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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견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오츠이치의 <평면견>은 치유계 소설이다. '이시노메'와 표제작인 '평면견', '하지메' 그리고 '블루'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집으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당연하게 펼쳐져, 읽는 내내 책 속의 기이한 현실에 이상함이나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시노메'는 돌의 눈이라는 의미로 (일본어로 돌은 '이시'이며 눈은 '메'다.), 어느 여인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은 돌로 변한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내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를 연상시켰으며 해리포터와 비밀에 방에 나오는 뱀을 떠올리게 했다. 이야기는 산으로 들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 남자가 자신의 동료와 산에 들어갔다가 이시노메를 만나게 된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깊은 산 속에서 지내며 벌어지는 기이한 생활을 그리고 있다. 같이 간 동료의 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벌어지는 사건과 맞물려 무릉도원 같은 곳에서의 생활은 평화로웠지만 점점 답답해지고 두려워져갔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주인공의 어머니의 진실과 이시노메에 관련된 이야기는 놀라웠다.
'평면견'은 제목 그대로 2차원적인 개를 말한다. 즉 종이 등의 어떤 표면에 그려진 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한 소녀의 왼쪽 팔 윗 부분에 문신으로 새겨진 개를 평면견이라 부른다. 이 평면견은 아름답고 신비한 중국인에 의해 새겨졌는데, 소녀의 몸을 누비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즉 문신으로 그려진 개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피부에서 움직이며 살아가는 평면견의 기이한 행동을 소녀는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는데, 이는 가족들 모두가 암에 걸려 반년 뒤에 죽는 다는 기이한 일상과 교차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그녀는 평면견의 존재가 짐이라 느꼈고 떼어내려 하지만, 이내 그 평면견은 짐이 아니라 그녀에게 혼자가 아니라며 힘을 주는 존재가 된다. 동생이 간간히 언급한 '유우'라는 존재는 마지막에 밝혀지는데, 이 또한 감동이었다.
'하지메'는 자신도 모르게 닭장에서 병아리를 밟아죽인 코헤이가 자신의 잘못을 친구인 키조노와 함께 하지메라는 자신이 만든 소녀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 발단이 된다. 그 이후 그들은 자신들의 놀이 공간인 하수도를 탐방하는 중에 하지메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뒤 환청과 환각이 보이게 된다. 하지만 하지메는 그 둘에게만 보였고 그들은 그러한 기묘한 환각을 공유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하지메는 계속 그들의 곁에 남아있었고 코헤이는 노비라는 네다섯살 된 어린아이와 어울리게 된다. 코헤이가 하수도에서 논다는 것을 알게 된 노비는 비가 많이 와 강물이 불어난 하수도에 그날도 놀러가게 되고 마을은 노비가 사라져 뒤집어진다. 코헤이와 키조노는 하수도의 존재를 들키고 싶지 않아 찾아 나서면서 사건을 급박하게 흘러간다. 하지메가 8년이나 사라지지 않고 코헤이와 키조노의 앞에 나타났던 이유는 의외였으며, 버스 사고로 한 아이를 살린 후 사라진 하지메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도둑질이나 하는 아이로 아니곱게 보는 하지메의 진실된 면을 보여준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면은 하지메라는 환상을 만들어 낸 코헤이와 키조노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블루'는 케리라는 인형 작가에 의해 신비한 천으로 만들어진 다섯 인형 중, 얼굴이 파랗고 다리 길이도 다르며 예쁘게 생기지 않은 인형의 이야기이다. 인형이란 아이들에게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것만, 자신의 외형으로 외면당하고 버려지는 블루는 그에 굴하지 않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과정 중에 테드에 대한 애정이 싹트고 블루는 테드의 목숨은 물론, 자신을 버린 웬디의 인형들까지 불로부터 구해낸다. 바스라지며 테드의 손에서 흩날리던 블루의 최후에 조금 울적해졌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이상한 건 테드를 향한 웬디와 부모의 태도다. 웬디가 자신의 물건을 엉망으로 만드는 테드를 미워할 수 있는 건 어린아이로써 당연하겠지만 동생을 계단에서 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위험한 행동을 했음에도 훈계조차 하지 않는 부모는 역시 이상하다. 아무리 인형이 움직여서 테드의 머리가 다치지 않게 감쌌다해도, 웬디의 잘못 된 행동은 짚지도 않고 인형이 살아 움직였다는 그러한 기이한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상하다. 하지만 인형이 살아 움직여서 기겁하는 어머니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영화 '처키'를 떠올리면 인형이 움직이는 건 그야말로 호러고 공포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츠이치가 보여준 움직이는 인형은 따뜻하고 희생적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형도 있지만 결국 버려지는 건 블루가 아니었다.
4편의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의 기묘한 공존 가운데서 주인공들은 그 세계에 많은 의문을 품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로부터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세계의 인물들로부터 실직적인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은 물론, 마음의 구원까지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곳곳에 숨어 있는 미스터리는 이야기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든다. 전하려는 메세지는 보일 수도 있고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중요한 건 오츠이치가 만든 세계 속의 주인공들이 잘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또 무언의 힘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오츠이치 치유계 소설 중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소재자체는 재미가 있고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앞서 읽었던 장편 치유계 소설에 비해 그 영향력이 다소 흐리다. 뿐만 아니라 다크계 단편과 비교했을 때도, 개인적인 취향이 차이겠지만 나는 다크계 쪽이 더 인상깊었다. 그러나 각각 단편들이 주는 재미는 여전했으며 가독성, 스토리텔링 등에 푹 빠져서 금방 읽었다. 지금 느끼는 뭔가 부족한 이 2%는 아마 나중에서야 알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