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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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읽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후로 뵙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다. 요즘 열차나 기차와 관련된 미스터리가 보고 싶어서 다른 작품은 제쳐두고 이것부터 보게 되었는데, 역시 미스터리하면 열차, 열차하면 미스터리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에르큘 포와르라는 벨기에 인 명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증인들의 대화나 몸짓을 날카롭게 분석해 의심하고 추리하며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다. 본 작품은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래체트라는 좋지 않은 인상의 미국인이 살해 당하고 이를 둘러싼 12명(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살자와의 연관성은 발견하기 힘들고, 모두들 서로가 서로를 입증하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어 마치 범인은 외부 사람 같다. 읽으면서 범인을 추측해보려 했으나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범인과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리고는 놀랐다. 그 사건의 진상에는 가슴 아픈 과거가 얽혀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것 없이 정말 사건에만 집중한 채 이야기가 흘러가 요즘의 소설과는 다르다. 아쉬운 점은 그렇게 사건에만 집중하다보니, 그 시대 특유의 배경 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럿 익숙치 않은 단어에 각주가 달려 있지 않아 그런 부분도 아쉬웠다. 하지만 열차가 눈에 의해 운행이 멈춘 상태니, 이때부턴 사건에 집중 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경 묘사나 많은 역사적 지식같은 것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이렇게나 훌륭한 열차 미스터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엄청나다.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 대한 포와로의 생각과 관찰력 그리고 이 시즌에는 비어 있는 열차 차량이 꽉 차 있었다는 점은 사건에 있어서 중요한 힌트였다. 범행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들 역시 누구의 것인지, 어째서 거기에 떨어져 있는 것인지도 힌트가 된다. 무엇보다 각기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들 하나하나가 단서 그 자체다. 이렇게 앞서 제시한 복선들이 끝에 가서 서로 맞물릴 때의 그 희열이란! 정말 짜임새있다. 이게 바로 미스터리고 추리며 본격이다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사건의 결말에 대해서 포와로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나 역시 전자를 택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르큘 포와로라는 탐정은 처음에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국 드라마로 머릿속에 그려보니 굉장히 재미있다.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탐정, 증인들이 한 명 한 명 식당차에서 알리바이를 증명한다. 기차를 돌아다니며 가방을 수색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연극으로 만들어져도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아졌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진 영상은 다분 내 취향이 반영된 이미지이로 실제 포와로보다 많은 각색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포와로에 대해서는 별다른 호감은 없는데 그 이유는 이 탐정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한마디로 탐정의 사적인 면을 알 수가 없으니 그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는 명탐정이구나라는 감상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건 내가 아마도 포와로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작중 인물들에 대해서 감정 이입하기 이전에 사건 진행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이다. 즉 인물들 각각에 대한 사연이 거의 없다. 그저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도만이 제시된다. 이건 이것나름대로 사건의 진행에 있어서 좋다. 그래서 재밌게 읽었지만 읽고 나니 인물들 각각에 대한 인상이 흐릿하다. 심지어 탐정마저도. 그리하여 나는 이러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포와로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더 보고 싶어졌다. 첫작인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푸른 열차의 죽음>, <엔드하우스의 비극>, <13인의 만찬> 그리고 포와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인 <커튼>까지.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다. 다른 작품에서는 포와로가 어떻게 그려지고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기대가 된다. 끝으로 옛날 문체에도 이렇게나 잘 읽히고 또 재밌게 읽었다는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스토리텔링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해문출판사 책을 읽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황금가지의 번역은 좀 더 부드럽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현재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옛날 문체인데도 이상하게 싫지 않다. 거북함도 없다. 이 시대는 이런 문체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어딘가 이런 문체는 극스럽고 드라마틱해서 특유의 '풍'이 잘 살아나 감칠난다고 할까. 영상물은 이걸 어떻게 살려냈을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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