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크로싱 - 99명의 거장에게서 발견한 생각의 연금술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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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옥의 크로싱>은 21세기가 원하는 생각하는 인재 즉, '융합형 인재'를 예술가들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예술가들의 인생과 작품에는 저자 이명옥이 나눈 여러가지 유형의 융합형 인재란 무엇인지 녹아있고, 그것을 엿보는 것은 무척이나 즐겁다. 미술과 관련되어 있다하여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고, 딱딱한 문체를 사용해 가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각 카테고리 별로 평소 알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소개 받으며, 그들의 작품이자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노력, 천재성과 창의성 그리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며 모험과 비난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가슴설레고 또 본받고 싶어졌다. 

 이야기의 진행방식은 작가의 일대기를 통해 그 작가가 어떤 '크로싱'을 했으며 과정은 어떠한지 보여주고 그 크로싱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작품을 통해 친절히 설명해주며 그와 연관된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소개해준다. 책은 크게 8가지 이야기로 나눠져 각 파트별로 크로싱을 더 세분화하였다.

 하이브리드형 예술가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처음으로 소개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나 역시 알고 있었고 작품도 몇 점 보았지만,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그 독특한 화풍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알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의 화풍은 에도 시대에 제작된 판화 우키요에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하이브리드(hybrid)란 서로 다른 분야의 특성들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는 일본풍 미술인 타문화를 섞어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우키요에에 관심이 많은 나로썬,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고흐의 그림을 보니, 놀랍게도 그 배경엔 에도의 풍경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하이브리드형 예술가의 마지막 이야기인 '생각의 이종교배'에서 소개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지옥도>는 호러 페인팅의 원조라 하는데,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신선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스위스 출신 화가인 H.R 기거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러한 기거표 몬스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우주 괴물을 가리킨다고 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미술계뿐만이 아니라 영화계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렇게 읽다 보면, 어떤 작가의 작품을 보고 누가 영감을 받아 또 뭔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의 제자가 더 독특하고 새로운 것으로 변화시키기도 하며,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란 신상품을 빠르게 구매하거나 그에 관한 기술과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를 말하는데, 얼리어답트형 예술가에서는 카메라나 망원경, 거울, 테크놀로지를 누구보다 발 빠르게 도입하여 미술과 크로싱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피테르 클라스의 <유리구슬이 있는 정물>은 삶의 허무함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화인데, 화가는 작품에 거울을 등장시켜 그 반사를 이용해 부재하는 대상을 현존하게 만들었다.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 거울을 통해 부재하는 대상을 현존하게 만든 이 작품은 피테르 클라스의 자화상이었다. 비디오 아트의 선두자인 백남준 예술가도 소개가 되어 있는데, 읽고 나니 그의 작품들을 한 번쯤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나오는 발명가형 예술가 파트를 나는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 무척이나 독특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과 과일 그릇의 환영>은 다중 심상 그림인데,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재미난 그림이다. 조금만 초점을 바꾸면 다른 것들이 튀어나와 인식되는데, 정말 재미있다. 살바도리 달리의 또 다른 작품인 <비키니 섬의 세스핑크스> 역시 무척이나 인상 깊은 작품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멘토였다고 하는데, 과연 왜곡된 형상을 표현하면 이렇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패러독스의 그림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역시 발명가형 예술가인데, 이 말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나는 회화를 이용해 사유를 가시화한다"고. 책 표지의 왼쪽 상단의 <고추사과>라는 김문경의 작품 역시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감상자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작품의 변형을 통해 모든 현상과 대상 간에 존재하는 거짓과 눈속임을 드러내고, 왜곡된 현실을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는 작가는, 인간의 삶에서 과연 진실이 존재하는지, 무엇이 실상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한다. 이렇게 작품의 의도를 알고 나니 작품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지고 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역설이 그림에 녹아있으면 그것만큼 함축적이고 또 철학적인 것이 따로 없다.

 그 뒤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던 모빌이 실제론 디자인과 공학의 절묘한 조화라는 것에 깜짝 놀라며 감탄하고, 이름만 들어왔던 앤디 워홀이 어째서 그렇게나 유명한지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예술도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앤디 워홀의 생각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니, 그것을 재빠르게 간파해내어 성공한 그가 놀라웠다.

 체험형 예술가에서는 경험과 열정을 크로싱한 작가들이 소개되는데,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정도로 엄청나다. 인체 해부에 몰두해 그것을 그림에 녹여된 미켈란젤로의 엄청난 그림과 수술을 집도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린 토머스 에이킨스의 <그로그 박사의 병원>, 최초의 말 전문 화가인 조지 스터브스의 <험블토니언 솔질하기>과 개를 모델로 한 윌리엄 웨그만의 <나뭇잎의 선>등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이 줄을 잇는다. 존 컨스터블의 <구름>그림은 살아 있었고,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불타는 국회의사당>은 마치 그림 속에서 불타는 냄새마저 느껴질 정도다. 물론 터너의 화풍은 대상의 윤곽이나 형태, 명암을 꼼꼼하게 묘사하지 않고 화면에 용해시켰지만, 작품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독특한 그림이었다. 뒤이어 나온 오노레 도미에의 <가르강튀아>등의 만평은 단순히 웃을수도 그렇다고 울수도 없는 블랙 유머의 진상이었다. 그는 만화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난질이 아니며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면서 고뇌에 허덕이는 인간의 억압된 정신에 별안간 나타나는 통풍구와 같다고 하는데, 기득권층의 위선과 부정부패를 예리하게 짚어내는 그의 시선이 놀랍다.

 뒤이어 남은 이야기에서도 이렇게 재미있고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누구나 아는 피카소, 몬드리안 등은 물론이고 한국 현재 화가들의 작품들도 접할 수 있어, 자국의 미술계에 대해서 관심도 생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 속에 등장한 작가들의 융합적인 사고와 삶에 놀라고 감탄했다는 점이다. 해석하고 평가내리기가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게가 후세에 재평가를 받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배척 당하며 비난 받은 것이 안타깝다. 새삼 사람이란 원래 기존의 가치관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단 거부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꿋꿋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런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와 같은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고 또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꼬를 트는 일은 힘들지만 대단한 일인 것이다. 더운 여름, 많은 돈도 노력도 들이지 않고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은 꽤나 즐거웠다. 이명옥 저자의 다른 책들도 조만간에 또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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