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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나와 너의 사이 - 뉴 루비코믹스 1023
카타세 와카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전체적인 스토리는 간단하다. 새 하숙집에 들어오게 된 미츠는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긴다. 자고 일어나니 둔부에 알 수 없는 격통(!)이 느껴진 것이다. (웃음) 게다가 옆에는 같은 하숙집에 사는 남자 료씨였던 것! 필름이 끊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자신의 소심함때문에 물어보지 못한다. 이 후 료씨와 같이 잤다고 생각한 미츠는 이 점에 대해서 마음에 자꾸 걸려하면서 대학과 하숙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이야기 라인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평범한 주인공에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 그리고 그 사이에 살며시 스며든 비엘정도라고 할까. 진지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라 한마디로 말하자면 '훈훈'하다. 치유계랄까.
개인적으로 이 만화에 별 다섯개 이상을 주고 싶은 건, 물론 '비엘'만화로써도 좋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이 나를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도, 소심한 것도, 남의 눈을 신경 쓰는 것도, 전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조금씩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입만 열면 딱히 뜻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떠오르는 생각만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불평불만한 하는 친구들도 싫었다. 같이 시간 보내는게 아깝고 한시라도 그 자리 뜨고 싶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왜 그런 말을 내게 하는 건지 그 이유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길 바라는 걸까. 짜증이 나지만 웃는 얼굴로 속인다. 그저 '그래?', '와, 정말?' 이라는 상투적인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주는 척 한다. 나중엔 자신도 진짜 그런 반응에 속아, 스스로가 열심히 듣고 있다고, 이 화제를 즐기고 있다고 착각해버린다.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세뇌시켜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런 걸 싫어한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입밖으론 내지 않는다. 낼 수가 없다. 내지 못하는 것이다.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부탁받으면 거절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거절도 못하고 그저 웃으며 들을 뿐인 상황이 싫지만,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타협하는 자신은 점점 더 싫어지게 된다. 그저 자신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한거라며,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다독일뿐이다. 인간관계라는 건 그런게 아니냐며, 서로가 서로를 맞춰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며, 분명 남도 나에게 맞춰주고 참고 있을 거라며 생각한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어째서 나만 이렇게 참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똑같다. 나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다. 불평불만에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면서 그런 주제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남들의 눈이 신경 쓰여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할 뿐이다. 소심하고 비겁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자신을 다른 그 누구보다 싫어한다.
지금도 자신이 싫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자신은 없다. 반대로 좋냐고 물으면 또 그렇다고 답할 자신도 없다. 스스로가 충분히 모순적인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분명 스스로를 좋아하는 감정과 싫어하는 감정이 함께 뒤섞여 있을 거라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도, 감정도, 한 데 뒤섞여 있다. 완전히 다른, 모순되는 것을 같이 지향해버린다. 그런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런 것이 싫어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싫어서, 이유를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것에, 싫어하는 것에 이유를 붙인다. 하지만 이유를 붙이면 붙일수록 더 생각은 꼬여간다. 중첩되어서 나중엔 정말 좋아하는건지 싫어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인간관계는 분명 필연적인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피할 수 없는 그 '무언가'다. 살아있는 이상, 그 어떤 관계를 맺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도, 관계는 필연적이다.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관계 속에는 언제나 틈이 존재해서 그 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발생한다. 외로움이라 불리는 감정을 달래줄 만한 무언가가 발생하기도 하고, 역으로 발생시키기도 한다. 소외감이라는 단어가 발생한 건, 그런 인간관계때문이 아니었던가. 고독과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언젠가부터 사람 사귀는 것에 지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새로운 장소에 가도 필사적으로 친구를 만들려고 하지 않게 된다. 필사적이지 않은 건, 분명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렵기도 하고, 먼저 다가갔다가 거절 당할까봐 무서워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간사하게도 필요에 의하면 얼마든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거기에 속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이젠 그런 이유보다는 그저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무언가들을 피하고 싶어서 사귀지 않게 된다. 거리를 두고, 선을 긋고, 살짝 웃으며 질문에 성실히 답한다. 왜 성실히 답하냐고?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내 성격상 무시 할 순 없고, 그래서 예전엔 내가 나서서까지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건 피곤하다. 내가 지치고 나만 상처받는다. 그래서 선을 확실히 긋고 그들이 내게 원하는 정보를 주며 그것에 한해서만 응한다. 그러면 난 착하지만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것을 숨기면서도 한편으론 드러내고 싶어서,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후회하고 만다. 그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드러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는 순간 후회하고 만다. 어째서 얘기한 걸까.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왜 얘기해서 매번 후회하는 걸까. 이런 자신이 싫다. 말했으면 그걸로 그냥 끝내면 안 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면 차라리 내 감정에서 후회라는 걸 지워버리면? 난 모든 일에 후회를 하지 않는다. 후회 하지 않는다. 후회 하지 않는다.
늘 그렇다. 후회 할 일이 생기면, 후회..라는 감정이 들기도 전에 후회 하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생각한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라고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후회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위화감을 없앨 수가 없다.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되뇌는 거짓말로 나는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그렇지만 솔직해지면 스스로가 싫어져서 힘들어진다.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힘들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허우적되는 것도 싫지만, 거기에 너무 빠져서 현실을 못 보게 되는 것도, 살고 싶지 않다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도 바라진 않는다. 그래서 힘들다. 솔직해지는 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확실하게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소심하고 비겁하고 약한 사람은 언제나 도망갈 길을 먼저 찾는다.
분명 료씨가 말한대로, 나도 민감함에 틀림없다. 그게 사람의 상처가 되었든 어찌되었든 무딘 사람은 아닌 것이다. 예전에 학생 때 담임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며, 신경과민이라고. 굉장히 분했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스스로가 그렇다는 걸. 하지만 그걸 어떻게해도 스스로가 통제를 할 수가 없다. 생리적인 반응과 직결된다. 나도 고치고 싶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하지만 말처럼 그게 쉽사리 될성 싶은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 점을 타인에게 지적 당할 때면 분하고 화가 나고 슬퍼진다. 그리고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싫어진다. 언제나 이런 상태일까봐 두려워진다.
종종 나오곤 하지만 자유롭다던가, 솔직하다던가, 그런거 사실 거의 이상에 가깝다. 나는 그런 것의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내가 철학을 좋아하면서도 매번 답을 찾지 못하는 건, 답을 내리고 싶어하면서도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을 배우고 싶은 이유도, 현재의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모해서다. 기준 비스무리한 것이 절대적이지 않아서, 신뢰할 수가 없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철학책을 들춰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매번 그렇다. 위로받을려고 하면, 머리로 생각해버린다. 이건 어차피 책이라며, 영화라며, 이야기라며 단념해버린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말도 변해버린다. 귀까지 닿았을 땐 그 따스함에 감동하면서도 귀를 통해 뇌에 입력되어 버리고 걸러지는 순간 변질된다.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인간(人間)이라고 본 책에서 얘기했듯이, 난 뭘 해도 그 거리감을 가장 먼저 느끼고 만다.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존재해버린다. 그리고 그 거리감은 어쨌든 결과적으론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고 만다. 변질은 거기서 시작된다. 거리감을 두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너무 가까우면 두렵다. 어쨌든 모두들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두고 있지 않은가?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 말이다. 물리적이지 않더라도 분명 그런 것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단지 그런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뭐, 여기서 쓰이는 이 거리감이란건 그 의미가 여러가지라서, 딱히 어느 것 하나만으로 이야기 하긴 힘들다. 여기서 명확히 하면 더 길어지겠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필사적이지만 잘 하지 못하는 나로썬(잘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모두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게 아닐까라며 착각하기도 한다. 누구나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같은 가치와 중요성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나랑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구나라고 느끼는게 아닐까. 나는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그런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를 따라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그것을 알고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며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마음이 그 사람과 사귀고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방 소원해지는 관계는 분명 그런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고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사이를 채우는 건 어색함. 아아. 생각만해도 싫다. 하지만 이것도 의식할때나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면, 완전히 별개의 타인이라고, 관계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이런 어색함도 생기지 않는다. 나는 실제로 그랬다. 이런 경험이 많다. 누가 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옆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이 어색해서 몸둘바를 모르는가? 그냥 당연한거다.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 '낯선이', '이방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색하지 않다. 그 자리를 그저 메꾸고 있는 풍경과 같을 뿐이다. 단지 나와 같은 생물학적 개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쨌든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걸 믿고 이런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 나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 사람들은 어쩌면 나의 이런 모습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걸 존중해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락이 닿아있을 수 있다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걸 그 사람이 똑같이 중요하게 여길거라 바라진 않지만, 적정선은 다들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너도, 서로가, 모두가 그렇게 지키면서 살아간다. 의외로 사람이란 굉장히 예의바른지도 모른다.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말이다. 푸하핫 :)
인간과 관련된 궤변은 인간이란 사람 사이에 하나뿐이기 때문에 더하지 빼지도 또 나눌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두 사람 이상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혼자서는 인간이란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두 사람이 필요하며,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 인간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본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인간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게 어떠한 사랑의 형태든 상관없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그런 걸 꽤 책 한권에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나랑 닮아서 현실적이다라고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내게 있어선 무척이나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또 평범하다면 평범했다. 이런 이야기 정말 싫지 않다. 좋다. 게다가 가끔 주인공의 행동이 귀여워서, 웃고 만다. 대사라던가, 그런 것들이 참 귀엽달까. 푸핫. 엉뚱하기도 하고. 대학 친구랑 투닥거리는 것도 귀엽다.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면 그 이중성에 놀라기도(!). 무엇보다 료씨, 귀엽다. 아저씨수도 좋지만, 아저씨공도 환영이다! (푸핫) 이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더 보고 싶은데, 시리즈 있을까. 작가의 두번째 단행본이라고 하는데, 첫번째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쩐지 다른 작품은 이 작품과 그 풍이 완전히 다를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드는데, 그건 역시 봐야 알 것 같다.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