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화촌 기행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정진영의 <도화촌 기행>은 책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한 남자가 술을 먹고 고양이를 따라 갔다가 '도화촌'이라는 마을에 이르러 거기서 인생을 배우고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 39세. 사법고시를 준비한지 오래되었지만 계속 낙방에 헤걸이 연속이다. 나이는 먹어가지, 사법고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가지, 자신이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매년 실감하며 살아가던 주인공 이범수였다. 그런 현실에 실망하고 좌절한 이범수는 술을 잔뜩 먹고 돌아가던 어느 날 밤,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따라갔다가 '도화촌'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 폭언에 폭력을 일삼는 몇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정체 모를 영감과 친절하고 다정한 '도화촌' 사람들의 숨겨진 사연들을 통해 이범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사법고시를 계속 할 것인지, 이 도화촌에서 계속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공산주의처럼 모든 자재를 함께 쓰고 일을 하는 도화촌 사람들 속에서 매일 공부만 하던 이범수는 몸을 움직여 일하는 기쁨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사법고시에 대한 마음을 접고 도화촌에 살기로 하자 40억 짜리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알고 아귀처럼 변하고 또 그 복권과 사랑하는 여인을 저울질하며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비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와 태어나자마자 돈이 없어 죽어버린 형과 소식도 없는 철부지 동생,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간암으로 죽은 아버지 그리고 돈 때문에 뒤돌아선 여자친구 등 그는 과거의 비참함을 도화촌의 주민인 상덕에게 털어놓으며 신과 인간 그리고 과거, 현실,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상덕은 윤회설을 재기하며 우리의 영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힘든 것은 과거의 업 때문이며 이는 운명이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업과 운명에 져서 현재를 무의미하게 보낸다면 미래 역시 업의 반복일 뿐이라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윤회설을 믿는 것도 아니고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지만 세계를 관장하는 거대한 존재가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게 있어선 자연 그 자체가 신이고 절대자이기에 그저 당연하다. 왜 살아가야 하고, 또 열심히 살아야하느냐는 것에 대한 답으로 불교적 색채가 짙은 윤회설도 가능하겠지만 나로썬 그다지 썩 신선한 대답은 아니다. 그저 무난하고 누구든 그럴 가능성도 있지라며 쉽게 수긍 할 수 있는 그런 답. 솔직히 말하면 뻔하다는 것이다. 또한 윤회설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나온 바 있다. 물론 이 점이 한국판타지스럽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좀 더 재미있는 답변을 들려줬으면 했는데, 이 부분은 아쉽다.
40억 복권이 휴지로 돌아간 이후 이범수는 현세와 도화촌을 비교하게 된다. 무릉도원이라 생각했던 도화촌은 40억 복권이 들어온 순간 빠져나갈 수 없는 끔찍한 미로가 되었고 그는 좌절에 빠진다. 하지만 상덕은 도화원기의 이야기를 들며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곳이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즉 도화촌은 돈보다 사람이 중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며 현실은 도덕 교과서처럼 도덕적으로 살아가면 오히려 미련하고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틀어박힌,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정말 현실은 이와 같다. 다들 도덕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이 옳다고는 생각하며 책에서도 그것을 주구장창 떠들어 대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면 비난받고 욕 듣는 것은 도덕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것을 이상으로 만들어 놓아 현실 속에서 그 이상이 실현되면 이상하게 보며 비정상이라 한다. 언제부터 도덕적인 것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나 이상이 되었는가. 어째서 비정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에 수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그것을 당연하게 되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도화촌에 머물 것인지, 사법고시를 치며 현실을 살아 갈 것인지 고민하던 이범수는 결국 후자를 택한다. 이는 당연하다. 만약 그가 도화촌에 머물며 끝이 날 경우, 이건 정말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체념을 경험하기 위해 도화촌을 떠난다. 즉 그는 자신이 꿈꾼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뒤, 그것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물론 결과는 성공 할 수도 실패 할 수도 있지만, 만일 실패 한다 하더라도 도화촌에 들어오기 전처럼 열심히 사법고시 공부를 하지도 않고 자기애에 빠져 나날을 보내며 끝내 손에서 놓지 못했던 미련을 이번만큼은 끊어내고 단념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도화촌과 현실을 넘나들며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 그에게 있어서 도화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생각해보게 만듬으로써 지나온 삶의 불합리성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으며 제자리 걸음만 하는 현실 속 자신을 일깨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환상문학의 냄새를 풍기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현실이 따로 없는 <도화촌 기행>은 도화촌이라는 이상적인 마을을 만들어 현실과 비교하며 이범수를 통해 두 세계의 교량 역할은 물론 직접적으로 현실의 불합리함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생생한 고시촌 생활은 쓰디쓴 현실에 생생함을 불어 넣었으며 이상적인 것은 알지만 세속적인 것에 눈이 먼 현실적인 인간상과 심리를 잘 드러내보였다. 아쉬운 건 무릉도원이라 말하는 도화촌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 할 수 있는 이미지였다는 점이었다. 또한 도화촌 기행인데, 술과 편안함 그리고 현세에 대한 미련 등의 모습만 부각되어 이상향이라 불리는 도화촌의 모습이 제대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그저 공산주의의 일면인 공동 노동만 보여주며 이에 대한 언급도 별다른 언급도 없었던 것 역시 아쉽다. 물론 도화촌 기행을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며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이겠지만, 단지 도화촌은 '이상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장소를 제공해주었을 뿐이며 현실과 도화촌의 제대로 된 비교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범수 개인의 문제를 통해 사회의 문제와 인간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나 불혹에 가까운 나이답지 않게 행동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위화감이 종종 들었으며 주로 도화촌에 살며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야기 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소설이고 또 허구적인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만큼, 전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은연중에 메세지를 전달했으면 그것도 참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핵심적이면서 다음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도 할 수 있게 하는 소제목과 스토리텔링에 지루함없이 재미있고 흡인력 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