벽한 정의가 등장 해 죽음으로서 죄를 지은 사람을 다스린다는 그런 설정말이다. 이것은 마치 '데스노트'라는 만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데스노트는 주인공 라이토가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을 데스노트에 적으면 죽는다는 설정을 통해 범죄자들을 하나씩 처단해나가는 내용인데, 이탕 같은 경우 노트라는 물체를 매개로 하여 정의 구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만으로 죄인을 색출 해 처단을 한다. 이쪽이 오히려 더 신의 무엇과 닮아 있지 않은가? 게다가 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범죄자들만 알아차리는 그러한 감이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의 하나인가? 무엇보다 증거가 남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신을 처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탕 역시 처벌 할 수 없게 만든다. 신과 같은 절대적인 힘인 것이다.

 

 그렇다해서 이탕이 신인 것은 아니다. 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신의 사자도 대리인도 아니다. 그는 그냥 일개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걸 능력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그저 조금 특별한, 기묘한 일이 계속 반복되는 그런 행운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라다도 생각하지 않으면 이탕의 능력은 무엇이 되는가? 증거가 없는 살인행위는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3권에도 또 이야기가 이어질거라 생각된다. 과연 이탕은 어떻게 될까.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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