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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처음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재난 소설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았을 때, 사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의례 책들의 표지가 그러하듯 과장 광고일 가능성도 있었고, 무엇보다 광고의 말이 맞더라도 정작 자신에게 안 맞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 소설이 한국의 '최초' 블록버스터 재난 소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초라는 말을 내 걸 정도로 흡인력 있고 또 재미있으며 확실한 메세지를 주는, 영화와 같은 소설임에는 틀림없었다.
표제 제목인 '싱크홀'이란 지하 암석이 용해되거나 기존의 동굴이 붕괴되면서 땅이 꺼지는 현상을 말한다. 시저스 타워라는 562미터의 거대한 빌딩이 이 싱크홀이라는 자연 현상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땅 속으로 사라졌다. 인명 피해는 무려 2천여명. 이야기는 주로 혁과 동호, 민주, 안나 그리고 시저스 타워에 갖힌 몇몇의 사람들의 시점 등에서 진행된다. 프로 등반가인 혁은 자신의 방랑벽 때문에 아내와는 별거 중이었으나 산을 오르고자 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고, 처남이 산에서 목숨을 잃은 후 폐인과 같이 지내던 혁은 자신의 아내인 영희와 딸인 안나가 이 싱크홀에 가라앉은 시저스 타워에 있음을 알게된다. 정형외가 의사이자 시저스 타워를 세운 재벌 어머니의 아들인 동호는 자신의 환자 소녀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해 꽃가게에서 만난 민주라는 여인과 인연이 닿고 그녀를 소울메이트라 여기며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었지만 시저스 타워와 함께 그 꿈은 무너져내렸다. 처참한 싱크홀에서는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한 파렴치한 사회지도층과 싱크홀에서 차라리 죽어도 좋다며 다친 사람들을 위해하는 범죄자 등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재난 속에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인간성과 이기심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또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만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혁과 동호는 마음을 모아 정부의 반대에도 몰래 싱크홀로 내려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한다. 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등의 히어로물로 갈수도 있었으나 그리 할 경우, 현실성이 떨어진다. 같이 구출된 인간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화가 났지만, 세상의 불합리함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며 시작한 이야기는 1000미터가 넘는 싱크홀로 가라앉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히말라야에서 싱크홀로 내려오기까지 교차하고 어긋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에 재난이 겹쳐지고 상황은 극적으로 변한다. 일상이 비일상으로 변하고 순식간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재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뒤틀린 인간관계는 새롭게 조명된다. 작가는 싱크홀이라는 재난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도 적나라게 보여주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인간의 밝고 희망적인 부분도 보여준다. 영화와 같이 펼쳐지는 이야기에 책을 한 번 손에 들면 손에서 놓을 수 없고, 지루함없이 쉴새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에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이재익'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다. 재난 영화는 많이 보았으나 소설은 보지 않아 재미있었고 책이 영화만큼이나 박진감 넘쳐 놀랐다. 인간이 인생을 바꿀만한 위기 앞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그 양상은 흥미로웠다. 위기 앞에서만 자신의 삶과 잘못을 늬우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심하지만 나도 그 가운데 하나이고,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도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밑바닥의 어두컴컴한 현실 속에서 희망의 한 줄기를 보고, 엔터테이먼트로써 스릴과 감동이 있는 소설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